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이상한 저택 (1) (2/28)

1. 이상한 저택 (1)

유원은 친절했다.

친절한 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이 이상했지만 어쩌면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척이나 침착하기 때문에.

원래의 내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한마디로 굳이 말하자면 이 성격은 ‘플레이어 1’의 성격이다. 아무래도 게임 설정상 게임을 시작하지 않으면 겁에 질리지 않아서 그러는지, 어쨌거나 공포로 하트가 깎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나는 이 표정일까, 혹은 이게 꿈이라면 언제 꾸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컵에 담겨 있던 밀크티는 아직도 반 이상 남아 있었다.

“무슨 고민 있어?”

“아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끈질기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까지 생각날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계의 분침이 조금 더 움직였을 때, 나는 그제야 뭐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일지도 모를 공간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여기에서 유일하게 물어볼 수 있는 상대에게 정보를 얻어야 했다.

전에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알아서 선택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선택지도 하트도 죄다 보이지 않는 현실 같은 꿈이었으니까.

“A는 어디에 있어?”

“글쎄. 나도 찾는 중이야.”

“그러면 넌 어디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가 볼 만한 곳을 같이 찾아볼까?”

유원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는 뜻이었지만 저 물음은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물음이기도 해서 나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이대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손을 잡았다.

“조금만 둘러보자.”

내가 잡은 손은 그냥 컴퓨터 화면으로 본 그래픽과는 역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적게 느껴진다고 해도 그게 두려움이 아니진 않을 테니까.

“그러면 어디부터 둘러볼까? 서재?”

“그래. 거기로 가자.”

원래는 A의 방에 먼저 가야 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알던 게임이 아니었고 무턱대고 남의 방에 가는 것은 손님으로서 좋은 자세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사람 같은 유원에게 굳이 캐묻게 두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일단 최대한 수상하지 않게 보이려고 했다.

꿈이든 아니든 어쨌든 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건 사실이니까.

“서재는 어느 쪽이야?”

“이쪽이야.”

이쪽이라며 말한 유원은 손을 놓는 법이 없었다. 마치 이 밖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 방을 나왔다.

복도는 생각보다 더 실감 나게 느껴졌다.

마냥 게임 같았던 짙은 갈색 바닥이나 노란빛을 띠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벽지, 무엇보다 곧 있으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사진과 그림들은 너무나 생생했다.

게다가 방 밖으로 나가면 왼쪽과 오른쪽을 보면 각자 앞이나 옆으로 쭉 뻗어 있는 복도는 게임대로 사각형같이 둘러싸여 있는, 때문에 기억하기 쉬운 복도로 우리는 왼쪽에 보이는 쭉 뻗어 있는 복도로 가서 그 끝에 바로 보이는 방, 서재 안으로 갔다.

달칵.

흠칫.

“왜 그래?”

“…아니야.”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착각이겠지 싶었다. 애초에 게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소리가 날 일은 없기 때문에.

있다고 해도 그저 바람 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방’이었다.

보통 사람이 사라지면, 게임에서는 그 사람의 방에 하나라도 단서가 나올 테니까. 물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에도 특별한 방이 있겠지만 이 게임은 단서를 순서대로 찾아야만 다음 단서가 보이는 식이라 아마 서재에는 아직 단서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거기는 다 찾아봤어?”

“…아니.”

“그럼 거기 보자.”

서재라고 해도 책꽂이들은 이상하게 놓여 있다. 벽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가운데에도 있는 책꽂이, 그리 넓지는 않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서재였기에 놓아 있는 거라지만 뭐랄까, 그냥 자료실 같았다.

나는 대충 봤던 게 티가 났는지 유원에게 대충 얼버무려서 결국 그가 가까이 오는 걸 방치했다. 그 결과로 유원은 내 팔과 그의 팔이 닿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왜?”

“여기에 있는 책도 보려고.”

“아, 이거?”

유원이 집은 책은 내 얼굴 앞쪽과 아슬아슬하게 닿을 수도 있는 칸에 있었다. 제목은 ‘할아버지의 보물찾기.’, 아무래도 게임이다 보니 별 이상한 것도 나오는데 이것도 그중에 하나였다. 나 역시도 플레이할 때 여기서 단서를 찾을 때 봤던 책 제목이었으므로.

덕분에 어느 정도 흥미가 갔다.

게다가 생각보다 그 흥미는 오래 이어질 듯싶었다.

“이거… 내용이 꽤 있어 보이네.”

“그렇겠지. 두께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

두께 얘기에 나는 약간의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내가 내용이 꽤 있어 보인다는 말도 그럴듯한 변명 같아 보이지는 않았으니 서로 피차일반이지만.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는 없었다.

내가 플레이했을 당시에는 [비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책에도 이런 식으로 내용이 적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책도 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빈 내용이었을 책들을, 페이지마다 가득한 내용이 적혀 있는 책이 된 것이 보여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다시 확인하려고 봤는데 역시 모두 안에 내용들이 꽉 차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문장의 나열 같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있다면 기승전결은 다 있었다.

꿈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이로써 게임과 다른 점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이게 무슨 소용이겠나 싶기도 한데 나는 아직도 내가 알던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로 이렇게 있으니까.

그러니 뭐라도 해야 했다.

“책에는 별다른 게 없어 보여.”

“나도. 여기 책꽂이에 꽂힌 책들에는 전부 없네.”

내 말에 호응하던 유원 역시도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였다. 사라진 친구에 대한 행방, 사라진 게 아닐지도 모를 친구의 행방을 그 누가 쉽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면 다른 데도 가 볼까?”

“어디로?”

“걔 방이라면… 어쩌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모험일지도 모른다. 본인 허락도 받지 않은 방, 이게 진짜 게임이라면 애초에 그 방부터 갔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니까.

“좋은 생각이야.”

유원이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 부정하지 않을까.

유원에게 A는 친척 동생이자 친구 같은 존재라는 설정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약간의 접점이 있는 같은 반 친구, 아니 친구라고 하기에도 모호하게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온 반장이니까 굳이 나에게 방을 보여 줄 필요는 없다.

실제로 플레이할 때 그가 내가 이 방에 들어가는 건 말렸으니까.

덕분에 시간 지연이 되면 귀신과 빠르게 정모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게임을 키보드와 원수진 것처럼 쪼들리게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원은 생각보다 쉽게 납득하고 같이 가자고까지 하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 이제 열까?”

“그래.”

유원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아마 조금 망설이는 모양으로, 나는 그런 부분에서 기이한 현실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손을 잡는 것마저도 이렇게 뚜렷한 감촉은 너무나 생생했으니까.

달칵.

그리고, 이제 열린 문 안에는 내가 예상한 구조의 방이 보였다. 문을 열었을 때 바로 보이는 건 오른쪽으로는 책상이 있고 왼쪽으로는 침대가 있었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책상 위에 컴퓨터까지 있는 게 똑같았다. 나는 그 풍경에 진짜 게임 실제 체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어서 결국 그쪽으로 먼저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켜 봐도 돼?”

“음, 개인 폴더만 열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개인 폴더?”

“잘은 모르겠지만 비밀로 하는 게 있더라고.”

보려고 했을 때 감추려고 해서 보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근데 설마 ‘직박구리’ 같은 현실적인 폴더가 있을 리는 없겠고 당연히 게임과 같은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임에서는 그냥 보고 내용만 슬쩍 확인했다는 것밖에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게다가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컴퓨터는 최신이 아니었지만 어차피 이런 게임들은 대체로 이런 컴퓨터였다.

