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선 애의 눈빛이 날카롭다. 훤히 드러나는 적대감. 반기지 않는 게 분명한 시선 끝에 서 있는 건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의 강태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 한다면 그 시선 속에선 호기심도 보였다는 것이었다.
투명하다 싶을 만큼 뽀얀 피부. 으레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운동장에서 살 테지만 축구 같은 것도 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얼굴에서 유독 붉은 입술이 돋보였다. 촘촘하게 박힌 속눈썹이 만들어낸 그림자 때문인지 눈매가 더욱 깊어 보였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표정을 한 녀석을 눈앞에 두고 상황과 맞지 않게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예쁘게 생긴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같은 또래의 남자애를 두고는 절대 해 본 적 없던 생각이었다.
사춘기가 한창일 나이에도 이차 성징이 시작된 남자애들에게서 느껴지는 칙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얼굴을 처음 마주하고 있자 손끝이 살짝 저린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일종의 전율 같은 거였다.
‘그럼 올라갈까?’
아마도 하영 이모의 집에 온 첫날인 것 같았다. 나를 강태영에게 간단히 인사시킨 하영이 이모를 따라 원래 게스트 룸으로 쓰이던 방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등 뒤로 시선이 느껴져 따가웠다. 아마도 강태영이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지내면 돼, 엄마가 자리 잡으면 바로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네.’
‘그리고 아까 봤지? 태영이.’
‘네.’
‘같이 지내면서 하민이가 많이 챙겨 줘, 무뚝뚝한 편이라 처음엔 친해지기 조금 힘들 수도 있는데 하민이가 먼저 말도 붙여 주고 다가가면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럴 수 있지?’
하영 이모의 말에 조금 전 보았던 냉랭한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같은 눈높이에 위치한 하영 이모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럼 짐 정리 후 밥 먹으러 내려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모가 방을 나갔다.
친해질 수 있을까?
강태영.
친해지기 어려울 것같이 생겼던데. 그래도 이 집에서 지내려면 어쩔 수 없더라도 이모의 말을 따라야 했다. 엄마가 다시 올 때까지만 잘 지내면 되니까…….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
날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혹시 시간이 좀 지나면 그래도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까는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했으면서도 왠지 점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쭙잖은 희망을 품고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있는 단출한 방에 가지고 온 짐을 풀었다.
사각. 뚜뚝.
갑자기 주변 환경이 훅 바뀌었다. 나는 강태영의 방에서 녀석과 함께 공부하는 중이었다. 친해지기 꽤 어려운 녀석이었지만, 매일 붙어 있는 사이가 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적응한 상태였다.
사각사각. 뚝.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여서 나도 모르게 바짝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그런데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몇 번이나 샤프심이 부러졌다. 이유는 옆자리의 강태영 때문이었다.
‘왜에. 아, 뭔데 왜 자꾸 쳐다보는데!’
남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자신은 그다지 급하지 않다는 건가. 거슬리는 시선에 결국 샤프를 내려놓고 강태영 쪽으로 완전히 상체를 틀었다.
‘아직도 걔랑 화해 안 했어?’
내 물음에 강태영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 딴에는 며칠 전 강태영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해외 유명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 후 잠깐 한국에서 지내는 중이라던 강태영의 사촌 형이 하는 과외가 있는 날이었다. 물론 과외는 강태영 혼자 받았다. 녀석은 곧장 사촌 형이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강태영이 과외를 받는 동안 혼자서 무료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정말 보통의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녀석이 다짜고짜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건 그날 밤이었다. 그즈음 강태영과 나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가끔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서로의 방이거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진 서재였다. 원래는 강태영의 아버지가 쓰시는 곳이었지만 아저씨가 집보다는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아지트 아닌 아지트가 된 곳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간 서재에서 강태영은 뜬금없이 요즘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고 고백했다. 정확히는 ‘나 요즘 거슬리는 새끼가 있는데’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다 말고 다짜고짜 거슬리는 새끼가 있다기에 처음엔 나를 두고 한 말인가 싶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강태영은 종종 같은 말도 보통의 의미와는 살짝 다르게 쓰곤 했기에 나는 잠깐 고민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거슬린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일지 긍정적인 의미일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라면 말 그대로 짜증 나게 하는 어떤 인간 때문에 신경에 거슬린다는 것이겠고 후자라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새끼’라는 단어를 쓰는 건 이상하긴 했지만 강태영은 원래 좀 이상한 애였으니까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원래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편이 아닌 강태영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것 정도? 정확히 누가 뭘 어떻게 녀석을 건드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태영 말의 뉘앙스를 보았을 때 딱히 좋은 쪽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말을 잇는 녀석의 표정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당장 그 거슬리는 새끼를 눈앞에 잡아다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다는 그 얼굴은 도저히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얼굴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 강태영이 누군가와 마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태영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을 마음속으로만 애도했다.
‘화해?’
강태영의 목소리가 며칠 전 있었던 일을 상기해내던 나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거슬린다는 애 있다고 했었잖아. 싸워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던 강태영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런 거 아닌데.’
‘……그럼?’
‘궁금해?’
궁금하다고 해야 하나?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호기심이 생긴 한편 왠지 모르게 육감은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궁금하긴 한데, 너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짓밟고 싶어.’
‘……뭐어?’
‘정확히는 내 아래에 깔아 두고 울리고 싶어.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더 심해져. 보고 있으면 좋은데 그만큼 망가트리고 싶어.’
당황스러운 소리를 쏟아내는 강태영이 문득 너무 가깝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자 강태영이 내 목울대로 시선을 잠깐 내렸다가 다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주위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넌 이런 적 없어?’
나는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천천히 멀어지는 강태영이 어쩐지 나를 비웃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쿨럭, 큽.”
터지는 기침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꿨던 꿈이 너무 진짜 같아서 순간,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나는 멀뚱히 눈알을 굴렸다. 교복도 없었고 하영 이모의 집도 아니었다. 강태영과 함께 공부하던 꿈은 과거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딱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실망을 넘어서 배신감마저 들었다.
