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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71화 (71/149)

#71

산 정상까지 올라가 물을 뜬 나와는 달리 녀석은 산 중턱의 호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호숫가에 우뚝 선 녀석이 그대로 나를 안고 천천히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싫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녀석의 팔이 나를 더 옥죄었다.

“놔, 놔줘요!”

“너도 바닷물에 젖었으니까 목욕해.”

“그쪽…… 아니, 형이나 젖었지, 저는 아니거든요?”

발끝에 서늘한 호수 물이 닿았다. 나는 질겁하며 마티어스의 어깨 위로 올라타 조금이라도 수면과 간격을 벌리려고 해 보았지만, 녀석은 자비 없이 나를 던져 호수에 빠트렸다.

“으읍……!”

단숨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젖어 버린 나는 황망한 시선으로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호수는 제법 깊었다. 염분이 없는 호수는 발장구를 치지 않으면 금방 가라앉았다. 나는 개헤엄을 치면서 마티어스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뭘 봐요.”

마티어스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심지어 이 자식은 키도 커서 발장구를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열 받았다. 마티어스가 그런 나를 보다가 입꼬리를 픽 올렸다. 뭐라고 말하려는 건가 싶어 인상을 쓰고 노려보는데 마티어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른 바닷물만큼이나 청량한 미소였다.

“아, 진짜 웃겨.”

“……그만 웃어요.”

“나, 오랜만에 웃어 봐.”

“거짓말.”

“정말이야. 일 년 반 만인가.”

“…….”

내가 떠난 이후에 한 번도 웃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녀석이 과거를 회상하듯 고개를 숙여 출렁이는 호수 물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녀석의 곱슬머리가 물에 젖어 푹 가라앉았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이 콧날과 속눈썹, 턱을 타고 내려갔다. 쫄딱 젖은 모습이 근사해서 그게 또 화가 났다.

내가 누구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데!

마법이니 외모니 검술이니 좋은 건 자기들끼리 다 가지고! 물론 성격은 주지 않았지만! 아니지, 심지어 성질머리도 줬잖아!

생각하다 보니 분해서 나는 손바닥으로 수면을 내리쳤다. 그 힘이 생각보다 강했는지 마티어스의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흠뻑 젖은 마티어스가 나를 살벌하게 바라보았다.

“……실수였어요.”

“어쭈.”

“실수였다니까요!”

마티어스가 양손을 편 뒤 내 쪽으로 물을 보내듯 쳐 냈다. 심지어 손바닥에 기까지 실었는지 물은 금방 높은 파도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어어?”

“너도 한번 당해 봐.”

내 키를 훌쩍 넘는 파도에 뒷걸음질 치는데 피할 새도 없이 물이 나를 덮쳤다. 태양이 그대로 투과한 오렌지색 물 너머로 마티어스가 짓궂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물속에서 무어라 소리치려다 물을 두어 번 삼켰다. 하려던 말은 물거품이 되어 화했다. 기도에 들어간 물 때문에 코가 매캐했다. 물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기침을 하며 손등으로 눈가를 닦아 냈다. 호수 끄트머리에 있던 나는 어느새 호수 한가운데 떠 있었다.

“아…… 진짜!”

나는 미역 줄기처럼 가라앉은 머리를 털며 신경질을 부렸다. 마티어스의 낯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왜 저래?’ 생각하는데 마티어스가 품속의 단검을 꺼냈다.

“뭐, 뭐야.”

나는 당황해 진땀을 흘리며 마티어스와 멀어지는 쪽으로 팔을 휘저었다. 마티어스가 단검을 던지기 직전 외쳤다.

“……숙여!”

나는 당황해 보호막 주문을 시전하는 동시에 몸을 웅크렸다. 쐐애애액! 단검이 날아오는 소리에 팔뚝에 소름이 일었다.

끼에에엑!

칠판을 긁는 듯한 비명이 뒤에서 터져 나왔다. 뒤를 돌아본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호수의 1/3 크기만 한 거대한 물뱀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미간에 검이 꽂힌 물뱀이 미친 듯이 몸을 꿈틀거렸다. 나는 당황해 심한 너울에도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마구잡이로 헤엄쳤다. 그때, 물속에서 무언가가 내 발목을 감았다. 감겼다는 걸 의식하자마자 몸이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으읍!”

“어……? 야!”

수면 위에서 마티어스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물속에서 눈을 뜨고 밑을 살폈다. 거대한 물뱀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물보라가 일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나는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몸을 웅크려 아래로 손을 뻗었다. 넝쿨과 달리 발목에 휘감긴 것은 통통하고 미끄덩거렸다. 손끝으로 표면을 쓸어 보니 촘촘한 비늘이 느껴졌다. 이윽고 물보라가 가라앉은 짤막한 틈새에 나는 보고 말았다. 내 발목을 감고 있는 반투명한 물뱀을, 그리고 그 뒤에서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수십 마리의 물뱀들을.

