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74화 (74/149)

#74

마티어스는 무인도에 온 지 사흘이 지나도록 나와 모든 걸 함께하려고 했다. 물론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를 결박하지 못하게 되자 마티어스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버티기 시작했다. 결국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더니, 오늘은 물고기를 잡다가 조는 바람에 바닷물을 한 바가지 마셨다. 물론 그가 이렇게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건 나로서는 환영인 일이지만, 눈앞에서 물에 빠진 애처럼 구는 마티어스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저녁 무렵, 나는 꼬챙이에 꿴 물고기를 뜯어 먹으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우리 내일부턴 좀 떨어져 있지 않을래?”

“……으음.”

마티어스는 요 며칠간 자신이 좀 심했다고 생각하긴 하는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불을 피우고 집에 들어가 누웠다. 텐트가 날아간 뒤 급조한 집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가 숭숭 들어왔다. 내일은 벽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늘 저녁 훈련도 건너뛰었네.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훈련을 며칠 연속으로 빼먹자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더한 노동을 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자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밤하늘 위로 실처럼 피어오르는 모닥불 연기를 보다가 평소처럼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으흑…….”

“……?”

누군가의 신음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몬스터인가 싶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는데, 신음은 바로 옆에서 나고 있었다.

“……마티어스?”

“가지 마.”

낮부터 꾸벅꾸벅 졸더니, 결국 잠이 든 모양이었다. 잠에 취해 뭉개진 발음으로도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티어스는 보기 괴로울 정도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제발, 부탁……. 떠나지…….”

나는 씁쓸하게 그런 마티어스를 내려다보았다. 마티어스가 잠결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고 무언가를 쥐려는 것처럼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으, 흑…….”

계속 허공을 쥐려 하던 마티어스가 괴로운 듯 한쪽 가슴을 쥐어뜯었다. 보고 있는 내 가슴이 저려 올 정도였다. 마티어스의 감긴 눈가에 물방울이 고이다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10분 내외의 쪽잠을 자면서도 마티어스는 항상 악몽을 꿨다. 누군가가 떠나는 꿈인 듯했다. 마티어스는 언제나 애처로울 정도로 서럽게 떠나지 말라며 애원했다.

그 대상이 누군지 이제는 알았다.

나겠지.

이 감정은 정말 설계된 걸까. 0과 1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의 일부일 뿐일까.

“…….”

하지만, 가짜라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가혹한가.

“가지 마, 제발…….”

계속되는 신음과 애탄 부름에 나는 무심코 허공에 뻗은 마티어스의 손을 감쌌다.

“……헉.”

마티어스가 그대로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잠에서 막 깬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는 완력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티어스 역시 눈을 뜨고 있었다.

우리는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아주 오랜 시간이었지만, 지루함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부처가 되었다. 붉은 눈동자가 이토록 투명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금껏 녀석이 겪은 고통을 흘리듯 마티어스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

나는 마티어스의 눈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 내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액체가 손가락 위에 동그랗게 고였다. 나는 조심스레 그것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미적지근하고 짭짤한 것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이게 너의 바다일까. 메마른 것처럼 보였는데, 잠들어 있을 때만 조금씩 흘러나오는구나.

나는 그 미지근한 것이 내 마음속에 돌처럼 굳어 있는 무언가를 녹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어떤 거센 바람에도 옷을 벗지 않던 나그네가 뜨거운 햇빛 아래서 옷을 벗듯. 나는 나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이 감정에 다시금 마음속에 빗장을 걸려 무진 노력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쉽지 않았다.

“이현……?”

마티어스는 여전히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꿈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 뺨을 만지며 절박하게 물었다.

“정말 너야……?”

벅찬 감정이 몰아쳐 마음이 아팠다.

너는 얼마나 오랜 시간 이렇게 살아온 걸까. 평온한 꿈 따윈 사치라는 듯, 그렇게 살았던 건가.

이상하게도 마티어스의 고통에 공감하는 순간, 처음으로 그가 나와 동등하게 느껴졌다.

“아니, 아니야.”

나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나약했기에 여전히 이 세상이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다. 마티어스의 아픔에 공감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같아질 수는 없었다.

“상관없어.”

