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64화 (64/149)

#64

“뭐, 그냥. 가끔 그러고 싶을 때도 있잖아.”

“그래요. 어서 식사 드세요. 좋아하시는 감자수프예요.”

“응.”

저는 약간 단단한 빵을 수프에 담그다 생각에 잠겼어요. 정말로 그 아저씨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까? 맹세를 하지 않아도 얘기하진 않았겠지만, 맹세를 하고 나니 뭔가 궁금해지잖아요. 저는 흐물흐물해진 빵을 씹어 넘기고는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있는 하일라를 향해 말했어요.

“하일라, 있잖아.”

“네?”

“내가 오늘 누구를 좀 만…… 웁!”

만나고 왔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입이 콱 다물렸어요. 저는 몇 번이고 입을 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교를 바른 것처럼 입은 전혀 벌려지지 않았어요.

우와, 이거 진짜 신기하네.

하일라가 멀뚱히 저를 바라보았어요.

“아가씨, 식사 마저 하셔요.”

“으응.”

저는 마지막 수프를 뜬 나무 수저를 물고 생각에 잠겼어요. 그럼 글로 쓰는 것도 안 되는 건가?

저는 하일라가 다 먹은 트레이를 들고 나가자마자 튕겨 오르듯 책상으로 향했어요. 서랍에서 일기장을 꺼내 이렇게 써 보았어요.

[토끼는 풀을 먹는다.]

이런 내용은 평소처럼 써졌어요. 저는 오늘 아저씨를 만난 내용에 대해 써 보려고 했어요.

[오늘은]

다음 글자가 전혀 써지지 않았어요. 손 주변이 아주 무거운 돌벽에 눌려 있는 듯했어요. 다른 애들이라면 이런 상황이 무서울 법도 하겠지만, 저는 다른 애들이랑은 달랐어요. 설렘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어요. 저는 침대로 달려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였어요. 내일이 이렇게 기대가 됐던 건 처음이에요.

* * *

저는 정오가 되어서야 아저씨의 오두막을 방문했어요. 아저씨는 장작을 패고 있었는데, 상의를 벗고 있어 등의 잔근육이 도드라져 보였어요. 장작을 팬 아저씨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저를 바라보았어요.

“할 일이 없니?”

“아뇨, 저 아주 바쁜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여기 자주 와. 좋은 데도 아닌데.”

“여기가 왜 좋은 데가 아니에요?”

“딱 봐도 외지고 험하잖아.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무슨 짓을 할 건데요?”

“……됐다.”

아저씨가 지쳤다는 듯 손가락을 휘둘렀어요. 그러자 흩어져 있던 장작이 무형의 끈으로 묶인 듯 한데 모여 오두막 옆 장작을 쌓아 놓는 곳으로 이동했어요. 저는 눈이 휘둥그레져 그걸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저씨 마법사예요?”

“참 일찍도 안다.”

아저씨의 타박에도 저는 지지 않고 달려들었어요.

“저도 가르쳐 주세요!”

“싫어, 임마.”

“왜요?”

“내가 왜 가르쳐야 하는데?”

“제가 마법을 열심히 배워서 아저씨를 도와드릴 수도 있잖아요.”

“퍽이나.”

“아, 아저씨이-!”

“아, 그놈의 아저씨 소리 그만해! 아저씨 아니니까.”

“아저씨 아니면 뭔데요?”

“오…… 아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오아니요?”

“……그냥 이안이라고 불러.”

“그게 아저씨 이름이에요?”

“……그래.”

그래, 라고 답하는 아저씨, 아니, 이안의 얼굴은 뭔가 씁쓸해 보였어요. 저는 묘한 기분으로 이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이안은 저보다 키도 훨씬 크고, 몸도 훨씬 좋은데 이상하게도 연약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떨군 고개와 갈색 눈동자가 지독하게도 외로워 보여서 저는 문득 이안을 끌어안았어요.

“뭐, 뭐야…….”

이안은 처음엔 놀란 듯하다가 이내 얌전히 제 포옹을 받아들였어요. 제 키가 이안보다 훨씬 작았기에 완벽한 포옹은 아니었지만요. 포옹을 마치고 나자 이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어요.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어요.

“울어요?”

“우, 울긴 누가 울어!”

“울잖아요.”

“아니거든?”

이안이 다급히 눈가를 닦아 내며 버럭 화를 냈어요. 아니, 울면 우는 거지 왜 화를 낸담. 저는 입을 삐죽이며 이안을 흘겨보았어요.

“뭘 째려봐.”

“저도 째려본 거 아니에요.”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제가 기가 찬다는 듯 이안이 허, 낮게 실소했어요.

“너, 어제 약속 어기려고 했더라?”

“네?”

“그것도 두 번이나.”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나한테 불리한 화제를 꺼내는 게 분명했어요. 어른이면서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다니!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었기에 저는 우물쭈물하며 변명을 늘어놓았어요.

“그게, 원래는 말할 생각 없었는데 맹세하고 나니까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해서…….”

“약속 안 지키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 말 안 들어 봤냐?”

“엉덩이에 뿔이 나요?”

저는 깜짝 놀라 엉덩이를 매만져 보았어요. 다행히 제 엉덩이는 여전히 둥글었어요. 괜히 놀리는 건가 싶어 저는 부루퉁하게 말했어요.

