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9/28)

8. * *

나는 그게 결코 내가 원하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A.”

“안녕, 우리 오랜만이지?”

“오랜만이긴, 너 귀신이잖아.”

“아니야……. 지금은 A야.”

“뭐?”

“사정이 있어서 그래. 지금 부적 가지고 있지? 봉인해 줘.”

“하지만…….”

“부탁이야.”

간절한 눈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른 애들 만나면 얘기해 줄게.”

“…둘이서 온 게 아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으윽!”

A는 휘청거렸다. 아프다는 듯이 신음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흔들거리다가 이윽고 멈췄을 때는, 곧 고개를 올려 나를 봤을 때의 웃는 표정은 내가 저절로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벌써 눈치챘어?”

눈을 크게 뜨다가 가늘게 뜨며 웃은 건 A였다. 하지만 속은 분명히 귀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본능적인 움직임일 수 있겠지만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의 귀신을 마주치는 건, 그것도 사람을 죽이겠다는 존재를 마주하는 건 무섭고 끔찍한 일이니까.

“어, 어떻게 된 거야…….”

“뭘?”

“A… 진짜였어?”

“아, 그거? 맞아. A는 워낙 나랑 오래 있다 보니 영력이 늘어서 말이야… 그래서 가끔 이렇게 튀어나오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는 좋아.”

그렇게 말한 귀신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혼란스러웠다. 애초에 A가 학교 근처에 온 것도 그럼 A가 맞을까.

A가 괜히 행방불명된 게 아니었다. 물론 귀신이 A를 데려가긴 했지만 그만큼 빠져나가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만큼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부적? 그딴 걸로 날 막겠다고?”

“그래.”

버텨야 했다. 아니, 적어도 시간을 끌고 도망갈 시간은 줘야 해서 나는 어떻든 간에 부적을 꺼내 갖다 댔다.

찌지직.

순식간에 찢어졌지만.

“이건 무슨…….”

“이런 건 역시 몰랐나 봐?”

“뭐?”

“내가 A가 가끔씩 튀어나와서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 시간은 A를 위해 써주기로 했어. 근데 나를 그런 부적으로 쫓으려고 하더라고. 물론 한 번은 봐줬어. 근데 나 몰래 사라졌거든…….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힘을 키웠어.”

A가 나갔을 때, 그때가 어떤 때였는지 짐작이 갔다. 아마 학교 근처로 나왔을 때가 아닐까. 그래서 이 귀신도 예상외의 일을 벌인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리카락도…….”

“머리카락은 힘을 키울 매개체일 뿐이야. 그게 ‘내’가 되지는 않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게임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지 않았다. 그건 정말로 게임 같았고 내가 부적을 더 꺼낼 생각을 하지 않고 보자 귀신은 웃으면서 더 설명해 줬다.

내가 더 들을 것이 있다는 듯이.

“사실 내가 이렇게 강해진 것도 어떻게 보면 네 덕분이야.”

“뭐?”

“여태 네가 해온 일들을 생각해 봐. 만약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그저 죽은 여학생으로, 잠시 남았다가 사라지던 사람으로 남았겠지. 근데 너희들 덕분에 나는 기억에 남았어.”

“…….”

“아마 이쯤이면 예상했겠지.”

대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강 눈치는 챘다. 머리카락을 일부러 내버려 둔 이유와 건물을 태웠던 이유. 나는 단지 그게 자신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속죄를 시키기 위한 거였다고, ‘설정’에 따라 멋대로 해석했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그래서 적어도 조금은 살게 해 주려던 거지.”

“…여기에서 기다리면서?”

“그래. 어쨌든 A가 원했던 일이기도 하고.”

활짝 웃는 것은 정말로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사람을 좋아하는 표정인 걸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한다면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그러니까 따라와.”

“뭐?”

“나는 A한테 웬만하면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 그런데 너희들이 방해되니까 일단 보이는 너부터 처리하려고. 순순히 따라오면 아프지 않게 죽여줄게.”

그게 지금 할 소리인가. 하지만 그 얘기 자체가 나를 봐준단 거였고 나는 속으로 막막해하며 일단은 따라가기로 했다. 여기서 괜히 도망치면 잡힐 수 있고 어쨌든 간에 아직은 나한테 별일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따라갔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소리 하나, 흔적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분명 여기까지 간 걸 봤었다. 둘 다 지하에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아무도 없지?”

“그러게.”

“근데 내가 누군가를 데려왔었거든?”

“뭐?”

탁.

뜬금없는 소리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익숙한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부적이 안 통해.”

“그건 몰랐네.”

강한이었다. 게다가 웃고 있었는데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하더니 나를 보는데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아서 멀어졌다.

정확히는 강한에 의해서 밀어졌다는 편이 나았지만.

“…뭐 하는 짓이야?”

“보면 몰라? 너 죽을 뻔했어.”

강한이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봤더니 귀신은 웃으면서 칼을 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메스였지만.

“어떻게 된 거야?”

“됐고. 저거 일단 멈춰야 해.”

“뭐?”

