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28)

11. * *

나는 그렇게 학생이 됐다.

교복은 간단했다. 이미지 파일만 적당히 복사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이 게임을 제작한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에게 학생들의 숫자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기억은 적당히 내 정보를 덧붙이면 됐다.

“그래. 열쇠를 찾고 있다고?”

“네. 창고 열쇠로요.”

모르는 캐릭터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저쪽도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봤더니 예상대로 별생각 없이 나한테 열쇠를 넘겨줬다.

“쓰고 나면 바로 돌려줘.”

“걱정 마세요.”

그 말 그대로 나는 창고 열쇠를 가지고 갔다. 옥상 문은 적당히 지나갔다. 애초에 여기 자체가 누군가의 말대로 진짜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창고 문을 잠그고 창고 위에서 누워서 하늘을 봤다.

하늘은 이렇게 생긴 걸까.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면서 숫자를 셌다. 아무리 나라도 이방인들이 어느 정도 왔는지를 알 자신은 없지만 A와 나는 연결되어 있어서 눈을 감고 시선을 연결하면 그들이 보인다.

전과는 다르게도 유원이 A를 만났다는 사실을.

감히.

그동안 했던 일을 기억하면서도 저렇게 뻔뻔하게 굴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고작 게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A는 언제나 그랬듯이 순진하게도 그를 믿었다.

정확히는 그들을.

대체 이번에는 무슨 속셈일까. 그나마 A의 마음이 조금 풀어져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또 맘대로 이용할 생각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많이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마침내 발걸음 소리가 들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지만 내가 있다는 티를 굳이 내지는 않았다.

작은 시간이라도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달칵거리면서 창고 문을 열려고 했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창고 문은 안 열릴 거야.”

“뭐?”

“내가 열리지 않게 해놨으니까.”

평생 열리지 않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이런 걸로 낭비할 틈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서 좋아 보이지 않는 표정을 봤다.

덕분에 기분이 괜찮아질 정도의 표정을.

“네가 일?”

“…너, 누구야.”

당연히 모르겠지.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이 기가 막혔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나는 오로지 한 사람만 생각했을 뿐이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 진정이 됐다.

증오하는 상대를 멀쩡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누군지 말해 주면 내 부탁 들어줄 거야?”

당연히 들어주지 않을 거다. 그리고 실제로 나를 의심했다.

뭘 믿냐고 물으면서.

그래서 나는 적당히 A를 언급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있던 경험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적당히 동정심을 내보이며 적당히 속일 수 있을 정도의 내용만 말했다.

어차피 상대 쪽도 거짓말을 할 테니까.

말하면서 느낀 건데 일과 유원, 둘 사이는 그렇게 믿음이 있는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유원 쪽은 속이는 게 있다는 게 뻔히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태 시간을 돌렸던 존재인 만큼 수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틈을, 둘의 신뢰를 이용하는 기회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적당히 나타낼 말을 고르기로 했다.

A가 바란, 원했기에 만들어진 나의 존재에 있어서 충분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내 이름은 강한이야!”

누가 뭐라고 해도 A가 지어준 특별한 이름, 그래서 이름을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들떴다. 인정받아서 더 좋긴 했지만 나는 어쨌건 둘 다 이용해야 했다.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건 A에 관한 것 외에는 없으니까.

물론 A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 아는 건 다르다. 그래서 둘을 따라가려고 했다. 챙기는 물건도 예상대로였지만 모른 척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물어보면서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챙기는 것들을 봤다.

역시 아는 것들이었다.

다만 거슬리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유원의 표정이었다. 특히 A가 부탁했다니까 어울리지도 않게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란 참 알 수 없었다.

A가 잡혀가도 꼼짝도 안 했으면서.

“귀신 얘기라면… A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아?”

“어디까지라니?”

“어떤 부탁을 했냐는 얘기야.”

뭐가 저렇게 급할까. 아니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유원이 가식적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이 A와 유원이 만났다는 일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도.

A한테는 그런 배려 같은 건 해 주지 않았으면서.

“죽여달라는 부탁.”