갑자기 왜 그 시절의 꿈을 왜 꾸게 된 건지 모르겠다. 깨고 나면 꿈의 내용은 서서히 흐려져서 그날 밤에는 무슨 꿈을 꿨는지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일이 보통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 꾼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강태영이 짓밟고 싶다던 그 애는 어떻게 되었을지.
……누구인지.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됐다. 어기적거리며 밖으로 나오자 강태영이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우중충한 날이었다. 녀석이 담배를 피우는 건 가게에서 일할 때 이후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강태영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시선을 돌려 방에서 나온 나를 쳐다봤다. 이제는 문을 열면 더운 공기가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이미 실내에는 은은하게 에어컨을 켜 둔 채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어정쩡하게 걸어 나와 소파에 앉는 것까지 끈덕진 시선으로 보던 녀석이 담배를 끄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알싸하고 매캐한 향이 났다. 그에 살짝 기침하자 강태영이 공기청정기를 켰다. 익숙한 집 안 풍경이었다.
며칠 내내 강태영 또한 외출 같은 건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녀석과 나는 24시간 내내 붙어 있었고 그중 절반은 맨몸으로 엉겨 붙어 있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가만히 있으면 가끔은 아래가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강태영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동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주입했다. 맞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고 강태영이 원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예전엔 좀 어려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땀 흘렸네?”
내 이마를 꾹 누르고 떨어진 강태영의 손등에 물기가 찍혀 있었다.
“에어컨 틀어 놨는데 더웠어?”
“아니.”
“근데?”
“……덥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왜 땀을 흘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돌려 말하자 나른한 시선으로 나를 살피던 녀석은 더 캐묻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함께 식사하기 위해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선 강태영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저항 없이 손을 맞잡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역시나 내 몸은 커다란 티 한 장을 걸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이젠 이런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구운 야채가 들어 있는 샐러드를 포크로 푹푹 찍어 먹으며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는다. 포크로 음식을 찍어 올린다. 입으로 가져온다. 턱과 근육을 이용해 음식을 씹는다. 삼킨다.
반복되는 일련의 행위를 하는 내내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는데도 내가 뭘 보고 있는지 지금 삼킨 게 구운 감자인지 가지인지 계란인지도 몰랐다. 당연히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야 하기에 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그러다 한 번씩 강태영이 말을 걸면 그때서야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것처럼 녀석의 얼굴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맛이 느껴졌다.
“오늘따라 더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강태영의 목소리에 나는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번쩍 정신을 차렸다. 나갔던 초점이 돌아오고 묘하게 찌푸려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녀석의 신경을 거스를 만한 행동을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 뭔가 했다고 할 만한 게 없긴 했다. 일어나서 식사를 하자고 한 녀석을 따라 밥을 먹고 있는 게 전부였으니까. 나는 당황한 채 강태영을 바라봤다.
“어디 아파?”
“아니.”
“그럼?”
화를 내려는 건가 싶던 강태영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포크를 슬그머니 내려놨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눈치만 보며 주변을 살피다가 겨우 “내가 뭐 잘못했어?” 하고 물었다.
“아니면 왜 그따위로 쳐다보는데?”
내 물음에 강태영은 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도대체 내가 자신을 어떻게 본다는 건지 나는 지금 내 표정을 알 수 없으니 의아하기만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을 텐데 뭐가 어떻다는 건지. 어쨌든 녀석을 보는 시선이 문제인 것 같아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강태영의 기분을 망가트리려는 의도는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보지 마.”
녀석이 말하는 ‘그렇게’라는 게 도무지 어떤 것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언제는 허파에 바람이라도 든 사람처럼 웃더니 요즘은 통 안 웃는 거 알아?”
내가 그랬나. 나는 어색하게 입가를 매만졌다. 강태영의 시선이 내 얼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좀 웃어, 눈에 힘도 좀 주고.”
언제부터 그렇게 내 표정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게 강태영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닐 것 같은데.
“으응.”
슬그머니 치미는 반항기를 감추고 순종적으로 대답하며 느리게 시선을 들었다. 강태영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눈에 들어온 녀석의 표정은 썩 좋지는 않았다.
“밥은 그게 다 먹은 거야?”
“어, 응.”
“넌 어떤 샐러드가 좋은 것 같아?”
강태영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내가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는지 강태영이 조금 전까지 먹고 있던 샐러드 볼을 툭툭 건드렸다.
“이거 말이야, 샐러드. 넌 어떤 샐러드가 좋냐고.”
“나, 나는 그냥 구운 야채 들어간 거, 방금 먹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또.”
내 대답에 눈썹을 끌어 올린 강태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또 어떤 게 있었지? 나는 그동안 먹었던 샐러드를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건망증이 심해지기라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꽤 자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먹고 싶은 거 있어? 도시락 업체 바꿔 볼까?”
“…….”
“한 군데서만 먹으면 메뉴가 바뀐다고 해도 물리는 느낌이 있으니까.”
“난 다 좋아, 그냥…… 너 원하는 대로 해.”
나에게 무언가에 대한 선택권이 생긴다는 게 달갑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상관없다는 것은 진심이었다. 별로 나쁜 대답은 아닌 것 같았지만 강태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최근에는 녀석이 원하는 대답을 잘 알아챘던 것 같은데, 이게 아닌가? 슬그머니 강태영의 눈치를 보았지만 희한하게도 녀석은 그저 가만히 일어나 식탁 위를 정리했다.
움직여도 되는 걸까?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먹는 거 까먹지 마.”
정리를 마친 강태영이 내 손바닥에 흰 알약을 올려놓았다. 더 이상 단순한 비타민이 아닌 것을 아는 약을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약을 먹고 30분쯤 지나자 정신과 몸이 까무룩 가라앉았다. 늘어지는 몸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길게 눕자 이쪽으로 걸어오는 강태영이 보였다.
“근데…… 나 먹는 거 뭐야? 하얀 거.”
