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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69화 (69/149)

#69

그 후로도 마티어스는 질문 세례를 쏟아 내었다. 고향이 어디지? 가족 관계는? 직업은 뭔가? 나는 그때마다 진땀을 흘리며 적절한 대답을 해야 했다. 다행히 예전에 시뮬레이션하며 달달 외워 놓은 게 유용하게 쓰였다. 막힘없이 대답하자 마티어스도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에 대해 궁금한 건 없나?”

뭐야, 이건 플러팅인가?

나라고 할 말이 없을 줄 알고. 나는 새침하게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초, 초면에 왜 반말이세요.”

마티어스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럼 너도 반말하든가.”

“……아니에요.”

금방 떠날 인연, 굳이 눈에 띄어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는 없었다.

“……참고로 난 너보다 나이가 많아.”

“그렇군요…….”

그래서 어쩌라고.

마티어스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형이라 불러.”

“…….”

뭐 이 새끼야?

나는 곧 죽어도 이름으로만 부르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뭐, 마음에 안 들어?”

“……그럴 리가요.”

말세다. 내가 마티어스한테 형이라고 불러야 한다니. 나는 차오르는 자괴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호칭.”

“……그럴 리가요, 형.”

마티어스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너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난다.”

“무슨 감정이요……?”

“나 개새끼라고 쓰여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헤어져 있는 동안 마티어스는 독심술을 배워 왔나 보다.

“하하, 그런 생각 안 했어요…… 형.”

머리 뒤로 깍지 낀 손을 대고 느슨하게 누운 마티어스가 나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 재밌네.”

“네? 뭐가요?”

“감기 걸렸다면서 지금은 목소리 하나 안 가라앉아 있는 것도 재밌고.”

……아.

“얼굴에 감정 다 드러나는 것도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아서 재밌어.”

“하하…….”

의심받고 있다.

분명 의심받고 있다.

어떡하지. 잠깐 마른 듯했던 식은땀이 다시 줄줄이 흘러나왔다.

“어, 어디까지 가세요? 형.”

나는 그가 나에 대한 질문을 더 꺼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글쎄, 넌 어디까지 가는데.”

“저, 저는 항구…….”

“그럼 나도 일단 거기까지.”

오늘은 씻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식은땀으로 샤워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마티어스를 훑었다. 마음을 놓고 있는 편안한 자세처럼 보여도, 언제든지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위 마법을 쓰면 어찌어찌 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만에 하나 마티어스가 그걸 피해 내면 그 후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다음 마법을 캐스팅할 동안 날 지켜 줄 기사도 뭣도 없는 상황에서는 너무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국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뭐야, 잘 거야?”

“……네.”

자는 척이었다.

자는 척을 하다가 슬쩍 실눈을 뜨고 위를 보니 마티어스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히익.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지푸라기를 이불 삼아 침대 삼아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따금 요철을 밟은 짐마차가 덜컹이고, 나귀가 긴 울음을 뱉었다. 저 멀리서 희뿌옇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 * *

“이봐, 일어나.”

“으응, 뭐야…….”

나는 신경질을 내며 나를 흔드는 손길을 쳐 냈다. 허, 어이없다는 듯 누군가 실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 왔으니까 일어나라고.”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마티어스가 멀끔한 얼굴로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그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아직 우린 통성명도 안 했는데.

“넌 뭔 애가 이렇게 긴장감 없이 자냐. 침까지 흘리고.”

“피, 피곤해서…….”

나는 멋쩍어하며 소매로 입 주변을 닦아 냈다. 해는 이미 높게 떠 있었다. 인기 없는 항구인데도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생선 수레를 끌고 가는 남자와 생선을 노리는 갈매기들. 넘실거리는 파도와 공기 중에 전해지는 짠 내가 꼭 진짜 바다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시스템 창을 켜 놓았다면 새로운 지역을 발견했다고 메시지가 나왔겠지.

탈출에 실패한 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시스템 창을 꺼 두었다. 게임을 더 현실감 있게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옵션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이 옵션을 택했다.

전쟁 관련 안내 문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오르는 걸 보며 내 신경은 점차 예민해졌다. 아무도 없는 데서 소리를 지르고 운 적도 있었다. 끊임없이 차오르는 시스템 창을 보고 있자니 사실 내가 플레이어가 아니라 플레이어라고 착각하는 NPC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창을 아예 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티어스가 짐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꽤 높았는데 착지하는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사라지고 나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듯했다. 나는 조심조심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뎠다. 흥건하게 젖은 돌바닥에 넘어질 뻔한 나를 마티어스가 잡아 주었다. 그가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띨띨하긴.”

