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
결국에는 혼자 남았다.
아버지마저 쓰러지고 나는 아버지까지 옮겼다. 그래도 언젠가는 깨어날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이대로 죽으면 안 되니까.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심박수가 작동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됐어도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려 삼 일을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서 쓰러졌다.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끔찍하게도 나는 또 살아버렸다.
눈을 떴을 때, 한 번도 보지 못한 누군가가 보였으니까.
“일어났어?”
“누구…….”
누구냐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얼굴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는 누군가는 불현듯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도 나를 보며 웃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나 유원이야.”
“…뭐?”
“유원이야. 네가 아는 유원.”
“하지만 유원은…….”
인공지능이다. 그것도 기계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존재. 그런데 어떻게 내 눈앞에서 말하는 사람이 유원일 수 있을까. 유원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보니 유원이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일아. 네 아버지가 내 몸을 만들어 주셨어. 너를 지켜주라고.”
유원이 웃으면서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칼 같은지 알까. 내 상처를 얼마나 헤집는 일인지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유원의 말이 납득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아버지가 뼈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던 것을 봤으니까.
“…나를 지킬 필요는 없어.”
“하지만…….”
“필요 없다고!”
나는 괜히 신경질을 냈다. 유원이 잘못한 게 아닐 텐데도, 그럼에도 원망스러워서 노려보다가 결국 몸을 움직였다.
“어디 가게?”
“가족들이 있는 곳.”
“거기에 또 가게?”
“왜, 가면 안 돼?”
멈춰 서서 내가 물었다. 그랬더니 유원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식사는 해. 잠도 자고.”
“내 맘이야.”
“…네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처럼, 유원의 태도는 똑같았다.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의 모습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이런 것마저 예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정말로?”
“그래.”
“고마워.”
내 손을 붙잡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그날 오랜만에 식사를 했다. 일상 같은 일을 하고 나니 더욱 느껴진 현실은 착잡한 감정을 만들어내면서 씁쓸한 미소와 함께 유원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좀 도와줄래?”
“뭘 도와줄까?”
당연하다는 듯이 답하는 유원을 보던 나는 부탁했다. 아버지의 부탁이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에는 내 일이기도 하니까.
“가족들이 원하는 곳에 옮겨주려고.”
나는 결국 모두를 한 방에, 모두가 생생히 웃으면서 들어갔던 그 방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그 자리 그대로 눕게 해놓고, 게임에 연결시킨 그 상태로.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았다. 나는 그날에서야 눈물을 쏟아냈고 유원은 그런 나를 안았다. 내가 원했던 품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온도가 필요했던 건 사실이라 나는 유원에게 기대야만 했고, 또 그 후의 일도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다시 게임을 할 거야.”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다르게 보면 살려는 의지였지만 결국은 도피처.
가족을 다시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나는 게임을 또다시 반복하며 행복을 거짓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 된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