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 집 (2)
병원은 기존 ‘우리 집’을 중심으로 한 이 주변 동네에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왜 굳이 병원이었냐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아까 찾아낸 명함의 주인이자 귀신의 가족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강한은 건물을 보자마자 바로 투덜거렸다.
“여기에 우리가 올 만한 이유가 있어?”
“왜 그러는데?”
“아니, 바로 A를 구하러 가도 되잖아?”
바로 따지는 말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유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왜 그렇게 A를 신경 쓰는데?”
“왜냐고?”
“그래. 나도 A의 친척이니까 A가 걱정되긴 하지만… 적어도 너처럼 그렇게 누군가를 몰아세우지는 않아.”
어쩐지 유원은 유독 강한을 경계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그래 보였고 강한 역시 마주 보고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A의 친척이니까 A를 걱정하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A의 친척인 너보다 내가 걱정을 더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솔직히 나도 이해가 안 가.”
그 말에 나는 꼼짝도 못 했다. 어쩐지 이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어쨌든 나는 A에 대해 말할 자격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그럴지 몰라도 감정적인 면에서 거리가 먼 만큼, 그만큼 나한테는 먼 얘기니까.
유원 역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나한테 말했을 때와는 다른 표정, 그러나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
“무슨 말이야?”
“나도 A는 걱정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일이 괜히 여기 왔겠어? 일이도 A를 걱정하고 있다고. 그렇지?”
“…그래.”
떨떠름한 반응이 나오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금방이라도 웃어 보이는 그 표정에 나는 어딘가 모르게 답답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건 없겠지만.
“여기에 온 건 A와도 관련된 일이야.”
“어째서?”
“여기가 A를 납치한 범인의 약점이 있는 장소거든.”
“그러면 그 귀신이랑 관련된 거야?”
“그래.”
이제 강한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것 같았다. 사실 처음에도 그렇고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말했는데도 그걸 단기간에 이해했다는 것도 솔직히 놀랍긴 했지만 A와의 연관성도 여전히 놀랐다.
납치한 귀신의 약점이라고 해서 얌전해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아까 집에서 가져온 명함을 보여 줬다. 하얀색에 글씨만 깔끔하게 박혀 있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이름이었고 그다음으로 보이는 건 직함이었다.
“의사?”
“그래. 이 병원 의사가 아까 있던 집에서 죽은 학생의 어머니지.”
죽은 학생의 어머니, 그러나 아직도 이 근처에서 일을 하는 그녀는 생각보다 담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에게 좋은 어머니는 되어주지 못했다.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보질 못했으니까.
원인은 자살처럼 보이는 타살이었다.
소녀는 애초에 밝고 활발한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살할 성격도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라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의사였고 그래서 소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정확히는 귀신들이 같이 있었다.
영력이 뛰어난 사람, 여학생은 그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말해 봤다. 하지만 믿어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소녀의 세계는 그래서 어두웠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허상으로 아는 존재들이 끔찍한데 치울 수도 없고 괴롭혀서. 밤마다 커다랗게 나는 소리, 팔이나 다리가 잡히는 느낌 같은 것들이 심리적으로 압박당했고 그것은 죽음으로 다가왔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아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이 명함에 적혀 있는 사람이 없으면 바로 나올 거야.”
“그래도 돼?”
“안 그래도 A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니까.”
A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A도 게임이었던, 적어도 이걸 경험했다고 한다면 그만큼 좋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을 테니까.
“…의외네?”
“뭐가.”
“너, 솔직히 A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
그 말에 찔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솔직히 A는 무슨, 아직도 내 생각을 하기에도 바빴으니까. 그리고 다른 생각 때문에라도 뭔가를 더 떠안을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는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
“뭐, 솔직히 나도 얼마 본 건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처음 본 애가, 그 애도 날 처음 봤을 텐데 굳이 나한테 부탁한 것도 그렇고 죽여달라고 하는 것도 걸려서 온 거야. 어쨌든 신경 쓰이니까.”
