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상한 학교 (1)
눈을 뜨자마자 보이던 건 낯선 방의 천장이었다.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목이 텁텁하다. 그러자 곧바로 유원이 물을 주며 말했다.
“A의 부모님이 생각보다 일찍 오셨어. 그래서 나도 치료받았고 너도 치료받은 상태지. 아마 내일쯤이면 학교 갈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너 몸은 괜찮은 거야?”
“걱정하지 마. 손도 이렇게 멀쩡하고.”
“…정말이네.”
손에 다친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게다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게 병원이 아니라 이곳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내가 아는 현실은 아니었다.
꿈도 아닌 것 같지만.
“여기는…….”
“우리 집이야. 아무래도 A네 집은 좀… 그럴 테니까.”
“그렇구나.”
“그래. 어른들이… 이해해 주셨거든. 하긴 이 정도로 다쳤으니 귀신이 아니라도 무슨 일이 있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이해해 주셨다고?”
내 기억, 내가 알던 게임과는 달랐다. 유원의 집까지는 대충 게임에서도 봤던 장면이라 이해가 갔지만 부모님들이 이해한다고 한 건 내 기억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이해해 주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가 도망쳐서 학교로 간 거니까.
그런 ‘설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조차도 틀어졌다. 지금 설명하고 있는 유원의 표정처럼.
“맞아. 이해해 주셨어. 너도 알다시피 A가 사라지기도 했고… 사실 좀 사고가 있었으니까. 아마 우리라도 잃고 싶지 않으신 걸지도 모르지만 이제 안전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나는 내 표정이 어떤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냥,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서 벗어나려면 A를 찾고, 엔딩을 찾으면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지라도, 유원의 입장을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 이런 순간에서는 내가 제일 중요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또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물론 네 말대로 전보다 안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A는, A가 붙잡혔는데 우리라고… 괜찮을 수 있겠냐고.”
이렇게 말하니 괜히 목이 뜨거웠다. 울컥하는 감정, 내가 이렇게나 힘들었나 싶었다. 아니, 힘들었을 것이다. 계속 꿈이라고 생각했던 이 공간은 꿈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아는 현실도 아닌 세계에서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런 환경에서.
이런 곳에서 어떻게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일아.”
“…미안. 그냥 화풀이였어.”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아까와는 다르게, 게임에서 플레이하는 그런 때가 아니라 그런지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아서 쉽게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짓이 잘못된 건 알고 있었다. 감정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머릿속의 생각들마저도 복잡하게 얽혀 버려서 어린애가 된 것 같았다.
분명 그렇게까지 어리지는 않은데도.
울기 싫어도 울게 되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차라리 유원에게 지금이라도 나가라고 해야 하나 싶었는데 유원은 언제나처럼 내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나도 알아. 우리가 언제나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 정도는.”
“…….”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사람이 언제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것처럼. 물론 우리는 다른 경우고, A의 일도 있으니까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좀 덜 불안해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한 순간, 몸이 살짝 앞으로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등이 손이 닿아 그제야 나는 올라보고 나서 본 얼굴이 이상하게도 울 것 같은 표정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괜찮을 거야.”
차마 울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미 울었지만, 사실 그냥 그랬다.
나는 정말로 유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은 알았으니까.
그저, 그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의 맞닿은 온도가, 이 뜨거움은 너무 생생해서 나는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유원을 봤고, 유원은 나를 보며 다시 웃었다.
마치 아까 지었던 표정은 없던 일인 것처럼.
“내일 같이 학교 갈래?”
누가 보더라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물론 네 자유고, 나는 사실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당연히 그러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다른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원은 가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 * *
날이 밝았다.
나는 전날 내가 모르는 부모님을 만났다. 보통 게임에서는 마지막에나 보던 부모님, 그들은 내가 학교에 간다니까 조금 더 쉬라고 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여기에는 내 가족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제대로 이 게임과 이 세계가 얼마나 맞고 틀린 지 확인을 할 필요도 느꼈다. 어쨌든 A가 위험한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내가 학교에 가는 편이 심리적으로 낫다고 유원의 부모님이 말했다.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낀다면 금방 적응할 거고 유원이나 다른 선생님들도 있으니 위험하면 바로 알릴 수 있다고.
유원 역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이는 제가 언제나 지킬 테니까.’
말도 그렇지만 믿음직스러운 모범생처럼 잘도 생겨서인지 부모님은 순식간에 믿어 버렸다. 물론 내가 괜찮다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은근히 어필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쁘지만은 않았고 그 결과로 나는 진짜 학교 앞까지 와버렸다.
“여기 진짜 오랜만이네.”
“전에 왔었어?”
“A가 귀신 찾는다고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여기에 온 적 있었거든. 그래서 잠깐. 그래도 너는 여기 학생이니까 잘 알 것 같으니까 혹시 내가 모르는 거 있으면 알려 줄래?”
“…그래.”
잘 알기는 무슨,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학교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도 그렇듯이 컴퓨터 그래픽과는 확연히 다른 생생함, 그리고 그때는 화면으로만 본 아기자기한 느낌이 다였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제법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문, 나는 이 정문이 어째서인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그럴까, 순간 움직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유원이 내가 뒤처진 것을 알아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별거 아니야.”
아마 ‘이상한 저택’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거기에서 있었던 일은 결코 평범한 일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기분 탓이겠지.
괜한 것으로 뜸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두르려는데 유원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너 진짜로 저기 가고 싶어?”
“어.”
“농담 아니야. A가 언제, 어떻게 사라진 건지 모르니까 아직도 찾고 있는 거고. 어쩌면 너도 위험할지도 몰라. 내가 아니라 네가 엄청나게 다칠 만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래도 갈 거야?”
“전에도 그렇고 왜 그렇게까지…….”
“이게 마지막이야.”
유원이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이라고.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듯이 말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갈증이 느껴졌다. 괜한 긴장감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유원의 표정이 진지했고, A에 관해서까지 얘기를 꺼낸 걸 보면 진심인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나 역시도 진심이었다.
“갈 거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만큼 거리낄 것이 없다는 뜻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놀라울 만큼 유원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알았어.”
“정말?”
“그래. 나는 솔직히 네가 A 때문에 A네 집까지 온 거잖아. 그래서 학교에서 A 생각하면 힘들까 봐 한 번 더 물어본 거야.”
“아.”
생각해 보니 반장이라는 이 캐릭터가 A에게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유원이 이런 식으로 물었다면 나름대로 납득이 가기도 했다.
“어쨌든 네가 선택한 거니까 괜찮겠지.”
“당연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유원은 별 뜻 없이 한 말일 텐데 왠지 내가 선택한 거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같아서.
나는 이번에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시간은 갔고, 나 역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느새 옆으로 온 유원은 웃으면서 손을 잡았다. 손을 빼기에는 미묘해서 그냥 잡았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바로 보이는 본관 안의 현관을 지나 보이는 복도를 가서 보이는 교실이 있는 곳으로.
특히 우리가 가는 곳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 곳밖에 없었으니까.
‘2학년 3반.’
2학년 교실이 왜 여기 있냐면 일단 여기가 운동장에 가깝기도 하고 시끄러워서, 공부가 안 된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게임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3학년 교실은 후관에 있었다.
물론 별로 상관은 없지만.