모니터가 제법 두꺼운 컴퓨터.

그게 어쩌냐 싶기도 하지만 요즘 나오는 기계들과 비교하면 많이 오래된 게 느껴져서 신기하게 쳐다보던 나는 컴퓨터가 막상 켜지자 바로 문제의 ‘그’ 폴더를 찾기로 했다.

자고로 게임 세계에서는 때론 이런 게 힌트가 되기도 하니까.

“…찾았다.”

“뭘?”

아차, 나는 그제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굳었다. 하지만 의외로 유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폴더 그쪽 아니야.”

“뭐?”

“이쪽이야.”

나도 안다. 그런데 유원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끌며 화면을 가리켰다. 어쩐지 부쩍 가깝게 다가오면서.

“이쪽 누르면 그림 폴더가 나와.”

“…….”

“왜 그렇게 봐?”

아무래도 내가 티가 날 정도로 쳐다본 탓일까,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는 잘 모르는 사람이 친척의 개인 폴더를 여는데, 그것도 행방불명된 친척 때문에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왜 그것까지 알려 주려고 하는 걸까.

혼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데.

나는 그게 궁금했다.

“내가 그 폴더 열어 봐도 돼?”

“어차피 열어 볼 거 아니었어?”

“…….”

“사실 나도 여기에 A가 왜 사라졌는지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단서라도 알려 줄 것 같았거든.”

유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웃으며 어차피 그러지 않았더라도 찾아봤을 문제라며 나에게 말했다. 그게 나름의 격려인 걸 알지만, 실제로 그가 친절한 걸 알지만 왜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안 들어갈 거야?”

“…아니.”

들어갈 거다. 사실 유원이 그렇게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들어갔을 거였다. 내 컴퓨터에 드라이브 C에 있는 ‘그림’ 파일, 그 안에는 그림들이 나열되어 있었으며 그림들 사이로 메모장이 보였다.

[죽고 싶다.]

처음의 시작은 문장 하나였다. 하지만 금방 에러가 떴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이는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의 반복, 그리고 나는 이다음을 알고 있었다.

탁.

[죽이고 싶다.]

겨우 보이는 한 문장.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 단어를 끝으로 컴퓨터는 켜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나는 알고 있었다.

* * *

꺼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조용히, 검게 물든 화면.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생생한 감각은 아마 실제의 나였으면 엄청 놀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나 침착했다.

마치 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몸처럼.

그것은 꽤 불쾌한 감각이었지만 나는 이 감각에 계속 신경 쓸 수만은 없었다.

놀란 표정의 누군가 때문에.

“이건 대체…….”

“…괜찮아?”

“그건…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얼굴은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여태 유원을 어떻게 봤는지 알 수 있었다.

괜한 의심까지 해 버렸다는 것도.

이 꿈은 여전했다. 그 말은 계속 이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계속, 내가 내 방에서 게임 확장판까지 구매한 그날 그 상태로.

솔직히 확장판이라고 해 봤자, 보조적으로 몇 가지 더 추가되는 정도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이상하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정말 그 이후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막 잘려나간 것처럼 뚜렷하게. 마치 생각하지 말라는 것처럼.

그러니 나는 이걸 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꿈은 주로 그 당시에는 제대로 현실을 생각할 수 없는, 공상의 세계로 여행을 하는 그런 느낌이니까.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아.”

갑자기 다가오는 얼굴에 생각을 멈췄다. 그 때문에 나는 유원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조금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아마… 괜찮지는 않은 것 같아.”

“아마는 뭐야, 하하.”

“생각보다 놀랄 게 많은 것 같아서.”

진짜 그랬다. 공포를 간접 체험하는 것과 실제 체험은 정말 다른 거니까. 화면으로 보는 풍경과 실제로 눈앞에 귀신이나 괴물이 실제처럼 보인다고 하면 그 광경은 정말로 쉽게 잊을 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내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까 괜찮지 않다고 해서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던 유원은 금세 다시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툭 하고 내 머리를 짧게 친 유원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나처럼 교복을 입은 채로, 괜찮다고 말해 주니 왠지 나는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았다.

“네 말이 맞아.”

“그렇지?”

“그래. 지금 여기에 없는 그 애도 그렇게 될 거야.”

또한 이것은 내 딴 식의 위로였다. 내가 캐릭터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

그 말에 유원은 어쩐지 중얼이듯 말했다.

“그러게… 그러면 좋았을 텐데.”

“걱정돼?”

“당연하지. 죽고 싶다는 정도라니, 전혀 몰랐거든.”

모를 만했다. 보여 주지 않으면, 드러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가 숨기고 싶을 정도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도 있음이 분명했다.

안 좋은 비밀이.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게임이란 게 설정이 있다. 어떤 게임은 사실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면서 게임을 이상하게 만들고, 어떤 게임은 이웃이 이상한데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그런 게임들이 있는 것처럼 이 게임 역시도 어떠한 설정이 있었다.

A는 왕따였다.

여기까지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A는 애초에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귀신 연구를 좋아했고 그 때문에 이상한 돌발 행동을 하며 몇몇 학생들에게 묻다가 결국 날 이해해 주지는 못 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고립된 경우였으니까.

딱히 애들이 괴롭힌 적도 없었다. 꺼림칙해서 피한 적은 있었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과연 죽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면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는 귀신 때문이었으니까.

귀신을 좋아할 수 있는 건 귀신밖에 없었다. 우연히 나타난 소녀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었지만 결국 좋아하게 되어 버려서 가게 된 게 소녀의 집, ‘우리 집’이라는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그 소녀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게 문제였고 소녀는 A를 좋아하지만 A에게 질투도 하고 있어서 A를 자신처럼 고립시키고 싶다는 게 이유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나나 유원처럼 그를 고립에서 빼내 오려는 사람을 미리 경계해서 제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문제는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움직이던 캐릭터인 플레이어 1 역시도 연관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 관련해서 초반에 보여 주던 물건은, 분명 서랍 안에 있었을 텐데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눈앞에 있는 누군가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어서 그쪽을 신경 써야 했다.

“일단 찾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

내 말을 어렴풋이 눈치챈 유원이 그제야 조금 여유를 찾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조금 더 찾는 데에 집중했다.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이 방의 힌트는 말 그대로 아까 발견한 침대 밑에서 열쇠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열쇠는 아마 어딘가를 갈 때 필요한 거고 나는 그 방이 어딘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지금, 이런 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감이었지만.

어차피 조금 지나면 말해도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밖에도 가 볼까?”

“그래.”

바깥, 정원과 창고가 있는 곳을 말한다. 물론 저택이라는 이름답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건물 하나도 있었는데 그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크게 알 바는 아니었지만.

“역시 정원사가 들렀다 갔나 보네.”

“정원사?”

“그래. 몇십 년 전부터 있었거든. 아마 조만간 또 보러 오시겠지. 며칠에 한 번씩 왔다 가시니까.”

“그렇구나.”

이 대사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식물이란 게 며칠에 한 번씩 돌본다고 잘되는 건 아니지만 게임이라 그런지, 눈앞에 있는 식물들은 정말 싱싱해 보여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역시 게임이라는 것처럼.

나는 굳이 그런 것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았다. 유원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하긴 자기 사촌 동생이 사라진 데다가 숨기고 싶은 게 죽고 싶다는 말이면 걱정될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우리 조금 더 갈까?”

“어디?”

“저기, 저 너머에.”

