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
모두 조심하라는 말 자체는 틀린 건 없었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바로 책들을 던져 버렸으니까.
“윽!”
“아악!”
그러자 들리는 신음 소리,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보통 사람들과 귀신에 빙의한 사람들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무리 바보라도 본능적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얼른 가요.”
“그래.”
제일 먼저 챙긴 건 당연히 머리카락을 태울 수 있는 물건의 장소를 알고 있는 누군가였다. 머리카락의 경우에는 옷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는데 괜찮은지는 둘째 치더라도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생각할 수는 없어서 일단 무조건 어디냐고 묻고 그 방향에 따라 움직였다.
목표를 정해 놓는 편이 차라리 무서운 생각이 덜할 테니까.
책은 이미 한꺼번에 버려서 이제 쓸 일은 없었지만 차라리 이편이 달리기는 더 빨라서 복도를 달렸다.
“거기 서!”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물론 앞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막상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나는 과연 칼을 휘두를 수 있을까. 아무리 이게 가짜일 수는 있다고 해도 이걸 정말로 내가 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휙―
“컥!”
한순간에 피가 튀었다. 나는 놀라울 만큼 침착해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로 내가 사람을 공격한 게 맞는 걸까, 피가 튀는 와중에도 부정적인 표정 하나 짓지 못하는 나는 더욱 끔찍했지만 그 와중에 움직이는 다리는 멈출 수가 없었다.
과연 뛰는 다리도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게 맞는 걸까?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게, 이 익숙한 감각이 정상이라고 생각될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계속 움직이며 피했고, 누군가에게 피를 냈다.
나뿐만 아니고 뒤에 둘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여기야.”
어느새 멈춰선 그녀의 얼굴은 꽤 좋지 않았다. 당연했다. 내 몸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피가 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네가 여긴 왜…….”
안경을 쓴, 그녀를 선배라고 말했던 우리를 안내했던 의사가 이곳에 있었으니까.
“선배. 기다리고 있었어요.”
웃는 얼굴로 의사는 말했다. 그녀를 쳐다보면서, 일부러.
귀신도 머리는 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을 거고 사람을 저렇게, 그리고 이렇게나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눈앞에 있는 상대가 좋지 않았으니까.
“…너까지…….”
“선배, 무슨 말씀이세요? 그보다 그 애들이 수상하다고 생각해서 붙잡으려고 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쟤네들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보는데 확실히 그녀의 표정 변화는 뚜렷했다. 저건 ‘의심’이었다. 완전히 무슨 의심인지는 몰라도 이쪽을 향해 아까도 그렇지만 날카로운 시선만큼은 불안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맞아. 이상해.”
“그렇죠? 보통 애들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겠어요?”
아까 우리를 안내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놓고 우리를 겨냥하면서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목이 말랐다.
긴장 탓일까, 아까도 그렇고 여긴 왠지 기분이 나쁜 곳이었다. 얼른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머리카락은 나한테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따라 내가 어떻게 할지가 정해질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의사에게 한 발자국 떨어지며, 그를 보며 말했다.
“보통 너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아. 그리고 너, 원래라면 밑에서 일하고 있었어야지.”
“잠깐만요, 선배. 이건 사정이…….”
“그리고 네 말대로 쟤네들이 저런 꼴인데도 넌 놀라지도 않았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정신없어서 그런 것까지 보진 못했는데 다른 의미로는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하아… 눈치채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한편으로는 불길했지만, 그렇지만 언제는 안 그랬나 싶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은 계속 긴장된 상태였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상황을 봐야만 했다.
“선배는 이 안에 들어가려는 거죠?”
“…그래.”
“머리카락을 태우려고요? 소중한 딸의 유품인데?”
이제는 대놓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저 태도나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보고 있는데 그녀 역시도 그를 보며 잠시 망설이는 듯싶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따지고 보면 이것도… 그 애 거니까 제대로 돌려줬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늦게라도 해 보려는 거야.”
