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3화 (13/149)

#13

한마디 해 주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하도 살벌하게 노려보는 녀석 때문에 도무지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만간 감옥으로 쟤가 좋아하는 빵 좀 싸 들고 가야겠다.

루드비히가 손짓하자 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기사단이 조심스레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얌전히 묶이려던 마티어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들었다.

“폐하.”

아까와는 달리 몹시도 정중한 태도로 마티어스가 루드비히를 불렀다. 마티어스의 부름에 루드비히가 말하라는 듯 가볍게 턱짓했다.

“……쟤 한 대만 쥐어박고 갇히면 안 됩니까?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도 갇혀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묻는 마티어스는 몹시도 간절해 보였다.

당연히 안 되지, 개새끼야!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은 걸 참고 루드비히를 올려다보았다.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매달린 나를 내려다보는 루드비히의 동공에 고민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다.

설마 진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지?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덜미에 머리를 비비며 같잖은 애교를 부리기까지 했다. 루드비히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가마를 따라 머리칼이 가볍게 날렸다.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하나, 지금은 바람만 스쳐도 죽을 수 있는 상태라.”

“몸이 뭐가 약해, 쟤가…… 아.”

마티어스의 시선이 나의 손목에 꽂혔다. 그리고는 압실론에게 조금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기어코 저 끔찍한 걸 만들어 씌웠구나.”

압실론이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칭찬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때만큼은 마티어스와 동감이었다.

“5, 5년 동안 저것만 마, 만들었는걸.”

“그래, 그래서 달리기 실력이 그렇게 시원찮았구나. 어쩐지, 존나 못 뛰더라.”

납득 간다는 듯 마티어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순순히 기사단에게 손목을 내주었다. 나는 갑자기 조금 억울해졌다. 나는 간교한 계략을 꾸미는 후궁처럼 마티어스를 가리키며 루드비히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쟤 한 대만 때리면…… 안 되겠지?”

루드비히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근처 갔다가 안 죽을 자신 있으면.”

“으응, 그냥 감옥에서 반성하게 하는 게 좋겠어.”

나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내 목숨은 하나뿐인 데다 제법 중요하니까.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면 저 앙큼한 생각을 한 녀석에게 물벼락이라도 내렸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나는 잠시 압실론에게 그렇게 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압실론은 수줍어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 그 눈치 없음과 해맑음이 너의 장점이자 단점이지.

나는 기사들에게 연행되어 터덜터덜 떠나가는 마티어스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고 나는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정말 덕분에 살았다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살았어.”

“…….”

“이제 내려 줘……?”

다리를 바동거리는데 루드비히가 그런 나를 안은 채 빤히 바라보았다.

뭐지?

“내려 달라니……!”

재차 말하는데 루드비히가 나를 잡은 손을 탁 놓았다.

야, 그렇다고 그렇게 확 놓으면…….

체력이 떨어져 다리에 제대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침대가 바로 뒤에 있는 사람처럼 뒤로 넘어갔다. 뒤통수와 대리석 복도가 점차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렸다. 놀란 표정의 압실론과 눈을 크게 뜬 루드비히가 보였다.

“……!”

내 머리가 박살 난 수박처럼 변하기 직전, 루드비히가 나의 옷을 잡아챘다. 정확하게는, 셔츠 깃을.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우리는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

<조건 충족으로 ‘옷깃만 스쳐도 기절’ 상태에 돌입합니다.>

<30분간 기절합니다. 남은 시간 29:59…….>

나의 안색이 다시금 새파랗게 질렸다.

아니, 진짜 옷깃 스쳤다고 기절하는 거야 나?

뭔 놈의 조건이 이렇게 직설적인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인어공주처럼 뻐끔거리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루드비히의 다급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어둠에 잠겼다.

* * *

문득 전역을 하고 난 뒤 다시 이 기계를 켰던 날이 떠올랐다.

자취방에 놀러 온 친구가 거나하게 취해 게임 좀 해 보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이놈에게 <소년들은 어른이 된다>를 켜 줄 수는 없었기에 게임 안에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던 가벼운 슈팅 게임을 틀어 주었다.

“야, 안 되는데?”

“엥, 뭔 소리야. 전원 켜져 있는데.”

“해 봐. 안 되잖아.”

