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6/28)

15. * *

무언가를 주입하게 된 지 3일째, 전에 있던 방과는 다른 장소에서 하얀 가운의 과학자들이 나를 실험했다. 뭔지도 모르는 것들을 주입하고, 주입하고, 피를 조금 빼더니 다시 또 모르는 액체를 주입했다.

나는 과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잠을 자기에는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들어오는 기분, 넣을 때는 아팠지만 생각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좋은 게 아니었지만.

아마 나는 그래서 이때 과학자들을 별로 좋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많던 처음은 진짜 동물원의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특히 냉정하게 무언가를 적고 확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많은, 나를 실험하는 이 장소가 끔찍해서 속이 울렁거렸지만 계속 여기에 있다 보니 언제 괜찮았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나는 다시 가족들이 보여서 나는 그게 꿈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

“일아… 괜찮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리고 또 다른 가족들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동생도 모두 보였는데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눈만 깜빡이다가 내가 내 방 침대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마치 꿈 같았다. 전염병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일어나려고 했을 때 느껴지는 통증으로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몸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단다.”

“그건… 윽!”

“거봐. 할아버지 말씀 들어.”

동생도 조용히 한마디를 했다.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뻔뻔하게도 뭐냐는 듯이 쳐다봤는데 나는 한숨을 쉬며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 후에야 할아버지를 보고 물었다.

“왜 제가 여기에 있는지 알고 싶어요.”

“왜 네가 여기에 있는지는… 비상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고 싶구나.”

“비상사태요?”

“그래. 우리 피를 사용하는 실험이 중단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심지어 해결책도 없는 사태에서 실험만 계속한다고 해서 뭐 하나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원래는 ‘잠시’ 중단된 상태였단다. 하지만 잠시가 언제까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손자를 안 좋은 곳에 오래 있게 하고 싶지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

내 손을 붙잡는데 얼마나 간절함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게다가 얘기를 더 들어보니 그 정도로 밖에 상태가 심각했고 세계 인구의 몇억이 사망했다고 한다. 만 단위가 아닌 억 단위가.

그래서 과학자들도 이미 나갈 사람은 나가서 가족을 만났다고 한다. 도중에 병이 심해진 사람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어서 시체를 보관할 수 있는 곳에 옮겨야 했고 가족이나 친척이 데리러 오면 어떻게 할지 정했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달랐다.

전염병은 걸리지 않았지만 실험당한 상태의 나, 사실 발견했을 당시는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여서 기절해 있었고 겨우 치료를 해서 많이 회복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멀쩡하게 느껴졌던 걸까, 링거를 맞은 상태였는데 그래서 가족들은 나를 무슨 유리처럼 취급했지만 나야말로 신경 쓰이던 점이 있었다.

“‘우리’ 피를 썼다는데 그건 무슨 소리예요?”

“…뭐?”

“저는 제 피만 쓰면 된다고 했어요. 근데 ‘우리’라니…설마…….”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쳐다보니 할아버지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말을 막고 자신이 말하겠다고 하며 나한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마 네가 생각한 대로가 맞을 거야. 우리도 피를 뽑혔지.”

“그건… 말도 안 돼요.”

“말이 안 되긴. 이렇게 해야 너한테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준다는데 어떻게 안 하겠어.”

“맞아. 오빠 혼자 폼 잡지 마.”

나는 그제야 모두 조금씩 안 좋아 보였던 게 괜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서로를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그 결과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 인간들 죽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너한테 한 만큼 크게 당할 거야! 그리고 지금 안 오는 걸 보면 어쨌든 오기 힘든 상황이라는 거겠지.”

“맞아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일단 네가 회복하는 게 일이겠지.”

제일 많이 울었던 할아버지는 눈이 부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반가웠다. 나도 어느새 미소 지으며 그러자고 했고 우리 가족은 그래서 그날 바로는 아니지만 다음 날, 간만에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밥을 해 먹었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김, 생선 같은 반찬들과 함께.

이상하게도 예전 같으면 당연하다고 여겼을 것들이 오랜만 같이 느껴져서 그런지 먹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목이 메일 것 같았지만 다들 마찬가지인지 먹는 소리만 들렸다.

그렇지만 좋았다.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은 일도 결국은 현실이었다. 내가 겪은 고통이나 상처가 거짓은 아니니까.

그리고 가족들 역시.

모두 꿈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우리는 전보다 더 서로에게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어쩐지 일상 같은, 남들에게는 ‘꿈 같은’ 일상생활을 보냈다.

한동안은.

한동안이 아니게 된 건 내가 깨어난 지 사흘 후,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고 얼마 안 돼서의 일이었다.