“결국 저 애들한테 책임을 넘기려는 거 아닌가요?”
왜 저럴까. 나는 생각보다도 감정적인 질문에 왠지 모르게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마치 그 귀신이 묻는 것 같아서.
“아니… 넘기려는 거 아니야.”
“그런가요?”
“그래… 윽!”
“…그런가요. 그런가요. 그런가요?”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보이는 장면은 확실하게도 그녀가 그에게 배를 뚫리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펜으로.
“아무것도 안 하면 살려 주려고 했어요. 이 안에 있던 인간이 시끄럽게 굴어서요. 근데 조용해져서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게 다행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 누구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금방 넣은 손은 배에서 빠져나가 순식간에 그녀의 몸에는 피가 나왔다.
“너…….”
“그러니까 모른 척하지 그랬어요. 이제 와서 엄마인 척하지 말고.”
푸욱―
또 한 번 찔렀다. 허억 하고 소리가 나오는데 그 와중에 그는 좀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한 가지 제안 드릴 게 있어요.”
“제안? 협박이 아니라?”
비아냥거리듯 뒤에서 강한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의사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제안이죠. 제가 협박을 할 거였으면 진작 이거 뺄 테니까 제 요구를 들어달라고 할거거든요. 이거 빼면 진짜 죽겠죠? …아, 이번에는 정말 협박이네요. 뭐 어쩔 수 없지만.”
“흐윽…….”
“그러니까 좀 얌전히 굴면 좋았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된다는 듯이 쳐다봤다. 완전히 미친 것 같지만, 저런 상태를 나는 모르지 않았다. 역시 귀신에게 당한 건지, 나는 잠시 생각을 다가가 물었다.
“뭘 하면 되는데?”
“야!”
“조용히 해.”
유원이 강한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강한은 힘을 쓰며 유원의 손을 풀고 물었다.
“유원, 너는 이 상황에서 그 말이 나와?”
“당연하지. 난 일이를 믿거든.”
정말 믿는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게 솔직히 쳐다보기가 좀 그랬다.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귀신에 씌여 있는 의사를 봤는데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재밌는 친구들이네.”
“그렇죠.”
“자, 그럼 내 협박을 말해볼까?”
나는 대충 그가 어떤 걸 원하는지 눈치챘다. 그래서 기다렸고 곧 그는 요구했다.
“이쪽 방으로 들어가.”
“네?”
“무슨…….”
“머리카락을 태우라는 뜻이야.”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언제나처럼, 언젠가처럼 예상했던 것들이 벗어나는 순간들과 같았다. 하지만 보통 자신의 힘과 관계된 중요한 물건을 태우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여전히 A를 붙잡고 있는 귀신이.
그리고 그 역시도 귀신은 이미 눈치챘다는 듯이 말했다.
“머리카락을 돌려달라고 할 줄 알았어?”
“…….”
침묵은 긍정이었다. 이런 내 반응에 의사는 웃으면서, 여전히 그녀를 붙잡은 채로 말했다.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지. 근데 생각해 보니까 너희 말고도 그걸 없앨 수 있는 사람은 많아. 그리고 언제까지 이걸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없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틀린 건 없었다. 게임 캐릭터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는 이쪽이 아예 틀리지도 않은 게 우리가 이렇게 간다고 해도 머리카락이 또 언제 노려질지는 모른다는 건 정말로 아예 생각할 수 없는 범위가 아닌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망설였다.
“이 사람이 죽길 원해?”
“읏…….”
그래, 사람이 죽는 것조차도. 무섭고 분명 도덕적이지 못한 일일 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이 상태에서 뭘 생각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피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말대로 한다고 해서 과연 괜찮을까 싶었지만 아니면 아닌 대로 아까와 같은,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피해서, 어쩌면 아까와 같은 피를 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자.”
“할 거야?”
“…뭐?”
