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85화 (85/149)

#85

[나: 제 상태가 안 좋다뇨?]

[GM: ……놀라지 마세요. 지금 이현 씨 몸은 병원에 있어요.]

그것까진 놀랍지 않았다. 예전에 보냈던 쪽지 중에 병원비 대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렇게 게임 세계에 오래 있는데 바깥세상에 있는 내 몸이 정상일 리도 없었다.

진짜 충격적인 이야기는 그다음이었다.

[GM: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이현 씨의 기억을 담은 칩이에요.]

[나: ……뭐라고요?]

[GM: 저번에 로그아웃하려 했을 때 ‘신체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떴었죠? 그게 이현 씨의 몸과 칩이 분리되어 있어서 그래요.]

[나: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캐물은 끝에 나온 답은 청천벽력이었다.

아침에 찾아온 이삿짐센터는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자 이상해서 경찰을 불러 문을 땄고, 캡슐 안에 있던 내가 깨어나지 않아 가상 현실 관련 전문의를 불렀다고 했다.

장치째 병원으로 옮겨 검사한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게임도 아니고 간판 게임인 <소년들>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회사에서도 난리가 났었다고. 수도 없이 많은 의사들이 달려들었고, 병의 원인을 알아냈다.

내게 일어난 일은 가끔 검증되지 않은 데모 게임을 실행했을 때 종종 일어나는 현상으로, 정확한 학명은 없지만 ‘정신 전이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듯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칩 안으로 바이러스가 침투해 육체와 정신의 고리를 끊고 가상 현실 속에서만 살게 만드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육체가 없으면 정신은 빠르게 무너진다. 육체가 없는 가상 현실 속의 정신은 대개 1년이 지나지 않아 소멸되는데, 나처럼 2년 넘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례는 최초라고 했다.

[GM: 이현 씨의 정신이 이 세계 안에 들어 있다 보니 업데이트를 하거나 치트를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지금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기적 같은 거라 우리 운영자가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었어요. 이득 대비 리스크가 너무 크죠. 이현 씨의 정신은 하나니까요.]

[나: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GM: 던전 만드는 것도 회사 내에서 반대가 많았어요. 다행히 맵 업데이트는 정신에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좀 덜해서 그대로 진행되었지만요. 공들에게 들키지 않게 만드느라 힘들었죠.]

[나: 네, 뭐…… 정말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려야 하나요?]

[GM: 네, 정말 고생했습니다. ㅠㅠ 그냥 적당히 합의금 물고 졸속으로 종료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현 씨를 위해 프로젝트 팀까지 짰죠. 진심이었으니까요.]

“…….”

그냥 던진 말인데 이걸 또 공치사하고 있네. 나는 이 GM의 말투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이야. 고민하던 나는 ‘합의금’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미쳤다. 합의금을 누구한테 주는데?

[나: 그럼 부모님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가요?]

[GM: 예. 게임 속 이현 씨의 상황을 직접 모니터링하시기도 했답니다.]

“미친.”

순간적으로 소름이 일었다. 내가 AI한테 아양 떨고 울고불고 화내고 쫄고 스킨십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다 봤다고? 나는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GM: 아, 물론 아주 단편적인 영상이에요. 이현 씨가 자거나 쉬는 일상적인 모습들이요. 공들한테 들키지 않고 이현 씨의 생존 반응을 파악하려면 이현 씨가 혼자 자고 있을 때나 몰래 수집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 내 머릿속을 파악했는지 GM이 추가로 쪽지를 보내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 그럼 지금도 계속 영상이 수집되고 있는 건가요?]

[GM: 아니에요. 압실론이 조력자가 되면서 이현 씨와 이제 쪽지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부모님이 혹시 저를 걱정’까지 치던 나는 채팅을 지웠다.

[나: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내 말에 GM은 평균 답장 속도보다 조금 늦게 답변했다.

[GM: 이현 씨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계세요. 저번엔 회사에 와서 멱살잡이를 하신 적도 있으시다니까요. 정말 무서웠어요.]

“…….”

거짓말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실 위인이 아니었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합의금을 높이면 모를까. 하얀 거짓말이 씁쓸했다. 날 걱정한 사람은 이 사람 정도밖에 없었겠구나.

“내 인간관계 정말 심각하다, 심각해.”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던 나는 잠깐 멈칫했다.

“심각……?”

어쩐지 이 단어가 입에 익었다. 살면서 안 들어 본 단어는 아니지만, 한 시기에 굉장히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뭐지.

“심각, 심각, 심각, 심가악. 심각. 심각…….”

말을 여러 번 읊조리던 나는 손뼉을 치며 외쳤다.

