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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는데 로그아웃이 안 된다니요-2화 (2/149)

#2

나는 즉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당장 멈춰!”

큰 소리 내는 일이 드물었던 루드비히가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나를 불렀다.

아니,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어떻게 멈추길 바라니……. 양심도 없지, 진짜.

나는 혹시나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희번덕거리는 루드비히의 눈깔을 본 뒤 얌전히 내 신발에 주문을 걸었다.

“시, 신속의 장화!”

신발 주위에 반짝이는 빛무리가 지더니, 이내 신발 양옆으로 연두색 날개가 나타났다. 더 상위 마법을 걸면 좋겠지만, 사력을 다해 뛰는 중이라 주문이 길어지면 혀를 씹을 것만 같았다.

속도가 붙은 나는 벽을 짚고 회전하며 좁은 골목으로 몸을 꺾었다. 루드비히가 말을 탄 채 뒤따라 들어오자 골목 안에 자리를 잡고 있던 죄 없는 노점상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피해-!”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자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과일이며 비명 지르는 뿌리 약초들이 말발굽에 채여 공중에 날리고 있었다. 말을 난폭하게 몰며 좁은 골목을 달리는 모습이 폭군 그 자체였다.

세상에, 명색이 황제라는 놈이 저렇게 양아치 같은 짓을 하다니.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쟤가 왜 저렇게 변했담?

루드비히는 남을 지배하는 자의 핏줄로 태어난 만큼, 남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자연스러웠다. 나 역시 그 옆에서 따까리 1을 담당했었고.

버림받은 황태자였을 때도 그랬는데, 황제가 된 지금은 어떻겠는가. 지금같이 좀 열 받는 상황이 있다 해도 황좌에 앉아 턱이나 좀 까딱이며 ‘잡아 와.’라고 말하는 게 어울렸다.

근데 대체 왜 이렇게 미친놈처럼 사력을 다해 쫓아오냐고.

“아, 진짜! 그만 좀 따라와!”

고작 게임 캐릭터인데 왜 그렇게 쪼냐고 하면, 일단 가상 현실이다 보니 스크린으로 보는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 무섭기도 했고…… 세밀한 조작을 위해 싱크로율을 70%까지 높여 놓은 상태라 칼에 찔리면 쇼크로 기절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저놈의 상태로는…… 칼 한 방으로 곱게 보내 줄 것 같진 않았다.

갑자기 가상 현실 게임 기계 사용 중 심장 마비로 사망한 사람의 기사들이 속속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나는 얌전히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허억, 허억…….”

한참을 뛰다 갈림길에 선 나는 빠르게 좌우를 돌아보았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루드비히 이 새낀 왜 이렇게 수도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거야…….”

멀어졌던 말발굽 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왼쪽으로 꺾어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뛰어 벌써 등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너무 현실적으로 만든 세계는 이런 게 안 좋았다.

그런데 어쩐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숨이 차는 것 같은데……. 그냥 기분 탓인가. 예전에도 비슷했나……?

<오랜 시간 접속하지 않아 체력이 떨어져 있습니다. 물약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세요.>

<현재 체력 23%>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 디테일에 미친 게임 같으니…….

심장이 심상치 않게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결국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골목에 들어선 나는 거칠게 호흡하며 턱 밑에 흐르는 침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아오, 막혔네.”

뭔가 골목길이 묘하게 어둡다 싶더니 막다른 길이었다. 나는 발목을 문질러 ‘신속의 장화’를 취소시키고 ‘떠오르기’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동실동실 떠올랐다. 나는 점차 올라가는 시야를 느끼며 나직이 한숨지었다.

적당한 곳 찾아서 그냥 로그아웃해야겠다.

애들 얼굴 좀 보고 갈까 싶었는데, 너무 죽일 듯이 쫓아오니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마저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역시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 둘 때 가장 아름다운…….

“이현!”

불시에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뒤를 돌아보니 루드비히가 말에서 떨어지듯 뛰어내리고 있었다.

히힝! 주인의 갑작스러운 하차에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 긴 울음을 터트렸다. 흙바닥을 구르는 루드비히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엉겁결에 외쳤다.

“야, 조심해!”

루드비히는 제 몸이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고 내게 다가왔다. 밧줄은 이미 저 멀리에 내팽개친 채였다. 마구간에서도, 전쟁터에서도 항시 고고하게 살던 놈이 이러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너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

내가 더 상승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루드비히가 얼굴을 슬프게 일그러트린 채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제발 떠나지 마.”

그렇게 말하는 루드비히는 분명, 울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의 거친 뺨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보석을 섬세하게 세공한 귀한 옷감에 흙과 먼지가 묻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내 앞에 무릎 꿇은 채 눈물 흘리는 루드비히의 모습은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

내가 루드비히의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상으로는 없었다. 힘없는 황태자 시절 전쟁터에서 상관에게 강간당할 뻔한 적에도, 오른팔이었던 부하가 죽었을 때도 루드비히는 울지 않았다.