말이 느리게 나왔다. 강태영은 어눌하게 묻는 내 앞에 앉았다. 내가 누워 있는 소파를 마주 보는 상태로 바닥에 앉은 녀석이 내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넣었다.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오가는 손가락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비타민 아닌 거 알아.”
“이제야 알았어?”
강태영이 픽 웃으면서 물었다. 하나도 웃기지 않은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약 기운 때문인지 나도 녀석을 따라 피식 웃었다. 하긴, 모르는 게 등신인 건데. 자조적인 생각은 거기서 끝이었다. 약이 아니었다면 한참을 더 파고들었을 우울한 생각이 역시나 스위치를 내린 듯 차단됐다.
나를 보며 눈을 맞추고 있던 강태영의 손이 바지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일이었다. 막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몽롱한 정신을 깨워 주면 좋을 것 같아서 몸을 늘어트렸다.
“……아.”
손가락이 쉽게도 아래를 파고들었다. 간밤에도 강태영의 성기가 들락거렸던 아래는 몇 번 쑤시지 않아도 부드럽게 열렸다. 깊게 파고든 손가락이 내벽을 쑤시자 금세 찌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
아래를 지분대던 손가락이 빠져나간 후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강태영이 내 몸을 돌려 소파 아래로 두 발이 바닥에 닿게 했다. 소파 의자 부분에 등만 기댄 채 강태영의 얼굴 앞에서 다리가 활짝 벌어졌다. 두 허벅지가 나란히 강태영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약을 먹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질겁했을 자세에도 난 별다른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거친 숨만 내쉬었다. 손가락이 쑤시던 자리가 허전했다.
“아……!”
이제 흉포한 좆이 들어올 차례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눈을 번쩍 떴다.
성기가 아니었다. 벌어진 구멍을 빨아대고 입구를 간질이듯 파고드는 건…….
“너 그거 알아? 이제 이렇게만 해도 전보다 여기, 잘 벌어지는 거. 빨아 주면 오물거려.”
강태영이 골 사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난 좀 헐거운 게 좋을 것 같은데. 넌 씨발, 해도 해도 좁아터졌어.”
버둥거리는 양다리를 강하게 잡고 오히려 더 활짝 벌린 강태영이 다시 몸을 숙이고 아래에 입을 댔다. 녀석이 턱을 벌려 입을 벌렸다가 다물 때마다 아래가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읍, 윽.”
길게 내뺀 혀로 회음부부터 핥아 구멍 안까지 찔러 넣을 때마다 몸이 팔딱거렸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틀며 피하려고 하자 강태영이 다리를 밑으로 주욱 잡아당겼다. 그 탓에 전보다 녀석이 얼굴이 더 바짝 붙여졌다.
“아, 아. 제…… 으, 발.”
강태영은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벅지를 틀어잡고 입을 놀렸다.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더니 나를 약 올리듯 도리질 치며 안쪽으로 더 파고들었다.
강태영이 아래를 잔뜩 적시고 나서야 얼굴을 떼어내자 젖은 살갗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태영이 몸을 일으키면서 다리를 위로 잡아 올렸다. 허리 부분이 소파에서 떨어져 붕 떴다. 녀석이 내 허벅지 뒤쪽을 꾹 누르자 등이 둥글게 말리고 무릎이 양 귀 옆에 닿았다.
“흐으.”
적나라하게 아래가 모두 드러났다. 둥글게 말린 자세에 내 눈에도 잘 보였다. 벌겋게 달아올라 통통해진 회음부 위를 강태영이 제 좆을 잡고 탁탁 소리가 나게 몇 번 쳤다. 꼬리뼈부터 기분 좋은 찌릿함이 골까지 타고 올라왔다.
뭔가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듯 명치가 싸하게 달아오르는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순간.
“아아, 흐윽.”
곧바로 핏줄 선 기둥이 구멍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윽, 아파……, 윽.”
몇 날 며칠 동안 잔뜩 헤집어진 아래로 삽입된 살덩이가 혹사당한 내벽을 짓누르며 비벼질 때마다 아팠다.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약으로도 육체적 고통을 없애는 건 불가능 한 건지 아랫배에선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고 입구는 따가웠다.
“좋다고?”
전혀 딴소리를 하며 강태영이 곧바로 허리를 움직였다. 거칠게 처박는 입구에서는 연신 찔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좆이 드나드는 결합부는 눈앞에 바로 보였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됐다. 구멍이 강태영의 좆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저게 내 몸의 일부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시각적 자극 탓인지 쾌감이 좀 이르게 느껴졌다.
“아, 흐익……!”
좆을 끝까지 밀어 넣은 채로 둥글게 내벽을 비비던 강태영이 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면서 위, 아래로 내 성기를 흔들었다.
“아, 아!”
“이제 안 아파?”
“우, 윽.”
“좋지?”
발버둥을 치자 뒤꿈치가 강태영의 등을 탁탁 찼다. 손가락으로 요도구를 문지르면서 성기를 흔들어대는 큰 손에 오금이 저렸다. 무릎이 자꾸만 가운데로 모였다. 아랫배가 땅땅하게 땅겨지면서 요의 비슷한 사정감이 치솟았다.
“좋아 죽네.”
“……안 좋…… 끅.”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갑자기 감정이 날뛰었다. 강태영이 원하는 대답을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도 일었다. 뭔지 모를 약을 주는 대로 받아먹고는 강태영의 좆으로 처박히며 좋다고 몸을 떨어대는 나에게 혐오감이 일었다.
어떻게 이래, 내가. 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지독한 자기 혐오감이었다. 강태영이 수없이 말한 대로 말로만 싫다면서 녀석과의 관계에서 결국 흥분하고 마는 내가, 지금도 녀석의 좆을 받으면서 붉게 물들어 뻐끔거리고 있는 구멍이, 아랫배를 떨어대는 내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응? 뭐라고?”
왜인지 기대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흡, 히끅.”
“못 들었어, 다시 말해.”
“싫, 흑…… 다고.”
