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7화 (7/149)

#7

먼저 말해 두자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었다. 심지어 난 얘한테 정말 잘해 줬다. 나를 죽인 건 전적으로 압실론의 찌질함 때문이었다.

압실론은 우리가 처음으로 영지전을 해서 얻어 낸 백작가 성 지하실에 살고 있던 흑마법 피험체였다.

어릴 때부터 지하실에 갇혀 학대당하며 살아오다 보니, 우리가 지하실에서 걔를 꺼냈을 때에는 이미 애가 좀 맛이 가 있었다.

말도 더듬고, 혼잣말도 자주 중얼거리고, 대책 없이 솔직해 약간의 무례함까지 겸비하고 있는 데다 모럴도 부족하고…….

그런 압실론을 보고 마티어스는 음침하다면서 싫어했다. 압실론을 동료로 삼자고 하는 나와 의견이 충돌해 몸싸움을 한 적도 있었다.

저 때문에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압실론이 떠나겠다며 울었지만, 압실론이 공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절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누구 좋으라고 놓아준단 말인가.

자신을 구해 준 데다-갇혀 있는 지하실에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갔다- 자기 때문에 마티어스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압실론은 그 이후 나를 거의 신처럼 모셨다.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지라 나는 압실론의 행동들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은 압실론과 내가 떨어졌을 때 일어났다.

임무를 하기 위해 우리는 사흘 정도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내가 지하실에서 그를 구해 준 이후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져 본 적이 없던 압실론은 몹시 불안해했다.

그래서 내게 자신의 힘을 담은 인형을 선물했다.

그것도 무려 진짜 사람으로 만든 인형을.

취미가 바느질이래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수일 줄이야. 흑마법에 능통하다 보니 이런 짓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미친 새끼로군.

기겁한 나는 인형을 거절했고, 압실론은 내가 선물을 거절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날, 나는 압실론에게 잡혀 산 채로 박제되었다.

‘주, 주인님이 사라지실 수도 이, 있다는 사실이 너, 너무 끔찍해요. 이렇게 하, 항상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마비 침을 맞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몸이 서서히 굳어 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압실론이 내게 약물을 주사할 때마다 경고성 진동과 함께 화면에 분홍 꽃이 분분히 휘날렸다. 초반이라 싱크로율을 30%까지만 설정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70%였다면 쇼크로 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의 박제 장면은 당시 몇 없던 애청자들에 의해 스크린숏으로 찍혀 정말로 인터넷에 박제되었다.

그 사진과 함께 ‘박제가 되어 버린 이현을 아시오?’ 하필 이따위 말이 유행해 온 커뮤에 내 이름이 다 퍼졌다. 닉네임을 실명으로 지어 버린 자의 폐해였다.

그래도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덕분에 구독자 수가 크게 늘었다. 나는 응원에 힘입어 압실론에 대해 철저히 분석한 뒤 <소년들>에 다시 도전했다.

공략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압실론을 친구처럼 대하면 됐다. 처음으로 지하실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내게 너무 목매게 해서도 안 됐다.

은근히 그를 챙겨 주고, 가끔 네가 소중하다는 식으로 말해 주면 됐다. 애정에 목말랐던 압실론은 그 정도로도 순식간에 내게 빠져들었다.

고백을 받고도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쉬웠다. 압실론도 자기 감정에 못 이겨 얼떨결에 고백했을 뿐, 나와 정말로 이어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싱크로율을 70%로 맞춰 놓은 지금 인형이 된다면, 정말 기절할 정도로 아프겠지.

“…….”

나는 아픈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잘 먹겠습니다.”

“마, 맛있게 먹어, 이혀언.”

말꼬리를 애교 있게 늘이며 압실론이 눈웃음을 쳤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 팔자야.

다행히 굶겨 죽일 생각은 아닌지 식사는 훌륭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미색의 수프와 소스와 기름을 여러 겹 발라 튀겨 내듯 구운 통닭, 각종 채소를 듬뿍 넣어 만든 신선한 푸성귀샐러드. 혼자 먹기에는 다소 큰 사이즈의 꿀케이크까지.

내 취향을 정확히 저격한 식사였다. 나는 작게 한숨지으며 포크를 들었다.

<잘 구운 양념통닭을 먹었습니다. 체력이 250 오릅니다.>

<어둠의 힘이 깃든 브레이슬릿의 효과로 체력 상승이 무효화됩니다.>

<신선한 푸성귀를 먹었습니다. 마나가 30 오릅니다.>

<어둠의 힘이 깃든 브레이슬릿의 효과로 마나 상승이 무효화됩니다.>

비록 한 입 씹을 때마다 울리는 알림 메시지가 기분을 잡치게 하긴 했지만, 식사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압실론을 보고 있자니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압실론, 저번 삶에선 나를 신처럼 모셨지. 하나라도 더 해 주지 못해 안달이었고.

