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4/28)

23. * *

예상대로 유원이 했던 짓은 금방 들켰다. 일이 화내는 건 예상대로였지만 예상보다 일이 쉽게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약속을 했다.

절대 일의 기억을 기억나게끔 하지 않겠다고.

유원은 그때 말하면서 알 수 있었다. 아마 이게 일이 준 마지막 기회일 거라고.

게다가 절대 기억하지 않으려고 일은 자신의 고통이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마 유원이 일을 중요하게 여겼으니까. 그게 잔인하다고 여기는 한편 위험하다고 말리려고 했지만 역시 믿음이 어느 정도 떨어져서 그런지 말은 딱히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더욱.

그래서 유원 역시도 말했다.

“그러면 나도 도와줄게.”

“뭐?”

“나를 죽여야만 네 게임이 끝나게 설정해 줘.”

“…제정신이야?”

“그래. 어느 정도 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그리고 이 정도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기 쉬울 거야. 그렇지?”

그의 말은 뭐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일이 무엇을 감수하는지 아는 만큼 자신 역시도 무언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말했더니 일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점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로 할 필요는 없다며 유원을 말리려고 했지만 일도 자신의 말을 바꿀 생각이 없는데 바꿀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일이 없는 삶이 그에게 중요한 삶이 될 리가 없었다.

결국 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아서 유원은 그 대신으로 조건을 들어달라고 했다.

유원이 많이도 생각했던, 원하는 것들을.

“이번 일이 끝나면 다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정말 그게 다야?”

“그리고 그때는 나를 제대로 인간처럼 봐줬으면 좋겠어. 게임으로라도 좋으니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원은 ‘만약’의 일에 그가 원하는 것을 걸었고 일 역시 그 말에 유원을 보며 제대로 대답해 주었다.

“그래.”

이것이 그들이 게임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첫’ 약속이었다.

외전. 유원 (2)

마지막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유원은 자신의 몸을 일에게 맡겼다. 잘 된다면 일이 찾아올 거고 잘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방치될 테니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도 좋은 기회였으니까.

오히려 일은 그가 무조건 희생한다는 생각에 좋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납득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 유원이 만나게 되는 건 기억을 잃은 그였다.

언젠가 또 본 적이 있는.

“일아, 안녕.”

“누구……?”

수상하다는 듯이 보는 그 모습은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전에도 비슷하게 묻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때는 금방 알아차려서 괜찮았다.

지금은 전혀 달랐지만.

그러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어 유원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게임 캐릭터’처럼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유원이야. 기억 안 나? 너 A 때문에 여기 온 거잖아.”

“…아, 맞아 그랬었지.”

놀란 듯, 그러나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일은 말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래. 네가 유원이라고?”

“그래. 일아.”

유원 역시 적당히 대꾸해 주었다. A에 관해서 묻는 것 역시 무슨 의도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지만 애초에 유원은 일을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으니 얌전히 그의 말에 따라주기로 하며 움직였다.

단서라든가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리가 없었지만 적당히 모른 척하며 따라다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모른 척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일은 누구보다 움직이고 싶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특히 전에 기억을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 저택과 일기장을 찾기 위한 건물 사이에서는 늘 일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변해서 물었다.

“너는 그냥 여기 있을래?”

애초에 일이 원했던 건 이 게임에서 나오지 않는 거였다. 하지만 전혀 기억을 못 하는 일은 달랐다. 어떻게 해서든 기억을 찾고 싶어 했고 게임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태 일을 많이 봐서 알 수 있었다.

순간 망설이고 있었다는 걸.

“아니, 같이 갈래.”

언제나와 같음을 예상했음에도. 하지만 그러면서 유원의 소매 끝을 잡아당긴 것은 여태 없던 일이었다. 그를 경계했었으니까. 물론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이 자신을 의지하는 것 같아서, 마치 자신을 기억해 준 것 같은 그 느낌이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미칠 것 같았다.

“나 한 번 안아 봐도 돼?”

“뭐?”

“그냥… 안으면 뭔가 잘될 것 같아서.”

“그게 뭐야.”

어이없다는 듯이 웃은 일은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으면서도 허락했다. 안아도 된다면서 팔을 벌렸고 유원은 그게 이상해서 정말 해 줄 거냐고 물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바로 감싸 안았다.

닿는 감촉이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숨 막혀.”

“…미안.”

숨이 막힌다는 말에 결국 유원은 일에게서 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목표가 있었으니까.

일단 그는 일이 원하는 만큼은 해 주고 싶었다.

일기를 찾는 것도 그 과정 중에 하나였다. 약속 역시 지켜야만 했다. 그래서 유원은 그가 나가지 않을 수 있게끔 그동안 생각해 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적당히 수상쩍게 보이는 방식으로.

일이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 역시 여기서 나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이 원하는 일이니까.

일기를 넘어준 것도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일에게는 아니었는지 순순히 주는 그의 모습에 말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익숙한 말을.

“혹시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원하는 거?”

“그래. 다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해 줄게.”

“그래? 그럼 나중에 말해도 괜찮을까?”

