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33화 (33/149)

#33

“내가 실언했어.”

“아니, 왜 말을 못 해?”

“여기서부터 혼자 갈 수 있지?”

너무나 역력히 말을 돌리는 행위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앞서 나가는 마티어스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야, 마티어스!”

내 신경질적인 외침에 마티어스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뒤돌아선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도중에 바람이라도 불어왔다면 들리지 않을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있어.”

“……뭐?”

마티어스는 할 말을 끝냈다는 듯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멀어질수록 거대한 어깨가 이상하게도 작아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기운 없이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중 두 명은, 네가 사라진 후 죽으려고 한 적이 있어.’

* * *

방에 돌아오자 식사는 이미 베드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었다. 데워 올까요, 라고 말하는 사용인에게 손을 휘저은 뒤 나는 묵묵히 다 식어 표면에 허옇게 막이 낀 수프와 크루아상을 먹어 치웠다. 잔 안에 있던 오렌지주스를 전부 마시고도 버석버석한 크루아상의 맛이 입 안에 그대로 남아 있어 나는 식사한 걸 바로 후회했다.

오전의 계획도 있었지만, 마티어스가 한 말이 계속 도돌이표처럼 귓가에 울렸다.

‘……우리 중 두 명은, 네가 사라진 후 죽으려고 한 적이 있어.’

도대체 누가 죽으려고 했을까.

왜 죽으려고 했을까?

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사랑에 맹목적인 녀석들이었나?

원래 AI도…… 자살을 하고 싶어 하나?

내가 당황한 까닭은 그 행동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5년간 그들은 도대체 어떤 불행 속에 있었을까. 나는 침대에 기대어 누가 죽으려고 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체자레는 원래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녀석이었다. 내가 없다고 해서 죽으려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압실론은 어쩌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녀석은 항상 날 맹목적으로 따라왔으니까. 아니, 그런데 날 박제로 만들면 그것도 내가 죽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압실론은 날 항상 박제하고 싶어 했는데. 그래도 일단 날 따라 죽을 가능성은 컸기에 압실론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남겨 두었다.

그럼 남은 건 루드비히와 마티어스인데……. 아무래도 루드비히보다는 마티어스일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그 녀석이 드세고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이 여린 편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소동물을 아끼고 좋아하면서 또 제일 두려워하기도 했다. 잘못 만졌다가 다치게 할까 봐.

나는 잠정적으로 죽으려 했던 게 마티어스와 압실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내가 탈출하면, 그 애들은 또 죽으려 할까. 웬만하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루드비히만 빼고.

나는 결국 오전과 오후 일정을 전부 빼먹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열이 오르고 말았다. 도중에 압실론이 달려왔지만, 몸이 싸우고 있는 것이므로 지금 열을 내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혼몽한 정신 속에서 이마에 물수건을 대 주는 압실론의 손길을 느끼며 바깥의 육체도 지금 열이 나고 있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

아니, 바깥에 육체가 있긴 한 걸까.

한밤중, 목이 타는 듯한 감각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목 안이 날카로운 돌이 박힌 것처럼 꺼끌꺼끌했다. 열이 오른 눈이 뜨거웠다. 켜 놓은 촛불에 침대맡에 엎드려 잠든 압실론의 모습이 어른어른 비추었다. 나는 억지로 성대를 열어 작은 목소리로 압실론을 불렀다.

“압실론, 나 물…….”

“…….”

그러나 밤새 나를 간호한 압실론은 곤히 잠들어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루드비히에게 제대로 당한 모양인지 이따금 루드비히 잘못했어, 라고 잠꼬대를 했다. 체자레도 도중에 왔었는데, 없는 걸 보니 내가 잠들고 나서 돌아간 모양이었다. 나는 압실론이 깨지 않게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땀에 젖은 몸에 옷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감각이 찝찝했다.

이러한 감각은 이곳의 내가 느끼는 걸까, 아니면 내 육체도 느끼고 있을까. 자꾸만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생각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흔들며 물병이 있는 쪽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열이 올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야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걸음을 디딘 무릎이 힘을 잃고 구부러졌다. 다리가 중심을 잃었다 느끼자마자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

카펫의 무늬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낙법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넘어지면 또 얼마나 머리가 울리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허리를 잡아챘다. 허리를 끌어안은 억센 손이 나를 단숨에 일으켜 세웠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다소 얼떨떨한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압실론?”

“나야.”

압실론치고는 실루엣이 좀 크다 싶더니 마티어스였다. 나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품에 안긴 채 마티어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민망하다는 듯 마른 입술 끝을 혀로 핥았다.

“마티어스, 네가 왜…….”

