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41화 (41/149)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3

#41

“헛소리하면 한다고 얘기해 줘야 쓸데없이 시간 안 뺏기지.”

마티어스의 말에 루드비히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뭐!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

“아, 알았어. 알았다고. 입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

이제나저제나 루드비히에게는 약한 마티어스였다. 나는 심호흡을 두어 번 하다 눈을 떴다. 넷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굳이 이 전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게 무슨 개소리…… 우웁!”

당연하다는 듯 태클을 걸던 마티어스의 입이 강제적으로 다물렸다. 마티어스는 당황해 딱 붙은 입술을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압실론이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지퍼 마법을 건 모양이었다. 나는 압실론에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압실론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드는 마티어스를 보며 나는 빠르게 외쳤다.

“……으으으읍!”

“너 압실론 공격하면 30분간 개구리 뱉게 하는 마법 걸어 버린다.”

압실론의 멱살을 잡기 직전 마티어스가 손을 떼어 냈다. 역시 개구리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억울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다 루드비히의 눈총을 한 번 더 받은 마티어스가 약간 주눅이 든 채 자리에 앉았다. 시무룩한 와중에도 나와 압실론을 살벌하게 노려보는 건 잊지 않고 있었다. 하여간, 손 많이 간다니까. 나는 그런 마티어스를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미 그들은 황자를 전부 잃었어. 늙은 황제와 열두 살짜리 어린 황자만 남아 있을 뿐, 공주조차 없지.”

“그래서?”

“이 대평원은 그들의 근간이야. 어쩌면 왕국보다 더 중요한 곳이지. 옛 왕조의 유물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농작물을 여기서 수확하니까.”

나는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야. 여기를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사력을 다할 거야.”

“우리 쪽의 손실도 클 거라는 얘기군.”

“맞아. 우리는 어차피 이대로 진군해서 황제를 칠 거잖아? 여기서 더 이상의 손실이 발생해서는 안 돼.”

내 발언에 회의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 체자레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짧지 않은 침묵 끝에 루드비히가 먼저 입을 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그냥, 너라면 그러고 싶어 할 것 같았어.”

미안, 사실 네 공략 동영상에서 봤어. 백이면 백 그런 루트를 타더라고.

나 이번엔 진짜 성공하고 싶었거든.

신기한 것을 바라보듯 나를 한참 보던 루드비히가 말했다.

“……네 말대로다. 이 왕국을 탈취한다고 해도 황제는 다른 곳을 더 정벌하라고 나를 보내겠지. 내가 죽을 때까지.”

“맞아.”

“그러느니 황제를 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조차도 아직 확신하진 못했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느냐는 듯한 침묵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게 우리가 운명이라는 뜻 아니겠어?”

“……헛소리.”

슬쩍 던진 플러팅에 루드비히가 코웃음을 쳤다. 반응이 나쁘진 않은 거로 보아 꽤 괜찮은 플러팅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네 계획은?”

“동맹을 맺자. 네이번과.”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료가 된다는 말을 믿나?”

“물론 그쪽은 우릴 믿지 않겠지. 우리도 네이번을 믿진 않으니까. 그럼 답은 하나밖에 없지.”

“인질 맞교환.”

루드비히의 말에 나는 씩 웃었다. 어쩌면 이렇게 똑똑한지.

“맞아. 그쪽의 황자와 우리들 중 하나를 교환하는 거야.”

“위험도가 높군요. 그대로 진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땐 이 방법이 낫다고 생각했어.”

체자레가 고민 끝에 신중히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나 역시 체자레의 의견에 일부 동의했다. 어차피 네이번을 정복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고속도로를 두고 국도를 타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국도를 타고 가야 보이는 풍경도 분명 있는 법이다.

“확실히…… 생각해 볼 가치는 있겠군.”

“원군을 지원받아 황제를 치자. 네이번과는 향후 10년간의 평화 협정을 맺도록 하고.”

“아니면 속국으로 두되, 자치권을 보장해 준다든가.”

“그것도 괜찮네.”

그들에겐 불리한 조건이지만, 어차피 나라 멸망이 코앞이었다. 우리의 조건은 울면서도 먹으라면 먹어야 하는 겨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진격할지, 아니면 이현의 방법을 쓸지 다수결로 정하도록 하지.”

“그래.”

“10분간 시간을 줄 테니 투표함에 의견을 넣도록 해. 기타 다른 의견도 상관없다.”

