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10화 (10/149)

#10

“폐하아!”

남자는 녀석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그 역시 무릎을 꿇었다.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는 광대가 유독 튀어나온 데다 이방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전형적인 간신배처럼 보였다. 그가 엎드리는 바람에 조명에 머리털 하나 없는 그의 반들반들한 머리가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어떻게 이안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무슨 말이지?”

“이 녀석 말입니다! 진짜가 나타났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찌 오랜 시간 폐하를 밤낮으로 보필해 온 녀석을 하루아침에 내치실 수 있습니까아!”

뭐, 뭐?

밤낮으로?

나는 경악해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루드비히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양 평온했다.

아니, 잠깐만. 낮에는 집무로 보필했다 치면, 밤에는 뭘로 보필했는데?

설마…….

나는 어이가 없어 이안이라 불린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이안은 무릎을 꿇고 세상사에 염증이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 지금 이런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되진 않나?”

루드비히가 포크를 내려놓고 싸늘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 기세에 눌린 파블로가 두려운 듯 한차례 몸을 떨었다.

“소, 송구합니다. 그저 저는 이 불쌍한 것을 폐하께서 한 번 더 굽어살펴 주셨으면 해서…….”

“함께 식사하지 않은 적이 더 많은데, 지금 이렇게 반응하는 연유가 뭐지?”

“그, 그건…….”

냅킨으로 입을 닦은 루드비히가 툭, 그것을 내던졌다. 물잔에 일부 들어간 냅킨이 젖어 갔다. 사용인들이 조용히 냅킨과 물잔을 가져와 바꾸었다.

“그건 이 행위가 자네의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겠지.”

루드비히의 말에 파블로의 안색이 점차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숫제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일개 백작의 불안감이 황제의 식사를 방해할 정도로 큰일인가?”

“저, 저는 그저 폐하를 위하는 마음에…….”

“언제부터 불안감을 표출하는 게 황제를 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지?”

루드비히는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파블로를 깠다. 파블로의 안색이 새파래졌다가 새빨개졌다가를 반복했다.

사용인들이 고개를 숙인 채 서로에게 빠르게 눈짓하는 게 보였다. 하루 안에 황궁 언덕에 사는 강아지도 이 소식을 알게 될 거라는 데 압실론의 손목을 걸 수도 있었다.

“짐이 곁에 누굴 두든 그게 자네가 상관할 일이던가? 황비의 장인도 하지 않을 짓을 하는군.”

둘의 대화로 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저 파블로 백작이라는 사람이 몇 년 전에 이안이라는 나와 똑 닮은 남자를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파블로랑 이안 사이에는 닮은 구석이 너무 없으니 아마 저 먼 방계이거나 아니면 어디서 데려온 평민이나 노예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루드비히는 저 녀석을 곁에 두었고.

저 녀석과 식사도 함께하고, 가끔 차도 마시고, 가끔 침대도 데우고 뭐…… 그랬겠지.

그런데 진짜인 내가 나타난 지 하루 만에 식사 자리에서도 쫓겨나게(?) 되었으니 불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다시 비벼 보려 이안을 데리고 온 거겠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루드비히를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가슴 한구석이 부글부글 끓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루드비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뭐야, 왜 쳐다봐.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이게 삐진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 괜한 자괴감이 들었다. 신경질적으로 물잔을 톡톡 두들기다 갈증이 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텅 빈 물컵을 평소보다 세게 내려놓기 직전, 루드비히가 파블로를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나가.”

한 번 돌려 말하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축객령에 파블로 백작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턱이 모욕감에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파블로 백작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

저는 왜 노려보시는 건가요?

제가 나가라고 했나요?

그러나 파블로 백작에게는 그 축객령을 누가 말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마치 정비 자리를 빼앗은 첩을 만난 황제의 장인처럼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이안을 거칠게 잡아 일으켰다.

“……오늘 일은 송구했습니다. 조만간 정식으로 사죄드리러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태 무릎을 꿇고 있던 이안은 다리가 저리는지 절뚝거렸으나, 파블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안을 끌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쿵, 문이 닫히고 식당에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허,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와, 이제는 별…….”

별 떨거지들이 다 나를 무시하네.

5년 전에는 나름대로 황제의 오른팔이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법사로 존경받았었는데, 이게 또 이렇게도 되는구나.

