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28)

12. * *

내가 태어난 곳은 어느 과학 기관이었다.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 부모님이 과학자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물론 정상적으로 배 속 안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잘 태어났다. 어릴 때의 기억은 별로 선명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에게 안겼던 따뜻했던 품이 언뜻 기억이 날 정도로 나는 좋은 상태에서 자라났다.

게다가 과학 기관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다른 과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 덕분인지 할아버지가 만든 최초의 인공지능이 이미 내 생일에 맞게 제작됐지만 나한테 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던 게 과학자들이 비밀로 해 주기로 하면서 나한테 오게 되었다.

이름은 유원.

유일하게 원한다는 뜻으로 인간에게, 특히 나한테 호감을 갖게 설정되어 있었고 특이하게도 ‘성장형’인 인공지능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샌가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가상체험 공간을 이용해서 유원과 자주 시간을 보냈다.

가상현실이라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내가 체험을 하며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어느새 처음에는 마냥 친절하고, 나를 위해 줘야 한다던 유원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안 돼. 학교에 가야 하거든.”

“학교? 요즘은 안 가도 되지 않아?”

“그렇긴 한데… 안 가면 공부도 잘 안 할 것 같아서.”

예전이야 꼬박꼬박 학교에 다녀야 했지만 요즘 같은 시대는 내부, 그러니까 적당히 수업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계만 있다면 자유롭게 언제 어디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만큼 여가 시간도 늘고 아플 때도 따로 녹화를 해두며 복습을 하면서 성취도나 자유도 면에서 학생에게 더 편해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변에 같은 또래의 애들이 있냐 없냐의 차이는 꽤 커서 나 같은 경우도 일단 혼자 하면 많이 게을러지는 편이라 학교에 가는 것은 웬만하면 빼먹지 않았다.

“내가 알려줄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유원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물론 최근 들어서 나보다 키가 좀 큰 것 같지만 애초에 인공지능이기도 하고, 어쨌든 나를 생각해 줬다는 그 마음은 나쁘지 않아서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리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외로워서가 아닐까 싶어서.

여동생이야 유원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다고 해서 예전보다 여기에 잘 안 들어오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유원이 나한테 집착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심하면 다른 친구 만들어달라고 할까?”

“…다른 친구?”

“그래. 네가 심심할 것 같아서.”

요즘 같이 인공지능이 흔한 시대에는 1가구당 1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소 기본적으로 가사를 도와주는 인공지능이 있었다. 하지만 유원 같은 인공지능은, 어릴 때도 그렇지만 그렇게 흔한 게 아니라서 비밀로 해두고 있기도 했고 어쨌건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인지 괜히 신경 쓰여서 제안했다.

하지만 내 말을 듣던 유원의 입매는 굳어졌다.

“다른 친구는 됐어.”

“…그래?”

“그래. 대신 내가 다른 기계로도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어.”

“여기 아니라도 대화하는 기계가 있지 않아?”

실제로 유원과 처음 대화한 곳은 여기가 아닌 밖이었다. 커다란 기계의 화면에서 처음으로 만났으니까. 그래도 좀 부족해 보여서 식탁에서도 보일 수 있게 했다.

마침 식사를 도와주는 가사 도우미 인공지능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나 싶어서 보니 유원이 난감하게 웃고 있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긴 한데… 나는 활동 반경이 자유롭지 못하잖아. 그래서 조금 쓸쓸해.”

“그렇구나.”

보통 사람이라면 쓸쓸하다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 이게 아니라도 가끔 묘하게 다른 표현을 할 때면 유원이 인공지능임을 느끼게 됐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이니까 인간들만큼 자유롭지 못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졌다.

어릴 적, 내일 또 오겠다면서 유원과 자주 약속하던 그때처럼.

“알았어. 일단 물어는 볼게.”

“고마워.”

하지만 나는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당장이 아니라도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리고 실제로 얼마 후에 유원은 다른 곳, 시계나 전등 같은 일상적인 것들에도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학교로 갈 때 시계에 유원을 데리고 간 적이 꽤 있었는데 생각보다 유원이 가르쳐준 문제들이 공부에 도움이 되면서 성적이 꽤 올랐었다.