분명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느끼기에 약발은 충분히 돌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군가 내 뇌를 주무르는 것 같았다. 내가 내뱉은 말을 곧장 주워 담고 싶었다.
“싫어?”
강태영이 별안간 내 양 볼을 한 손으로 잡은 채 꾹 누르며 물었다. 무언의 협박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뚫릴 것처럼 강하게 잡힌 볼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대답해 봐, 싫어?”
강태영은 내 볼을 쥐고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그래, 흐읏, 시……르, 아!”
짜악!
완전한 형태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내 얼굴을 잡고 있지 않은 손이 관자놀이로 날아들었다.
“다시.”
눈앞에 섬광이 일었다.
“흐윽, 읍.”
“다시, 대답.”
강태영의 새까만 동공에선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으으, 아니. 아니야.”
이제야 입이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강태영의 말대로 나는 가끔 녀석에게 처맞고 싶어서 이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뭐가 아닌데.”
“안 시, 싫…… 흑, 어.”
“응.”
산뜻한 대답과 함께 볼을 놔준 강태영이 다시 내 성기를 주고 흔들었다.
“아흐읏.”
얼마 지나지 않아 확 조이는 힘에 어이없게도 쉽게 사정하고 말았다.
“싫은데 내 손에 이렇게 싸는 게 말이 돼?”
탈력감을 느끼며 헐떡이는 내 볼에 쪽, 쪽 쪼듯 입을 맞춘 강태영이 말했다. 눈물로 짓이겨진 눈에 하얀 정액으로 범벅이 된 녀석의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강태영은 그 손으로 내 양 볼을 꽉 붙잡았다. 비릿한 정액 냄새가 훅 끼쳤다. 볼이며 입가가 온통 정액투성이가 된 내 얼굴을 내려다보는 강태영의 눈빛이 미묘했다.
강태영이 양 손바닥으로 내 볼을 문질렀다. 기분 탓인지 아까 전 때렸던 곳은 더 느리고 부드럽게 만지는 것 같았다. 단순히 쓰다듬는 건지 정액 범벅을 만들려고 하는지 의도를 모르겠는 움직임이었다.
녀석은 마지막으로 장난감 두드리듯 내 볼을 툭툭 쳐대고 손을 뗐다. 볼에서 멀어지는 손길에선 조금의 죄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도 참 이 짓거리 좋아해, 나랑. 그냥 인정하면 편할 텐데.”
강태영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는데 부정할 수 없었다. 녀석은 내 얼굴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인지, 강태영의 눈에 비치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아니라고, 너랑 하는 이 짓을 내가 좋아할 리가 없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누가 입술을 붙여 놓기라도 한 듯 입을 벌릴 수조차 없었다.
셀 수 없이 강태영과 붙어먹으면서 느꼈던 쾌감이 오감을 지배했다. 싫기만 했다고, 끔찍하기만 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자꾸만 머릿속에서는 사정하며 좋아서 벌벌 떨어댔던 내 모습이 그려졌다. 쾌감에 살가죽이 짓이겨지는 것도 모른 채 온몸을 뭉개고 비벼댔던 것도. 그런 적이 아예 없었다고 부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강태영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알아.”
뭘 안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연 강태영이 입가에 묻은 정액을 손가락으로 훑어 모아 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축 늘어진 채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비릿한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빨기까지 했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강태영은 이미 정액은 남아 있지도 않은 제 손가락을 쪽쪽 빨아 당기는 나를 만족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쏴아아.
투두둑.
사위가 조용해지자 쪽쪽 살을 빨아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우중충하다 싶더니 비가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는 건물을 뚫어 버릴 기세로 맹렬하게 내렸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꽤 거셌고,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강태영의 손가락이 혀를 꾹꾹 눌렀다. 손끝 살로 돌기가 있는 넓적한 면적을 눌러 비비기도 했다. 손가락이 목구멍 쪽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구역질을 참기 위해 나는 목구멍을 열며 코로 더 크게 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입가로 묽은 침이 흐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침 범벅이 된 손가락이 빠져나간 뒤에는 강태영의 혀가 흐른 침을 핥은 뒤 입 안으로 들어왔다. 제멋대로 목구멍 쪽을 쑤셔대는 손가락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숨이 살짝 모자란 채 시간이 지나서인지 정신이 몽롱해졌다.
얼굴 양옆에 팔을 뻗어 지탱한 채 키스하는 강태영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상체를 살짝 세웠다. 볼 안쪽 살을 긁어대는 혀 때문에 왼쪽 볼이 사탕을 품은 듯 볼록 솟았다 꺼졌다. 이상하게 달게 느껴지는 강태영의 혀를 빨았다.
이러니 강태영이 그딴 소리를 해도 반박을 못 하지. 자조적으로 웃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걸 느꼈는지 강태영이 눈을 살짝 뜨고 나를 쳐다봤다. 가늘게 뜨인 눈을 마주하며 열심히 녀석의 혀를 빨았다.
강태영의 젖은 손이 사타구니를 향했다. 섹스 후 몰린 피가 아직 풀리지 않아 부푼 회음부를 비벼대며 미끄러진 손가락이 젖은 입구 주름을 꾹꾹 눌렀다. 나는 몸은 날갯짓하듯 등뼈를 꿈틀거리고 발가락을 오므렸다. 관계 후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몸은 한껏 예민했다. 호흡이 짧아졌다.
기대를 하고 있는 건지 겁을 내고 있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고환을 주물럭거리던 손이 벌레처럼 기둥을 타고 기어 올라왔다. 성기를 위아래로 흔드는 악력에 표피가 밀려 벗겨질 듯했다. 고통스러웠지만 끝에 달라붙는 쾌감에 나는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쳤다. 차라리 아픔밖에 느끼지 못했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흐읏, 아.”
M 자로 양다리가 벌어졌다. 오금을 잡은 강태영이 다리를 내 몸 쪽으로 꾹 누르며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섰다. 흰 정액이 말라붙은 성기로 회음부와 기둥을 비벼대며 녀석이 한 손으로 나를 마주 안았다.