마티어스가 나를 끌어안았다. 내 등을 감싼 그의 손이 나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전쟁의 선봉에 서 적을 섬멸하던 그가, 내 앞에서 이렇게 나약하다는 사실에 묘한 희열이 들끓는 것과 동시에 두려움이 일었다.

“네가 있으면, 숨이 쉬어져…….”

나는 마티어스의 말에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나는 너희가 가여웠다. 강한 신념을 가지고 모든 걸 불태울 듯 삶을 살아가는 너희를 동경하고, 또 감히 너희를 동정했다. 나를 옥죄는 너희를 증오해 모든 걸 버리고 떠나와, 혼자 보내는 긴긴밤이면 어쩔 수 없이 너희를 떠올렸다.

나는 가만히 잠에 취했는지 눈물에 취했는지 모를 마티어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나를 안고 있었다.

“하하…….”

허탈한 웃음 끝에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오랜 시간 동안 아니라고 자위했지만,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티어스의 뒤통수에 손을 집어넣어 그를 끌어안았다. 까끌까끌한 모래와 함께 마티어스의 곱슬머리가 손에 부드럽게 엉겼다.

아무리 가짜라도 이만한 애정을 받고 어떻게 잊어버릴까.

나는 너희를 평생 잊지 못할 걸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화를 내는 나의 뒤에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낯설어하는 내가 있었다. 내가 똑같이 했다면 부모님은 나를 증오했을까, 당황했을까, 아예 나를 포기했을까. 어쩌면…… 곁에 있어 주지는 않았을까.

자취방을 정리하고 내가 갈 본가에는, 이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 * *

비싼 집, 좋은 차, 명품 옷과 신발, 좋은 학군, 양질의 식사. 이 모든 것을 얻은 대가로 나는 부모님을 포기해야 했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한단다.

어릴 때에는 그렇게 입에 발린 말이라도 했던 부모님은 내가 자라고 나서는 그런 말을 꺼낼 시간조차 내주지 않았다.

만나면 싸우기라도 했던 부모님은 세월이 갈수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런 게 가족이 맞는지 회의감을 느꼈지만, 이혼을 하라 말할 수도 없었다. 둘 중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상엔 부모 자식 외에도 다양한 관계가 있었고, 나 역시 그 관계들을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만난 첫 번째 친구에겐 정말 모든 걸 다 쏟아부었다. 내게 있는 걸 가지고 싶다고 하면 있는 걸 내주었고, 없는 걸 가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든 만들어 주었다. 그 애의 웃음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애가 한 번 찡그릴 때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애가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기대했는데, 들려온 건 호구 취급에 부담스럽다는 말이었다. 도무지 안 되겠어서 사과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녀석은 오히려 화를 내며 나를 밀쳤다. 그리고 다시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학년을 혼자 보냈다. 나는 이 일로 인해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끊어졌을 때 상처가 커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야 하는지 몰랐으므로 나는 배우기로 했다. 방학 때 나는 수많은 개그 프로그램과 예능들을 탐독했다. 웃긴 장면을 보아도 웃지 않고 기억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어린아이가.

호감 가는 외모와 화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줄넘기를 시작했다. 한 달 만에 5kg가 빠지고 10cm가 컸다.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을 때, 나는 반에서 제일 웃긴 애가 되었다. 롤링 페이퍼에 ‘너 진짜 조용하다’, ‘말 좀 해’라고 적혀 있던 작년과 달리 ‘너 진짜 웃기고 재밌어’, ‘내년에도 꼭 같은 반 되자!’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처음으로 삶이 충만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 가면 모두가 나를 반겨 주었고, 헤어질 때면 아쉬워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친구의 아빠가 친구를 다정하게 부르며 하늘 높이 올려 뺨에 뽀뽀했다. 내가 있어서 그런지 친구는 쑥스러워하긴 했지만 익숙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집 안에는 사랑이 넘쳐흘렀다. 가족사진이 있었고, 강아지가 있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넘칠 듯한 애정을 보냈다. 나는 그 사랑이 아주 가끔씩 나에게도 스치는 것 같은 기분에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저녁을 얻어먹고 집에 돌아왔다.

불 꺼진 집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현관에 서서 멍하니 살풍경한 집 안을 둘러보다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울었으나 내가 그칠 때까지 아무도 나를 달래 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거실에 들어와 불을 켜고, 자기 전 불을 끌 때까지 집에는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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