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상한 학교 (2)
부반장을 따라온 곳은 건물 바깥이었다. 정확히는 건물 밖에 운동장이 보이는 그 옆 구석진 곳, 산이 보이는 방향에 가까운 곳에.
적어도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근데 이런 데까지 와야 해?”
그 와중에 강한은 투덜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는데 나 역시도 부반장의 행동은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곧이어 설명하는 얘기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 안에서 귀신 얘기 같은 걸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그래. 그리고 거기서 얘기하면 걔도 만날 것 같고… 그건 좀 그래서. 물론 내가 잘못 본 것 같으니 전학생이 아닐 수도 있고 그냥 우연히 지나간 거겠지만.”
“…그건 그렇지.”
부반장은 여전히 자신이 본 게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내가 생각한 걸, 유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어쨌든 내가 더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강 동의했더니 부반장이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귀신 얘기는 뭐야?”
“귀신 얘기?”
“그래. 네가 나한테 귀신 들렸다던 얘기.”
“…쟤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없어.”
사실이 그랬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어쩌다 보니 해명하지도 못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나 싶어서 봤더니 강한은 아까처럼 실실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냥 말해 본 거야. A가 귀신 들린 애가 있다고 해서.”
“귀신 들린 애가 있다고 했다고?”
“그래. 그래서 대충 생각해 본 거야. 틀렸으면 사과하려고 했어. 미안?”
전혀 미안하다는 태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A한테 들었다는 말은 진짜 같았다. 게다가 부반장은 다른 의미로 놀랐는지 잠깐 입을 벌렸다가 겨우 진정됐는지 아까와는 달리 강한을 보면서 물었다.
“…A가 정말 왔었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움직인 거지. A가 부탁했거든.”
“그럼 내가 어제 본 건… 진짜였단 말이야?”
“와, 어제 A 만났어?”
“몰라… 아, 그럼 걔도… 아니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부반장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원래 내가 아는 게임에서라면 A가 여기에 왔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처음부터 달라져서인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애당초 A도 그렇고 유원도 달랐으니까. 근데 나는 그걸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무시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걸 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까.
물론 내가 아는 현실이 아니긴 해도 어쨌건 지금 여기서 벗어나기 어려운 건 사실이라 일단 하나씩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일단 네가 본 게 A는 맞아도 유원은 아닐지도 몰라.”
“뭐? 하지만…….”
“얘일지도 모른다고.”
“저 애가? …아. 보니까 좀 키도 비슷한 것 같네.”
“어제 A가 부탁했다고 하던데.”
“…그런가… 그럼 이해는 가는데…….”
얼추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긴가민가한 것 같기는 했지만,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강한 역시 그게 맞을 거라고 하면서 운동장 밖, 아까 부반장이 가리키던 방향 비슷한 곳을 바라보았다.
“저기쯤이었나?”
“그래.”
“으음, 그럼 나 맞는 것 같은데?”
역시 그런가,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저기에 유원이 갔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대충 긍정했더니 부반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다가 건물 쪽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한 태도로 말했다.
“아, 그럼 나 괜히 오해한 거야? 어떻게 해…….”
“괜찮을 거야.”
애당초 유원은 친척을 위해 많은 걸 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서도 여러 가지로 힘써주고 자신의 몸을 쓰는 걸, 솔직히 보기 좋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모로 속이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마음이 넓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가 유원이었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른들이 하는 일만 기다렸을 것이다. 아무리 친척이랑 친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헌신적인 행동을 보이기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긴, 걔랑 반장이랑 친해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A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오래 안 것 같고.”
“…그래 보여?”
“아니야?”
“안 지 얼마 안 됐어. A 관련으로 찾아가면서 알게 된 거거든.”
“그래? 그런 것치고는 둘이 친해 보이던데. 하긴, 친구 사이에 시간은 상관없으니까.”
친구 사이에 시간은 상관없다니, 이런 말은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부반장도 유원의 태도가 너무 사근사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이유를 알아서 이제는 조금 납득 가능한 것 같긴 해도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은 있다.
그렇게 생각할 즘, 부반장이 말을 꺼냈다.
“저, 그럼 나 이만 가도 돼?”
“어?”
“귀신 들린 게 오해라는 것도 해명됐고. 그렇지?”
나를 보면서 물었다. 마치 내가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는 듯이, 그쯤에서 나는 위화감을 느꼈어야 했다.
“…벌써 귀신 들린 건가?”
“뭐?”
강한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의아하기도 잠시, 갑자기 내 손을 잡고는 외쳤다.
“피해!”
뭘 피하라는지는 곧 알 수 있었다.
부반장이 웃으며 빠른 속도로 이쪽을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반장… 왜 도망가……?”
마치 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쫓아왔다.
고개를 기이하게 꺾은 채로.
당연히 뛸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같이 가자는 소리가 나오는데 정말 소름이 돋았지만 그 와중에도 발은 멈추지 않고 어느새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그사이 강한이 잠깐 건물이 보이는 위쪽을 보다가 들어가자고 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문을 닫기에는 학교라는 건물이 문이 많아서 차라리 도망가는 쪽이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진짜라고 하지만 말고 얼른 움직여.”
“…나도 알고 있거든.”
하지만 귀신이 들린 상태라면 쉽게 건들지 못한다. ‘이상한 저택’은 그래도 다 그냥 귀신 상태라 쫓아내기 어렵지 않았지만 이곳, ‘수상한 학교’는 안 그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귀신이 사람 몸에 들어가기가 쉽다.
물론 내 몸 역시도.
분명 아직 해가 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니 어쩌면 그냥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에서는 밤만 이어져서 몰랐던 거지, 이런 시간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난 알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우리는 그 와중에도 피했다. 위로 올라가는 건 자살행위였고, 다시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건 더 최악의 일.
그래서 나는 교무실에 왔다.
“왜 교무실이야?”
“귀신도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는 나서기 어려울 테니까.”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교무실을 들어오면서도 강한은 뒤를 보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마침 담임 선생님이 보였다.
“오늘 많이 보네.”
“…그러게요.”
“무슨 일 있니?”
때마침 묻는 담임 선생님을 보니 나는 입을 열고 싶었다.
그냥 충동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계속 입만 다무는 것도 질렸으니까.
“…선생님은 귀신 믿으세요?”
“귀신? …글쎄다.”
“부반장이 귀신에 들렸다면 믿으실래요?”
“…뭐?”
“A도 귀신에 당하셨다면 믿으실래요?”
“그건…….”
역시인가. 선생님이라면, 선생님이니까 오히려 귀신이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어른이면 고정관념이라는 틀이 오히려 잘 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곧,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정말요?”
“그래. 안 그래도 요즘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해서. 아무래도 내가 너희 담임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잘 눈치챈 걸지도 모르지.”
원래 게임에서 담임 선생님도 지금보다는 좀 늦지만 귀신을 인정해 주긴 한다. 하지만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였다. 귀신에 빙의한 부반장 때문에, 다행히 그때는 학교에 사람이 별로 없던 때라 많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있는 사람 몇이 죽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모습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변화가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제가 오늘 무슨 짓을 해도 그냥 장난이라고 치고 넘어가 주실래요?”
“그건 싫은데?”
담임 선생님이 웃으며 단번에 말한다. 그래서 내가 멈칫하자 곧 선생님은 농담이라며 웃어 버렸다.
“진심이잖아. 학생이 말을 무조건 장난으로 할 수는 없지.”
“그럼 저도 그 학생에 넣어주시는 건가요?”
“어, 누구?”
“강한인데요?”
나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강한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모양인지 들리는 말소리에 그제야 선생님이 강한에게 시선을 두고는 물었고, 곧 강한은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것처럼 말했다. 실제로 그런 것 같긴 했지만.
