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상한 저택 (2)
손에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나는 그 사실에 놀라면서도 유원을 보며 손을 펼치고는 바로 타이밍을 재기로 하고, 곧 그를 보며 입 모양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셋과 동시에 문을 열고 빠른 속도로 다른 방으로 갔다.
아마도 단서가 있을 만한 방으로.
탁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열어 재낀 문, 끼이익 하며 벽을 긁는 것과 함께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달렸더니 어느새 식은땀이 가득했다.
“하아…….”
겨우 숨을 내쉰 것은 이제야 숨을 쉴 틈이 생겼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이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주변을 보며 이 방이 2층의 다용도실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손님방의 경우 침실 같은 용도가 있지만 이 방은 밑에, 1층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부엌 겸 응접실을 하는 곳으로 벽에는 간단하게 식기들이 놓여 있는 장식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장식장 안, 찻잔 안쪽에 비로소 숨어 있는 것이 보여 나는 움직이려고 했다.
내 손을 움켜잡는 누군가만 아니었다면.
“왜?”
“잠깐 멈춰봐.”
멈추라고 해서 나는 순순히 멈췄다. 유원이 그동안 내 말을 잘 들어준 만큼의, 딱 그 정도의 호의였지만 어쨌건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귀신이 갑자기 보이지 않은 걸까. 아니 보이지 않다기보다는 ‘들리지’ 않은 걸 테지만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렇듯이 나는 아직도 아까의 그 따라오던 감각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잊기 어려운 그 귀신의 흔적을.
그런데 따라오던 소리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아까 있었던 일이 허상이라는 것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완전히 느껴지지 않아서 놀랐다.
왜일까.
“간 걸까?”
“글쎄…….”
유원의 물음에 나는 모호하게 답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문을 열기에도 애매해서 그렇게 말했더니 유원은 웃으면서 잡았던 손을 이끌며 말했다.
“그럼 찾을까?”
“뭘?”
“뭐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A는 여기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일기도 아까 찾았으니까 어쩌면 다른 게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유원의 말은 나를 안심시키게 했다. 웃는 태도가, 친한 친구 보듯이 다정하게 대하는 게 낯간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을 어떻게 나쁘게 볼 수 있을까.
나는 그 손길에 이끌려 장식장 앞으로 왔다.
“아까 여기로 가려는 것 같길래.”
“음…….”
“이런 거에 흥미 있어?”
“…생각보다 좋아 보여서.”
솔직히 흥미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좋아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원래라면 그냥 색만 좀 칠해져 있을 뿐인 식기들은 좋은 색깔로, 딱 봐도 고급져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랬기에 그다음으로 올 말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A가 말해 준 거야?”
멈칫.
“…뭘?”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그러자 유원은 거침없이, 아니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날카롭게 파고드는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고 했잖아. 내가 알기로는 A의 친구가 이 저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들었던 적이 없어서.”
“아… 그렇구나.”
확실히 A의 저택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실제로 나보다는 A와 딱 봐도 친척인 유원이 더 친밀할 테니 당연하게도 그런 쪽으로는 잘 알았을 것이다. 비록 귀신 관련으로는 크게 말한 것이 없다고 해도 어쨌든 둘은 어릴 때도 꽤 친하게 지냈다는 설정으로 이렇게 유원이 온 걸 보면 어느 정도 교류는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유원은 친척으로서,
내게 물었다.
“그래서 궁금한데 너희들 진짜 안 친해?”
“…안 친해. 그래서 나도 답답하고.”
“나랑 마찬가지네.”
마치 기분 좋다는 듯이 금방 미소를 짓는 유원을 본 나는 참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게임에서는 표정도 그냥 게임 캐릭터처럼 보여서 멀쩡할 때와 공포를 느낄 때의 차이로만 봤는데 이렇게 보니까 왠지 낯설어서.
낯선 것은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혹시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 응?”
“…알았어.”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하는 사람에게 과연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알았다고 말하면서 주변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 될 테니까.
애초에 어느 정도는 의심받았어야 하는 일이고 유원 역시 성격이 좋다고 해도 넘어갈 게 있고 안 넘어갈 게 있는 법이다. 그러니 아까같이 내가 무엇을 ‘안다는’ 점에서 A와 나의 연결점에 대해 지적을 했고 나는 솔직히 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렇듯이 그나마 여기서 유일하게 협력이 가능한 대상이니까.
게임에서, 이 ‘이상한 저택’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간.
그것이 유원이었다.
원래는 일본어 이름이었지만 우리나라의 모회사가 저작권을 어찌어찌 샀다고 해서 이리저리 한국식으로 바꾼 바람에 생긴 이름이었는데 덕분에 이런 게임답지 않게 본래 있는 스토리의 디폴트 네임이 아닌 닉네임 형식으로 바꿀 수 있게 해놔서 내 이름 역시 그냥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 장난이라도 친 것처럼.
이 상황도 꼭 그런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주변 상황을 조율한 것처럼, 내가 게임의 캐릭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게 진짜라고 해도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시도는 해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금, 방금 나는 A가 숨겨놓은 종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누군가의 반응은 덤이었다.
“거기에 뭔가 쓰여 있는 거야?”
“아마도. 일단 봐야 알걸?”
종이는 확실히 있었고 아마 내용도 내 예상대로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꼭 확인을 해야 했기에 종이를 펼쳤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예요?]
빨간 글씨, 역시 똑같다.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은 글씨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안심하였고 그 덕분인지 유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저녁을 묻는 쪽지가 여기에 있을까?”
“글쎄.”
저녁을 묻는 건 그냥 아무 말이나 써둔 걸 거다. 중요한 건 빨간 글씨니까.
그래서 괜히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에 둔 것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겠지.”
“근데 용케도 A의 글씨를 알아보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게까지 말하니 반박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서로 간 보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싶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이거 일부러 남긴 게 아닐까?”
“일부러?”
유원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종이가 있는 방향으로, 아무래도 더 자세히 보기 위한 것 같아서 종이를 넘겨줄까 했는데 금세 말을 걸어서 나는 결국 팔을 뻗다가 도중에 애매한 상태에 멈춰 서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단서가 유원의 말에 담겨 있었으니까.
“이거 피 같은데.”
“피?”
“그래. 냄새가… 아니 왜 여기에…….”
말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유원은 묘한 눈으로,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당연했다. 피로 쓴 글씨, 나로서도 솔직히 A는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니까.
그렇다고 해도 게임 설정상의 이유는 존재했다.
이곳에서의 귀신은 시각과 청각은 느낄 수 있었지만 후각은 느낄 수 없었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A는 그렇기에 교묘하게 일을 벌였다. 일부러 그렇게는 많이 쓰지 않은 공간에 굳이 넣은 이유는 단 한 순간이라도 이 장식장을 열면 보이는 종이, 그리고 냄새가 그가 남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할 수 있게끔.