내가 바로 교실로 가려는 이유는 나와 A의 교실이 3반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우리가 간다는 건 일단 우리가 얘기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아마 오늘은 꽤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틈에 A가 남긴 다른 단서들을 찾아야 했다.
집이나 그 근처 외에 A가 제일 자주 다녔던 곳이 학교였으니까.
“근데 넌 여기까지 와도 괜찮은 거야?”
“괜찮은데. 애초에 나는 A가 다니던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기도 했고. 오히려 잘 됐으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유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래도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애초에 나 때문에 온 것 같아서. 그게 좀 걸렸지만, 그래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나는 최대한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A의 자리에 가는 것부터.
“여기가 네 자리야?”
“아니. A 자리.”
“네 자리는?”
“내 자리는… 여기.”
교실을 보면 대충 책상들이 똑바로 놓여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자로 잰 듯한 책상과 의자들 때문인지 자리 정도는 기억하기 쉬웠다.
어쨌건 두 책상 다 쓸모가 있었으니까.
A가 남긴 힌트가 있었으니 나는 당연히 유원이 있다고 해도 웬만하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며 제일 먼저 A의 책상 안을 뒤졌고 곧 종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best friend! please!]
프리즈 옆에는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장난스러워 보이는 게 예전에 나한테 친구가 되자고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나는 저 글씨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뜻이었으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걸로 내 책상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A가 만약을 대비해, 나를 생각해서 남겨놓은 단서.
친구에게 남기는 말.
A가 무슨 생각으로 남겼는지는 게임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아니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 나한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유원이 있는 내 자리로 갔더니 유원은 나를 보자마자 무언가를 건넸다.
정확히는, 편지봉투 하나를.
“안에 이런 게 있더라고.”
아마 내가 책상을 뒤지고 있을 때 꺼낸 모양으로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편지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상대로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사람 손가락이.
“이건…….”
“모형이겠지. 진짜면 범죄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 말대로 이건 모형이었다. 게다가 A는 귀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관련 소품들을 아끼는 편이라 이런 식으로 진짜를 가져다 놓지는 않았고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역시 가짜였다.
안에 열쇠가 만져졌으니까.
“안에 뭐가 있어?”
“…아, 있는 것 같아.”
갑자기 물어서 좀 놀랐다. 하지만 유원에게도 만져보라고 해서 받은 유원 역시 만져보더니 알아서 결론을 낸 것 같았다.
“역시 A네. 이 상황에서도 이렇게 한 걸 보면.”
“생각보다 더 전에 했을 수도 있지.”
“하긴, 급하면 이런 거 할 정신은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가끔 이럴 때면 어딘가 모르게, 유원은 정말 A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았다.
또, 그만큼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일단 나갈까?”
어쨌든 지금 이렇게 오전에는 다른 학생들이 언제 올지 몰라서 나는 유원에게 서둘러서 가자고 하며 움직였고 유원 역시 왠지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뒤를 잘도 따라왔다.
하지만 역시 조금 늦게 움직여서 그럴까.
“…반장?”
나는 나를 반장이라고 부르는 여학생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여긴 웬일이야?”
“너야말로…….”
하필이면 이런 때 학생과 마주치다니, 혹시 내가 A 물건을 챙긴 걸 봤을까 싶기도 하고 유원 역시 옆에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말부터 튀어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니 갈색 단발머리에 남색 리본이 단번에 누군가를 연상시켜서 나도 모르게 불러 버렸다.
“부반장?”
“안녕. 반장.”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화면에서 봤던 부반장이었다. 아까는 짧은 시간 안에 봐서 누군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왜 몰랐나 싶을 정도여서 나는 놀라 보는데 어느새 가까이 온 부반장이 옆을 살짝 보다가 물었다.
“저쪽은 누구야?”
“아, 이쪽은…….”
“내 이름은 유원이야. 전학생이고. 만나서 반가워.”
“나도 만나서 반가워.”
부반장도 유원도 서로 웃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어색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둘이 나를 계속 보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아마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우선 부반장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일단 나 조만간 다시 돌아올 거야.”
“그래? 그럼 몸은 괜찮아진 거야?”
“괜찮으니까 왔겠지.”
“잘됐다! 안 그래도 걱정했었거든.”
보통 내가 아는 부반장이라면 내가 반장이기 때문에 그동안 없어서 일이 두 배가 됐을 테니까 그런 의미의 환영이 될 것 같았지만 진심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걱정하는 표정을.
이런 면이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나는 부반장이 어색하다. 부반장은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니까.
“그동안 별일은 없었어?”
“소문만 이상하게 났던 거 빼고는 괜찮아.”
“소문이라고?”
소문이라니, 그것도 부반장이 이렇게 얘기할 정도의 소문이 뭔가 싶어서 빤히 바라봤는데 그 때문인지 부반장은 역시나 나한테 쉽게 답을 해 줬다.
“그래. 네가 떠나면서 A와 관련한 거 때문에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거든. 가령 네가 그 애의 저주로 죽었다든가.”
“죽는다고?”
“맞아. 근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그냥 소문인 거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하면서도 내 근처에 가만히 있는 유원을 보았다. 아무래도 부반장 기준에서는 낯선 사람이라 그런지 더 말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인 것 같은데 솔직히 내가 아는 게임에서의 부반장도 그렇고 A에 대해서는 알기는커녕 말하면 미친놈 취급받을 것 같기도 해서 이쯤 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게. 소문이란 건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그렇지?”
“그래. 아, 나 일단 전학생 좀 여러 가지로 소개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먼저 가 볼게.”
“그래. 다음에 보자.”
다음, 사실 부반장은 중요한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누가 있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고 오히려 이상한 현상은 움직이는 메인 캐릭터에만 적용되니까.
하지만 역시 여긴 달랐기도 하고 A가 남긴 열쇠도 그렇고 나는 일단 더 알아보고 싶었다.
“교무실에 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넌 원하는 거 없고?”
“네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니까.”
저렇게 말하니 좀 무안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눈치챘는지 유원이 덧붙여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아직은 외부인이다 보니까 제대로 절차는 밟아야 할 것 같아서.”
“…진짜 전학 오게?”
“필요하다면.”
필요하지 않다면 안 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굳이 그렇게 말 안 해도 갈 생각이었긴 했지만. 정말 똑바로 보는 그 태도가 얼마나 거짓이 없어 보이는지, 결국 우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교무실이 있는 데로 갔다.
가면서 느낀 건 내가 아는 학교와 구조가 다르다는 점 정도일까. 주변에 있는 것들을 세세히 볼 여유는 없어서 나는 내가 아는 교무실의 구조를 떠올리면서 걸었더니 생각보다는 쉽게 교무실 문 앞으로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들어가려는데, 유원의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문부터 두드리고 가는 게 좋을까?”
“…그래야겠지.”
기본적인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도 게임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두 번 정도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문은 그래도 역시 미닫이문, 자주 오고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매끄럽게 열리는 문을 통해 들어간 안은 사람들이 제법 보였는데 그중에서 담임 선생님을 바로 찾는 건 그렇게까지는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아 보였다.
그야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담임 선생님 역시도 부반장처럼 조금 알아볼 수 있게끔 다른 선생님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 번 둘러봐도 내가 생각한 담임 선생님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나는 혹시 싶었는데 역시나, 유원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잠시 어디 가셨나 봐.”
“그러게.”
원래는 여기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게임에서 원래라면 여학생이, 그러니까 반장이 귀신에 씌였었다. 왜냐하면 이 학교야말로 귀신이 나타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으니까.