무슨 소리지, 봤더니 유원이 답했다. 나와 마주쳤을 때는 괜찮다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나를 지켜줬을 때에 짓던 그 표정을 지으면서 유원은 그에게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할게.”
“…진짜 미쳤어?”
“미친 지는 오래됐지.”
유원이 슬쩍 눈을 내리깔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왠지 알 것 같았다. 게임이라서, 그걸 알아서일까. 나는 유원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나에게는 그저 고민할 일일뿐일지도 모르지만 유원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을 테니까.
“나도 할 거야.”
“다들 진짜 미쳤네…….”
“너는 싫으면 가.”
나는 말했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강한이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강한은 그저 잘 모르는 A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온 거였으니까.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누구 좋으라고? 같이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이 방에 들어가야지.”
심지어 친절하게 문까지 열어주던 누군가 덕분에 나는 괜히 더 찜찜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는 이제 묻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서 나는 뭐라 하기 어려웠지만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먼저 내 뒤에 붙어있던 유원이나 그다음으로 따라온 강한,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가 밀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된 그녀.
달칵.
그리고 잠겨진 방에서는 별 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고 우리는 불 피우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밖에.
“불 피우는 거 어디 있어요?”
“…서랍…….”
가리키는 방향으로 대충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게임상의 위치를 자세히까지는 아니라도 기억은 하고 있어서 내가 기억하는 대로 찾으니 성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는 성냥갑을.
왜일까.
나는 이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을 느꼈다. 문은 왜 잠겼는지, 아까의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곧 들여오던 다른 소리도.
기이한 예감과 함께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 건물이 태워지면 모두 사라지겠죠. 아까 태워진 누군가의 집처럼.”
설마하니 집이 태워진 것도 아는지 몰랐다. 하지만 귀신은 이어서 더 말했다. 탁, 하는 성냥에 불을 피우는 소리를 내면서.
“이 건물까지 태워진다면 누군가는 알게 되겠죠. 이게 사람의 소행인지, 귀신의 소행인지.”
여학생 귀신은 귀신을 못 믿는 사람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A를 좋아해서 데려갔고 그런 A를 쫓는 우리를 가뒀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상황을 통해서 귀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분명히 태우지 않았을 텐데도.
“그러니까 모두 사라져! 키킥!”
큰소리와 함께 불은 순식간에 났다. 나는 아까의 소리가, 이상한 소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게 기름을 뿌리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문 쪽에서는 탄 냄새가 났고 우리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하지…….”
“그걸 이제 생각해?”
기가 막히다는 강한의 물음에 나는 별말을 하지 못했다. 그야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뻔뻔하게 굴지도 못하는데 유원은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뭐, 어쨌든 이렇게까지 됐으니 저쪽은 우리 죽었다고 생각할 테니 좋은 일 아니야?”
“…진짜 죽을 거라는 게 문제지.”
“안 죽어. 그리고 일아, 머리카락 좀 줘볼래?”
“…여기.”
유원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상자 안에서 머리카락을 꺼내자 유원이 그걸 문 밑으로 보이는 불이 있는 데에 던졌더니 타기 시작했다.
“아마 이 정도면 확실하게 생각할 거야. 우리가 죽었다고.”
“그것 때문에 여기 들어온 거야?”
“아마 누구 하나라도 밖에 있었다면 우리가 살아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나가는 방법은 있어?”
“간단해. 하나만 이용하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유원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여기까지 우리를 안내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죄송합니다.”
푹―
그렇게 말하고 유원은 그녀에게 주사를 놓았다. 아까 메스와 함께 챙겼던 ‘수면제’, 유원은 그걸 그녀에게 놓고 그녀가 잠든 걸 확인하고는 문 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거기 사람 있어요?”
“…아, 여기 내가 왜! 아윽!”
“여기에 의사 한 분이 계시는 것 같은데 문 좀 열어 주실래요?”
“…네?”