“시계를 다시 손봤단다.”

“…그래요?”

“그래. 비상사태 때 다시 기능을 발휘하게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유원이가 의욕이 앞서서 그런지 바이러스를 데려왔어. 덕분에 제거하고 고치느냐 좀 늦어졌지.”

“그렇군요.”

“그래. 물론 네 친구가 되라고 만든 거긴 하지만 어쨌든 유원도 인공지능이니까.”

내가 빠르게 발견된 건 유원 덕분이었다. 그걸 조금 늦게 알았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나는 당장이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그 원인은 고장 난 것 때문이었다.

그만큼 유원이 나를 생각해 줬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정말 제일 좋은 친구가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니 친구라고 해도 이 정도를 해 주기가 과연 쉬울까.

그래서 나는 고쳐진 시계를 보며 바로 이름을 불렀다.

“…유원.”

―이제야 날 불러 주네.

마치 왜 부르지 않았냐는 불만이 서린 음성, 그래도 언제나처럼 웃는 모습은 반가웠다.

“네가 고장 나서 그랬어.”

―알아. 장난 좀 해 본 거야. 몸은 괜찮아?

“괜찮아. 너는?”

―나야 당연히 괜찮지. 너야말로 조심해. 내가 비상사태 때 다시 움직일 수 있지 않았다면 더 큰일 날 뻔했으니까.

“알아. 고마워.”

―나도. 네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우리는 웃었다. 어쩐지 예전의,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할아버지 역시도 분위기에 물들었는지 따라 웃으면서 우리를 보더니 슬쩍 말을 꺼내셨다.

“요즘 너희 어머니랑 아버지가 어디 가는지 아니?”

“음… 글쎄요.”

“게임 연구란다.”

“게임 연구요?”

“그래. 그리고 그 게임을 하는 게 바로 네 동생이지.”

“아…….”

어쩐지 배고프다면서 어딘가로 간다는 게 이상했다. 요즘 게임을 연구한다니, 대체 왜일까 싶어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답해 주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구나. 그래서 가족들이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히 기억될 만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던걸.”

“어머니가요?”

“아니, 아들… 네 아버지가. 말은 별로 없어도 네가 일어날 때까지 밥도 굶었던 게 너희 아버지란다.”

“알 것 같아요.”

내가 깨어났던 날, 자기 전이 다행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가끔씩 발도 주물러주고 용돈도 주시던 게 아버지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도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딱히 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사정을 아니 마음이 편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요즘 안 보여서 마음은 꽤 불안했으니까.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걸 아시고 말씀해 주셨던 걸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더 기다렸고 나중에 가족들은 나를 데리고 연구를 하던 곳이 아닌 어떤 방에 들를 수 있게 해 줬다.

“이게 뭐예요……?”

방 안에는 유리관들이 있었다. 정확히 다섯 개, 마치 우리 가족의 수만큼 있는 것 같아서 부모님을 쳐다보니 어머니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동안 잘 안 보였던 이유가 이거야.”

“게임이요?”

“…할아버지한테 들었나 보네?”

“네.”

이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금방 수긍한 기색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 잘됐다. 이거 네가 예전에 자주 했던 게임 생각해서 만든 거야.”

“무슨 게임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공포물?”

“…아니 왜 굳이 공포물을…….”

“왜긴. 현실이 공포보다 더해서 그렇지. 오빠 안 할 거면 나부터 한다?”

동생이 그렇게 말하고는 제일 왼쪽의 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봤더니 부모님이 나부터 먼저 들어가라고 해서 나도 들어갔고 곧 무슨 산소 호흡기 같은 게 쓰이더니 눈이 감겼다.

아니,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본 공간은 전혀 달랐다.

보이는 사람도.

“…네가 왜 여기 있어?”

“안녕, 일아.”

유원이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물었더니 유원이 친절하게도 웃으면서 말해 주었다.

“여긴 게임 속이야. 나는 너를 돕는 역할이고.”

“그렇구나. 근데 가족들은?”

“곧 보게 될 테니까 걱정 마. 일단 처음이니까 내가 다 알려줄게.”

그 말 그대로 유원 덕분에 나는 저택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저택의 구조나 봉인 방법, 그리고 기존에 내가 알던 게임과 비슷한 스토리까지.

다만 내가 알던 게임에는 A가 없었다. A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넣었다는데 무슨 특별한 걸 넣었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유원이 설명해 주고 안내해 준 걸 따라서 저택을 무사히 클리어하고 학교까지 갔다. 그렇게 학교에 가서야 나는 가족을 만났다.

“네가 부반장이야?”