보통 남고생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익숙한 욕설이나 그 흔한 스마트폰도 보이지 않은 꿈에서 유원이 가리키는 곳은 나도 게임에서 봐서 알고 있지만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닐 테니까.

그렇지만 나 역시도 그랬다. 그냥, 이럴 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원이 가리키는, 멀리 보이는 건물은 본래 게임이라면 있기만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즉, 나무처럼 그냥 있는 장식물인 것이다.

하지만 확장판은 아니었다.

확장판에서는 처음에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해 봤을 때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깬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애초에 플레이를 한 번밖에 못 해 봤던 것 같으니까.

“과연 저기에 있을까?”

“있을 거야.”

묘하게 확신하는 말투다. 하지만 곧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나는 싱숭생숭했다. 남의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슬픈 책이나 영화 같은 걸 보면 슬퍼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인 것처럼 나 역시도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너무 진짜 같아서.

“너는 그냥 여기 있을래?”

내가 멈춘 탓인지 유원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좀 불편해 보였을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남이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혼자 여기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같이 갈래.”

내가 상의 소매 끝을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유원이 그런 나를 보며 손을 잡다가 물었다.

“나 한 번 안아 봐도 돼?”

“뭐?”

“그냥… 안으면 뭔가 잘될 것 같아서.”

“그게 뭐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제법 진지한 모양새로 툭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은 유원, 아까와는 다르게 다시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 눈에 보인다. 비록 이게 내가 아는 게임에서는 없던 대사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비현실적이라서 금세 팔을 벌리고 다가갔다.

“자.”

“정말 안아 주게?”

“물론이지.”

정말이라는 듯이 팔을 몸에 감싸보았다. 따뜻했다. 정말 사람의 체온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더 이질적이라는 느낌에 불쑥 이상한 생각이 튀어 오를 것 같았지만 바로 내 몸을 조이는 팔에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숨 막혀.”

“…미안.”

결국 내 몸에서 천천히 떨어진 유원은 아쉬운 눈을 했다. 아무래도 사람 품이 정말 필요했던 모양인지 내 시선에 멋쩍은 미소를 지은 건 민망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긴 나보다 키도 크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까.

내 얼굴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유원의 얼굴을 보면 자동적으로 씁쓸해졌다.

현실의 내가 자꾸 생각이 나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인 건 내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그것 하나만큼은 내 마음을 조금 괜찮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일단 가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곳, 내가 처음 가 보는 곳을.

모르는 불안감이 끈질기게 따라올 것 같아도 애써 모른 척하며,

나는 걸었다.

* * *

길은 생각보다는 길었다.

게임상으로는 마치 정원에서 얼마 안 가면 보이는 길 같아서 짧을 거라 생각한 거리는 길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긴 건 아니다.

저택이 있는 만큼 큰길을 따라서 가는 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긴 시간은 아닌 만큼 우리가 15분 정도를 걸었을 때, 건물이 보였으니까.

“좀 많이 낡은 것 같은데…….”

힐끗 보면서 중얼이는 유원의 말. 나는 그 말 때문에 건물을 봤는데 확실히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다. 그래서 저 건물에는 또 뭐가 있나 호기심이 반, 불안함이 반 들어찼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이 이상 어쩔까 싶기도 하고.

“낡은 건 상관없어.”

“정말? 먼지 많이 나올 텐데.”

먼지가 나오는 부분 역시 내가 게임에서 기억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았다. 벌레도 바퀴벌레 같은 그런 큰 벌레만 아니면 크게 상관은 없고.

생각하니 괜히 떠오르는 갈색 생명체가 연상되면서 괜히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나오든 일단 사람이 중요하니까.”

“그건 그래.”

유원은 어쩐지 서글퍼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관해서까지 묻지는 않았다. 괜히 잘 모르는 사이라고 한 것이 무색하게 사실 네 친척은 살아 있다느니, 다음 단서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기에는 정말로 나는 그들과 별다른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단지 아마 내 몸의 원래 주인은 어느 정도 접점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일단 들어갈까?”

“그래야지. 근데 문은 제대로 열려?”

아무래도 낡아 보이는 문에 내가 묻자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는 표정을 지은 유원은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대체 저 근거 없는 확신은 뭔지, 그래도 그 와중에 비키라고 말해서 비켰더니 아무래도 문을 열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다행히 먼지는 크게 없는 것 같아.”

“그러게.”

“아무래도 누가 청소를 해놨던 것 같은데?”

“청소?”

나는 그제야 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문 안에 보이는 풍경은 어차피 나로서는 전혀 보지 못한, 예상도 안 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보니 생각만큼의 장소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창고 업그레이드 버전이랄까.

건물은 대충 두 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2층은 좀 적은 공간으로 약간 뒤쪽으로 계단이 있었고 그 밑으로는 조금 넓은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들과 장식장 같은 것들이 보였는데 확실히 구석 같은 데는 조금 먼지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사람이 다니기에 괜찮은 상태였다.

“누가 왔다 갔을까?”

“어쩌면 A일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나는 작게 동의하며 조금 더 안쪽으로 향했다. 확실히 장식장이나 책장을 보면 그렇지만 안에 물건도 사람 손을 탄 느낌이었다.

잘 보이지 않은 데는 오래된 흔적이 보였지만 대체로 청소한 흔적이 남아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아까 대충 동의했던 일이 진짜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책장에 있던 ‘일기’ 덕분에.

사실 멀리서 보면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충분히 눈치챌 만한 책이었다. 특히 겉표지는 진한 고동색이라, 검게 영어로 쓰인 글씨는 그냥 다이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고 설사 이게 일기라고 해도 보면 안 되는 게 예의겠지만,

어차피 이건 현실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일기를 꺼냈다.

“그건 뭐야?”

“그냥… 다이어리라고 쓰여 있길래.”

대충 얼버무렸다. 이게 바로 A의 일기라고 하기에는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말했더니 유원은 나를 몇 초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그럼 이걸 보자고 했다.

“보자고?”

“그래. 왜, 뭔가 있어?”

“아니. 여기 처음 오는데 무슨…….”

“하긴, 처음이긴 하겠다. 그럼 볼까?”

처음인 건 내가 플레이 때도 오지 않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기는 오리지널이나 확장판이나 같은 장소에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놀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유원의 기준에서는 여기도 처음 온 사람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니 곧 유원이 나한테 다가와 내가 잡고 있던 책의 반대쪽을 잡아서 펼쳤다.

“…A의 일기네.”

“그러게…….”

“그럼 봐야겠다. 아무래도 A를 찾는 데에 이건 충분한 단서가 될 테니까.”

납득이 될 만한 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 일기를 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일기는 거의 패시브 아이템 수준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스토리에 대한 연관성이라든가, 다른 단서를 찾는 것까지.

그래서 우리는 일단 첫 장을 폈다.

[20xx년, 3월 16일 x요일.

나는 귀신을 보고 싶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고 이 일기를 쓰기로 했다.]

“…진짜 A답네.”

“그러게.”

길게 쓰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게임할 때 편하긴 했지만 유원이 그런 것도 이해가 됐다. 게다가 뒤로 넘어갈수록 날짜도 띄엄띄엄 쓰여 있어서 우리는 일단 좀 더 넘어가 보도록 했는데 나는 어느 순간 그가 넘기려는 페이지를 손으로 막았다.

탁.

“…여기야?”

“뭐?”