근데 왜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이구나.”
“…네, 선생님.”
먼저 말을 거는 것부터가 내가 아는 그 선생님인 걸 알 수 있었다. 아까 부반장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어쨌든 담임 선생님이라는 건 좋든 싫든 간에 반 아이들을 전체적으로, 대충이라도 알게 되는 직업이다.
그래서 이분이 이 ‘수상한 학교’에서는 제일 도움이 되는 대사를 던져 주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얘기는 대충 들었어. 그쪽이 전학생이니?”
“네.”
“입학할 때 필요한 서류는 가져왔고?”
“여기 있어요.”
담임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원이 가방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걸 바로 꺼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서류를 받아 확인하더니 이 정도면 되겠다면서 웃으시는 게 나는 이때가 아니면 얘기할 기회를 놓칠 것 같아서 바로 물었다.
“저, 선생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뭔데?”
“A에 관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여기서 얘기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아, 하긴… 너도 그렇고 저 애도.”
“네.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유원도 덩달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했다. 그래서 그런지 담임 선생님은 알겠다면서, 본인 책상에 있는 책꽂이에 유원이 준 서류를 넣고는 일어나서 우리 보고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내 예상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상담실로 가는 건 똑같았다. 게다가 상담실에서 준 음료수까지 내 예상대로였다.
탁.
“자, 둘 다 마시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동시에 감사하다고 했다. 똑같은 ‘달콤한 주스’였고 마셔보니 그냥 오렌지 주스였지만 생각보다 목이 말랐는지 캔의 반 정도는 금방 마셔 버렸는데 그사이, 담임 선생님이 우리를 보며 얘기를 꺼냈다.
“우선 이것부터 물을게. 너희들 오늘 온 거 혹시 A 때문이니?”
“그건…….”
“그렇다면 그만두는 게 좋아. 안 그래도 다쳤다고 들었는데 정말 납치된 거라면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너희를 위해서나, A를 위해서도 좋을 게 없으니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솔직히 찾지 않으면 안전할지도 모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안전보다는 무리하더라도 A를 찾아야 하는 게 나한테 더 좋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평화만 찾는다면, 내 그동안의 인생이 없던 것처럼 느껴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는 어른의 걱정이 잔소리로 느껴지기도 하는 게 슬슬 A 때문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유원이 더 빨랐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A 때문에 온 거예요.”
“뭐?”
순간 나도 왜 그러냐고 물을 뻔했다. 그러나 뒤이어 매우 침착하고 꽤 그럴듯한 변명이 되는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저는 가까운 친척이다 보니까 집에만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나서… 학교에라도 오면 A가 정리될 것 같아서요.”
“…A의 일은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 나 역시 마찬가지야.”
“네. 안 그래도 제가 요즘은 별로 신경을 못 써준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래서 일이한테도 부탁한 거니까 잘못이 있다면 모두 제 잘못이에요.”
안쓰럽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의 표정 역시도 안쓰러운 것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다. 너희는 잘못 없어. 오히려 내가 신경 써주지 못한 것도 있지.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 것 같아.”
선생님의 얼굴은 꽤 씁쓸해 보였다. 옆에서 유원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할 때는 더 그래 보여서 생각보다 유원이 잘 대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였다면 거짓말을 했을 테니까.
진실을 말하고 설득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나는 다른 사람이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해서 여러모로 반성도 되는 기분에 그저 약간 호응하듯이 거의 가만히 있었더니 선생님이 알아서 예상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A는 독특한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수업은 잘 들었단다. 그래서 성적도 좋은 학생이었지.”
“A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글쎄… 그러고 보니 어제 한 명, 부반장이 A를 본 적이 있다고 했어.”
“…부반장이요?”
“그래. 본인도 착각 같다고 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만나면 바로 얘기해 주지 않을까?”
담임 선생님이 태연하게 말하는 건 부반장은 아까도 그랬지만 실제로 웬만한 것은 다 잘 대답해 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까 만났을 때 그런 건 대답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반장은 귀신에 들렸을지도 모르는, 나라는 메인 캐릭터와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겠네요. 감사합니다.”
“뭘.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해. 매번 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얘기들은 들어줄 수 있으니까. 다른 애들이 필요하다 싶으면 말해 줘도 괜찮고.”
“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인사하고 상담실을 나갔다.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런 때에도 안 좋은 쪽의 표정은 짓지 못했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한 가지 사실 때문에라도.
“어디 안 좋아?”
“…내가 안 좋다는 걸 용케 눈치채네.”
“왠지 그럴 것 같았거든.”
웃으면서 말하는 게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내 일에는 잘도 눈치채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덕분에 아까의 답답했던 감정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믿음을 준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는.
“너도 눈치챘겠지만 A가 어제 여기에 왔었대.”
“맞아. 나도 들었으니까. 나도 그래서 사실 많이 놀랐기도 하고.”
“…그런 것치고는 별로 티는 안 나던데.”
“노력했으니까.”
내 눈에 보이는 표정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씁쓸해 보이는 표정,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유원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다고는 하긴 어렵지만 나처럼 그냥 고등학생이라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이제야 안 것 같은 느낌이었다.
A의 친척인,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친척이 사라져서 힘든 유원이라는 사람이.
“괜찮을 거야.”
“…너도.”
괜찮을 거라는 말에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유원을 보며 나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얼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나는 결국 작게 숨을 쉬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마워.”
그래서 나는 다른 말보다 이 말을 먼저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최선의 성의를.
* * *
상담실에 나오고 나서 우리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잠시 감성적이었지만 어차피 그건 잠깐이었고 냉정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니까.
냉정해져야 목표에 빨리 다가가기 쉽기도 했지만.
“아까 선생님이 한 말 어떻게 생각해?”
“A가 왔다는 거?”
“그래. 어제 왔다고 했잖아. 근데…….”
“네가 기억하는 거랑은 다르다고?”
“…그래.”
유원은 역시 눈치가 빠른 게 아닐까. 아마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전에 플레이했던 기억이, 유원에게는 예지몽과 비슷한 느낌으로 이해됐지만 어쨌든 이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
A는 원래 이곳에는 오지 말아야 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선생님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고 충격이었다. 내가 아는 A라면 이런 때에 오지도 못 하니까. 근데 올 수 있다는 건 뭔가 틀어졌거나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선생님이 A가 행방불명됐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 건 부반장의 상태가 요즘 정말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귀신에 빙의 됐을 수도 있다거나.
어떻든 간에 여러 가지의 가능성은 존재했다.
A에게 거의 붙어 있던 귀신의 시야에서 A는 어떻게 벗어났을까, 벗어나지 않았으면 과연 A는 무슨 방식으로 설득해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혹은 그 모든 게 그냥 거짓말이라든가.
이런 여러 가능성 중에 답을 확인해 볼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서 나는 유원에게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고 유원 역시 동의했다.
“그래. 아무래도 그편이 좋을 것 같아.”
“진짜 A는 아닐지도 몰라.”
“그것도 들어봐야 아는 거지. 애초에 여태 우리가 했던 일은 모두 확신을 가지고 한 일이야?”
“…아니.”
듣고 보니 그랬다. 게다가 유원에게는 그게 진짜든 아니든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 망설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덜한 것 같이 덤덤한 태도였다.
“나 때문이라면 걱정하지는 마. 난 괜찮으니까. 오히려 네가 걱정이지.”