그리고 비록 지금, 가까운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척인 유원이 알아봤다. 게다가 아까처럼 난감한 기색으로 이쪽을 보다가 금세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진짜로 네 말이 맞나 봐.”
“그…….”
“솔직히 네가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네가 A의 친구라고 생각해. 어쨌든 걔가 너하고 괜히 친구가 되고 싶던 게 아닐 테니까.”
내가 정말로 좋은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게 참 이상했다. 정확히는 낯설다고 하는 편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이었으니까.
아무리 유원에게 안쓰러운 감정 같은 게 든다고 해도 나, 내가 있던 세계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분명히 나는 게임을 좋아했지만 평범하게 학교도 다니고 엄마한테 잔소리도 듣고, 아빠 발 냄새가 나면 피하고, 동생 용돈은 무슨 내 용돈 챙기기도 바빴던 꽤 쾌활한 학생이었으니까.
한때 밤마다 동네 횡단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좋지도 않았지만.
그러다가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말았다.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사실을.
“젠장…….”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너는 뭐 찾았어?”
“아니. 그래도 더 찾아볼게.”
사실 아마 내가 발견한 종이 때문에라도 다른 데를 찾아볼 시간은 없었을 텐데 순순히 구는 유원은 정말 금방이라도 찾아볼 기세였다. 아까처럼.
원래라면 결코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게임에서는 지금 이렇게까지 둘이 붙지는 않았었다. 그러니 애초에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유원이 필요했고 유원 역시 어느 정도는 내가 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필요한 동행이었다.
고작 몇 시간짜리일지라도.
그 정도밖에 보낸 시간이 얼마 없었더라도 나는 눈앞에 있는 그가 하는 게 헛짓임을 알고 있었기에 충동적으로 나보다는 조금 굵은 그 팔을 잡기에 이르렀다.
“그만해.”
“…왜?”
“어차피 여기에는 없어.”
나는 말했다. 여기에는 없다고. 그러자 유원히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가 곧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럼 어디에 있는데?”
이제는 알 수 있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
* * *
거짓으로 가득한 관계에서는 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결국 필연적으로 나는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약간의 진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여기에 온 기억이 있어.”
거짓말이지만, 하지만 이 정도만 말해도 충분했다.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빛나는 누군가의 눈빛만 보더라도.
“그래?”
“그래. 솔직히 다른 점도 있어서 꿈이 아닌가 했지만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졌어. 그래서 이제야 말하는 거고.”
내가 말한 것은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게다가 말하고 보니 다른 점이 있다는 말과 여전히 꿈같다는 점에서 이 자체로는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조금, 미묘하게 해석의 여지가 다를 수 있는 말이긴 했지만.
“그럼 다른 곳도 알고 있겠네?”
“당연하지.”
“그럼 거기로 가자.”
“지금?”
“…안 돼?”
안 되냐고 묻는 건 아마 아까 귀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역시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야 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기도 해서 일단 상황을 보고 가기로 했다.
“안 되는 건 아니야. 일단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아직 귀신이 없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거니까 어느 정도 도망칠 준비는 해야지.”
“그건 네 말이 맞아. 그렇게 하자.”
유원은 순순히 수긍했다. 어깨나 주물러 주겠다며 말해오는데 하마터면 유원이 다친 것도 잊을 뻔해서 됐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몸을 일으키던 그는 안에 있던, ‘한 입 초코바’ 몇 개를 가져와서는 본인 먹을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나에게 물었다.
“먹을래?”
“이 상황에?”
“이 상황이니까. 우리가 몇 시간 동안 쉬기만 한 건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게다가 이 음식은 게임에서는 공포를 그냥 있는 것보다 빠르게 회복시켜 줘서 하트를 다시 채워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하나를 받아 포장지를 뜯고 입 안에 넣어 씹었다. 그냥 언제나 먹었던 바삭하고 묘하게 입맛을 당기는 초코바 맛이었지만 어쩐지 그만큼 묘하게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잠깐의 안심으로 모든 게 좋아질 리는 없을 테니까.
“슬슬 갈까?”
툭툭 손을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유원이 다시 손을 잡아서 내가 쳐다보니 마치 내가 궁금한 점을 알기라도 하는 듯 금세 대답해 주었다.
“혹시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확실히 이상한 저택에서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유원도 어쩌면 불안한 걸지도 모르고. 나는 A에게 딱히 별 감정은 없지만 적어도 유원은 다를 거라는 생각에 잠시 동정심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유원이 있어서 조금 마음이 편했기에 마주 잡아 주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보통 때라면 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그때, 유원이 조금 더 활짝 웃었던 것 같지만 나로서는 그걸 쳐다보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저, 얼마 안 가서 심호흡을 몇 차례 한 다음 문을 열고 나갔을 뿐이다.
나가서 곧장 느껴진 건 서늘한 온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나는 조금 안심이 됐다.
“다행히 이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아.”
“그렇구나. 그러면 밑으로 내려갈까?”
“바로?”
“아니. 네가 찾을 게 더 있다고 하면 있을 거야.”
마치 말하는 게 나는 여기에 대해서, 이미 경험했다는 기억이 있다고 실토했으므로 이미 다른 데에 찾을 게 있냐는 물음이었다.
이미 여기에는 찾을 게 없었지만.
그렇지만 그 태도가 꼭 여기에 이제 찾아도 소용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너도 그렇냐고 물어볼 뻔했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왜냐하면 그 얘기를 꺼낸다면 내 얘기, 그러니까 사실 여기에 온 경험에 대한 기억이 그냥 플레이를 했을 때의 기억으로 ‘게임’이란 것까지 말하기에는 나도 많은 게 걸렸으니까.
그러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안 가도 돼. 가자.”
“진짜 아무것도 없어?”
“아마도. 정 걸리면 이따 또 오자.”
생각보다 반응이 컸다. A에 대한 걱정인지 뭔지, 아무래도 여기에 별다른 게 없어서 오히려 불안감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했더니 그제야 알았다면서, 그러면서도 내 눈을 마주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유원이 나를 의지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그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결국에는 결정 난 일에 우리는 조금씩 1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계단을 걸을 때는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그냥 발만 내딛는 것도 왠지 긴장이 되는 기분이라 평소처럼 걷는 게 잘되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유원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나는 A 때문이지만 이 상황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
“뭐?”
순식간에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 때문에 넘어질 뻔해서 유원이 겨우 내 허리를 잡아 괜찮은 상태로 나는 유원과 마주 봤는데 이유 모를 웃음을 보인 채로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거봐.”
“어?”