“…뭐?”

“A는 자신이 죽고 싶다고 했어.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다고.”

내 표정은 아까보다는 진지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짓된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다. 굳이 분위기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유원은 그 근처에 있는 일의 기분을 풀어주다 보니 나아졌지만 알게 뭔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런 상황까지 여유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히 유원 없이 귀신에 빙의한 캐릭터를 상대하는 건.

그래서 잠시 고민하나 싶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하지만 죽으면, 죽으면 과연 모든 게 끝날까?

여태 그랬듯 죽는다고 전부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일을 붙잡았다.

“피해!”

사실 귀신도 진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이 바로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롭게 만든 사람들에게 죗값을 치러야 할 테니까.

그래서 생명에 지장이 갈 만한 일에만 도와줬고 실제로 어느 정도 동료로서 끼어들 틈은 됐다.

입을 맞추는 척을 했던 건 어느 정도 유원을 도발하기 위한 것도 있었고.

제일 속을 모를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숭이란 내숭은 다 떨면서 모른 척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할 수 없는 누구 때문이라도 맞을 걸 예상하면서 도박을 걸었고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역시 내가 알던 것보다 유원과 일은 연관점이 더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과연 저 정도로 붙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정도로 쫓기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뻔한 거짓말인지, 맞은 건 그럴 수 있다 쳤지만 역시 기분은 나빠서 일부러 도발했다.

“그렇다면 아까도 왔어야지. 안 그래도 나도, 쟤도 힘들었는데.”

명백하게 둘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면서 의심도 생기게 하는 말, 그러면서 유원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말을 했다. 당연히 둘의 표정이 다 볼만해서 나는 이 정도로 지금은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봉인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A가 힘들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 순순히 움직여 줬고 그 봉인이 무사히 끝난 것을 확인한 나는 일부러 둘이 떨어지는 때에 유원에게 말을 걸었다.

“넌 누구야?”

“그러는 넌, 내가 아는 유원은 그렇지 않은데.”

“난 너를 오늘 처음 보는데?”

“…그렇겠지.”

유원 역시도 나를 보니 조금 당황한 게 죄다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나았다. 애초에 모든 걸 아는 건 너무 치사한 일이니까.

게다가 본인은 모르는데 나는 본인을 알고 있다고 하니 더 싫어하는 게 보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대충 성격을 알 것 같기도 해서.

특히 그사이에 들린 걸음 소리 때문이라도 나는 최대한 웃으려던 것을 감추고 물었다.

“어제, 너도 A를 만났지?”

“만났지.”

“근데 걔는 모르는 눈치던데… 거짓말이라도 한 건가?”

“아니.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역시, 나는 그 말에 유원도 나처럼 일이 왔다는 걸 눈치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바로 등을 돌리고 일에게 갔으니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둘 다 완전하지 못한 존재라는 건 알았으니까.

그래도 나는 내가 많은 것을 모르는, 그저 A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이렇게까지 방해가 될 줄은 몰랐다. 가는 족족, 학교에서의 봉인이 끝나고 귀신의 집에 올 때까지도 아는 게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여기에 마치 뭐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 또 나만 모르는 거야?”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 처음부터 일부러 말 안 하는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일이 유원에게도 그랬듯이 나한테는 더 말하지 않는 게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말해도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아서 유원에게까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야, 너도 알지? 쟤가 숨기는 거.”

“뭘?”

“가식적으로 굴지 말고.”

“글쎄.”

“하여간 나쁜 것들.”

이렇게 나쁜 사람이 더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했기에 이대로는 진전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적당히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희생해서 답을 하도록 유도해 보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나라면 A가 갈 만한 장소를 알고 있는데.”

“뭐?”

“보니까 A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슬슬 여기에서 뭘 찾는 건지 말해 줬으면 좋겠어서. 제대로 말해 주면 안내해 줄게.”

물론 이걸 말하면 내가 다른 걸 알고 있다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유원도 어느 정도 의심받는 시점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방해꾼이 반가운 것도 아니었지만.