“아아, 강한이면 그 3학년 학생인가?”
“절 아세요?”
“당연하지. 문제아로 유명하던데?”
“그래도 싸운 적은 없잖아요.”
“그래도 수업은 자주 빠지니까. 아까 대충 봐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강한일 줄이야.”
강한은 꽤 유명해 보였다. 하지만 강한의 이름은 A가 지어 준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는 걸까.
그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말하기에는 껄끄러웠다. 주변에 다른 선생님들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근데 진짜 그런 거면 어떻게 하니?”
“…유원을 만나야 해요.”
“유원? 아까 그 전학생?”
“네.”
“걔가 부적 가지고 있거든요.”
“…아, 그래? 그럼 어디로 갈까?”
선생님도 따라갈 생각인 건지. 내가 의아해하며 보고 있을 때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갈 데도 정하지 못해서 솔직히 어쩌나 싶었는데 나는 곧 나는 소리로 인해 잊었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너무나 멀끔하게 보이는 부반장의 목소리로.
덕분에 나는 소리가 들리는 문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그 순간까지도.
아까 목이 꺾인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라 나는 많이 놀랐지만 나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부반장은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반장이네?”
“…….”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잘됐다.”
활짝 웃으면서.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근처 책상 연필꽂이에 있던 커터 칼 하나를 들고는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선생님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뭐 하는… 커헉!”
“죄송해요, 선생님. 하지만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요.”
사람 한 명이 죽었다.
웃는 부반장과, 그 자리를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선생님들. 나는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몸만 덜덜 떨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 해서 결국 부반장이 바짝 다가왔다.
“잡았다.”
내 손을 붙잡은 부반장은 한 손에는 여전히 피 묻는 칼을 들고 있는 채로 활짝 웃고 있었다.
* * *
섬뜩했다.
설마 눈앞에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는 여학생이 있을 줄은 생각은 했을까.
아니,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몇 번 봤지만 부반장은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으니까. 여러모로 변화들이 생겨서 부반장이 설마 귀신이 들렸을까 하는.
그런 의심까지 가질 정도로 낮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내 불찰이었다.
처음부터 똑바로 말하고 유원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휙―
“…반장의 피 맛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어.”
그런 말을 정말 태연히도 했다. 그것도 내 손목을 붙잡은 채로, 칼날이 내 뺨을 스쳤는지 뚝 하고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너무 잘 들렸지만 나는 그것까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반장… 왜 떨어?”
“…왜 그러는 거야.”
“나?”
“그래. 왜 굳이 나한테…….”
그랬다.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부반장은 어째서 나만 쫓아왔을까. 물론 플레이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지금 느끼는 이 공간이, 이 세계 자체가 내가 아는 것과는 아주 달랐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적어도 틈이라도 생겼으면 싶었다.
적어도 내가 바로 죽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발버둥 칠 수 있을 틈을.
그래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말을 해 보자고 한 거였지만 대답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그야 나는 반장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넌 귀신…….”
“처음부터 귀신이 들어온 건 아니야…, 그리고 부반장은 아직 여기에 있어. 널 볼 때마다 심장이 크게 뛰고 너한테 뭐라도 해 주고 싶어 하지. 너도 알잖아?”
“…몰랐어.”
부반장의 마음, 물론 호의가 있다는 것쯤은 느꼈다. 하지만 그게 꼭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할 것까지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부반장은 그런 나를 보며 비웃듯 말했다.
“거짓말.”
“뭐?”
“알고 있었잖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그 전학생이라는 애가 널 좋아하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잖아.”
“…….”
“근데 모른 척했지. 그렇지? 그래서 이 아이가 참을 수 없던 거야.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지.”
너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때문이라고, 내가 자꾸 자극해서 그랬던 거라고, 괜한 사람을 흔들게 만든다고 했다. 그 말이 내 마음을 깊숙이 후볐다.
그동안의 나는 모든 게 힘들었다.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니까. 과연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을까. 게다가 파악하지 못한 게 생기면서 나는 게임의, 내가 아는 인물들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유원이 자신이 다치면서 굳이, 나를 지켜준다고 했던 그 일들이 나는 아직도 생각난다. 부반장 역시 나에게 어쩌면 본인이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도 나한테 굳이 정보를 말해 줬다.
나는 그것들을 그냥 호의로밖에 여겨서 이런 오류가 발생한 거였지만 이미 늦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미안해.”
“괜찮아. 대신 네 몸을 내가 가지면 되니까. 그 안에 있는 피랑 살을 전부 나한테 주면 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한 부반장, 칼은 어느새 뒤쪽으로 나를 찌를 듯한 자세가 되었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게 더 최악임을 알고 있음에도.
“…왜 도망가냐고!”
푹―
“윽!”
또 한 번, 칼이 내 살을 스쳤다. 그와 동시에 내 다리는 땅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부반장은 그걸 놓치지 않고 내 위로, 내 몸을 붙잡으면서도 물었다.
“내가! 왜! 가냐고! 했잖아!”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를 압박한다. 내 살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로 칼을 쑤시며 바닥에 박는데, 심지어 그사이에 표정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를 정말로 좋아해서 반장이 되고 싶었던 건데…….”
울 것 같은 표정이었으니까.
실제로 게임에서도 부반장은 귀신이 되면 ‘플레이어 1’, 그러니까 나를 쫓는다. 보통은 유원이 움직이지만 나는 그게 귀신 관련해서 이 캐릭터가 움직이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잊지 마.”
강한이었다. 느닷없이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분명 맞았다. 뭘 잊지 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조금은 정신을 차렸다.
냉정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아까보다는 상황 파악을 할 정도의 정신이.
덕분에 부반장이 여태 나를 죽일 듯이 구는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 살려 두고 있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결국에 빙의는 빙의일 뿐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반장.”
“왜……?”
“미안하다는 말 사과할게.”
“뭐?”
“내가 아는 부반장은 좋아한다는 말 한 번 안 해 보고 이런 말을 할 애가 아니야. 적어도 이런 짓을 벌이려면 그 정도는 했어야 할 테니까.”
게임에서는 잘 몰랐지만 여기에서 본 부반장은 그랬다. 내가 직접 본 부반장은 자신의 말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당당하게 내뱉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붙잡았다.
“뭐 하는 짓! …아아악!”
원래대로 해놓기 위해서라도.
왜냐하면 부반장이, 아니 정확히는 들러붙은 귀신이 나를 향해 집중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의외의 물건을 가진 채로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씩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죽여버릴 거야!”
저것은 귀신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걸 보며 나는 위험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가 잡았다.
정확히는 몸을 붙잡을 듯이 등 뒤로 부적을 붙였다.
“…이제 그만하자.”
“…당신…….”
“그래… 쉬어도 돼.”
담임 선생님이 부반장을 붙잡으며 등을 토닥이듯 감싸 안았다. 지은 표정은 어째 씁쓸해 보였지만 부반장도 금방 힘이 빠졌는데 선생님은 그런 부반장을 붙잡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 가짜면서 진짜같이 구는 게 나는 괴로울까.
아까도 무섭고, 아직도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 아무도 나를 구해 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누가 부반장을 데려가고 그런 건 알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선생님은 나한테 부적 하나를 더 주셨다.
“반장이 귀신에 잘 들러붙는 체질이라면서? 혹시 다른 귀신 붙을지도 모르니까 부적 하나 정도는 챙겨가라고 하던데.”
“…누가요?”
생각해 보니 아까도 그렇고 선생님이 귀신을 잘 받아들였다는 점이라든가 어떻게 부적을 갖고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더니 선생님은 바로 답해 주셨다.
나도 어렴풋이 예상했던 답을.
