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8/28)

17. * *

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현실에는 사람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찾아봤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서웠다.

정말 이 세상에 남은 사람이 나 하나밖에 남지 못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는 사람 하나 남지 않았고 겨우 아는 건 내가 그동안 친구처럼 지냈던 인공지능뿐이었다. 사람처럼 보인다고 해서 과연 온전히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그걸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를 나는 결코 확신할 수 없었다.

비겁하고 이기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장! 날 구해 줘서 고마워.”

“…아니야.”

역시 동생과는 말하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동생이다. 그래서 또 구했다. 게임인데도 또.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나왔을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괜찮아?”

“…아니.”

유원은 게임 속에 존재했다. 게임을 어떻게 연결을 하는 기계가 있어서 왔다는데 할아버지가 이미 생각해 둔 일이라고 했을 때는 유원이 사람 같은 모습을 하게 만든 게 꽤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단기간에 가능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갈 만한 이야기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유원이 자신에게 해 주는 게 나름대로 생각해서 그렇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이해하는 게 다를 뿐이었다.

“그러면 그만할까?”

역시, 유원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잘 모른다. 하긴 나도 유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그 말이 나한테는 얼마나 안 좋게 들렸는지 모른다.

“아니. 할 거야.”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게임이니까 조금 다쳐도 문제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게임을 진행시켰고 수많은 반복 덕분인지 요즘은 엔딩도 볼 수 있었다.

실험 따위는 별거 아닐 테니까.

하지만 또 그만큼 나는 괴리감을 더욱 잘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이었다. 가족들이 게임에 연결되어 있어도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리는 없었으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데이터라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이유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플레이어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몇 번이고 모른 척을 해봐도 소용없었다. 결국 그들은,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샌가 밖으로 나왔다. 현실에서, 이제는 모두가 죽어 버린 그 무거운 현실에서.

버거운 것이 너무 많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생각나면 자기도 어려워서 그럴 때에는 게임으로 들어가서라도 잠을 자야 했다.

목표를 정하려고 한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제일 싫어하는 것들을 잊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연구하는 쪽의 건물로 이동해서 각종 실험도구를 설명이 써 있는 글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다행인 건 내가 그동안 살고 지냈던 곳이 과학 기관인 만큼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고 내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과학자라서 몇몇 가지 정보는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해가 더 빨랐다.

또 그만큼 내 몸을 이용하는 것도 쉬었다.

“기억은 결국 뇌와 관련 있는 분야니까 그쪽만 어떻게 해서든 접촉하면 되겠지.”

실제로 기억을 찾는다는 그런 방향으로 뇌를 자극하는 약을 만든 경우가 몇몇 있었다. 기억을 깨우는 것, 물론 한 번에 큰 자극은 사람에게 좋지 않아서 조금씩 자주 해 주는 용도의 약으로 실제로 기억을 찾은 사람도 꽤 있지만 내가 만들려는 건 그것과는 반대였다.

기억을 잃을 수 있는 것.

타임머신도 과거보다는 미래로 가는 게 더 쉽다는 것처럼 기억 관련해서도 기억을 찾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었고 이대로 있다가는 언젠가 죽으려고 할 것 같았으니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애당초 처음부터 죽으려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죽을 생각은 없었다. 원래라면 성적도 생각하고 지망하는 대학도 생각해야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저 눈앞의 막막한 상황을 외면하고 싶을 뿐.

그래서 나는 칼을 들었다.

정확히는 메스였지만, 뇌를 이용할 거라면 당연히 가지고 다녀야 했다. 유원은 여전히 나를 보면서 때때로 도움이 필요하면 말라고 했지만 그 이상은 간섭하지 않았다.

이미 말려도 소용없음을 알았을 테니까.

그만큼 나는 의지가 강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나로 실험하는 건 어려우니 동물들을 이용해 연구했다. 이곳이 비밀적인 과학 기관인 만큼 작은 실험동물이야 몇 마리든 존재했고 실험 기록이나 결과도 많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시대에는 실험 동물에게도 주기적으로 먹이를 주는 기계가 있었으니까.

동물이 나쁘다는 것도, 이런 작은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도 안다.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했다. 그것도 가족들의 죽음마저도 전부.

나만 빼고 모두가.

가족들이 살라고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함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일정 버릇이 있는 동물을 확인해서 뇌를 해부하고 기억을 찾는 것을.

가족을 기억해 내는 것을.

수백 가지의 기록과 몇백 마리의 동물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성공할 수 있었다.

“해낸 거야?”

“…그래.”

실험은 성공이었다. 주변에 동물 사체가 몇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희생시켰던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은 꽤 끔찍했지만 토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껄끄러웠을 일들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그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성인의 나이가 되어 있었고 그것은 유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나보다 오히려 유원이 더 신경 쓰였다.

너무 오랫동안 보았으니까.

내가 실험했을 때도 그렇지만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피를 묻히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전과 다름없는 친구의 태도로 있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역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서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부탁이 있어.”

“무슨 일인데?”

“일단 이 종이를 봐줘.”

내가 수도 없이 생각하며 지우고, 쓰고, 그리기를 반복한 종이. 덕분에 꽤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그것은 크게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게 그 안에 있었으니까.

“그대로 내 뇌를 건드릴 수 있는 칩을 심게 해 줘.”

“…미쳤어?”