“나도 괜찮아.”
“그럼 됐네. 갈까?”
“그래.”
대답만큼이나 우리는 수월하게 반으로 갔다. 왔던 길만 돌아가면 되다 보니 편했고 아까 봤던 교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애들이 꽤 보이는 것 같아서 그게 좀 그랬다.
사람들이 많은 것은 어쩐지 불편해서.
아니, 굳이 불편할 이유는 없었다. 왜 이런 걸 불편해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순간적인 거북함이 들었다.
아마, 한순간 인상을 찌푸릴 것 같을 정도로.
탁.
순간, 벽을 잡은 손에 힘을 세게 쥘 정도였으니까.
“…어디 안 좋은 거야? 나갈까?”
“아니… 잠깐만 더 있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래서 벽을 짚고 몸을 지탱했지만 어쩐지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에 순간 욕이라도 나올 뻔했는데 그냥 몸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아니면 빈혈이라든가, 요즘 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고.
단지 순간, 무언가 떠오를 뻔한 게 굉장히 거슬렸지만.
여러 사람이 왠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던 것 같은 풍경. 하지만 알 게 뭔가 싶었다.
그 거슬림도 지금으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몸만 이상한 거고,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 확실히 괜찮아진 걸 보면 아마 별거 아닐 거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상 행동을 보고 여전히 걱정하고 있는 유원에게 별거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로 표정이 풀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로서는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사이에 우리를 발견했는지, 부반장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가정 통신문’이라는 종이들을 잔뜩 들고서.
“뭐 찾을 거라도 있어?”
“아니. 그보다 그거 들어 줄까?”
“그러면 고맙지.”
아무래도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눠서 들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유원의 손이 빨랐다.
내가 들고 가려던 걸 그대로 가져가 버렸으니까.
“일이는 아직 회복 중이라서 안 돼.”
“회복 중? 그렇게 다쳤었어?”
놀란 모양이었다. 그것도 매우.
내가 괜히 변명하게 될 정도로.
“별거 아니야. 그리고 너도 다쳤었잖아.”
“하지만 난 금방 나았어. 그래서 너 깨어나는 것까지 기다렸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나한테 맡겨. 네 것도 다 들어 줄까?”
자기가 다 들겠다는 듯이 부반장을 보며 전부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솔직히 가벼운 양은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무거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안 그래도 많다 싶었는데 부반장은 사양했다.
“난 괜찮아.”
“정말로?”
“그래. 우리 반 반장이 소개해 준 전학생한테 첫날부터 일 시키는 것도 미안하잖아.”
부반장의 말에 첫날부터 친척 집을 무례하게 드나들던 내가 생각났다. 양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때는 솔직히 이것저것 정신없는 일들 투성이였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유원을 봤던 것 같다.
“난 괜찮아.”
“거짓말 말고.”
“음, 그럼 나중에 내가 부탁하는 거 하나는 꼭 들어줄래?”
“부탁할 게 있어?”
“나중에? 때 되면 말해 줄게.”
뭘 부탁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본인도 확신하지 못하는 식으로 말하는 게 아마 별거 아닐 것 같지만 어쩐지 찝찝해졌다.
특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
그런 점에서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진짜 게임이라는 자각이 들게 하니까.
그 와중에 우리는 어느새 교무실까지 와버렸다.
물론 선생님을 다시 또 만나기도 해서 담임 선생님은 부반장을 보며 고맙다고 하다가 이쪽을 보더니 난처한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둘도 같이 온 거야?”
“네. 이게 좀 많아서 도와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래? 마침 잘됐네. 너 며칠 전에 A 봤다고 했지?”
“네? 그랬긴 했는데. 걔가 왜 거기 있었겠어요? 그리고 멀어서 제대로 잘 못 본 거였을 수도 있고.”
“근데 쟤네들은 그게 궁금하대.”
“…아.”
그제야 부반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시선 때문에라도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옆에 있던 유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대꾸했다.
“A는 내 친척이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면 알아보고 싶어서.”
“…그래?”
“그래.”
부반장은 조금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유원이 그렇게나 어색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아까 선생님처럼 동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정말로 귀신에 당하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고 쳐도 너무 멀쩡해 보였다.
“그럼… 아까 도와줬으니까 말은 해 줄게.”
“고마워.”
“별말씀을.”
부반장은 그렇게 말했고 선생님을 보자 이제 다 됐다며 가 보라고 해서 우리는 교무실 밖으로 나와 운동장 쪽으로 나왔다.
학교 건물과 스탠드가 보이는 곳에.
“근데 너 지금 와도 괜찮아? 곧 수업 시작이잖아?”
“괜찮아. 애초에 선생님이 말한 거기도 하고. 선생님 심부름 때문이라고 하면 믿어 줄걸?”
웃으면서 잘도 말한다. 하지만 나 때문에 피해 보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고 해서 부반장은 또 한 번 웃으면서 생각했던 걸 내뱉었다.
“너 많이 변했다.”
“…내가?”
“그래. 여전히 무표정인 건 여전한데 그래도 뭐랄까, 조금 더 다정해진 것 같달까?”
“사람이 변할 수도 있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말하면서도 회의적이었다. 사람이 변하는 건, 외면이면 몰라도 내면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티를 내면 안 된다. 애초에 누가 이런 걸 믿어 줄까. 유원 역시도 내가 겪은 게 예지몽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모양인데 부반장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실제로 부반장은 나를 반장이라고 불렀으니까.
“하긴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리고 난 지금의 네가 더 좋아.”
“전에도 좋았어?”
“…나한테 그걸 묻는 거야?”
아차 싶었다. 섬세하지 못한 질문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말을 못 하고 가만히만 있자 부반장이 하여간 이래서 남자들이란,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유원을 보다가 운동장 너머의, 벽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봤던 곳이 저쪽쯤이었을 거야.”
“저쪽?”
“골목이 보이는 방향. 저기에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는데 멀리서 본 거라서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어.”
보통 그런 걸 보면 신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신고했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곳은 그런 세상이니까.
그걸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여긴다. 유원 역시도 그랬다. 부반장의 말에 벽 끝을 보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다시 물었다.
“저쪽이 맞아?”
“그러면 저쪽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게?”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고마워. 제대로 알려 줘서.”
되게 화사하게 웃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미소였다. 잘생긴 애가 저렇게 웃기까지 하니 좋아할 만한 것 같기도 한데 부반장은 오히려 떨떠름한 기세로 나를 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나도 고마워.”
“고마우면 빨리 반장으로 돌아와 줘. 나 혼자서는 쓸쓸하니까.”
“그래.”
“아, 그리고 너한테만 할 말이 있는데.”
“나, 뭐?”
“잠깐만.”
갑자기 나를 끌고 간다. 당황스러워서 부반장을 보는데 어쩐지 필사적인 표정이 들어서 입을 다물다가 유원이 있는 쪽을 봤다. 근데 유원은 어쩐지 웃고 있었다.
왠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보는 시선으로.
그게 이상하게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돌려보니 부반장은 어느새 고개를 돌린 채로 아까보다 더 빠르게 걷고 있었다.
걷고, 또 걸어서 수돗가가 보일 때쯤에 유원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듯 보는가 싶다가 부반장이 말했다.
“저 애, 조심해.”
“…왜?”
“내가 어제 본 게 있어서 그래.”
“A?”
