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네가 날고 기어 봤자 감옥신세지 뭐.
심지어 마티어스는 기능성 수갑을 차고 있었다. 물론 마티어스의 능력을 상실시키는 기능이었다.
나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온화한 마음으로 마티어스의 욕설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지쳤을 때 즈음 활짝 웃으며 말했다.
“뭐라구? 너 감옥에 있어서 잘 안 들려!”
“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응응, 보고 싶었다구? 나도 보고 싶었지-.”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오늘 햇살 정말 좋다. 낮잠이라도 잘까 봐.”
나는 잔뜩 열 받은 마티어스의 앞에서 햇볕 아래 고양이처럼 몸을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윙크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 열화와 같은 성원 감사드려요. 저는 그럼 지금부터 잠방 시작할게요.”
나는 최대한 얄밉게 말하며 자리를 펴고 누웠다. 흙이 묻어 옷이 더러워질 수도 있지만, 어차피 클린 기능이 있어 상관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티어스가 제일 놀리는 맛이 있는 녀석이었지……. 화르르 타오르고 금방 가라앉고.
넌 정말 여전하구나.
나는 마티어스의 욕설을 감미로운 자장가 삼아 눈을 감고 누웠다. 얼굴 위로 부는 바람이 시원했다.
“너 진짜 나가면 죽여 버린다!”
“느 즨짜 늬긔믄 즥의 븨릔듸-.”
마티어스 쪽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그의 말투를 최대한 얄밉게 따라 했다.
아, 속이 다 시원하네.
요 근래 압실론과 루드비히에게 당한 체증이 싹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몇 주 더 감옥에 있으면 좋을 텐데.
나중에 압실론한테 언제쯤 출소하는지 물어봤다가 사흘 앞두고 빵 몇 개 가져다주면 금방 풀릴 터였다. 단순한 놈이니까. 그전까지는 열심히 놀려 먹어야지.
또 뭘로 도발해 볼까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파삭 소리가 들려왔다. 사과가 반쪽이 아니라 가루가 되면 이런 느낌일까.
뭐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까 들렸던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
마티어스의 손에서 감옥 창살이 박살 나고 있었다. 행복한 잠방이 종료되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듯했다.
아니, 수갑 차고 있어서 능력 제한되는 거 아니었어?
내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여섯 개의 창살 중 하나가 더 가루가 되어 부스러졌다. 나무도 아니고 철로 만든 창살이 부서지는 건 내게 색다른 공포감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남은 창살은 세 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마티어스…….”
“말 시키지 마. 정들어.”
“정이 들면…… 안 되는 걸까?”
“나 나가는 순간이 네 인생 종 치는 순간이라.”
“아하. 근데 있잖아, 마티어스…….”
“뭐.”
“그게, 탈옥은 중범죄잖아. 그거 알려 주려고 했지…….”
나는 아까보다 훨씬 정중하고 소심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티어스가 양손에 창살을 하나씩 쥔 채 입매를 비틀었다.
“재밌네. 너 뒤진 후 걱정도 해 주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깔이 돌아 있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의 손에 창살 두 개가 가루가 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내 등 뒤에 대고 마티어스가 날카롭게 외쳤다.
“거기 안 서!”
“너 같으면 서겠냐!”
<체력이 1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기절과 사망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세요!>
<체력이 9%까지 떨어졌습니다. 기절과 사망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세요!>
<체력이 8%까지 떨어졌습니다. 기절과 사망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세요!>
브레이슬릿 때문에 경고 문구가 마구 떠올랐지만 전부 무시했다. 체력이 떨어져서 죽는 게 마티어스에게 죽는 것보다 훨씬 덜 아플 것 같았다.
“헉, 허억…….”
나는 감옥과 거리를 벌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마티어스가 마치 유명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처럼 창살 사이로 몸을 구겨 넣은 채 조금씩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덩치가 워낙에 큰 놈이라 단번에 나오지는 못한다는 거였다.
다행이다, 저놈이 근육 돼지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거기 서라고-!”
마티어스의 고성과 쩌적 소리가 섞이나 싶더니 급속도로 건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는 과정을 32배속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티어스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회벽이 쩍 갈라지며 추풍낙엽처럼 벽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세계 명작의 한 구절을 닮아 있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가 내게로 날아든다.
그 새의 이름은 마티어스 크롬하트.
나를 죽일 이의 이름이었다.