“참고로 나는 누구처럼 친절하게 굴지는 못하니까 그런 줄 알고. 어쨌든 지금 이 방에는 둘이고 저쪽은 하나니까 괜찮을 거야.”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상태가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하면서 둘이서 귀신을 압박하기로 했다. 솔직히 칼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다쳐도 어쩔 수 없었다.

안 좋게 되면 죽을 수도 있는 건 나였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한 번에 덤볐다. 물론 나는 생각보다 잘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막는다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시야를 차단해서 귀신이 그사이로 메스를 휘두르려고 했는데 그사이 강한이 손으로 메스를 잡고 귀신의 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았다.

그것도 순식간에.

“너 뭐 해!”

“어?”

“빨리 밧줄 가져와!”

다급한 표정에 나도 덩달아 급해져 근처에 있던 밧줄을 찾자마자 바로 주는데 강한이 인상을 쓰더니 한쪽 팔을 내밀며 잡으라고 했다. 그래서 잡았더니 강한이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바로 귀신의 뒤통수를 쳤고 A는 순식간에 기절해서 그 사이로 A가 묶였다.

특히 강한은 한쪽 팔에 부적을 감고 있었는데 왜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야 나 같은 사람한테도 귀신이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래. 그래서 아까 한쪽은 썼는데 쓰니까 태워지는 것 같아서 얼른 떼어냈고 남은 건 다른 한쪽이야.”

이제 보니 확실히 조금 데인 자국 같은 게 있었다. 게다가 나도 뒤에 큰 부적을 놔서 그런가 문제는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럼 이 귀신 봉인하기만 하면 되겠지?”

“그래. 되도록 빨리.”

강한이 초조한 건 알겠는데 나도 그만큼 급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등 뒤에 옷깃을 빼서 공간을 넓게 만들어 순식간에 부적을 졸업앨범에 뒀다.

“커헉!”

그랬더니 피가 튀어나왔다.

“…얼른 해.”

“알았어.”

귀신인지 A인지 모를 진득한 시선에 솔직히 압박당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몸은 차분했고 그만큼 부적에 쉽게 손을 가져다 댈 수 있었다.

그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앨범에서는 어느새 은은한 빛이 났고 나는 그 안을 펼쳐 묶여 있는 몸을 향해, 정확히는 눈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 비췄다.

그러나 귀신은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A에 대해 알 수 있어.”

“뭐?”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윽… 저것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 그래서 나는 놀라운 것을 알게 됐……!”

순식간에 입이 막혔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툭.

그 상태에서 바로 쓰러졌기 때문에.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봉인이 성공한 거지. 이거 볼래?”

강한이 졸업앨범을 보여 줬다. 그러자 그 안에의 사진에서의 표정이 달라졌다.

무표정이 웃는 표정으로.

나는 그게 무서워서 누군가가 전해 줘야 한다는 말도 잊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 이제야 전해 주는 게 무슨 소용일까. 이미 있는 상처 없는 상처 다 받았을 사람에게 하는 사과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A는 괜찮을까?”

“아마도… 꼭 지켜내고 싶었는데.”

“지켜냈잖아.”

게임도 이 정도면 잘 끝낸 게 아닐까. 게임으로 치면 꽤 쉽게 끝난 거다. 물론 실제로 겪은 나는 어려웠고, 무서웠고, 끔찍했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그래… 살아남았지. 일단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

“왜?”

“그냥 잠…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고.”

“…그래.”

“혼자 도망가지 말고. A가 깨어나면 봐줘.”

“알았어.”

어차피 이 게임은 A가 중심이라 나도 이대로 가는 건 사양이었으니 굳이 강한을 말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제야 나는 A를 봤다. 여전히 묶여 있는 A를.

또한 생각보다 쉽게 깨어난 건지, 눈꺼풀을 살짝 움직였다가 결국에는 제대로 눈을 뜨고 난 A를 봤다.

“…반장?”

“A… A 맞아?”

“…맞아. 보니까 봉인은 했나 보네.”

“그래. 유원이도 같이 왔어.”

“그렇구나. 그럼 성공했나 보네.”

알고 있다는 듯이, A는 이미 유원이 봉인에 관해서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유원이 여기에 오라고 한 거야?”

“그래. 안 그래도 나를 찾아왔을 때는 놀랐어. 게다가 귀신한테 당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더라. 그래서 만났었지.”

“강한도?”

“뭐?”

“네가 강한한테 부탁했잖아. 자기를 죽여달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다던데?”

“뭐라고? 나 강한이라는 사람 전혀 모르는데?”

그건 또 누구냐는 듯이 물어오는 말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저기 밖에 있는 건 대체 누구고, 어째서 A에 대해서 알고 있던 걸까. A를 만난 게 거짓말이라면 도대체 강한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놀라서 A를 봤더니 A 역시 긴장한 얼굴로 내 뒤를 보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써 일어났네?”

A와 전혀 만난 적이 없는 거짓말쟁이가 내 뒤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이 정도로 안 죽네.”

내 심장은 순식간에 칼에 찔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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