“우리 둘이 이렇게 만나서 서로 도와줄 수 있잖아. 이런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생각해.”
“아.”
유원도 알고 있었다. 서로 의지하게 되는 점을, 어쩔 수 없이 둘만 있게 된 이 환경에서 ‘어쩌면’일지도 모를 안 좋은 일들이 닿는 스토리를 생각하면 확실히 의지하게 되는 것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랜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이제는 서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완전히 같은 건 아니지만 공동의 목표도 있었다. 누군가가 힘든 것을 나누면 반이라던데 예전에는 말이 되냐고 했던 일이 이런 식으로 와닿을 줄은 몰랐다.
아마 혼자였다면 정말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게임 캐릭터일지라도 이런 곳, 이런 때에 유일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상대는 유원뿐이었으니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은 어색하지 않게 느껴져서 발걸음이 아까보다 빨라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그래 보였다.
신발은 낯설지만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고 아까 내가 급하게 나왔던 복도가 보이면서 벽으로 보나, 바닥으로 보나 아까와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액자부터가 이미 떠 있었으니까.
그걸 본 순간,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건 뭔가 이상하다는 거였다. 이질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내가 여태 생각한 꿈이라는 느낌에 너무나도 걸맞은 풍경이었지만, 그랬기에 담담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익숙해지는 걸까.
왜 게임에서는 기껏해야 공중에 떠 있는 액자를 피해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또 어쩌면 이걸 위험하다고 느끼면 더 위험한 게 나올 수도 있을 테니 나는 적어도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척이라도 해야 할까 잠깐 고민이 됐다.
하지만 액자는 원래 있던 곳에서도 크게 벗어난 상태였고 나는 이미 가야 할 방이 보여서 그런지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는 저 방으로 갈 거야.”
계단 위로 있으면 바로 보이는 A 방과는 달리 꽤 거리가 있는 방, 서재도 아니고 그저, 다트나 당구대같이 오락거리들이 있는 방이었다.
하지만 그 방에 다른 단서가 존재했다. 원래라면 안에 있던 일기가 밖에 있는 확장판에서만 갈 수 있는 곳에서 나온 거나 위층에도 순서와 상관없이 단서를 얻었으니 이번 역시 어떤 변수가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크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액자 정도는, 특히나 이런 게임에서는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쉬운 건 몰라도 무사히 자리에서 벗어나 방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달칵.
“여기에 있어?”
“아마도. 확실한 건 아니야.”
“그러면 찾아봐야 한다는 거네.”
“맞아.”
유원이 손쉽게 얘기하자 진행은 생각보다 더 빨랐다. 게다가 나는 이제 굳이 다른 데를 찾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아까 이걸 겪어봤다고 간접적으로 말할 때는 솔직히 불안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이 방은 어른들만의 공간이었는데 척 보기에도 비싼 양주가 장식장에 보이는 게 참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의 비싸 보이는 식기들도 그랬지만 여기도 정말 게임이 아니라 꼭 진짜 같아 보였으니까.
“술이나 마실래?”
“뭐?”
“농담이야.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술을 마시면 좋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음…….”
나는 순간 입이 바로 다물어졌다. 다음 단서가 바로 술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유원은 금세 눈치챘다.
“혹시 술 안에 그게 있는 거야?”
“…맞아.”
긍정하는 내 말에 유원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술들이 다들 겉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니까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건 납득됐다.
실제로 힌트는 병 안에 있는 내용물이 비워져야 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 마시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
“어. 다른 컵에 따르거나 버리면 되니까.”
다행히 귀신은 냄새를 맡지 못한다. 하지만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다른 걸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술을 꺼내고 그 안에 내용물을 옮기거나 바닥에 떨어뜨리면 그 소리로 어떤 여파가 생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걸 말했더니 유원은 그러면 무슨 방법이 있냐고 물었다. 안 된다면 같이 생각해 보자고도.
“방법은 없지 않아. 부적을 붙여놓는 거지.”
“부적?”
“그래.”
부적, 흔히들 귀신 쫓는다는 부적이 이런 게임에서 아예 없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실제로 부적이 없어도 귀신을 봉인하는 게임도 있긴 했으니까.
“부적은 어떻게 구하는데?”
“이미 있어.”
“있다고?”
“그래. 나한테 있어.”
부적을 꺼내 보였다. 사실 나도 다른 걸 생각하느냐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주머니 안에는 역시나 내가 생각한 노란 부적이 있었다.
예전부터 갖고 있던 부적이.
애초에 플레이어인 반장 캐릭터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점 때문에 A와의 연결점이 생겼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고 그건 부적의 영향이 컸다.
물론 다른 경우라도 A 역시 부적을 갖고 있었다. 단지 여기에는 없을 만한 이유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잘 들어. 이 부적을 붙이면 귀신이 오지 않을 거야.”
“좋은 일이네.”
“좋지. 근데 떼어내면 귀신이 바로 몰려든다는 게 문제지.”
“그러면…….”
“A가 여기에 남긴 건 하나 더 있을 거야. 우리는 이번에 찾을 걸 찾은 다음에 다른 하나를 찾는 대신 귀신을 봉인할 만한 걸 찾아야 해.”
보통 부적이라는 건 자신을 귀신한테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귀신은 부적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는 게, 오히려 안 좋은 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부적이 있다는 건 사람이 있다는 뜻도 되니까.
안 그래도 저택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 하는 귀신들에게 부적을 붙인 이들은 방해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잘 노려지기도 했는데 정말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까 부적이 버텨내는 동안 우리는 많이 생각해야 해.”
작전은 간단했다. 거울 봉인, 지하에 있는 거울에 귀신을 봉인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그 거울에는 피를 특유 문양으로 그려야 하고 그러려면 컴퓨터를 켜서 그 모양을 제대로 기억해야 했다.
그러니 한 사람은 컴퓨터가 있던 방으로 가고 다른 한 사람은 적당히 귀신들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말은 잘하지, 실제로 작전을 실행하기에는 많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다.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데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게 잘 안 되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어서 일단 있는 그대로,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유원 역시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스스로 결론을 낸 것 같았다.
“내가 귀신들 시선을 끌게.”
“네가?”
“그래. 너는 겪어봤다고 하니까. 아무래도 나보다 더 많이 본 만큼 잘 그리겠지.”
이상한 믿음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얼마 봤다고 저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나의 뭘 믿고?”
“내가 아는 널 믿고.”
유원이 나를 향해 짙게 미소 지었다. 어쩐지 그 표정이 묘한 것 같아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려고 하면서 양주 외에도 와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꺼냈다.
당연하게도 목적이 있는 와인을.
“이게 네가 말했던 와인이구나.”
“그래.”
