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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5화 (5/149)

#5

슬픈 생각…….

슬픈 생각…….

20여 년 전 본 슬픈 드라마까지 생각하며 나는 감정을 다잡았다. 다행히 지금의 상황이 퍽 우울했기에 나는 금방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네가 걱정할 것 같아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해만 깊어질 것 같아서 말할게. 나…… 너한테 고백받은 다음 날 사고 당했어.”

“……재밌네.”

루드비히는 전혀 믿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아예 소용없던 건 아니었는지 목을 쥐었던 손이 느슨해졌다.

“계속해 봐.”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있던 세계는 마법이 없는 대신 의료 기술이 발달했다는 건 기억하지? 나 원래는 죽을 목숨이었는데 의료 기술에 연명해서 몇 년 동안 살아왔고, 올해에야 깨어났어.”

“…….”

“정말이야. 재활 끝나자마자 온 거야. 너희가, 아니, 네가 보고 싶어서.”

말을 끝낸 뒤 나는 또 눈동자를 굴리네 마네 소리를 할 것 같아 아예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루드비히의 시선이 느껴졌다.

제발, 믿어라.

잠시 고민하던 루드비히가 내게 물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됐다.

나는 속으로는 팡파르를 터트리면서도 최대한 슬픈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머리 뒤를 만져 봐.”

“…….”

루드비히가 잠시 침묵하나 싶더니 이내 손을 뻗어 내 뒤통수를 매만졌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선이 느껴지지? 수술 흉터야. 사고 이후 상태가 심각해서 머리를 열어야 했거든.”

“…….”

나는 지금 진실과 거짓말을 교묘히 섞고 있었다.

수술을 한 건 사실이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편두통이 생겼는데, 군대에 가는 바람에 검사받을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가끔 편두통이 생겨 의무실에 가면 대부분의 군대가 그렇듯 어떨 땐 진통제를 주고 어떨 땐 빨간약을 줬다.

그렇게 2년을 버티다 제대한 후 처음으로 뇌 MRI를 찍어 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머리 안에 심어 둔 칩-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심어 둔 거지만, 나는 대부분 게임 용도로 썼다-이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녹아내렸고, 제때 치료하지 않아 머리 안에 고름이 가득 찼다고 했다.

8시간 이하로 게임하라는 게임 회사의 권고를 무시한 자의 말로였다.

밥 먹고 게임만 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가 되는 건 쉽지 않은데 그걸 해내셨다고, 20년 전에 왔으면 꼼짝없이 죽을 날 받아 둔 병이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아파 죽겠는데 그런 말만 하는 의사가 얄미웠지만,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했던 건 나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수술실에 들어갔다.

염증의 정도가 심했기에 머리를 째는 대수술에 들어갔고, 녹은 구형 칩 대신 절대 녹을 일이 없다는 안전한 신형 칩까지 넣고 나왔다.

참 재수도 없지 생각했는데, 이게 알고 보니 신의 안배일 줄이야.

어느 신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 계시는지 알려 주시면 매일 그쪽으로 절하겠습니다.

여전히 의심스러운지 루드비히는 흉터를 만지면서도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오히려 그런 그의 반응에 다급해진 건 나였다.

“정말이야. 손으로 만져서 안 느껴지는 것 같으면 머리 빡빡 밀고 봐도 돼.”

“흐응.”

루드비히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유지했다. 나는 가슴의 손을 얹고 더없이 신실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주신 아이오테아 님을 걸고 맹세할게.”

“진심인가?”

“다, 당연하지!”

“하루에 두 번씩 주신을 팔아먹던 게 너인데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는 뜻이었다.”

“…….”

미친놈아, 과거의 나야…….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

“하지만, 지금 날 죽인다면 넌 아픔을 딛고 네게 달려온 사람을 평생 못 보게 되는 거야. 잘 생각해.”

나는 그의 거친 뺨을 쓸며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이제 나는 널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야. 그러기 위해 세계를 건너왔으니까.”

<구속구에 묶여 있을 때에는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구속구에 묶여 있을 때에는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구속구에 묶여 있을 때에는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하……. 안 되네…….

몇 번 더 로그아웃을 시도해 보았지만 전부 실패였다.

싱크로율 70%일 때 죽는 건 어떤 느낌일까. 더럽게 아프겠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이 고여 흐릿한 시야에 루드비히가 미약하게나마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본 나는 어차피 나오기 시작한 눈물에 내 감정을 섞어 열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흐윽, 난 그냥 네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나만?”

“아, 물론 다른 애들도 보고 싶었……. 아니, 아니. 너만 보고 싶었지…….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건, 너니까…….”

