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나는 체자레와 압실론을 지나쳐 마구간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등장에 말들이 긴장한 듯 히힝 울어 댔다. 나는 개중에서 내 등장에 놀라지 않는 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쫑이야, 나야.”
함께 전쟁터를 누비며 친밀도를 많이 쌓아 놓아 쫑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안장을 얹고 위에 올라타자마자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쫑이는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밖은 여전히 혼돈의 도가니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체자레와 압실론은 많은 수의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갈까 하다가 야영지에서 살짝 떨어진 언덕에서 크게 소리쳤다.
“루드비히, 압실론, 체자레!”
내 말에 셋이 싸우다 말고 내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나는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아무도, 죽으면 안 돼!”
말을 끝내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살을 엘 듯한 차가운 바람이 내 뺨에 와 닿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하나만을 생각했다.
‘무사해라, 마티어스.’
죽으면 안 돼!
나…… 입영 통지서 나왔다고!
* * *
맵을 축소하고 축소해 마티어스를 겨우 찾은 나는 그쪽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차캉, 차캉. 맵을 켤 때마다 캐시가 차감되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돈으로라도 사는 수밖에.
다행히 마티어스는 도주에는 성공한 듯했다. 마티어스가 홀로 빠져나와 있고 많은 수의 기사들이 그를 뒤쫓는 구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혼자서는 상대하기 힘드니 숲으로 들어간 듯한데, 마티어스치고는 꽤 머리를 썼다 싶었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말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숲까지 오며 체력을 많이 소모한 듯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나는 쫑이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알아들은 듯 쫑이가 히힝, 하고 작게 울었다.
“여기서 쉬면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나는 걸음을 옮기려다 멈칫하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쫑이가 고개를 든 채 순한 갈색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도 안 오면 야영지로 돌아가. 할 수 있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말을 마치고 마티어스가 보이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타이밍도 안 좋게 소요 시간이 끝나며 맵이 꺼졌다.
“맵 켜 줘!”
<‘맵’ 기능이 켜졌습니다. 10분간 ‘맵’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은 캐시: 98,800원>
다시금 맵이 켜졌다. 나는 재빨리 맵의 위치를 조정해 마티어스의 주변을 탐색했다. 다행히 마티어스는 아직 잘 살아 있었다.
그래, 이 녀석이 어디 쉽게 죽을 녀석이던가.
어쩌면 곧 녀석을 탈환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신속의 장화 주문을 걸고 마티어스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 안 돼.”
걷던 도중 나는 당황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네이번 쪽 기사들이 마티어스를 절벽 쪽으로 몰고 있었다. 고저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 맵에도 절벽이 높은 건 보였다. 이 숲의 지리에 익숙한 녀석들이 할 법한 작전이었다.
“이 멍청아,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입을 쩍 벌린 괴물의 아가리에 순순히 들어가는 꼴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절벽에 떨어져 죽거나 네이번 기사들에게 포위당해 죽거나였다.
“자유 비행!”
나는 자유 비행 주문을 시전해 아예 숲을 빠져나왔다. 공중에 높이 떠오르자 저 멀리 절벽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 연습 열심히 해서 단거리 순간 이동이라도 배워 둘걸.
나는 혀를 차며 최대 속력으로 절벽을 향해 날았다. 보호막까지 꺼 두고 달리는 거라 어디서 화살이 날아온다면 정말 죽은 목숨이었다. 내가 이렇게 저를 살리고 싶어 한다는 걸 이 자식이 알아줘야 할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이 성큼 가까워졌다. 마티어스와 기사들이 대치하는 모습이 점차 눈에 들어왔다. 절벽의 끝에 마티어스가 서 있고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네이번의 기사들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마티어스의 꼴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멀쩡하던 옷가지는 반쯤 찢어져 어깨가 드러나 있었고, 눈썹 위는 칼에 베였는지 피가 눈을 적시는 바람에 한쪽 눈은 거의 뜨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든지 와 봐. 적어도 두 놈은 데려갈 수 있으니까.”
“배신해 놓고 정말 뻔뻔스럽군. 그리체인들은 명예를 모르나?”
“글쎄, 내가 오해일 거라고 했는데 안 믿은 건 너희 아닌가?”
대화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졌을 무렵, 마티어스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기사들과 마티어스를 그대로 지나치며 외쳤다.
“뛰어내려!”
마티어스는 내가 여기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표하는 대신 단박에 뛰어내렸다.