“…….”

할 말은 없었지만, 화가 났다. 정말이지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마부에게 은화 하나를 건네주었다. 마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휴,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내 뒤에 서 있던 마티어스가 마부를 향해 금화를 튕겼다. 자신의 행운이 믿기지 않는지 마부가 입을 쩍 벌렸다.

“이, 이렇게 많이 주셔도 됩니까?”

“그래. 고마웠네.”

“가, 감사합니다.”

마부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야무지게 금화와 은화를 받아 챙겼다. 마부가 떠나가고, 우리는 시끄러운 항구 바닥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럼, 만나서 즐거웠어요…… 형.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나는 시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 뒤로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마티어스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보았지만 그때마다 마티어스는 나를 따라왔다. 나는 한적한 골목에 서서 홱 뒤돌았다. 미행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바로 뒤에 마티어스가 떡하니 서 있었다.

“왜…… 따라오시는 건가요?”

제발 좀 꺼지세요. 내 속뜻을 알고 있을 텐데도 마티어스는 뻔뻔스럽게 나왔다.

“나도 거기에 볼일이 있어서.”

“지금 그쪽이 저 계속 따라오고 계시잖아요.”

“아닌데? 자의식 과잉이 심하다, 너.”

“…….”

“그리고 형이라고 부르랬지.”

&%#@#$%-!

나는 녀석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참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나는 두어 번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시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갓 잡은 싱싱한 생선 있어요!”

“맛있는 조개크림수프 드시고 가세요! 가격도 저렴해요.”

확실히 항구 근처라서 그런지 해산물을 많이 판매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몸통이 긴 생선, 내 몸보다 큰 조개 등 재밌는 게 많아 보였지만,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짐덩이 때문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어디든 따라올 게 분명했다.

그래, 무인도로 가자.

나는 낚시 도구와 미끼, 불 피우는 도구와 통발 등 무인도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건을 사서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인벤토리형 가방이라 물건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가방에는 대부분의 물건이 다 들어갔다. 마티어스는 내가 무언가를 살 때마다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신선한 과일과 비상용 약까지 야무지게 챙긴 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티어스가 나른한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담벼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제가 돈이 많아 보인다면, 그거 착각이거든요.”

“……어?”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서 따라다니시는 거 아닌가요……?”

내 말을 뒤늦게 이해한 마티어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그럼 왜 자꾸 따라다니시는 건가요……?”

“왜긴, 네가…….”

마티어스가 삐딱하게 나를 내려다보다 말을 멈추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수상해서.”

“제가…… 수상해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아 내면서 꼬박꼬박 존댓말까지 쓰고 있는데, 대체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외모는 다른데, 내가 아는 사람이 계속해서 생각나.”

“……아는 사람 누구요?”

“있어, 범죄자.”

뭐, 이 자식아?

뒷머리를 벅벅 긁던 마티어스가 품속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판을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나 진짜 돈 없어서 너 따라다니는 거 아니야.”

마티어스가 내게 내밀고 있는 건 신분 패였다. 금빛으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게 딱 봐도 고위 신분이라는 걸 증명했다. 그가 어깨와 허리를 펴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그리체 제국 장군, 마티어스 크롬하트다.”

“……그렇군요.”

“…….”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었는지 마티어스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혹시 제가 납작 엎드려야 했던 타이밍이었나요?”

“아니, 그럴 필욘 없고…… 내가 지금 쫓고 있는 범죄자랑 네가 닮아서 좀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지은 죄가 없는데…….”

나는 선한 표정을 짓는 데 온 신경을 기울였다. 조사를 시작하면 곤란해지는 건 나였다. 정보 길드에서 신분을 샀으니 웬만한 조사로는 들키지 않겠지만, 체자레의 심문에는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건 모르는 거지.”

“하시려면 지금 빨리해 주세요.”

심문실에서 체자레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지금 심문하라는 강수를 두었다. 내 당당한 태도에 마티어스가 오히려 놀란 듯 목덜미를 긁적였다.

“빨리 끝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왜요?”

“아, 네가 그 사람이라는 증거만 잡으면 빨리 끝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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