“유원이었나? 아까 전학생.”
“유원이라고요…….”
“그래. 아까 이걸 주고 가더라고. 설마 했는데…….”
선생님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선생님이 어느 정도 가고 보니 강한이 보였는데 왠지 다가온다 싶더니 말을 걸었다.
“나 3학년이다?”
“…그게 뭐.”
“선배라고 불러.”
아까 교실 앞에 있던 학년이랑 반이 있던 판을 열심히 본다 싶었더니 이제 알았던 모양이다. 근데 그게 또 이 상황에서 할 말인지, 나는 마지못해 대답해 준다는 식으로 말했다.
“선배. 됐어?”
“누구 닮았는지 재수 없네.”
“그쪽이야말로. 아까는 왜 안 도와줬어?”
“타이밍을 재고 있었지. 그리고 아까 구해 준 건 생각 안 해? 내가 아까 너 잡고 안 뛰었으면 너 안 괜찮았을걸.”
그건 그랬다. 아까 말했을 때도 그렇고 강한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점을 모른 척하지는 않기로 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생각보다 강한은 뭐라 핀잔주지도 않았다. 그냥 나를 보면서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며 보는데 왠지 어색하게 느껴져서 주변을 보니 어느샌가 부반장은 보이지 않았고 부반장을 데려간 선생님만이 보였는데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바로 손을 잡고 말했다.
“나가자.”
그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계속 핏자국이 있는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선생님을 따라서 아까의 상담실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달칵.
“아까도 여기에 왔었지?”
“…네.”
“그러면 일단 앉으렴.”
우리는 앉았다. 선생님은 문이 있는 방향이었고 우리가 창문이 보이는 방향이었는데 선생님은 한숨까지 내쉬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솔직히 아직도 그 아이한테서 귀신이 있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단다.”
“저도 그래요.”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애초에 A를 좋아하던 그 귀신은 사랑을 받아보려고 하던 여학생 귀신이었으니 부반장이랑 여러모로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귀신이 그 정도로 끝나다니.
게임에서는 학교에 온갖 곳에서 도망치듯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플레이 위주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낮이라서 웬만한 귀신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래서 부반장이 귀신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한 건 잘못이었다.
변화라는 건 하나뿐이 아니었을 텐데도.
많은 것을 의심했어야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이미 됐어.”
창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왜들 그러니?”
“…그냥요. 혹시 모르니까.”
“이런… 의심 많은 아이들이네?”
“선생님은… 어디 가셨죠?”
“…이미 의심하고 있지 않니?”
비스듬히 웃었다. 나는 그게 신호임을 알았고 강한과 동시에 창문 밖으로 나왔다. 1층인 게 정말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런 식으로 물을 기회도 없었을 것 같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뭐가?”
“그 선생님이 이상한 거.”
“…부반장 때문에?”
“부반장?”
“어. 부반장은 나한테 보통 반장이라고 하거든. 근데 선생님에게는 다르게 부른 것 같아서. 그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부반장 일 때문에 예민했던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겨우 그런 일로 의심하는 건 이상하니까 일단 시험해 보기로 했는데, 고작 당신이라고 불렀던 그 호칭 하나로 의심했던 게 결과적으로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아… 진짜, 어디까지 도망가야 하는 거야?”
“…….”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갈까?”
“…괜찮을까?”
“방법이 없잖아? 그리고 부적도 찾아야지.”
부적은 유원에게 있었다. 유원과 이렇게까지 못 본 건 처음이 아닐까. 강한의 말도 틀린 것은 없어서 우리는 다시 건물 쪽, 위로 올라가기로 했는데 복도를 지나가도 위층 어디에도 유원은 보이지 않았다.
“또 위로 올라가야 하나…….”
“위에 있을까?”
“있겠지? 아까 건물 안에 있는 걸 봤거든.”
“봤다고?”
“그래. 아까 우리가 이렇게 운동장에서 뛰고 있었을 때 유원이 거기 있었으니까.”
유원이 거기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 잠깐 건물이 있는 쪽을 봤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그걸 왜 이제……!”
“곧 만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연한 거잖아?”
“…그건 그렇지.”
여전히 교실 안을 살피면서 말하고 있는데 확실히 유원이라면 우리를 발견했다면 금방 그 자리에서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왜 오지 않았을까.
못 본 걸 수도 있고, 아마 그때 선생님에게 부적을 줬던 게 아닐까.
그리고 선생님도 이상하긴 했다. 그렇다면 아까 처음에 상담실에서 우리를 붙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긴 부반장도 처음에는 멀쩡해 보였다. 어쩌면 귀신들이 몸을 제대로 제어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밑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일단 화장실이라도 갈까?”
“거긴 왜?”
“A가 거울 봉인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알려 줬거든.”
“그 말은…….”
“화장실 거울로 봉인하자고.”
거울 봉인, 여기서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상한 저택’이야 A와 관련 있는 귀신 외에 다른 귀신들도 방해가 되니까 할 만했지만 여긴 학교였고 귀신 역시 다른 식으로 봉인했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실에 있는 그림에.
“가능할까?”
“해 봐야지.”
여기 거울은 다르니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거울이면 부적도 필요 없을 것 같고. 그래서 강한의 말대로 일단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잘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도망치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내 손을 깨물려고 했는데 강한이 내 손을 붙잡더니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네가 하겠다고?”
“아까는 네가 거의 한 거니까. 이번에는 내가 해 봐야지. 어쨌든 지금 나는 너희랑 같이 다니려고 나름 협력하는 쪽이니 잘 보이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너 귀신 잘 붙는 체질이라던데 네 피 냄새 때문에 오면 어쩌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아까 달린 것도 있고 위협당한 것도 있어서 괜히 내 힘만 더 빠질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그랬더니 강한도 봉인하는 문양을 아는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그렸다.
정말 그냥 문양을 보고 그렸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정도면 되겠지?”
“그래.”
봉인은 준비됐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은 꺼림칙했다. 왜일까, 왜 그런 건가 싶으면서도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다가오는, 귀신의 소리를.
“슬슬 온 것 같은데.”
“…….”
“혹시 안 되면 창문으로 갈 준비는 못 해. 알고 있지?”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각자 뭐라도 들고 있었다. 정신없어서 어디 갔는지 모를 앨범은 지금으로서는 찾을 틈도 없으니 둘째 치더라도 내 한 몸 지킬 만한 것도 없었으니까. 다행히 교실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으니 나 역시도 가위 정도는 들어야 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준비됐지?”
대답하지는 않았다. 곧 사람이 다가왔으니까.
“…윽!”
그리고 오자마자 역시 나를 먼저 잡아챘다. 그것도 아까 부반장이 가지고 있던 칼을 들고.
“눈치는 빠르지만 하나는 몰랐겠구나. ‘저건’ 쓸모가 없어. 겨우 저런 거울로는.”
“읏… 안 된다고요?”
“그래… 정말 쓸모없는 짓을 했더구나.”
“왜… 당신한테… 빙의…한 거죠?”
목이 막혔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랬더니 잘도 답해 주었다.
“선생님 쪽이 움직이기 더 편하니까. 그래서 그 학생을 미끼로 사용했지. 나인 척하는 건 쉬운 일이니까.”
조금 정도는 의심할 수 있다고 했으니 좀 더 믿게 만든 후에 잡으려고 했다고 한다. 언제 도망칠지 모르니까. 하지만 들켰고 이렇게 되었다고, 그러니 지금 순순히 잡혀달라고 귀신은 말했다.
본체가 아닌 상태로.
본체가 아닌 귀신은 본체보다는 힘이 없다. 그러니 빙의할 만한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면 본체는 또 얼마나 강한 걸까.