“심각 님 달풍선 만 개 감사합니다!”

열혈 구독자였던 사람을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나는 이마를 치며 나의 기억력을 탓했다. 심지어 캐릭터도 제법 독특했는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이상한 고양이 이모티콘 쓰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다 터질 때 혼자 가만히 있다가 이상한 코드에 혼자 꽂혀서 웃으면서 갑자기 별풍선 만 개씩 쏘고.

“맞아. 한번은 너무 많이 주길래 걱정했더니 자기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 상여 많이 받았다고 했었지.”

직업 얘기하다가 개발자래서 개발 관련 얘기도 종종 했었는데. 분명히 아저씨인데 나도 모르는 <소년들> 정보도 알고 있어서 찐 오타쿠구나 생각도 했었는데.

“어……? 잠깐…….”

나는 쪽지 창을 켜서 GM이 지금까지 내게 보냈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말끝마다 붙어 있는 곰돌이 이모티콘은, 예전에 ‘심각’이 이모티콘을 보내던 방식과 결이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고양이를 곰돌이로 바꾼 것 정도일까.

이상한 확신이 온몸을 엄습했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조심스레 타자를 쳤다.

[나: 심각 님?]

GM이 타자를 입력하고 있다는 글이 계속해서 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화 하나가 올라왔다.

[GM: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심각이네.

[나: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면 보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라고 안 하거든요?]

[GM: …….]

GM, 아니 심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골이 띵하게 아파 왔다.

[나: 어떻게 된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고하세요, 심각 님.]

* * *

“하하…….”

나는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절벽을 향해 걸었다. 물론 죽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 절벽에서는 죽지도 않고. 그저 제일 높은 곳의 바람을 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이 가짜 바람일지라도.

“그렇게 된 거구나.”

풀밭을 밟고 선 나는 눈을 감고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속눈썹 사이로 산들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심호흡하고 있는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된 거였어.”

나는 조금 전 GM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실소했다.

[GM: 군대 가기 전에 네 명 다 공략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면서 우셨잖아요…….]

[나: 제가 언제요.]

[GM: 술 엄청 많이 드셨던 날이요……. 그래서 제가 그때 큰맘 먹고 채팅도 쳤는데.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기억 못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예전에 그런 꿈을 꿨던 것도 같은데.

[나: 그래서 조작했다고요? 넷 다 날 좋아하게?]

[GM: 아뇨, 그건 아니에요. 당시 <소년들은 어른이 된다> 4인 공략은 아직 해금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네 명이 한 사람을 좋아할 때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충분히 안 나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프로젝트 해금일이 이현 씨 입대 이후였어요.]

[나: 그래서요?]

[GM: 그래서…… 저는 오래된 이현 씨의 팬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미리 이현 씨의 계정에만 특별 업데이트를 해 드린 거죠.]

[나: …….]

[GM: 아예 안전장치를 안 한 건 아니었어요. 넷의 자유도를 낮춰 뒀다고요.]

[나: 그래요? 그런데 저는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죠?]

[GM: 그것이…… 이현 씨의 안전을 위해 공들의 자유도를 2 정도 낮췄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오류가 나서…….]

[나: 나서?]

[GM: 자유도가 최대치가 되어 버렸어요…….]

그 후로도 뭐라고 더 하는 것 같았는데, 보기가 싫어서 그냥 꺼 버렸다. 반짝이는 채팅 창이 보기 싫어 시스템 알림도 해제했다.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을까.

노을에 이어 해가 진 후에도 나는 절벽에 앉아 쉴 새 없이 바위에 몸을 부딪치는 파도를 보고 있었다. 조금 쌀쌀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포근한 천이 내 어깨를 덮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압실론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

“시스템 창, 또 껐던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GM 씨가, 나한테 일러바쳤어.”

“…….”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나중에 푼다고 전해 줘.”

“응.”

압실론은 얌전히 대답하고는 내 옆에 앉았다. 압실론의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려 그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무슨 수로 걔네를 다 던전으로 끌고 갈지.”

머리를 마구 헤집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압실론을 돌아보았다. ‘걔네’에 포함된 압실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이현이, 데리고 갈 필요가 있나?”

“엥?”

“어차피 우리, 가을이면 다 같이 던전 토벌하러 가는데.”

“어……?”

‘안 그래도 이번 가을에서 겨울 즈음 토벌 준비를 해 볼 생각이야.’

마티어스의 말이 떠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아- 맞네!”

“넷만 가는 것도 아니니까, 이현이 거기 병사나 마법사로 껴서 가면 돼.”

갑자기 광명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드래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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