강한의 말은 어딘가 모르게 솔직하게 느껴졌다. 표정만큼은 진심 같이 느껴졌으니까. 사람 마음이 파악하기 어렵다고는 해도 어쨌든 간에 나는 그렇게 느꼈다.
게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를 따라오려고 했다니, 솔직하다 못해 찌를 것 같은 말들은 짜증 나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릴 것 같았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일아.”
“…왜.”
“일단 가자. 시간 없잖아.”
“그래.”
유원의 말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이제야 잠깐 유원의 얼굴을 봤다. 언제부터였는지 지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 알 수 없는 표정을.
“유원…….”
“왜?”
“그냥, 고맙다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동정심일지도 모르고 불편한 감정일지도 몰랐지만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다가 말한 것은, 어떻게 보면 사실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해 준 것들이 적어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물론 그렇다고 여전히 모든 걸 잘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소름 끼치는 면들이 있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느낌은 여전해서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 순간 말했던 한 마디는 진심이었다.
나한테 해 줬던 고마운 일들이 죄다 거짓만은 아니라면.
“…나도.”
“뭐?”
“나도 고맙다고.”
대꾸까지 해 줄지는 몰랐지만, 아까보다 나아 보였다. 그냥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너희 뭐 하냐.”
강한은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한테 말을 걸었다. 하긴 조금 시간을 끌긴 해서 나는 대강 잠깐 말 좀 했다면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까보다는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병원의 1층, 바로 보이는 사람한테 가기로 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이쯤에서 남자 의사가 보일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의사가 보였다. 검은 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 의사가.
나는 바로 그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요.”
“누구……?”
“유성희 의사 아시죠? 그분 따님 물건을 전해드리려고요.”
거짓말이었지만, 솔직히 내가 고생해서 찾은 물건들을 준다면 많은 게 흐지부지될 게 뻔한 자살행위였기에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필요했다.
때로는 거짓말이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실제로 남자는 내 말에 내가 입은 교복과 들고 있는 물건을 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고 곧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해서 우리는 안내를 받아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똑똑.
“선배님, 들어갈게요.”
바로 열리는 문, 그 안에는 당연히 의자 위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의사가 보였다. 긴 머리를 묶은 여자 의사, 정확히는 이미 없는 사람의 부모였던 사람.
“왔어요?”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후배님은 잠깐 나가 보도록 해요.”
“…네. 그럼 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바로 나갔다. 그래서 문은 닫혔고 그래서인지 나는 바로 눈이 마주쳤는데 밑으로 시선이 내려가는 걸 보니 앨범 때문인 것 같았다.
“졸업앨범인가요?”
“네.”
“그걸 저한테 주러 왔다고요?”
“…네.”
“미안하지만 저는 제 딸 물건 필요 없어요.”
단호한 태도였다. 만약 누가 본다면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왜요?”
“네?”
“왜 필요 없다는 거죠?”
강한이었다. 이런 식으로 묻다니, 그렇지만 나도 그렇게 물을 뻔해서 일단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야…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로서는 생각하기 힘들어요. 그냥… 저도 제 배로 낳았으니 애가 소중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까지 받으면 이성적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인상을 썼다. 저게 부모의 얼굴인 걸까, 걱정이나 분노, 슬픔 같은 게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얼굴은 아까의 인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정말로 지친 기색으로, 그녀는 사양했다.
“그러니까 저한테는 필요하지 않아요. 자격도 없고… 그러니까 저는 이 말을 하려고 부른 거예요. 실례가 됐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고개까지 숙였다. 원래 이 캐릭터는 이러지 않았다. 냉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다른지, 나는 그게 참 묘한 기분을 들게 하면서도 이 상황에서도 이기적인 내 욕심은 입을 열게 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게 무슨…….”
“머리카락.”
흠칫.
“머리카락 어디 있죠?”
멈추고 놀란 채로 날 응시하는 게 보였다. 놀란 표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나는 태연한 척하며 받아들였다. 어쨌든 지금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믿기 어렵겠지만 제 친구가 귀신한테 끌려갔어요. 그리고 그 귀신이 따님이시죠.”
“그럴 리가…….”
“물론 따님을 못 믿으신 만큼 저희도 못 믿으시겠지만…….”
