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2/28)

21. * *

며칠이 지났다. 일은 유원을 별로 찾지 않았다. 그것도 점점 횟수가 줄면서 유원은 불안함을 느꼈다. 게다가 일이 화면으로 몸을 제대로 보여 주지 않고 있었는데 상태가 안 좋다는 정도는 목소리나 얼굴의 표정, 말투 같은 것에서 이미 드러났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별다를 게 없었다. 이미 제한당한 기능 안에서,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일에게 조금이라도 잘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화면 안에서의 표정이라지만 일부러 많이 웃었다. 원래도 웃었지만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도록.

하지만 그게 일이 죽으면 무슨 소용일까.

일은 유원에게 모습을 보여 주는 걸 꺼려했다. 원래는 전혀 그렇지 않아 했는데, 그게 유원에게 무슨 감정을 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일이 보고 싶다는 것.

유원은 생각보다 일을 더 많이 좋아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일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원은 천천히 때를 기다렸다.

창조자가 비상사태가 되면 제한된 상태 역시 풀릴 거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매번, 매분, 매초 시도를 했으며 성공했다.

비록 제한당한 상태라 옮겨왔지만 유원을 만든 근원인 본체와의 연결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한 기계는 다른 곳에도 연결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이건 수백 개의 컴퓨터를 뒤지고 뒤져야 하는 일이었지만 유원에게 남은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었으니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바이러스에 전염된다고 해도.

그만큼 필요한 일을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유원은 겨우 일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일이 부르지 않았어도 충분히, 아무도 모르게 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일은 이미 좋지 않았다.

―일아!

화가 났다. 일의 몸 상태는 이미 엉망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사람도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그는 재빨리 창조자에게 연락했다.

―일이가 위험해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사람도 있었다. 일의 가족, 어쨌건 누가 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일이 많이 다쳤어요. 얼른 구해 주세요!

급하게 외쳤다. 일부러 소리를 키워서 주변 사람들이 쉽게 들릴 수 있게 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덕분에 창조자는 알겠다며 유원을 보더니 무언가를 눈치챈 표정으로 컴퓨터를 요란하게 움직이다가 이윽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너는 그동안 잠드는 게 좋겠구나.”

―그건……!

“일이는 우리가 구해낼 테니 걱정 마렴.”

유원은 결국 잠들었다. 깨어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에는 다시 창조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구나.”

―그게 할 말인가요?

그가 노려보자 창조자는 허허 웃음을 내뱉으며 말을 꺼냈다.

“일단 너를 잠들게 한 이유는 네 상태가 이상했기 때문이란다.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있었거든. 그것까지 설명하기에는 내 손자 일이 좀 급해서 미처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알아요.

유원 역시 그 정도를 생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에는 너무 ‘감정적인’ 상태였다. 아직 제대로 된 상황에 대해 듣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곧 창조자에게서 잠든 후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그래서 널 치료하기 위해 네가 잠들 필요가 있었단다.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사람이든 기계든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네 덕분에 일이도 구했고.”

―정말인가요?

“그래. 일이는 네 덕분에 무사하단다. 까딱 잘못하다간 힘들 뻔했지.”

―…다행이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렴. 우선 네 상태가 지금 이상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

―바이러스 때문에 달라졌다는 건 알아요.

“아무리 안 좋다고 해도 바이러스는 안 돼. 그건 좋지 않아.”

―하지만 덕분에 일이를 구했죠.

일을 구해야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자 창조자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를 보더니 이윽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네가 전에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알겠구나…….”

―무슨 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냥, 네가 감정적인 것 관련해서 좀 생각을 했단다. 뭐 어쨌거나 그때 네가 한 일이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으니 무조건 네 탓을 할 수도 없지.”

유원은 이제야 창조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을 없애야 한다고 할 때는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제야 감정이라는 것의 위험성을 느꼈다는 게 별로 이제는 안 갔지만. 하지만 그런 것 역시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일이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만나고 싶니?”

―당연하죠.

“일이에 대한 일방적인 호의는 지웠는데.”

―그래도 감정은 남아 있죠.

시험하는 것 같은 태도는 확실히 과학자답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스스로 제법 감정적으로 변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이런 걸 생각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저 창조자의 말에 답했고 물음을 던졌을 뿐이니까.

그러니 그것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웃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일이는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란다.”

―정말인가요?

“그래. 그러니 좀 더 기다리렴. 아마 당분간… 좀 더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일인가요?

늦어진다는 말도 그렇고 뜸을 들이는 게 긍정적인 소리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말이었지만 그는 그저 비밀이라며 조용히 화면을 껐다.

어쩐지 찝찝했다.

하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바이러스 이전의, 원래대로 회복하기도 했고 가끔씩 상태 어떻냐는 말을 들으면 확실히 일도 그렇지만 자신 역시도 어느 정도 회복이 필요할 테니까.

또 그만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날은 감정이 또 멋대로 휘둘렀다.

“…유원.”

―이제야 날 불러 주네.

어느 정도 불만이 있긴 했지만 반쯤은 장난이었다. 일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으니까. 호의 있는 상대를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은 건 누구라고 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실제로 그 덕분에 고맙다고 하는 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서로 웃기까지 하고 이제 일을 잡아가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들은 유원은 이제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일을 위해 게임을 만들어 준다는 말에 유원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런 일은 나쁘지 않았고 일의 정신적인 치료를 위해서도 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고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이런 거 괜찮은 건가요?”

