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보호 마법을 풀 필요까지 있었나?”
“무슨 보호 마법?”
루드비히는 대답하는 대신 입술을 깨물고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그건 마치 한 나라의 황제라기보다는 소중한 물건을 빼앗긴 자존심 센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기가 찬다는 듯 물었다.
“뭐, 설마 내가 만들어 준 그…… 꽃반지?”
“그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만든 거잖아, 그것도.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루드비히가 내 위에 올라타 나를 쓰러트렸다.
“……!”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반항이 무의미할 정도로 루드비히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귀찮다는 듯 양 손목을 한 번에 그러쥔 루드비히의 손 마디마디가 소름 끼칠 만큼 차가웠다.
“네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유일한 것이었다.”
“이거, 놔……!”
“겨우 그런 게 아니었어. 네가 내 곁에 살아 숨 쉬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루드비히의 손등을 손톱으로 죽 긁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 럼 그거나 붙잡고 살지 그랬어. 내보내 주면 지금이라도 백 개는 만, 들어 줄 수 있는데.”
내 말에 루드비히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타났는데 우리가 왜?”
“그럼, X발, 그딴 거 망가트렸다고 화나, 내지 말든가. 개, 새끼야……!”
나는 악에 받쳐 몸부림을 쳤다. 무릎과 팔꿈치로 그의 몸 여기저기를 강타했지만 루드비히의 낯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치 거대한 벽을 상대하는 듯한 감각에 무력감이 몰려들었다.
“네가 떠나 있는 몇 년 동안 너보다 그게 소중했던 때가 있었다. 화풀이 정도는 받아 줘야 수지가 맞지 않겠나.”
맞기는, X발……!
“그렇게, 헉, 소중했던 거면 손가락에나 끼워 놓, 든가……!”
의외로 정곡을 찔렸는지 루드비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음울한 낯을 하고 말했다.
“나라고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라서.”
무슨 개소린지.
“왜 그랬나.”
“뭐, 가……!”
“왜 나를 떠났지?”
아오, 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새끼……!
내 손목을 쥔 루드비히의 손이 그대로 내 목울대를 눌렀다. 그다지 세게 누른 것 같지도 않은데 깊은 바닷속에 들어온 것처럼 숨쉬기가 불편해졌다. 눈앞이 불길하게 붉어지며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시스템 창이 연속해서 떴다.
“마, 말할……. 컥.”
말하겠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자 목을 압박하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게걸스럽게 주변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후 내뱉은 건 공기만이 아니었다. 퉤, 나는 루드비히의 뺨에 침을 뱉었다. 투명한 타액이 그의 굳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꼴 좋다는 듯 씩 웃었다.
“죽여, 봐, 개새끼야. 그리고 평생 궁, 금해해…….”
루드비히가 손등으로 가만히 침을 문질렀다. 손목을 휘어잡은 손이 위를 향한다 싶더니 갑작스레 무언가가 입술을 덮쳐 왔다.
“으……!”
아랫입술을 깨물려 입을 벌린 채 고통에 신음하는 새 젖은 살덩이가 입 안을 침범하며 들어왔다. 놀라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이미 아래턱이 단단히 잡혀 있었다.
“으음……!”
나는 루드비히의 몸 아래 깔린 채 바르작대었다. 그사이 그의 혀가 거침없이 내 입 안을 휘저었다. 치열과 입 천장, 혀뿌리까지 입 안의 구조를 샅샅이 훑어 내는 진득한 소유욕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버둥거리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숨구멍이 조여 왔다.
사실 죽을 생각 같은 건 한 푼어치도 없었다. 어차피 브레이슬릿이 있어 죽지는 않을 테니 그냥 한번 질러 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키스를 하냐고……!
루드비히의 혀가 입 천장 안쪽을 자극하는 바람에 눈꼬리 끝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이게 방송 중이 아니라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장면을 만천하에 공개하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나았다.
아니, 압실론 이 새끼는 왜 안 오는 거야?
‘우리는 함께 사, 살고, 함께 죽는다.’
‘맞아. 그러니까 루드비히가 열 받아서 내 방 오려고 하면 너도 뒤따라와서 나 구해 줘야 해. 알았지?’
‘응. 나, 그 말 정말 마음에 드, 들어. 같이 죽는다는 말…….’
응이라고 했잖아. 응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나는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의 힘을 풀고 그를 받아들였다. 내가 반항을 멈추고 순순히 루드비히의 입맞춤에 협조하자 그는 조금 놀란 듯했다.
“으응…….”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루드비히의 아랫입술을 빨다 조심스레 그의 입 안을 훑었다. 어설프게나마 혀를 섞자 마냥 거칠던 입맞춤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단단하던 루드비히의 혀가 불에 녹은 마시멜로처럼 말랑해졌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목과 턱을 쥔 손의 힘이 풀렸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가 방심했을 때를 틈타 혀와 입술을 대차게 짓씹었다.
“…….”
혀를 씹히고도 루드비히는 내게서 천천히 떨어져 나왔다. 그 후로도 한참을 멍한 표정이었다. 감회에 젖은 것 같달까. 입맞춤이 제법 좋았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재수 없었다.