못 믿는다고 해도 금방 믿게 될 거다. 하지만 나는 그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휘이익.
창문이 닫힌 방에 이미 바람이 불고 있었으니까.
“뭐야 이거……!”
종이들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몇 가지 물건들은 떠 있었다. 펜이나 가위, 칼까지도.
날카로운 것들이 순식간에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엎드려요!”
쿵!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그러자 모두 엎드렸다. 내 등 위에 손이 있었지만 그런 걸 크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곧장 일어서서 방을 나가야 했으니까.
쾅!
그리고 순식간에 문에 생긴 자국들. 단단한 문을 뚫고 나올 듯이 보이는 것들을 생각보다 더 생생해서 나도 순간 굳었지만 처음 본 사람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제가 말했잖아요. 따님이 벌인 짓이라고.”
단지 여기는 봉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여기에는 귀신이 없었으니까. 그만큼 처음보다 지금이 더 어렵고, 누군가는 쉽게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내가 살아야 했으니까.
“잘 들어요. 지금 여기서 안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죽을지도 몰라요.”
“뭐라고?”
“그러니까 우리를 따라와 주세요. 물론 머리카락이 있는 장소부터 알려 주시고요.”
신체의 일부는 중요했다. 그만큼 귀신의 힘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귀신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6. * *
당연하게도 귀신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건 그 귀신, 죽은 여학생의 어머니인 저 의사가 필요했으니까 이곳으로 왔다. 어차피 어머니이고 적어도 그 귀신이 안 좋은 감정을 느꼈다면 여기에도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애당초 시신은 불태워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강했다. 강한 건 뼈가, 육체와의 연결점이 있는 강한 귀신이라는 설정이 진짜고 머리카락이 남아 있다면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틈을 이용해서 설득했고 이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예상이 가능했다.
“…알았어.”
“그러면 일단 머리카락은 어디 있나요?”
“휴게실인데…….”
못마땅한 표정이 보인다. 하긴 처음 보는 학생들이 딸이 귀신이냐느니 어떻냐느니 했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휴게실로 가요.”
“…꼭 그 머리카락이 필요해?”
쾅!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고!”
강한도 소리쳤다. 아무래도 좀 짜증이 난 표정으로 말하니 나와 함께 있던 그녀 역시 잠시 놀라다가도 한숨을 내쉬고는 움직이자고 했다.
지하에 있다면서.
들으면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건 눈앞에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처음 본 사람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일단 어느 정도 뾰족한 게 다가오는 걸 막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탁.
“조심해야지.”
“고마워.”
순식간에 의자를 들어서 막아낸 유원이 나의 말에 웃었다. 그 웃는 게 왠지 찔리는 느낌이 들게 했지만 모른 척했다. 늘 그랬듯이.
무엇보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나 역시도 벽이나 가구가 있는 데로 유도하면서 피했다. 처음에도 솔직히 살 떨리고 지금도 어떻게 버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피하면서 갔다.
누군가를 도와줄 여유도 없었다.
그렇지만 모두 제대로 살아 있었다.
팔, 다리 다친 데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두 멀쩡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도 없어서 나는 한동안 주변을 보면서 경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무슨 짓이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꽉 막힐 만큼.
그래서 내가 떼어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떨어져서 놀라다가도 상대를 보며 따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괜찮을 거야.”
“무슨…….”
“처음에 볼 때는 솔직히 난 별로 너희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 솔직히 내 딸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렇고 머리카락을 달라고 했던 것도.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고.”
“그래서요?”
생각보다 많이 부정적이라서 뭐라고 말을 잘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말해놓고도 입을 다물었는데 그녀가 그런 나를 보고 살짝 웃더니 내 머리를 갑자기 헝클어뜨렸다.
“근데 너희들은 아직 어려. 어린데도 그런 사실을 알고 나한테 말하는 게 좀 그래서. 게다가 이런 일을 알았다는 건 뭔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얘기겠지. 어쩌면… 내 딸도 그랬을 수도 있고.”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학생이긴 했고, 아마 그 점이 많은 마음을 산 것 같았다. 자신의 죽은 딸이 연상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티를 낼 수도 없고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게임의 끝을 봐야 하니까.
