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저 이제 괜찮아요.”
나는 여전히 나를 깔고 앉아 내 입가에 손 동굴을 만들고 있는 마티어스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아, 그래…….”
마티어스는 주저하며 내게서 손을 떼어 냈다. 마티어스가 몸을 물리기 무섭게 어느새 높이 뜬 태양 빛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나는 작게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마티어스가 놀란 듯 작게 숨을 들이켰다.
“너…… 이거 뭐야.”
차마 또 손목을 쥐지는 못하겠는지 마티어스가 내 손목을 검지로 짚었다. 그가 뭘 봤는지 눈치챈 나는 손목을 뒤집어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게 아니잖아.”
“…….”
나는 더 대꾸하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 냈다. 마티어스가 나를 뒤따랐다.
“……죽으려고 했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럼 손목의 그 흉터는 뭔데.”
나는 귀찮다는 듯 마티어스를 노려보며 외쳤다.
“살기 팍팍해서 좀 그었다, 왜! 안 죽었으면 된 거 아냐?”
조금 전 흥분했을 때 이미 반말을 잔뜩 해 더 이상의 존대는 필요 없어 보였다. 계속 높임말 쓸 기분도 아니었고.
내가 외친 말이 칼이라도 됐는지 마티어스는 잔뜩 상처받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보기 싫어 나는 마티어스를 외면한 채 걷기 시작했다.
아, 그래도 이 말은 해야지.
“앞으로 내 손목에 뭐 달 생각 하지 마. 나 그런 거 진짜 끔찍하니까. 또 그딴 짓 하면 표적 되든 말든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뭐에 묶여 본 적 있었어?”
“대답이나 해.”
“……알았어.”
“…….”
“불안해서 그랬어. 내가 잠든 사이에 네가 떠나 버릴까 봐.”
마티어스가 잔뜩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축 늘어진 귀와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내가 이현이라는 걸 반쯤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대용품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그건 네 사정이고, 난 경고했어. 또 그러면…….”
“안 그럴게.”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 마티어스가 다급히 대답해 왔다.
“다시는 안 그럴게.”
울 것 같은 눈매로 간절히 말해 오니 내가 나쁜 놈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짜증 나.
“알았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내가 어떻게 쳐다봤는데.”
“버림받은 강아지 같아.”
“뭐, 비슷하긴 하네.”
나는 녀석의 마지막 말을 모른 척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
텐트가 있던 자리를 보던 나는 우뚝 멈추어 섰다.
“……이게 뭐야.”
친히 못까지 박아 넣은 텐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텐트는 물론, 텐트 안의 가방이며 모닥불, 마티어스가 지었던 집까지 전부.
“꿈인가……?”
꿈인가 싶어 뺨을 꼬집어 보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찬찬히 인과 관계를 되짚어 보던 나는 마티어스를 떼어 내기 위해 해일 주문을 외쳤던 것에 생각이 미쳤다.
“…….”
설마 그 해일에 전부 휩쓸려 간 거야?
나는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한 짓이라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아아아아……. 망했어…….”
가방은 나의 무인도 생활을 안락한 휴양지로 만들어 줄 강력한 도구였다. 그게 사라진 이상 무인도 생활은 휴양지는커녕 하루하루 살아남기도 바쁜 서바이벌로 전락할 터였다. 심지어 돈주머니까지 날아갔다. 많진 않아도 한 푼 두 푼 모아 온 소중한 돈이었는데!
“정말 깔끔하게 날려 먹었네…….”
마티어스가 내 옆에 서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눈매를 치켜뜨고 마티어스를 노려보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라니,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아아악!”
“괜찮아, 또 지으면 되니까.”
너는 하룻밤 만에 지었으니 또 하룻밤 만에 지으면 되겠지만, 가방 속에 있던 것들은 하룻밤 만에 모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속 편한 소리를 하는 녀석의 정강이에 주먹을 휘둘렀다. 녀석이 유유히 피해 버리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 더 화가 났다.
“이씨……!”
화를 내고 있는데 배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마티어스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배고파?”
“아니거든?”
* * *
“자.”
마티어스가 내게 잘 구워진 가리비를 내밀었다. 나는 가리비의 껍질에 고인 국물을 홀짝이다 속살을 이로 뜯었다. 졸깃한 속살에서는 씹을 때마다 짭짤하고 고소한 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분한 마음에 가리비가 껌이라도 되는 것처럼 잘근잘근 씹어 댔다.
“일어나서 먹어. 체해.”
“신경 꺼.”
“…….”
“……더워.”