“유성희 의사가 여기 있는데 불이 나고 있어서요?”
“헉! 잠시만요!”
급하게 움직이는 소리, 그녀 역시도 지금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이 커지는 건 역시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유원도 그것 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써야겠는데.”
“다른 방법이면 뭐?”
“문을 여는 데 뜨거우면 열기 힘드니까 막을 만한 걸 쓰려고.”
유원은 그녀의 몸의, 손이 있는 부분을 잡았다. 그러고는 적당히 그녀의 손으로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이따가 치료할 수 있겠지.”
“그런가…….”
“그래. 어쨌든 빨리 나가자.”
빨리 나가자는 말 때문일까, 아니면 주변에 커지는 불길 때문이라도 우리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인지 불이 난 지 오래되지는 않아서 어떻게든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층이면 계단 한 층만 지나면 되는 일이었는데 바깥쪽의 문이 문제였다.
“기둥이…….”
기둥이 부서질락 말락 했다. 유원은 그곳에 다가갔다. 그나마 저곳 말고는 출구가 없어서 유원이 잠시 기둥의 아래쪽을 잡다가 얼마 안 가 이쪽으로 와서는 말했다.
“또 써야 될 것 같아.”
“뭘?”
“죽을 사람을 써야지. 아무래도 저 기둥이 버티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죽을 사람, 이 상황에서 죽을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냐고 물었다. 하지만 유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차피 다시 살아날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 아니면 내가 대신 기둥을 받치고 있을까? 죽을지도 모르지만.”
“…….”
“어떻게 할까?”
또 묻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한 질문을 들고서, 내가 정말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도록 말이 나를 조여왔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두고 가자.”
나는 말했다. 말하면서도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찌르고 있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기둥은 금방 무너질 것 같고 그 기둥의 틈을 잠시라도 막아줄 도구가 필요한데 계단으로 올라간다면 건물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다른 선택이 없었다.
살 수도 있는 사람은 그렇게 죽어 버렸다.
누군가가, 귀신이 들렸다가 정신을 차린 사람은 그녀를 불렀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나는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일아, 괜찮아?”
“아니… 그보다 너는… 아니다.”
생각보다 미쳐 있다는 걸 내가 몰랐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유원은 내 손을 붙잡더니 말했다.
“솔직히 나도 좋은 건 아니야. 근데 나는 네가 더 중요해. 그 사람은 방해만 되니까.”
“…나도 방해야.”
“아니. 너는 내가 여기까지 있을 수 있게 한 이유야. 그러니까 네가 나를 버리기 전까지는 내가 버릴 수는 없어.”
이유도 모를 맹목적인 태도,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이 구는 유원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저게 과연 미안한 걸까.
한편으로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유원의 손목이 내 눈에 띄었다.
“…너 그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뭐냐고.”
“…그냥. 아까 좀 다쳤어. 근데 어차피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까. 나는 눈앞의 유원을 보다가 손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유원이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빨갛네.”
“괜찮아.”
“안 아파?”
“금방 나아… 윽!”
건드렸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아픈 건 분명했다.
“아프면 말을 해.”
“하지만 진짜로 괜찮은걸. 그보다 넌 안 다쳤어?”
“덕분에.”
내가 유원의 상처를 안 것도 그 때문이다. 이상하게 위험할 때 자신의 몸을 날리려던 유원 때문에. 비참한 감정도 걱정되는 감정도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나를 걱정하는, 저런 상황에서 이상하게 미쳐버리는 존재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이미 끔찍한 다정함에 붙잡혀버렸으니까.
7. 우리 집 (3)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나는 답답하기도 했다. 정말 아무런 티도 내지 않은 채로 있었다. 유원은 무섭다. 끔찍하고 짜증 난다. 그래서 이런 태도가 헷갈렸다.
“난 네가 헷갈려.”
“그래?”
“그래. 네가 나쁜지 착한지 알 수 없으니까.”