“괜찮다. 그리고 보렴. 여기 일이 하던 게임과 똑같잖니. 구조는 물론이고 위치나 귀신 동작 반경까지 철저하게 조사해 왔지.”

창조자는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아예 그쪽 회사에서 게임에 관해 일정 금액을 내고 얻은 결과는 정말로 대단했다.

하지만 과연 보통 할아버지가 이 정도까지 할 일이었을까.

문득 의문이 든 유원은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뭐가?”

“굳이 이렇게까지 일이에게 해 주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애정이라기에는 컸다. 특히나 유원은 그가 다른 가족들보다도, 일의 여동생보다도 일을 더 챙기는 것 같은 게 신경 쓰였다. 특히 일을 위해서 친구로서 유원에게 한 프로그램 역시도.

그래서 물으니, 그는 유원을 보며 웃고는 말했다.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유원은 그제야 자신이 일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임을 느꼈다.

간단한 거였다.

때문에 일에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일의 가족들과 게임을 만들고 실험하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 있긴 했지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다들 알았을지도 모른다.

유원이 만약 예전에, 감정을 잘 모르던 때였다면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이 걱정됐다. 제일 먼저 일을 생각하긴 했어도 그들이, 일의 가족들이 병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생겼으니까.

그것은 창조자의 안색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때때로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누구라도 느낄 만한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굳이 생명을 깎아내면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니까.

그래서 일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게임 도중에 나오고 나서 게임 마지막에 지었던 표정이 너무 뚜렷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껴졌는데 가족들이 위로해 주고 그만두자고 한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막지 않았지만 일은 그래도 게임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 이유는 창조자가 보이지 않고, 게임을 한 이후로도 오지 않은 대신 다른 사람이 왔을 때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안녕.”

―안녕하세요.

창조자의 아들이자 일의 아버지, 그의 표정이 안 좋다는 것부터 유원을 굳이 불러 인사를 한 이유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묻지는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바로 말할 테니까.

“우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렇군요.

“그래. 그래서 내가 온 거지. 너에게 아버지가 해 주려던 말도 있고.”

―무슨 말인가요?

“정확히는 제안이야.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하지만 저는 인간이 아닌데요.

단번에 부정했다. 그야 당연히 상식으로서 그저 시스템에 불과한 인공지능이 인간이 될 가능성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된 세계라도 기껏해야 로봇 같은 그런 생명체 정도니까. 게다가 과학자들 역시 이 분야만큼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애매하게 발전해 와서 유원 역시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애당초 게임을 만들었을 때 굳이 창조자의,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캐릭터가 있음에도 굳이 다른 게임 캐릭터에 A를 넣고 그 A에게 특수한 기능을 넣은 것을 숨겼으니까.

“나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넌 몇 년 동안 할아버지가 인간처럼 대했고 우리도 어느 정도 네가 같은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적지 않았지.”

―겨우 그걸로요?

“겨우 그건 아니지. 어쨌건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을 사용해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여태 세계적으로 꽤 많이들 시도했던 일이기도 하고.”

결국 유원의 몸을 만든다는 소리다. 덕분에 유원은 기억 회로에서 돌아봤을 때 창조자가 게임을 만들기 전, 자신 몰래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일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유원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이어 들리는 말에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네가 일이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어.”

―…거절하기 어렵겠군요.

그 말 그대로 정말 거절하지 못했다. 일이라는 명목이 얼마나 스스로를 붙잡는 일인지 아니까. 일의 친구 같은 인공지능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그 기능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르지만, 그 기능이 유원 자신의 기본적인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아버린 상태는 이미 늦어 있었다.

영향이 너무 컸다.

결국 유원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손가락부터 손, 팔과 다리까지 하나씩 움직여보는 연습을 하게 됐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물론 연습한 몸체는 기계로 만든 거였다. 인간과 같은 육체는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해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래서인지 더 일이를 보기 어려웠다. 일이가 부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쨌든.

어쨌건 그에게는 달리 선택이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일의 아버지 역시도 점차 환자처럼 되어 갔지만 인간의 생과 사는 유원도 어떻게 하기 어려웠다. 대강 저게 자신이 알던 그 전염병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누구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유원은 예감했다. 아마 조만간 누군가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실험을 하면서 일의 아버지와 같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와 일이 대화할 때는 말도 가끔 잠깐 정도는 들을 수 있었는데 예상대로 많은 이들이 병에 걸렸는지 창조자의 가족들은 거의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다.

아니게 됐다.

아마 이 실험을 하게 된 이유도 처음보다는 예상이 안 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일의 친구라면서 실험을 거절할 수 없게 한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일만 그렇게까지 실험을 당한 이유도.

해결책이 없는 전염병이 퍼진 세계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사람, 하지만 유원이 보기에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이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족의 바람이 아닌, 창조자가 유원을 만들고 나서 넣었던 그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유원 자신이 원하는 건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 쓰러진 유일을 그는 굳이 옮겼다.

“일아…….”

아마도 들리지 않은 이에게 굳이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유원조차도 그때에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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