“아, 내 말은 여기에 뭐가 있나 해서…….”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게 정말로 당황한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러니 굳이 유원이 그러는 게 어색하지는 않아 보여 그렇다고 했더니 유원이 다시 내가 원하는 페이지를 다시 펼쳤고 우리는 그 부분을 읽었다.

[20xx년, 8월 22일 y요일.

귀신을 처음 만났다.

그런데 생각보다 보통의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도 있고 팔과 다리도 모두 제대로 있는 예쁜 여자애였다.

다음에도 만나러 가야겠다.]

“예쁘다니 반한 거 아니야?”

“설마.”

이런 농담도 할 줄 알았나.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게임상으로 보자면 얘네들은 그냥 친구였다. 서로 좋아했다면 애초에 엔딩에서 바로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굳이 그 말은 꺼내지 않았고 결국 유원은 오해했다.

“좋아할 수도 있어. A는 귀신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굳이 귀신을 좋아한다고 그 귀신을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지. 어쨌든 일단 더 보고 생각해 보자.”

귀찮았다. 왜 이런 거로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얼른 이걸 넘기고 가야 하는 곳이 있는 탓도 있지만, 유원은 괜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물론 그만큼 착해빠진 성격이라는 것도 알지만.

내가 이렇게 저택에 들어올 수 있던 것도 어찌 보면 그 탓이었다. 물론 A의 방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들어가게 해 주는 건 아니었다는 게 참 이상하긴 했지만.

“알았어. 좀 더 보도록 하자.”

마치 내가 보고 싶어서 더 보자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바로 페이지를 넘기는 바람에 나는 더 생각할 새도 없이 같이 일기를 봤다. 이미 몇 번 본 내용이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유원과 계속 같이 있어야 한다면 둘이 ‘같이’ 보는 게 나을 테니까.

과연 이런다고 해서 모든 걸 벗어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일단 가는 데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 없으면 내가 그 이상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일단 해 보는 수밖에.

“하아…….”

“어디 힘들어?”

“아니 그냥…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해서.”

“네가 착해서 그래.”

“…나 안 착해.”

“그래도 여기까지 와 줬잖아?”

보통 친구가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내심 찔렸다. 사실 이 캐릭터, 그러니까 메인 캐릭터에게도 나름 이렇게 끼어드는 것은 사정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곧 그건 일기장에도 나와 있는, 어쩌면 별거 아닌 내용이었다.

[20xx년, 9월 3일 z요일.

나처럼 귀신을 보는 애를 처음 만났다.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와 친해지고 싶다.]

“설마 A처럼 귀신을 볼 수 있는 친구가 있었던 걸까?”

“글쎄…….”

그게 나라고 차마 말하긴 어려웠다. 그게 나라고도 바로 말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지금 내 눈에는 귀신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원래라면 게임이라 그런지 일정 시간이 되면 귀신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꿈이라서 다를지도 모르지만 뭐랄까 기이한 느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사실 유원도 같이 다니는 건 아닌데 그래서일까, 어느 정도 내 예상을 벗어난 것들과 그대로인 것들을 보며 나는 안심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여기에 있었으니까.

복잡하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나는 그런 대범한 인간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애써 나아가는 방향으로 정한 거다. 계속 무언가 열심히 해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유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페이지만을 보는 것도 모르고서.

“일아.”

“…왜 자꾸 그렇게 불러?”

나는 자꾸만 나한테 다정한 식으로 부르는 유원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사실 나도 이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한테 굳이 이렇게까지 부르는 게 꽤 어색했으므로.

“하지만 네 이름은 이렇게밖에 못 부르는걸.”

“이름…….”

나는 망설였다. 부르는 이름, 내 본명을 부르면 바로 불러 줄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다.

“이름은 그냥 부르지 않으면 안 돼?”

“…미안.”

그게 거절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게임상 설정이라는 걸까, 위화감이 들었지만 별수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일기에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20xx년, 9월 4일 h요일.

그 애가 날 거부했다.

자신은 그런 거 모른다면서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거절당했다.

슬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에 한 번 더 말해 볼까?]

[20xx년, 9월 10일 n요일.

귀신인 여자애는 이상하게 자주 찾아오는 느낌이다. 물론 반가웠지만 다른 귀신을 보게 해 줄 수 없냐는 말에 표정이 무서워졌다.

이상했다.]

[20xx년, 9월 13일 d요일.

13일은 안 좋은 날이다.

그래서 나는 귀신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문 긁는 소리가 났다.

무서워졌다.]

[20xx년, 9월 20일 u요일.

그 애를 만나기로 했다.

적어도 그 애는 귀신을 볼 줄 아니까 뭐라도 알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거절당했다.

나는 무서워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0xx년, 9월 22일 i요일.

급한 마음에 가족들한테 말해 봤지만 무시당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애는 늦게 올 것 같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20xx년, 10월 1일 g요일.

제발… 누가 살려 줘!!!

이제 괜찮은 것 같아.]

[20xx년, 10월 3일 s요일.

나에게 예쁜 여자 친구가 생겼다.

이제 일기를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무도 관심 갖지 마.]

일기는 끝이 났다. 하지만 끝부분에 유난히 많이 구겨진 자국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유원이 이걸 보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충격받은 표정을 지을 거라고 생각하고 돌아보았다.

하지만 왜.

왜 웃는 거지.

* * *

나는 그 순간, 꼼짝도 못 했다.

왜 웃는지 물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쳐다보니 오히려 내 시선을 눈치챈 유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적어도 A가 죽을 생각은 안 했다는 거잖아. 근데 힘들었을 테니까 어이가 없어서. 왜 나한테는 하나도 얘기를 안 한 걸까…….”

우울한 표정에 끝에 말꼬리를 흐리는 것은 조금 슬퍼 보였다. 얘기라, 나는 사라진 A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A는 왜 일기를 여기에 남기고 갔을까.

게임과는 달랐다. 원래라면 여기가 아닌 초반에 바로 보이는 자신의 방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달랐다. 처음 오는 곳, 처음 보는 곳에 이렇게 있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굳이 오지 않아도 될 장소를.

게임 기억도 솔직히 애매했다. 나는 확장판을 샀던 것까지는 기억난다. 하지만 뭘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괜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미안, 내가 좀 이상했지?”

그때 들린 목소리, 아마 내 표정 때문에 말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역시 너는 상냥해.”

“…아니야.”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안 할 필요도 없지.”

나는 나대로 할 일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또, 이대로 엔딩까지 간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있지만 기껏해야 게임 캐릭터인 유원에게 설명해 봤자 소용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 게임 캐릭터 역시 예상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할 필요도 없었어.”

내 팔을 잡고, 내 눈을 마주하며 보는 유원이 그랬으니까.

“…알았어. 그렇다고 치자.”

피곤했다. 무엇보다 이 상태에서 괜히 말해 봤자 말싸움이라고 할 것 같진 않지만 같은 말만 반복될 뿐이라서 나는 그렇게 말했고 유원 역시 미안하다면서 넘어가고 곧 일기장을 덮어서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은 것을 봤다.

“다시 넣게?”

“그래야지. 어쨌든 몰래 본 거기도 하고.”

“하지만…….”

“왜, 필요해?”

유원이 잠시 넣으려던 것을 멈추고는 물어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내심 찔리긴 했지만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일기장은 원래 이런 게임에서는 아이템을 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잠겨있는 방을 열기 위한 열쇠를 찾는 것도 있기 때문에.

단서를 얻어서 이유를 알고 A를 구출하는 게 이 게임의 목표니까.

