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3/28)

22. * *

일이 깨어난 건 꽤 시간이 지난 후의, 이미 병은 그 누구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병에 걸리고 죽는 사람만 늘어나서 생존자는 거의 없는, 일의 가족들 역시 그나마 게임 데이터와 시체만 남은 상태였다.

“일어났어?”

“누구…….”

유원은 그 말에 그제야 일이 자신을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몸 자체를 움직이고 만들어지는 과정 때문에 제법 시간이 걸려서 그런 걸까, 그동안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그는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유원이야.”

“…뭐?”

“유원이야. 네가 아는 유원.”

“하지만 유원은…….”

생략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일이 알던 모습과 현재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유원은 일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몸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하기로 했다.

“일아. 네 아버지가 내 몸을 만들어 주셨어. 너를 지켜주라고.”

가족들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유원은 말했다. 창조주가, 그다음에는 그 아들인 과학자가 일의 ‘친구’로 곁에 있어 달라면서 만들었지만 유원 역시 그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어쨌든 그 역시 일이 살아 있는 게 좋았으니까.

하지만 일의 생각은 달랐다.

“…나를 지킬 필요는 없어.”

“하지만…….”

“필요 없다고!”

일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 몸을 움직였다. 안 그래도 안 좋아 보이는데 움직이려고 하니 유원은 말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서 유원은 일이 그에게 적당히 동정의 여지를 가질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래도 식사나 잠은 잘 챙기라면서 몸을 보살필 것을 권했다.

어쩌면 거절할 것도 예상하긴 했지만.

그렇지만 일은 허락했고 유원은 그래서, 아니 일이 허락하지 않았어도 일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기에 처음으로 하는 둘만의 식사를 마치고 일의 가족들을 옮기는 것을 도왔다.

일이 게임 하는 것 역시도.

하지만 일은 미쳐갔다. 전과는 달랐다. 유원은 일이 전처럼 이걸 몇 번 하다 보면 지쳐서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알고 있어서 그에게 털어놓았어도 그만두자는 유원의 말에 하겠다는 말만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일은 지쳤다. 일이 게임을 그만두지는 않았어도 밖에 있는 시간이 늘어서 유원은 어떤 면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걱정이 됐다.

여러모로 실험을 하는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유원은 알 수 있었다. 일이 숨기지 않은 것도 있었고 그만큼 일에 대해서 관심을 자주 가졌으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성공했다.

일의 머리는 좋은 편이었으니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 뒤에 유원에게 하는 말은 유원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부탁이 있어.”

“무슨 일인데?”

“일단 이 종이를 봐줘.”

받은 종이는 이미 익숙한 많이 낡아 보이는 종이, 그렇게 오래된 종이는 아니었지만 사용을 많이 하면서 지저분해 보이는 종이에는 일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그 종이 안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서 쉽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내 뇌를 건드릴 수 있는 칩을 심게 해 줘.”

“…미쳤어?”

아무리 많이 좋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해도 이 정도 선택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는데 일은 오히려 그동안의 유원의 태도가 어떤 오해를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너야말로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잖아. 난 그래서 네가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건… 네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게임을 별로 안 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다른 것에 집중한 만큼 나쁜 일들을 떠올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해 줘.”

“이건 너한테 좋지 않아.”

“아니, 나한테 좋아. 적어도 내가 원래대로…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면 너한테도 편하겠지.”

“…편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그래.”

편하지 않았다. 잘못될 수도 있었다. 특히 일의 건강 상태는 전보다 눈에 띌 정도로 안 좋았으니까. 물론 깨어날 당시보다 살이 조금 붙긴 했어도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네가 편하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그래도 나는 내가 생각한 최선의 일을 할 거야.”

하지만 여전히 일은 고집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원이 ‘부탁’을 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감정을 없앨 수 없었다. 바이러스를 끌어당기거나 스스로 죽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일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말했다.

시간을 달라고.

유원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있겠지만 일도 좀 더 고민했으면 했었다. 그래서 서로 시간을 가지기로 했지만 결국 변하는 건 없었다. 하지만 일은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 그런지 유원 역시 더 말하기에도 어려웠다.

그 상태로 결국 시간이 됐을 때, 결국 유원은 일의 목에 칩을 끼워 넣어야 했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해야 했고 그 때문에 그는 칩을 조금 다르게 조절했다. 어쨌든 목에 칩이 들어가는 것은 성공해서 일의 기분을 좋게 했다.

그와는 다르게.

좋았지만 좋지 않았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제 이 장소에서 그와 유일 외의 인간은 없었다. 일 몰래 칩을 좀 다르게 해둔 것 역시 때때로 생각이 났다. 일이 그걸 알면 분명 자신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일이 조금이라도 괜찮았으면 했으니까.

그래서 유원은 일과 같이 잔 날의 밤이 너무나 꿈 같아서 일을 너무 봤는지 일이 물어 버렸다.

“왜 그렇게 봐?”

“그냥, 좋아서.”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의 손을 붙잡았다. 일이 거절하지 않았다.

좋았다.

어느새 일을 보면 일이 잠들어 있어서 유원은 그것을 보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해.”

유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신은 감정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멈출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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