나는 손등으로 거칠게 입술을 문지르며 루드비히를 노려보았다. 루드비히가 큰 손으로 내 관자놀이와 뺨, 턱을 쥐고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고양이 앞의 쥐가 된 듯해 기분이 더러웠다.
“넌 예전부터 그랬지.”
핏방울이 맺힌 입술을 나른하게 핥아 올리며 루드비히가 나직이 속삭였다.
“……뭐, 뭐가.”
“내가 좋아 죽겠다고 하면서 표정은 그렇지 않고, 온갖 아양을 떨면서 내 손끝에 귓불이라도 닿을라치면 몸이 굳어 들고.”
“…….”
“그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더군. 넌 혹시, 몇 대 맞는 것보다 입을 맞추는 것에 더 두려움을 느끼는 게 아닐까.”
깍지 낀 손을 내 가슴 위에 올린 루드비히가 나를 보며 눈을 휘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사건이 터질 듯한 위험한 미소였다.
“아마도…… 맞춘 것 같지?”
“무슨 개소리야. 절대 아니거든? 맞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섭거든?”
젠장, 정답이었다.
잔뜩 긴장해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데, 툭 소리가 났다. 밑을 내려다보자, 루드비히가 깍지 낀 손을 풀고 어느새…… 내 셔츠 단추를 끄르고 있었다.
“……뭐 해, 미친놈아!”
“맞는 것보다 조금 덜 무서운 짓.”
툭, 세 번째 단추가 풀렸다. 온몸의 핏기가 가시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사, 사실 무서워! 이게 제일 무서워!”
나는 루드비히의 손을 부여잡고 두 번이나 외쳤다. 그러자 루드비히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알아.”
이…… 미친 새끼가……!
나는 예전에 루드비히가 내 몸을 건드렸다가 스파크를 거세게 맞았던 걸 떠올렸다.
“너, 너 내 몸 건드리면 스파크……!”
“이제 체자레가 여기 왔으니 그 금제는 풀렸어.”
아니, 누구 마음대로 그 좋은 걸 풀어!
나는 몸을 버둥거리며 소리 질렀다.
“도와줘-! 살려 줘! 사람 살려-!”
압실론 이 개새끼야……!
“죽을 일은 없을 텐데.”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다시금 루드비히의 입술이 내 위로 내려앉았다. 찝찔한 피 맛이 적나라하게 느껴져 현실감이 차올랐다.
“그만, 읍, 해. 미친 새끼, 음……!”
“그렇다고 하니, 여기까지만 해요.”
둘만 있는 줄 알았던 방 안에서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이 맺혀 흐릿한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어둠 속에서 루드비히의 눈을 가린 채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그의 이름을 작게 속삭였다.
“체자레……?”
“네, 이현. 맞아요.”
떨리는 숨 사이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둠이 가라앉은 방이건만, 체자레의 뒤에 후광이 흘러넘쳤다.
“더 하고 싶다면, 다음부터는 내가 상대하고요.”
“……?”
그거 루드비히랑 싸우겠다는 소리인 거…… 맞지?
미묘한 어감에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제 눈을 가리고 있던 체자레의 손을 떼어 내며 낮게 한숨지었다.
“어차피 끝까지 갈 마음도 없었어.”
“알아요, 그래도 조금은 괴롭혔겠죠.”
이현은 그러고 싶어지는 사람이니까.
뒤이은 체자레의 말에 흠칫 소름이 일었다. 이해한다는 걸까,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걸까. 고백부터 발언까지, 체자레는 정말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루드비히가 내 위에서 물러난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은 뒤 침대 헤드에 등을 붙였다. 그리고는 참아 왔던 숨을 터트리듯 몇 번이고 깊게 심호흡했다.
“물 마셔요.”
진정하라는 듯 체자레가 내게 침대 옆 협탁에 있던 물잔을 건네주었다. 나는 물잔을 받아 들고 조갈이 난 사람처럼 단숨에 그것을 비웠다.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위를 바라보자 체자레가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해 그에게 물었다.
“어, 어디서부터 본 거야?”
“이현이 천사같이 자고 있던 모습부터요.”
그냥 처음부터 보고 있었단 말이었다.
나는 잔뜩 성이 나 외쳤다.
“그런데 왜 안 도와줬어!”
“화난 루드비히는 나도 무섭거든요. 나 같은 경우는 팔 하나는 줘야 말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안 말렸어요.
발랄한 말투에 분통이 터졌다. 나는 눈매를 가늘게 뜨고 물었다.
“체자레.”
“네?”
“지금도 나 좋아하는 거 맞아?”
“네. 좋아해요, 이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좋아하는데.
체자레가 빙글빙글 웃으며 콧잔등을 톡 쳤다. 나는 코끝을 문지르며 불만스레 물었다.
“아니, 진짜 좋아하면 구해 주거나, 그게 아니라도 질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잠시의 고민도 없이 체자레가 답했다.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보는 쪽이 더 취향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