그러므로 결국에는 필요했다.

“그래.”

“알았어.”

“왜 필요한지는 안 물어봐?”

솔직히 놀랐다.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이렇게까지 바로 일기장을 줄 줄은 몰랐으니까.

“너도 생각이 있겠지.”

“날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네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장난스럽게 대꾸해도 저런 진지한 반응이라 뭔 말을 못 하겠다. 어떻게 저렇게나 믿음이 생길 수 있는지, 혹시 게임 캐릭터 특징인가 싶을 정도로.

그만큼 사람 같지도 않아서.

“오히려 믿을 만한 사람은 너 같은데.”

“난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뿐인데?”

“그러니까, 그런 점이 그렇다고. 믿는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건 말하고 나서였다. 난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나마 여기가 내가 살던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고마워.”

“음…….”

“부담스럽다면 미안. 근데 나는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다들 그냥 착하다거나… 아무튼 좀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거든.”

하긴, 나도 유원을 보며 착해빠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을 이런 때에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야말로 고맙고, 어쨌든 일단 가자. 그리고 일기장은… A를 만나면 그때 알아서 하라고 해야겠어.”

“그래서 일기장을 가져가려고?”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 근데 그건 말하기 좀 그래서.”

“알았어. 그럼 안 물어볼게.”

“고마워.”

“별말씀을.”

이렇게 넘어가 주는 것도 나름의 친절이자 배려임을 알았다. 여기서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받은 만큼 갚아 주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알고 있는 게임이었으며, 애초에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데 완벽하게 갚아 줄 수는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원하는 걸 알면 충분히 갚아 줄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그래서 움직이는 도중, 말을 꺼냈다.

“혹시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원하는 거?”

“그래. 다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해 줄게.”

“그래? 그럼 나중에 말해도 괜찮을까?”

“상관없어.”

정말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말한다니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어차피 유원인데 별거 아니겠지 싶어 다시 이동했다.

이번에는 다시 저택으로.

이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곳이 바로 이 ‘이상한 저택’이었고 실제로 내가 확장판 하기 전에 단계까지는 다 깬 상태라 이 저택에서만 쳐도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한 거지만.

가지도 못했던 건물 안에서 일기를 발견할 때부터, 아니 그보다도 전에 유원을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 게임이 뭔가 아주 다르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우리는 저택 안에 1층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괜찮았다. 다용도실이나 손님방, 부엌까지 찾아봤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어서 나는 제안했다.

“지하에 가 보는 건 어때?”

“지하? 위층이 아니라?”

“이 일기장도 다른 데서 발견됐으니까.”

“하긴, A는 귀신을 좋아하니까.”

귀신을 좋아한다는 게 순간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귀신을 좋아하는 게 좀 음침하고 그런 곳에 귀신이 자주 나타날 거라는 얘기도 있어서 A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다른 곳도 가면서 그런 곳에 힌트를 넘기는 거라, 그래야 게임이 진행되는 거라 그런지 그럭저럭 납득하고는 가운데에 있는, 저택으로 치면 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계단 쪽으로 갔다.

특히나 지하 쪽은 불도 켜지 않아서 어두운,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내려가자마자 불을 켜니 위와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조금 좁은 것 빼고는.

“어디부터 가 볼래?”

“글쎄.”

방은 총 두 개, 왼쪽 방과 오른쪽 방 둘뿐이었다.

한 곳은 일종의 스위치 같은 방이었다. 스위치를 켜면 불이 켜지는 것처럼 초반에는 이곳에 오면, 그것도 무언가를 건드리면 귀신을 만나게 되니까.

게다가 다른 한쪽은 당연하다는 듯이 잠겨있는 방이었다.

그러니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당연히 귀신이 보이지 않는 방이었다.

“오른쪽 방으로 가자.”

“오른쪽?”

“어. 여기가 좋을 것 같아.”

“그러자 그럼.”

순순히 내 말을 들어준 유원은 먼저 오른쪽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들어간 뒤에 나는 바로 방 안에 보이는 책장을 봤다.

이만하면 귀신이 잠깐 쓰러질 정도는 되겠지 싶어서.

왜냐하면 귀신은 정확히 여기에 있는 건 아니었고 특정 매체를 통해서 기운을 전달해 물건들을 움직였으니까.

특히 그들이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이상한 저택’은 그 한계를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투성이라, 그만큼 귀신이 다루기에 적합한 상태가 된다는 설정으로 가끔 진짜 본체 같은 게 튀어나올 때는 죽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본체가 온다고 해도 A가 아직 살아 있는 이상 여기에 계속 있기도 어려울 거란 걸 알아서 나는 귀신이 제대로 움직이기 전에 충분히 물건과 사이를 벌려놓을 수 있는, 그나마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서 귀신도 움직이기 힘든 것을 살펴본 것이다.

책상이나 컴퓨터보다야 이쪽이 더 움직이기 쉽기도 하고.

게다가 아까 위층에 다른 곳을 둘러본 것도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최대한 많은 걸 생각하고 가는 편이 좋을 테니까.

그래서 막상 같이 온 사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뭐 찾았어?”

“어? …아니.”

꽤 놀랐다. 들킬 게 없는 데도 괜히 들킨 것처럼 초조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럼 여기에는 없는 것 같네.”

“그러게.”

확실히 대충 보긴 했지만 그냥 봐도 여기에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원래 게임에서도 특정할 때에서나 단서를 찾을 수 있던 것처럼.

유원은 그래도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아까도 이곳저곳 열심히 살펴보는 기색이 정말로 누군가를 걱정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유원이 슬슬 다른 데를 보는 게 좋겠다고 할 때 나가 우리는 바로 그 반대편의 방으로, 유원 역시도 찾은 열쇠가 이쪽 열쇠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별말 하지 않아서 우리는 금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귀신이 있는.

바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막상 들어오니 어쩐지 긴장이 됐다. 내 표정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그냥, 어째서인지 울상이라도 짓고 싶었다.

웃는 건 잘된 것 같았는데 왜 안 좋은 쪽의 표정은 짓지 못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힘들면 말해.”

말이 들린 것은 순간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유원이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내가 괜히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래.”

답을 하고 나서 나는 서서히 방 안의, 티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전원을 눌렀다.

지지직.

마침내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쨍그랑!

다만 이미 늦었다는 듯이 화면은 깨져 내가 어느 정도 피했어도 붉은 자국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

나는 그제야 내가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고 해도 막상 겪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실감했다. 왜냐하면 내 예상과는 달리 나는 손에만 미세하게 베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상처가 많이 난 것은 나를 밀치고 내가 아파야 하는 것도 대신 받은 누군가였으니까.

“왜…….”

“응?”

“…왜 그랬어?”

나는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미소뿐이었다.

마치 다정하기라도 작정한 사람처럼.

“네가 다칠 것 같아서.”

나보다 더 다쳤으면서 말하는 꼴이 가관이다. 게임 캐릭터지만 나름대로 느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달랐다. 지금 이렇게 하는 이유가 그 ‘나름대로’라면 이 정도까지는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왜?”

“너…….”

“난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근데 왜 그러면 안 돼?”

나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모를지도 모른다. 이게 배려이자 배려가 아님을.

그래서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답해 주었다.

“다음에 네가 그러면 나도 그렇게 할 거야.”

“왜…….”

“네가 그러니까.”

“하지만…….”

“다치지 말라는 소리야.”

그 말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던 유원이 그제야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안 다칠게.”

“정말?”