강태영의 어깨에 턱을 올리자 꿈틀거리는 등 근육이 보였다. 강태영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살아 있는 것처럼 근육이 움직였다. 나는 달뜬 신음을 흘리며 흐릿한 시야로 녀석의 몸을 훑었다. 이렇게 등을 바라본 적은 처음인 듯했다. 강태영의 등에는 군데군데 길게 긁힌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아…… 하으.”
나도 모르게 내 손톱을 살피는 사이 강태영이 자신의 성기와 내 것을 한 손으로 잡고 비볐다. 프리컴이 흘러서 질척해진 살덩이가 찔꺽, 찔꺽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강태영의 입술이 목을 쪼아댔다. 쇄골의 움푹 들어간 부분은 혀를 내어 핥다가 이로 깨물기도 했다.
물리는 건 위쪽인데 아래가 저릿했다. 피가 다 하체로 쏠리는 것 같았다. 성기와 회음부, 구멍 할 거 없이 탱탱하게 부어서 땅기는 게 아프기까지 했다. 근질거리는 아래가 벌름거렸다. 얼른 빈 곳이 채워졌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소름 끼쳤다.
“……너는, 흐으…… 좋, 조아?”
쪽쪽 맞붙어 오는 입술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물었다. 항상 강태영이 나에게 묻곤 했지 나는 역으로 물어본 적 없던 질문이었다.
나와 이러고 있는 너는 좋으냐고.
나도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몰랐다. 순간 강태영의 움직임이 고장 난 로봇처럼 뚝 멈췄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강태영은 곧 다시 움직였다. 젖은 귀두 끝이 구멍 주변부 주름을 문질렀다. 귀두부터 받아들이기 버거운 좆이 안을 파고들었다. 내벽이 틈이라고 할 것 없이 강태영의 좆에 들러붙었다.
“하으윽!”
단단한 성기가 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 욱…… 윽.”
기다리고 있었으면서도 삽입되는 성기가 끝도 없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자 덜컥 겁이 나서 강태영의 단단한 어깨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자신에게 안기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강태영이 웃으면서 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가며 피해 봐도 소용없었다. 턱이 붙잡히고 혀가 들어왔다. 강태영은 아예 얼굴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붙이는 키스를 이어 갔다.
“우읍, 우.”
몸이 점점 뒤로 내려간다 싶더니 식탁 위에 등이 닿았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표면이 조금 식어 있었지만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땀이 젖은 뜨거운 살갗에 식었던 부분은 금세 다시 달궈졌다.
강태영이 내 양 손목을 결박한 후 잡아 올렸다. 내 몸 위로 길게 누운 자세가 된 강태영의 상체가 내 가슴 위를 완전히 덮었다. 옭아매는 혀가 여전했고, 입 안 점막이 모두 빨렸다. 츠으읏, 츕. 혀가 닿고 빨리는 자리마다 소리가 흐트러졌다.
“아, 윽…… 하으, 아.”
길고 굵은 기둥이 끝까지 들어왔다 느리게 빠져나가면 입에서 달뜬 신음이 터졌다. 내벽이 젖은 성기에 달라붙어 떨어졌다가 도로 달라붙는 느낌이 선연했다. 윗입술을 핥던 혀가 다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후흡, 츳.”
한참 후에야 혀가 빠져나갔다. 강태영은 턱과 쇄골을 지나 가슴을 빨아댔다. 강태영의 입에서 뱉어진 유두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상하게 흐린 시야로 보이는 유두가 전보다 좀 더 커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 윽.”
강태영의 움직임이 점차 거세어졌다. 음낭이 구멍을 쳐댈 정도로 강한 힘에 아래가 맞닿으면 그 반동에 몸이 뒤로 밀렸다.
“후으.”
강태영이 결박하고 있던 손목을 풀고는 양 허벅지를 단단하게 잡고 박아대는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치받고 들어오는 굵은 성기를 피할 수가 없었다. 허리와 배가 위쪽으로 살짝 들린 채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기가 퍽, 퍽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움찔거리며 빠듯하게 벌어지던 내벽 안쪽에서 완전히 젖은 소리가 났다. 들어오는 길이 미끄덩한 게 느껴졌다. 처음보다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쑤욱, 쑥 삽입되는 성기가 특정 부분을 비벼대고 찔러 오자 아랫배부터 성기와 회음부, 구멍까지 퉁퉁 붓는 느낌과 함께 열이 올랐다.
“아으으, 우븝.”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연신 쏟아졌다.
“아, 아아.”
강태영이 옆으로 내 몸을 돌려 눕혔다. 성기가 내벽에 그대로 박힌 채 반쯤 빙글 돌게 된 나는 모로 누워 아랫배를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비죽 솟는 것 같은 쾌감이 순식간에 전신을 강타했다. 요란하게 몸을 떨며 바닥으로 질질 정액을 흘렸다.
“후, 흐읏, 씨이발.”
뒤로 움직였다가 그대로 깊게 쑤셔 넣던 강태영의 자제가 순간 흐트러졌다.
“아아아아!”
짙은 쾌감에 몸을 떨면서 바닥을 손으로 밀어냈다. 무엇이든 잡고 싶었다. 꺾인 목구멍에서 꺼억, 꺽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강태영이 내 다리를 잡고 다시 움직였다. 뒤집어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눈꼬리를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관자놀이가 땀과 눈물로 젖어 질척했다.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는데 바짝 선 좆이 허공에서 꺼덕거렸다. 위아래로 요동치는 허리를 틀어잡은 강태영이 어금니를 씹으며 바짝 조여든 내벽 안을 억지로 쑤셔 박았다.
좆을 씹어 무는 건지 진입을 막으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줄어든 내벽을 파고드는 좆은 없던 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거침없었다. 이미 한참 전에 그 모양대로 길이 난 내벽은 알아서 길을 터 주듯 곧 좆이 파고들 공간을 만들어냈다.
“흐윽, 으…….”