“그래. 그러니까 오빠는 날 해치워야 한다고!”

“…무슨 게임이 이래?”

“무슨 게임이긴. 이게 다 오빠를 위해서인데. 오빠가 무서운 걸 봐야 다른 게 덜 무서워진다고 했단 말이야.”

동생은 가볍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은 무거웠다. 나를 위해서 만든 게임이라니, 덕분에 마음이 좀 그랬는데 그런 나를 보던 동생이 농담이라면서, 그런 걸로 힘없이 보이지 말라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동생이었다.

그래서 동생이랑 몇 마디 더 하고 유원의 설명도 들으면서 귀신을 해치우는 것에 충실했다. 솔직히 그냥 화면으로 보는 거랑 다르긴 해서 어느 정도 긴장이 되긴 했지만 게임이라고 했고 또, 유원도 있어서 그런지 쉽게 클리어했다.

게다가 게임에서 두 번째 스테이지인 학교에서는 교무실에서 아버지를, 교장실에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놀라다가도 다시 가서 물었다.

“왜 선생님이에요?”

“글쎄다. 너를 항상 지켜보고 싶어서?”

할아버지는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게 뭐냐면서 쳐다봤지만 할아버지는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제 다 컸네…….”

“그럼요. 저 키 180이라고요.”

“맞아. 그리고 누굴 닮아서 잘생겼는지.”

“할아버지 닮아서 그래요.”

그러면서 웃어 보이자 할아버지는 더 세게 안으시면서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떼어질 때도 어쩐지 좀 슬퍼 보였는데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망설이다가 끝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 봐요.”

그게 할아버지의 마지막인지도 모르고서.

“그래.”

늘 그렇듯 다정한 얼굴로 나를 계속 쳐다보는 그 시선에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곧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움직여서 나는 곧 다음 장소로 갔다. 최종 장소인 집으로 가려면 그 전에 귀신의 부모를 만나야 한다는데 그 부모가 있다던 병원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안녕. 내가 바로 귀신의 가족이야.”

“…잘 어울리네요.”

“그렇지?”

원래 과학자라 그런지 하얀 가운을 자주 입고 다녔는데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무언가를 만지는 과학자들은 다른 옷을 입어야 했지만 어머니는 거의 확인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쪽의 일이었으니까.

“이제 슬슬 움직일까?”

“네.”

어머니의 말대로 우리는 움직였다. 밑에 층도 갔는데 나는 내가 실험당할 때의 장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순간 멈췄다.

“괜찮아? 게임 멈출까? 유원―.”

유원이를 부를 때였다.

탁.

“아뇨… 계속해요.”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말했다. 계속하자고. 그래, 애초에 이건 나를 위한, 내 공포를 위한 게임이라면 나는 참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게임을 깨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갑자기 보이던 병원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관찰했던 그 시선과 비슷해 보여서.

나는 결국 괜찮지 않았던 거였다.

“게임… 그만두자.”

“…….”

나오자마자 들은 소리는 그거였다.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 나도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나를 위해서 만들어줬다는 것 때문인지 고민하면서 주변을 보던 도중, 나는 보고 말았다.

할아버지만 잠들어 계신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왜 안 나와요?”

“그게…….”

“네? 왜 안 나와요?”

누구도 그때 바로 내 말에 대답은 해 주지 않았다. 동생은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다가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는 말에 할아버지 쪽으로 가면서 입을 다물다가 말을 꺼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일아…….”

“이따… 이따가 보겠다고 했다고요. 할아버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데…….”

결국 내 눈에도 눈물이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걸까. 뭘 하겠다고 마지막을 게임으로 끝낸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가슴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정말 큰 의미였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도 너무나 공허했다. 이게 진짜 누군가의 빈 자리라는 걸, 상실감이라는 걸 인정하기에는 나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현실은 깨어나지 못한 텅 빈 시체만 있을 뿐이라 나는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없다고.

그걸 인정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물어야만 했다.

“아버지.”

“…왜?”

“할아버지는 왜 굳이 게임에 있으려고 한 거예요?”

진작 물었어야 하는 것을, 그것을 이제야 물었지만 아버지는 별로 큰 반응 없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에게 내가 몰랐던 할아버지의 생각을 들려 주었다.

“그냥, 죽을 때 게임에서처럼 영원히 남고 싶어서… 그리고 어쨌든 누가 죽더라도 저렇게 남아 있으면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어. 바보같이.”

맞다. 나는 아버지 말대로 할아버지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은 현실에서 보내도 됐을 텐데. 하지만 나도 바보라서 결국 나는 할아버지 때문이라도 그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틀 뒤, 어머니가 나한테 물으셨다.