“그래. 하지만 너도 다치지 말았으면 좋겠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 숨결을 뚜렷하게 느끼기에는 충분해서 나는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치료나 하자.”

결국 나는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하긴 깔리는 것 때문이라도 지금 내 상태는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유원이 대신 맞은 것도 있고 여러모로 충격적인 걸 봐서 그런지 무게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유원으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다가 내가 무겁다면서 비키라고 했더니 그제야 미안하다면서 말하는데 어쨌든 나 대신 다쳐서 그런지 미안하면 얼른 옷이나 벗으라고 했다.

옷을 벗어야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유원은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할게.”

“뭐?”

“내가… 할 수 있어.”

어쩐지 참는 기색이다. 당연히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너 그렇게 다쳤는데 이럴 거야?”

“다쳤으니까 그런 거야!”

갑자기 큰소리를 치는 유원, 그것도 처음으로 큰소리를 내서 나는 놀랐는데 유원 본인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등, 지금 너한테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아서 그래.”

“괜찮아.”

“괜찮다고? 너 아까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으면서…….”

“…내가 울었다고?”

“운 건 아니었지만 너무 슬퍼 보였어.”

내가 정말로 슬펐던 걸까. 별 변화 없는 표정이라서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눈가를 만져보니 꽤 축축한 게 닿은 게 조금 소름이 돋았다. 여태 이런 것도 못 느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서일까. 어쨌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더 좋지 않은 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누구였지만.

덕분에 눈물을 빨리 닦고 말했다.

“넌 너나 생각해. 그리고 어차피 이미 네가 다친 것도 다 알고. 내가 어느 정도 운 거면 충분히 울 것도 다 울었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을 거야.”

“정말로?”

“그래. 정말로.”

네 상처를 치료해야 얼른 진행이 될 테니까. 거기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유원은 대충 이해했다는 듯이 알겠다고 말하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대충 보니 식스팩이 보이는 걸 보면 얼굴만큼이나 몸도 좋은 것 같았다.

어차피 이 근처에는 여자 하나 없어서 별로 쓸모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하나 있겠구나. 귀신이지만.

게다가 그 귀신은 A를 좋아해서 가둬놓을 정도니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여기는 내가 아는 현실도 아니고 뭐 어떤가 싶었다. 실제로 지금도 나름대로 엔딩을 보면 괜찮을까 싶었지만 진짜로 괜찮을지는 확신이 없어서 막 나가는 거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유원은 다 벗은 옷을 옆에 단정하게 접어서 놓고는 등을 내밀었는데 정말 보기 흉했다.

어떻게 이걸 맞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일단 다행히 유리 조각이 그렇게 많이 박힌 건 아닌 것 같아.”

“그래?”

“어. 그래도 작은 거 몇 개 박혀 있긴 한데… 빼도 돼?”

“돼.”

“근데 아무래도 구급상자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위에 있을걸.”

“위에?”

“어.”

위라니, 나는 등을 향하던 손을 그대로 멈추었다. 내가 아까 하려던 건 귀신을 깨우는 일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귀신이 이 근처 여기저기에 얼쩡거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위층 어딘가에 귀신이 있다.

A를 가둔 여자 귀신의 영향이 있지만 그 귀신은 아니다. 그 귀신으로 인해 깨어난 다른 귀신들, 나는 그들을 피해서 구급상자가 있는 방까지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이 꿈의, 이 세계에 내가 처음에 눈을 떴던 그 방에 있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 왼쪽 복도로 가거나 오른쪽 복도로 가거나 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썩 가는 게 내키지 않은 것도.

그래서 이런 때는 자동적으로 표정 관리가 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원이 알아차린다면 자기도 가겠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다녀올게.”

“…혼자서 다녀와도 괜찮겠어?”

“괜찮아. 별일 없을걸.”

“무슨 일 있으면 소리 질러. 아니다, 그냥 십 분 안에 안 오면 내가 갈게.”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게임을 클리어 한 사람이다. 물론 이게 확장판이고, 사실 게임과 관계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있을 만한 건 그대로 있어서 조금 불안하기는 해도 못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갈 수 있을 거다.

유원에게는 그동안 조금 쉬고 있으라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일기를 맡긴 후,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구급상자만 생각하면서 걸어갔다.

먼저 짧은 지하의 복도, 그리고 계단, 그다음이 1층 복도.

오른쪽 복도가 사실상 더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뭣 모를 1차 플레이 때 갑자기 튀어나온 귀신 때문에 당한 게 있어서 그런지 왼쪽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지는 않기도 했고.

실제로 왼쪽으로 꺾어서 가는 방향은 괜찮았다. 아니, 생각보다 귀신이 없다는 게 너무 이상해서 무서울 정도였는데 어쨌든 간에 나는 무사히 방 안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후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잘되는 것 같아서 놀라웠다. 게다가 일단 이 방은 게임에서도 귀신이 나온 적이 없었던 방이라 안전했다.

“밀크티도 그대로네.”

다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구급상자를 찾았다. 하얀색의 상자, 작지는 않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실제로 장식장 위에 있어서 손을 위로 올려서 꺼내 바로 나가려고 했다.

이상한 소리만 아니었더라면.

―죽어!

“…젠장.”

나는 그대로 달렸다. 뭐가 보이는지 알게 뭔가 싶었고, 솔직히 게임이 아닌 실제 상황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전혀 몰랐다.

그냥, 오로지 목적만을 위해 달렸다.

다른 방을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정확히는 그럴 겨를도 없어 그냥 유원이나 생각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인상 한 번 안 찌푸리는 내 얼굴을 참 짜증 나게 여기면서도 그냥 사람이 있는 거, 유원이 있는 곳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으니까.

“헉… 허억…….”

그리고 안에 들어와서야 겨우 발걸음을 멈춘 나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생생히 느끼면서 몇 초간 호흡을 했다. 들숨, 날숨 같은 건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본능을 느끼면서.

어쩌면 거기서 뛴 것도 본능일지도 모르지만.

“괜찮아?”

그리고 그때, 유원이 다가왔다. 나는 그를 보다가 아니라고 답했다. 형식상으로라도 괜찮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차피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해 봤자 쥐뿔도 듣지 않을 게 뻔하기도 하고.

“그럼 좀 쉴래?”

자기는 많이 쉬었다고 하는데 등은 여전히 안 좋았다. 심지어 슬슬 멍 자국이 보이는 데도 드러나서 나는 됐다고 하면서 구급상자를 근처에 두고 유원에게 앉으라고 말해 곧 순순히 나한테 등을 보여 주었다.

“일단 유리부터 뺄 테니까 참아.”

“…알았어.”

아주 작은 건 아니었다. 솔직히 아주 작은 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찌 됐든 우선 적당히 빼기 괜찮은 것부터 시도를 한 다음, 대충 그 위를 급한 대로 가져온 물로 씻어내서 솜에 소독약을 묻힌 다음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에는 연고를 발라 붕대를 감았다.

“어디 불편하면 말해.”

“괜찮아.”

“정말?”

“정말로. 진짜 괜찮아.”

괜찮다며 실실 웃는 게 참 이상하다.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갔나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붕대를 제대로 고정해 주는 거즈가 있는 쪽을 꾹 눌러 주었더니 몸이 잠깐 떨리는 걸 보니 좀 심했나 싶었다.

하긴 나 때문에 다친 건데.

내가 막아달라는 건 아니었지만 유원이 막지 않았다면 내가 저 꼴이, 아니 저것보다 심한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좋지 않았다.