솔직히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목이 조이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발버둥 치는데 그때, 강한이 허벅지를 찔렀다.
“끄아악!”
“피해!”
강한이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허벅지에는 가위가 꽂혀 있는 상태였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겨우 선생님을 넘어뜨리고 움직였는데 선생님도 조금 늦게 일어났는지 쫓아오려는 게 보였다. 어쩌지, 어쩌지 했지만 쫓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고 우리는 결국 다시 밑층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쫓아오는 소리가 가까워져서 나는 엄청나게 긴장했다.
“거울 봉인은 안 되니까 부적이 필요할 텐데… 어쩌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이라니, 그냥 조용한 데서 오래 버티면서 유원이나 찾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강한은 이상하리만큼 태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은 허벅지를 다쳐도 멀쩡하게 이곳까지 왔다.
“내가 얼마나… 찾은 줄 아니?”
마치 먹이를 보는 듯한 눈,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강한은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곧 나를 보고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너, 잠깐 얌전하게 있을 수 있어?”
“…왜?”
“내가 너한테 조금 나쁜 짓을 할 거거든. 근데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필요한 일이라서.”
“…….”
“물론 네가 허락하지 않아도 할 거지만.”
기가 막혔다. 그럼 왜 물어본 거지, 하지만 또 뒤에서 누가 오는 게 이렇게 무서울 정도라면 차라리 뭐라도 해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나한테는 정말로 선택권이 없었다.
허락하는 수밖에는.
“할 거면 빨리……!”
빨리하라고 하려 했지만 그 순간 붙잡혔다. 뒷머리가 붙잡히고 입가에 부딪쳤다. 나는 더 뭐라고 하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이상하게도 강한과 키스를 하게 됐다.
정확히는 하는 척이었지만.
힘이 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뒷머리를 잡는 힘이 세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강한은 고개를 움직였다. 마치 정말로 키스하는 것처럼 입술이 닿을 듯 말 듯이.
그런 식으로 살이 옆쪽으로 부딪치는 행동에 나는 입술이 꽤 쓰렸는데 강한은 웃고 있었다.
여전히 강하게 나를 붙잡은 채로.
덕분에 그 짓을 몇 초 동안 하다가 강한이 입을 떼자 나는 그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따지는 거였지만.
“하… 뭐 하는 짓이야?”
“…결과적으로는 너한테도 좋은 일?”
“뭐?”
“봐봐. 오잖아.”
선생님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뒤에 다른 사람의 머리나 다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서 이윽고 선생님이 쓰러졌을 때는 완전히 모습이 드러났다.
“…유원.”
“안녕, 일아.”
유원은 그 특유의 다정해 보이는 미소로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왔다.
큰 부적을 제외한 다른 부적들을 들고 있는 채로.
* * *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유원은 분명 부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나는 건 너무 늦었고 강한이 말했던 것도 걸렸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디 있었어?”
마치 무언가를 삼킬 것만 같이 갈증이 났지만 나는 그걸 내뱉을 수 없었다.
왜 바로 우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걸 물으면 나도 우스워지겠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서 말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유원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입술 부었네.”
그렇게 말하면서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매만졌다. 나는 그 감각이 이상했지만 뭐라 따지지 못하는데 유원은 그사이에도 잘도 말했다.
“내가 혼내 줄까?”
“뭘?”
“너한테 파렴치한 짓을 한 거에 대해서.”
내 얼굴을 붙잡으며 말한다. 눈을 마주치며 보다가 이윽고 강한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 정도는 각오한 거였지?”
“…그래. 근데 이건 네가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저쪽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억울하다는 듯이 강한이 말했다. 틀린 건 아니었다. 어쨌건 내가 당하긴 했으니까. 물론 허락하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거일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많이 창피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이런 거 보여 주지 않아도 일이가 위험해 보이면 바로 왔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때리는 것도 어느 정도 자격이 있지.”
“그러면 아까는 왜 안 왔어?”
“…사정이 있었으니까.”
유원은 어쩐지 참는 기색이었다. 정말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미안해. 다 말해 주지 못해서.”
“…….”
“하지만 방금 내가 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이유?”
“그래. 분명 내가 끼면 귀신은 도망쳐서 다른 몸으로 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면 일이 더 복잡해졌겠지.”
확실히 귀신이란 게 실체가 없는 만큼 그럴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나는 아직 본체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유원의 말이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알기는 할 것 같을 뿐이지만.
“그렇다면 아까도 왔어야지. 안 그래도 나도, 쟤도 힘들었는데.”
강한이 조금은 힘 빠진 목소리로 웃으며 반박했다. 하긴 그렇긴 했다. 선생님에게 부적을 쥐여 줄 정도로 시간이 있었다면 어쩌면 조금 더 일찍 우리를 구해 주지 않았을까.
일부러 구해 주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아예 외면할 수는 없어서 나는 결국 유원을 보며, 답을 기다렸다.
뭐라도 해명을 해 보라는 듯이.
“그건… 지금 말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뭐?”
“슬슬 부적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거든.”
그 말 그대로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잠깐 흔들려 그 누구도 그때만큼은 그곳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제 보니 학교에서 필요한 큰 부적은 쓰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큰 부적은 어딨어?”
큰 부적, 원래라면 있어야 했고 유원이 찾는다고 했으니까 저 정도 부적들을 들고 왔을 정도라면 큰 부적 정도야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유원의 손에는 그런 부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에는.
“…미술실에 있어.”
조금은 느리게 답했다. 원래 게임에서도 최종 목적지나 다름없는 장소라 그런가 그럴듯하다고 여기면서도 느닷없이 내민 손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야?”
“손, 너 힘들었을 테니까 잡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싫어?”
“…아니.”
사람, 아니 귀신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데 밖에 있는 유원의 손을 잡는 편이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바로 잡아서 복도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는데.
“잡아.”
“…나도?”
“일이를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너 좀 재수 없다.”
“그래서, 안 잡을 거야?”
웃으면서 묻는 말에는 조금 장난스러웠다. 마치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이, 그런 태도는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실제로 강한 역시 무사히 화장실을 나오고 같이 복도를, 계단을 지나 미술실까지 갔으니까.
해야 할 일로 벅차서 다른 생각들은 잠시 미뤄둬야 했다.
“부적은 어디 있어?”
“이쪽… 아, 여기 있네.”
부적은 조각상 밑에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부적 특유의 노란색이 보였을 뿐이지만 곧 다리 정도 되는 크기의 부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봉인해야 하지?”
“그래. 오래된 물건일수록 더 좋고.”
물론 오래된 물건이라고 무조건 되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만한 물건, 특히나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만한 물건은 영력이 더 크게 발휘된다.
여기까지가 게임상의 설정이었다.
강한이야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대충 우리가 오래된 물건이라고 해서 그런지 이것저것 찾는데 내가 찾는 건 딱 하나뿐이라 적당히 무시할 건 무시하고 미술실 안에 있는, 바로 보이는 액자 그림 중에 하나를 벽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나는 액자 뒷부분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왜 그래?”
유원이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액자의 뒷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못이야.”
“아…….”
“드라이버가 필요한데 지금은 찾기 좀 그렇잖아. 시간도 많지 않고.”
말하니까 정말 현실감이 느껴진다. 보통 액자에 못이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드라이버가 어디 있는지는 대충 알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거기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아까 선생님의 몸이 들썩이는 걸로 봐서는 지금 찾아봤자 어려울 것 같아서 정말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깨면 되지 않아?”
“그러면 귀신이 바로 올지도 모르지.”
“…아.”
강한의 말대로 깨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정도 지났으면 벌써 어느 정도 깼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확실히 별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유원이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가 문 쪽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너는 그사이에 봉인 준비를 해 줘.”
“…내 의사는 안 물어봐?”