“그걸 우리가 꼭 들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왜?”

받은 만큼 준다는 걸까. 어쨌든 유원이 나한테 비호의적인 건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하긴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거니까. 그래서 보니 역시 유원은 치사하게도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A가 갈 만한 데를 아는 건 너뿐만이 아니니까.”

“아, 그러셔?”

“그래. 내가 가라고 한 거거든.”

“네가?”

“그래. 위험하면 가라고 했어.”

“왜?”

“이곳을 태울 거니까.”

“…여기 그냥 집이잖아?”

“그래. 그리고 폐가면서 A를 괴롭히는 귀신이 있는 집이지. 어쩌면 여기를 태우면 해결될지도 모르니까.”

심지어 집 자체를 태우려고 하다니, 여태 봤던 유원이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진짜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태도라 더욱 수상했다.

“왜 그걸 이제 말하는데?”

“사정이 있었거든.”

“그 사정 안 말해 줄 거지?”

“그래.”

“그래?”

“그래.”

진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질 수 없으니 웃어야 했다. 저쪽도 마냥 좋은 건 아닐 테니까.

“근데 이걸 어쩌나? 네가 말해둔 장소라고 해도 정확히 아는 건 나밖에 없거든.”

“그래?”

“그래. 그러니까 너희는 내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일이가 결정하는 수밖에.”

미루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반대로 나는 피하지 않았다. 이건 내 ‘성격’일까.

뭐, 상관은 없지만.

“일단은… 알겠어. 강한도 같이 가자.”

“오오, 라고 할 줄 알았겠지만 어차피 같이 갈 거야.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닐 텐데?”

그래, 나는 그들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방인이 뭘까, 아니 그걸 굳이 ‘이방인’이라 정의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하는, 또 알아야 내가 질 수 없다는 본능적인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알았어. 말해 줄게.”

결국 허락의 말도 듣고서.

하지만 생각보다 다를 건 없었다. 게다가 일이 자기를 따라오라는데 보이는 게 병원이라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묻기도 했다.

“여기에 우리가 올 만한 이유가 있어?”

“왜 그러는데?”

“아니, 바로 A를 구하러 가도 되잖아?”

또 전처럼 다른 단서를 구하는 데에 정신이 팔린 걸까. 물론 여긴 잘 모른다. 하지만 A가 본 것들 중에서 병원도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저쪽도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왜 그렇게 A를 신경 쓰는데?”

“왜냐고?”

“그래. 나도 A의 친척이니까 A가 걱정되긴 하지만… 적어도 너처럼 그렇게 누군가를 몰아세우지는 않아.”

친척이라니, 저렇게 말할 때는 지나지 않았을까. 내 경험으로 유원은 전혀 A의 친척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친척을 챙겨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무 기가 막혀서.

“그래. 네가 A의 친척이니까 A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A의 친척인 너보다 내가 걱정을 더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솔직히 나도 이해가 안 가.”

그래. 나도 걱정하는 걸 정작 친척인 본인이 저렇게 느긋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일도 솔직히 밉지만 유원이 더 미워 보이는 건 그것 때문일까.

하지만 정작 그 상대는 의미 모를 말만 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

“무슨 말이야?”

“나도 A는 걱정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일이 괜히 여기 왔겠어? 일이도 A를 걱정하고 있다고. 그렇지?”

“…그래.”

또 일에게로 말을 돌리면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곧 A를 위한 일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가소롭기도 했다.

이제 와서 A를 조금 생각하는 척을 해 준다는 게.

“…의외네?”

“뭐가.”

“너, 솔직히 A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

그 말 그대로 그들에게는 A에 대한 감정이 별로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대하는 것처럼, 끝날 때도 A를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에 A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

“뭐, 솔직히 나도 얼마 본 건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처음 본 애가, 그 애도 날 처음 봤을 텐데 굳이 나한테 부탁한 것도 그렇고 죽여달라고 하는 것도 걸려서 온 거야. 어쨌든 신경 쓰이니까.”

처음부터 신경 쓰인 거지만. 그러나 굳이 그것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도 A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무자비한 인간들에게.

