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1/28)

10. * *

다시 생각해 보면 유원이 게임 캐릭터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게임을 안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은 있어도.

그런 교묘한 틈을 이용하듯이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도 강한에게서 나를 지켜내듯 움직이는데 그걸 보며 강한이 비웃었다.

“너, 네가 죽으면 이 세계는 사라질 거라며. 근데 네가 다쳐도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지 않아?”

“조건이 필요하니까.”

“조건?”

“그래. 너는 아니고.”

“…그럼 쟤겠네.”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면서 동작을 멈췄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표정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렇게 공격을 받고 있던 거였어? 쟤나 지키려고.”

“아니. 그러지 않아도 지켰을 거야. 나한테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너한테도 특별한 사람이 있지 않아?”

“특별한 사람?”

“그래. 마침 오던 길에 만났지.”

그 말 그대로 A가 보였다. 그러고 보면 A는 구급차라도 부른다고 했는데 여태 소식이 없었다. 그사이 유원을 만나서 유원이 데려왔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알 만한 상황이었다.

놀란 것과는 별개로.

“A…….”

강한 역시 놀랐는지 이름을 언급하면서는 입을 다물고 다가오는 A를 그저 보기만 했다. 그래서 둘은 순간 마주쳤는데 어쩐지 A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충 상황 설명은 들었어.”

“…뭐라고?”

“귀신이었다며. 근데 너 지금은 사람이라면서. 그래서 이곳을 게임처럼 인식하고 있다 들었어. 그래서 특정 사람한테 집착하는데 그게 나라더라. 정말이야?”

그 말에 나는 유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유원이 A가 강한에게 집중하는 사이에 잠시 입가를 가리고 웃으면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듯이 검지 손가락을 코앞에 갖다 댔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어차피 말하지는 않을 생각이었지만.

어쨌건 나쁜 상황은 아니었고 조금은 찝찝하더라도 나는 이 자리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야. 네 덕분에 내가 제대로 태어났으니까.”

“신기하네… 솔직히 예전 같으면 나는 너 보면 친구로 지냈을 것 같아.”

“친구? 정말……?”

기대하는 눈빛, 강한은 그랬다. A에 관해서만 호의적이었던 만큼 거짓말도 잘했다. 솔직히 강한이 거짓말에 어울리면서까지 A를 속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덕분에 나는 이 상황에서 고통도 덜 느끼고 나아질 방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A를 이용해야 했다.

어쩔 수 없지만, 또 그만큼 나는 아까 느꼈던 징그러운 고통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A가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친구들을 저렇게 피투성이로 해놓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나는…….”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 너도 그걸 알겠지? 내가 굳이 여기로 다시 온 건 네가 네 죗값을 받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야. 너 정말로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안해.”

강한이 사과를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A 역시 아까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이제는 조금 풀어진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미안하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야.”

“…….”

“네가 저지른 게 있다면… 꼭 값아야겠지. 그게 상대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문득 눈이 마주친 건 과연 우연일까. A는 나와 유원을 스치듯 마주하다가 다시 강한을 바라보며 말하는 의미는 결국 하나였다.

죗값을 치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래… 내가 네 의사를 멋대로 해석한 건 인정할게. 하지만…….”

“알아.”

“안다고?”

“그래. 사실 너희들이 뭔가 숨기려는 것도 알 것 같아. 나도 듣긴 들었거든… 음.”

뺨을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듯 내뱉은 A는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굳이 살필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강한 역시도 A가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자 어느새 A는 말을 꺼냈다.

“나는… 그렇다고 해도 너희가 싫지는 않아.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믿기 어려웠다. 게임 캐릭터가,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게임에서 제일 힘들어 보이던 A라면 충분히 미워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물어 버렸다. 그러자 A는 누군가처럼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물론 아예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같이 있었던 기억을 전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 게다가 아까 네가 한 말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하지만…….”

“됐어. 그 답답한 소리! 이게 뭐든 간에 어쨌든 내 세상이었고 내 전부였어. 당연히 싫은 일도 많았지만… 적어도 나한테 너는 친구야.”

친구라는 호칭은 영 어색했다. 솔직히 아무리 설정에서 봐도 친구라고 하기에 A와 반장, 두 사람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제멋대로였지만 A의 방식대로라면 아마 우리는 친구라는 관계로 정의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만 갈게. 강한도 데려갈 거야.”

“어디로?”

“대화 좀 나누려고. 너희도 할 말이 있어 보이니까. 유원은… 나중에 나한테 한 대 좀 맞았으면 좋겠고.”

“얼마든지.”

“…네가 그러니까 때리고 싶은 거야. 그래도 가족이니까 참는 거고.”

“나도 널 가족으로 생각해.”

“…나도.”

둘은, 아니 적어도 A는 유원을 진짜 가족처럼 생각하는 듯이 묘하지만 약간은 호감이 담긴 것 같은 미소를 보여 줬다. 하지만 유원은 과연 무슨 생각일까. 나는 도저히 유원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A의 말이 맞았다.

