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67화 (67/149)

#67

“그냥…… 제가 잘 적응할지 모르겠어서요.”

“그건 걱정 말렴. 예닐곱 살 코흘리개들도 잘 적응하는 게 시니아 아카데미니까.”

“예닐곱 살이요?”

“그래,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발현되는 게 보통 그 나이대거든.”

“하, 하지만 저는 아홉 살인데요. 나이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요?”

“그것도 걱정 말렴. 3개월 전엔 열네 살짜리 아이도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니까.”

“열네 살이요?”

“그래. 거기도 뒤늦게 발현한 경우였지.”

그렇다니 조금 안심은 되지만……. 아니, 아니. 저는 외로운 이안의 얼굴을 떠올리며 시니아 아카데미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안 갈 수는 없단다. 제국에 국적을 두고 있는 마법사는 아카데미에서 필수로 교육받아야 하거든.”

그리고 그 결심은 곧 무참히 깨져 버리고 말았죠.

“바로…… 가야 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한 달의 유예 기간이 있으니 그 안에만 오면 된단다.”

별로 고맙진 않았지만 저는 감사합니다, 하고 할아버지한테 고개를 숙여 보였어요. 할아버지는 홀홀 웃으며 홀연히 떠나갔어요. 할아버지를 배웅하고 돌아온 아빠가 화색이 도는 낯으로 제 손을 잡았어요.

“정말 굉장하구나, 아셀! 네가 마법사라니…….”

항상 귀족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던 아빠는 체통 없이 헤벌쭉 웃고 계셨어요. 제가 마법사가 된 게 아빠한테는 정말 기쁜 일인가 봐요.

“이 사실을 네 엄마가 알았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고 있던 아빠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요. 저는 아빠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이안을 떠올렸어요. 이제 이안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 * *

갑자기 집안의 소중한 것이 되어 버린 탓에 저는 이안을 보러 가기가 어려워졌어요. 아빠는 제가 아카데미에 가기 전까지 저를 자주 봐야겠다며 집에서 출퇴근을 했고, 덩달아 집안의 사용인들이 저에게 부단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사흘이 지나서야 저는 겨우 그들에게서 빠져나와 이안에게 갈 수 있었어요. 따라오겠다는 하일라를 말리느라 아주 고생했죠.

사실 이안에게 좀 서운하기도 했어요. 우리 집도 알고 있으면서 문병 한 번 와 보지 않다니요. 우리는 제법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서운한 티는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요. 우리에게 남은 날이 적으니까요.

저는 이안의 오두막으로 가 문을 두드렸어요.

“이안!”

“…….”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어요.

“어디 갔나…….”

문 주위를 기웃거리며 한참을 기다리던 저는 그때의 그 구멍을 떠올렸어요. 통나무와 통나무 틈새가 썩어서 안을 볼 수 있었던 그 구멍 말이에요. 실례라는 걸 알지만,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음에 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헤헤. 구멍을 찾은 저는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어?”

오두막은 텅 비어 있었어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어요.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던 옷도, 허름하고 심플한 식기들도 전부 없던 것처럼 사라진 채였어요. 저는 깜짝 놀라 문 쪽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당겨 보았어요. 애초에 문은 잠겨 있지 않았어요.

안에 들어간 저는 탄식을 내뱉었어요. 짐들이 모조리 사라져 있었어요. 찬장 안의 약도, 붕대도, 식자재도, 식기도. 전부.

이안은 떠난 거예요. 제가 아팠던 새에, 아무런 인사도 없이. 배신감과 슬픔이 차올랐어요. 저는 오두막을 박차고 나가 이안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어요.

“이안, 이안-!”

자주 가던 낚시터에도, 뒷마당에도, 벌목장에도, 동산에도, 그 어디에도 이안이 없었어요. 해가 질 때까지 이안을 찾던 저는 결국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어요.

“흐어어엉…….”

저는 울면서 숲을 걸었어요. 몸 안이 눈물로 가득 차 있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슬픔은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눈이 짓무르고 퉁퉁 붓고 있다는 게 느껴졌지만 우는 게 멈춰지지가 않았어요. 그런 제 뺨을 콕, 찌르는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저는 눈물이 잔뜩 괸 채로 그것을 바라보았어요. 손바닥만 한 크기에,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편지?”

제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편지가 모서리로 제 팔뚝을 콕 찔렀어요. 마치 새 부리가 저를 쪼듯이요. 얼떨결에 편지를 받아 든 저는 그것을 펼쳐 읽기 시작했어요. 석양빛에 글자들이 마법처럼 반짝였어요.

[너는 너무 많이 울어. 지금도 울고 있지?]

첫 문장을 읽은 저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하지만 키 큰 나무들만 저를 둘러싸고 있을 뿐,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방금 주위 둘러봤지? 순진하긴. 아무도 없어. 네가 이걸 보고 있을 때 즈음에는 이미 난 이 도시를 떠난 후일 거거든.]