시계는 시험 기간에는 착용하지 못해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다만 학교에 다니면서 점점 느끼게 된 건 탁한 공기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다녔다고 했는데 요즘은 전보다 더 가까워진 태양도 그렇고 다들 건물 밖에서 국가에서 제공해 준 옷을 입어야 했으니까.

다행인 점은 벨트 형식이라 버튼을 누르면 위아래로 천이 감싸지는 형식이었는데 묘하게 우주복과 닮아서 우주복이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그걸 보통 등하교나 출퇴근 시에 입는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건물은 대체로 이중구조로 공사를 해서 안 좋은 공기를 차단하고 본격적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벨트를 다시 벨트 상태로 해야 했다.

물론 그 우주복은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은 빨도록 되어 있었지만 소재 자체가 튼튼한 편이라 그런지 웬만한 먼지들은 금방 내려갔다.

그런 식으로 나는 학교에 다녔고 그날, 그러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지 않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밖에 잠깐 경찰차가 지나가는 것 같지만 뭐 그런 일이야 그렇게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라서 늘 그랬듯이 신분증을 보여 주고 학교 문 안으로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입구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옷에 있는 먼지를 다 털어낸 다음, 벨트를 눌러서 평상복 차림으로 바로 보이는 문에 학생증을 찍어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가 조용한 것 같았지만 교실에 가 보니 평소랑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금세 내 자리로 가니 이번에 운 좋게 앞뒤로 앉게 된 내 앞자리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이상하게도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유가 있었다.

“야 오늘 단축 수업이래.”

“헐. 진짜?”

“어. 그래서 오늘 나 엄청 행복한 날임.”

“인정한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행복하다는 뜻이다. 솔직히 단축 수업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좋아하는 날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기대하면서 선생님을 기다렸더니 선생님이 조회 시간부터 바로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라. 오늘부터 당분간 수업이 없어.”

“뭐라고요?”

“선생님 진짜예요?”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한 마디씩 거든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어. 지금 전염병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져서 단축 수업도 안 하게 됐어. 우리 학교 말고도 다른 학교들도 다 상황이 똑같고. 그래서 너희들 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 부모님 부를 사람은 불러도 좋고. 경찰들도 곳곳에 보일 거니까 큰 걱정은 말고.”

걱정하지 말라니까 더 걱정이 된 나는 바로 시계를 통해 부모님을 호출했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특히 내 시계에 있던 유원이 알아서 잘 전달해 준다고 해서 안심했다.

생각보다 늦게 오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날 데리러 와주셨다. 아무래도 동생부터 챙기셔서 그런 것 같은데 먼저 차 안에 있던 동생이 나를 보고 손을 가볍게 흔들며 인사를 하다가도 심각하게 얘기를 꺼냈다.

“이러다가 우리 이대로 집에서 못 나가는 거 아니야?”

“설마.”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것 봐. 뉴스 지금 장난 아니야.”

장난 아니라면서 동생은 시계에서 뉴스를 검색해서 화면이 홀로그램 상태로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건 역시나 전염병 얘기, 예전 같은 그런 바이러스보다 심각한 거라면서, 인류가 낫기 어렵다며 벌써 사망자도 몇 명 생겼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뭔가 방법이 나오겠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러니까 더 방법을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부모님이 장을 봐야 한다는 말에 나는 수긍했다.

보니까 당분간 학교도 못 갈 정도면 심각하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오래갈 만한 식품 위주로 샀다. 무슨 생존물도 아니고, 솔직히 현실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한 일주일쯤 지나도 변한 게 없어서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 정도는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현실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했다.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얼른 일이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님들은 덕분에 바빠졌다면서 같은 건물에 있는데도 얼굴을 보는 일이 전보다 드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일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쓰러진 걸 목격하기 전까지는.

이미 방학 기간을 넘어 학교를 안 다닌 지 오래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진작 졸업에 가까워서 대학을 한참 생각하는 때일 테니까.

그래서 공부는 이미 어느 정도에서 놓아 버렸고 가끔씩 건물 주변을 지나면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간식거리를 가져다주는, 딱 그 정도의 일을 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냥 지나갔을 뿐이었다. 물론 실험을 하는 곳 가까이에는 함부로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난 장소에서, 내가 지나간 장소에 사람이 보였다.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사람이.