나는 다급히 말을 수정했다. 루드비히는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조금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아니면 내가 왜 사선을 넘어서 다시 네게 왔겠어……?”

생각에 잠긴 듯 루드비히가 입술을 혀로 훑었다.

됐다, 거의 다 넘어왔다.

잘하면 오늘 밧줄도 풀고 로그아웃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속으로 웃고 있는데, 밖에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두꺼운 황제궁 문을 타 넘고 나는 소음이라니, 보통 목청이 아닌 모양이었다.

“장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거 놔. 안 놔?”

성질 더러운 목소리가 귀를 긁었다.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한 것도 같았다.

더 들을 수 있나 싶어 귀를 기울이는데, 투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침실 문이 박살 났다. 깜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루드비히를 와락 끌어안았다.

“뭐, 뭐야?”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붉은 머리카락, 번개가 그어진 듯 위로 치켜 올라간 두 갈래의 눈썹, 근육을 한계까지 단련시킨 단단한 신체.

나의 오랜 원수이자 절친이었던 마티어스가 그곳에 서 있었다.

“마, 마티어스?”

나는 너무 놀라 엉겁결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크롬하트 장군이라고 했던 게…… 쟤야? 내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평민이었는데, 언제 성까지 받은 거람.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마티어스의 눈동자에 여름의 햇살 같은 빛이 들어섰다.

“이현?”

“마티어스! 보고 싶었어!”

나를 구해 주러 왔구나!

마티어스를 향해 간절히 손을 뻗는데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폐하가 계신 곳에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침실 문을 부수다니, 아무리 장군이라도 황족 모욕죄로 재판까지 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 안 돼!”

나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마티어스는 다른 사람보다 큰 체격과 압도적인 무력으로 기사들을 날려 버렸다.

“아-!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

그들의 모습은 마치 말벌 한 마리를 상대하는 꿀벌들 같았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벌, 아니 마티어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이거 안 놔?!”

“저희 좀 봐주십시오. 저희 목이 날아간단 말입니다!”

“나도 못 이길 놈들 머리가 왜 달려 있어야 해!”

“장군님 이길 놈들이 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정말 너무하십니다!”

“나 저 새끼 봐야 한다고-!”

마티어스의 목소리가 침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여전히 입은 좀 험해도 마음씨가 비단결 같구나, 마티어스.

감동받은 나는 촉촉이 젖은 눈가로 마티어스를 바라보았다.

잘한다, 마티어스! 힘내라, 마티어스!

“마티어스, 파이팅!”

제게 달려드는 기사 하나를 엎친 뒤 마티어스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응원질이야. 그쪽으로 가는 순간 넌 뒤졌어, 개새끼야!”

“…….”

나는 꿀벌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기사님들! 얼른 끌고 가세요! 걔 데리고 들어오면 그것도 반역이에요!”

“아주 변덕이 수프 끓듯 하는구나!”

내 행동이 황당하다는 듯 마티어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새 마티어스의 옷을 붙잡은 기사 둘이 종잇장처럼 팔랑이며 날아갔다.

“아악! 방금 한 걸음 정도 들어온 것 같은데! 반역인데!”

내 응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자 마티어스를 붙잡은 기사들이 눈에 띄게 적어지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은 없어 보였지만 다들 엎쳐지고 날아가며 기절한 모양이었다. 달라붙은 기사들이 적어지자 마티어스는 굳이 그들을 해치우지 않고 그들이 붙은 채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장군님, 제발!”

“약해 빠진 것들.”

기사들의 애처로운 호소에도 마티어스는 내 주위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 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마티어스 주위로 광원까지 보이는 게…… 레벨이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하는 마음에 광기에 찬 마티어스를 콕 찍었다. 시간 차를 두고 반투명한 상태 창이 드러났다.

[이름: 마티어스 크롬하트 (Lv. 289)

나이: 24

직업: 그리체 제국 장군

호감도: ???

체력: 86%

마력: 90%

.

.

.

상태: 스킬 ‘뺨 때리기’(Lv. 56)를 준비 중입니다.

마음 엿보기: ???]

“…….”

마음 엿보기 옆의 ???가 이미 보이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

아니, 뭔데 얘는 루드비히보다 레벨이 높아?

나는 5년 전, 80레벨 대의 마티어스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싸우다 뺨을 맞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머리 전체가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고, 그다음 뺨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멍은 사흘을 갔다. 물론 나도 그 후에 마티어스의 고간을 쳐 무승부가 되긴 했다.

80레벨 때도 그렇게 아팠는데, 289레벨의 마티어스가 때리는 뺨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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