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86화 (86/149)

#86

“드래곤 하트도 얻어야 하는데…….”

“그게 좀 곤란하긴 한데, 드래곤 하트는…… 처음 그 드래곤의 몸에서 심장을 꺼낸 사람의 몸에 흡수되는 거니까. 일단 내가 가지겠다고 말해 놓을 테니, 타이밍을 봐서 이현이 꺼내.”

“아, 그래도 돼?”

“그럼.”

일이 이렇게 쉽게 풀려 버리다니. 복잡한 매듭을 푸는 게 아니라 칼로 쳐 단숨에 풀어 버린 느낌이었다.

“같이 수도로 돌아가서, 수속을 밟자. 지금 몇 클래스야?”

나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6클래스.”

“마스터?”

“아니, 익스퍼트.”

“그 정도면 굳이 내 추천으로 들어올, 필요도 없겠어. 마법사로 들어올 거지?”

“아니, 검사로.”

압실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걔네 눈에 띄고 싶진 않아서.”

체자레는 그렇다 쳐도 루드비히는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납득했다는 듯 압실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금방 알아챌걸.”

“그때까지는 너도 모르는 척해 줘.”

“던전에서도, 같이 다니고 싶었는데…….”

압실론이 시무룩해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말끔히 무시했다.

“그럼, 여긴 언제 떠날 거야?”

목표가 정해졌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압실론이 덮어 준 망토를 움켜쥐며 말했다.

“내일.”

* * *

“네가 거길 왜 가?”

마티어스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던전 토벌에 지원하겠다고 하자마자 그는 황당하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나 모험가가 꿈이라고 했잖아. 이번 던전이 토벌되면 다음 던전은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던전 안에 드래곤 있다는 말 내가 안 했던가?”

“했어. 그래도 인생 살면서 드래곤 한 번쯤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진짜 미치겠네. 너 안전 불감증 있냐?”

마티어스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골치 아프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너 지금까지 던전에 들어가 본 적은 있어?”

물론 있지. 그것도 너랑 다녀왔단다.

“있…… 어.”

“거짓말하지 말고.”

“거짓말 아니야. 그리고 네가 내 보호자야? 내가 던전을 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너도 간다며!”

“나야 내 한 몸 지킬 수 있으니까 가는 거고!”

“나도 마찬가지거든? 저번에 대련할 때 네 입으로 나 실력 괜찮다고 했잖아. 근데 나는 마법도 쓸 수 있…….”

“걱정된다고!”

마티어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티어스가 내 쪽으로 손을 뻗더니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무어라 더 쏘아붙이려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티어스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 던전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왜 이래?

“너까지 잃으면 나는 정말…….”

아, 뭘 걱정하는지 알겠다.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마티어스를 토닥였다.

“그렇게 안 되게 네가 나 지켜 주든가.”

“그냥 안전한 데 있으면 되잖아.”

“너 모험가라는 직업이 만만해? 나는 눈 감기 전에 이곳저곳 다 다니는 게 소원이거든?”

“안전해지고 나서 나랑 같이 다니면 되잖아.”

이런 대화는 도돌이표일 뿐이었다. 나는 마티어스의 셔츠 자락을 내 쪽으로 잡아끌며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마티어스.”

“……어?”

“난 사실 너한테 던전에 가는 걸 허락받을 이유는 없어. 압실론한테 부탁하면 그만이야.”

내 말에 마티어스가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내가 너를 설득하려는 이유는…….”

“……이유는?”

마티어스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는 내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마티어스의 코가 내 이마를 스쳤다. 그의 속눈썹이 나비의 날개처럼 팔랑거리는 게 너무 가깝게 보였다. 이거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뺨 안에 달군 쇠 주전자를 넣은 것처럼 광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덩달아 긴장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유가 뭔데?”

“……모, 몰라. 까먹었어.”

“그사이에 그걸 까먹는 게 말이 돼?”

“아, 모른다니까! 아무튼 내 생각은 변함없어.”

나는 마티어스의 단단한 가슴을 밀쳤다. 꿈쩍도 안 하는 통에 두어 걸음 물러선 건 내가 되었지만.

“너, 내가 장군인 건 기억해? 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난 널 떨어트릴 수 있어.”

치사하긴!

이건 뭐, 이현이었을 때보다 더 과보호하는 것 같은데.

“그럼 압실론한테 꽂아 달라고 할 거야.”

“너 진짜……!”

“네가 어쨌든 난 거기 갈 거라고.”

가야만 하고.

내가 강경하게 나오자 마티어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화를 참는 게 역력한 기색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마티어스는 차츰차츰 진정했다.

“고집 센 것도 어디의 누구랑 똑같네.”

그 누구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마티어스의 시선을 피했다.