나도 내 가족이 보고 싶었으니까.
기억이 잘 안 나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기가 분명 게임이라는 건 알겠다. 유원의 몸이 상처 하나 없었던 것만 해도 그렇고 여러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몇몇 가지 일들은 현실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이상했으니까
“맞아요.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말할 수 있는.
“그러니까 얼른 안내해 주세요.”
원래라면 뭔가 더 좋은 말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모르면 몰라도 반장의 설정 관련해서 귀신 때문에 힘들었다는 식으로 말하면 원래 알던 게임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더 호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하지 못했다.
“…따라와.”
잠깐 동안 마주쳤던 건 왜인지는 모르겠다. 조금은 인상을 찌푸리는데 그런 걸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는 없었고 나 역시 조금은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게다가 따라오라는 말은 이제 다른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는지 제대로 앞서서 안내해 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화면으로 봤을 때와 같은 길, 같은 장소로 가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와중에는 공격해 오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이 게임의 귀신의 활동 반경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피하면 보이지 않는 패턴.
이걸 안다면 앞서가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다들 말이 없던 걸 보면 확실히 모두 어느 정도는 긴장한 게 분명했다. 나 역시도 그렇고 앞에 서 있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 테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으니 나는 그녀를 따라 계단 밑, 긴 복도를 지나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착각이겠지만.
“여기야.”
멈춘 곳은 복도 한가운데에 있던 휴게실이었다. 근데 어째서일까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마치 이 너머로 가면 안 된다는 사람처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달칵.
문이 열렸다. 안은 몇 초, 그 몇 초 사이에 방 안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크기였으며 나는 내가 순간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스스로가 이해 가지는 않았지만,
게임과 너무 똑같아서.
내부는 현실과는 어느 정도 달라 보이는 게임에서 나올 만한 병원의 특징처럼 문 쪽에는 바로 책상이 있는 공간이, 그 옆에는 몇몇 장식장들과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그녀가 간 곳은 책상.
책상에 보이는 바로 첫 번째 서랍 안에 있는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건가요?”
“그래.”
“그러면…….”
그러면 달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실제로 나는 상자를 받으려고 갔다. 하지만 상자를 잡고 있는 쪽은 나를 오지 말라는 듯이 손으로 막아서 봤더니 나는 그제야 뭔가 의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기 전에 약속 하나만 해 줘.”
“약속이요?”
“그래. 물론 이걸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건 아니야. 내가 아무리 이런 직업이라도, 그리고 이게 왜 필요한 건지는 나도 대충 눈치로는 아니까.”
그녀의 말대로였다. 원래라면 그냥 줬을 텐데, 나는 저 망설임이 조금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뭘 원하시는데요?”
“얘기를 해 줬으면 해.”
“얘기요?”
“그래. 너희 엄마는 귀신은 안 믿었지만 너는 한번 믿어보려고 했다고. 원망할 거면 마음대로 원망하라고.”
다른 데를 보면서 말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다. 딸이 생각나서 그러는지, 어쨌건 나는 생각보다 간단한 조건이라서 금방 수락할 수 있었다.
“알겠어요.”
순순히 말한 게 정답이었는지 나는 곧 상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받자마자 바로 상자를 확인했고 머리카락은 정말로 안에 있었다.
문제는 이다음이겠지만.
“…너무 조용한 게 마음에 걸려.”
제일 먼저 유원이 살짝 말을 꺼냈다. 강한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 아까 그렇게 한 것치고는 좀 이상한데―.”
주변을 살피는 게 그럴 만했다. 실제로 아직 안전한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여기는 안전하다.
여기는.
“나갈 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왜, 내가 또 모르는 게 있어?”
“나 귀신 볼 줄 알거든. 학교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 거의 없어.”
이 정도야 설정상의 역할이다. A 덕분에 알 듯 모를 듯 난 소문이기도 하고 반장이 여태 잘 숨겨서 그렇게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거지만.