“이 게임 이름, 네가 정할래?”

“네?”

“너를 위한 게임이니까. 네가 정했으면 해서.”

“이름 안 정했어요?”

“…깜빡했어.”

“다른 사람은요?”

“난 됐어.”

“나도.”

다들 짜고 치는 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고 조금 고민하다가 할아버지도 생각하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게임의 이름을 정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늘 있는 게임이니까.

그러니까 이름은 금방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이라고.

9. Ending (2)

나는 이후로도 게임을 거의 매일 했다. 아마 할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게임이 익숙해지면서 사람이 많을 때 조금 힘들었던 것도 괜찮아질 때가 늘어났다.

아예 괜찮은 건 아니었지만 전보다는 나아질 정도로.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의 게임 캐릭터는 나를 보고 지어주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아니었다. 하는 행동도 성격도 모조리 다른 ‘타인’이었다.

“할아버지…….”

“하긴 내 나이가 할아버지이긴 하겠구나. 너희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시니?”

분명 다른 사람일 테니까.

나는 이런 게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운 얼굴이, 목소리에 거짓이 없어 나는 그저 답할 뿐이었다.

“그냥… 교장 선생님이랑 많이 닮아서요.”

“그렇구나. 그러면 가끔 놀러 오겠니?”

나는 답하지 못했다. 사실 이 ‘캐릭터’는 할아버지와 너무나 똑같았다. 그래서 더 쓰리게 다가왔다. 할아버지와 같이 다정함이 듬뿍 베인 말까지도 너무나도 진짜 같아서.

언제까지나 이 거짓된 세계에서는 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결국 게임과는 점점 거리를 두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은 꼭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나보다도 더 불안해 보이는 가족들 때문에 나는 매번 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식사 도중마다 빠져나가고 해서 결국에는 다시 따로 먹게 되었다.

왜 그랬던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물어볼 때마다 다들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 수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래서 생각했다.

왜 이제 와서 저러는 걸까.

어색한 행동은 당연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 상태에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걸 더 물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모두 힘든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안일했다.

정말로.

내가 조금 더 신경 썼다면, 가족들의 이상 행동을 조금이라도 빨리 눈치챘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며칠이 더 지났을 때의,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때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머니는 누워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처럼 유리관 안에서, 감염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쳐다만 봤을 뿐이었다.

“감염됐어.”

“언제부터…….”

나는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이 그동안 피한 이유가 뭘까, 이제부터 매일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놓고 같이 있는 걸 피하는 느낌이 들었을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이어 답했다.

“…전부터 그랬어.”

“전부터… 라고요?”

“그래… 너한테 말하지 않은 이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네가 힘들어 보여서 조금 지나서 괜찮아지면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이마에 손을 대며 낭패라는 듯이 말한다. 아버지가 말한 것 덕분에 나는 뭘 숨기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럼 그동안 피한 게…….”

“너한테 조심하고 싶어서. 이번 전염병은 솔직히 안에 있어도 걸린다고는 하지만… 그 외에도 네 정신적인 부분도 조심하려고 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깨어난 이후로 가족들이 나에게 하는 짓이 유난스럽다고 여겨질 때가 꽤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었어도 그럴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이 지경이 되기 전에 한 번쯤 말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원망이 들면서도 아무 말도 못 했던 건 어찌 됐든 나를 걱정했던 가족들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똑같이 걱정되는 입장이라는 걸 가족들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저 많이 놀랐어요. 그동안 비밀로 했던 거 저로서는 용서하지 못할 것 같고요.”

“그럴 수 있지.”

담담한 표정, 하지만 입가에 짓는 씁쓸한 미소는 어쩐지 선명해서 나는 굳이 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그렇게 모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혹시 몸 안 좋으시면 미리 말해 주세요. 너도.”

동생한테도 미리 말했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좀 얄밉긴 해도 원래 동생이라는 건 미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잘못된 것 같으면 신경 쓰이는 존재니까.

“나는 아직 괜찮거든?”

“그래도.”

“오빠나 걱정해. 그리고 아직 어머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쓰러졌는데…….”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였거든? 그러니까 오빠 몸이나 챙기세요.”

자기주장이 강한 동생 때문에 별말도 못 했다. 하긴 내가 얘를 말로 이긴 적이 있던가,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센 편이라 말도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밀어붙여서 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있는 방향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여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다시 깨어나실 수 있을까.”

“그럴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동생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나도 비슷한 표정이지 않았을까.