어쩌면…… 이번 생에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압실론의 무구한 낯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압실론이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왜, 왜 그렇게 봐, 이현…….”

이거다.

나는 내 손목에 딱 맞게 채워진 브레이슬릿을 매만졌다. 이 방에 들어와서 풀려고 별 지랄을 다 해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독약 만든 사람에게 해독제도 있듯, 압실론이 브레이슬릿을 채웠으면 푸는 방법도 알고 있겠지.

한번 꼬셔 볼까?

이것만 풀면 바로 로그아웃인데.

나는 결심한 채 압실론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압실론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너,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우리 사이에 이 정도로 뭘.”

나는 싱긋 웃으며 압실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부드럽게 엉겼다 풀어졌다. 압실론은 나의 그런 행동이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귀 끝을 붉혔다.

애들이 다 얘 같으면 참 좋았을 텐데.

“왜 그래? 이현, 뭐, 뭔가 불편해?”

내 한숨 소리가 들렸는지 압실론이 눈치를 보며 물어 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으응. 브레이슬릿이 좀 불편하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무게도 가볍고 냉난방에 청결 기능까지 갖춰 놔서 생활은 더 펴, 편안할 텐데?”

당황한 압실론의 말이 빨라졌다.

아주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이 자식…….

“아아니, 체력이랑 마력이 제한되다 보니까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뭔가 힘이 없는 느낌이야.”

“마, 많이 힘들어?”

“응. 아까 밧줄에 묶인 곳에 상처가 나 있었나 봐. 그 자리가 브레이슬릿에 계속 쓸려서 따가워.”

“어, 어떡하지…….”

내 말에 압실론이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했다. 순진한 애 벗겨 먹는 느낌이라 죄책감이 좀 들긴 했지만, 예전의 나를 인형으로 만든 벌이라 생각하렴. 나는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압실론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풀어 줄 수 있을까? 네가 직접 치료한 뒤에 다시 채우면 되잖아.”

물론, 그사이에 나는 로그아웃할 거지만.

내 말에 압실론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 미안. 그건 안 돼.”

“아……. 안 되는구나.”

나는 압실론의 멱살을 짤짤 흔들며 당장 풀라고 하고 싶은 심정을 내리눌러야 했다.

그래,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나는 압실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가락을 밑으로 죽 내렸다.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간 손가락들이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압실론의 살갗 위로 소름이 오돌토돌하게 돋아나 있었다.

“압실론.”

“어, 어, 응?”

“왜 그렇게 떨어. 소름도 돋았네? 추워?”

“아, 아니. 그냥 좀…… 부, 부끄러워서.”

“우리 사이에 뭘 부끄러워해.”

“우, 우리가 무, 무슨 사인데?”

압실론의 목소리에는 원망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전장을 함께 구른 사이?”

“아, 아아.”

내 말에 압실론은 웃긴 했지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압실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거란다.

“하지만 앞으로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이.”

“……어?”

“너는 안 그래?”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가 이런 거지.

나는 나의 연기력에 스스로 감탄했다. 게임 방송 하면서 내내 입 털고 다닌 보람이 있구나. 물론 압실론이 순진해서 내 연기에 제일 잘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생각대로 압실론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손을 내저었다.

“아, 아냐! 나도 그래!”

“다행이다. 난 또 나만 그런 건가 싶어서 서운할 뻔했거든.”

“아니야, 나, 나도 그, 그렇게, 새, 생각, 해.”

정말로 당황했는지 압실론의 말이 빨라졌다. 마지막 말은 거의 빽 지르는 듯한 형태가 되었다. 손톱을 틱틱 마찰시키는 걸 보니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압실론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너는 아닐까 싶어서 긴장했었거든.”

“아, 아니야. 내, 내가 어떻게 너한테 감히…….”

어쩔 줄 몰라 하는 압실론을 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이야.

“그래서 말인데…… 압실론, 부탁이 하나 있어.”

“부탁? 뭐, 뭔데?”

“루드비히랑 마티어스가 나 대하는 거 봤지?”

“마, 마티어스는 기절해서 잘 못 봤는데…….”

“걔 나 죽이려고 했어. 이대로 있으면 나 분명히 그 둘한테 살해당할 거야. 그러기 전에 너랑 궁을 빠져나가고 싶어.”

“나, 나랑?”

“그래. 너랑 단둘이.”

내 말을 듣는 압실론의 눈빛이 점차 몽롱해졌다. 핑크빛 망상에 빠져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녀석이 망상을 즐길 시간을 주다 마저 입을 털었다.

“부탁이야. 나 너랑 같이 성 밖에서 살아가고 싶어.”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