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조명 기사가 무언가 있다는 걸 느꼈는지 조명을 하늘로 향했다. 거기엔 성인 남성 셋을 합친 크기의 새까만 괴물이 앉아 있었다. 그것이 거대한 날개를 쫙 펼치며 기괴하게 울었다.
끼에에에에-!
칠판을 긁는 소음도 이만큼 소름 끼치지는 않을 터였다. 그것이 날개를 펄럭여 날아오르고는 고개를 뒤로 빼고 아가리를 쫙 벌렸다. 그것의 목구멍 안쪽에서 피처럼 새빨간 색의 무언가가 비쳤다. 이내 해처럼 붉은 불덩이가 야외무대를 강타했다. 그 불덩이가 관객석으로 쏟아지기 직전, 번쩍하는 빛과 함께 푸른색을 띤 구형의 보호막이 불길을 막았다.
“으아아악-!”
“아아악-! 가고일이다-!”
상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 너도나도 탈출구로 향했다.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배우들이 당황해 우왕좌왕했다. 수도는 원래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곳이었다. 면역이 없는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인데!”
마티어스가 검을 빼 들고 두 번째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가고일에게 달려 나갔다. 그러나 루드비히가 더 빨랐다.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기사단을 불러! 저 가고일은 내가 처리한다.”
“알았어!”
루드비히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길게 도약해 무대의 꼭대기에 섰다. 마티어스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발의 방향을 바꾸어 사람들 쪽으로 달려 나갔다. 압실론은 여전히 숨이 막히도록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압실론, 너도 같이 싸워야 하는 거 아니야?”
“무, 무슨 일이 생겼을 땐 이현을 우선으로 지키기로 해, 했거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는대도 나만을 지킬 것 같은 그의 대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언제 또 그런 약속은 했는지.
무대 꼭대기를 박차고 뛰어오른 루드비히가 가고일의 꼬리를 길게 베어 냈다. 꼬리는 구형의 보호막에 부딪혀 저 멀리로 튕겨 나갔다.
크아아아-! 꼬리를 잃은 가고일이 잔뜩 분노해 비명을 내질렀다. 확실히 공중전에 마법전이 섞여 있다 보니 마티어스보다는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쓸 줄 아는 루드비히가 가고일을 상대하기에 더 알맞았다.
꼬리가 떨어져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루드비히가 가고일의 날개 끝을 잡고 등반하듯 오르기 시작했다. 가고일이 루드비히를 떼어 내기 위해 날개를 마구 진동했지만, 루드비히가 더 빨랐다. 가고일이 끝을 예감한 듯 마지막 발악으로 목구멍을 크게 열고 머리를 관객석 쪽으로 고정했다.
콰아아아-! 가스 폭발 사고를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화마가 보호막을 덮쳤다. 다행히 푸른 보호막은 단단한 얼음처럼 고정되어 그 불길에도 전혀 녹지 않았다.
퍼어엉! 루드비히가 가고일의 목을 베어 내는 것과 동시에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튕겨 나온 루드비히가 추락해 바닥과 부딪히기 직전 떠오르기를 썼다. 타닥, 루드비히가 가볍게 바닥을 디뎠다.
<‘루드비히 폰 그리체’가 ‘가고일’을 해치웠습니다.>
<황제의 활약으로 인해 백성들의 사기가 크게 오릅니다.>
<황제의 활약으로 인해 황실에 대한 신뢰도가 30 올랐습니다.>
사태를 제일 먼저 파악한 사람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화, 황제 폐하 만세!”
“만세-! 폐하가 가고일을 해치우셨다!”
사람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군중의 환호’ 효과로 인해 30분 동안 전투력이 1.2배, 마력이 1.5배 오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환호에도 루드비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체자레나 마티어스, 압실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내 앞에는 루드비히와 체자레가, 뒤에는 마티어스가 섰다. 압실론은 곧 하나가 될 것처럼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
나는 당황스레 주위를 둘러보다 멈칫했다. 검은 머리를 한 유약한 인상의 사내가 다섯 걸음 앞에 있었다. 이안이었다.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발끝에 미약한 전류가 흘렀다.
그러나 이안은 하늘을 바라보느라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려다가 의심을 살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윽고 이안이 누굴 데리고 왔을지에 대해 감을 잡았다. 이안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그만이 유일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상한 가면은 아니었고, 가면무도회 때 흔히들 쓰는 가면이었다. 고양이 가면을 쓴 사람의 상태 창을 확인하려 손을 들었을 때였다.
“……온다.”
“뭐?”