압실론이 잔뜩 열이 받아 심호흡을 하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가라앉은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루드비히였다.

“음식이 식었군.”

그 말에 사용인들이 하나둘 다가와 식기를 가져갔다. 음식을 데우러 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졸지에 텅 빈 식탁에 그냥 둘러앉은 사람이 되었다.

“…….”

“……루드비히.”

루드비히는 내가 말을 걸 줄 몰랐는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길쭉한 눈매가 위아래로 부피를 키웠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말해.”

“사용인들이 말을 잘 안 하던데.”

뒤에서 내 시중을 들었던 사용인들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황제와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들의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말 못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네가 시켰냐?

나는 대답을 종용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루드비히가 사과주로 입 안을 적신 뒤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넌 입을 잘 놀리니까, 굳이 필요한 말이 아니면 대답하지 말라고 명해 놓았다.”

아예 내가 입을 못 털게 원천 봉쇄해 놨다는 말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부러 명랑하게 답했다.

“말을 붙이진 않겠지만, 네 부탁이면 웬만한 건 다 들어줄 거다. 그리고 황궁 안에서 넌 자유니 자유롭게 다니도록 해.”

“이 거지 같은 브레이슬릿 차고 말이지.”

내 험악한 말투에 루드비히가 무심히 답했다.

“그래.”

그사이 사용인들이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대화가 잠시 끊겼다. 내 앞에도 칼집을 내 노릇노릇하게 구운 은어와 더운 채소샐러드가 놓였다.

“…….”

푹푹푹, 말없이 뜨끈한 김이 나는 콜리플라워를 해체하고 있자 압실론이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았다. 루드비히는 우아하게 은어에서 살을 발라내 그것을 씹고 계시는 중이었다.

잘 처먹네.

“나 근데 물어볼 게 있는데.”

자잘하게 부서진 콜리플라워를 두고 나는 미련 없이 포크를 내팽개쳤다. 은제 포크가 자기 그릇에 닿아 거슬리는 소음을 냈다.

“뭐지?”

“불쌍한 애 끌어들여서 밤낮으로 할 거 다 했으면서 왜 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야?”

“……뭐?”

나는 수갑처럼 내 팔목을 단단히 죄고 있는 브레이슬릿을 내밀어 보이며 삐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쟤가 너 밤낮으로 모셨다며. 몇 년 동안 아랫도리 신나게 놀린 주제에 나한테 왜 이 지랄이냐고.”

내 말이 너무 상스러웠던 탓인지, 루드비히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표독스레 루드비히를 노려보았다. 그래 봤자 루드비히에게는 말티즈가 짖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적 없다.”

“거짓말.”

“아니라고 했어.”

“아늬라고 흿의~.”

나는 그의 말을 얄밉게 따라 하며 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루드비히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불뚝 솟아올라 존재감을 드러냈다.

믿을 걸 믿으라고 해라, 진짜.

“귀엽게 봐주는 것도 거기까지다.”

루드비히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미 식사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넌 사람 감금해 놓고 이딴 거 채우는 게 귀엽단 뜻인가 보다? 두 번 귀여워하면 아주 사람 잡겠네.”

나는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브레이슬릿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평소에는 여유롭게 찰랑거렸던 브레이슬릿은 마치 껌처럼 살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짜 다 지긋지긋하다.

“아-!”

나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압실론조차 말을 걸지 못하고 내 눈치를 보았다. 오직 루드비히만이 무슨 생각인지 파악할 수 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딴 덴 절대 안 왔을 텐데.”

“…….”

“나 갈 거야.”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뒤돌아섰다. 흰 대리석 바닥에 의자가 나동그라지며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문을 향해 거칠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거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다.

“허억……!”

압도하는 감각에 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묵직한 공기의 압박에 폐가 짜부라질 것 같았다. 나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할딱였다.

아, 아파…….

<‘루드비히’가 패시브 스킬 ‘패왕의 기운’을 사용했습니다. 시전자의 레벨과 30레벨 이상 차이 나는 모든 생명체가 그에게 압도적인 두려움을 느낍니다.>

<‘패왕의 기운’ 스킬 범위는 10m입니다.>

<체력이 5% 이내로 떨어졌습니다. 아주 약한 자극에도 기절 혹은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세요!>

사망에 주의하라는 시스템 경고음이 귓가에 따갑게 울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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