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60화 (60/149)

#60

“헉, 허억…….”

마나가 한계였기에 나는 말을 훔쳐 타고 달렸다. 전쟁 중이라 감시가 삼엄했기에 다른 마을을 지날 때는 투명화를 걸어야 했다. 마나가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가 외진 시골 마을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중도시나 대도시였다면 보호막이 있어 입성도 힘들었을 터였다.

“……!”

성을 지나던 중 나는 익숙한 인영들에 놀라 투명화를 캔슬할 뻔했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인영들은 분명 체자레와 마티어스였다. 벌써 여기까지 추적해 온 모양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무리에 압실론이 없다는 거였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키센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말을 타고 무장한 채 전속력으로 달리는 마티어스의 모습에 나는 기가 질렸다. 타이밍이 조금만 안 맞았더라면 그들에게 잡힐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했다.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압실론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들로부터 멀리 돌아 바이런을 만났던 언덕으로 향했다.

바이런은 여전히 전투 중이었다. 퍽 오랫동안 싸우고 있었는지 갑옷이고 머리고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상대의 숨통을 끊은 바이런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차츰차츰 바이런에게 다가갔다.

“누, 누구…….”

야생 동물처럼 경계하던 바이런이 나를 보고 긴장의 끈을 풀었다. 그를 한 번에 죽일 공격 마법을 찾고 있던 나는 양심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바이런은 배를 관통당했는지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상태 창을 켰다.

[이름: 바이런 (Lv. 48)

나이: 20

직업: 기사

호감도: ???

체력: 5% (상태 이상 ‘관통상’ ‘출혈’, ‘지혈’ 전까지 사용자의 체력이 분당 1.25%씩 떨어집니다.)

마력: 26%

.

.

.

상태: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마음 엿보기: ???]

그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5분에서 10분 안으로 그의 숨이 멎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베카에게 말을 전해 줬어.”

“가, 감사합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은 기색이었다.

“저어, 레베카는 어땠습니까?”

“모르겠어. 말만 전해 주고 바로 왔거든.”

“그, 그렇군요.”

바이런이 멋쩍어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쿨럭…….”

바이런이 크게 기침하는 것과 동시에 검붉은 핏덩이를 토해 냈다. 그가 누워 있는 흙바닥 주변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미안해. 마나가 없어서 널 치료해 줄 수가 없어.”

“괘, 괜찮습니다.”

“…….”

“저어, 괜찮으시다면 마지막 가는 길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시겠, 콜록…… 습니까?”

“……말해.”

“고맙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목을 가다듬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밤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질 가냘픈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끝없는 싸움이었습니다. 하아, 그놈들 정말이지 징그럽게 쏟아져, 나오더군요.”

“……그래.”

“그런데요, 투구를 써서 초반에는, 쿨럭, 잘 몰랐는데…….”

피를 토해 낸 목에선 쉰 소리가 나왔다.

“이상하게…… 그 녀석들이 어쩐지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을 때가 되니 헛생각이 많아져서일까요…….”

바이런이 다시금 기침을 했다. 그때마다 배가 꿀렁이며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그리고…… 저놈과 맞붙은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어쩐지 저는…… 아주 오랫동안 싸워 온 느낌이 듭니다.”

“그래.”

“왜 저는…… 눈을 뜨면 이 낯선 마을의 침대에서 깨어나는 걸까요? 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정말 이상하지요…….”

내가 바이런의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시시각각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이미 나로 인해 충분히 괴로워한 이가 아닌가.

“맞아.”

“……예?”

“네가 느낀 모든 게 맞아. 그리고 그건…… 나 때문이야.”

“…….”

바이런의 눈이 점차 감겨 갔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니 나를 원망해. 너는 나를 원망하며 죽으면 돼.”

바이런이 눈을 끔뻑이다 이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은 좋은 분이시군요…….”

“……아닐걸.”

바이런은 죽어 가면서도 나를 위로하듯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더듬더듬 말했다.

“너는 이제 영원한 안식을 얻을 거야.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거야.”

내 말에 그가 안심했다는 듯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아……. 정말 다…… 행……. 레베카…….”

늘어진 테이프처럼 그의 말이 점차 둔하고 느려지다 이내 멎어 들었다. 나는 그의 투구를 벗기고 눈을 뜬 채 죽은 바이런의 눈을 가만히 감겨 주었다.

나는 그제야 그가 제법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잠들 듯 죽은 그의 모습 위로 시스템 창이 시끄러운 음성을 내며 떠올랐다.