와인에서는 각자 다른 디자인이 보인다. 특히 여기도 그랬다. 무슨 영어 이름 같은 게 있는데 게임에서는 ‘비싼 와인’ 정도로만 써 있어서 몰랐는데 이거 아마 전에 우연히 게임 분석 글에서 이렇게 생겼던 게 분명 거의 천만 원대의 가격이라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침이 넘어갔다.
이걸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꿈이라도 비싼 걸 함부로 하기에는 좀 그랬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유원은 어느새 코르크 따개를 가져와서는 물었다.
“열까?”
내 눈치를 살피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역시 비싼 것보다는 사람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와인 뚜껑이 열렸다.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막상 여니 유원 역시도 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연 건 도로 물릴 수도 없고. 나는 그사이 와인 잔들을 가져오다가 물통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안에 와인을 어느 정도 채워 넣은 다음 안을 살폈다.
“꺼낸 거야?”
“아직. 잠깐… 아, 됐다.”
아무래도 안쪽에 있었던 모양이라 꺼내 보니까 열쇠가 있었다. 열쇠는 아마 다음 장소로 갈 수 있는, 필요한 열쇠.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가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애초에 유원 역시도 그 방은 그냥 지나쳤으니까.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그 점이 정말로 게임 같아서 그때는 조금 섬뜩했는데 지금 와서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침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
그래서 열쇠에 시선을 준 그를 보며 물었다.
“이거 뭔지 알아?”
“뭔데?”
“우리가 가 보지 않은 방 열쇠.”
가 보지 않은 방, 나는 일부러 말을 그렇게 했다.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 ‘방’이 정말 게임 시스템 같은 반응을 하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런 내 의도를 여전히 모르는지, 유원은 열쇠를 보며 흥미를 갖던 표정을 뒤로 한 채로 어딘가 열심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안 가 본 방이면… 위층에 있어?”
“위? 아니.”
“아니면 문에 들어갔을 때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방?”
“…그 방 맞아.”
적어도 인식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방은… 예전부터 가지 말라는 방이었거든.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모른 척을 해야 했어. 아마 그래서 버릇이 됐었나 봐. 이런 때까지 그러면 안 됐는데.”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담은 채로 말했다. 원래 이 부분은 게임상에서도 딱히 보이지 않은 설정이었다. 실제로 유원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 방에 닿을 때는 아무런 대사나 설명도 나타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오류인가 싶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왜냐면 유원과는 달리 반장은 여기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거기 들어가는 거 괜찮은 거야?”
안 괜찮으니 모르는 척하지 않았냐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는 걱정이 담긴 말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어쩌면 유원의 답은 예상한 것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애초에 외면한 게 이런 결과를 부른 거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제라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외면이라는 것은 A에 대한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 캐릭터들 자체가 A에 대한 감정으로 움직이는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같이 가줄래?”
원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유원은 어색한 미소를 달며 말했다.
“당연하지.”
나 역시 웃었다. 웃는 표정이 어떨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냥 그러고 싶었으니까.
* * *
우리는 바로 가지는 않기로 했다. 나름대로 준비가 필요했으니까. 작전은 아까 말한 대로 한 명은 귀신을 유인하고 한 명은 봉인을 하기로 했지만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까지 나오는데 이게 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아까처럼 무언가가 움직이는, 끼이익 하고 소리가 나는 게 정말 한순간만 잘못하면 위험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나는 놀랐다.
다르게 말하면 미칠 것 같았다.
그냥 겉만 멀쩡한 내 모습은 전혀 떨리는 기색이 없지만 그래서 더 이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몸이 정말 내 뜻대로 제대로 안 움직일 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생각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복도를 어느 방향으로 갈지, 그 방에 가면 바로 문을 여는 준비랑 안 될 때를 대비한 것들에 관해 얘기했다. 귀신에 관해서는 내 쪽이 더 잘 알 테니까 이것저것 말해 줬는데 솔직히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말을 들을 것 같기도 해서 처음에는 좀 걱정했다.
그저 앞서나간 생각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유원은 잘 들어 줘서 그런지 이것저것 많이 말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슬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제 갈까?”
“그래.”
앉아서 이것저것 말할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서서 문이 있는 데까지 왔다. 그래도 순간 멈칫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문을 여는 순간 귀신이 나올 테니까.
“내가 먼저 열어야지.”
그 와중에 유원은 내 실수를 눈치채고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속삭이는 듯이 뒤에 있다가 단숨에 앞으로 나와 내 손을 잡고 천천히 떼다가 왠지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껴서 나도 모르게 쳐다봤나 보다.
“조금 있으면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좀 무서워서.”
하긴, 안 그래도 유원은 귀신들을 유인하는 역할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 역시도 잠시 동안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잡은 손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
마주 잡은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잠깐이었지만 나도 좀 편해진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해도 어쨌든 여기서 힘든 건 나만이 아니라는 생각 역시도 느껴져서 나는 잠시의 안락함의 기대다가도 얼마 안 가 손을 뗐다. 그래서인지 유원이 나를 보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금방 눈치챈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문을 열겠다고 했고 나는 부적을 잡았다.
달칵.
그리고 문이 열렸다.
당연히 유원이 앞서 있었고 나는 부적을 붙잡으며 유원이 가는 것을 지켜보고 몸을 움직였다. 언제, 어디서 귀신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탁, 탁, 탁.
그사이 유원은 위층까지 올라갔다. 말소리가 조금씩 들린 것 같지만 어쨌건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거겠지 싶어 나도 최대한 주위를 살피면서 목표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밑에 층, 문양이 있을 만한 곳으로.
사실 게임을 플레이해서 어느 정도 기억하기는 했지만 지금 이곳은 게임과는 꽤 달라서 대충이라도 확인이 필요해서 나는 바로 아까 간, 바로 열리던 오른쪽 방으로 갔다.
제발 뭐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좀 꺼림칙하긴 해도 그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아직 부적도 있었고 나는 멀쩡했으니까.
게다가 이건 내가 아는 컴퓨터, A가 만약을 대비해 만들어놓은 예비용 컴퓨터로 지하에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이 컴퓨터도 꽤 쓴, 먼지가 별로 안 쌓인 것 같은 흔적이 보였고 그 생각 그대로 전원 버튼을 누르자 금방 화면이 보였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화면이 조금 달랐다.
이게 뭐지?
폴더, 새 폴더가 생겼다.
제목은 ‘나’,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폴더가 이상하게 눈길을 끌었다.
클릭해 봐야 하나.
전에 안 가 봤던 곳에서 일기장을 찾았으니 어쩌면 여기에도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얼마 안 가 그 폴더를 클릭하고 안을 확인했다.
안에는 또 메모장 파일 하나뿐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클릭했다.
[조심해.]