압실론이 검게 물든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매를 가늘게 뜬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시각보다 청각이 먼저였다.
수천 마리 철새들이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보다 큰, 긁는 듯한 소리가 기하급수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도 났다. 성질 급한 가고일 한 마리가 불을 내뿜으며 하늘의 시야가 확 밝아졌다. 가고일 수백 마리가 산을 넘어 수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아아악-! 또 온다-!”
“가고일 떼, 가고일 떼야! 피해-!”
<사람들의 ‘두려움’이 전염되기 시작합니다. ‘집단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가고일 떼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위험도가 10초 후 재조정됩니다. 10, 9, 8…….>
띠링거리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루드비히가 날카롭게 압실론을 불렀다.
“압실론!”
“아, 알고 있어.”
그리고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무언가 수상한 행동에 내 눈매가 대번에 가늘어졌다. 내가 뒤로 몸을 빼자 압실론이 내게 몸을 더 바짝 붙였다.
“뭐 하려고?”
“안전한 곳으로 순간 이동 할 거야. 꽉 잡고 있어.”
뭐? 안 돼!
수도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외출은 한동안 꿈도 못 꾸게 될 터였다. 압실론의 머리칼이 살랑이기 시작했다.
이안을 겨우 발견했는데!
이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나는 이 마법을 어떻게든 캔슬시켜야 했다.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압실론의 뺨을 잡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키스라기보다는 입술 박치기나 마찬가지였지만,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고 있던 압실론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중력의 영향을 받아 바닥에 가라앉았다. 나를 붙들고 있던 손의 힘도 사라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어딜 가려고!”
“볼일이 있어. 금방 돌아올 거야!”
마티어스가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와중에도 가까스로 내 옷자락을 잡았지만, 나는 로브를 찢듯이 벗은 뒤 이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이면 됐다. 이안의 옆에 있는 가면을 쓴 사람의 상태 창을 볼 수 있을 시간이면.
끼에에에-!
가고일 떼가 이쪽으로 다가오자 사람들이 다시 패닉에 빠져 달리기 시작했다. 넘어지는 소리와 밀치는 소리, 아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무언가가 불에 타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보호막을 피해 붙은 불에 밤이 낮처럼 밝아졌으나, 안개가 사람들을 감싸고 있어 이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으아악!”
“흩어져-!”
인파에 섞여 나는 점차 야외무대와 떨어지게 되었다. 이안은 도대체 어딨는 건지. 그를 이젠 슬슬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목놓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혀언-!”
나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압실론이 보였다. 연기에 막혀 내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눈썹 끝을 세운 채 입을 앙다물고 있는 압실론을 보자니, 그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쿠와아아-!
그때 가고일 떼가 울부짖으며 인파 쪽을 향해 시커먼 무언가를 뿜어냈다. 저 멀리 박스 위로 떨어진 검은 타액이 그대로 박스를 부식시켰다. 부서지거나 깨지는 것도 없이 그대로 녹아 버리는 타액의 효과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때 내 위로 거대한 타액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순간 압실론이 내 쪽으로 보호막을 펼쳐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원 전철처럼 사람들로 빼곡하게 차 있어 피할 수도 없었다. 눈도 감지 못한 채 내게 다가오는 검은 타액을 바라보고 있는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수도 전체를 덮을 정도로 넓게 생성되었다.
“후유…….”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내심 궁금했지만, 타오르는 연기에 옆 사람의 얼굴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수 분이 지나서야 나는 겨우 인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헉헉거리고 있는데 시스템 창 경고음이 연속해서 울렸다.
<체력이 8%까지 떨어졌습니다. 기절과 사망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세요!>
5% 이하로 떨어졌다간 ‘옷깃만 스쳐도 기절’ 상태에 돌입할 테니 너무 빨리 달려서도 안 됐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돈 쓰는 것밖에 없었다.
“맵 켜 줘.”
<‘맵’ 기능이 켜졌습니다. 10분간 ‘맵’을 볼 수 있습니다.>
<남은 캐시: 24,300원>
탈출하려고 이것저것 켜 보는 바람에 돈이 제법 소모되어 있었다. 캐시 충전도 안 되기에 긴축 재정에 들어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할 때는 있는 법이었다.
“찾았다.”
나는 수많은 동그라미들 사이에서 라이시안이라고 쓰여 있는 노란 동그라미를 발견했다. 나는 다급히 걷기 시작했다. 콰아앙-! 무대가 있던 쪽에서 거대한 피격음이 났다. 하늘이 낮인 것처럼 잠시간 밝아졌다가 이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