“A도 그렇지만… 저 애도 본 것 같아서.”
불안해하는 것이 이것 때문이었나. 게다가 부반장은 나한테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A가 잠깐 스쳐 가서 잘못 봤나 싶어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봤을 때 유원을 본 것 같았다고.
그래서 소름 끼쳤다고 했다.
“…말해 줘서 고마워.”
“나도. 내 얘기 들어 줘서 고마워. 솔직히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하기 좀 그랬는데… 그래도 너는 말을 함부로 할 것 같지 않아서.”
믿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슬슬 반에 들어가 봐야겠다며 가는데 나는 쉽게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놀랐고, 또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내가 ‘아는’ 유원이라면 나쁜 사람도 아니다. 물론 그것 역시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왜 이렇게 불안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정도로.
그 정도였기에 나는 다른 것조차 쉽게 의식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발소리조차도.
“대화는 다 했어?”
“어.”
“그렇구나.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며 유원이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 역시도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하지만 그마저도 뒤에 등이 닿아서 더는 물러날 데가 없었다.
“무슨 말 들었어?”
“…….”
“들었구나.”
어쩐지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제야 나는 여태껏 모른 척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처음에 따라오지 말아야 했을 유원이 어째서 따라왔는지, 왜 굳이 여기까지 오고 거의 처음 나에게 처음부터 잘해 주었는지 하는 따위의 일들을.
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유원이 먼저 가만히 나를 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꺼냈다.
“왜 네가 내 앞에 나타났을까?”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말을.
* * *
“왜냐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너는 왜 나타났을까.
애초에 난 왜 이런 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해 봐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기에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경계했다.
처음 보자마자 호의를 보여 준 유원을, 내가 알던 게임 캐릭터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낯선 것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낳는다.
하지만 그걸 무조건 두려움으로 치부하기에는 유원이 해 준 것도 많아서 나는 아예 경계하지는 못했다. 나 때문에 다쳤던 거나 나를 구해 주려고 했을 때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니까.
그래서 그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서서 기다리는 내가 있었다.
결론을 낼 수 있는 답을 기다리기 위해.
아무 이유 없이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그래서 봤더니 아까는 서늘하게 웃던 유원은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어째선지 입을 열 듯 말 듯 달싹이다가 겨우 내뱉듯,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사실은 별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
“뭘?”
“내가 비밀로 하던 이유.”
“비밀로 하던 이유?”
“그래. 나는 너와 약속을 했으니까.”
약속이라니, 뜬금없는 소리다. 내가 이상하게 바라보자 유원은 그런 내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보면서 이어 진실을 내보였다.
“너도 대충 눈치챘겠지만 나는 네가 알던 너와는 달라.”
“…내가 뭘 아는데.”
태연한 척 말을 해 봤지만 사실 심장은 크게 뛰는 것 같았다. 왠지 점점 생각이 실체처럼 잡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알 듯 모를 듯 한 그 생각이 긴장감을 부추겼다.
“A의 집과 이 학교, 이다음에는 다른 장소까지.”
“…….”
“전부 알고 있어. 너도 알잖아?”
“…알고 있었다고?”
“그래. 그래서 확인을 해 보려고 했어. 네가 깨어나지 않는 동안에.”
그제야 나는 유원이 왜 처음부터 나를 알듯이 굴었는지, 어떻게 부적을 그렇게 쉽게 가져왔는지, 깨지 않는 동안 왜 확인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의 많은 일이 설명이 됐으니까.
“…정말 기억하는 거야?”
“그래. 네가 약속한 것까지.”
“내가 뭘 약속했는데?”
나는 약속이 뭔지 모른다.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유원에게는 기억일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그냥 게임이었고 게임을 한 거였다. 그런데 게임 캐릭터가 게임을 했던 것을 예지몽 같은 것으로 기억하고 심지어 약속까지 했다는 건 무척이나 찝찝한 일이었다.
내가 아닌 나를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역시 그것도 잊어 버렸구나.”
특히, 마치 나를 잘 안다는 듯이 구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원은 상관없다는 듯이 내가 모르는 그 ‘약속’을 말해 줬다.
“잊게 해달라고 했어.”
“뭘?”
“네가 기억하는 것 전부를. 그래서 자신이 기억하는 걸 막아달라고 했어.”
“…왜?”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랬더니 바로 답이 들려왔다.
“글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게 뭔지 알아?”
“모르지. 하지만 이 이상 말하고 싶지는 않아. 네가 말해달라고 해서 말한 거지만 이 이상은… 나는 네가 전과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니 뭘까 싶었다. 하지만 유원이 바로 입을 다문 걸 보면 다시 물어도 딱히 대답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반대로 어떻게 보면 충격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이 전에 한 번 이런 비슷한 일을 겪고 기억을 잃었던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조금 무서웠으니까.
이번이 한 번이 아니면 다음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시 반복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한이 밀려왔다.
유원에게 잊게 해달라는 것도 그런 이유라면 이해가 갔다.
어떻게 잃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난 여기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런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유원이 손을 잡아 왔다.
“괜찮을 거야.”
“…어떻게.”
어떻게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짜증이 났다. 그런 식으로 보게 된다. 유원의 기억에서의 나는 다른 사람이 플레이했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확신한 거 하나 없지만 이런 얘기를 들은 심정으로서 불안한 일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 삐딱한 심정으로 보니 유원은 웃고 있었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이.
“너는 여기에서 나갈 수 있다고 했어. 나갔었다고 했고.”
“…내가?”
“그래.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보니까 유원이 아는 나는 자세한 건 설명해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내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쨌건 나갈 수는 있다고 했다.
그 가능성을 믿어봐야 했다.
“안아 줄까?”
“…됐어.”
“조금 서운한데.”
내가 거절하자 말 그대로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은 유원은 말은 그렇게 해도 떨어졌다. 그러고는 아까의 일을 기억했는지 나한테 아까 부반장이 했던 것처럼 경고했다.
“아까 그 애가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귀신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알아?”
“당연하지. 너랑 관련된 건 다 기억하니까.”
“꼭 나랑 같이 오래 지낸 것처럼 말하네.”
“아주 오래 봤으니까. 그만큼 잊기 힘들기도 하고.”
오래 봤다니, 내가 플레이한 시간을 다 쳐도 그렇게까지 걸리지는 않았다. 게임 하나 클리어 하는 데도 기껏해야 게임 기준으로는 며칠일 뿐이라서 나는 농담이라도 하나 싶었다.
게다가 잊기 힘들다는 건, 유원 역시도 꽤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까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어쨌건 본인이 말한 거긴 했지만 직접 말한 게 꽤 설득력이 있어서 유원에 대한 의심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덕분에 긴장이 풀려서 좀 지친 느낌이었지만.
“그럼 열쇠부터 찾아야 할까…….”
“그전에 좀 쉬자. 어차피 열쇠 위치는 알고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열쇠의 위치, 보통 이런 게임에서의 열쇠의 위치는 특정한 방이다. ‘이상한 저택’ 역시 방들을 이동하면서 단서를 찾아내는 거였고 이번의 ‘수상한 학교’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로 그런 곳들을 이리저리 가 보다가 A가 준 열쇠로 열 수 있는 장소로 가게 되는, 전형적인 게임의 형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나중에 가서야 A가 가진 열쇠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그 장소가 꽤 의외인 곳이었으니까.