“인상, 찌푸리고 있네.”

“내가?”

“어. 그 정도로… 안 좋은 게 있었던 거야?”

안 좋은 거라, 그보다는 내가 인상을 썼다는 게 중요했다. 그동안 부정적인 표정은 정말 아주 대놓고 열심히 짓지 않은 이상 변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여전히 내 입은 다물어져 있었는데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는 건 내 표정이 약간의 변화를 인식했다는 거였다.

이런 점은 정말로 게임 같았다.

아마 내 추측으로는 게임처럼 내가 공포심을 어느 정도 느끼면 조금씩 풀리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그 공포가 다 깨지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거나 하면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과연 괜찮을까 싶은 정도로 나는, 내 상태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해야 인상 한 번 찌푸린 것뿐이다.

“있었지만 지금은 안 보이니까 괜찮아.”

“안 보인다고?”

“그래.”

“혹시 귀신이라도 있었던 거야?”

흠칫.

놀랐다. 솔직히 그런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서 물었다.

“귀신을 믿어?”

원래 게임에서라면 믿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귀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아서 나도 굳이 그 관련 얘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나는 그 생각으로 충동적으로 말했고 곧 생각보다 빠르게 유원의 입에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믿어.”

그것도 진지한 얼굴로.

“너를 믿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하겠어?”

“…….”

“어쩌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씁쓸한 표정.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친척이지만, 친척이니까 오히려 덜 보기도 한 사이였던 유원은 어릴 때는 이 저택에 자주 왔었지만 점점 자신의 일과 새로운 환경에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곳에 발걸음 하는 게 뜸해졌다.

게다가 유원은 이런 일만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귀신은 믿지 못하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래서 A도 굳이 유원에게 이런 얘기는 할 수 없었고 유원 역시 굳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얘기를 들을 필요는, 또는 그런 시간도 주지 못해서 둘은 엇갈려 결국에는 유원은 이 게임에서 어떤 의미의 죄책감을 가지고 시작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움직이는 ‘플레이어 1’과는 다른 죄책감을.

“내가 아는 게 뭐겠어? 기껏해야 반장 정도인데.”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니까. 그래서 모른 척했다.

“정말로?”

다만 유원은 나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말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아니 곧 이어지는 말은 내가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말 그것뿐이야?”

“…뭘 묻고 싶은데?”

조금 뜸을 들이며 물었다. 하지만 묻는 것만으로도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숨기고 싶었던 성적표를 들킬 때처럼, 사실 아주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한 것도 없는 것 같은 기분으로 바라보다 유원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진실을 요구했다.

“일기에 나온 귀신 보는 애… 그 애가 너야?”

나는 그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입이 열렸다.

“맞아.”

당연하게도 게임 설정상 ‘플레이어 1’의 죄책감 역시 이유가 있었으니까.

* * *

반장, 그러니까 ‘플레이어 1’에게도 나름대로 여기까지 올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어떠한 게임의, 어떠한 캐릭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내가 움직이는 이 몸 역시 마찬가지로 스토리라는 게 있었는데 유원이 물은 것과 연관된 게 맞았다. 그와는 전혀 다른 이유지만 어쨌든.

내가 아니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내가 바로 A가 친구가 되고 싶다던 그 애가 맞아.”

“…역시 그렇구나.”

“그래. 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온 거지.”

굳이 여기까지 오기도 한 건 단순한 설정이지만, 단순하니까 그만큼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나는 말하는 순간, 정말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말하는 게 아마도 꽤 속이 시원했던 것 같기도 했다.

여태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유원의 설정도 한몫했으니까.

그러나 유원은 생각보다 쉽게 믿는 것 같아 보였고 그래서 말을 꺼냈더니 어느 정도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귀신… 믿어?”

“이런 일을 당했는데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를 보면서, 어떻게 보면 약간은 포기한 것 같은 사람처럼.

유리가 깨지는 현상이 갑자기 여태 아무렇지도 않다가 일어나는 게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아까 우연히 나를 막아 준 일이 정말 좋은 쪽으로 넘어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비록 내가 아는 현실이 아니지만. 꿈이겠지만, 그래도 꿈에서도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이건 정말로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비록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유원이 내 대답을 들어서인지 표정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괜찮아?”

“생각보다는 괜찮아. 그래도 역시 귀신이 있다는 게 현실적이지가 않네.”

애써 웃으려는 모습은 참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게다가 현실적이지 않다니, 내 기준에서는 이미 여기에 있는 것부터가, 눈앞에 있는 유원이라는 존재 자체도 비현실적인 일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게임 같은 부분이 있지만 확실히 내가 아는 게임과는 다르다는 것도 지금 와서는 부정할 수도 없었다.

원래라면 처음 장소에는 있으면 안 될 게 있었으니까.

“일단 조금 쉬고 나서 가자. 나머지는 좀 차차 생각하고.”

나도, 유원도 충분히 지쳤으니,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자는 말이었는데 유원도 그걸 충분히 알았는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내 말이 금방 정리가 됐는지 말을 꺼냈다.

“근데 그러면 지금 위에서 뭔가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래서 올라가면 좋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을 수만도 없겠지만.”

“…귀신 때문에?”

“그래. 우리가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았겠지만 찾으면 나타나…는 거니까.”

하마터면 나타났었다고 얘기할 뻔했다. 나타날 예정인 걸 이미 알았다고 말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굳이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나 이런 깨지도 못할 꿈에서는.

슬슬 이게 꿈이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표정도 둔하고 귀신이 나오고, 게임이랑 똑같이 재현한 것들이 과연 내가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단은 꿈이라고 해야겠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조건 여기가 어디라고 할 수도 없다. 두려움은 자동적으로 감춰지고, 실제로 나는 여기서 생각보다 공포를 덜 느낀다. 아예 안 느끼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이점이었다.

게다가 내가 좀 이성적인, 그야말로 사고방식이 마치 ‘해설자’처럼 되어 버렸다. 마치 게임의 내레이션처럼.

종종 유원을 ‘그’라고 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유원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모르는 만큼 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럼 안전한 데를 알려 줄래?”

“…안전한 데?”

“귀신은 쫓아오지 못하는 곳.”

그는 직접적으로 제시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싶다가 아까 다녀온 위층이 떠올라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바로 위층은 지금 어려울 거야.”

“그럼 그 위층은?”

“2층은 괜찮을 거야. 지금 아직도 소리가 들리잖아? 귀신들이 어느 정도 힘을 쓰고 있다는 소리야. 아마 조용해질 때 움직이는 게 좋겠지.”

실제로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귀신이 나올 때는 도망치는 게 우선이고, 내가 아까 다른 방에서 본 건 도망치면서 귀신을 잠시라도 물러나게 할 방어책 중의 하나였다.

다만 아까의 일 때문인지 1층으로 가는 건 확실히 걱정됐다.

귀신을 잠시라도 사라지게 하는 물건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곤란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원래 내가 알던 게임에서도, 내가 아는 순서대로라면 2층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거였다.

“2층에 뭔가 있을까?”

“가 봐야 알겠지.”

일기도 그렇고 아까 1층에서 원래라면 위험할 일이 없던 처음에 눈을 떴던 방에 일어난 일 같은 것들은 내가 완전히 예상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2층도 사실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태 본 것들은 그대로인 게 더 많았으니까 아마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귀신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위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됐을 때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에는 혹시 몰라서 몇 초간은 위를 봤는데 다행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다행히 별 탈 없이 2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디부터 갈래?”