하지만 한 문장밖에 없었다. 겨우 이게 다라니, 어이가 없다고 생각할 즈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쿵!
마치 벽을 두드리는 소리, 그것도 금방 들어올 것만 같은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쿵! 쿵!
하지만 두드리는 소리만 커질 뿐이다. 이대로 있다간 다른 귀신들도 여기로 오는 거 아닐까 싶어서 나는 서둘러서 주변의 가구들, 책장들을 문이 있는 쪽으로 옮겨서 귀신이 들어오지 않게 했고 그사이에 나는 다른 폴더를 찾았다.
주로 많이들 애용하는 내 컴퓨터에 있는 C 드라이브, 그중에서도 ‘귀접’ 폴더를 찾았다. 이 폴더의 경우에는 게임에도 있긴 했지만 위치가 달라져서 솔직히 게임이 아니고 진짜 같아 누가 옮겨놓은 느낌이라 굉장히 찜찜하긴 해도 어쨌든 귀신과 관련 있는 폴더라 바로 열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메모장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사이트 주소가 보였다.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바로 사이트 주소를 복사해서 인터넷에 붙여 넣고 사이트가 뜨는 즉시 바로 내가 생각했던 그 항목에 있는 문양을 눌렀다.
“…찾았다.”
나는 바로 그 문양을 기억해둬야 했다. 종이는 대강 일기장이 있으니까 괜찮았고 A도 고등학생이니 필기구 정도는 있어서 거기에 있던 펜 하나를 집어 나는 빠르게 문양을 그려 넣고 바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바로 의자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책장을 치웠다.
귀신이 문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잡아야 할 테니까.
달칵!
문을 바로 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안일했다.
“…여기, 있었구나?”
귀신이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건 나였다.
왜 문을 열고 원래는 보였어야 할 귀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지, 내 입이 내가 원하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는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귀신이 내 몸에 들어왔으니까.
귀신은 물건 같은 걸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인간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닿기 어려운, 또 다른 영혼의 존재가 사람을 함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은 완전 막장일 테니까.
게임이라 어느 정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부여한다고 쳐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존재해야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
게임은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그러니 내가 이 상태가 된 건 플레이어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게임 캐릭터인 내 몸의 설정상 귀신이 잘 들러붙는 체질이라는 게, 잘 보이는 만큼 귀신의 한기도 잘 느끼는, 귀신과 궁합이 좋은 몸이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육체가 귀신이 들러붙기 좋은 육체였고 내 몸은 의지는 내 건데 움직이는 건 귀신이 하는 게 느껴지는 그런 소름 끼치는 감각이 몸에서 느껴졌다.
내 의지로만 움직일 수 없는 감각이.
이건 내 거야.
마치 속삭이는 듯이, 그렇게 말한 목소리는 나의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가 싶더니 내 안의 부적을 찢기 시작했다.
찌익, 찌익, 소리를 내며 수차례 찢어냈다. 급기야 내가 방금 그린 문양까지 없애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만은 없으면 안 됐다.
“으…….”
겨우 한 마디, 하지만 나는 이로써 나 역시도 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은 그냥 이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내 의지로 움직이는 거라 그럴까, 아까 놀라서 무기력했던 것과는 다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움직이고 싶다고, 팔이 안 된다면 손이라도, 손이 안 된다면 손가락이라고, 이러면서.
꿈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보는 건 여기였고,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으니까.
게다가 부적과는 다르게 문양은 내가 직접 그린 거였다. 내가 한 게 개고생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흔히들 말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 이상 움직이는 건 어려웠다. 손가락, 손끝이라도 움직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특히 귀신이 그 부분에 엄청난 힘을 주고 있어서 일기장에는 어느새 손가락 닿았다. 그것도 일기장을 금방이라도 찢을 듯이, 끝부분에.
찌익.
그리고 조금 찢어질 때,
쿵!
넘어졌다.
예상대로였다.
사실은 어느 정도 도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입이 움직이고 손은 움직이지 않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나는 발에 시도했고 그건 꽤 성공적인 일이었다.
단지 그 후에 보이는 귀신들이 끔찍했을 뿐이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몸은 마치 렉이라도 걸린 듯, 잘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귀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지만 문제가 너무 많아서 이 이상으로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예민했다.
예민한 것은 다시 말하면 다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라 어떨 때는 좋고 어떨 때는 나빴지만 지금 이 순간, 좋아질 만한 요소는 있었다.
“일아!”
일, 정말로 게임 같은 이름이었지만 잘도 부르는 유원을 보며 나는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진심 같은 목소리로, 걱정된다는 듯이 누군가가 봐주는 건 이게 진짜든 가짜든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으니까.
“조금만 참아. 귀신들 내쫓을 테니까.”
나는 아직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원이 내 몸에 부적을 댄 순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유원이 빤히 바라본 게 괜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기절할까 했지만.
“…근데 여긴… 아, 어떻게 온 거야?”
“아… 그거라면 아까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길래 설마 싶어서 와본 거야.”
“거기까지 들렸어?”
여기부터 2층까지의 거리는 꽤 된다. 그래서 물었더니 유원이 왠지 당황한 기세로 이쪽을 보다가 바깥쪽을 보며 말했다.
“일단 문도 열려 있었고, 또, 내가 계단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데에 있지는 않았거든.”
“하지만 위에까지 들리기에는…….”
“네가 밑에서 거울 찾을 줄 알았을까 싶기도 해서.”
“하지만 네가 여기 있으면…….”
“귀신들이 오겠지. 하지만 네가 없으면 내가 하는 일은 소용없으니까.”
내가 없으면 소용없다니. 뉘앙스가 이상한 대화였다. 꼭 내가 유원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같았으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 묻지는 못했다.
“…너 피 나.”
“나?”
“그래. 무릎에.”
“…아.”
나는 그제야 내 양쪽 무릎에 얼얼함이 느껴졌다. 하긴 넘어졌으니까. 그때는 귀신 때문에 몸을 신경 쓸 여지도 없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몸이라 그런지 따끔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긴. 나보고는 다치지 말라고 했으면서 네가 다치면 어떻게 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한다. 하지만 그게 걱정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 있는 사람은 원래 말이 없으니까.
그래서 유원이 먼저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치료는 나중에 하자.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래.”
“걸을 수 있겠어?”
물끄러미 내 무릎을 보며 묻는 눈에 괜히 더 아픈 것 같은 나는 그래도 이 정도야 괜찮다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 있어.”
그저 넘어졌을 뿐이니까.
그래서 멀쩡하다는 의미로 바로 발을 움직여보았다.
탁.
“거봐.”
누군가에게 기대게 되는 정도가 썩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걸을 수 있어.”
“…거짓말.”