도시를 떠났다고? 그럼 평생 못 만날지도 모르잖아.

[마법사로 발현했다는 소문은 들었어. 축하해.]

벌써 소문을 들었다고? 누구한테 들었을까. 아, 에이미. 에이미겠구나.

[그날 그렇게 화내서 미안해. 참고로 그것 때문에 떠나는 건 아니야. 나는 원래 더 일찍 떠나야 하는 사람이었어. 너와 지내는 시간이 즐거워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오늘이 되었네. 그냥 떠나려고 했는데, 네 울음소리가 자꾸 귀에 밟히더라. 넌 탐구하는 걸 좋아하니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야. 훌륭한 마법사인 내가 보증할게. 그럼, 건강히 잘 지내.

PS. 바라건대, 마지막 진리만은 깨닫지 못하는 평온한 삶을 살아가길. 하지만 너라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편지는 화르르 불타오르기 시작했어요.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것을 붙잡아 보았지만, 편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마지막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면 좋겠다니, 이건 무슨 뜻일까요? 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숲을 걸었어요.

“……여기가 어디야.”

저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어요. 이안을 찾느라 저도 모르게 숲 깊은 곳까지 들어와 버렸나 봐요. 붉은 달이 뜬 숲은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했어요. 새카만 암흑 속에서 금방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부지런히 다시 오두막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무언가가 다시 콕, 저를 쪼았어요. 또 편지인가 싶어 반갑게 옆을 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짐승이 눈을 빛내며 저를 응시하고 있었어요.

“어…….”

그제야 왜 이 풍요로운 숲에 아무도 오지 않았는지가 떠올랐어요. 몇 달 전부터 이 숲에 몬스터가 출몰하기 시작했거든요. 독수리와 흡사한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그 몬스터의 이름은 그리핀. 제 눈앞에 있는 몬스터와 아주 흡사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핀의 크기는 제 몸과 거의 비슷했는데, 깃털이 듬성듬성 나 있고 눈을 아직 잘 못 뜨는 걸 보니 새끼인 듯했어요. 위를 올려다보니 사람 한둘 정도는 들어갈 법한 그리핀의 둥지가 보였어요. 둥지에서 떨어진 개체인 것 같았어요. 제가 주위를 돌아다니자 동족인 줄 알고 아직 여린 부리로 콕 쪼아 본 듯했어요. 저에겐 다행인 일이죠.

저는 녀석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어요. 숨도 제대로 못 쉬며 걷고 있는데, 녀석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유난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녀석의 심기가 불편해 보여 저는 눈치를 보며 더 빨리 걷기 시작했어요. 이윽고 녀석이 먹이를 받아먹을 때처럼 입을 짝 벌리더니, 긁는 듯한 울음소리를 터트렸어요.

끼이이이이-!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음에 저는 마구잡이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곧이어 잔뜩 성이 난 듯한 그리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까 새끼가 낸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두려운 울음소리였어요. 겁에 질린 저는 뒤를 돌아보다 새끼의 옆으로 내려앉는 그리핀과 눈을 마주쳤어요. 그리핀이 잔뜩 성이 난 듯한 소리를 내며 저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 새끼를 떨어트렸다고 생각한 게 분명해요.

당신 자식 내가 안 떨어트렸는데요!

하지만 그리핀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어요. 저는 소통을 시도하는 대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리핀의 날갯짓 두 번이면 잡힐 듯한 거리였지만, 다행히 나무가 빽빽해 그리핀들은 저를 쉽게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어요. 저 멀리 인가의 불빛이 보였어요. 그 말은 곧 숲이 끝난다는 말과도 같았죠. 나무라는 장애물이 사라지는 즉시 저는 그리핀의 억센 발톱에 홀라당 잡힐 게 분명했어요.

“헉, 허억…….”

제게 마법 재능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아빠, 에이미, 하일라…….”

그렇게 기뻐했는데.

해결책을 찾던 저는 혹시 저도 이안과 같은 마법을 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가설을 세워 보았어요. 이안이 무섭게 화냈던 날, 이안이 부렸던 화염 마법이요. 이안도 할 수 있는데 저라고 못 할 이유는 없잖아요?

……사실 못 할 이유 많죠. 전 주문도 모르는걸요.

하지만 저에겐 다른 수가 없었어요. 저는 마을로 진입하는 대신 숲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빽빽하게 쌓인 숲에 발을 딛고 서서 저는 그리핀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어요.

“제발……! 나와라!”

그리핀들이 제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어요.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이안이 그때 내게 보여 주었던 화염 마법을 떠올렸어요. 넘실거리며 모든 것을 불사를 듯한 화염의 바다를.

끼에에에엑!

괴로워하는 그리핀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제 마법이 통한 걸까요? 저는 깜짝 놀라 눈을 떴어요. 제 눈앞에는 화염의 바다…… 는 아니고, 불과 꼭 닮은 색의 머리칼을 너울거리는 한 남자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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