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78화 (78/149)

#78

그 말과 동시에 내 주변에 있던 요정들이 참새처럼 일제히 포르르 날아올랐다. 큰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마티어스가 날다람쥐처럼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

놀라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마티어스가 내 몸 위에 엎어지며 나를 짓눌렀다. 으억, 무게감과 타격감에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티어스는 나를 감싼 채 단검을 쥐고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요정들을 위협적으로 노려보았다. 요정들이 억울한지 마티어스에게 항의하듯 삐삐거렸다.

마티어스는 숨이 막히도록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몸을 파닥여 보았지만, 그는 마치 전쟁통에 아이를 잃을 뻔한 부모처럼 나를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었다.

“수, 숨 막혀…….”

내 새된 목소리에 마티어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나를 놔주었다.

“괜찮아? 다친 덴 없어?”

“괘, 괜찮아. 괜찮으니까 이것 좀 놓고…….”

갈비뼈가 짓눌리도록 끌어안긴 탓에 나는 콜록거리며 그를 밀어 냈다.

“저것들이 어떻게 너한테 접근했지? 인간을 싫어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마티어스는 요정들을 거의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그 적대감을 눈치챘는지 요정들도 마티어스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어쩐지 그들 사이를 중재해야 할 것만 같은 사명감이 들었다. 나는 마티어스의 눈앞에 손바닥을 세워 요정을 향한 시선을 차단했다.

“뭐야, 뭐 해?”

내가 눈을 가려 버릴 줄은 몰랐는지 마티어스가 당황감과 불쾌감이 섞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

“진정 좀 해 봐. 나 괜찮으니까. 쟤네 나 공격하려고 한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나랑 놀고 싶어서 가까이 온 거야.”

“말도 안 돼. 성인 남자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온 요정 얘기는 못 들어 봤어.”

요정들이 인간 냄새를 싫어해 피하긴 하지만, 그건 인간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였다. 워낙 예쁘고 날개에서 떨어진 가루는 밤에도 빛을 내다 보니 요정들은 귀족층 사이에서 수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정을 산 채로 포획하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있어 왔고, 그때마다 요정들은 사냥꾼들을 잔혹하게 응징했다. 애초에 몬스터도 박살 내는 요정들이 인간을 박살 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수요층 사이에 요정의 가격이 더욱 올라가기도 했지만.

“난 인간이 아니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인간이랑 엘프의 혼혈이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렇게 대충 수습해 보기로 했다. 인간과 엘프의 혼혈이 흔하진 않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네가 인간이랑 엘프 혼혈이라고?”

“응.”

마티어스가 계속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내 손을 치우고 내 귀로 손을 뻗었다.

“귀가 동그란데?”

“다행인 일이지.”

내 말을 이해했는지 마티어스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 황제는 이종족을 심하게 박해한 편이었다. 루드비히가 황제가 되고 이종족 혐오도 조금은 옅어졌다지만, 여전히 이종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낮았다.

“그럼 시골에 살았다는 것도 거짓말…….”

“시골 근처 숲에서 살았지.”

황궁을 떠나서는 계속 시골에 살았었으니까. 시골 근처 숲 오두막에서 살기도 했었으니,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기왕 하는 김에 입을 좀 털어 보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의심이 거둬지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 엄마랑 아빠가 만난 건 아홉 살 때였어. 엄마는 엘프였고 어렸을 때 잡혀 왔는데, 노예상에 팔기엔 너무 어려서…….”

나의 신들린 듯한 스토리텔링에 마티어스는 넋을 놓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지금 나의 뒷조사를 맡기면 최근 1년간의 기록 외에는 아무것도 안 나올 터였다. 인간은 태어나면 일단 출생 신고를 해야 하니, 인간이라고 하면 수습이 곤란해졌다. 차라리 이종족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다행히 마티어스는 내 말을 믿는 기색이었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닳고 닳은 것 같다가도 가끔 이런 순진한 부분이 귀엽다니까. 나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런데 마티어스가 이상하게도 자꾸 시선을 피했다. 태양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앤데,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오밤중에 시선을 피한담.

“왜 자꾸 시선을 피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티어스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왜…….”

심지어 마티어스는 자꾸 샘을 벗어나려고 했다. 마티어스를 추궁하러 샘을 나온 나는 무언가 허전한 느낌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

젠장, 아까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속옷 입는 걸 잊고 있었다. 물속에 있다 보니 그 사실도 까먹고 일장 연설을 해 버렸다. 나는 다급히 속옷을 입고도 차오르는 수치심에 머리를 쥐고 속으로 오열했다.