심지어 그 부하의 죽음에 훌쩍이는 나를 보고 “부관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도대체 왜 우는 거지? 이해가 안 되는군.”이라고 말해 정이 좀 떨어졌던 때도 있었다.

아니, 사이가 안 좋아도 한 팀으로 동고동락한 사이였는데 당연히 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루드비히에겐 자비가 없었다. “네가 우는 모습 보기 싫으니 그치도록 해.”라는 말과 동시에 진짜로 호감도가 내려가는 바람에 자본주의의 노예였던 나는 당장 울음을 그쳐야 했다.

그랬던 놈이 나를 위해 울고 있다고? 왜? 내가 떠나는 게 무서워서?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한번 루드비히의 마음을 엿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마음 엿보기’가 틀렸다는 것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냥 친구들끼리도 죽여 버린다고 자주 하잖아. 그런 게 아닐까.

나는 무심코 울고 있는 루드비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사용자의 의지로 ‘떠오르기’ 스킬이 취소됩니다.>

“엥?”

그와 동시에 나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 그냥 손만 뻗은 거라고요. 취소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단 말이에요!

나의 추락은 나에게도, 루드비히에게도, 루드비히를 뒤따라온 황실 기사단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나는 푸엑, 소리와 함께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엎어졌다.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아무도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가장 먼저 소리를 낸 건 나였다.

“뭐, 뭐야. 피 나잖아!”

<상태 이상 ‘타박상’ ‘출혈’, ‘치유제’를 먹기 전까지 사용자의 체력이 초당 0.05%씩 떨어집니다. 자연 치유까지 9분 58초…….>

<사용자의 체력이 20% 이하로 떨어져 스킬 성공 확률이 40% 이하로 떨어집니다.>

이 개복치 같은 몸뚱어리…….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상처를 살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그런지 무릎과 팔꿈치, 손바닥이 전부 까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피가 나는 거지?

상처가 났으니 피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당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방송을 하기 때문에 19세 딱지가 붙는 걸 막기 위해 청소년 모드를 적용해 놓았었다. 덕분에 피가 나거나 목이 떨어지는 잔인한 장면은 피 대신 분홍색 꽃이 피어나거나 모자이크 처리되는 등의 모션으로 전환되어 적용되었다.

뭐지? 성인 모드로 방송한 적 한 번도 없는데?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분명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였다. 급기야 모래가 잔뜩 묻은 상처 부분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파…….”

왜,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이렇게 아프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건 꼭…… 현실 같잖아…….

혼란스러워하는 내 위로 검은 그림자가 훅 드리웠다. 어느새 루드비히가 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허억.”

당황한 나는 앉은 채로 마구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막다른 길의 벽에 뒤통수를 부딪치고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

“다, 다가오지 마!”

내가 사색이 된 채 어쩔 줄 몰라 하자 루드비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해 줄 테니 상처만 보게 해 줘.”

너 같으면 믿겠냐.

그렇지만 스킬 성공 확률이 너무 낮아 다른 스킬을 함부로 시도할 수도 없었다. 스킬을 시도하면 머리카락이 떠오르고 손 주위로 반짝이는 빛무리가 진다. 지금 스킬을 사용하는 건 오히려 녀석을 더 도발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근접전에서 마법사랑 전사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젠장, 직업 선택할 때 전사를 택했어야 했는데.

나는 눈치를 보며 루드비히의 상태를 살폈다. 고개를 늘어트리고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루드비히는 약간 풀이 죽은 것 같아 보였다.

그 와중에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상처 난 부위뿐만 아니라 넘어지며 부딪혔던 팔이며 허벅지 같은 부분도 멍이 든 것처럼 욱신거렸다. 체력도 한계까지 떨어졌는지 점점 숨이 차고 있었다.

2m가 넘는 곳에서 낙법 없이 떨어졌으니 사실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인데 심지어 자가 치유는 불가능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밧줄이 루드비히와 열 걸음도 넘게 떨어진 곳에 있다는 거였다. 나는 루드비히를 한껏 경계하며 물었다.

“진짜 치료만 해 줄 거야?”

“내가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나?”

수두룩하지, 이 새끼야…….

눈도 깜짝 안 하고 거짓말하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나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 죽일 거면 뭐 하러 치료해 준다고 입을 털겠어.

나는 고민 끝에 루드비히를 믿어 보기로 했다. 실상 몸 상태가 안 좋다 보니 믿을 수밖에 없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나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상처 난 손바닥을 그에게 내밀었다. 왠지 모르게 루드비히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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