강한은 동의하지 않은 일, 그래도 작은 편은 아닌 나보다 둘이 더 큰 만큼 힘도 센 편이라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귀신이었다. 팔이나 다리 조금 꺾여도 움직일 수 있는 귀신.
“…알았지?”
조심하라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도 덜도 말고 딱 한마디만 했다.
“알았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보다는 본인 생각이나 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이라 뭔가 방법이 없는 이상 이것에 대해 더 말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도 알아서 나는 금방 액자를 깰 생각을 하기로 했다.
“뭐 도구 없나…….”
“도구? 역시 깨뜨리는 거야?”
아직도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된 강한이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한이 웃었다.
좀 불길하게.
“그럼 아예 뒤집어서 깨는 건 어때?”
“뒤집어서라니…….”
“뒤집은 채로 떨어뜨려서 깨는 거지. 다른 도구는 없다면서. 네가 들고 있는 가위로는 턱도 없고.”
나는 그 말에 내가 쥐고 있던 가위를 보다가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면 졸업앨범도 어디에다 뒀는지 깜빡 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리저리 뛰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뭐 지금 와서 그런 건 상관없지만.
“…너무 무식한 방법 아니야?”
“그럼 여기서 더 어떻게 하라고.”
그건 그랬다. 하긴 별 방법이 없는 건가 싶어서 동의하려고 하다가 유원이 그런 우리를 보다가 말했다.
“그러면 차라리 조각상이라도 이용하는 건 어때? 조각상이 단단하니까 세게 부딪치면 깨지지 않을까?”
“그것도 괜찮겠는데? 가져올까?”
“…그래.”
뭐가 되었든 깨지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우리는 서둘러서 움직였다. 물론 행동력 강한 강한이 먼저 제일 가까운 조각상을 가져온 건 당연했고 금방 들고 와서 그런지 별로 안 무겁나 생각했는데,
쨍그랑!
순식간에 바로 깨졌다.
물론 조각상보다 그림이 더 넓어서 한 번에 다 깨지는 건 무리였지만 몇 번 더 하다 보니 유리는 완전히 깨졌고 밑으로 유리 조각을 탈탈 털어내니 곧 부적을 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애초에 앞으로 깨면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꺼내는 건 무리였으니까.
쿵!
그리고 때맞춰 들리는 소리, 나는 서둘러야겠다며 입을 다물고 큰 부적을 찾아 그림을 확인했다.
그림은 풍경화였다. 집이 그려져 있는, 사람 하나 없어 보이지만 햇빛이 비춰서 땅까지 밝은색이라 유난히 더 밝아 보이는 풍경은 이걸 그린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마 이 안에 있는 물건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봉인이 우선이라 나는 바로 보이는 큰 부적 두 개를 가져와 그림 위에 X자 표시로 붙였다. 진짜 미술 시간처럼 풀로 붙이는 게 아니었다.
손가락 끝으로 부적의 글씨를 눌러준다. 그리고 강렬히 바란다.
그사이에 뭔가 크게 움직이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나는 점점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에 집중했다.
마치 내 기운이 부적에 전달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감히… 여기에 와?”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귀신에 빙의했다는 특유의, 거칠어진 음성. 마치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느껴지는 존재감에 나는 아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부적을 쓰다듬으며 기도를 해야 했다.
이건 영력이 강한 사람 특유의 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니까.
쨍그랑!
하지만 정말 쉽지는 않았다.
“하, 그나마 문 쪽을 막아서 다행인 거야?”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힘은 당해 내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둘이서 말하는 걸 보니 유원이 생각한 모양이다. 아까 그게 가구 옮기는 소리였구나 싶으면서도 나는 글자를 훑는 걸 멈추지 않았다.
물론 걱정은 됐지만 이걸 멈춘다면 더 걱정이 될 만한 사태가 일어날 테니까.
게다가 글자가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얼마 안 남은 상태라 나는 귀신이 있는 데를 봤다. 그랬더니 눈이 마주치고 표정을 봤다.
기이하게도 웃고 있는 표정을.
하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 쓸 새도 없이 이상한 게 보였다. 귀신들이 보이는 끔찍한 환상들.
피가 잔뜩 흘러내리며 엉킨 팔과 다리들이 내 몸을 감싸는 그 끔찍한 감각들이.
“으윽…….”
토할 것 같았다. 영화나 소설 같은 거였으면 차라리 괜찮았을 테지만 생생하게 옆에서 보이는 감각은 정말로 꺼림칙했다.
고작해야 글자에서 손을 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내 최선이었지만 어려워서, 그래서 귀신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죽고 싶지?
“일아!”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제일 잘 들리는 건 죽고 싶냐는 말이었다.
맞아, 나는 죽고 싶었다.
이런 데서 자고 일어나고 똑같은 낯선 환경, 귀신한테 쫓겨야 하는 나라는 캐릭터, 무엇보다 나를 나로 보지 않은 것 같아서 잘해 주는 유원을 보면서도 짜증이 치밀고 답답한 이 현실 같으면서 현실 같지 못한 세상이 짜증 나서 차라리 죽고 싶기도 했다.
“…죽고 싶어.”
그래서 나는 귀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죽고 싶다고.
“그럼 죽어.”
고요한 얼굴로 말해온다. 하지만 곧 귀신은 눈치채고 말았다.
“너… 끄아아악!”
내가 글자를 전부 완성 시켰으니까.
곧이어 들려온 비명 소리, 난 그걸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림에 귀신의 영혼이, 선생님의 몸이 닿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림을 앞으로 해서 귀신이 더 잘 들어갈 수 있게 하고는 말했다.
아까의 말에 잇는 말을.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 그래서 나는 이런 식으로 죽지는 않을 거야.”
그 누구도 죽고 싶어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조차 나는 살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쓰러진 선생님을 받쳐내면서도 끔찍한 기분에 시달렸지만 티 내지는 않은 채로 선생님의 안위를 확인했다.
“…살아 있어.”
“정말?”
“그래. 그러니까 구급차 좀 불러 줘.”
마침 먼저 다가온 강한에게 물었다. 그런데 강한은 이상하게도 아까와 같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과연 이대로 사는 게 좋을까…….”
“뭐가.”
“귀신한테 걸려서 사람을 죽일 뻔했어. 근데 괜찮을까?”
“…….”
틀린 말은 아니다. 선생님도 피해자였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 또한 이런 상황은 지치고 힘들었다. 어떻게든 나아가면 뭔가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그런 목표도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들을 선택하는 건 선생님이야.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고.”
“…그렇구나.”
강한은 어쩐지 납득한 표정을 짓는 게 묘했다. 진짜 뭘 모르는 걸까. 어쨌든 그래도 내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갔고 그렇게 미술실에는 나와 유원 둘밖에 남지 않았다.
“…일아.”
“왜?”
“무사해서 다행이야.”
웃었다. 그러나 어쩐지 묘하게 힘이 없어 보이는 게 유원 역시도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안 괜찮을 필요가 뭐가 있겠어?”
하지만 표정은 그렇게 좋지만은 못했다. 애써 넘기려는 기색이라서 나도 모르게 오래 쳐다봤는지 유원은 정말 괜찮다고 말했다.
“또 우네.”
그 말 그대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흘리는지 알 수 없다고 하기에는 아까의 나는 너무 힘들고 무서웠고 지금의 나는 끝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아까 무서웠던 게 어두운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게 했다는 게 더 맞겠지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심스레 닿은 손길이 눈물을 닦아내고 이윽고 다가온 얼굴은 내 입술을 삼켰으니까.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고도 생생한 살아 있는 감정이었다.
