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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72화 (72/149)

#72

나는 안락한 텐트에서 뒹굴다가 저녁이 되자 가방에서 보리빵을 꺼내 먹었다. 녀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나도 하나 줘.”

“제가 왜요?”

“빨리, 하나만 줘.”

“……싫은데요. 맡겨 놓으셨어요?”

“……얼마면 되는데.”

나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하나 펼쳐 보였다. 마티어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1골드?”

도리도리.

“그럼, 10골드?”

도리도리.

“설마 100골드?”

“네.”

“……말이 돼?”

참고로 보리빵은 항구 근처 시장에서 10개에 50실버에 판매하는 걸 사 온 거였다.

“안 될 건 뭐죠? 파는 사람 마음이지.”

녀석이 주머니를 뒤지다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주머니, 헤엄치다가 잃어버렸어.”

“그것 참 안된 일이네요.”

고민하던 녀석이 셔츠 단추를 잡아 뜯어 내게 내밀었다. 정밀하게 세공된 페리도트 주위로 작은 다이아몬드가 촘촘하게 장식된 단추는 한눈에 봐도 값나가 보였다.

“보리빵 두 개 가격은 될걸.”

“돈 아니면 안 받아요.”

객기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필요 없었다. 대관절 이걸 어디다 판단 말인가. 녀석이 단추를 파는 사람에 대한 수배령이라도 내린다면? 멋모르고 단추를 들고 뒷골목의 장물아비에게 갔다가 잡혀가는 것도 순식간일 터였다.

“에이 씨.”

내 강경한 태도에 녀석이 모래밭에 단추를 팩 던졌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단추가 모래밭에 완전히 박혔다. 씩씩거리며 돌아선 녀석의 어깨가 오르내렸다.

열 받지, 이 자식아?

이런 취급에 질려 떠나 주면 참 좋으련만. 나는 묵묵히 풀을 엮는 녀석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

대충 얼기설기 엮어 집을 만든 마티어스가 어디선가 길게 뻗은 나뭇가지와 뾰족한 돌을 가져와 그것을 넝쿨로 동여맸다. 아마도 작살을 만드는 듯했다.

“…….”

작살을 든 채 속옷만 입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녀석의 모습은 간석기 시대 우리네 조상을 떠올리게 했다. 태초의 모습이 저렇게 자연스러울 일인가. 나는 혀를 차며 점차 멀어지는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마티어스는 얼마 되지 않아 물고기 다섯 마리를 작살에 꿴 채 바다를 걸어 나왔다. 위풍당당한 모습이 정말이지 꼴 보기 싫었다.

어디선가 판판한 돌을 주워 온 마티어스는 굳이 굳이 내 텐트 옆에 자리를 잡고 물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연기 나는데요.”

“그래서?”

“다른 데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싫어.”

진짜 짜증 난다…….

무인도에 온 보람도 없이 소통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마티어스는 푸른 줄무늬가 있는 생선 한 마리를 호쾌하게 잡고 뜯기 시작했다.

“아, 뜨뜨.”

“…….”

참견하고 싶지 않았는데, 거의 익지 않은 생살을 뜯어 먹는 마티어스를 보자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졌다.

“실력 좋은 의사라면 살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딱 좋은데, 왜.”

하여간 이 자식은 사람을 너무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게 낫겠다. 그런 마음으로 일어나는데, 마티어스가 입가에 검댕을 묻힌 채 나를 쳐다보았다. 순진무구하게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자 왜인지 등짝을 발로 차 버리고 싶었다.

“어디 가는데?”

“그냥 식사나 마저 하세요.”

그러나 마티어스는 내가 걸음을 옮기자 생선을 쥔 채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따라오세요?”

“알 거 없잖아. 그냥 걷던 거 마저 걸으세요.”

“……그 브레이슬릿 잠깐만 빼 보면 안 돼요?”

“빼도 황궁에 연락 가.”

“아아아악!”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해변을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모래를 박차고 달리는 나를 마티어스가 여유롭게 따라잡았다. 녀석이 생선을 우물거리며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뎌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그대로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숨을 헉헉거리는 나와 달리 마티어스의 숨은 조금 거칠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하여간 체력 하난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돌 위에 올려 두었던 생선은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타 있었다. 마티어스가 배고프다는 듯 나를 간절히 쳐다보았지만, 나는 무시하고 텐트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무념무상으로 누워 있다 보니, 파도치는 밤바다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늘을 메운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아셀과 함께한 시간이 그리워졌다. 함께 별을 세고 별자리를 알려 줬었는데. 아셀은 그 추억을 언제까지 기억할까.

옆을 돌아보자 마티어스가 텐트 옆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얘는 왜 종일 만들어 놓은 집을 두고 여기서 수련하는 걸까.

이유야 뻔했다. 나를 감시하려고 그런 거겠지.

에라, 모르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했다. 해가 떨어지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모래가 묻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혔다. 종일 움직였기에 몸이 피로했다. 나는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곯아떨어졌다.

* * *

“……?”