답을 알고 있는 만큼 시간 소모는 적었으니 우리는 정말로 잠깐 쉬었지만 나는 그게 또 괜히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결국 유원에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슬슬 가 보자.”
“벌써?”
“빨리 끝나야 편할 것 같아서.”
“…네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유원 역시도 몸을 일으켰다. 스탠드에 있는 흙먼지를 툭툭 털고 손을 대충 씻고 움직여서 계단을 올라갔다.
처음에는 1층, 그다음에는 2층, 마지막에는 3층을 올라 4층의, 끝에 올 수 있었다.
거의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옥상에.
“열쇠 네가 가지고 있지?”
“그래. 여기.”
“고마워.”
아까 유원에게 주고는 부반장까지 나타나서 받을 틈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야 받은 열쇠로 옥상의 자물쇠에 꽂아서 돌려보니.
찰칵.
바로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게임에서도 이렇게까지 리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머리가 살짝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 불자 정말 진짜 같아서 문의 바깥쪽, 옥상을 보자 신기한,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 생겼었구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별반 다를 거 없이 게임을 진행했기 때문에 처음에 옥상을 찾는 건 어려웠다.
왜냐면 A의 이미지상 귀신을 좋아하는 그 특유의 이미지가 있기도 했고 첫 번째 장소인 ‘이상한 저택’만 해도 좀 어두운 지하 같은 데서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았으니까.
나름의 허점이랄까.
이번 장소는 그만큼 예상치 못했던 곳이었지만, 실제로 A는 이곳에 가끔 왔다고 원래 게임에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하면 아지트였다.
그래서 아마 내 캐릭터, 그러니까 반장을 옥상에 부르려고 한 것이다.
이곳에 중요한 것들이 몇 개 남아 있을 테니까.
그러니 미리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나로서는 제일 먼저 창고를 봤는데 유원 역시 그쪽을 보다가 나를 보더니 물었다.
“들어갈까?”
“그래.”
별다른 말 없이 우리는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옥상으로 오라는 말은 저 창고 역시 열려 있는 뜻이기도 해서 바로 문고리를 잡았다.
달칵.
“…어?”
달칵, 달칵.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왜 안 열리지?”
“…그러게.”
혹시 몰라서 유원 역시도 문고리를 움직여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서로 쳐다봤는데 근처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창고 문은 안 열릴 거야.”
“뭐?”
“내가 열리지 않게 해놨으니까.”
처음에는 몰랐지만, 계속되는 목소리가 창고 위쪽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 그림자가 보였으니까.
나는 왜 이걸 몰랐을까 생각하며 그쪽을 보는데 위쪽에서 누워 있었는지 금방 일어서서 이쪽을 본 누군가는 내려오더니 웃고 있었다.
“네가 일?”
“…너, 누구야.”
일이라니, 내 기억에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캐릭터를 떠올려봐도 눈앞에 보이는 주황색 머리를 한 남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서서 물었더니,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요구했다.
“내가 누군지 말해 주면 내 부탁 들어줄 거야?”
묘한 웃음을 지은 채로 쳐다보면서.
* * *
굳이 따지자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무엇보다 실실 웃는 게 아무리 봐도 성실한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다짜고짜 거래라니 웃기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쪽의 뭘 믿고?”
딱 내가 할 만한 말을 유원이 또 먼저 말해 버렸지만.
그래도 틀린 거 하나 없는 말인 데다가 내 앞쪽에, 내 앞의 반을 가릴 정도로 막는 자세를 취하는 게 지켜주려는 듯한 자세 같아서 이 상황에서 무언가 더 말하기에도 어려워 가만히 있었더니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본인이 나타날 때처럼 예고 없는 말을.
“A한테 부탁받았거든.”
“부탁?”
“그래. 너희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내가 이 타이밍에, 여기에 이렇게 나타난 게.”
맞는 말이다. 마치 딱 맞춰서 등장하는 게 과연 우연일까. 여우처럼 실실 웃던 남학생은 나를 보면서 흐음, 소리를 내더니 말을 꺼냈다.
“내 부탁은 간단해. 너희의 일에 나도 끼워 주는 거야.”
“…우리 일이 뭔지 알고?”
나 역시 물었다. 도대체 뭘 얼마큼 아는 걸까.
그러자 바로 답이 들렸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
이상한 대답. 그러나 상대는 여전히 거리낌 없이 말을 꺼냈다.
“나는 부탁만 받았을 뿐이거든. 어제 말이야.”
“어제?”
“그래. 어제 A랑 우연히 만났는데 나보고 자기는 A인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 이름은 뭐냐고 물어봤고.”
“이름이라고?”
“그래. 근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름을 모르는 거야. 내 이름을 내가 모르다니 웃기지 않아?”
웃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들으니 어제 A가 왔다는 게 썩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저쪽은 정말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다.
게임은 주요 인물, 그러니까 움직이는 캐릭터와 특정 단서를 주는 대화가 있는 캐릭터 외에는 애초에 이름을 짓지 않았을 테니까.
마치 엑스트라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이 상황도 그거랑 비슷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A는 뭔가 알고 있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걱정과 함께 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정확히는 어제 일에 대해.
“그러면 어제 A와 언제 만났어?”
“글쎄… 내가 시계도 잘 안 봐서. 그래도 대충 운동장이 보이는 데에서 만났지.”
운동장, 나는 그 말에 왠지 모르게 유원을 쳐다봤다. 그러자 유원은 그냥 더 짙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게 마치 허락같이 느껴져 바로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어제 학교 밖에도 있었어?”
“그래.”
머리색은 다르지만 언뜻 보면 유원과 체격이 비슷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제 부반장이 본 건 저 사람이 아닐까.
근데 어쩐지 답하면서도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사람이 나한테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자꾸 나한테 묻기만 할 거야? 나에 대해서는 안 궁금해?”
“뭘?”
“내 이름 안 궁금해?”
마치 물어봐달라는 듯이 재촉한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하는데 생각을 더 하기도 전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내 이름은 강한이야!”
“한이?”
“강한! A가 지어 줬어. 내 이름 완전 멋지지!”
“…그러게.”
엄청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떨떠름하게 바라봤더니 강한이 나와 유원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셋이 찾으러 갈까?”
실실 웃으며 순식간에 다음 단계를 진행시키려는 남자, 강한 때문에 나도 순간 그럴까, 하고 바로 답할 뻔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미안한데… 그것도 A가 부탁한 거야?”
“어어?”
“A가 부탁한 거냐고.”
“으음…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강한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아까의 가볍게 보였던 느낌이 다시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유원이 진지하게 물어서 그런지, 유원이 아까 내내 조용했던 이유도 뭔가 생각한 게 있는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럴 만한 질문을 했으니까.
“근데 A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우리가 창고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
“…날카롭네. 찔릴 것 같아.”
웃으며 한 손으로 목을 찔리는 흉내를 낸 강한을 여전히 유원은 무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자 강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에 협박을 해야 너희들이 내 말을 들어줄 수 있다고 했어. 지금만 봐도 그렇잖아?”
“그럼 열쇠 당장 줄 수 있어?”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유원이 말했다. 그러자 강한은 망했네, 망했어, 하며 열쇠를 꺼냈다.
창고라고 열쇠고리에 이름표로 제대로 표시되어 있는 열쇠를.
그래서 내가 가져가려는데 강한은 그걸 눈치채고 순식간에 다시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헉, 깜짝 놀랐네.”
