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9/28)

18. * *

악몽은 항상 똑같았다.

꿈에서는 언제나처럼 가족들이 보인다. 할아버지나 이미 어릴 적에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내가 죽였던 동물들이나, 나를 실험하려고 했던 그 몇몇의 얼굴들까지 전부.

전부 흉악한 몰골로 피를 흘리며 나를 불렀다.

죽지 말라고.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면서 나를 붙잡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똑같이 깼다.

“…하아…….”

원래는 눈을 뜨면 바로 주변부터 봤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눈을 뜨고 몇 초간은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할 수는 없었지만.

“일어났어?”

“…어.”

“그럼 식사부터 할까? 그러고 나서 하자.”

뭘 하자고 하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스스럼없이 보였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이 잘 마주치지 않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나는 그런 점을 지적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했고 지금 충분히 도움받는 입장에서 일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나 역시도 모른 체하며 씻고, 식사를 하고, 그동안은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한동안 입지 않았던 그나마 깨끗한 옷을 꺼내서 준비를 끝냈다.

“근데 기억을 잃는다고 끝날까?”

나는 어쩌면 조금은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유원은 아무렇지 않게 답해 주었다.

“…그거야 해 보면 알겠지. 그리고 말려도 할 거잖아.”

“그건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내’ 준비가 아닌 다른 준비를 하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이 누워있는, 내가 곧 누울 장소에.

그렇게 내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유원을 보자 유원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지 않을 수 있어.”

“들어갈 거야.”

“어쩌면 더 힘들지도 모르는데?”

그 말에 나는 바로 답하지는 못했다. 고민은 당연히 많이 했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어딘가로 한 번 떠나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도저히 여기 있는 것들을, 내 가족들을 벗어날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흔적들을.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난 죽을지도 몰라.”

“일아…….”

“너한테는 정말로 미안해. 그래서… 고마워.”

그것만은 진심이었다. 본의 아니게 유원은 나에게 많이 신경 써준 다른 의미의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고 유원은 망설이는 것 같으면서도 내 목 뒤를 누르더니 칩을 빼냈다. 그런데 아무래도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더니 어느새 나는 다시 게임으로 들어갔다.

내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 거기까지.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게임 안이었다. 현실에 있으면 기억이 자극될지 모르는 일이라서 차라리 그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떠올렸고 유원은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지만 어쨌건 지금은 인간의 형태였으므로 다른 기계를 사용해서 게임 안으로 접촉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기억을 잃은 상태의 게임을 했다.

“여긴 어디지?”

처음에는 도저히 주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이 게임이 내가 예전에 한 게임과 흡사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이라고는 유원이었지만 나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정말로 멀쩡해 보였다. 또 그만큼 나는 게임을 쉽게 클리어했다. 그리고 할수록 점점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멀쩡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특히나 기억을 찾은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기억을 찾아서 놀랐을 때, 처음에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뭐가 잘못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저 가족들이 보여서, 옛날에 실험당한 일도 떠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어느 때부터 나는 다른 것에 의심을 뒀고 결국에는 게임에서 나왔을 때 항상 목에 끼웠던 칩을 다시 조사한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원이 칩을 이상하게 해놓았다는 사실을.

“내가 기억 찾은 거… 너와 관련이 있는 거야?”

차라리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유원은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리듯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제야 눈치챘구나.”

“…너…….”

“기억을 잃게 하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하지만 완전히 잃는 건 무리지. 그래서 나는 네 기억을 자극하는 부분의 양을 줄였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화가 났다. 나지 않았다면 정말 거짓말이다. 여태까지 내가 했던 시간, 노력들이 이따위 결과물이 되는 것은 나로서는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다만 그건 내 사정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전에 말한 거 기억나?”

“몰라. 그리고 그게 중요해?”

“중요해.”

유원이 바짝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그 눈이 마주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덕분에 말을 먼저 꺼낸 건 유원이었다.

“약속했잖아.”

“무슨…….”

“내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준다고. 지금 들어줘.”

나는 그 말에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굳은 표정을 지은 채로 말해 보라고 했더니 유원은 순순히 답했다.

“이번 일은 넘어가 줘.”

“…넘어가 달라고?”

“그래.”

이런 때를 위한 말이었나, 나는 유원이 더욱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원이 슬픈 표정을 지은 것도, 그 이유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내 입장밖에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줘.”

“알았어.”

“칩도 제대로 확인할 거야.”

“그건…….”

“왜, 안 돼?”

“…네 몸이 좋은 상태는 아니니까.”

그제야 꺼내는 속내,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그저 추측한 것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믿고 싶어서.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겨우 그것 때문에 칩에 손쓴 건 아니지?”

“…….”

“왜 말을 못 하는데!”

결국 유원의 멱살까지 잡아야 했다. 너무 열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유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겨우 그게 아니야. 나는 네 몸을 그렇게 망쳐가면서까지 하지 않았으면 했어. 겨우 기억으로 네 인생을 망치지 않았으면 싶었으니까… 차라리 너한테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어.”

유원의 말은 어느 정도 납득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때, 이 당시의 나는 정말로 화가 난 상태였고 유원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을 만한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절대로.

“…그래서, 기분 좋았어?”

“아니… 미안.”