[도시 내 세나르도 제국의 마지막 병사 ‘바이런’이 사망했습니다. 이 도시가 ‘그리체’에 복속됩니다.]

[‘리올’ 지역의 전쟁이 종료되었습니다.]

[5초 뒤 ‘리올’의 전쟁 지역이 해제됩니다. 5, 4…….]

[‘리올’이 전쟁 지역에서 해제되었습니다.]

드디어.

나는 새카만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삼 그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리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인간의 모습을 가진 그들을 캐주얼 게임의 몬스터처럼 휙휙 죽일 수 없었다. 전쟁 때에도 나는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약했다. 마법사를 택한 것도, 광범위 마법 위주로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인간형 NPC를 표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제 나가서 이런 곳은 전부 잊어버리자. 아주 긴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기계는 전부 부숴 버려야지. 게임 같은 건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시스템 창을 연 뒤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정말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나는 망설임 없이 ‘예’ 버튼을 눌렀다. 반딧불의 빛처럼 아주 작고 동그란 원형의 빛들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게임을 저장합니다…….]

[종료까지 1분 남았습니다.]

감회에 젖어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징그러운 새끼들.

나는 카운트되고 있는 숫자를 바라보았다.

45초, 44초, 43초.

희미했던 말발굽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들은 나의 위치를 아는 게 분명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는 30초 안으로 그들과 접촉할 것 같았다. 몸을 피하는 순간 로그아웃은 취소될 것이다.

이쯤 되면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땅을 단단히 딛고 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둠을 뚫고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38초, 37초, 36초.

종료까지 30초가 남으면, 플레이어는 무적 상태에 진입한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아도, 수십만 명이 공격을 해도 이 무적 상태는 풀리지 않는다. 이 무적 상태를 이용해 퀘스트를 깨는 방법도 있었다.

“이혀어언-!”

찢어발길 듯한 마티어스의 노성이 들려왔다. 나는 내게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마티어스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무표정하게 나를 보면서도 거칠게 말을 몰아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체자레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33초, 32초, 31초.

마티어스가 말을 탄 채로 그대로 내게 진격해 왔다. 그가 뻗은 손이 내 뺨에 와 닿기 직전, 카운트가 완료되었다.

30초.

[종료까지 30초 남았습니다. 종료가 확정되어 무적 상태로 진입합니다.]

나를 둘러싼 투명하고 단단한 원형의 보호막이 마티어스를 그대로 뒤로 튕겨 냈다. 무언가를 직감한 걸까. 공중에 붕 떠서 날아가는 마티어스의 모습을 보고도 루드비히는 망설임 없이 검을 뺀 채 내게 달려들었다.

카앙-!

단단한 성벽에 검을 박아 넣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보호막은 깨지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포기하지 않고 검기를 불어넣어 보호막을 깨려 들었다. 낙마한 마티어스가 절뚝이며 내게 다가와 보호막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금세 피투성이가 됐다. 체자레는 한 걸음 뒤에 서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뱀 같은 시선에 소름이 끼쳤다.

보호막은 안전했다. 그들의 절박한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들푸들 떨며 웃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안전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안심되는 한편, 지금껏 참아 왔던 말을 쏟아 내게 되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개새끼들아.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귀 똑바로 열고 들어. 너희 정체가 뭔지 알아? 게임 캐릭터야. 그것도 BL 게임!”

나는 들끓는 희열에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15초.

“마티어스, 너 내가 가끔 다른 데 바라보면서 ‘후원 감사합니다.’ 했던 거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거 내가 너네랑 있던 시간들 남들한테 보여 줘서 그걸로 돈 번 거야!”

10초.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외쳤다.

“나, 너희 사랑한 적 한 번도 없어. 다 돈 벌려고 한 거지. 미친 새끼들아. 이제 안녕, 영원히 안녕이다!”

5초.

4초.

3초.

2초.

1초.

0초.

30초의 카운트가 끝났다. 땅을 디뎠던 발이 둥실 떠올랐다. 하늘 위로 상승한 몸이 점차 투명해졌다.

루드비히와 마티어스가 애타게 나를 부르며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의 감각이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드디어 끝난 거다. 전부 끝난 거야.

빠져나가자마자 기계부터 부숴 버려야지. 그리고 게임 회사를 고소할 거다.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강제하는 건 아무것도 없이 아무의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 자유롭게 살 거야.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탄 것처럼 발밑의 풍경이 미니어처처럼 작게 보였다.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기쁨에 젖어 있는 내 눈앞에 붉은 경고창이 연속해서 떴다.

[신체를 찾을 수 없습니다.]

[로그아웃이 불가합니다.]

……X발, 이거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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