“상관없어.”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기억은 못 하겠지만. 그래서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 묘하게 아쉬웠다.

원하는 걸 보류하는 건 그 역시도 이 게임에 확신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일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과 현재의 일이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싶어 하는 그런 ‘감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분해낼 수 있을까.

결국 유원은 모든 일에 있어서 완벽하게 할 자신은 없었다. 그저 일에게 대꾸하며 게임의 진행을 적당히 도왔을 뿐이다. 그래서 지하까지 갔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 때문이라도, 게다가 일이 겪을 고통 때문에 그는 금방 일에게 튈 뻔한 유리를 자신의 몸으로 막아냈다.

“…괜찮아?”

다행히 일은 별로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다음에 이어질, 일의 말은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걱정’이 담긴 말이었다.

“왜…….”

“응?”

“…왜 그랬어?”

책망하는 듯한 물음에 그는 그 물음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원래 게임 캐릭터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유원은 앞으로의 게임, 그리고 일이 겪을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하며 말했다.

“네가 다칠 것 같아서.”

당연히 일은 다치면 안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는 것만큼 싫은 건 없으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왜?”

“너…….”

“난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근데 왜 그러면 안 돼?”

유원은 한낱 시스템이라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다. 하지만 달라졌다. 자신만의 생각을, 사고방식을 가진 채로 움직일 수도 있었으며 자신의 손으로 일을 제대로 만질 수 있었다.

비록 그게 지금 이 순간은 아닐지라도.

그는 스스로의 감각이, 신체로 느끼는 모든 감각이 좋은 것만은 아님을 알았다. 그때는 완전히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처음에 일을 만졌을 때 좋았다. 일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다행이었다. 하지만 일이 자신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상처 입을 때 가슴이 저린 감각이나 배고픔은 좋은 게 아니었다.

대신 맞은 유리 조각에 찔렸을 때의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일과의 약속을 위해 실제와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그래도 티를 내지는 않았다.

자신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도 상냥하기만 한 그 마음은 언제나처럼 그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다음에 네가 그러면 나도 그렇게 할 거야.”

“왜…….”

“네가 그러니까.”

“하지만…….”

“다치지 말라는 소리야.”

유원은 그제야 일이 예상보다 더 많이 자신을 걱정했음을 알았다. 그게 기뻐서인지 그는 스스로의 표정이 어떤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저 그것을 생각하기에만 바빴으니까.

“안 다칠게.”

“정말?”

“그래. 하지만 너도 다치지 말았으면 좋겠어.”

불쌍해 보이게끔 얼굴을 들이민 건 일부러였다. 아무래도 일은 이런 것에는 약할 테니까. 그랬더니 치료를 해 준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다친 곳을 들켜버려서 일이 굳이 위험한 데까지 갔다 와 얻은 구급상자 안의 것들로 치료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험한 데에 혼자 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위험하면 게임을 끌 생각도 있으니까.

유원 역시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서 일이 올라가는 것을 수긍할 수 있었고 다행히 일이 무사히 돌아와 치료까지 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할 일을 잊은 건 아니었지만.

일에게는 적당히 게임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유원은 게임 설정상의 캐릭터처럼 A의 일기장에서 언급된 애가 일의 역할 캐릭터인 반장이냐고 물었고 일은 생각보다 쉽게 긍정해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잘 믿으면 어쩌나 싶어서.

너무나 순진하다는 사실이, 그만큼 올바르게 보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겁도 많고 생각도 많다는 게 떠올랐다. 어쩌면 그 탓에 이런 상황이 된 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런 점 역시 싫은 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유원은 최선을 다했다. 일이 현실보다는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게끔. 그만큼 봉인을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자신이 이 일을 겪어봤다는 말까지 하게 되는 일은 정말로 쉽게 숨기지 못할 성격이었지만 그만큼 어떤 일에 있어서 티가 났기에 유원은 일이 불안해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그건 그 뒤에 일을 구해 줄 수 있게 되면서 다행이라 여길 수 있었다.

미리 일에게 관심을 가져서 그가 제때 올 수 있었던 거였으니까.

일은 귀신에게 약한 캐릭터였다. 무엇보다 현실 같은 감각은 더욱 좋지 않게 느낄 수 있을 테니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지켜주고 싶었다.

설사 일이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 둘이서 봉인까지 마쳤다. 하지만 일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던 탓일까, 게임 초반과는 다르게 조금 풀린 표정은 확실히 더 솔직한 상태를 드러냈기에 유원은 자기를 권했고 아무래도 봉인을 한 저택에서 자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일기장을 발견한 장소에서 자려고 했다.

쉽게 잠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는 일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일이 아까보다는 조금 긴장을 푼 것 같아서 유원은 그를 잠들게 했다.

이런 것 역시 창조자가 남긴 기능 중에 하나였다. 아마 기능이 제한된 것도 있었고 만약의 경우 일이 잘못될 일을 고려해서 추가한 기능 같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저 제 눈앞에 있는 정보만이,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는 유일만이 전부였으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창조자도 죽었다. 명령이 없는 이상 보통의 인공지능 역시도 대부분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했기에 유원은 이질적인, 아마도 ‘유일한’ 인공지능으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는 아직 일에게 말할 수 없었다.