“나쁜지 착한지로만 사람을 나눌 수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건 그렇다. 악과 선을 쉽게 정의할 수 있기에는 인간이라는 건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유원도 쉽게 정의할 수 없었다. 한 가지로만 정의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현재만 보기로 했다.
“근데 진짜 어쩌다가 다친 거야?”
“글쎄.”
“웃지 말고. 아까 방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멀쩡…….”
나는 그제야 눈치챘다. 생각을 해 보면 답이 나왔다. 방에서 나와 내려오고 난 이후, 갑자기 기둥을 잡았던 유원이 말을 걸었던 것은, 굳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했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을 때는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아까 기둥 때문이야?”
“똑똑하네. 역시 반장.”
“…….”
낯선 호칭, 그러나 그 말 자체가 유원이 평소에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나는 유원이 평상시와는 다른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원은 입을 다물었다가도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봤으니까 알겠지만 아까 기둥을 만지려다가 말았는데 손목이 닿아버려서. 그래서 힘이 덜 들어가니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들 수는 없었어.”
“…그렇다고 해도 꼭 그래야 했어?”
꼭 그녀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사람을, 사람을 쓰는 일에 망설임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 그건 가짜니까. 너는 진짜고. 아, 나도 가짜지.”
“…….”
“사실 나는 너 외에는 별 의미가 없어. A는 설정상의 친척일 뿐이고 내가 여태 제일 많이 본 건 너뿐이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끔찍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어떠한 의문이 내 머릿속에 충분히 자리 잡을 정도의 단서를 줬다.
별로 가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혹시 게임 얼마나 기억해?”
“얼마나라니?”
“아니, 게임 한 번만 한 거 아니지?”
확신을 담아 물었다. 그래, 겨우 한 번뿐인 기억으로는 이해 가지 않았다. 특히 내 몸, 아까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잔인한 일을 행하던 몸은 익숙해 보여서 끔찍했지만 또 그만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게임을 몇 번이나 반복할 만한 이유가.
“…미안. 대답할 수 없어.”
“또 그 약속 때문에? 애초에 난 돌아갈 수 있긴 해?”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하지만 당연했다. 나에게 이 세계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자 비현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내 현실은 여기가 아닐 테니까.
“돌아갈 수 있어. 걱정 마.”
“정말로?”
“그래. 갔다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왜?”
나도 모르게 물어 버렸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기껏 나가고 나서도 돌아왔는지에 대해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으로 결국 유원은 그것에 대해서는 답해 주지 않았다.
마치 내가 몰라야 한다는 듯이.
늘 그랬듯이 유원 역시도 모른 척하는 것은 모른 척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는 넘어갈 수 없다는 듯 뭔가 말하려다가 어느새 다가온 강한 때문에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 강한마저 이런 걸 안다면 곤란하니까.
“뭐 하다 온 거야?”
“잠깐 A가 어딨었나 생각 좀 했지.”
“뭐?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건 비밀인데? 너도 아직 말 안 한 거 있잖아. 쟤는 더 그렇고.”
나와 유원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한다. 틀린 건 아니라서 나는 강한에게 뭐라 더 말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어서 잠깐 어디 갔나 싶었지만 설마하니 A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A는 어디에 있는데?”
“공장이야.”
대답한 건 유원이었다. 돌아보니 웃는 기색이었는데 강한은 그런 유원을 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금방 웃으면서 말했다.
“거기 맞아. 근데 A가 몇 층에 있는지 아는 건 나뿐일걸?”
그 말에 유원을 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정도 정보까지는 강한만 아는 모양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강한이 앞선 상태로 나도 몰랐던 공장 건물로 갔다.
정확히는 예전에 알던 게임 속 위치상 ‘폐지된 건물’, 건물이 있으면 폐가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건물 자체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만 같았던 건물.