“안 나잖아요!”

“당장은 안 나지. 언젠간 날걸?”

이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덩달아 저도 갑자기 심각해졌어요.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이미 늦었어.”

이안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새삼 이안이 마법사라는 게 실감이 났어요. 저는 이제 엉덩이에 뿔이 난 채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서러워진 저는 울음을 터트렸어요.

“으아아앙,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야, 그렇게 크게 울 것까진……. 아니, 악! 콧물 묻잖아!”

“흐어어엉,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 알았어. 용서해 줄 테니까 좀 놔 봐. 뚝 그치고!”

용서받았다는 말에 마음이 놓인 저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어요. 원래 그치라는 말이 제일 눈물 나는 법 아닌가요?

“아오, 뭔 애 목소리가 이렇게 커. 진짜…….”

이안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었어요. 눈앞에 빛이 반짝이는 듯한 느낌에 저는 부은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어요.

“……우와.”

빛으로 만든 나비가 팔랑팔랑 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어요. 저는 우는 것도 멈추고 나비를 바라보았어요. 나비는 제 코에 잠시 붙어서 날개를 팔랑거렸어요.

“나비 쪽으로 손 내밀어 봐.”

이안의 말에 저는 얌전히 손을 내밀었어요. 그러자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와 제 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어요. 그사이 눈물은 멎었고요. 나비는 제 주변을 돌다가 하늘을 향해 날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햇빛에 녹아들듯 사라졌어요. 저는 깜짝 놀라 이안을 돌아보며 물었어요.

“죽은 거예요?”

“뭘 죽어. 처음부터 살아 있지도 않았어.”

“하지만, 움직였는데…….”

“내가 마법으로 움직이게 했으니까.”

저는 눈을 반짝이며 이안에게 달려들었어요. 이안이 질색하며 저를 피했어요.

“또, 또 보여 줘요!”

“싫거든?”

“보여 줘요!”

한참 조르고 있는데 꼬르륵, 천둥소리가 울렸어요. 제 배에서 난 소리였어요. 얼굴을 빨갛게 붉힌 저를 보며 이안이 물었어요.

“너, 배고프냐?”

“그게, 밥은 먹었는데……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좀 되거든요.”

알 만하다는 듯 이안이 한숨을 쉬었어요.

“너도 참 너다.”

“괜찮아요. 나중에 집 가서 먹으면 돼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미 다 들었는데 뭘 신경 쓰지 마? 들어와.”

이안이 수건을 쥔 채 오두막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음식을 해 주려는 모양이에요. 저는 신이 나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이안을 와락 끌어안았어요. 이안이 질색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즐거웠어요.

* * *

“……이게 뭐예요?”

“뭐긴, 밥이잖아.”

“저 그냥 집에 가서 먹을래요.”

생선 대가리가 둥둥 떠 있는 멀건 국물을 보자니 식욕이 절로 떨어졌어요. 이안이 기가 찬다는 듯 저를 손가락질했어요.

“이거 돈 주고도 못 먹는 거야. 진짜 귀한 거 주는 거라고.”

“그치만 너무 징그럽잖아요!”

“아오, 이래서 섬세한 애는 섬세한 대로 문제라니까. 내가 미쳤지.”

이안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어요. 이내 이안이 고개를 들고 결연히 말했어요.

“너, 그 그릇에 있는 건 네 거니까 그것까지만 다 먹어.”

그릇엔 다행히 생선 대가리가 없었어요. 생선 뼈에 살코기가 붙어 있긴 했지만요. 야채랑 국물 위주로 먹어야겠다 생각한 저는 수저를 들어 국물을 떠먹었어요.

“……!”

눈이 휘둥그레진 저를 보고 이안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어요.

“맛있지?”

“이게 뭐예요?”

“글쎄, 매운탕……이라고 해도 되나? 너 때문에 매운 향신료는 안 넣었으니까, 그냥 안 매운탕이라고 하자.”

“너무 맛있어요! 맨날 이것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물이 시원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잠깐 끓인 것 같은데 깊은 맛이 난다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생선 살을 잘 바르지 못하고 낑낑거리자 이안이 한숨을 쉬며 생선 살을 발라 제 숟가락 위에 놔주었어요.

“야채도 같이 먹어.”

“넹.”

푹 끓인 생선 살은 입 안에서 부드럽게 뭉개졌어요. 처음 보는 야채에서는 독특한 향이 났는데, 그게 생선 살과 꽤 잘 어우러졌어요. 제가 엄지를 척 치켜들자 이안이 킥킥 웃었어요.

“그런데 이안은 왜 여기서 살아요?”

“여기가 왜.”

“아니, 마을이랑 너무 떨어져 있잖아요. 가까우면 훨씬 자주 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멀리 사나 보다.”

“씨이…….”

“뭐? 씨? 너 내가 편해졌나 보다? 아까까지만 해도 찔찔 짜더니.”

“아뇨, 시요. 이안 말이 꼭 시 같다고요.”

“얼씨구.”

그의 말대로 저는 이제 이안이 무섭지 않았어요.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죠.

“이안.”

“왜.”

“이안은 도망자예요?”

물을 마시던 이안이 사레에 들린 것처럼 콜록거렸어요.

“아니면, 지명 수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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