어쩌면 그래서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애매한 사이는 결국 그런 거였다.

서로에게 좋지 않은.

그래서 병원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끝내고, 움직이고, 눈을 감고 위치를 느끼고 나서 건물에 올라가는 그 걸음이 어떨지는 모르고 그저 A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A가 바로 보이지 않았다.

만났을 때는 이미 귀신한테 몸을 어느 정도 먹힌 상황이라 좋지 않았고 그래서 제대로 봉인할 때까지는 협력해야만 했다.

아마 그래서 귀신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A에 대해 알 수 있어.”

“뭐?”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윽… 저것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 그래서 나는 놀라운 것을 알게 됐……!”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단숨에 소리를 죽였다. 귀신은 A에게는 해악인 존재니까. 어차피 죽은 자는 봉인할 수밖에 없다.

게임이니까 쉽겠지, 솔직히 귀신을 봉인한 후로 A도 걱정이었지만 다른 것도 걱정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 살아남았지. 일단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

“왜?”

“그냥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고.”

“…그래.”

“혼자 도망가지 말고. A가 깨어나면 봐줘.”

“알았어.”

그사이에 A가 깨어날지는 모르겠다. A는 괜찮을까, 솔직히 말하면 깨어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 좀 더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선명하게 들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에 내가 많이 생각했던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발은 조금 무거웠다.

이 작전은 A한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뭐라고? 나 강한이라는 사람 전혀 모르는데?”

또 기억을 잃었을 테니까.

나는 가슴이 막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야 했다.

“벌써 일어났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특히 일의 심장을 찌를 때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또 살아나서 A를 괴롭힐 테고, A는 그보다 많은 시간을 힘들게 당해왔는데 여태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분노는 뜨거웠다.

이게 분노였다.

애써 A를 안 보려 하고 나에 대해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다. 일은 그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곧 오게 된 유원도 알게 됐다.

A가 나한테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A는 보냈다.

아니, 보냈다고 생각했었다.

“대충 상황 설명은 들었어.”

“…뭐라고?”

“귀신이었다며. 근데 너 지금은 사람이라면서. 그래서 이곳을 게임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들었어. 그래서 특정 사람한테 집착하는데 그게 나라더라. 정말이야?”

그 말에 나는 바보같이 안도했다. 진실을 몰랐으니까.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둘 역시도 A에게 비밀로 할 셈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이야. 네 덕분에 내가 제대로 태어났으니까.”

“신기하네… 솔직히 예전 같으면 나는 너 보면 친구로 지냈을 것 같아.”

“친구? 정말……?”

친구라니, 친구라는 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다.

그다음에 바로 안 좋은 말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친구들을 저렇게 피투성이로 해놓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나는…….”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 너도 그걸 알겠지? 내가 굳이 여기로 다시 온 건 네가 네 죗값을 받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야. 너 정말로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안해.”

틀린 말은 없었다. 아니, 여태 A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은 다 옳았다. 확실히 나는 내가 하는 일이 A를 위해서라고 생각했으니까.

정작 A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일을 저지른 셈이었으니까 나는 결국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야.”

“…….”

“네가 저지른 게 있다면… 꼭 값아야겠지. 그게 상대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최선이라,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여태 제멋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한 일이 A를 위한 게 아니어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래… 내가 네 의사를 멋대로 해석한 건 인정할게. 하지만…….”

A를 위한 일이니까 이번에는 A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보니까 그다음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

“안다고?”

“그래. 사실 너희들이 뭔가 숨기려는 것도 알 것 같아. 나도 듣긴 들었거든… 음.”

여태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A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화라도 낼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는 흐느끼던 모습이 생생한데도 A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면서, 일을 친구라고 하고 이 세계를 자신의 세계라고 말했다.

나는 A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A가 원한다면 적어도 죗값 정도는 치르고 싶었다.

하지만 A는 멀리 가지 않고 나를 데려간다면서 올라온 옥상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 나와 마주쳤다.

“강한.”

“…어.”

