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마티어스는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재료를 뭘 덜 구해 왔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물을 끓이고 칼과 도구들을 소독하고 재료를 씻고 짓찧는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약간의 조급함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큰 실수는 없었다. 마티어스가 화살촉을 부러트린 뒤 뽑기 쉽도록 그것을 얇게 깎았다. 잔뜩 긴장한 숨결이 손가락 사이에 닿는 기분이 묘했다.
“이제 뺄 건데, 그 전에 내 어깨 물어.”
술을 내 손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마티어스가 말했다. 따끔따끔한 감각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뒤로 빼고 있는데 마티어스가 손목을 쥔 채 놔주지 않았다.
“윽, 따가워……. 어깨는 왜?”
“그냥 이 악물면 이 다치니까.”
“괜찮…….”
“얌전히 물고 있어.”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듯 마티어스가 내 입술 사이로 제 어깨를 가져다 물렸다. 마티어스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화살촉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긴장한 마티어스의 태도에 덩달아 나까지 같이 긴장감이 들었다.
“뺀다.”
“……!”
그사이에 살이 차올랐는지 살이 화살을 꽉 물고 있었다. 마티어스가 비틀어 그것을 단숨에 뽑아냈다. 비명이 목구멍 안까지 차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티어스의 어깨를 온 힘을 다해 깨물었다. 제법 아팠을 텐데도 마티어스는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칭찬했을 뿐이었다.
“아팠을 텐데, 잘 참았네.”
구멍 사이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감도 70%까지 안 올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50%도 이렇게 아픈데 70%면 실제로 기절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상태 이상 ‘과다 출혈’, 지혈제와 치유제를 사용하기 전까지 사용자의 체력이 초당 1.2%씩 떨어집니다. 자연 치유까지 2시간 59분 59초…….>
지혈제에 손을 뻗으려 하는데 마티어스가 더 빨랐다. 마티어스는 능숙한 솜씨로 약초를 상처에 붙인 뒤 지혈대로 막고 덩굴로 상처 부위를 동여맸다.
<지혈제의 사용으로 상태 이상 ‘과다 출혈’이 멈춥니다.>
<소염, 진통제의 사용으로 고통에 30% 둔감해집니다.>
다행히 고통은 금방 멎었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마티어스의 어깨에 잇자국이 나 있었다. 깊숙이 패인 잇자국에는 그새 피멍이 맺혀 있어 나는 그걸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마티어스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제 어깨를 위로 추슬렀다.
“너도 소독하고 이거 좀 붙여.”
어쩐지 조금 민망해진 나는 남은 약초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마티어스가 코웃음을 쳤다.
“됐어. 이런 건 하룻밤 지나면 나아.”
“꽤 갈 것 같은데.”
“평생 흉으로 남아도 상관없어.”
“그 정돈 아니고…….”
1주일 정도는 갈 것 같은데? 돌아가면 압실론한테 치료해 달래자.
내 말에 마티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마티어스가 이내 내 이마를 콩 두드렸다. 얼떨결에 이마를 맞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때려?”
“너 진짜 눈치 없다.”
“뭔 소리야. 내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그래, 그래.”
“진짜라…….”
말을 잇기도 전 마티어스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버둥거리기 전 마티어스가 동굴 입구로 시선을 주며 검지로 제 입술을 눌렀다.
‘쉿, 누군가 오고 있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 마티어스가 이내 빠른 속도로 모래를 덮어 불을 끄고 나를 뒤로 숨겼다. 마티어스가 힘을 주어 쥐고 있는 칼이 어둠 속에서 서늘하게 빛을 발했다.
‘누가 와?’
내 속삭임에 마티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던 나는 당황스러운 낯으로 동굴 입구 쪽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긴 그냥 곰 동굴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찾아봐.”
병사들의 목소리에 나는 바짝 긴장해 마티어스의 소매를 쥐었다. 우리는 곰 뒤에 있고 병사들은 곰 앞에 있어 제법 가까이 있음에도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장작 타는 냄새 나지 않아?”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모래로 급히 덮긴 했지만 덜 덮인 곳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티어스가 신중한 발길로 모래를 끌어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덮었다.
“글쎄, 나는 곰 누린내밖에 안 나는데.”
다행히 들리는 목소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두셋 정도 될까. 마티어스가 능히 해치울 수 있지만, 바깥에 병사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는 게 상책이었다.
“히, 히익, 곰이다!”
병사 하나가 짧게 비명을 지르다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 목소리를 줄였다. 검집에서 검이 빠지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났다. 마티어스가 검을 쥔 손을 찌르기 좋게 고쳐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겨, 겨울잠 자고 있는 것 같아.’