나는 유원에게 물어야 할 것이 많았다. A는 몰라도 적어도 유원에게는 그랬다. 나한테 속였던 게 있으면, 그것도 게임 캐릭터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래서 나는 A가 간 후에 바로 유원을 보고 물었다.

“넌 대체 뭐야?”

어떻게 보면 정직한 질문으로.

“글쎄… 너처럼 진짜인 사람은 아니야. 그렇다고 게임 캐릭터도 아니지만.”

“그럼 아까 강한처럼…….”

“바이러스도 아니지.”

“…그럼 뭔데?”

자꾸만 빙빙 돌려서 답답했다. 그랬더니 유원은 나를 보며 난처하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

절대 말해 줄 수 없다는 듯이.

“…나한테 말해 줄 수 있는 건 뭔데. 여태 날 속인 거야?”

“의도는 아니었지만… 네가 그렇다고 느꼈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말해 주고 싶어.”

“뭘.”

“네가 여기로 나가는 게 더 위험하다고.”

“…근데 게임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분명 유원의 입으로 직접 게임이 망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보는데 유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굳이 게임이 아니라도 되잖아.”

“게임이 아니라도?”

“그래. 게임을 나간다고 해서 바로 현실에 간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난 현실에 가고 싶어.”

“그래. 넌 항상 그렇게 말했지.”

유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이, 태도가 어쩐지 나를 잘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그래서 문득 전에 물었던 일이 생각났다.

도대체 게임은 몇 번 반복했던 걸까.

그런 걸 생각하면 이 게임은 끝나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왜 여기로 다시 온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어차피 별로 알지도 못할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가는 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까 말했듯이 나를 죽이면 돼.”

“…넌 그래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나도 꽤… 지치기도 했고.”

“…꼭 내가 죽여야 되는 거야?”

“그래. 너 외에 다른 사람은 찔러도 소용없거든.”

“대체 왜…….”

“글쎄, 왜일까.”

아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말해 주지 않겠지. 그리고 나 말고는 안 된다는 게 굉장히 찝찝했다. 이게 정말 프로그램이라면, 유원을 죽이는 걸로 설정됐다면 그건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 설정해 놨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자, 메스.”

유원은 굳이 칼까지 쥐여 준다. 의료용 도구고 게임에서도 ‘의료용 메스’ 따위로 나오겠지만 이건 너무 생생했다. 만약 유원의 말대로라면 나는, 누군가는 이런 짓을 유원에게 또 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런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이기적인 마음 때문인지 나는 유원이 바닥에서 주워준 메스를 받아들고도 바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이게 비록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넌 진짜 이대로 끝나도 괜찮아?”

그러니까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괜찮아.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웃어 보이면서 뾰족하게 보이는 끝을 가슴이 있는 곳으로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확실하게 설명했다.

“여길 찔러야 확실해.”

“…….”

“얼른.”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무서웠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분명 아까 전에 사람을 칼로 해친 적이 있었지만 내 몸은 유원에게까지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하지는 못 했다.

그냥 떨고만 있었다.

“내가 도와줄까?”

“…아니. 하지만 난… 너한테 정말로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왜 없어? 네가 내 눈앞에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고 있는데.”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좀 답답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왜 이렇게까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걸까.

그걸 묻는 건 오히려 독이었다. 나도 내가 이기적인 건 알고 있다. 실제로 나는 이 게임에서 안 나겠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유원보다 바깥의 ‘진짜’ 내 세계가 더 우위에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또 다른 이기적인 감정이었다.

“마지막으로 해 줄 건 없어?”

“글쎄… 그러면 내가 맘대로 너 만져도 돼?”

“그건…….”

“농담이야. 그냥 안아줘.”

처음 봤을 때처럼 유원이 팔을 벌렸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다가 근처에 칼을 두고 천천히 유원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안았다기보다 안긴 꼴이지만 그래도 품은 따뜻했다.

게임 같다고 생각되지 못할 정도로.

이게 꼭 ‘가짜’여야만 할까. 나는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물론 이 세상이 게임이라고 해도 어쨌건 나는 고작 며칠, 어떻게 보면 몇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겪었고 알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몰라도 유원이 날 위해서 많은 걸 해 줬다는 사실도.

“고마워.”

“아니 나야말로 고마워.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고민을 좀 했지만 뭐 얼마나 더 만지겠다고. 게다가 나한테 죽으려고까지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죽기 전, 유원이 원하는 건 어느 정도 맞춰주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될 텐데.”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유원은 또 한 번 나한테 입을 맞췄다. 순간 마주친 눈은 마주 보는데 잡아먹힐 것 같았다.

아니, 정말로 잡아먹혔다.

“흐읏…….”