그래서 땅과 다름없어 보이던 건물이라고 ‘폐지된 건물’이라고 불렸는데 게임상으로도 실제로 간 적은 없던 곳이다. 애초에 가끔 갈 수 있는 곳을 설명해 놓은 게 게임이란 시스템이니까.
어쨌든 그만큼 불안정한 장소이기도 해서 설마 거기 있겠나 싶었지만 갈수록 추측은 확신에 가까워졌고 도착해 보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건물이 멀쩡해 보였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내가 화면에서 보던 낡아 보이는 건물까지는 아니었다. 분명 전에 화면에서 본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금까지 한눈에 보일 정도의 건물이었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멀쩡한 건물이라고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공사하는 건물 같아.”
“맞아. 여기 새로 짓는 건물이니까.”
“…그건 어떻게 알아?”
유원이 대답해서인지 물었다. 아무리 아는 장소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아나 싶어서. 그랬더니 금세 대답해 줬다.
“전에 A와 얘기했었거든.”
“A랑?”
“그래. 그러니까 괜찮아.”
건물이 괜찮다는 말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넘기고 가기로 했다.
저 안에 A가 있을 테니까.
급한 마음이 드는 건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나는 이 게임을 끝내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와보니 건물 안은 별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까 갔던 집도 걸을 때 소리가 났는데 이 건물은 소리가 그렇게까지 나지 않았으니까.
특히 2층에 올라갔을 때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지만 계단이 생각보다 안전하게 보여서 올라가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지어지는 건물이라 그런지 계단 쪽이 위로 올라갈수록 휑한 게 약간 불안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가는, A가 있을 만한 장소는 꽤 높았다.
거의 끝 층에 가까운 그 바로 아래층이었으니까.
“여기에 있는 거야?”
“그래. 그래서 부적 꺼내고 있어.”
“알았어.”
이미 작은 부적들은 유원과 강한에게 두 개씩 줬고 나는 나머지 것들을 갖고 있었다. 특히 큰 부적은 아무리 그래도 중요한 때에 쓸 수밖에 없는 거라 내가 가지고 있는 채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강한이 가던 방향 그대로의, A가 있을 만한 곳으로.
“아마 이 방일 거야.”
“이 방이라고?”
“그래. 물론 완전히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강한이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문을 열었다.
달칵.
조금은 급해 보이는 모습, 게다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게 초조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뒤에 따라갔지만 그 속도에 순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난 여기 있을게.”
“…알았어.”
유원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전에 우리가 방에 갇힌 것 때문인가 싶어서 동의하며 그 뒤로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려 강한을 뒤쫓았는데 겨우 방이라 그런지 금방 강한이 있는 안쪽, 창문이 보이는 바깥쪽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은 예상과는 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없어…….”
“그러게.”
“어딜 간 거지?”
“글쎄…….”
나도 모른다. 그러나 강한이 어딘가 모르게 인상을 썼다. 솔직히 말하면 저 정도로 신경 쓰나 싶을 정도로.
“근처 찾아볼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 쪽을 향했다. 문은 다행히 아까 열려 있던 그대로였다. 그래서 유원이 어디 있나 살펴봤는데…,
아까와는 달랐다.
“안녕.”
“…A?”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잘도 부르네.”
귀신이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A의 얼굴은 생각보다 멀끔하게 생겼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야윈 얼굴은 확실히 행방불명된 사람 같았으니까.
그리고 A가 과연 유원을 인질로 잡을 수 있을지 하는 가능성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거의 없었다.
“너, 귀신이구나.”
“그런 너는 인간이고. 그리고 뒤쪽의 인간도 인간이야. 그렇지?”
“그래.”
“오랜만이네. 이런 식의 대화.”
여학생은 의외로 차분했다.
유원의 목덜미에 들이민 칼을 제외하고는.
“…미안.”
“됐어. 왜 그렇게 된 거야?”
“못 들어가게 하려다 보니까 그리고 음…….”