“나는 사실 점점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어.”

“뭐……?”

“기억, 돌아오고 있다고. 지금은 너에게 이름을 붙여준 그 순간까지… 아마 이 세상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얘기겠지.”

“…넌 괜찮아?”

걱정됐다. 아무리 내가 세계를, A의 고통을 없애고 싶다고 생각했어도 그건 A의 생각이 아니었다. 게다가 A는 이게 자신의 세계라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 됐다.

그런데 어째선지 A는 웃고 있었다.

“괜찮아.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는데.”

“하지만 나는…….”

나는 그저 그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속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A는 말해왔다.

“나는 이제 네가 다른 걸 알아. 나와는 다르게 강하지.”

“너도 강해.”

“알아.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내 옆에 있어 줘. 그게 네 죗값이야.”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면 울 것 같았으니까. 나는 그대로 겨우 손을 잡았다. 그랬더니 손이 잡히면서 A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고마워. 내 약속을 들어줘서.”

“…그래.”

나는 그 이상의 대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입을 열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세계는 끝나고 우리는, 이 세계는 또다시 반복되지 않고 사라질 테니까.

그러니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달은 감정을 느끼며 게임의 끝을 받아들였다.

8. Ending (1)

게임은 끝났다.

눈을 뜨고 나서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투명한 유리에 비친 천장이었다. 게다가 나는 무슨 산소 호흡기 같은 걸 달고 있었는데 답답해서 떼어놓았더니 순식간에 유리로 되어있는 무언가가 열렸는데 그사이에 숨쉬기가 어려웠는지 점점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아… 대체, 뭐야…….”

겨우 숨을 고르고 났을 때쯤에는 상체는 일으킨 채였다. 그래도 일어난 게 나아서, 몸이 둔해졌는지 조금 움직이긴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유리관을 빠져나와 보니 나는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뭐야 이게…….”

내가 나왔던 유리관과 비슷한 유리관들, 그것도 이 방에는 총 5개가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모두 내가 봤던 얼굴들이었다.

내 왼쪽에는 부반장,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순서대로 귀신의 어머니였던 여자 의사와 체육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뭐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몰라서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그들이 있는 관을 보다가 움직여 방을 나갔다.

“이건… 설마 게임이랑 비슷하게 만든 건가?”

복도는 병원에서 봤던 복도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 똑같았다. 왠지 거기에서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이거였냐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게 진짜 현실이 맞나 싶었다.

정말로 이게 현실이 맞는 걸까.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심장은 긴장감으로 크게 뛰고 있었다.

가짜 몸이 아닌 진짜 몸에서만 나올 수 있는 뚜렷한 긴장감이 느껴져서, 현실이 아니라기에는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또 그만큼 나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여겨졌다.

왜 나는 여기에 있나 싶어서.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복도를 걸어 방, 그것도 이상한 느낌이 드는, 다른 방과는 다르게 조금 큰 문이 달린 방으로 가서 그 앞에 손을 댔더니 문이 열렸다.

드르륵.

자동문인지 순식간에 문이 열렸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서.

나는 몇 발자국을 걸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걸음이 멈춘 순간 기둥이 보였다.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그 안으로 사람이 보이는 기둥이.

“…유원?”

이건 진짜일까. 아니 아까 봤을 때도 진짜였다. 다른 사람들도 보였으니 유원이라고 해서 진짜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왜 여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있느냐 하는 거였다.

혹시 자신처럼 깨울 수 있는 걸까.

나는 아무런 확신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 아래에 보이는 버튼을 눌러보았다.

‘암호를 입력하십시오.’

그리고 놀랍게도 버튼을 눌러서 그 옆에 무언가가 열려 보이는 문구, 암호를 입력하라는 말 그대로 그 아래에는 작은 알파벳 버튼들이 보였다.

“암호…….”

이런 건 전혀 모른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시선이 갔다. 내 기억에 이상이 있는 걸까, 나는 유원일 수 있는 사람이 보이는 기둥을 다시 몇 초간 보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갔다.

바로 보이는 옆방으로.