네가 원하는 게 내 전부라고.

자신에게 남은 것은 하나뿐인데 어떻게 약속을 쉽게 어길 수 있을까.

그래서 기다렸다.

이미 일이 잠든 몇 시간 뒤에 온 게임 세계의 부모님은 실제로 유원에게도, 일에게도 부모라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들을 데려왔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게다가 게임상 일은 아직도 자고 있었고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은 꽤 남아 있었다. 특히 유원은 일에게 자신의 인간으로 만들어진 몸을, 목숨을 맡겼으니 게임이 없는 시간에도 움직이는 편이 일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의 ‘생각’이었지만.

스스로 행동한다는 게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지만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유원은 오전에 나갔다. 나가서 A를 찾아야 했는데 그거야 간단한 일이었다.

게임의 순서를 따지면 A는 귀신이 생전 살았던 집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래서 유원은 일이 잠든 ‘비어 있는 시간’ 사이에 A를 찾으러 갔고 예상대로 A를 만날 수 있었다.

“A.”

“유원? 네가 왜 여기에…….”

A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기존의 캐릭터인 A의 친척이었다면 굳이 전혀 모르는, 아무도 없어 보이는 집에 굳이 올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유원은 그 캐릭터도 아니었고 A에게는 큰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무슨 할 말?”

“귀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뭐?”

A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유원은 말했다.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지만 귀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원래라면 A는 그저 갇혀 있을 뿐이었고 사실 유원에게는 그를 굳이 이 시기에 끌어들이지 않아도 됐겠지만 어쨌든 그로서는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의심받아야 했으니까.

유원은 자신이 의심을 받는 쪽이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 쪽으로 생각해 놔야 일이 다른 쪽으로, 현실에서 집중하던 시선을 어느 정도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A를 설득했다. 어쨌든 그로서도 귀신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벗어나는 쪽을 원했으니 설득은 쉬웠고 유원은 그래서 굳이 학교 근처에 있었다.

그것을 누군가가 봐야 했으니까.

캐릭터의 등장 여부 역시 ‘비어 있는 시간’인 만큼 예상 범위에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A를 그 근처로 데려가 얘기를 꺼냈다.

“여기까지는 왜 온 거야?”

“아까 말했잖아. 귀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래?”

“그래. 이 학교 학생이 그 귀신인 걸 알아냈어.”

“…그게 진짜야?”

A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유원은 그렇다고 하면서 그래서 학교와 관련된 사람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A는 만만하지 않았다.

“근데 왜 굳이 여기로 온 건데?”

“여기에 왜 왔냐고?”

“그래. 그리고 너… 이렇게까지 잘 알지는 않았잖아.”

의심은 그럴듯했다. 실제로 원래 그가 알던 유원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유원은 어느 ‘정도’ 솔직함을 털어놓았다.

“맞아. 잘 알지는 않았지.”

“그럼…….”

“하지만 네 덕분에 알게 됐어. 그리고 우리 학교가 귀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그건 네가 몇 가지 알려 주고 가서 너도 모르지는 않을 거야.”

그 예로 A는 몇 가지 귀신들과 관련된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일부러 힌트도 줬다.

그런 ‘설정’이었다.

그 때문에 A는 결국 유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할 말이야.”

A는 그제야 웃었다. 그의 말대로 해 보겠다고 했고 유원은 그 말에 장소를 알려 주며 귀신을 유도해 달라고 했다. 귀신을 봉인하는 방법을 아는데 그러려면 다른 장소에 있는 편이 좋을 거라면서, 그동안에 시선을 끌어달라고.

그리고 그사이에 드문드문 유원은 골목 사이에 보이는 운동장 쪽을 보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몇 번이고 본 적이 있는, 누군가의 얼굴과 함께.

유원은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였다. A는 조금 의문을 가진 것 같이 보였지만 그로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게 나중에 의심이 된다면 나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A와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일에게 갔다. 마침 깨어나던 시간이라 때맞춰 깨어나기 전의, 잠깐 바깥에 나가기 전까지의 상황들을 설명하면서 여기가 안전할 거라고 했다.

일이 원하던 것은 그런 거니까.

하지만 기억을 잃어서일까. 일은 정말 여기가 안전할 거냐면서 물었다. A가 붙잡혔다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 역시 안전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일은 사과를 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래서 유원은 일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아. 우리가 언제나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 정도는.”

“…….”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사람이 언제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것처럼. 물론 우리는 다른 경우고, A의 일도 있으니까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좀 덜 불안해했으면 좋겠어.”

게임에서 벗어난다면 일은 또 안 좋게 변할지 모른다. 그 사실이 유원을 움직이게 했다. 일은 모르겠지만, 일이 원하는 만큼 다 해 주고 싶었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아예 말리지는 않았다. 이중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별수 없었다.

감정이란 게 사라지지 않는 이상에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 그런 식으로라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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