“진짜 귀찮게 하네. 아, 비켜 봐.”

하도 칭얼거리기에 녀석을 내보내고 내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내가 전원 버튼을 누르자 바로 게임이 실행되었다. 나는 짜증을 내며 녀석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야, 되잖아.”

“뭐야, 되네? 이왕 앉은 김에 네가 좀 해 봐. 어떻게 하는 건지 보게.”

“아, 진짜 귀찮게……. 형님이 실력 좀 보여 줄게.”

“태세 전환 뭔데.”

나를 닦달해 댔던 친구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판을 깔아 주면 보기만 하려 하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술에 취해 아리까리한 와중에도 슈팅 게임을 해야 했다.

펑키한 배경 음악이 켜지고,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어?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야.”

오랜만에 하는 가상 현실 게임에 나는 금방 몰입하게 됐다. 술김에 겁 없이 하는 게임이다 보니 스코어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헉, 대박.”

어쩌면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될 수도 있어 나는 각을 잡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역대 스코어 중 4위의 기록을 막 깨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

“뭐?”

음량을 높인 채 게임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내게 무언가를 물어 왔다. 나는 게임에 몰입해 있어 친구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귀찮게 자꾸 말을 걸었다.

[거…… 뭐 해?]

“아니, 나 지금 게임 하느라 잘 안 들려. 좀 이따 얘기해.”

다시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왕 옆에 있는 전투기들의 그래픽 픽셀이 깨지더니, 글자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

[기서]

[뭐]

[해]

[?]

“뭐야, 장난치지 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거나하게 술에 취해 있었던 나는 그때만 해도 친구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아, 하지 말라고.”

인상을 쓰며 하지 말라고 투덜거리는데, 이번엔 아예 화면이 우수수 부서지더니, 새빨간 글자들이 떠올랐다.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거기서 뭐 해?]

“뭐야, X발!”

화면을 가득 메운 붉은 글자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조이스틱을 집어 던졌다. 뒤이어 기계에서 나온 나는 벌떡 일어나 친구를 노려보며 외쳤다.

“이 미친 새끼가 장난을 쳐도……!”

“…….”

“……?”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친구의 장난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친구는 기계 옆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던 것이다. 갑자기 오싹해지는 기분에 나는 발끝으로 친구를 툭툭 쳤다.

“야,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

뺨도 가볍게 쳐 봤지만, 인상만 조금 찌푸릴 뿐 친구는 미동도 없었다. 수면의 깊이로 보아 게임을 시작하고 바로 잠든 듯했다.

하지만, 그럼 그 목소리는 뭐였지?

고민하던 나는 문득 헤드기어를 끼고 있는 동안에는 몰입을 위해 바깥의 소리가 노이즈 캔슬링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게임이 시작된 뒤에는 친구가 옆에서 고함을 치든, 음악을 듣든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뭐야, 뭔데.”

오싹한 기분에 가만히 서서 고요한 자취방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얘가 나를 좋아해서 마음이 타는 냄새가 날 리는 없고…….

주위를 둘러보던 내 시야에 기계와 연결된 콘센트가 잡혔다. 콘센트 접합에 문제가 생겼는지 스파크가 튀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으악!”

나는 단박에 코드를 뽑고 빨갛게 달아오른 콘센트를 후후 불었다. 다행히 플러그를 빼자 연기는 금방 멎었다. 나는 코드 선을 쥔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큰일 날 뻔했네.”

다음 날 친구에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었지만, 필름이 끊긴 친구는 게임을 켠 것조차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조금 떨떠름하긴 했지만, 누전되면서 그래픽을 구동하는 데 오류가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AS를 부르는 게 맞았지만, 무상 수리 기간이 끝났기에 비싼 AS를 받을 자신이 없던 나는 차일피일 AS를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흐릿해져 또 게임에 재접속하게 되었지…….

미친놈아, 미친놈아…….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데, 띠링! 소리와 함께 상태 창이 떴다.

<상태 이상 ‘기절’이 풀립니다.>

기절 상태가 풀리며 나는 서서히 나를 둘러싼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살갗에 닿는 침구의 감촉과 적당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내 목을 쥔 누군가의 손.

“…….”

뭐야, 나 지금 목 졸리고 있는 거야?

일어나자마자 꽂힌 사망 플래그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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