유원의 말에 나는 들켰나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싶기도 했다. 둘이 같이 원하는 대로 가려면 걸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유원이 나를 따라온 순간부터 누가 봐도 참 게임과 다르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면 업어 줄까?”
“…뭐?”
“업어 줄게.”
등을 대고 앉는 자세를 취하며 나한테 말한다. 당연히 나는 유원을 보고 업힐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 때문에 등을 다쳤으니까. 아무리 치료를 했다고 해도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내 무게가 더 해지면 상처를 자극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 미쳤어? 등이 아직 나은 것도 아니면서…….”
“등이 문제야?”
“그래.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넘어진 것뿐인데 너한테 업혀서 피해 주고 싶지는 않아.”
“…넘어진 것뿐이라고?”
그때, 유원의 표정은 무서웠다. 언제도 보지 못했던 표정, 늘 살가웠던 표정이 한순간에 싸늘해지자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에는 말했다.
“맞아. 네 상처가 더 크잖아. 나는 우리 둘 다 괜찮은 상태였으면 좋겠어.”
“…그건 맞아. 미안해.”
“아니야. 나야말로.”
우리는 결국 또 사과를 했다. 그 증거로 서로 웃었으니까. 그냥 이럴 때는 왠지 웃음이 잘 나왔다. 게임이라는 세상이라 그런지, 예전과는 다르게… 전에는 생각해 보니 그렇게 잘 안 웃었던 것 같다.
왜 그랬지.
잘 생각이 안 난다.
그보다는 갑자기 가까워진 유원 때문에 다시 생각이 멀어졌지만.
“그럼 우리 화해한 거지?”
“어? 어.”
“사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거든.”
“무슨 생… 읏!”
묻기도 전에 내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왜냐하면 내 다리가 공중으로 떠올랐으니까. 물론 이건 비과학적인 요소가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내 등이 있는 부근과 허벅지와 다리 부근 그 어디쯤을 붙잡은 자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등이 아닌 앞으로 사람을 잡는, 그 흔한 안기 자세.
“꽉 붙잡아.”
“…붙잡고 있었어.”
떨어질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지만.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유원의 얼굴이 어쩐지 환했다.
“잘했어. 그럼 올라갈까?”
“뭐?”
내가 묻기도 전에 유원은 체력이 얼마나 게임 캐릭터같이 좋은지는 몰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나를 안은 채로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뒤를 볼 수밖에 없었다.
거울은 지하실에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내가 유원을 말리기에는 뒤따라오는 귀신들이 너무 험악해서 심장이 뛰었다.
그래, 분명 그것 때문에 뛰는 거겠지.
‘좋아해.’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한동안 유원 외에 인간을 본 적이 없어서, 이상한 소리가 뒤섞이기도 했고 내 상태가 멀쩡한 상태도 아니니 충분히 헛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꿋꿋하게 앞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유원이 살짝 뒤를 보며 문을 닫을 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 * *
어떻게 열쇠를 꺼내서 문을 열었는지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야 급한 데다가 정신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안으로 무사히 들어왔고, 안으로 들어와서 남은 부적을 쓰며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유원을 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밖에 또 나가야 하는데 벌써 부적을 쓰면…….”
“괜찮아. 봉인에 필요한 건 다 가져왔잖아.”
“거울은 안 가져왔어.”
부적은 A가 숨겼던 걸 가져온 거라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서 부적을 다 쓰지는 않았기도 하고, 이렇게 쓸 정도로 여분을 많이 남겨놓지는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 내가 혹시 몰라서 위치를 알려 주기도 했고.
하지만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내 남은 얼마 안 되는 부적들도 찢어져 버렸다. 원래 이 부적들은 다음 장소에서 주로 쓰던 거라 지금 다 쓰면 희망이 없지만 이 상황만큼 더 희망이 없을 수가 있을까.
결론적으로 거울이 없는 이 상황에 뛰면서 거울을 찾으면서, 또 뛰고 봉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깨진 거울 외에 충분히 봉인 가능한 거울을 찾은 건 쉽지 않아서 나는 솔직히 지금 상태로는 진짜 되감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게 게임이면 바로 멈춰서 저장해놓은 게임을 다시 누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어떻게 하지…….”
“괜찮아.”
“괜찮긴 무슨…….”
“거울은 여기에 있으니까.”
“뭐?”
“거울 정도야, 이 방에도 있으니까.”
유원이, 확신하듯 말했다. 이 방에 거울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말도 안…….”
“왜 말도 안 돼?”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물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이 달랐으니까.
이미 내가 아는 게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안다. 특히 기억도 안 나는 확장판이라면, 그게 아니라고 해도 몇 시간 동안 겪었던 걸 생각해도 절대 내가 알던 것들과는 완전히 똑같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순간 놀랐지만, 유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유원이 나에 대해 조금은 눈치챈 것처럼.
“혹시 너 여기도 와 봤어?”
내가 말한 ‘기억’에 관한 질문이었다. 하긴 내가 이미 저택에 와봤다는 기억이 있다는 말을 했으니 예지몽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괜히 물어본 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나는 바로 긍정했다.
“…와 봤어.”
‘이상한 저택’ 안은 애초에 확장판이 아니라고 해도 다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확장판이 나왔다고 했을 때는 좀 놀라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곳에 왔다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거울은 내가 알던 거랑은 달라.”
“그래?”
“그래. 전에 말했듯이 나는 경험한 기억만 있다고 했지, 그게 완전히 진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실제와는 다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유원에게 말했었다. 아마 그렇다거나, 확신하기 어렵다거나 하는 말들을 전에 굳이 한 이유도 그랬다.
나 역시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확인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렇구나.”
그 말에 유원이 웃었다.
나는 그게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유원이 잠시만 기다려보라면서 근처를 움직였다.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 방 안은 적당히 소파와 벽난로, 그리고 액자 같은 것들이 보였다.
다른 방들처럼 전에 컴퓨터 화면에서 본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것들이.
단 한 가지만을 빼고는.
“이건…….”
“옛날에 있던 장식장이야. 이건 아직도 여기 있었네.”
“…그렇구나.”
지하에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게, 여기 이 방에 있다는 기억은 없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옆에 있던 유원이 그런 내 태도가 이상했는지, 나를 보며 묻지도 않고 말했다.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이건 네 기억에는 없는 거구나.”
“맞아.”
물론 여태 게임으로 했던 것과는 다른 게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그냥 게임이면 몰라도 어쨌건 이 게임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부터도 그랬지만 다른 징조라는 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고, 또 그만큼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는 내가 있었다.
“거울은 어디 있어?”
“여기.”