고환까지 처박힐 정도로 뿌리 끝까지 박아 넣은 강태영은 여전히 심하게 떨어대는 내 상체를 결박하듯 끌어안고 뿌리 끝부분만 뺐다 넣기를 반복했다. 뺄 때는 애태우듯 느리게 빠져나가더니 들어올 땐 구멍이 찢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난폭했다. 퍽, 퍽 소리가 다 났다. 억지로 힘을 주면 그대로 고환까지 밀어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아.”
몇 번이나 같은 짓을 반복하던 강태영이 뿌리 끝까지 박아 넣고도 파고드는 힘을 풀지 않은 채 입술을 붙였다. 혀가 닿는 것과 동시에 아래를 채우는 정액이 느껴졌다. 사정하는 내내 강태영은 집요할 정도로 혀를 빨아댔고 내 숨을 먹어 치울 듯 굴었다.
깊게 쑤욱 밀고 들어오는 성기의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으려고 하는 때에 이질적인 소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잃지 않고 버텼다.
당장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 환청이라도 들은 것인가 했지만 강태영의 시선도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간 것을 봐서 환청을 들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강태영과 내 시선에 동시에 닿은 곳은 인터폰이었다.
“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힘없이 흐르던 피가 갑자기 빠르게 순환하는 것 같았다. 인터폰 화면에 비친 인물을 확인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곧 죽을 것 같던 몸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왔다. 발작적으로 강태영을 밀어냈다. 내벽 깊이 박혀 있던 살덩이가 빠져나가자 아랫배가 저릿했다.
“히익.”
“왜.”
“이, 이모.”
“그래서?”
갑자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자신을 밀어내고 피하는 나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던 강태영이 바닥으로 떨어져 벌레처럼 기는 내 발목을 잡았다.
강태영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어 충격에 빠진 채 녀석을 쳐다봤다. 그래서라니. 이 상황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딴 모습을 보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놔!”
“뭘 놔.”
“미쳤……! 놓으라고!”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톡 건드리면 깨져 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한 이모가 다시 인터폰 화면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이모 왔, 왔잖아……! 제, 발…… 흑, 놓으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의 강태영을 향해 발이며 주먹을 마구잡이로 내질렀다. 그러나 몇 시간을 내리 녀석에게 안겨 혹사당했던 몸은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근육이 제멋대로 힘을 잃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은 금방 제압당했다. 양팔이 옆구리에 딱 붙은 채 강태영에게 안겼다. 완벽한 제압이었다.
“하윽! 아아, 흣.”
상체를 결박하며 끌어안은 통에 팔은 무용지물이었다. 허공에 발길질을 퍼붓는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강태영이 보지 않고도 젖은 채 벌어진 구멍에 수월하게 좆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흑, 아아아!”
강태영의 가슴과 내 가슴이 한 치의 틈새도 없이 맞닿았다.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안쪽에 퍼부어져 있던 정액이 구멍 입구에서 주르륵 흘러 꼬리뼈까지 타고 흘렀다. 밖에서 이모에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비명 섞인 신음을 내지르며 울었다. 강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움직였다. 나는 엉엉 울면서 발뒤꿈치로 연신 강태영의 등과 허리를 내리꽂았다.
띠리릭.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가 쏟아내던 모든 소음이 멎었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입을 뻐끔거렸다. 목구멍에서 끄르륵하고 침이 끓는 소리가 난 게 전부였다.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눈도 감지 못했다. 그렇지만 현실을 마주하는 건 무서워서 넋이 나간 채 거실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후으.”
모든 게 멈춘 것 같은 순간 움직이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강태영은 낮은 신음과 함께 뿌리 끝까지 넣어 깊숙이 사정한 직후의 성기를 뽑아냈다. 그와 동시에 짧은 비명과 함께 쿵 소리가 들렸다. 나를 보고 있던 강태영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
눈을 감고 누워 있는 하영 이모의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얼른 모자를 더 내려쓴 채 고개를 숙이고 병실을 나왔다. 이모의 얼굴을 잠깐 확인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려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병실 문 앞에 서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도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태영이 다가왔다.
“왜 나와 있어?”
강태영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내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 녀석이 등을 살짝 구부려 눈을 맞추려는 걸 피했다.
“엄마 깼어?”
고개를 젓자 강태영이 그럼 들어가자면서 어깨를 감싸고 병실 문을 열었다.
“……싫어.”
“뭐?”
“혼자 들어가.”
“그럼 넌?”
“난 여기 있을래.”
내 말을 무시한 강태영이 어깨를 감싼 팔을 풀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지만 이모가 누워 있는 병실에 들어갈 수 없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얼마나 힘을 줬는지 관절이 뻐근해질 정도였다. 조금씩 발바닥이 밀리긴 했지만 강태영을 한 번 더 멈춰 세울 순 있었다.
“뭐 어쩌겠다고.”
“그러게 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이모가 누워 있는 침대가 슬쩍 보였다. 끔찍했다. 거실에서 나뒹구는 강태영과 나를 보고 이모가 정신을 잃었다. 도대체 나는 강태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여기 너 혼자 두고 어떻게 들어가?”
“…….”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나는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그에 반해 강태영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얼굴이다.
“들어가.”
회유는 끝났다는 듯 단호한 명령이었다.
“너 여기 보는 눈 있다고 내가 아무 짓도 못 할 것 같아? 벌써 그런 것도 다 보여 줬는데?”
내가 순순히 움직이지 않자 강태영이 말을 덧붙였다.
이모 앞에서도 그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던 녀석이 하는 말에 실린 무게는 무거웠다. 나는 사지로 발을 들이는 사람처럼 끔찍함을 뒤집어쓴 채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병실 안으로 들어서야 했다.
나는 최대한 이모의 얼굴이 안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모가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할지, 또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이 모조리 휘발된 듯 완전 백지장이었다.
휴대폰을 보던 강태영이 심심하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뒤늦게야 나에게는 볼 것도 할 것도 없다는 게 생각났다는 듯 멋쩍게 웃으면서.
“TV라도 틀까?”