* * *
입 안을 휘젓는 건 이상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또 그만큼 유쾌하지도 않아서 나는 몸을 밀었는데 유원의 몸이 순식간에 밀려가서 솔직히 놀랐다.
“…미안.”
“…….”
“나까지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정말 미안해.”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는 유원에게 나는 그 이상의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좋아한다는 말을 나는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은 아마 나한테 남은 걸지도 모른다. 유원이 말한 아마 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유원이 좋아하는 것은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 점이… 아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모를 수 있었다.
“내가 뭘 모르는데?”
그러니 알고 싶어서 물었다. 그랬더니 유원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을 열다가, 다물었다가, 그러다가 다시 열고는 말을 꺼냈다.
“…미안. 말해 줄 수 없어.”
“그러면 아까 한 얘기는?”
“아까?”
“네가 왜 아까 늦게 온 건지에 대해서.”
그러고 보면 아까도 정신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래서 물었더니 유원이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준비가… 필요했어.”
“준비?”
“너를 대할 준비… 나는 ‘약속’을 했으니까 너한테 말할 수 없는 게 많거든.”
어색하게 웃는 게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말이라 답답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제 익숙했다. 유원이 나한테 말하지 않은 일이 있는 것처럼 나 역시도 아직도 전부를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선생님에게 왜 부적을 줬는지는 말할 수 있어?”
“원래 내가 아는 선생님은 결국 후회하셨으니까… 좀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나은 선택?”
“너한테도 나은 선택. 기왕이면 희생은 적은 편이 좋으니까.”
희생이라, 확실히 이런 때에 귀신이 다닌다면 누가 죽는 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죽었다. 선생님도 원래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살았다고 해도 과연 괜찮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원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알아서 그런 걸까, 하지만 물으면 또 그냥 넘어갈 테니 더 묻지도 않고 있는데 때마침 뛰는 듯이 큰 발걸음 소리와 함께 강한이 돌아왔다.
드라이버도 들고서.
“그림이나 열어 보자!”
“액자 틀 빼게?”
“그럼 이걸 이대로 두라고? 아 그리고 선생님들도 오셨으니까 너희들 좀 떨어지는 게 좋을걸?”
그 말대로였다. 강한이 체력이 좋은 건지, 선생님들은 조금 지친 기색으로 미술실 안을 보는데 그제야 나는 미술실이 꽤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까 일도 그렇고 그림에 있는 부적을 보나 싶더니 이따가 얘기하자며 선생님을 데리고 가셨다.
그래서 그제야 우리는 액자 틀을 뺐다.
“이제 새 액자 틀 준비해야겠네.”
“…새 액자 틀?”
“걸려 있는 거 또 있잖아. 당분간 그거 쓰게. 대충 크기는 맞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대로 방치하면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안에 넣고 이게 저주받은 물건인데 네가 만지면 괜찮다고, 그것 때문에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대충 말하면 되지 않아?”
“과연 믿을까?”
유원도 끼어들며 말했다. 확실히 원래도 그랬지만 선생님들이 과연 이런 것까지 믿을까 싶어서. 하지만 강한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믿게 해야지.”
“…….”
“그리고 어쨌든 너희들도 기껏 봉인까지 해놨는데 풀리는 건 사양이잖아. 안 되면 들고 어디다가 숨기면 되지 않겠어?”
숨긴다라, 확실히 안 되면 숨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 숨길 수 있을까, 나는 많이 생각하다가 문득 한 방법이 생각이 났다.
“그러면 옥상에 숨기는 건 어때?”
“뭐?”
“옥상, 우리가 갔다는 증거는 없기도 하고 거기 창고 열었다는 것도 여기 있는 셋밖에 모르니까.”
“그건 괜찮겠네.”
강한이 바로 동의하는 걸 보니 확실히 아까 얘기는 본인도 어렵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원을 봤더니 유원은 별말 없이 윗옷 안쪽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꺼냈다.
“네가 원한다면 난 뭐든 해 줄 수 있어.”
이제는 완전히 감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로.
애써 모른 척해 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내가 열쇠를 집어 든 순간 유원이 굳이 내 손을 잡고 열쇠를 쥐여 주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은 유원 그 자체에 있었다.
어쨌든 이대로 적이 된다면 좋지 않을 테니까.
호의도 있지만 의심되는 것도 사실이다. 완전히 서로 내보이지 않은 입장에서는 확실히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바로 계획한 일들이나 하나씩 처리하기로 했다.
어쨌건 이건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 일이니까 나는 강한이 드라이버로 액자 틀의 못을 빼고 뒷부분이 빠졌을 때,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림의 뒤, 액자 틀과 그림 사이에 있던 물건 하나를 챙겼다.
다름 아닌 옛날 사진 하나를.
“그건 왜 가져가?”
“아무래도 내가 알던 사람 사진인 것 같아서. 갖다주려고.”
아는 사람은 맞았다. 귀신이라는 걸 뺀다면.
옷차림도 그렇고 딱 봐도 내가 게임에서 봤던 학생 사진이었다. 물론 게임의 그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이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아까 발견했던 졸업앨범의 빈칸.
비어 있던 사진의 자리에 있어야 했던 사진이었으니까.
“아무튼 서둘러서 치우자. 선생님들도 곧 오실 테니까.”
그 말에 다들 서둘렀다. 일단 제일 먼저 한 일은 옥상에 올라가서 그림을 갖다 놓은 거였고 그다음으로 한 일은 미술실 바닥을 쓰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아까의 일로 액자의 유리 조각이라든가 몇몇 창이 깨졌을 때 떨어진 조각 때문에라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어질러진 것까지 거의 치웠다. 이 정도로 청소할 일은 거의 없었는데 청소도 역시 힘을 쓰는 일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피곤했다.
다만 나는 조금 불만이 있었다.
나는 바닥은 청소하지 못했으니까.
“아직도 치우고 있는데 정말 나 안 필요해?”
“너한테는… 위험하니까.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고.”
결국에는 웃으면서 거절하는 유원의 말, 딱히 틀린 건 없지만 본인도 위험하다는 걸 생각하지는 못 하는지. 그렇지만 아까 그 말도 해서 소용없다는 걸 아니 이번에는 강산을 봤는데 강산도 날 보더니 입 모양으로 말했다.
뭘 봐.
“내가 대신 청소해 줄까?”
“아니! 너 시키면 나 또 맞을걸?”
실실 웃으며 말한다. 게다가 눈짓을 하는 방향을 보니 유원이 보고 있었는지 마주치니 웃었다. 나 역시도 애매하게 웃다가 다시 강한을 보는데 손을 까딱거렸다.
가까이 와 보라는 듯이.
바로 안 가니 이번에는 본인이 오는데 내가 가기도 전에 중요한 얘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주는데 학생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만한 말이었다.
“너,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래.”
“어떤 선생님?”
“아까 여기까지 오셨던 분 중에 한 분인데 나이 많아 보이는 선생님.”
나이 많아 보이는 선생님이라면 아까 제일 먼저 이곳에 도착했던 교장 선생님이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건 회색 머리 때문인 걸까.
어쨌건 나는 교무실로 오라는 말에 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어쩌면 일지도 모르지만 부적을 몇 개 주머니에 넣고서.
봉인은 끝났지만 그래도 왠지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특히 그냥 선생님도 아닌 교장 선생님이라니 무슨 얘기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만나야 할 것 같아서 계단 위에서는 잠깐 멈췄지만 내려가고 나서는 점점 걸음이 빨라졌고 금방 교무실 옆쪽의 교장실로 갈 수 있었다.
“사탕 좋아하니?”
들어가고 나서 들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꽤 의외였지만.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이 좋고 싫고를 나타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탕을 하나 집어 껍질을 까 안에 있는 사탕을 입 안으로 넣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은 어째선지 영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천천히 말을 꺼내셨다.