늦게 잤던 것과는 별개로 새벽같이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일찍 눈이 떠졌다. 동이 트기 직전의 섬은 푸른 장막이 옅게 깔려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손목에 무언가가 걸렸다. 의아해하며 옆을 돌아보자 손목에 넝쿨이 묶여 있었다. 손목을 잡아당기자 넝쿨의 반대쪽이 얽고 있는 마티어스의 팔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도로 모래밭에 풀썩 떨어졌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나는 순간 말을 잃은 채 넝쿨을 바라보기만 했다.

“X발, 이게 뭐야.”

나는 내 손목을 묶은 넝쿨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겼다. 넝쿨도 그냥 넝쿨이 아니라 세 줄기의 넝쿨을 촘촘히 땋아 놓은 거라 잘 늘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손의 살갗이 벗겨지도록 넝쿨을 잡아당겼다.

“젠장, 젠장!”

피가 지글지글 끓는 듯한 기분이었다. 화가 나는 것과 동시에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움직임을 따라 넝쿨이 물결치며 마구 요동쳤다. 그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마티어스가 당황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뭐야, 왜 그래?”

“이거, 이거 풀어!”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품속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달빛을 머금은 단검이 독을 품은 것처럼 서늘하게 빛났다.

“가만있어 봐! 풀어 준다니까.”

“저리 꺼져!”

존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휘발된 지 오래였다. 날카로운 외침에 잠결에도 정신없이 내게 다가오던 마티어스가 멈칫했다. 호흡이 가빠졌다.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호흡하기가 괴로웠다. 이걸 빨리 끊어 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단검을 넝쿨과 손목 사이에 집어넣고 단검을 쥔 손에 힘을 가했다. 마티어스가 기겁하며 나를 말렸다.

“아무리 칼등이라도 그러면 다친다고!”

“상관없다고, X발! 저리 비키라는 말 안 들려?”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손목에 얽힌 넝쿨을 끊어 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넝쿨을 마구잡이로 찔렀다. 다시 한번 넝쿨에 단검을 박아 넣으려는데 마티어스가 내 손목을 강하게 쥐었다. 단검이 내 손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뒤 모래밭에 푹 박혔다. 마티어스가 잔뜩 당황한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마티어스의 눈동자에 맺힌 눈부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 나는 막 살인을 저지른 사람처럼 형형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다쳤잖아!”

마티어스의 말에 내려다보니 손목과 손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엄지 손마디에는 제법 긴 상처도 하나 나 있었다. 넝쿨을 찢어발기며 생긴 상처인 모양이었다. 노란 모래밭 위에 피가 흩뿌려져 있는 광경이 꽤나 기괴했다.

“이리 내 봐.”

“됐어!”

나는 내 손을 쥐려 드는 마티어스의 손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이리 내 보라고!”

“싫다고!”

계속되는 거부에 마티어스는 모든 인내를 상실한 듯 보였다. 그가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 들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을 쳐 댔다.

“좀 보자는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건데!”

“내가, 헉, X발, 싫다고 했잖아!”

나는 내 양 손목을 쥔 마티어스의 명치 부근을 무릎으로 강타했다. 불시에 들어온 공격에 마티어스는 변변한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았다.

“허억…….”

마티어스가 잔기침을 터트리며 순간적으로 손의 힘을 뺐다. 나는 그새를 놓치지 않고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벗어났다.

“어딜 가려고!”

도망치는 내 발목을 그가 낚아챘다. 나는 모래밭에 그대로 엎어졌다. 동시에 모래를 쥐어 그의 얼굴에 사정없이 뿌렸다.

“윽……!”

마티어스는 모래를 맞고도 내 발목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억세게 쥐었다. 머릿속이 희게 변했다. 나는 새된 목소리로 생각나는 주문을 외웠다.

“해일이여!”

주문을 외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파도가 마티어스를 덮쳤다. 모래사장의 모든 것이 휩쓸려 내려가는 와중에도 마티어스는 나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내 종아리와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기어코 내 허리를 움켜쥐었다.

“저리 가!”

나는 질색하며 녀석을 밀쳐 냈지만, 늪에 빠진 것처럼 나는 그에게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음 주문을 외우려 입을 벌리는 순간, 강한 현기증이 머리를 강타했다.

“컥…….”

“뭐야, 왜 그래?”

순식간에 온몸의 힘이 빠지며 손발이 저려 왔다. 무엇보다도 숨쉬기가 힘들었다. 물에 빠진 것처럼 전혀 호흡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마티어스가 잔뜩 당황해 손으로 내 뺨을 툭툭 건드렸다.

“흐윽…….”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내 위에 올라탄 마티어스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둥글게 모아 내 입을 가렸다.

“허억, 헉, 허어억…….”

“숨 쉬어. 괜찮으니까. 천천히……. 그래, 잘하고 있어.”

뜨뜻한 공기가 손 동굴과 입 안을 순환했다. 두통이 잦아들며 호흡이 점차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눈가에서 떨어져 흐른 눈물이 귓바퀴에 고였다. 마티어스 역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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