1인 병실이었다. 채널 결정권자가 분명히 정해져 있다는 말이었다. 집에서도 TV를 자주 보지 않는 강태영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집에서 TV만 보고 살던 애가 왜 그런 것도 모르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태영은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뭐가?”
“너……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이러면 너한테도 좋을 게 없잖아.”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라, 뭐.”
내 말에 작게 실소한 강태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은 닥쳤을 일이야.”
“…….”
“그렇잖아, 너랑 나랑은 어차피 평생 이렇게 살 텐데.”
평생?
강태영의 입에서 ‘평생’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목이 콱 막혔다. 혀가 목구멍 쪽으로 말려 들어가서 숨도 안 쉬어지고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앞이 아득해져서 현기증이 핑 돌았다.
그러나 내 상상인 건지 실제로는 호흡곤란을 겪지도 않고 숨은 잘만 쉬었다. 단지 숨소리가 평소보다 매우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이미 아슬아슬했어, 우리.”
강태영의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가 보였다. 강태영의 말에 막 입술을 떼었을 때였다.
“……태영아.”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충격에 정신을 잃었던 이모가 눈을 떴다. 강태영을 먼저 인지한 이모의 눈이 그의 옆에 있던 나로 향하더니 일순간 사나워졌다. 나는 숨을 들이 삼켰다. 일어나려고 하는 이모를 강태영이 부축했다. 강태영의 이름을 애달프게 불렀던 적 없는 것처럼 이모는 자신을 도우려는 강태영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이모는 자신이 한 행동에 놀란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며 자신이 쳐낸 강태영의 손을 다시 끌어와 빨개진 손등을 어루만졌다. 나 역시 놀랐다. 이모는 강태영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쳐냄을 당한 강태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이모와 나만 당황한 채 강태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프지?”
“괜찮아요.”
“어, 엄마는…… 엄마가.”
“천천히 말씀하세요.”
할 말은 많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듯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은 이모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본 거…….”
가장 크게 당황해야 할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강태영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다음 말을 잇기 어려운 듯 입술만 달싹거리던 이모는 한참 뒤에야 겨우 “……아니지? 엄마가 뭔가 잘못 본 거지?” 하고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뭘 보셨는데요?”
강태영의 물음에 이모의 얼굴이 더는 하얘질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 갔다.
“보신 대로예요. 거기서 더 설명이 필요해요?”
“태영아! 저, 저게 너한테 무슨 짓 한 거지? 응?”
이모는 강태영의 질문은 들리지도 않는 듯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를 경멸하는 투가 역력했다. 손가락질만 하고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이모가 강태영의 양팔에 매달리듯 그를 잡고 흔들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응? 쟤가 왜 그 집에 있고. 그, 그건 다 무슨……. 너 진짜 미쳤어? 뭐에 홀려서 이래? 응?”
이모가 속이 탄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반나절 사이에 이모는 수척해져 있었다. 수분기 하나 없이 버석하게 마른 입술이 곧 갈라질 것도 같았다.
“협박이라도 당했어? 뭐라는데? 저 새끼가 뭐라는데 둘이 왜 그러고 있었던 거냐고!”
이모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강태영은 메마른 눈길로 이모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젖은 이모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모는 애써 그걸 보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이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너, 너 이 새끼 태영이한테 무슨 짓 했어? 너 원래 그런 애였어? 어? 언제부터? 언제부터!”
이모가 눈을 뜬 순간부터 목소리를 잃은 나는 입만 벌렸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듯 벌떡 일어난 이모를 강태영이 막아서며 도로 침대 위에 앉혔다.
“진정하세요.”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어떻게 진정을 해! 너…… 흑,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래? 네가 어떻게 이래!”
이모가 이번에는 강태영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얼마간 가만히 맞고 서 있던 강태영이 이모의 손목을 잡았다.
“이렇게 흥분하실 거 없어요,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
위를 올려다보는 눈에서 애처롭게 눈물이 방울져 볼을 타고 흘렀다.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좋아요.”
“…….”
“호적에서 파고 싶다면 그래도 되고.”
병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근데 그러실 거 아니잖아요, 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거예요. 제가 아버지 회사 물려받는 거 원하시잖아요? 아버지 재산도 필요하실 테고. 재준이 형도 있는데 엄마한테도 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쯤 되니 이모도 아예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입을 반쯤 벌린 채 강태영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흐릿했다.
“이제 끼어들지 마세요. 괜히 백하민 어디 보내겠다고 하지도 말고 집에 불쑥 찾아오지도 마시고요. 다 큰 자식 집에 연락도 없이 찾아오시니까 그런 꼴 보게 되시는 거잖아요. 전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어요.”
아무런 대꾸도 몸짓도 없던 이모가 강태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나는 내가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먹이 희게 질려 있었다. 한계치까지 긴장하고 있었던 건지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몸이 풀리지 않았다. 또 무슨 말이 쏟아질까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저 왔어요.”
의료진일 것이라 생각했던 내 귀에 생각지도 않았던 이의 목소리가 박혔다. 고개는 더더욱 들 수 없었다. 강태영이 부른 걸까? 이제는 주먹이 아예 부들부들 떨렸다.
“괜찮으신 거예요? 갑자기 쓰러지셨다면서요.”
병실 안을 부유하는 공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던 재준이 형이 다시 말을 이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 하민이야?”
이 순간만큼 투명 인간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을까? 얼굴은 보여 주지도 않았는데 한눈에 나를 알아본 재준이 형이 원망스러웠다.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꽉 감았다.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민이도 소식 듣고 온 거야? 엄청 오랜만이네?”
형이 점점 다가왔다. 졸도할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비죽 흐를 때 나에게 가까워지는 형을 강태영이 먼저 막아섰다.
“왔어?”
재준이 형을 막아서고 있는 강태영의 다리가 보였다. 녀석의 물음으로 보아 재준이 형을 이곳으로 부른 건 강태영인 듯했다. 좀처럼 자리를 비켜 주지 않을 것 같은 그를 보고 나서야 빠르게 뛰던 심장이 다시 원래의 리듬을 찾아갔다.