“…안 줄 거야?”
“내가 안 준다는 건 아니잖아. 약속은 해 줘야지?”
웃으며 말한다. 그래서 나는 유원을 봤고 유원도 나를 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괜찮다고.
그래서 나는 강한에게 알겠다고 했다.
“진짜지?”
“어.”
“야호! 일단 창고 문은 열어 줄게. 열쇠는 내 거지만, 그러니까 다시 물건을 갖다 놓을 때도 내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거겠지!”
신난다면서 강한은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보다 쉬운 것 같아서 솔직히 놀랐지만 그래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어가 보려 했고 그때 잠깐 유원을 봤다.
“뭐 해?”
“그냥, 생각 좀 했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할 일도 생각하는 거야?”
“…그래야 안전해질 테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안전하려고 그만큼 생각하다니, 그러면서 웃는 게 묘한 느낌도 들었지만 내가 누구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유원이니까 그대로 내버려 둬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들어가자는 말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찾을 게 있었으니까.
“…찾았어?”
“어, 여기.”
나는 제일 먼저 부적을 찾았고 그걸 유원도 알고 있는지 보고는 역시 자연스럽게 웃으며 잠깐 보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밖에 있었다.
보통 때라면 안으로 들어오겠지만 확실히 저 태도는 좋았다. 아마 열쇠를 가지고 있는 강한을 경계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말만 듣고 믿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반장의 일로 유원을 오해할 뻔하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난 창고의 안쪽, 낡은 전화기가 보이던 박스 안에 있던 부적을 꺼내면서 그 밑쪽에 깔려 있던 예전 앨범도 꺼내 펼쳐봤다.
한 명의 사진이 보이지 않는 앨범을.
“그건 뭐야?”
“…앨범일걸.”
“그렇구나. 신기하네…….”
강한은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앨범을 봤다. 게다가 이미 보고 있으면서 자신도 봐도 되냐고 묻는 뻔뻔함이란, 그래도 어차피 강한이 본다고 해서 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별로 대꾸도 하지 않고 보던 앨범에 다시 집중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비어 있는 한 자리를.
“여기만 사진이 없네. 이름은 있는데.”
“그러게.”
사진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졸업하기 직전 죽은 여학생을 위해 남겨놓은 자리였으니까.
또한 그 여학생이 바로 A를 붙잡고 감시하는 귀신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해서 다 같이 사진은 없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졸업앨범에 이름만 있고 사진만 없는 빈 여백이 존재한 이유는 그런 거였다.
원래라면 다른 교실들을 빙빙 돌아가면서 단서를 얻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과연 있을까.
나는 고민이 됐다.
“그거 가져가게?”
“…어.”
그래도 역시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이 게임을 어쨌든 진행하는 쪽이 좋으니 적어도 중요한 것들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달칵.
“열쇠는 다시 내가 가지고 있을게.”
나오고 나서 강한은 바로 열쇠를 도로 자신의 옷 주머니 안쪽에 넣어 놓았는데 이쪽의 경우에는 나오자마자 바로 유원이 내가 챙겨온 걸 보며 대강 어떻게 할지 짐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다시 만나러 가야겠네.”
“그래야겠지.”
다시 만난다는 건 당연히 부반장이다. 귀신에 씐 만큼 얻을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반장은 그 죽은 여학생 귀신과의 합이 잘 맞았는데, 영혼이 육체를 빌릴 때 상성이 잘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부반장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야 체질이 이런 몸이다 보니 그런 게 꽤 있지만…….
생각해 보면 아직 이곳에서는 귀신을 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걔가 누구야?”
“…….”
“안 말해 줄 거야?”
강한이 물어서 나는 이제야 둘이서만 아는 대화를 했음을 깨닫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과연 이해할까 싶어서.
“귀신 얘기야?”
“…그런 것도 알아?”
“말했잖아. A의 부탁 때문에 온 거라고.”
A의 부탁, 확실히 A라면 귀신 관련된 부탁일 수 있어서 그 관련 얘기를 하려면 귀신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묘하게 웃는 저 태도는 보기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유원 역시 그 말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귀신 얘기라면… A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아?”
“어디까지라니?”
“어떤 부탁을 했냐는 얘기야.”
유원이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강산이 그런 유원을 보며 순식간에 냉정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죽여달라는 부탁.”
“…뭐?”
“A는 자신이 죽고 싶다고 했어. 이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다고.”
강한의 표정은 처음 본 것과 같이 묘한 표정이었다.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 그런 얼굴을 한 채로 그 나름의 생각해 본 것들을 천천히 읊조렸다.
“아마 A는 그 정도로 절박했던 게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친한 애들을 두고 나를 골랐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겠지.”
또한 그는 아예 바보는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서 A가 부탁하는 것만 듣지 않고 그 의도까지 파악해서 우리에게 취할 행동을 정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더 궁금했다.
어째서 A는 굳이 이곳에 와서 강한에게 부탁했던 걸까.
우리가 믿음직스럽지 못해서라면 왜일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자꾸 들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나락에 빠지는 기분이다. 특히 A가 정말 내 예상과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너무 혼란스러워서.
탁.
“괜찮을 거야.”
나직하게 들리는 목소리, 유원은 나한테 말하면서 손을 잡고는 또 한 번 말했다.
“괜찮을 거야.”
“…정말?”
“정말이야. 그리고 만나지 않고 포기하는 건 이르다고 생각해.”
다정하게 말하면서 하는 말은 언제나와 비슷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또, 왜 이렇게까지 유원이 잘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빠르게 결론을 짓는 스스로를 느꼈다.
“맞아. 일단 만나 봐야 알겠지.”
귀신이든 A든, 또는 그 어떤 것이든 간에 나는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이 지독한 환상에서.
* * *
챙길 걸 다 챙기고 우리는 옥상에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열쇠는 유원이 나한테 다시 주긴 했지만 문을 잠그고 나서 다시 돌려줬다.
왠지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실제로 ‘이상한 저택’에서는 내가 현재 움직이는 반장이라는 캐릭터가 거의 움직였지만 ‘수상한 학교’에서는 유원이 주로 움직였다. 스토리상 어떤 시점에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달라지는 쯔꾸르 게임이었으니까.
반장인 만큼 걸리면 안 좋아질 수도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어찌 됐건 지금과는 다르게 게임에서는 몰래 들어온 만큼이나 외부자인 유원이 움직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또 그만큼 A와 관련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잘못되는 경우 내가 열쇠를 뺏기면 안 될 것 같고, 그나마 열쇠를 맡길 수 있는 게 유원이었으니까.
겨우 며칠, 어떻게 보면 몇 시간밖에 같이 지낸 것뿐이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이편이 나았다.
나로서는 내가 완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애초에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는다면 괜히 나한테도, 다른 캐릭터한테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준 거였다. 그런데도 유원은 열쇠를 받고 어쩐지 기쁘다는 듯이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받아갔다.
‘잘 가지고 있을게.’
그게 좀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어디까지 가면 돼?”
“…1층까지는 가야 해.”
“1층이야? 에이…….”
그리고 지금 물어본 강한은 원래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서 가다가 가는 길을 몰라서 다시 올라와서는 묻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사람은 정말 처음 본다.
“1층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거구나~”
바보 같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파악하려는 게 마냥 바보 같지는 않은 점이.