“일단 상황은 대충 알게 됐단다. 갑자기 사람이 이상해졌고… 그게 학생부터 시작됐다고.”
“네. 이상한 일이죠.”
“그래… 어쨌든 다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병원으로 보냈단다. 아마 정신적인 치료도 받고 벌도 제대로 받겠지.”
나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역시, 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도 느껴졌다. ‘이상한’ 일,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연 저렇게 사람을 바로 병원에 보내고 처벌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옳은 일일까.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귀신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되긴 했지만.
그런데 어째서인지 교장 선생님은 입을 움직이듯 말 듯 우물쭈물거린다 싶더니 나한테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기… 사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따로 있단다.”
“무슨 일이시길래…….”
생각해 보면 나만 굳이 따로 부를 이유가 있었나 싶었다. 강한만 봐도 자세히는 모르는 모양이었으니 나한테만 해야 하는 말이었나, 나는 이제야 미심쩍은 일들이 머릿속에 많이도 채워졌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답을 기다렸다.
누군가가 전해 준 말이라는 걸 모르고서.
“여학생… 그러니까 가해자인 학생이 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어.”
“…부반장이요?”
“그래. 그 애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해서 나도 순간 그런 짓을 저지른 애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더구나.”
“…그래서, 저한테는 무슨 말을 했나요?”
불쾌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부반장은 가해자였다. 그래서 빠르게 답을 듣고 가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아 있는 부반장이 굳이 남기고 간 말을.
“…뭐라고요?”
물론 그 말을 듣고서는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자신이 본 게 틀리지 않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다시 한번 들리는 말은 나를 부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부반장이 그런 상황에서 절박하게까지 말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말이라니.
그러면 강한은?
강한도 그쯤에 있었다고 했다. 정확한 건 아직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누가 진짠지 거짓말인지.
그런데 왜 이렇게 나는 혼란스러운 걸까.
교장 선생님이 그 뒤에 뭐라고 했는데도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었는데도 잘 와닿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대충 몇몇 말들은 기억이 나지만 생각하는 방향은 다른 데로 가 있었으니까.
결국 그렇기에 돌아가는 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계단도, 복도도 어느새 보면 다 지나 버리고 나는 많이 깨끗해진 미술실을 볼 수 있었다.
둘이 얘기하는 것도.
“넌 누구야?”
“그러는 넌, 내가 아는 유원은 그렇지 않은데.”
“난 너를 오늘 처음 보는데?”
“…그렇겠지.”
강한이 처음에 봤던 것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아는 것처럼.
내가 왔다는 걸 알지 못하는 듯이.
“너는 처음 보지만 나는 너를 처음 본 게 아니야.”
“그래? 언제 만났는데?”
유원은 웃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시가 돋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강한 역시도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제, 너도 A를 만났지?”
“만났지.”
“근데 걔는 모르는 눈치던데… 거짓말이라도 한 건가?”
“아니.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유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큼 틀린 말이 없었으니까. 그 말 그대로 유원은 단 한 번도 A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 적은 없었다.
묻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유원은 A를 만났지만 나한테 그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른 걸 말한 이유가 설마 그걸 숨기기 위한 거였다면 어땠을까, 나한테 숨길 만한 이유가 있던 걸까.
이것도 전에 말한 ‘약속’과 관련되어 있는 건지.
과연 유원이 괜히 나한테 잘해 준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들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여기서 뭐 해?”
유원이 어느샌가 내 앞에 다가왔으니까.
“…들켰네.”
또 한 번 미소 지으며 말한 유원은 아쉽다는 듯이 내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 손을 뿌리쳤고 그 순간 탁 하고 소리가 나면서 유원의 손을 쳐낸 것을 알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유원의 반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맞은 팔을 주무르면서 불쌍한 척을 해 보이는 것 역시도.
“조금 아프네…….”
“…….”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지?”
뭐가 안타깝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원은 자신이 하려는 말만 계속했다.
“네가 원망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니까.”
나를 위해서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나를 위해서가 이렇게까지 나를 모르게 할 수 있는 말인가. 나는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았다.
유원이 미쳤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가 귓속말로 하는 소리에도 멍청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 게임은 금방 끝날 테니까.”
게임을 아는 게임 캐릭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알던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을 알면서 누군가를 도와주겠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상냥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곧 다정한 음성으로 절망을, 내가 기만하던 모든 것들을 알게 해 주었다.
고작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짜증 나고 내 감정을 파고드는 일이라 붙잡은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겠지.
나는 여전히 이기적인 인간이었으니까.
외전. 부반장
나는 전에 내가 뭘 했는지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부반장으로서의 일을 했다. 반장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A를 만나러 간다는 반장, 게다가 ‘그’ A는 반장을 좋아한다고 유명했다. 그러니 별로 쓸데없는 소문이긴 했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내가 대신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빈자리는 여전히 느껴졌지만.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움직이는 일상에 나는 왠지 조용하다고 느끼기도 하면서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체육 시간이 끝나서 뒷정리를 조금 도와주는 와중에 언뜻 무언가를 보았다.
“…A?”
실종되어 있던 애가 설마 왜, 나는 꽤 놀라서인지 한동안 그곳을 봤는데 내가 치우는 걸 하다 말아서 그런지 선생님이 다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반장!”
“네!”
대답을 하다가 선생님 쪽을 보다가 다시 봤는데 A는 없었다. 근데 이번에 다른 사람이 보였다.
누굴까.
그러다가 순간 눈이 마주쳤는데 어쩐지 오싹했다.
이쪽을 보고 웃고 있었으니까.
“거기 다 했니?”
“…아, 네.”
체육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리하던 것을 봤는데 다행히 얼추 거의 다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정리를 하고 나올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도.
나는 그래서 헛것이라도 봤나 생각했다. 물론 낯선 사람은 둘째 치고 A는 거기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당연히 내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나 싶었다.
다음 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시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당분간 네가 반장 일을 대신해 줬으면 좋겠구나.”
“반장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그래. 몸이 안 좋아서 좀 쉬어야 한다고 하더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정 힘들면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나도 안심이지만.”
웃으며 말한다. 그러면서 시선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전날 밤까지 남으셨었는데 오늘 그래서 조금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뭐 하나만 말해도 되나요?”
“그래. 무슨 일이니?”
“저 어제 A를 본 것 같아요.”
“뭐? 어디서……?”
갑자기 선생님이 내 어깨를 붙잡으셨다. 그러다가 내 표정에 한숨을 내쉬고는 흥분했다면서 사과를 하셨다.
“미안, 내가 좀 예민해서.”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 A를 어디서 만났니?”
“밖? …솔직히 확실한 건 아니라서 저도 잘 모르지만요.”
“그래? 그럼… 알 수 있겠네?”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너 감기라도 들렸니?”
“감기요?”
“그래. 얼굴이 좀 빨간 것 같아서.”
“…그런가요?”
이상했다. 난 평소랑 같은 것 같은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생님이 손을 이마에 대면서 말하자 몽롱해지는 게, 정말 선생님이 말한 대로인지, 말을 하던 도중에 그만 깜빡 잠이 들어서 깨어났을 때는 어느새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찍 와서 수업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었고 생각보다는 별로 안 지나 있어서 나는 안심하고 다시 교실로 갔다.
그러다가 반장과 마주쳤다.
“…반장?”
우리는 서로 놀란 것 같았다. 물론 반장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선생님에게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반장을 만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묻게 되었다.
“네가 여긴 웬일이야?”
“너야말로…….”
서로 궁금하다는 듯이 비슷한 질문을 했다. 부반장이라고 부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더 궁금한 건 옆에 있던, 전에 봤던 것 같은 사람이었다.