늘 강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시면서도 우리를 생각해 주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나는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어머니는 깨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뿐이 아니었다. 얼마 후에 아버지는 코피를 흘리셨다. 설마 싶어서 봤는데 괜찮다고 했지만 걱정이 됐다. 어머니도 갑자기 쓰러졌으니까. 게다가 그래 놓고 자꾸 어딜 가시는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문제는 동생도 힘이 없어 보인다는 거였다.

“너…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니까? 좀 쉬면 괜찮아져.”

그러니까 당장 가라는 듯이 쳐다보는데 어이가 없었지만 괜히 있다가는 서로 기분만 상할 것 같아서 결국 나는 동생을 그대로 두고 아버지에게로 갔다. 다행히 유원이 길을 안다고 해서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아버지는 뭔가 다른 걸 하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일이구나.”

부르고 나서야 내 존재를 알게 된 아버지는 어쩐지 어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가 뭘 하고 있나 봤더니 무슨 뼛조각들이 보였다.

“그건 뭐예요?”

“이건… 그냥 작은 실험이랄까. 그냥 좀 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런 상황에요? 전에 코피가 나고도 또 무리하시려고요?”

의도는 아니었지만 안 좋은 말이 저절로 내뱉어졌다. 아버지의 안 좋은 표정으로 곧장 후회하긴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은 도로 주워 넣을 수는 없었고 한편으로는 정말로 이런 때에, 다른 것보다 실험을 우선으로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이유가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냥 좀 혹시 누군가 남는다면 외로울지도 모를 테니까… 만약 가능하다면 동물이라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동물을 어떻게 만들어요?”

“정확히는 로봇 같은 거지.”

“로봇이요?”

“그래… 인공지능 로봇 같은 거.”

“로봇도 아니고 로봇 같은 건 뭐예요?”

“실제 뼈를 사용하는 거니까. 실제 뼈랑… 네가 말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편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잖아.”

어색하게 웃는 아버지, 무엇보다 손에 난 상처의 흔적들은 결코 모른 척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필사적이었다. 이런 세상이니까, 누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세상 속에서 죽지 않을 수 있는 존재를 만드는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아버지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동생의 병이 악화됐으니까.

아버지를 만난 후에 바로 보지는 못했지만 동생이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들어가지 못한 방을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동생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나는 이게 대체 뭔지 싶어서 눈을 깜빡이다가 바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동생을 어머니가 있던 곳으로, 그 근처로 이동시켰다.

“또… 이렇게 되어 버렸어.”

“아버지…….”

“내가,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자고 있는 가족들을 봤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말 내가 차라리 대신 아팠다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직도 멀쩡했다. 왜 나만 멀쩡한지 모르겠지만 항체도 만들지 못하는데 그냥 멀쩡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내 피를 이용해요.”

“뭐?”

“저는 전염병에 안 걸렸잖아요? 뭔가 도움이 될 거예요.”

국가한테, 아직도 내가 당한 실험은 생생히 기억난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가족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전혀 달랐다.

찰싹!

맞았다. 뺨은 얼얼하고 고개를 돌아갔는데 다시 돌아본 순간 아버지 역시 나처럼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아니… 내가 너무 예민했어. 하지만 네가 또 그렇게 되는 꼴은 내가 죽더라도 보고 싶지 않아.”

아버지는 절박하게 말했다.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듯이, 그래서 나도 결국 알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라앉은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실제로 아버지는 이렇게 된 이후에 불안해한다 싶었더니 나를 찾아와 말을 꺼냈다.

“만약… 누군가가 죽는다면 할아버지가 있던 방으로, 전에 누웠을 때의 자리에 옮겨줬으면 좋겠다.”

“…미쳤어요?”

정말 미쳤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콜록거리면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전보다 마른 몸으로 잘도 말을 꺼내셨다.

“아니… 애초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완전히 괜찮은 상태라고는 볼 수 없지. 그러니까 말하는 거야. 지금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우리 가족의 바람이기도 해.”

“바람은 무슨… 너무한 거 아니에요?”

울컥했다. 나는 내가 혼자인 게 싫었다. 그건 가족들이 하나씩 눈을 뜨지 못할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는 어느새 숨을 쉬지 못했고 동생은 아직 쉬고는 있지만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도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나만 멀쩡했다.

정말로 나만 괜찮다는 사실이 이렇게 짜증 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노려보는 걸 보더니 미안하다고 해서 뭘 더 하기도 어려웠다.

“…왜 나만 이래야 해.”

목이 메었다. 왜 나만, 차라리 나도 같이 병에 걸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두가 죽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병에 걸리지 않은 인간은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 모른다. 차라리 전에 전화를 걸어서 실험을 지속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어떤 전화든, 그 누구든 통화가 되지 않았다.

현실은 너무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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