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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4화 (14/149)

#14

“…….”

나는 눈을 감은 채 내 목을 쥐고 있는 손의 주인이 누굴까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보가 너무 많았다.

일단 루드비히, 탈옥한 마티어스, 압실론, 체자레-오자마자 내 목을 조를 수도 있으니까-가 있었고, 그다음 파블로 백작이나 이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암살자일 수도 있고.

나름 바깥세상에서는 적 안 만들고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어쩌다가 여기선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눈을 떴다간 증거 인멸을 이유로 정말 쓱싹 될 수도 있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기절한 척을 했다.

다행히 목을 쥔 손은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그의 존재에 대해 추리해 볼 수 있었다.

일단 손이 매우 컸다. 내 목을 전부 덮을 정도로. 높은 확률로 남자였다. 개중에서도 장신. 손바닥보다는 손가락이 긴 타입인 듯했고, 검을 오랫동안 잡았는지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또한 체온은 깜짝 놀랄 정도로 낮은 편이었다. 목이 체온이 높아 상대적으로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참작해도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낮았다.

마티어스와 압실론은 나보다 체온이 높았기에 후보는 단숨에 좁혀졌다.

내가 정신을 차린 지도 꽤 지났는데 여전히 목을 쥐고 있는 걸 보니 나를 암살하러 온 암살자도 아닌 것 같았다. 암살자라면 진작 목을 꺾어 놓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루드비히와 체자레, 파블로, 이안이었다.

음, 파블로 백작도 단숨에 내 목을 땄을 테니 후보에서 제외하도록 하자.

루드비히, 체자레, 이안.

셋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루드비히였다.

이안은 나와 키가 비슷했고, 손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체자레는 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긴 해도 나랑 대화 한 번 하지 않고 나를 죽일 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루드비히라는 소리인데…… 기절하기 전만 해도 나를 구해 줬던 놈이 이번에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이 안 되어 보이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 게임 내에서 정상인은 나밖에 없으니까. 특히 루드비히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나는 내 목을 쥐고 있는 이가 루드비히라 결론 내렸다.

물론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으응…….”

그저 최대한 귀엽게 잠꼬대 연기를 해 보는 수밖에. 다행히도 내 연기가 먹혔는지 목을 쥔 손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

서서히 손을 떼어 내나 싶더니 손끝이 목울대를 스친다. 턱 밑의 부드러운 살을 가볍게 누르며 손가락이 턱선을 따라 차츰차츰 위로 올라왔다. 귓바퀴와 귓불을 쓸어내리는 동작이 어쩐지 야했다.

이상한 기류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박동했다. 심장 소리를 들킬까 나는 호흡을 느릿하게 조절했다.

“…….”

손길 하나하나에 진득한 집착과 욕망이 맴돌고 있었다. 이대로 덮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기류에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관자놀이를 스친 손이 멋대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이마를 훤히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보여 줘선 안 되는 무언가를 보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마를 맴돌던 손가락이 코를 쓸더니 이내 인중을 넘어 입술에 다다랐다.

윗입술을 훑던 엄지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앞니에 이어 덧니의 뾰족한 부분까지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이 이내 아랫입술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

뭐야?

실컷 만지다가 왜 입술에서 멈추는 건데?

그보다 내 얼굴은 왜 이렇게 야하게 주물럭대는 거고?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내가 그러는 동안에도 손은 한참이나 입술을 더듬었다.

손으로 하는 입맞춤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차오르는 긴장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결국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동시에 입술을 지분대던 누군가의 손이 동작을 멈추었다.

“…….”

깨어 있다는 걸 들켰으려나.

식은땀이 너무 흘러 곧 클린 기능이 가동될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입술에 닿았던 손가락이 점차 떨어져 나갔다. 안심하고 있던 찰나 큰 손이 내 뺨을 가볍게 쥐었다. 동시에 입 안에서 ‘뽁!’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 눈을 뜰 뻔했지만, 이미 잔뜩 긴장하고 있었기에 눈꺼풀을 움찔거리는 정도로 수습할 수 있었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차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허탈한 웃음소리가 섞인 듯도 했다.

쿵. 묵직한 문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끊겼다. 나는 눈을 뜬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어어…….”

뭐야? 뭔데?

목 조르다가 왜 갑자기 입술을 만져?

미친놈인가?