몸부림칠 때 난 땀을 간신히 식힌 게 무색하게, 옆에서 불 좀 피웠다고 또 덥고 난리였다. 마티어스가 말없이 거대한 알로카시아 잎을 내 머리 위에 얹어 주었다. 고작 잎 하나 얹었다고 머리 주위가 금방 시원해졌다. 가리비를 삼킨 나는 다시 일어났다. 마티어스가 기다렸다는 듯 다음 가리비를 건네주었다. 나는 넙죽넙죽 마티어스가 주는 것을 받아먹었다. 산더미 같은 조개와 가리비에 큼지막한 물고기까지 해치운 우리는 그늘로 기어들어 가 휴식했다. 끊임없이 부스러지는 파도를 보던 나는 종아리에 붙은 모래를 털며 생각했다.
조만간 훈련장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에 만들어야 할까.
그래, 아셀이 들어왔다가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던 그 훈련장 말이다. 고위 마법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충격을 흡수하는 훈련장이 필수였다. 수상한 시설로 여겨지지 않기 위해 환상 마법도 걸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장면은 정말이지 아찔했다. 고위 공격 마법의 표적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는 아셀이라니. 골이 띵해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나무를 깎고 있던 마티어스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냥, 해를 너무 쪼였나 봐.”
“일사병인가. 오늘은 되도록 그늘에만 있어.”
아침에 그 난리를 피워서 그런지 마티어스는 제법 상냥했다. 흉터를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뭐 만드는 거야?”
검기로 50년은 묵은 듯한 통나무를 자른 마티어스는 그것을 잘게 쪼개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 밥그릇과 국그릇, 나무 포크와 스푼.
“스푼.”
“아까 만들었잖아?”
“네 거.”
“아…….”
나는 괜히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 옆에는 스푼일 뻔했던 것과 포크일 뻔했던 나뭇조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마티어스가 단검을 조각도처럼 들고 나무토막을 슥슥 잘라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어 내는 걸 보고 쉬워 보여 따라 하다가 이 모양이 되었다. 조마조마하게 나를 바라보던 마티어스는 내가 피를 보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막은 뒤 내게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나무나 좀 해 올까?”
“됐어. 그냥 여기 있어.”
“그럼 넝쿨이라도 엮을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어쩐지 익숙한 말인 건, 기분 탓이겠지. 열심히 일하는데 혼자 노는 것 같아 멋쩍어졌을 뿐, 마티어스가 나무를 깎는 건 꽤 재밌는 볼거리였다. 멍하니 스푼을 깎는 마티어스의 손길을 보다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너는 정말…….”
“……?”
나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너는 정말 검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구나.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마티어스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어?”
“잊어버렸어.”
“싱겁긴.”
마티어스가 다시 시선을 돌려 나무를 깎는 데 열중했다.
뭐라도 해야지 안 되겠다.
나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티어스가 나무를 깎던 걸 중단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장작이라도 좀 팰게.”
“같이 가.”
“넌 그거 만들어야지.”
“다 만들었어.”
마티어스는 마치 주인을 한 번 잃어버린 강아지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호쾌하게 장검을 내리쳐 장작을 패다가도 내가 단검으로 장작을 쪼개는 걸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이러다가 마티어스의 손가락이 먼저 떨어질 판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마티어스가 쥐고 있는 통나무를 손가락질했다.
“똑바로 보면서 해.”
“너…… 장작은 잘 패네.”
마티어스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게 포크며 식기 같은 건 시장에서 돈 좀 주면 바로 살 수 있는 거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비해 장작은 매일 직접 패 왔고. 도끼가 없어 지금은 단검으로 쪼개기 정도만 하고 있지만, 요령을 알고 있으니 제법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 정도야 기본이지.”
꼬박 한 시간을 장작 패기에 집중하자 일주일은 날 수 있을 법한 장작이 모였다. 마티어스가 검기를 사용해 빠르게 잘랐던 게 그 이유였다. 나 역시 마법을 사용하면 빠르게 장작을 팰 수 있겠지만, 신체 훈련은 틈틈이 해 놓는 게 좋았다.
“이제 뭐 할 거야?”
“글쎄. 너는 뭐 하고 싶은데.”
“작살로 물고기나 좀 잡을까?”
“그것도 좋지.”
“아니면 너 아까 넝쿨로 그물 만들 거라며. 그거 만들까?”
“괜찮은 생각이야.”
내가 하는 건 뭐든지 따라 할 것처럼 구는 마티어스의 행동에 나는 살포시 인상을 찡그렸다.
“너 그러다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 하겠다.”
“……그 정도까진 아냐.”
제가 생각해도 자신의 행동이 꽤나 부끄러웠는지 마티어스가 머쓱하게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언뜻 본 그의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중증이네.
나는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레 마티어스가 내 옆에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