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28)

13. * *

내가 주사를 맞고 깨어난 것은 정확히 다음 날이었다.

왜냐하면 방에서 전자시계이자 달력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이상했던 건 내가 방에서 혼자 갇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일어난 직후라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분명히 내 방은 아니었고 이 직전의 기억이 영 좋지 않았으며 내가 문을 보고 열려는 시도를 했을 때는 몇 번 달칵거리는 소리만 났을 뿐, 열리지 않았다.

전혀.

다행인 건 시계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유원을 부르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나는 조금 미루기로 하면서 때를 기다렸고 곧 벽이 사실은 다른 쪽 방과 연결되어있는 유리 상태인 걸 알게 되었다.

상대 쪽에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안녕? 잘 잤니?”

“…그런 말이 나올 것 같나요?”

“아니.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너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고 싶어서. 그리고 너도 내 기분 상하게 하면 손해일 텐데.”

“그래서 나름대로 잘 대해 주는 건데요.”

“그래? 하긴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내가 좀 더 어른이니까 존중해 줘야겠지.”

뭔 개소리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나로서는 저 남자의 말을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으므로 최대한 화를 참은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건가요?”

“기절시키고 데려왔지. 일단 너는 실험 대상 중 하나야.”

“…실험 대상?”

“그래. 전염병이 심한 상황에서 너희 가족은 이상하게도 괜찮아 보이더라고. 지금 네 상태처럼. 덕분에 너희 가족이 나한테 보인 모습이 뻔한 연기라는 걸 알게 됐지.”

전에도 그랬지만 내 실수가 뻔히 느껴질 정도의 말이었다. 정말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을 정도로, 그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지만 차마 말 못 하는 상황이 거지 같았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앞으로 네가 얼마나 협력하는가에 따라 너희 가족들의 안위가 결정될 거야. 다행히도 아직 실험체는 너뿐이거든.”

말 그대로 협박이었다. 그래서 내가 노려보자 상대는 말했다. 자신은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어디 부서의 팀장이며 지금 이 상황도 국가를 위하는 일로 이미 국가에서는 허락받은 일이라고.

우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똑똑히 말해 주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지 모를 것이다.

게다가 국가라니, 국가한테 그렇게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의 시민을, 이런 식으로 끌어들여도 된다는 건가.

우리 집이 돈이 어느 정도 있으니 차라리 예전에 다른 나라로 도망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요? 어떻게 하라는 건데요.”

“간단해. 아까 맞은 주사처럼 주사 몇 번만 더 맞으면 돼.”

“…무슨 주사요?”

나는 그 순간, 기묘한 예감을 느꼈다. 결코 좋지는 않을 느낌을.

“무슨 주사긴? 바이러스 주사지. 근데 그전에는 피 좀 뽑으려고. 네 피가 항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며칠 동안은 피만 뽑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잘 쉬도록 해.”

마치 봐주겠다는 식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금방 똑똑 두드리는 것과 함께 실례하겠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까 봤던 덩치 있던 보디가드 같은 남자들 중에 하나였는데 음식을 들고 온 그 모습에 나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먹어. 유일 군이 건강해야 가족들이나 국가에도 좋은 영향이 될 테니까.”

“가족들이 어떤지 보여 주시면요.”

“글쎄 어쩔까… 아, 그 시계에 연락하거나 인터넷 기능 같은 건 없앴으니까 사용해도 괜찮을 거야. 혹시 심심하면 게임 같은 거 넣어 줄 테니까 언제든지 요구해도 괜찮고.”

설마 싶었지만 역시였다. 괜히 시계가 있는 게 아니었는데 그걸 굳이 일부러 언급하는 자체로는 정말 질이 나쁘다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협력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가족들, 보게 해 주세요.”

“그래.”

대답은 잘한다. 솔직히 믿기 힘든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가족들이 이 방에 왔을 때는 너무 쉽게 들어와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아!”

“…할아버지!”

제일 먼저 온 건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나는 바로 품에 안겼다.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많이 뵈었던, 나를 어릴 때부터 안아 준 따스한 품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특히 점차 뒤에 보이던, 다른 가족들까지 와서 모두가 모이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동생이랑도 한 번씩 안아보고 서로 괜찮냐고 먼저 묻는 게 웃기기도 했는데 또 그만큼 서로를 봐서 안심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나는 할아버지에게 조금 색다른 말을 들었다.

“지금… 네가 차고 있는 시계는 웬만한 기능이 되지 않는단다…….”

“알고 있어요.”

모를 리 없었다. 애당초 문에 나가지 못했던 순간 대강 짐작은 했었으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그 제한 덕에 네 시계는 무사한 것도 알고 있진 않았겠지.”

“제한이라고요?”

나는 놀라 물었다. 시계가 제한을 당해서 무사할 수 있다니, 바로 이해가 가질 않아 묻자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 이 안을 빠져나오기는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 같고… 네가 힘들 때 친구 하나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마 부르면 나올 거란다.”

“…감사합니다.”

설명을 듣는 순간 무력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현재는 어렵다고 했을 뿐이고, 표정만으로도 나를 빼내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상대가 너무 커서 어렵겠지만.

어머니 역시 나를 보고 바로 본론을 말했다.

“나중이라도 꼭 나오게 해 줄게.”

“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여기까지 오기 전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뭔가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래서 굳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쁜 생각을 할 것만 같아서.

“오빠.”

“…어.”

“잘 있어. 나도 어떻게든 생각해 볼 테니까.”

동생도 생각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게 나는 싫어서 괜히 말이 튀어나왔다.

“야, 너는… 됐고 잘 먹고 푹 쉬고나 있어. 어차피 여기 오래 있지는 않을 테니까.”

“치, 걱정해 줘도 뭐라 그러지.”

“누가 네 걱정 필요하다고 했어?”

“어휴! 하여튼 잘 지내!”

“그래.”

차라리 이편이 나았다. 그리고 이렇게 끝내는 편이 잠깐이라도 우울한 생각이 덜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는 듯이 그들을 보며 인사를 하고 보냈다.

“젠장…….”

인상이 찌푸려진다. 막막하다. 아마 내 피가 이런 시기에 필요한 일이면 항체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 과연 잘 될지는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만큼 지금 사태가 꽤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발견했던 과학자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내가 신고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언젠가는 찾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에 내가 이렇게 먼저 붙잡힌 건 내 잘못이었다. 잘한다면 우리 가족이 눈에 띄지 않았을 수도 있던 거니까.

그래서 나는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유원.”

―그래. 일아.

“어떻게 하면 집에 갈 수 있을까…….”

―미안해 일아.

“네가 뭐가 미안해?”

어이가 없었다. 유원은 그냥 피해를 입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유원은 계속 말했다.

―네가 붙잡혀서 갔을 때… 내가 문을 열리지 못하게 했어.

“…뭐?”

―화가 나서… 미안해.

그 말에 나는 문득 생각나 버렸다. 기절하기 직전의 일들이,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불의 깜빡거림은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유원이 나를 위한다고 한 짓임을 모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 시계를 과연 가만히 뒀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결국에는 그저 벌어졌을, 그저 그런 일이었을 뿐이니까.

“네 탓 아니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 탓이지.”

―아니야! 그건…….

“거봐. 이건 누구 탓도 아니라고.”

다르게 따지면 국가 탓이고, 전염병 탓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늦어서 그런 생각을 해 봤자 소용없었다.

이미 늦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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