“열 난다고 해서 왔다가 자고 있길래…….”

“내가 도중에 일어나서 나갈 타이밍 놓친 거야?”

“어……. 아니야. 그냥 잠든 얼굴 보고 있었어.”

보고 싶어서.

긍정하려던 마티어스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답했다. 마티어스의 말에 열이 더 오르는 기분이었다. 잠깐이지만 열이 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덕분에 달아오른 뺨을 아픈 거라고 숨길 수 있었으니까.

“자, 여기 물.”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 마티어스가 물잔을 건네주었다. 나는 당황해 물잔을 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물 마시려고 했던 거 어떻게 알았어?”

“이런 건 그냥 보여. 널 보고 있으면.”

괜스레 민망해지는 기분에 나는 꿀꺽꿀꺽 물을 들이켰다. 마티어스의 이런 대책 없는 솔직함은 가끔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오늘 상냥하기로 작정했는지 마티어스는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물병과 잔을 침대 옆 협탁에 놓아주기까지 했다.

“고마…….”

고맙다고 말하려는데 불쑥 몸이 들렸다. 당황해 몸을 버둥거리는데 마티어스가 몸을 꽉 붙들었다.

“뭐, 뭐 해.”

“침대까지 데려다줄게. 열 올라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야, 몇 걸음이나 된다고……. 내려 줘.”

“그 몇 걸음 사이에 넘어질 뻔했잖아.”

“…….”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겼다.

“나 땀 냄새 날 텐데.”

“많이 나.”

“……야, 내려 줘.”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냄새에 그렇게 예민한 녀석이 상관없을 리가 없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마티어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파서 그런 거잖아. 그리고 네 땀 냄새는 정말 상관없어.”

진짜 아침부터 지금까지 사람 기분 미묘하게 만드는 데 뭐 있는 AI였다. 마티어스가 나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침대에 앉혀 주었다.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도 압실론은 여전히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누워. 이불 덮어 줄 테니까.”

내가 침대에 눕길 주저하자 마티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몸이 끈적거려…….”

“아, 그렇겠네. 얘 깨울게.”

“아, 안 돼!”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마티어스가 손을 들었다. 압실론의 머리통을 당장이라도 후려치려는 자세였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밀고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마티어스는 내게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얘 그 몸 깨끗하게 해 줄 수 있는 기능 있지 않아?”

“있긴 한데, 자고 있잖아. 계속 간호해 줘서 피곤할 거야.”

계속 간호해 줬다는 말에 마티어스의 손이 내려갔다.

“그냥 옷만 갈아입고 자지 뭐.”

아무리 실제에 가까운 가상 현실을 구현해 냈다고 해도 이런 건 좀 귀찮았다. 조금 무리하면 정말로 아픈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고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팠다.

원룸에 있다가도 광활한 대지와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풀잎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모든 걸 너무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건 역시 이런 단점이 있었다.

뭐,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현실감을 좋아하니 게임도 이렇게 만들어야 했던 거겠지. 이러니 외출을 포기하고 게임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고.

열이 오른 와중에도 생각이 많아 심란해하고 있는데 마티어스가 물수건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만세 해.”

“만세?”

만세 자세를 취하자마자 단박에 옷이 벗겨졌다. 맨살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나는 당황해 무릎을 세우고 몸을 움츠렸다.

“뭐, 뭐 해.”

“땀 닦아 주려고. 고개 숙이고 등 대 봐.”

“나 혼자 할 수 있어…….”

“고집부리지 마.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그, 그건 그냥 자다 깨서 발 헛디딘…… 으, 차가워.”

“마음 같아선 목욕시키고 싶은데, 말리는 과정에서 몸 더 아플 수도 있으니까.”

“그건 진짜 아니야.”

부드러운 헝겊이 살짝만 닿아도 세게 문지른 것처럼 몸이 아픈데, 그날처럼 목욕 당한다면 사흘은 더 앓아누울지도 몰랐다.

“알아. 이제 팔 줘.”

내가 아픈 걸 알아서인지 마티어스의 손길은 평소보다 배는 더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내가 감탄한 건 따로 있었다.

“넌 진짜 체온이 높구나…….”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은 평소보다 차갑게 느껴지는데, 내 손목을 쥔 마티어스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열이 있는데도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면 대체 체온이 몇 도라는 걸까.

“그런가?”

“응. 나 지금 열 나는데도 네 손이 더 뜨거운 것 같아.”

“원래 체온이 높은 편이니까. 큼, 다 했어, 이제 다른 쪽 팔 내놔.”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조로 미루어 보아 마티어스가 조금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짜식, 몸 좀 본다고 수줍음 타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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