“저쪽은 누구야?”
“아, 이쪽은…….”
“내 이름은 유원이야. 전학생이고. 만나서 반가워.”
“나도 만나서 반가워.”
전학생이라니, 그러면 내가 어제 본 게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긴 전학생이니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쳐다봤지만 전학생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나도 넘어갔고 금방 반장이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 좋아서 잘 됐다고 하면서도 걱정이 된다고 한 건 내 진심이었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냥 전학생을 보면 그랬다. 내가 생각보다 마음이 편협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반장에게 별로 쓸데없는 소문을 말해 준 뒤에 헤어졌다.
“…이번에는 참아야지.”
또한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왜 이러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냥 그런가 싶었다. 나는 평소처럼 움직이면서 다시 할 일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가정 통신문을 들고 움직였다. 왜 다른 반장들 말고 굳이 우리 반을 시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필요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움직였는데 또 반장과 마주쳤다.
정확히는 전학생과 함께 있는 반장을.
전학생은 나한테 관심도 두지 않고 반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 역시 전학생보다는 반장이 좋아서 나는 반장의 말이 반가웠다.
“뭐 찾을 거라도 있어?”
“아니. 그보다 그거 들어 줄까?”
“그러면 고맙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장은 친절했고 좋았으니까. 그래서 A 역시도 친구라면서 호감을 표했지만, 보통 그렇게 하고도 친구 하지는 않았으면 적당히 하고 왔을 텐데 반장은 굳이 A까지 찾으려고 노력해서 다쳤다.
과연 그런 사람을 쉽게 미워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전학생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지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바로 꺼낸 얘기는 나를 다시 예민하게 했으며, 한편으로는 내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일이는 아직 회복 중이라서 안 돼.”
“회복 중? 그렇게 다쳤었어?”
다쳤다는 말에 놀랐다. 이렇게 잘 걷고 나한테 말까지 걸어 줬을 정도라 다쳤는지도 몰랐으니까. 게다가 전학생도 다쳤다고 하는데 믿기 어려웠다. 특히 전학생이 내 것까지 들어 준다는 친절을 보였지만 나는 거절했다.
왠지 거북했으니까.
그래도 도와줬기도 하고 반장이랑 하는 얘기를 들으면 보통 애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나는 결국 교무실까지 내가 할 일을 도와준 이유가 ‘고작’ 부탁을 들어줄 이유였다는 것을 알았어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A를 목격했다는 그 일을.
전학생이 A의 친척인 거라면 그 일에 예민한 건 납득이 간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런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도 웃고 있는 그 모습이 어쩐지 엄청, 이상하다고 느껴졌으니까.
반장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좀 그랬다. A를 찾는다면 왜 굳이 여기서 전학생이 될 필요가 있을까, 그 정도는 그냥 사정을 말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될 일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아직도 꺼려져서 그나마 내가 예의를 차리는 것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정도였다.
그러니, 그 와중에 반장이 살짝 변한 것 정도는 사소한 일이었다.
지금의 네가 더 좋아.
이 말을 했을 때는 반장에게 내가 호감 이상의 어떤 감정을 가졌다고 느꼈다. 이건 흔히들 말하는 ‘사랑’일까?
전학생이 고맙다고 말할 때는 참 묘해서 쉽게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내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충동적으로 반장을 데리고 전학생에서 멀어진 다음, 그 특유의 시선을 받아 어느 정도 긴장하면서도 몇 가지 말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저 애, 조심해.”
“…왜?”
“내가 어제 본 게 있어서 그래.”
“A?”
“A도 그렇지만… 저 애도 본 것 같아서.”
경계일지도 모르고 한편으로는 질투일지도 모르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말해둬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괜히 덧붙이는 말들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사실 그래서 처음에는 소름 끼쳤어.”
온전한 진실, 그 말에 반장 역시도 어딘가 모르게 내 말을 이해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해 주었다.
“…말해 줘서 고마워.”
그 말에 나 역시도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고 하면서 어느덧 시간을 보니 나도 모르게 교실로 다시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다음번이 마지막이야.
이상한 소리를 얼핏 들으면서.
나는 그게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멀쩡하게 수업을 듣고 내 책임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이동 수업이 끝난 뒤, 반장을 다시 마주한 순간 찌르르한 느낌은 분명 내게 이상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반장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있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 사람이 말한 게 이해됐다. 내 몸은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내가 말했잖아. 마지막이라고.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니 벗어나고 싶었다. 허우적거려 보고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정신도 잃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봐야만 했다.
내가 반장을 무섭게 쫓아다녀야 했던 것, 사람을 찔러서 죽인 것,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하면서 반장에게 고백하게 됐던 것.
그 모든 게 끔찍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했다. 하지만 곧 반장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 줬다. 그래서 그게 기쁘면서도 슬펐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나 나를 조절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 와중에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만하자.”
“…당신…….”
“그래, 쉬어도 돼.”
나를 보면서 웃은 사람, 나는 그게 ‘기만’임을 알았다.
―킥킥! 저년이 너한테 한 짓 넌 모르지……!
끔찍한 존재가 들어온 게 선생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아니, 선생님도 이미 당했던 걸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평소와는 달랐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내가 겨우 눈을 감다가 다시 떴을 때는 이미 구급차에 실려 가기 직전이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부터 살폈더니 언젠가 본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괜찮니?”
“…네. 아 근데 저…….”
“아무래도 네 상태가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여서… 그래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나는 그제야 내 몸이 어느 정도 묶여 있음을 알았다.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는 사실도. 괜찮다는 말이 그저 허울뿐이라는 사실도 알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와야 상관없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딱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부탁이라고?”
“네. 그냥 말만 전해 주세요……. 그냥 제가 미쳤다고 생각해도 좋으니까요. 네?”
“알았다.”
그 말에 나는 활짝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말을 반장에게 전했다. 괜찮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을.
“반장한테… 내가 본 게 틀리지 않았다고 전해 주세요.”
“…그거면 되는 거니?”
“네.”
내가 본 건 강한이 아니라 유원이 맞았다. 전학생이, 그리고 A도 역시 본 게 맞았다. 그런데 그걸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에게 한 번 더 말하면서 꼭 전해야 한다고 하니 선생님도 그제야 떠나셨지만 나는 그 태도가 더 안심됐다. 아마 내가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아도 말 정도는 전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부반장이고 상대는 반장이니까.
전해지지 않아도 반장 역시 이상한 낌새 정도는 눈치챘을 거다.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오는데, 어느샌가 내 위로 그늘이 생겼다.
“안녕?”
전학생이었다. 아니 유원이었다. 그리고 유원은 기묘하게 나를 보더니 나한테 손을 뻗었다.
위험하다.
바로 드는 생각 때문이라도 나는 소리 칠 수밖에 없었다.
“오지 마!”
“왜?”
“그건…….”
네가 수상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원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많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내 옛날 기억, 그리고 반장이 아니라….
“헉!”
“이제야 기억이 났나 보네.”
“너…….”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제야 나한테 기억이 나게 한 건가 싶어서. 그랬더니 유원은 예의 그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가짜야. 나도 가짜고… 그리고 일이만이 ‘유일하게’ 진짜지.”
“뭐?”
“그래서 나는 진짜가 될 생각이야.”
“너… 도대체 뭘 할 생각인 거야?”
이제 와서, 아니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유원은 전과 다름없는 의뭉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글쎄…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는 오래 잠들어야 한다는 거겠지.”
“뭐……?”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이 무거웠으니까. 가짜나 진짜 따위가 무슨 상관이라고. 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울고 싶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제일 많이 생각나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정확히는 한 사람만이.
…오빠.
이제는 부르지 못할 말과 함께 나의 의식은 다시 어둠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