하지만 난 생각보다 귀신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우연인 걸까, 그렇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어쨌건 내가 아는 사실 중에 하나는 여기는 안전하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머리카락도 그렇고 귀신도 아예 생각이 없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건 강한은 몰랐지만 여태 그랬던 것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뭘 더 아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 위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뭐를?”
“뭐든.”
머리카락을 계속 가지고만 있는 것은 위험했다. 그도 그렇듯이 이건 약점이지만 힘을 늘리는 중요한 역할도 하니까. 그러니까 이 근처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밖을 보고 있어도, 복도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는 건 힘을 다른 데에 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뭔가 필요하겠네.”
“제일 필요한 건 이걸 태우는 거죠. 아마 위쪽에서도 그걸 막으려고 할걸요.”
그래서 여기는 안전하다. 귀신 본인의 입장에서도 머리카락이 잘못되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게임에서는 캐릭터 입장인 데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서 방심하고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 움직이는 건 캐릭터가 아닌 나니까.
그리고 계속 조용했던 유원은 사실은 주변에 뭔가 필요한 게 있어 보고 있었는지 그 안에 있던 것 몇 개를 꺼내서 근처에 두고는 그중에서 주사기와 하나를 들고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이거 가져갈까?”
“그건 왜?”
“수면제야. 혹시 모르니까.”
나를 보면서 말한다. 하긴 유원은 이게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제는 남은 둘이었다. 강한은 그렇다고 쳐도 다른 한 사람이 동의할지의 문제라서.
“그게 필요한 일이야?”
“물건만 움직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아까는 저희가 이걸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단기간으로는 귀신이 물건을 드는 쪽이 힘을 쓰기가 편하거든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조종당할 수도 있어요.”
원래 내가 설명했지만 유원이 덧붙여서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웃은 상태로, 나를 슬쩍 옆으로 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거, 필요하지 않을까요?”
눈짓으로 가리키며 침대 위에 두었던 물건들을 가져가야 하는지 물었다. 수면제만 있을 것 같았지만 붕대나 다른 것들도 보였다. 아마 전에 다쳤던 것도 있어서 그런지, 어쨌건 준비를 하는 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작 이 방의 주인의 표정을 봤을 때는 이게 그녀에게는 썩 좋은 제안이 아님을 알았다.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으니까.
“너희 정말… 나쁜 애들이구나.”
“…그러게요. 하지만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저도 제 가족이 지금 귀신 때문에 위험하거든요.”
유원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미워할 수도 없다면서.
“알았어. 너희들도 사정이 있을 테니까. 나도… 내 딸을 위해서 무언가 해 줘야 되는 건 마찬가지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유원이 나선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나였으면 그냥 설명하고 그게 끝이었을 테지만 유원의 경우는 가족, 정확히는 친척이 연결되면서 ‘가족’이라는 공통적인 합의점을, 설득력을 만들어냈으니까.
덕분에 그 이후에 하는 준비들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각자 대강 주머니에 메스도 챙겼다. 가위도 있긴 했지만 가위보다는 이쪽이 더 공격하기도 쉽고 날카로우니까.
우선은 자신의 몸이 우선이긴 하기도 했고.
그리고 각자 주사기도 최소 하나씩은 챙겼다. 내 경우에는 수면제 말고도 붕대도 챙겼는데 유원이 필요할지 모른다면서 챙겨주니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다.
졸업앨범은 여전히 내 손에 있었다.
솔직히 이걸 지켜내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도 살짝 겉에 표지가 살짝 찢어졌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여기 두고 싶기도 했지만 어떻게 여기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을뿐더러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야 했다.
“라이터나 성냥은 어디에 있나요?”
“…여기에는 없어.”
“그러면 위층?”
“…아니… 더 위에.”
역시나인가. 나는 이런 때, 게임과 다르지 않다는 게 싫었다. 위도 아니고 더 위에 층, 그러니까 2층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다른 계단은 있나요?”
“반대쪽 편에 있어. 거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서 사람도 별로 없을 테니 그쪽으로 가는 게 편하겠지.”
“혹시 큰 걸로 휘두르는 건 없고요?”