‘빨리 빠져나가자. 저놈 일어나면 뼈도 못 추릴걸.’
‘그나저나 참 둔한 놈인걸. 우리한텐 다행인 일이지만.’
둔한 게 아니란다. 이미 저세상에 간 거지…….
그들은 발소리를 죽인 채 살금살금 동굴 밖을 빠져나갔다. 마티어스가 검집에 검을 다시 집어넣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참아 왔던 숨을 터트렸다.
“와, 진짜 들키는 줄 알았네.”
“들켜도 뭐, 내가 해치울 텐데.”
“밖에 병사들이 몇이나 더 있을 줄 알고.”
“몸 상태 좋으니 이제 서른 명 정도는 가뿐해.”
허세는.
나는 그런 마티어스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그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조금은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지난 시스템 창을 뒤져 보았다.
<상태 이상 ‘과다 출혈’의 후유증으로 인한 상태 이상 ‘오한’이 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더욱 강한 진통제를 사용하거나 휴식을 취하세요. 남은 시간 3시간 42분…….>
으으, 쓸데없이 리얼리티가 너무 강하다니까. 연기 나면 들키니까 불도 못 피우는데. 나는 마티어스의 곁에 바싹 붙어 체온을 나누었다.
“뭐, 뭐야. 왜 이래?”
“추워서…….”
어둠 속에서도 파랗게 질린 내 표정이 가히 좋지 않았는지 마티어스의 안색 역시 어두워졌다. 마티어스가 옷을 벗어 내 몸에 둘러 주었다. 옷에서는 흙먼지와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나는 미간을 살포시 찌푸리며 말했다.
“냄새 나…….”
“전쟁터에서 까탈스럽긴.”
말은 퉁명스럽게 하면서도 민망한지 마티어스가 몰래 옷의 냄새를 맡아 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옷을 몸에 두른 채 마티어스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긴장이 풀리니 차츰차츰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하품을 하며 돌아가면 하고 싶은 걸 셈했다.
“돌아가면 목욕부터 할래. 온천수에 물 담그고 한 시간은 있어야겠어.”
“난 밥부터 먹으련다. 혼자서 칠면조 한 마리는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마티어스가 눕혀 주었다. 망토 밑은 딱딱하고 차가운 돌바닥이었지만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너덜거리는 마티어스의 옷을 잘 갈무리해 두른 나는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기가 차 하면서도 나를 토닥이는 손길에 졸음이 가속화됐다.
“그런데 넌 도대체 여기 왜 온 거냐?”
마티어스가 불쑥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혼몽한 와중에도 발끈해 느릿느릿 대답했다.
“왜기인, 너 구하러 왔다니까…….”
“루드비히 허락도 안 받고 무단으로 온 거일 거 아냐.”
“아, 아냐. 허락받았어…….”
“그럴 리가. 그 애들이 널 이렇게 위험한 곳에 혼자 가게 해 줄 리가 없잖아.”
“…….”
“……자냐?”
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그러다 진짜 깜빡 잠이 들었다. 추위에 마티어스의 품속을 파고들었는지 나는 그의 품 안에 캥거루처럼 안겨 있었다. 마티어스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내 머리칼을 쓸었다.
“……앞으로는 나 구하러 오지 마.”
흐려지는 감각을 비집고 마티어스의 탁하게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식은 깨어 있지만, 몸은 무거웠다.
“넌 루드비히 거니까…….”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슬픔에 젖은 목소리에도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의식에 검푸른 장막이 덧씌워지듯 이마에 무언가가 닿는 듯한 감각과 함께 모든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내가 더 이상 널 탐내게 하지 마.”
* * *
“허억.”
아주 긴 꿈을 꾼 듯한 감각에 나는 눈을 뜨고도 한동안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분명히 곰 냄새가 나는 동굴에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 호화찬란한 방 안에서 깨어난 건지. 나는 일어나서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마, 마티어스? 어딨어?”
나는 슬리퍼도 신지 않고 맨발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푹신한 태피스트리가 깔려 있어 발이 시리지도 않았다. 방과 방을 넘나들던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멈춰서서 기하학적인 무늬로 가득한 벽을 노려보며 말했다.
“……창문이 없네.”
마나석을 이용해 인공조명을 켜 두어 주위는 한낮처럼 밝았지만, 여기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이 넓은 곳에 어째서. 나는 어쩐지 오싹해지는 감각에 팔꿈치를 끌어안고 몸을 떨었다.
나는 도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몸이 덜덜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나는 알 수 없는 추위와 두려움 속에서 다른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