“가까운 데부터 가자.”

이제는 고민할 틈도 없었다. 아마 귀신이 나와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쩐지 서두르는 기색으로, 전이라면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시늉을 했겠지만 전혀 할 틈도 없이 움직였다.

어떻게 보면 변화였고, 달리 본다면 두려움이다.

그러니 움직일 수 있을 때 빨리 움직이기로 생각하며 나는 재빨리 근처에 있는 A의 부모님 방을 향했다. 물론 뒤에는 유원 역시 내 뒤로 바로 따라왔다.

그런데 어째선지 주변을 둘러보던 유원이 갑자기 다른 소리를 했다.

“결국 이렇게 옮겼네.”

“뭘 옮기는데?”

“방. 원래 A도 가족들처럼 2층에 있었거든.”

“…그래?”

“어. 근데 알다시피… 귀신을 너무 좋아해서 말이야.”

귀신을 좋아한다니. 이건 게임 설정에는 없는, ‘모르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내가 더 말해달라는 의미로 보자 유원이 자연스레 회상하는 듯, 설명해 주었다.

“말 그대로야. 원래는 2층에 있었는데 귀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옮겨준 거지. 그래서 A만 밑에 층, 다른 가족들은 위층이야.”

“아아, 그런 거구나.”

“그래. 그래서 가족들도 상황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했을 거야. 나도… 아니 이건 변명인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한다. 자신이 변명하고 있다는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가족들도 모르는 게 자기가 모르는 걸 변명해 주는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

“변명까지는 아니야. 나만 해도…….”

“아니야. 가족이 모른다고 해도 내가 모르는 게 아닌 게 되지는 않으니까.”

“그러면 어른들한테라도 연락을 해 보는 건 어때?”

나는 무턱대고 위로할 생각은 없었다. 한 번이면 충분했지 그 이상으로 내 말을 부정할 정도라면 죄책감이 생각보다 컸다는 걸 의미하니까.

하지만 예상외의 말이 들렸다.

“하지만 전화기가 고장 나서 말이야.”

“뭐?”

“전화기가 고장 났어. 외부에는… 꽤 가야 다른 곳이 보일 테고.”

사십 분 정도. 이 저택을 나가 다른 집을 볼 수 있으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정도는 걸어야 밖에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나는 전화기가 아예 안 된다는 건 게임상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냥 식물이 있던 것처럼 단순한 소품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곤란하다는 듯 유원이 이쪽을 보며 말하는 사실은 내 상식과 그의 상식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었다. 또한 그만큼 이용할 수 있을 요소가 생긴 셈이니 위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유원은 다른 것도 생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말해왔다.

“그리고 전화한다고 쳐도 귀신을 과연… 어른들이 믿어 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원 역시도 귀신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오히려 믿지 않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처럼 겪는다고 해도 믿지 않을 수도 있어.”

단호한 음성, 그만큼 사람의 고집이 쉽게 꺾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믿기 어려운 것일수록 더욱. 이미 사고력이, 주체성이 정착된 상황에서 그들의 시야에 정착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 든 어른일수록 고집이 더 셀 수 있어서 우리 말을 믿지 않고 정신 병원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나는 결국 한숨을 내뱉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일단 2층 다 찾아보고 나서 갈 수 있으면 거기로 가 보자.”

“그래.”

유원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뒤졌다. 사실 제일 먼저 보이는 이 방, 부부 방에는 딱히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도 그렇듯이 정말 딱 부부의 방이었으니까.

괜히 1층부터 먼저 본 게 아니었다. 유원의 말대로 A의 방은 1층에 있을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경로도 굳이 여기까지 올 만큼의 가치는 크게 없었다.

하지만 A에게 가족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다.

그들은 귀신을 믿는 A를 별종 취급하긴 했어도 그를 위해서 밑에 방으로 옮기게 해 주었다.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었고 그 말 그대로 A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으니까.

적어도 그 정도로 서로 간의 애정은 있는 가족이었으니 A는 그들이 걱정되어 경고를 남겼다.

처음에는 자신의 근처에만 남기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이 가는 곳으로 시작해서 가족이 있는 곳까지. 그만큼 흔적을 남기는 데까지 고민해서 거의 끝에서야 남긴 단서, 또 그만큼 신중하게 남긴 단서는 원래라면 바로 볼 수 있는 단서는 아니었다.

게임은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는 거니까.

나름대로 도박일지도 모르겠지만 밑에 귀신들이 움직이는 곳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해 본 선택이었다. 게다가 밑이 아니니 괜히 귀신에게 쫓길 필요도 아마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리고 역시 부부 방에는 별다른 게 없어 보였다.

“여기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그럼 옆방으로 가 볼까?”

“그래.”

옆방이면 A의 여동생 방이다. 유원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가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이 좀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 방인데 좀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친척이라 그런지, 아까 있었던 일 때문인지 어쨌든 망설임 없이 바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달칵.

흠칫.

문을 연 건 분명 이 집에 대해서 나보다는 잘 아는 유원인데도 아무렇지 않은 그와는 달리 나는 이상하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왜 그래?”

“모르겠어…….”

정말로 모르겠다. 왜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설마 이게 귀신의 영향인 걸까. 어쩐지 덜덜 떨리는 몸은 제어를 할 수 없었다.

“추워?”

“…아니.”

전혀 춥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추운 사람처럼 떨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무표정을 대부분 유지했던 것처럼 몸이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안아 줄까?”

“왜?”

“추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

“…그냥 여기서 나가자.”

굳이 남자애한테 안기는 상황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자 유원은 아쉽다는 표정을 잠깐 지으면서도 그러자고 했다. 아직 제대로 보지도 않았음에도.

“그냥 이대로 가도 괜찮아?”

물은 건 그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괜히 보지도 않고 나가는 게 아닐까 해서. 하지만 유원은 웃고 있었다.

“괜찮아. 게다가 지금 네 몸이 안 좋은데 그게 문제야?”

웃으면서도 쓴소리를 하긴 했지만. 하지만 틀린 거 하나 없었다. 어느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괜히 찔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몸이 이 상태면 힘들 거라는 생각도 들어서 나라도 잠깐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다만 나는 그 순간, 움직이지 못했을 뿐이었다.

“왜 그래?”

왜 나가지 않냐는 물음이다. 나는 그 순간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정리할 만한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움직이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문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분명 쿵쿵거리는 소리를 잘못 들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끼이익.

심지어 긁는 소리도 난다.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생각보다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이게 바로 게임에서 하트가 사라지면 나타나는 증상인가 싶기도 하면서 괜히 쓸데없는 데에서 게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난 정상인 상태도 아니었고 실제로 보는 귀신에게 면역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귀신을 보면 이 몸이 또 얼마나 약해지고 이상해질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났다.

너무 억울해서.

꿈이라면 진작 깨고도 남을 시간을 이런 데서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 게 열 받아서.

그래서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내 손이 끌려갔다.

“아무래도 안 괜찮아 보여서.”

손 정도는 잡아도 되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괜찮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유원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결국 움직여야 하는 건 나였고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꾸 이상한 생각을, 엔딩을 떠오르게 될 테니까.

그래서 겨우 고개를 들고 말을 꺼냈다.

“밖으로 가자.”

“그래.”

최대한 빨리 뛰어야 한다고 나는 미리 말했다. 유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너도 내가 지켜주겠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말로 쉽게 안심을 가질 내 몸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덜덜 떨었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았을 때 누구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