마치 준비되어 있다는 듯이 장식장에서 상자를 바로 찾아낸 유원은 보여 주다가 먼지가 조금 날려서 같이 콜록거리다가 결국에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환기라도 시켜야겠다면서 말했고, 나 역시 청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정도로 먼지를 날리는 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창문을 열고 상자에 있는 먼지를 대강 치웠다.
그리고 안을 열어 보니 정말로 거울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새것처럼 깨끗한 거울이.
“사실 이 거울을 제대로 보는 건 오랜만이야.”
“…….”
“…너도 봤었구나.”
나는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유원은 이미 웃고 있었다. 마치 내가 왜 그런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 말 그대로 나는 거울을 본 적이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청동 거울’이었다.
게임에서는 ‘녹색 거울’이라고 써 있기도 했고 컴퓨터로 봤을 때는 그냥 초록색 거울인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흔히들 역사책에서도 보였던 그런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런 거울을 온전한 모습으로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인 것도 있었지만, 유원의 말대로 내 기억과 맞아떨어져서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왜 이게 여기 있는 걸까 하고.
원래는 이 장식장은 밑에 있어야 했다. 실제로 지하에 장식장이 동일하게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거기에 있던 게 여기에 오게 되면서 그 자리에 다른 장식장이 온 거면 과연 왜 바뀐 걸까.
왜 굳이 여기에 놔뒀어야 할까.
확장판이라고 해도 이걸 여기까지 달라지게 할 필요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밖에는 아직 귀신이 있었음을.
끼이익.
벅벅 긁는 소리, 바닥이 움직이는 소리나 특유의 귀신 웃음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제야 내가 어떤 상황인지, 뭘 하려고 했는지 상기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시간을 낭비했는지도.
“젠장…….”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유원이 물었다. 사실 유원에게도 여러 가지로 물어볼 게 많았지만, 반대로 물음 받을 것도 많다는 것도 많았지만 그래서 여태 많은 걸 넘겼지만 어쩌면 말해야 할 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비록 지금은 아니더라도.
“아니. 그보다 뾰족한 거 있어?”
“뾰족한 거?”
“그래. 피로 문양을 그릴 거야.”
나에게는 찢어졌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일기장과 내가 그린 문양이 있는 종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걸 꺼내고 봤는데 유원이 자신의 손을 깨물고 있었다.
“너 뭐 하는 짓……!”
“…네가 다치는 건 싫어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게다가 내가 뭔가 더 묻기 전에 유원은 또 선수를 쳐 버렸다.
“시간 없잖아.”
그게 더 추궁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는 건 왜일까. 하지만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유원의 손가락으로 피 문양을 잘 만들 수 있게 종이를 꺼내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
“정말?”
“그래. 네가 이렇게 잘 알아볼 수 있게 그려 줬잖아. 그러니까 너는 망을 봐 줬으면 좋겠어.”
“이게 더 중요해. 그리고 너 손 그렇게 세게 깨물면 어떻게 해?”
유원의 칭찬인지 뭔지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은 여전히 큰 변화는 없겠지. 그만큼 다쳐서 여전히 손에 피를 묻힌 누군가는 내 심정을 모르는지 괜히 속 긁는 말을 잘도 했다.
“그래서 걱정돼?”
“그건…….”
“뾰족한 건 가져오고 싶지 않았어. 네가 언제 그걸로 다치게 될지 모르니까.”
웃으면서 말했지만 순간적으로 보였던 표정은 나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마치 내가 다치면 자기가 더 다칠 것 같다는 표정. 하지만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결국에는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귀신 때문에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고.
내가 아는 유원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니까.
문제를 풀려고 하던 때처럼 나는 어려운 것을 굳이 바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아서 쉬운 걸 택했다.
“그래도 네가 다치는 게 좋지는 않아.”
안 그래도 다친 유원이, 굳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의도 과하면 부담스러웠다. 양심이 없다면 퍼주는 대로 좋아했겠지만 이렇게까지, 이런 모습까지 보면서 좋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과연 유원이 제대로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그리고 있는 채로, 거울에 문양을 그리느냐고 무슨 표정을 짓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으니까.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제외하고는.
“난 괜찮아. 그리고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조심할 생각이었어. 지금은 단지 필요했던 것뿐이고. 그리고 봐, 벌써 이만큼 그렸잖아?”
유원이 살짝 뒤돌며 문양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문양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고 내가 문양을 볼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동그란 안에 동양적인, 짙은 붉은색으로 그려진 무늬로.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역시 얼마 없는 부적으로는 힘들었던 모양인지 어느새 문이 조금씩 덜컹거리고 있었다.
그래, 아직은 그 정도였다.
그러니 귀신들이 문을 뜯고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우선 이걸 문 있는 쪽으로 옮겨야 해. 빛도… 아.”
“왜 그래?”
“해가 지고 있으니까. 빛은…….”
게임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보다 빠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하늘이 이미 어두워졌으니까. 그래서 보통 게임에서는 부적이 여분이 있는 이유가 이런 데에 있었다.
해가 지면 달빛을 이용하니까.
2층이 굳이 있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인공적인 빛이라면 당장이라도 이용해야 했지만 귀신은 무조건 ‘자연적인’ 빛으로 없애야 해서 달을 이용하는 다른 방식으로 깨려고 할 때 필요한 게 바로 A의 방에 있던 부적이었다.
실제로 원래 그때쯤에 유원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내가 유원과 함께 이 방에 있었고 부적도 없는 데다가 곧 있으면 귀신이 이 방에 들어올 텐데 그러면 제일 위험한 건 나였다.
부적의 힘이 약해진다면 귀신이 보이는 데다가 금방 반응할 수 있는 민감한 체질인 내 몸이 바로 표적이 될 테니까.
그 때문에 나는 매우 불안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괜찮을 거야.”
“하지만…….”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지?”
“있긴 하지만… 안 될 거야.”
“되는지 안 되는지는 봐야 아는 거잖아. 말해 주는 것도 안 돼?”
다정하게 닿는 눈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눈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시선이 느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계속 그 자리에서, 내 쪽으로 몸을 향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 역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위로 가면… 그러면 돼.”
“위에 뭐가 있어?”
“달빛, 거울은 이미 완성됐으니까 이 거울에 달빛이 비치게 해서 반사하면 귀신들이 사라질 거야.”
“그걸로 사라진다고?”
“…그래.”
차마 게임이라서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이게 소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이라면, 이게 소설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부정적이지 않을 거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유원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생각보다 단순하게 답했다.
“그러면 간단하네.”
“뭐?”
“달빛만 받으면 된다며? 밖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귀신들이 밖에도 따라올 텐데.”
사실 게임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야 당연히 게임이니까, 저택에서는 저택 밖은 문을 통하지 않는 이상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또 여기에서는 아니지만 다른 데서는 밖에서도 귀신이 있는 걸 플레이해서 알고 있었다. 물론 여기가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위험 요소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못 들어와.”