누구지?

수많은 물음이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가기 전에 살짝 실눈이라도 떠 볼 것을.

후회막심이었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였다. 옆으로 돌아누워 괜히 애꿎은 베개를 팡팡 치고 있는데 다시금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

다시 돌아온 건가.

역시 목을 조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결정한 거면 어떡하지.

지금의 나는 동네 강아지보다도 전투력이 모자랐다. 차라리 말티즈가 나보다 더 강할 것 같았다.

덕분에 침입자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졌다. 나는 생존을 바라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박, 사박.

다행히도 지금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까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발소리와 함께 사박거리는 옷감 소리가 겹쳤다. 키만큼이나 긴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발걸음이 침대 앞에서 멈추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그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잔뜩 긴장한 나의 귓가에 그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현, 왜 깨, 깨어났으면서 자, 자는 척해?”

청량함을 가미한 소년 같은 미성. 나는 단박에 그게 압실론의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하아…….”

눈을 뜨자 압실론이 성가대원 같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눈 감고 있고 싶어서.”

“으응, 그, 그렇구나.”

압실론은 말을 더 하지 않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 내 손목을 쓰다듬었다. 정확히는 내 손목 위의 브레이슬릿을.

“이거 잠깐 좀 보, 볼게.”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알고 보니 원인 모를 문제가 있어서 이 거지 같은 브레이슬릿을 제발 좀 없애 주었으면.

나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아, 아냐. 내가 설계한 건데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압실론이 굴욕적인 질문이라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압실론은 완벽주의 기질이 심한 편이었다.

능력에 대해 의심받는 걸 두려움을 넘어 혐오한달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압실론의 비위를 맞췄다.

“아, 알지. 알지. 난 그냥 갑자기 만지길래 궁금해서.”

“이, 이현이 생각보다 너무 야, 약한 것 같아서 좀 변, 화를 줘 보려고.”

“변화? 어떤 변화?”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친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맑게 개안한 시야에 세상이 갑자기 조금 아름답게 보이는 듯했다.

설마 고정 체력 퍼센트를 좀 올려 준다거나?

제발 그런 거여라.

나는 간절히 바라며 무의식중에 압실론의 손을 꽉 쥐었다. 압실론의 고개가 살짝 밑으로 떨어지며 녀석의 귓바퀴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루, 루드비히랑 상의해서 체력 제한은 좀 푸, 풀어 주기로 했어. 지금은 도, 돌연사 확률이 너무 높아서…….”

올레-!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깡충깡충 뛰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너무 건강해 보여서 안 올려 줄 수도 있으니까. 대신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레 주먹으로 압실론을 툭툭 쳤다.

“그래, 사람이 개복치도 아닌데 어떻게 10%로 살아갈 수 있겠어. 정말 잘 생각했어.”

내 말에 브레이슬릿 근처를 어루만지던 압실론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순간 내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 압실론의 눈치를 보았다.

“어…… 왜 그래?”

“여, 역시 알고 있구나.”

“응? 뭐가?”

그러나 압실론은 대답은 하지 않고 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으응, 아무것도 아, 니야.”

아니긴, 뭐가 엄청 있는 것 같은데요.

나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체력 제한을 풀어 주겠다는 애한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압실론이 브레이슬릿을 쓰다듬으며 주문을 외우자 브레이슬릿 내에 각인된 룬 문자들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

긴 문자로 이루어진 무형의 사슬이 브레이슬릿 부근을 떠돌아다니다 이내 천천히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향수에 젖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이 거지 같은 브레이슬릿만 아니어도 나도 이런 마법 펑펑 쓰고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물건에 룬 문자를 새기는 등 정교한 마법을 쓰는 건 압실론의 특기지 내 특기가 아니긴 했다.

실력에 비해 마나가 넘쳐 났던 나는 마음껏 마나를 폭발시킬 수 있는 마법에 강했다. 예를 들어 환상 마법이나 넓은 범위의 마법 같은 것 말이다.

수도의 낮에 밤하늘을 가져오고 폭죽을 터트리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둠의 힘이 깃든 브레이슬릿(제작자: 압실론 디트크리프)이 제작자의 의지를 받아 변화합니다.>

추억을 회상하며 눈가가 촉촉해져 있는데 압실론이 브레이슬릿에서 손을 떼어 냈다.

“다, 다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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