나는 그걸 보고 그냥 지나갈 정도로 무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른들이 근처에 있던 것도 아니고 일하는 건물과 생활하는 건물은 엄연히 나뉘어져 있어서 연락도 잘되지 않는 어른들을 부르는 것보다는 구급차가 더 빠를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누군가도 왔다.

얼마 안 가서 부모님이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으니까. 특히 평소에 냉철하던 어머니는 오자마자 나를 붙잡고 닦달할 정도였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일이라뇨?”

“구급차 말이야! 덕분에 일이 안 좋게 돼버렸다고!”

“그게 왜…….”

왜냐고 할 때였다. 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보고 웬만하면 눈에 띄지 말라고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픈 척을 하라면서.

나는 그걸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괜한 말을 하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에 근처에 서 있었다. 솔직히 눈에 안 띄는 건 무리 같았지만 아픈 척이라면 할 수 있겠지. 아버지와 같이 온 동생은 이미 환자 같아 보여서 나도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려고 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낯선 사람이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을 방문했다. 위에 층까지 이어져서 넓은, 다른 의미로는 정말 우리 가족이 같이 사는 곳에 굳이 이런 시기에 지인도 아닌 낯선 사람이 방문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여긴 애 방인가…….”

“굳이 여기까지 볼 필요는 없지 않나?”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그 말 그대로 할아버지도 평소와는 다르게 인상을 쓰고 계셨다. 그러나 같이 온 사람은, 정확히는 사람들이었지만 뒤에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보디가드 정도로밖에 안 보여서 앞서서 할아버지와 얘기하던 사람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도 웃으면서 말하는 게 확실히 어른들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좋지 않았는데 왠지 주변을 보다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아니 마주친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쯤 되면 대부분 누워 있어야 하는데… 여기 가족들은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는군요?”

“저래 보여도 요즘 힘이 없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시지.”

“아니, 힘이 없는데도 내버려 두는 겁니까?”

마치 전염되면 어쩌냐는 듯이 할아버지를 봤다. 그랬더니 할아버지 역시 대꾸했다.

“가족이니까! 어쨌든 얼른 볼일이나 보고 나가!”

이제는 큰소리까지 냈다. 하지만 남자는 그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제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르십니까?”

“내가 뭘 알겠나?”

할아버지는 삐딱하게 남자를 보았다. 하지만 남자 역시도 본인 할 말만 했다.

“대충 짐작은 하시겠죠. 제가 여기 이렇게 맨몸으로 왔다는 것 자체부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가족분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아까 신고한 저 애가 우선적으로 필요하죠. 이 시기에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애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본론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내가 한 실수를, 부모님이 바로 달려오셔서 따졌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미 한참은 늦은 것 같지만.

최근 일어난 병이 심각해졌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사람이 갑자기 쓰러질 정도였다는 건 나도 최근에서야 알았고, 그래서 나 같은 건강한 사람이 있다는 여파가 이 정도로 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남자의 뒤에 있던 보디가드 같은 남자들의 이유도 충분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나한테는 많이 억울한 일이었다.

그냥 사람 하나 살리고 싶을 일이 이렇게까지 연결될 수 있는 일일까.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다가온 남자는 나에게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이 나라를 구해 줬으면 좋겠구나.”

순식간이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붙잡은 건, 불길할 정도로 세게, 그러다가 한순간 내 팔에는 주사가 놓였다.

“조금만 참아.”

말은 상냥했지만 태도는 전혀 상냥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사기에 뭐가 있었는지 너무 피곤했는데 덕분에 나는 몸에 힘도 주지 못한 채로 끌려가야만 했다.

잠깐 불이 깜빡였던 것 같지만 나는 그걸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았다.

눈을 뜨는 것조차도 힘들었으니까.

“…이거 재밌는데.”

얼핏 중얼거리는 낯선 목소리,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유원이 내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뭘 했는지, 내가 실험 대상이 되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후에 죽고 싶어질 정도로 힘든 일이 생긴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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