“…왜?”
왜 그렇게 확신할까. 내가 쳐다보니, 유원이 조금은 낯선 웃음을 짓다가도 전에 봤던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어차피 우리 때문에 여기로 오려고 하는 거잖아. 잘만 유인하면 귀신들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천장을 무너뜨릴 수도 없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틀린 거 하나 없는 말이었고, 여기에서 귀신들한테 잡힌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 그런지 나는 결국 유원의 말대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바깥쪽을 슬쩍 보며 말했다.
“창문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겠지? 일단 창문이나 제대로 열리는지 확인해 보자. 열리면 바로 나가는 거야. 거울은 창문이 열린 뒤에 바로 이쪽으로 오는 귀신들한테 쓸 거고. 그러니까 달빛이 비치는 방향을 제대로 확인하자.”
“알았어.”
확실히 혼자 하는 것보다 유원이 있으니 더 편해졌다. 말을 듣고 밖을 보니 달빛이 이쪽으로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나는 창문을 열려고 보니 진짜로 열렸다.
정말로.
이렇게 쉽게 열리나 싶을 정도라서 그런지 놀라기도 잠시,
끼기긱.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쿵쿵, 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서 헛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어 우리는 바로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유원이 어째서인지 나를 먼저 보냈다.
“네가 먼저 나가.”
“그래도.”
“어서. 너보다는 내가 여기에 대해 더 잘 알아. 그리고 내가 해 봤자 거울을 들고 가는 것뿐이잖아.”
“하지만 너 다쳤잖아.”
그래, 유원은 다쳤다. 손가락에 여전히 핏자국이 생생했으니까. 그러니 여전히 유원이 굽힐 생각을 보이지 않자, 나는 결국 한숨을 쉬고는 그동안 급해서 이제야 생각난, 이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손이나 이리 대.”
“알았어.”
“가만 보면 너 이럴 때만 말 잘 듣는 거 알아?”
“그랬나?”
“그랬어.”
사실 유원으로서는 상냥해서, 이게 유원의 성격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면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원은 A를 위해서 원래 캐릭터인 나에게 A의 방에 바로 가지는 못하게 했던 캐릭터였으니까.
지금의 이런 모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상냥함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니 이건 내 나름의 보답이기도 했다. 유원의 상처가 있는 곳을 일단 대충 닦아서 천으로 감싸는, 별거 아닌 행위가.
“다음에는 다치지 마. 이러면 나 확 네 앞에서 다쳐 버릴 테니까.”
“…그건 싫은데.”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알았어.”
과연 알아들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다음에 진짜 넘어지는 척이라도 하면 유원도 좀 생각은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웬만하면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나 진짜 먼저 나갈 테니까 만에 하나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불러.”
“너도 달빛이 비치는 데 제대로 알려 주고.”
“알았어.”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아까 연 창문을 이번에는 활짝 열어서 움직였다. 그러고는 바로 하늘을 보다가 곤란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거울이 있어야 달빛이 어디쯤에 잘 오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유원이 있는 방향으로 다시 가려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쿵!
하지만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순간 거울을 품에 안은 채로 나오는 유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아, 하마터면 잘못될 뻔했네.”
“괜찮아?”
내가 바로 밖으로 나온 유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나를 보며 안심이 됐는지 아까보다 나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거울도 무사하고. 근데 달빛은?”
“그게… 거울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해 봐야지.”
내 말에 바로 대답하며 거울을 든 유원이 달빛을 순식간에 찾아내고는 방이 보이는, 창문 안쪽을 향해 빛을 반사시켰다. 물론 보통 달빛이 이 정도까지 해 줄 수 있는 건 아닐 테지만 게임이니까.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귓가에 들리는 음성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끼히히히!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낸 듯한 음성, 기괴하게 얽히는 검은 그림자들은 게임으로만 했다면 결코 느껴지지 못할 소름 끼치는 느낌이 내 몸을 붙잡듯이, 나는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부를 때까지.
“일아.”
“…….”
“다시 들어갈까?”
“아니.”
나는 바로 거절했다. 거북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게다가 이상하게 타는 냄새까지 났다.
“그러면 아까 갔던 건물이라도 갈까? 거긴 귀신 없었잖아.”
“…그래.”
A의 일기장이 발견된 곳, 여기와는 그렇게까지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바깥보다야 나을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조금 찝찝했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어 내 답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바로 걸었고 한동안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질 않았다.
전혀, 한 마디도.
왜냐하면 힘들었으니까.
나는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쳤을지도 모르고, 그건 유원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건물 안에, 다행인지 보이는 담요를 보고는 대충 주변에 책 같은 걸 두고 앉은 상태로라도 자기로 했다.
하지만 잠이 쉽게 오질 않았다.
애초에 여기는 내가 아는 현실이 아니었으니까.
“잠이 안 와?”
“…어.”
“그래도 너 오늘 힘들어 보였는데.”
“그러게.”
“그럼 얘기나 할까?”
“무슨 얘기?”
내가 돌아봤다. 그러자 유원이 웃으며 말했다. 글쎄라고 하면서.
“너에 관해서?”
“…별로 할 말은 없는데. 그보다 너는 어때?”
순간 솔직히 놀랐다. 나는 내 몸, 이 캐릭터에 대해서 게임에 관한 것 외에는 별로 아는 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유원의 이야기로, 다른 방향으로 넘기려 하자 유원이 나를 잠시 보더니 다행인지, 금세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아까 왜?”
“마지막으로 나온 우리 방 기억나?”
“방? 그건 왜?”
마지막 방이 왜 나올까 싶었다. 하지만 유원은 생각보다 진지한 얘기를 꺼냈다.
“사실 그 방, 지금 생각해 보니까 우리 때문에 잠가둔 것 같아서.”
“너희 때문에?”
“그래. 내가 아까 어른들은 귀신을 안 믿을 거라고 했지만 어쩌면 믿었을지도 몰라. 단지 내가 그, 어른들을 안 믿었던 것뿐일지도 모르고.”
말을 들으니 생각보다 그럴듯했다. 아니,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A 역시도 나름대로 존중해 줬으니까.
단지 A와 유원 사이의 일들이나 가족들은 게임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어서 나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 실제로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갔으니까.
그저 검은 화면으로.
“지금은 어때.”
“어?”
“잠이 와?”
“잠? 글쎄…….”
왜 그런 걸 물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건… 이게 꿈이라면 졸릴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내 몸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래도 피곤한 것 같은데. 내 어깨에 기댈래?”
유원은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내 머리를 어깨에 가져다 댔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래서 그 뒤에 하는 말을 완전히 들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지금의 나로서는 들어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