나는 거침없이 투표함에 내 의견을 적어 넣었다. 마티어스 역시 망설임 없이 의견을 적어 넣었다. 보지 않아도 나와 상반된 의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0분 후, 결과가 나왔다. 그대로 진격이 1표, 내 의견이 3표, 기타 의견이 1표. 개표가 완료된 후 마티어스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제 인질로 누가 가느냐를 결정해야겠네!”

사실 교환할 인질로는 마법사인 압실론이 가장 적격이었다. 압실론은 현재 5클래스 익스퍼트였다. 제국에도 없는 5클래스 이상 마법사 구속구가 이 조그마한 소국에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무사히 빠져나올 확률이 제일 높았다. 그러나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마티어스의 뺨을 쿡 찔렀다.

“네가 가라, 마티어스.”

“……으읍읍!”

* * *

결국 마티어스는 인질이 되었다. 마티어스는 나와 압실론이 인질로 가라고 할 땐 파르르 떨며 불처럼 화를 내더니, 루드비히와 체자레가 다소 걱정스러워하자 갑자기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실 압실론을 택하지 않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리셋 전, 분리 불안을 견디지 못한 압실론이 임무고 뭐고 내팽개치고 돌아와 날 인형으로 만든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과거로부터 배운 게 있다 보니 섣불리 압실론을 보낼 수는 없었다.

네이번은 사신을 보내자마자 인질 교환식에 승낙한다는 서신을 써서 전달했다. 거절할 처지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인질이 마티어스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안심하기도 했을 것이다. 마티어스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사로 워낙 유명했다. 대체될 수 없는 기사라는 걸 그들도 알았을 터였다. 또 그냥 인질만 띡 교환하는 게 아니라 원군까지 지원해 주는 거니 여차하면 기사들을 써 황자를 구출해 오면 된다고 생각한 듯했다.

교환식 당일, 말끔하게 차려입은 마티어스는 우리들 앞에서 제 가슴을 탕탕 치며 젠체를 했다.

“불리해지면 100명이라도 해치우고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넌, 다녀와서 보자.

마티어스가 내게만 들릴 법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팔뚝에 인 소름을 문지르며 나 역시 마티어스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거기서 멍청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 곧 가서 구해 줄 테니까.”

“하. 네가 무슨 나를 구한다고. 헛소리를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만. 이제 교환식을 시작한다.”

우리는 대평원의 한복판에서 인질을 교환했다. 마티어스 대신 인상이 흐릿한 황자가 우리의 곁에 오게 되었다. 의연한 체해도 아직 어린 황자의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마티어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른 기사들보다 머리 한 통 정도는 커 나는 멀리서도 그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마티어스는 적군들 한가운데에서도 전혀 주눅 든 기색 없이 당당히 서 있었다. 오히려 마티어스의 그런 태도에 주변의 기사들이 더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마티어스가 좀 재수 없으면서도 솔직히 좀 멋있었다.

인질뿐 아니라 원군도 보내 준지라 텐트는 복작복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쓰던 텐트를 병사들에게 넘기고 루드비히와 압실론, 체자레와 한 방에 모여 잤다. 최근엔 전쟁터를 빠져나와 로그아웃하기가 너무 번거로워 그대로 기계 안에서 잠드는 경우가 잦았다.

“으에.”

프레스기에 압사당하는 꿈을 꾸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압실론이 나를 꽉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완연한 가을인데도 어찌나 체온이 높은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휴…….”

나는 땀에 푹 젖은 옷을 펄럭거리며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루드비히도 자리에 없었다.

“어디 간 거야?”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텐트 문을 열었다. 항상 쏟아질 것처럼 많던 별이 오늘은 붉은 안개에 휩싸여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달랑달랑 수통을 들고 연못가로 향했다. 졸졸 흐르는 물을 받고 있는데 어디선가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잔뜩 긴장해 수통을 든 채 보호막을 캐스팅하고 있으려니 연못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온천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현?”

“……루드비히?”

나는 수통을 쥔 채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찬찬히 걸어갔다. 루드비히가 온천에 몸을 담근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황당하다는 듯 루드비히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뭐 해?”

“목욕. 잠이 안 오더군.”

나는 방송을 다시 켜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이 귀한 이벤트를 나만 보다니.

어차피 청소년 모드라 밑은 모자이크와 블러 처리 되어 안 보이지만, 제법 팔릴 만한 광경이 아닌가.

“너도 같이하겠나?”

망설이던 내게 루드비히가 온천욕을 권했다. 나는 고민하다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지 뭐.”

호감도 쌓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 방송 켜기도 귀찮았던 나는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탈의한 뒤 조심스레 탕 안으로 발을 디뎠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