유원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심인 걸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미안하면 나랑 약속해.”

“뭘……?”

“이제부터 내가 기억하게끔 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 줘. 만약 했다면 난 널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

사실 그건 정말로 나만을 위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만큼 나는 화가 나 있었고 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판단한 일이기도 했다.

“…알았어.”

그렇게 유원은 나와 약속을 했다. 또한 그만큼 잊을 수 없는 일이 머릿속에 강렬히 남은 탓인지 나는 꼭 칩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언제나 기억을 찾고 말았다.

내 내부에서, 내 자신이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난 늘 그렇듯이 단서를 찾아내고 내 자신에 대해서 알려는 걸 멈추지 않았다.

바보 같게도.

바보같이 그 끔찍한 일들을 계속해서 들추려고 했다니 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건 내 일기장이야.”

“일기장이라고?”

놀란 듯, 유원이 내가 가져온 노트를 봤다. 그야 내가 일기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 이걸로 내 기억을 막아볼 거야.”

그야말로 나를 위한 일기, 나는 이 일기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너한테 한 가지를 제안할게.”

“…제안이라고?”

“그래. 사실 이건 나를 위한 걸지도 모르지만… 만약 내가 최후의 최후까지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때는 네가 알려줘. 그래도 만약 기억을 찾는다면… 나는 아마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지.”

무엇을 포기하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인, 그저 그런 얘기였으니까.

일기 역시도 게임 설정에 이용됐던 일기로 나는 이게 내 기억에 혼란을 줄 만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항상 나는 기억을 많이 잃지만 다 잃은 것은 아닌 상태로 기억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게임에서 느끼는 감각도 완전히 현실처럼 느껴지게 할 거야.”

“뭐? 하지만 그건…….”

“알아. 위험하지.”

유원이 걱정하는 바가 뭔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나는 계속 한편으로 이게 꿈인가 하는 생각으로 해서 내가 더 현실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통이 있다면, 그만큼 공포를 느낀다면 그만두지 않을까 싶어서 하려는 나의 최후의 방법이었다.

“원래도 위험했는데 정말 그렇게 하려고?”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을 담은 건 처음이었다. 그 정도의 각오가 나한테 있다는 뜻, 그러자 유원의 입도 저절로 다물어졌다. 내가 웬만한 일로는 고집을 꺾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일까, 유원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 나도 도와줄게.”

“뭐?”

“나를 죽여야만 네 게임이 끝나게 설정해 줘.”

“…제정신이야?”

“그래. 어느 정도 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그리고 이 정도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기 쉬울 거야. 그렇지?”

다정스레 내뱉는 음성은 늘 그랬듯 같았다. 나는 그 결심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게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야. 너도 내가 기억을 찾지 못하게 막는 쪽이 더 좋을 테니까.”

“…알았어.”

나는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서로 닮는다고, 언제 이런 것까지 쏙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랬더니 유원은 금방 웃으며 생각했던 얘기를 꺼냈다.

“정 걸리면 내 조건을 들어주든지.”

“무슨 조건?”

대체 무슨 조건이길래 저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곧장 들리는 그 ‘조건’을 듣고 나서는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정말 그게 다야?”

“그리고 그때는 나를 제대로 인간처럼 봐줬으면 좋겠어. 게임으로라도 좋으니까.”

인간, 나는 그제야 유원이 말하는 게 뭔지 알았다. 유원을 가족들처럼 내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순간 나는 거부감을 느꼈지만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고 말았다.

“그래.”

조건이라고 했지만 그냥 내 마음을 가볍게 하려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나 같으면 저렇게 못할 텐데, 저런 것도 설정인가 싶으면서도 함부로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원이 웃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불안한 것도 없었다.

유원은 내 마지막을 정말 ‘마지막’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아니, 나 역시도 거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불안한 감은 맞아떨어졌다.

“내 몸은 잠들어 있을 거야.”

“유원…….”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그게 네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조금은 심술궂게, 어쩌면 유원에게는 다소 공격적일 수 있는 말을 퍼부었다. 그러나 유원은 평소와는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깨어나지 않는다는 건 네가 그만큼 괜찮다는 거니까 난 좋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미운 말만 한 나한테 저렇게 해 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솔직히 나는 유원이 차라리 나를 미워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유원은 인간에게만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다고 할 뿐이지 그렇다고 안 좋은 감정이 완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만큼 우리는 오래 알았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나는 내 친구들 중에서 네가 제일 좋았어. 그러니까…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그 이상 말을 잇지는 못했다. 더 이상 입에 담으면 앞으로의 일을 확신할 것만 같았으니까. 유원을 금방이라도 꺼내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는 내가 실패할 일을 부정할 수 있도록 그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걱정하지 마. 나한테 너는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까.”

안다. 유원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모른다면 바보였다. 나를 생각해 줘서 이 몸을 포기한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마주 보지 않고 버튼을 눌렀다.

모든 것이 끔찍했다.

하지만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일기장을 남겨 놓은 것은 실패할 때를 위함이었다. 칩을 남기고, 급하게 움직이던 것은 어쩌면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억을 찾으려는 자신의 의지가 제법 강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깨어난다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까.

“제발…….”

이번에는 끝이 나길 기도하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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