“@^@#$%@#$-!”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물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내 발목을 칭칭 감은 물뱀은 내가 빠져나가려고 할수록 더 몸을 옥죄었다. 내가 버둥거리자 다른 물뱀들이 와서 나의 발목과 팔을 얽어맸다. 때아닌 촉수물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단련을 게을리해 온 건 아니지만, 물 밖으로 나온 상어가 인간을 상대할 수 없듯 물 안의 인간은 한낱 물뱀 앞에서도 무력했다. 물을 너무 마셔 정신이 혼미해지기 전, 나는 생각했다.

이곳이 물속이라 무력해지는 거라면, 이곳을 뭍으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여오의 부꽇.”

연옥의 불꽃.

나는 물속에서 내게 가장 익숙한 화염 주문을 외쳤다. 코와 입으로 뽀그르르 물거품이 일어났다. 다행히 뭉개진 발음으로도 스킬은 발동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피어오른 붉은 동심원이 호수 전체로 번져 나갔다. 불과 만난 물은 뜨겁게 달군 검을 물에 담그는 듯한 소리를 내며 엄청난 양의 수증기로 화했다. 사람 키의 몇 배는 되었던 호수의 수위가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호수 바닥에서 물뱀들과 물고기 수백 마리가 당황해 펄떡였다.

“흙의 장벽.”

나는 발화 주문을 외울 때마다 훨씬 더 매끄러운 발음으로 다음 주문을 외웠다. 내게 다가오던 물길이 장벽에 갈 곳을 잃고 옆으로 흩어졌다. 물이 사라지자 내 몸을 옥죄던 물뱀들은힘을 잃고 풀어졌다.

“지독하다, 지독해.”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금세 비늘 모양으로 멍이 든 손목을 주물렀다. 손목과 발목에 비늘 모양으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거대한 물뱀은 이미 마티어스의 손에 명을 달리해 있었다. 물뱀은 지독한 공격을 받았는지 몸이 찢기듯 터져 있었다. 잔인한 모습에 나는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물뱀에게서 검을 거둔 마티어스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잡기?”

아, 젠장.

* * *

우리는 쫄딱 젖은 채 해변으로 돌아왔다. 나는 텐트를 친 뒤 그늘가에서 몸을 말렸다. 돌아가는 내내 내 실력에 대해 계속 추궁하는 마티어스가 정말이지 귀찮아 죽을 것 같았다.

“그쪽이야말로 물뱀을 아예 찢어 놨던데. 원래 검으로 그런 게 가능한 건가요?”

그저 말을 돌리기 위해 꺼낸 화제긴 하지만, 마티어스는 예리하고 깔끔한 검 실력이 특기였다. 굳이 원한을 가진 상대가 아니라면 그렇게 물뱀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이유가 없었다.

“어…….”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마티어스가 처음으로 말을 어물거렸다. 고민하는 듯 입술을 혀로 핥던 마티어스가 자신의 팔목에 걸린 브레이슬릿을 보여 주었다. 예전에 내 손목에 채워졌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이라 나는 그 브레이슬릿의 제작자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난 별로 이런 걸 끼고 싶지도 않았고, 검 실력도 그 누구보다도 우월해.”

“예, 그런데요?”

마티어스는 그 후로도 일장 연설을 했다. 사실 자신의 실력은 제국에서 제일 뛰어나고, 이런 브레이슬릿 따윈 없어도 상관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장황한 건지. 수치심에 귀 끝이 벌겋게 달아오른 마티어스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하 씨……. 내가 어떤 범죄자를 쫓고 있다고는 얘기했지? 혹시 적의를 가진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면, 그 공격이 그대로 반사가 돼.”

“…….”

그럼 물뱀은 반사된 자신의 힘 때문에 죽게 된 건가. 어쩐지 도흔이 깔끔하지 않더라니.

“그래도 나 정말 검 잘 써. 진짜야.”

“예에……. 제국 장군의 위치에 괜히 오르신 건 아니겠죠. 다른 기능은 없어요?”

“다른 기능……? 뭐 더 있나……. 아, 맞다. 내게 중상을 입히거나 나를 죽인 상대에겐 위치 추적 마법이 새겨져.”

“…….”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마티어스는 수치스러워할지언정 진실을 똑바로 밝히지, 거짓말을 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리하여 여차하면 그를 공격하고 도망치려던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진짜 너무 치사한 거 아닌가? 무력도 있는 놈이 보호까지 받고. 정말이지 너무 얄미웠다. 나는 찌는 듯한 더위에 내 텐트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려는 마티어스를 싸늘하게 밀어 냈다.

“나가세요. 이 텐트는 1인용이에요.”

* * *

내가 텐트로 들어온 마티어스를 야멸차게 쫓아낸 탓에 그는 저녁까지 바삐 움직여야 했다. 자리를 정돈하고, 나무를 베고 잘라 엮어 묶고 풀로 지붕을 만들고…….

텐트는 사실 둘이 잘 수 있을 만큼 널찍했지만, 나는 옆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대신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를 자르고 있는 마티어스에게 타박을 줬다. 그러게 배 타고 얌전히 떠나지, 왜 여기까지 헤엄쳐 왔냐고. 내 비난 섞인 놀림에도 마티어스는 묵묵히 나무를 엮더니, 해가 지기 전 그럴듯한 집을 만들어 냈다. 진짜 여러모로 짜증 나게 대단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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