말 그대로, 유원은 그동안 지은 표정과는 다르게 정말 제정신이냐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 나도 비슷하게 되물었다.

“너야말로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잖아. 난 그래서 네가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건… 네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씁쓸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전에는 유원이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만큼 나를 생각해 준다고 하면서 웃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아니, 언제나 나를 생각해 줬다.

예전 같았으면 걱정하면서 바로 물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유원은 이런 행동을 할 정도로 충분히 성장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차분하게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뻔뻔하게도 요구하고 말았다.

“그래도 해 줘.”

“이건 너한테 좋지 않아.”

“아니, 나한테 좋아. 적어도 내가 원래대로…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면 너한테도 편하겠지.”

“…편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그래.”

울먹이는 표정이 보였다. 그게 진짜 사람 같아서 나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다가, 결국에는 숨을 내쉬듯 눈을 내리깔며 다시 이어 말했다.

“네가 편하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그래도 나는 내가 생각한 최선의 일을 할 거야.”

꺾이지 않은 태도로 나는 말했다. 나는 그 정도였다. 이미 목적에 발을 둔 시점에서부터 내 희생은 이미 생각해둔 상태였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보다는 죽지 않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내가 괜찮아질까를 목표로 한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똑바로 유원을 쳐다봤고 유원은 그런 나를 보더니 내 얼굴을 붙잡았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붙은 얼굴은 그렇다 쳐도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하지만 곧 들리는 말에 의해 나의 입은 금세 다물어졌다.

“나는 네가 소중해.”

“…….”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동안 나를 적어도 친구라고 생각해 준다면…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을래?”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한 걸까. 나는 가만히 유원을 쳐다보았다. 언제라도 다정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 항상 가져다주는 음식에는 나름대로의 배려가 담겨 있었지만 나는 항상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걸 뒤늦게 알아버렸다.

“…그래.”

그럼에도 나는 하나밖에 대답할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 기왕 이기적인 거 나는 배려 따위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입술, 깨물지 마.”

“…….”

“미안해. 나는 그냥…….”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나는 유원에게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미안할 정도로 염치가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언젠가는 나도 사라질 수 있는데 결국 사람도 아닌 유원은 나보다는 훨씬 오래 살아야 할 테니까.

결국에는 또 한 번의 죄악감, 그럼에도 나는 일을 진행 시켰다. 유원이 시간을 달라 했지만 결국에는 부탁하는 식으로 말했을 때 나는 이미 짐작했다.

유원은 내 말을 들어줄 거라고.

“할게.”

예상대로 얼마 안 가 유원은 정말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신중했다. 조금 더 다른 생물들을 이용해 실험하자고 했고 나는 동의하며 유원이 완전히 그런 일들이 손에 익을 때까지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나서야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완전하지 않고 죽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장치를 충분히 마련할 시간이.

“마취부터 할게.”

“그래.”

애초에 여러 약이 있던 장소인 만큼 마취약은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약을 맞았다. 주사기를 보고 순간 흠칫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금방 들어간 주사가 따끔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뿐이고 나는 곧 두 눈을 감고 유원의 손에 내 몸을 맡겼다.

그렇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웃는 얼굴이 보였다.

“성공이구나.”

“…그래.”

“그러면 내 목 있는 데에…….”

“건드리면 기억이 지워질 거야. 하지만 지금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단 네 몸이 지금 괜찮은가 확인부터 해야지.”

“그건 그렇긴 하네.”

나는 조금 어색했다. 유원이 내 팔을 붙잡으며 뒤를 잡지 못하게 했으니까. 솔직히 몸 상태가 괜찮은지는 지금 나로서는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유원이 많이 도와준 건 사실이라서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 기억 잃기 전에 네가 원하는 거라도 할까?”

“원하는 거?”

“그래. 너는 나를 위해서 많은 걸 해 줬지만 나는 해 준 적이 없었잖아.”

물론 이런 걸 제안한다고 해서 유원이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른다. 그래서 슬쩍 보니 유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나중에.”

“뭐?”

“나중에 부탁할게. 네가 기억을 잃은 뒤에.”

“그건 또 뭐야.”

웃기지도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유원은 진지하게 한 번 더 말했다.

“나중에 꼭 들어줘.”

“뭐 원하는 거라도 있는 거야?”

“글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가짜니까.”

유원의 말은 내 마음을 찌른다. 언제나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문득 떠올라버려서. 유원은 그걸 다 봤고 아마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서.

“알았어. 그래도 뭐 하고 싶은 건 없어?”

그래서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나 유원은 그런 나를 보더니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잠도 같이 자자고. 친구네 집에서 자는 것처럼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하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게 보였는지 결국 나는 유원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침대까지 같이 자는 형태로.

“이런 거 처음이야.”

“나도.”

어릴 때는 그래도 동생이나 할아버지랑 같은 침대에서 잔 적이 있는데 다 커서 같은 또래 남자애랑 이런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어 봤더니 유원이 나를 봐서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왜 그렇게 봐?”

“그냥, 좋아서.”

좋다고 말한 유원은 눈을 휘며 내 손을 붙잡았다. 내가 그걸 거절하지 않자 유원은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맙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라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유원이 나 몰래 뒤에서 무슨 장치를 더 추가했는지도 모른 채로.

좋아해.

잠결에 들은 말은 흔들리듯 귓가에 스치며 언제나와 같은 악몽의 밤이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