유원이 흘끗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생각해 보니 유원은 다쳤다. 아마 그것 때문인가. 친척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리 내가 의미 있다고 해도 과연 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가족에게 약해지지 않을 수는 없는 거니까.
“…역시 귀신한테 당했나 보네.”
언제 온 건지, 뒤에 바짝 따라온 강한이 말했다. 게다가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게 기분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금방 A에게 다가가는 게 영 이상했다.
“너, 그렇게 다가오면 얘가 죽을 텐데.”
“알 게 뭐야? 그리고 유원, 너 정도껏 해라.”
뭘 정도껏 하라는 거지, 유원 역시 마찬가지인 듯 왜냐고 물으니 강한이 실실 웃어 보이며 말했다.
“너 움직일 수 있잖아. 그리고 나는 네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거든?”
“A도?”
“…이 미친 게.”
“아, 저쪽은 A가 인질이면 되는 거야?”
귀신이 듣고서 환하게 웃었다. 근데 결국 웃는 건 A였고 A는 우리 쪽을 보는데 강한이 그런 귀신을 보며 물었다.
“너, A 좋아하는 거 아니야?”
“좋아해. 그러니까 같이, 같은 존재로 있고 싶은 거야. 물론 그 전에 너희들을 죽여야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입에 담는다. 그러고는 유원의 목이 있는 데로 더 가까이 칼을 들이밀었다.
피가 조금 흘러내릴 때까지.
“너, 계속 그대로 있을 거냐?”
“기왕이면. 근데 아무래도 틀린 것 같네.”
한숨을 내쉬면서도 유원은 A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A가 아픈지 신음을 지르는데 칼을 떨어뜨려서 그사이에 유원이 칼을 발로 밀어서 멀리 떨어뜨렸다.
“이 정도면 시간은 어느 정도 끈 것 같은데.”
“그래? 아닐걸.”
“뭐?”
“너희는 내가 인질이 하나만 있는 줄 아나 본데 여기도 있잖아.”
자신을 인질로 잡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말로는 귀신이 A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는 거였다. 원래도 죽으려고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런 때에 죽는 건 아닐 텐데, 나는 괜히 불안해져서 잡으려고 했지만 스스로의 목을 손톱으로 찔러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가도 누군가가 내가 들고 있던 걸 뺏자 그제야 나는 내가 너무 멍청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원.”
“그래, 일아. 이걸 왜 가져왔는지 기억나지?”
“…어.”
“그럼 써야지.”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너희 둘 다 그 애를 붙잡아줘.”
“알았어.”
“그래.”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별로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내가 하는 일이 아까와 비슷한 봉인이라는 걸 눈치챈 것 같은데 문제는 귀신도 그걸 눈치챘다는 점이었다.
“내가, 너희들 따위한테 잡힐 줄 알고?”
입가가 찢어질 듯 기이한 표정으로 웃으며 우리를 봤다. 게다가 순간적인 힘은 누구보다 세서 둘을 순식간에 밀쳐낸 귀신은 그 자리에서 도망갔다.
하지만 둘 다 쫓아갔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앨범을 꽉 붙잡고 다가갔다. 그랬더니 어느새 건물 아래로, 조금은 무서웠던 계단을 순식간에 지나 어느새 지하까지 왔는데 지하는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젠장.”
아무래도 다들 나보다 빨라서 그런지 지하에 있다는 걸 알아도 누가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몇몇 작은 불빛은 켜져 있다는 점이라 빛으로 대충 위치를 가늠하며 걸어갔다. 솔직히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지는 않아 보였지만 다들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들어갔다.
천천히.
조금씩 안으로 갈 때마다 어두워지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따르릉―
흠칫.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근처에 있던 방 쪽에서 들린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놀랐는데 계속 반복되는 소리에 긴장이 멈추지 않아 근처로 가지는 못한 채 멀리서 보고 있는데,
뚝.
전화기가 멈췄다.
나 역시도 그 순간 어쩐지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타박.
걸음 소리가 들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