“으아아악!”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체격 차이가 나다 보니 마티어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와 그의 거리가 훅훅 가까워졌다. 금방이라도 머리채를 잡힐 것 같은 상황에 나는 이를 악물고 달음박질했다.
젠장, 마법만 쓸 수 있었어도……!
저 멀리 성문 앞에서는 경비병들이 우리를 보며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쪽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나는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힘껏 외쳤다.
“탈옥범! 뒤에 탈옥범!”
경비병들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는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도 쟤가 무섭겠지.
근데 나는 걸리면 진짜 죽을 것 같거든.
나는 그들을 쌩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제발 몇 초라도 마티어스를 받아 주길 바라며.
“이, 이러시면 안 됩…….”
“비켜, 이 버러지야.”
마티어스가 소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내 위로 그림자가 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콰앙-! 정확히 내가 조금 전에 있던 곳에 갑옷을 입은 경비병이 추락했다. 등줄기에 싸늘한 한기가 훅 끼쳤다.
이거 맞았으면 이 체력으로는 즉사였겠는데.
그러다 경비병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무언가가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날아갔다. 그게 경비병이라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체력이 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기절’ 상태로 돌입합니다! 즉시 행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세요!>
루드비히한테는 패왕의 기운이니 뭐니 사기 스킬 주더니 나한테는 ‘옷깃만 스쳐도 기절’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걸 주는구나.
빌어먹을 세상아.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데 복도 끝에 인영 둘이 보였다. 경비병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는데 어쩐지 실루엣들이 익숙했다.
“이, 이현!”
압실론과 루드비히였다. 사람이 간사한 게, 또 이렇게 되니 그들이 반가웠다. 나는 그들을 향해 몸을 날리며 외쳤다.
“사, 살려 줘!”
“……!”
그리고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루드비히의 품 안에 덥석 안겼다. 얼떨결에 나를 끌어안은 루드비히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워 보였다.
“비켜-!”
마티어스가 노성을 지르며 루드비히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쥔 루드비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뻑! 살벌한 소리와 함께 루드비히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대로 목이 꺾여 죽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둔탁한 소음이었다. 때린 마티어스조차 당황해 주춤했다.
“……뭐, 뭐야. 왜 안 피해.”
“…….”
마티어스의 말에 돌아가 있던 루드비히의 고개가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사자처럼 섬뜩하면서도 흉흉했다. 머리칼이 선득해질 정도로 낮은 저음이 황궁을 울렸다.
“……내가 능력이 없어 그딴 허접한 쓰레기를 채워 널 거기 둔 게 아닌 걸 알 텐데.”
“아…….”
“그 보답을 이런 식으로 하나?”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마티어스는 루드비히의 눈치를 보며 구구절절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도 알지. 반성하고 있었어. 진짜! 근데 저 새끼가 먼저 나를 도발했다고!”
와, 이 치사한 새끼. 바로 나를 팔아먹네.
나는 홱 고개를 돌려 마티어스를 노려보았다. 루드비히의 눈치를 보고 있던 마티어스의 눈매가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흉흉해졌다.
“뭘 야려.”
“…….”
나는 다시 루드비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절대 쫄아서 그런 거 아니다.
“아, 아무튼 사고 친 건 미안해. 근데, 그거 네가 당했으면 너도 똑같이…….”
“내가 네 뺨을 날렸을 거라고.”
“아니, 미안. 미안해.”
마티어스는 생각보다 순순히 사과했다. 나는 다시금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그를 바라보았다.
덩치는 산만 해 가지고 침울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이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마티어스가 나를 독사처럼 올려다보았다.
취소다, 취소.
지하 감옥에서 10년은 썩어야 사라질 듯한 독기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저런 애들 무덤엔 풀도 안 자라는 법이었다.
나는 목을 뻗어 루드비히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루드비히가 경계의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루드비히의 귓가에 입술을 붙인 채 마티어스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쟤 탈옥범이야. 알지?”
그건 아주 중죄지, 암.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는 양 근엄하게 선언했다. 루드비히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오면 이 두통이 나아질까 했는데, 어째 더 심해지는 것만 같군.”
“하하…….”
그럼 날 보내 주든가, 이 새끼야.
하지만 루드비히는 날 놔줄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루드비히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마티어스 크롬하트. 사흘의 구속 기간을 일주일로 늘린다. 또한 대마물용 구속구를 씌우도록.”
“……!”
순간적으로 마티어스와 나의 희비가 교차했다. 물론 내가 비였고, 쟤가 희였다.
아니, 일주일을 누구 코에 붙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