“어어, 야!”
너무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통에 더 놀란 건 나였다. 우리는 공중에서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마티어스의 체향이 훅 몰려왔다. 손끝이 닿기가 무섭게 우리는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자유 비행’ 스킬이 취소됩니다.>
“엥?”
갑작스러운 포옹이 공격으로 여겨져 스킬이 취소된 모양이었다. 멍청한 시스템 같으니. 그나마 공중에 아슬아슬 떠 있던 우리는 사이좋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떠오르기, 떠오르기!”
나는 죽기 살기로 마티어스를 끌어안고 떠오르기 주문을 외쳤다. 마티어스의 낯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뭐 해, 이 무능력한 새끼야!”
“그게 생명의 은인한테 할 말이야?”
“사이좋게 뒤지고 있는데 생명의 은인은 무슨!”
“살 거거든? 떠오르기! 떠오르기-!”
추락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해 정신이 없다 보니 마법이 자꾸만 취소됐다. 땅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통 영화나 게임에서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검푸른 강물이 있고 거기 빠져서 맘씨 좋은 누군가에 의해 살아남던데, 여기의 바닥은 뾰족뾰족한 돌산이라서 떨어지면 100% 즉사였다. 나는 마티어스를 끌어안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제발 좀 돼라! 떠오르기-!”
붕. 몸이 뜨는 것과 동시에 팔에 어마어마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티어스의 무게였다. 팔이 끊어질 것 같은 감각 속에서도 나는 절대 마티어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절대 놓지 마. 놓으면 죽어!”
“안 놔. 안 놓을 테니까 눈 좀 떠!”
마티어스의 종용에 나는 겨우 실눈을 뜨고 주변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거의 다 내려와 있었다. 지상까지 3m 남짓 남은 채로 둥둥 떠 있는 셈이었다. 나는 화색이 돌아 고개를 들었다.
“야, 내 능력 끝내주…….”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마티어스를 감싸 안았다. 절벽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사들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쐐애애액-. 수십 개의 화살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보호막-!”
떠오르기와 보호막을 동시에 사용하자 마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마력이 3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스킬의 실패 확률이 높아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마력을 보충하세요!>
<마력이 2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스킬의 실패 확률이 높아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마력을 보충하세요!>
<마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두 개의 스킬 중 하나가 곧 랜덤으로 취소됩니다. 0%가 되는 순간 상태 이상 ‘기절’의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마력을 보충하세요!>
띠링, 띠링, 띠링. 시스템 창이 시끄럽게 경고음을 띄웠다.
<마력이 떨어져 ‘보호막’ 스킬이 취소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짧은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즉시 보호막 스킬이 취소되었다. 푸른 막이 희미해져 공기 중으로 녹아들었다. 마지막 화살이 마티어스의 뒤통수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티어스의 뒤통수 쪽으로 내 손을 뻗었다.
“아윽-!”
쐐액- 퍽! 화살이 순식간에 손바닥을 꿰뚫었다. 마티어스가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야, 너…….”
“추락한다!”
<공격을 받아 ‘떠오르기’ 스킬이 취소됩니다.>
우리는 다시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티어스가 내 몸을 감싸 안는 게 느껴졌다.
“흐윽……!”
우리는 땅바닥에 몸을 부딪친 채 한 몸이 된 것처럼 뒤엉켜 굴렀다. 손바닥에 박힌 화살이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 30%에서 50%로 감도를 올린 걸 뼈저리게 후회할 정도로 아팠다.
<상태 이상 ‘관통상’, 빠르게 화살을 제거하세요. ‘파상풍’ 위험이 시간당 15%씩 늘어납니다. 사용자의 체력이 초당 0.18%씩 떨어집니다. 화살을 제거하기 전까지 자연 치유가 불가합니다.>
<상태 이상 ‘타박상’ ‘출혈’, ‘치유제’를 먹기 전까지 사용자의 체력이 초당 0.125%씩 떨어집니다. 자연 치유까지 8시간 59분 58초…….>
다행히 마티어스가 감싸 준 덕분에 손바닥을 꿰뚫린 것 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체력과 마력이 떨어지자 주변 시야가 붉어지며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나기 시작했다.
“야, 괜찮아?”
나는 벌떡 일어나 마티어스의 상태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녀석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팔다리와 몸 여러 군데에 이미 상당한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추락하면서 나를 보호하느라 자신의 몸은 거의 보호하지 못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