“좋아. 그럼 토벌대에 들어오는 대신 내 옆에만 있기로 약속해.”

“……그것도 약속 못 해.”

“뭐?”

“높은 분들 눈에 띄기 싫어. 그냥 일반 병사로 지원할 거야.”

“넌 내가 높은 분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냐?”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마티어스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토벌 가서 네가 죽든 말든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의외로 너보다 오래 살 수도 있어.”

“퍽이나 그러겠다.”

마티어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뭐, 아주 나쁜 생각은 아니네.”

“일반 병사로 지원하는 거?”

“그거겠냐. 높은 분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거.”

‘그게 왜?’라고 생각하던 나는 마티어스의 질투에 생각이 미쳤다. 루드비히나 체자레가 나한테 집착할까 봐 무섭구나? 귀여운 짜식.

“근데 너 그거 아냐? 드래곤 던전이라, 토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최정예만 뽑아. 병사들도 마찬가지고.”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져 물었다.

“대련 때 나 실력 많이 좋아졌다고 했잖아……?”

“그거야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거고, 검에 평생을 건 사람들 사이에선 좀 아슬아슬하지.”

“그럼 마검사로 지원을…….”

“넌 자존심도 없냐? 내일 당장 우리 집으로 들어와. 특훈이다.”

내일 수도로 갈 생각이야 있었지만…… 왜 이렇게 오한이 들지.

마티어스가 열띤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마티어스의 깊어진 입매는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그 토벌전, 마법 한 번 안 쓰고 합격하게 해 주지.”

어쩐지 잘못 걸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 *

어째…… 좀, 살풍경하네.

나는 마티어스의 저택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택은 거대하고 조각품들도 화려했지만, 그다지 잘 관리되어 있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 해?”

“어?”

“무슨 생각 하는데 말을 걸어도 못 알아들어.”

“어…… 그냥, 집이 멋지다고.”

내 말에 마티어스가 피식 웃었다.

“저택이 좀 관리가 안 되어 있지? 작년부턴 여기 거의 안 살았거든.”

“아…….”

하긴, 거의 황궁에만 머물렀었지. 황궁 교도소에도 잠깐 있었고. 문득 황궁 지하 감옥 문을 부수고 나한테 황소처럼 달려들던 마티어스가 떠올랐다. 너도 참 성격 많이 죽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마티어스가 얼굴을 붉히며 바로 뒤에 있는 도자기를 커튼으로 가렸다.

“물건들도 좀 수준이 떨어져. 평민 딱지 떼고 허한 마음에 이것저것 막 사들였거든.”

“…….”

내가 말이 없자 긍정으로 생각했는지 마티어스가 더 당황해 말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같이 경매장에 가자. 괜찮은 물건들이 있을 거야. 그것들로 하나씩 채워 가면 돼. ……젠장, 무슨 말 좀 해 봐. 내 집을 보여 주는 걸로 이렇게 긴장한 적은 없었다고.”

잔뜩 긴장한 마티어스를 보자 웃음이 났다. 나는 그런 마티어스가 귀여워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난 그냥 널 본 거야.”

“……뭐?”

“널 본 거라고, 바보야.”

그리고 황궁 교도소에 있던 널 생각했지.

키득키득 웃고 있는데 마티어스가 갑자기 나를 벽에 밀치며 거칠게 입 맞췄다.

“음……!”

이가 살짝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축축한 살덩이가 온 입 안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마티어스를 밀쳐 보았지만, 불이 붙은 녀석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반쯤 빤 사탕처럼 끈적끈적하고 눅진한 입맞춤이었다. 송곳니를 핥는 혀에서는 여전히 모래와 바다의 맛이 났다. 입맞춤 한 번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힘이 풀려 굽어지는 다리 사이로 마티어스의 단단한 허벅지가 빈틈없이 들어찼다. 아릿한 접촉에 아랫배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았다. 마티어스는 입을 맞추면서도 귓바퀴와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귓가가 불타는 듯 뜨거워졌다. 뺨을 스치고 지나간 입술이 귓불을 깨물었다. 더운 숨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감각에 절로 벌어진 입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으……!”

힘겹게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로 무언가 까만 게 보였다. 저게 뭐지. 나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짓누르는 코와 귓불을 깨무는 입술의 감각을 느끼면서도 눈매를 좁혀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압실론……?”

압실론이 문가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 마티어스를 떠밀었다. 불시에 밀쳐진 마티어스가 뒷걸음질 치다가 내 셔츠 자락을 쥐었다.

“……!”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카펫 위로 추락했다. 온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차 있어 푹신한 맛은 없었지만, 마티어스의 몸집이 컸던 덕분에 내가 무릎이나 손바닥을 바닥에 찧는 일은 없었다. 뺨을 괴고 쪼그려 앉은 압실론이 우리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같이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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