숨을 쉬기 어려웠다. 숨이 섞이는 느낌은 결국 입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서 어떻게든 해 보려는데 덕분에 살이 더 스치는 것 같은 느낌은 이상했다. 그 와중에 유원이 등을 받치던 것을 쓰다듬다가 내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정확히는 넣으려다가 말았지만.

“하아… 하아…….”

“…그러니까 함부로 허락하지 말랬잖아.”

내 잘못이라는 듯이 내 얼굴을 보더니 입술을 만졌다.

“빨개졌네.”

“…너 때문이잖아.”

“그래. 그러니까 이제 날 죽이면 돼.”

푸욱―

“너…….”

“아까 그건 네 칼이었어. 이건 내 칼이지.”

굳은 피가 묻어있는 칼, 내가 가지고 있던 메스와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어쨌건 유원은 내 손을 잡아 칼을 쥐게 만들었고 그 상태 그대로 스스로를 찔렀다.

스스로의 가슴을.

“…왜…….”

“하나 더 말해 주면 너는 언제나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너는 여기보다는 밖이 좋을 테니까… 그러니까 약속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어겼네. 미안해.”

유원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마찬가지로 눈물도 흘렀는데 처음으로 본 모습이라 그런 걸까, 나는 그걸 붙잡으려고 했지만 내 몸은 잘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사이에 유원이 입 모양으로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일아.’

아마도 내 진짜 이름을.

외전. 강한

기억의 시작은 저택이었다.

그것도 작지 않은 큰 저택, 아무렇지 않게 그건 움직였고 늘 그렇게 한다는 듯이 지하실에 들러서 이것저것 확인했지만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택 안을 열심히 둘러본 A의 표정은 영 밝지 않았다.

귀신이 붙었으니까.

귀신은 A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A는 어느 정도 타의였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귀신에 의해 낡은 집에 가둬지고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그러나 결국에는 구출되어 잘 된다는 그런 흔한 게임 속의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또 한 번, 아니 여러 번 반복되는 순간 흔한 것과는 멀어졌다.

A는 늘 그랬듯이 낡은 회색 벽 근처에서 흐느꼈으니까.

“…힘들어…….”

또한 혼자 있을 때는 주로 그런 말을 했다. 나가고 싶다거나, 죽을 것 같다든가. 그리고 늘 그랬던 대사들은 그때만큼은 조금씩 달랐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A에게 있던 것 중에 하나였다. A는 몰랐겠지만 누군가가 A에게 나를 추가로 설정해 놓았다. 그래서 나는 A의 행동을, A의 감정을, A가 했던 모든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A일 텐데,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텐데 A가 웃는다고 생각했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느껴졌을 때는 기분이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날도 그랬다. A는 반복된 시간 속에서 비슷한 말을 꺼냈다. 늘 그랬듯이 웅크리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어둠을 속삭였다.

언젠가와 같은, 그럼에도 다른.

“…강해지고 싶어…….”

흐느끼듯 A는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답답한지 문을 보면서도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왜 나는, 왜 이렇게 돼야 하는 거지… 나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 아무 잘못도 없는 A가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것은 부당했다.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가는 ‘이방인’ 역시도.

이건 잘못됐다.

나는 A를 안아 주고 싶었다. 구해 주고 싶었고, 이런 일이 없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커졌다. A의 의지와 나의 바람이 만난,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내가 만들 수 있는 오류는 나를 ‘바이러스’로서 재구성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진짜 캐릭터처럼.

“…됐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 걸까.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생각해 봤자 늦은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처음에는 이런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게다가 처음은 A와 함께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특히 날 한순간에 알아봤으니까.

“너는, 나구나.”

“날 알아?”

“그래…. 날 만든 창조자가 너를 심어놨거든.”

A는 말했다. 자신의 창조자는 자신의 의지, Adventure(모험)로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이것을 심어놓은 것이라고.

그래서 A는 점점 의지를 가졌다. 느린 속도였지만 분명하게도 자신의 의지와 기억력이 선명해진다고, 그래서 내가 태어난 순간이 되어서 비소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세 달라진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너는 내 유일한 편이야.”

“맞아. 네가 슬프면 나도 슬퍼.”

내가 긍정하자 A는 놀랐다.

“내 감정을 너도 느끼는 거야?”

“그래.”

“하지만 나랑 너는 생긴 게 너무 다른데…….”

A는 유심히 나를 봤다. 나는 그런 A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A가 나를 불렀을 때는 생각보다 놀랐다.

“…네 이름은 강한이야.”

“강한?”

“그래. 강한… 나는 아마 또 잊어버리겠지만 만약 기회가 있다면… 나를 구해… 아니 죽여줘.”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그래. 나는 죽고 싶어. 이런 괴로움을 또 낳고 싶지 않아.”

A는 괴로운 음성으로 나한테 말했다.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 나는 A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알았어. 꼭 너를 죽여줄게.”

또 잊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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