“……나 씻고 알아서 갈 테니까 먼저 가서 자고 있어. 밤이 늦었다.”

“아, 그, 그럴까? 그래!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어색한 연기 톤에 나는 혀를 깨물고 콱 죽어 버리고 싶어졌다. 샘에 몸을 담갔던 게 무색하게 부끄러움에 온몸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나는 옷을 대충 집어 들고 집까지 전력으로 질주했다.

* * *

마티어스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마법 수련과 명상을 하고 있었던 나는 모든 걸 그만두고 조용히 자는 척을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티어스가 내 옆에 누웠다.

“…….”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한번 뜨겁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주 지속적으로 뜨거웠다. 얘,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예 대놓고 내 쪽으로 드러눕더니 내 눈 위로 손을 휘적였다. 우물쭈물하던 마티어스는 결국, 제발 꺼내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단어를 내뱉었다.

“……자?”

악! 나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하고 있는데 민망함 섞인 마티어스의 말소리가 들렸다.

“눈꺼풀 움찔거리는 거 다 보여…….”

나는 결국 그의 바람대로 눈을 떠야 했다.

“……왜.”

내가 바로 답할 줄은 몰랐는지 마티어스는 바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우리의 침묵을 파도 소리가 부드럽게 메워 주었다.

“네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

“그렇구나.”

“…….”

“……혹시 내가 고마워해야 하니?”

“……아니. 지금까지 오해해서 미안해. 그 대가는 확실히 치를게.”

“어떻게 치를 건데?”

제법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눈을 반짝이고 마티어스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충분히 보상할 거야. 그리고 네가 원한다면 신분도 줄게. 검사…… 는 실력이 없으니 못 하겠지만, 마법사는 할 수 있을 거야.”

“……나 검 잘 쓴다며?”

“그게…… 비교급이었어. 솔직히 검사로는 대성하기 힘들 거야.”

“…….”

나왔다. 비능력자를 향한 능력자의 순수하고 잔혹한 발언.

“그래, 알겠어.”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진짜 자존심 상한다. 재능 있다는 말 한마디 해 주면 어디 덧나나.

“나 잔다.”

“왜 벌써 자.”

“검사로 대성하기 위해 일찍 자고 일어나서 새벽 훈련 하려고.”

“……아.”

내 기분이 상한 까닭을 알아챘는지 마티어스가 곤란한 듯 신음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려고 눈을 감는데 마티어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나 곧 떠날 거야.”

“뭐?”

나는 너무 놀라 화났던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마티어스 역시 바라던 바였다는 듯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여기서 너랑 있던 시간, 즐거웠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래도 이젠 슬슬 떠나야지.”

나는 입을 틀어막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조여들었다. 입을 열면 그대로 험한 말을 뱉어 낼 것 같았다.

“수도 외곽엔 여전히 몬스터가 나오는데 언제까지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던전 토벌 준비도 해야 하고.”

“……이젠 볼일 다 봤으니까 떠난다는 거야?”

왜 이렇게 서운한지 모르겠다. 오히려 기뻐해야 할 상황인데도.

내 뾰족한 말에 마티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야.”

“아니긴. 내가 네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니까 떠나려는 거잖아.”

마티어스가 사라지면 나는 또 주변을 떠돌며 외롭게 살아야 했다. 아셀 같은 존재를 또 만나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셀도 아직 어려서인지 한계가 있어서인지, 종종 무거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버퍼링이 걸렸다. 그건 이야기를 하기 전 망설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기 위해 연산할 때마다 그들이 짓는 로봇 같은 멍한 표정들. 그것이 나를 이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기껏 내놓은 대답은, 내가 원하는 답변과는 전혀 다른 것일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이 언제 일어났어?’라고 물으면, ‘임진왜란아,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난 거야?’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했다. 나와 동등한 대화 수준을 갖춘 건 그 넷뿐이었다.

물론 내 정체를 아는 순간 죽일 확률이 높은 녀석과 계속 함께 있는 게 위험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 며칠간 무인도에서의 충만한 삶을 생각하니, 홀로 남겨졌을 때의 삶이 덜컥 두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죽을 수도 있는 삶과 죽음과도 같은 삶. 내가 택해야 하는 길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마티어스는 내게 고민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내 말 좀 들어!”

마티어스가 내 어깨를 쥔 채 다급하게 외쳤다. 계속 나를 부르고 있었는지 녀석의 미간에 주름이 패어 있었다.

“나는, 같이 가자는 말을 하자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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