아무래도 사람을 상대하는데 칼은 너무 위험할 것 같다. 게다가 한 번에 덤비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큰 무기가 있으면 했지만 정작 답해 주는 상대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글쎄…….”
“그러면 책은요?”
“그건… 두 번째 칸 빼고는 괜찮을 것 같아.”
“두 번째 칸에 뭔가 있나요?”
“저래 봬도 구하기 어려운 거라서. 나머지는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야.”
이런 것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얘기였다. 보통 이런 류의 게임은 도망가면서 시간을 끄는 게 보통이긴 한데 이 병원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이 어느 정도는 있는 데다가 귀신의 힘의 집약체가 있는 만큼, 또 끝이 가까운 만큼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수는 없다는 듯이.
그사이에 강한은 수면제를 하나 더 챙기고 나한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냥 가면 안 돼?”
“안 돼. 사람이 다칠 수도 있잖아.”
“우리가 다치는 것보다는 낫지. 그리고 너 받은 것도 있지 않아?”
받은 거, 부적을 말하는 거였다. 나는 그걸 내 옷 안에 끼워 넣었다. 아무래도 주머니 안에는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았고 이편이 잘 빠질 것 같지도 않아서. 게다가 굳이 이런 때에 이렇게 묻다니 일부러 그런 게 티 나서 짜증 났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라서 참고 답해 주었다.
“A를 지키기 위해서 아껴야 돼.”
“그래? 뭐, 그런 이유라면 나도 일단은 모른 척해 줄게.”
역시 강한은 A한테 약했다. 왜 저렇게까지 신경 쓰는지는 저번에 보니 동정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쪽 역시 나를 잘 알지도 못했으니 이 정도로 서로 협력하는 게 적당했다.
특히 의사인 그녀는 아예 자신의 의료도구를 챙겼는데 우리는 올라가는 걸 크게 서두르지 않았다. 움직이는 소리, 혹은 주변에 위험한 게 있는지도 만에 하나의 경우에 따라 확인을 해야 했으니까.
“다행히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괜찮네.”
2층까지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위화감은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자, 그럼 들어갈까?”
“네.”
달칵.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외부와 연결된 복도니까. 식물이나 정수기 같은 건 보였는데 딱히 위험이 될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여기는 아무것도 없나?”
“그런가 보네요.”
“그럼 좀 더 가 보자.”
마침 복도에 문이라고는 달랑 하나뿐이었다. 병원 창고의 문, 특히 2층에는 병실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발은 어느새 문을 열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 조금 더 넓은 공간의 창고를 지나고 또 다른 문을 열어 보이는 공간으로.
아마도 곧 반응할 장면을 떠올리면서.
“…평소와 별로 다를 게 없는데.”
“그러게. 뭐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녀의 답과 함께 강한도 맞장구쳤다. 안 그래도 내가 여러 가지로 사람들한테 위협당할 얘기도 꺼내서 그랬는지 바로 튀어나오는 말들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물론 지금 말하지 않는 누군가 역시도.
왜냐하면 평범한 병원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어떤 노인인 환자가 휠체어를 타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허허, 유 선생이구만. 이번에도 환자들 보러 온 건가?”
“아뇨… 음.”
“그럼 저기 있는 학생들 안내?”
“아, 네…….”
“그렇구만. 그래서 저쪽에서 몰래 들어온 건가?”
“네?”
콱!
“윽!”
“아니 뭐, 발을 묶어두라는 얘기를 들었거든. 미안하게 됐어.”
허허 웃으며 노인은 휠체어로 그녀의 신발 끝부분을 잡았다. 그나마 다치지 않은 건 나와 유원이 움직인 덕인데 노인은 그런 우리를 보다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안됐구만.”
“네?”
“나만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니라서. 그래, 나는 발만 잡으면 되니까.”
위화감 없는 표정으로, 평소에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대화하는 노인의 말대로 몇몇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고 놀라고 있는 상태로.
그러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진짜 사람과 귀신이 들어간 사람을 구분할 수 없는 어려운 상태라서 나는 유원을 쳐다봤고 유원은 곧 입 모양으로 말했다.
전부 조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