억지로 떠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르는 것 같이 물어보는 것도 있어서 애매한 느낌이었다. 둘 다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뭐, 좋아. 같이 찾으면 뭔가 알 수 있겠지.”
그 말대로였다. 솔직히 같이 다니는데 아예 모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정도는 나도 답해 줄 수 있었다. 또 그만큼 저쪽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강한의 말대로라면 A를 죽여달라는 걸 승낙하고 우리랑 같이 다니는 걸 테니까.
그런 걸 승낙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싶지만 어쨌든 어떤 의도로 했든 간에 수상한 건 사실이었고 그 예로 유원은 나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아니 여전히 웃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말은 별로 하지 않은 채로 때때로 강한을 보며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다시 반까지 와버렸다.
“근데 사람 없는데?”
“그럴… 아.”
그럴 리가 없다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말로 교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왜 없지?”
“글쎄.”
강한의 물음에 답해 주면서도 나 역시 의문이 들었다. 왜일까. 책상 위는 다 정렬이 되어 있는 듯이 반듯하고, 한 분도 안 쓴 듯이 깨끗했지만 가방이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유원이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동 수업인 것 같은데.”
“뭐?”
“여기 봐.”
“…아.”
유원이 한참을 보고 있었던지, 시간표를 가리켜서 나도 이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수업 시간에 반 애들 전체가 없다는 것은.
“이동 수업이구나.”
다른 곳에서 하는 수업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런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정신도 없었고 상황도 달랐다. 원래는 몰래 들어왔던 만큼 밤이었고, 그래서 수업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시간표가 있어서 대충 어디에서 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게임은, 학교의 교실들을 어느 정도 뒤져본 플레이어로서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실로 가야 하나?”
“그래야겠지?”
과학실은 건물 뒤쪽, 그러니까 구분하자면 후관 2층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이 났는지 움직이려고 했더니 강한이 반마다 달린, 학년과 반이 적혀 있는 문패를 보고 있었다.
“뭐 해?”
“아니 그냥 이거… 그냥 거슬린다 싶어서.”
“거슬린다고?”
“그래… 왤까?”
“글쎄. 그보다 우리 얼른 가야 해.”
“아 참, 그랬었지.”
잊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자고 했다. 그런 반응이 나는 오히려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서.
울렁거려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예상대로 과학실은 2층이었고, 반 애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왜냐하면 부반장이 그 안에 있었으니까.
다른 애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강한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유원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일단 기다리자며 말하는데 나로서도 갑자기 수업에 들어가거나 갑자기 급한 일 있다고 부르기는 어려워서 달리 선택할 건 없었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기다리는 게 좋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보니까 꽤 걸릴 것 같아서 하늘을 보다가 시계를 보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데 갑자기 유원이 다가와서는 어깨를 살짝 잡았다.
탁.
덕분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피하긴 했지만.
“…어, 미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제야 나는 유원이 뭔가 볼일이 있다고 눈치채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유원도 내가 이런 상태일 때는 별로 표정 변화가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넘어가 주며 원래 하려던 얘기를 꺼냈다.
“잠깐 어디 좀 다녀올까 싶어서.”
“어디?”
유원의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일까, 내가 물었더니 유원이 나를 보고 살짝 웃음소리를 내다가 안심하라는 듯 말을 꺼냈다.
“부적 있는 데 잠깐 다녀오게.”
“부적이라면…….”
“그래. 확인할 겸, 잠깐 다녀오려는 거야. 아무래도 나도 예상 못 한 게 있으니까.”
어쩐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게 아까 나도 놀라긴 했지만 유원 역시 놀란 것처럼 보였으니까.
예상 못 할 일들은 괜히 초조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게 나만이 아니기에 어쩌면 나도 모르게 안심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유원에게 빨리 오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유원은 정말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금방 돌아올게.”
그 말을 끝으로 유원은 가 버렸다. 놀라운 건 강한은 제법 얌전히 있었다는 건데 가만히 창문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난 무시했지만.
그러다가 유원이 간 걸 보고 다가온 강한이 물었다.
“쟤 어디 가?”
“잠깐 어디 다녀온대.”
“뭐? 그럼 나도 화장실 다녀올래.”
“참아.”
“…치사해.”
치사하다며 삐졌는지 볼을 부풀리던 강한은 치사한 애랑은 말 안 한다면서 거리를 두다가 다시 심심했는지 다가와서는 저기 새가 방금 왔다 갔다고 하거나 구름 모양이 신기하다거나 하는 얘기들을 했는데, 반응이 없으면 더 괴롭히는 것 같아서 적당히 맞장구쳐주는데 그러던 도중 나는 문득 물었다.
“근데 너.”
“나 뭐?”
“A의 부탁은 왜 들어주기로 한 거야?”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물을까, 사실 아직도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긴 해도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A를 알고, 만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고 강한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아, 그거? 그냥 말한 거야. 그리고 내가 어떻게 A를 함부로 죽이겠어.”
분명 만난 건 어제가 처음이었을 텐데 강한은 마치 A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이상했다.
“너…….”
하지만 그 이상 말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반에서 이름 모를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당연히 부반장도 나왔다.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얘가 그러는데 네가 귀신 들렸을 수도 있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순간 강한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저렇게 대놓고 말할 줄이야, 덕분에 나는 부반장 앞에서 엉거주춤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로 난감해서 보고 있으니 부반장이 우리를 보다가 한숨지으며 말했다.
“일단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얘기하자.”
왠지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면서 잠시 친구들인지 다른 여자애들한테 뭐라 말하다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게다가 반 이상은 이미 내려간 상태라 남아 있는 애들이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반장은 입을 다물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난 바로 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같이 왔던 전학생이 잠깐 다녀온다고 해서 적어도 말은 하고 가야 해.”
“그러면 선생님께 부탁할게.”
“선생님?”
“그래. 어차피 걔 잠깐 다녀온다며. 금방 올 거 아니야?”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운 느낌이다. 또 그만큼 부반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원을 조심하라는, 어제 본 것 같다는 그 말이.
나는 그게 유원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 줄까 하다가 나 역시도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면 남은 애들이 들을까 봐, 그게 안 좋은 영향이 될 것 같아서 관뒀다.
이 이상 내가 모르는 게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럴까?”
“그래. 우리가 애도 아니고, 어디 간다고 하면 금방 따라오겠지.”
부반장이 말했다. 나는 그게 어느 정도 주관적이라는 것도, 내 말이 이상해서 하는 것치고는 너무 큰 반응이라는 것도 눈치챘지만 내 입에서는 역시나 어느 정도 넘어간 답이 나왔다.
“그럼 그렇게 하자.”
반쯤은 충동적으로 대답한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결국 결정했다. 만약 부반장이 정말 귀신이라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귀신은 경계를 하는 편이라 이렇게 단서를 찾아가면서 상대를 해야 만나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결정한 다음은 빨랐다. 부반장은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고 선생님은 알겠다고 해서 우리는 교실을 빠져나갔지만 나는 왠지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금방 다녀온다던 말에 잠깐 확인했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둘도 눈치챈 것 같아 보였지만 그냥 가자고 할 뿐이었다.
“가자.”
흠칫.
강한이 내 팔을 붙잡았다. 어째선지 서늘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얼른 가야 알 수 있지.”
그 말이 맞았다. 강한이 이상하기는 해도 아직 뭘 한다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괜찮지 않을까, 여태까지 괜찮았으니 아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