아무래도 이 근처에는 뭔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 나는 깨어나서 직감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기억나는 건 없지만 분명 이 방에 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은 생각보다 평범한 거였지만 단 하나, 평범하지 않은 게 보여서 놀랐다.

“…일기장이잖아.”

A의 일기장과 다르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바로 첫 장을 펼쳐보니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조금은 머뭇거리다가도 나는 이걸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게임에서 나온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일기를 봤다.

[20xx년, 9월 4일 h요일.

요즘 세상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였고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가족들은 서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와 여동생은 대체로 방에서 보내다가 나는 간만에 유원과 놀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온 것 때문에 우리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국가와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우리 가족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걸 확인하더니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그게 찝찝했지만 부모님이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유원이라니, 내가 예전부터 유원과 알던 사이였던 걸까. 같이 살았던 건가 싶기도 해서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일기를 더 보기로 했다.

[20xx년, 9월 10일 n요일.

사는 곳을 옮긴 지 며칠이 되었다. 무슨 국가 기관에서 운영하는 장소라는데 딱 봐도 과학자들이 많은 건 왠지 모르게 의심스러웠다.

물론 전에 있던 곳보다는 더 깨끗하고 좋은 환경이고 식사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보다가 오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기다리는데 그들이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자주 놓아야 한다고 했다.

인류를 위해서라면서.]

[20xx년, 9월 13일 d요일.

결국에는 우리 가족의 피까지 뽑아갔다. 무슨 실험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데 그게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일기의 경우에는 딱히 허락할 필요도 없었지만 솔직히 불안하다.

하지만 더 불안한 건 나는 이미 관찰의 대상이라는 사실이었다. 또한 오늘 과학자 한 명이 쓰러진 것도 알고 있었다.]

[20xx년, 9월 20일 u요일.

예상대로 몇몇 과학자들이 이유도 없이 쓰러지는 일들이 생기자 급하게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주사를 놓지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어쩐지 불안했다.

왜일까?]

점점 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우리 가족이 있던 집은 여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일기는 내 일기인 것 같았다. 그럼 아마 이 방이 내 방이 아닐까.

대충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지금 이 세상은 전염병이 존재했고, 그 병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아서 이쪽에 온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완전히 확실한 건 아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내 가족은 어디 있는 걸까.

나는 힌트가 되는 게 일기장밖에 없는 것 같아서 더 보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끊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찢어진 흔적이 보였으니까.

게다가 맨 뒤에는 무슨 칩 같은 게 보였다.

“뭐지…….”

일단 뺐다. 그랬더니 뒷장에서 한 장이 더 열렸다.

그래서 보니 여러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마치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글들이.

[만약 이걸 본다는 건 내가 유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겠지.

이 칩에는 기억이 있어. 그리고 아마 안 좋은 것들도 잔뜩 있겠지. 이 안에 사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너도 뭔가 눈치챘을 거야.]

나는 거기까지 보고 멈췄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사람 하나 없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주위에 왜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지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무섭다고 끝날 일이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는 좀 더 보기로 했다.

[기계는 다시 작동시킬 수 있을 거야. 게임도 분명 다시 되겠지. 그러니까 웬만하면 그 칩을 꽂지 마.]

기억을 찾지 말라고 벌써 몇 번이나 경고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계속 읽고 있었다. 아마도 과거의 나, 유원이 알고 있다던 나는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 건지 나는 마지막 문장을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억을 찾고 싶다면 목 뒤에 칩을 꽂도록 해. 더 이상 말리지 않을 테니까.]

그제야 나는 목 뒤쪽에 파인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라 놀랐지만 나는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과거의 내가 기억을 찾은 것처럼 나 역시도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또 후회해야 하는 길일지도 모르겠지만.

일기에 쓰인 것처럼 방법을 말해 줬다는 건 나 자신이 기억 찾는 쪽이 더 좋다는 얘기가 아닐까.

내 멋대로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나는 결국 침대에 앉아 목 뒤에 칩을 꽂았다.

그게 어떤 진실을 가져올지도 모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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