그러다 별안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준이 형을 막아 준 강태영에게 안도하는 내 꼴이.
“어…… 재준이 왔구나.”
뒤늦게 애써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로 이모가 재준이 형을 맞았다. 뭐라도 마시겠냐는 물음도 이어졌다. 이모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 아들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절대 알게 하지는 않을 거였다.
“네, 갑자기 왜 쓰러지신 거예요? 병원에서는 뭐라던가요? 괜찮대요?”
“빈혈이래.”
재준이 형이 이모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강태영에게서 나왔다.
“입원할 정도로 안 좋으신 거래? 빈혈이면 계속 안 좋으셨을 텐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나는 강태영의 뒤에 숨어서 재준이 형의 목소리를 들었다. 형의 다정한 음성은 여전했지만 나는 자꾸만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어쨌든 쓰러진 거니까 병원 온 김에 이것저것 검사도 좀 하고. 다행히 다른 건 큰 이상 없어서 내일 퇴원하면 돼.”
“다행이네, 철분제 잘 챙겨 드셔야겠어요. 제가 사서 보내 드릴게요.”
형이 그만 가 줬으면 좋겠다. 눈앞에서 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생각했다. 이모를 보러 온 거니까 이제 된 거 아닌가. 이모가 무사한 것을 봤으니 그만 여기서 꺼졌으면…….
“근데 하민이는 형 안 반가운가 봐? 얼굴도 안 보여 주고. 인사도 안 해 주고. 우리 진짜 오랜만인데. 휴대폰 고장 난 건 아직 안 고쳤어? 태영이가 그러던데.”
여전히 내 앞은 강태영이 막아서고 있었지만 형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강태영 인마, 좀 비켜 봐. 하민이 얼굴 좀 보게.”
재준이 형이 강태영에게 말했지만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혹시나 강태영이 자리를 옮길까 봐 녀석의 옷깃을 잡았다. 절대 비키지 말라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어어? 하민이, 너 진짜 형 얼굴 안 보려고? 너 진짜 수상하다? 갑자기 집에서 나간 것도 그렇고 형이 몇 번이나 연락했는데 받지도 않고. 나한테 화난 것 있어?”
“……그런 거 없어.”
형이 불쑥 강태영의 옆으로 팔을 뻗어 올 것 같아서 힘들게 대답했다.
“그럼 태영이하고는 연락했으면서 왜 형 연락은 다 피했어? 휴대폰이 언제 고장 난 건데? 진짜 형이 뭐 섭섭하게 한 거 있어서 그…….”
“헉.”
강태영의 맞은편에 서 있던 형이 잽싸게 옆으로 몸을 틀어 얼굴을 들이밀었다. 강태영의 등을 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재준이 형의 얼굴을 맞닥트린 나는 놀란 것을 숨기지 못하고 기겁하는 소리를 냈다. 나 때문에 재준이 형도 덩달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뒤로 물러났다. 정말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인지 몰랐다. 근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까무러치니 덩달아 놀라는 게 당연했다.
예전 같으면 먼저 형에게 재잘재잘 떠들고 작은 오해라도 할까 싶어 전전긍긍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좋았다. 형이 이대로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고 관심을 끊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얼른 형의 시선을 피했다. 그 얼굴을 더 마주 보고 있다가는 내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를 것 같았다.
한때는 저 얼굴이 빨리 보고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난 적도 아예 밤을 홀딱 지새운 적도 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래가 뻐근해지던 때도.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데 그 모든 게 몇십 년은 족히 지난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더는 그의 앞에서 얼굴이 붉어질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았다. 토할 것처럼 뛰어대던 심장이 죽은 것 같았다. 더 이상 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를 보고 있어도 떨리거나 설레지 않는다.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쳤다. 너무 피곤했다. 강태영과 그의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만 싶었다.
“이제 가, 제발 가자…….”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강태영의 옷깃을 아래로 두 번 잡아당겼다. 내 귀에도 겨우 들릴 정도로 작아서 강태영이 제대로 들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더 여기에 있다가는 정말 정신을 놔 버릴 것 같았다. 그 미친 짓을 다 본 하영 이모에, 재준이 형까지 한 공간에 있다니 당장 미쳐 돌아 버려도 이상할 게 아니었다. 재준이 형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고는 고민의 이유도 되지 못했다.
“빨리.”
나는 한 번 더 강태영을 재촉했다.
“그럼 우리는 먼저 가 볼게, 연락드릴게요.”
강태영이 당황한 채 굳어 있는 재준이 형과 하영 이모에게 차례로 말하고는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뒤에서 강태영을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와 나를 부르는 재준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리 중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안 따라오는데 천천히 좀 가지?”
지하 주차장이어서 목소리가 살짝 울렸다. 병실을 벗어나자마자 내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더니 종내에는 거의 뛰는 정도였다. 그런 내 뒤에서 여유롭게 걷던 강태영이 웃음기 가득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평소 강태영의 보폭은 살짝 넓은 편이었다. 결코 느린 걸음이 아니었는데 아무리 내가 빨리 걷기로서니 이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은 녀석이 평소보다 일부러 늦게 걷고 있다는 말이었다.
병실 안에서는 강태영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지만 지금은 녀석도 나에게 끔찍하게 피하고 싶은 존재일 뿐이었다. 지랄병이라도 걸렸는지 당장이라도 뒤돌아 강태영의 멱살을 잡고 악쓰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 것을 안간힘으로 참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걷는 강태영에게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뒤돌아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면 그대로 달려들 것 같아서 앞만 보고 걸었다.
“그쪽 아니야.”
어느새 따라잡은 건지 강태영이 내 손목을 휘어잡으며 말했다. 나는 불에 덴 것처럼 녀석의 손을 확 털어냈다.
그에 웃고 있던 눈매가 살짝 굳었다.
“이쪽이야.”
강태영은 뿌리쳐진 손으로 이번에는 어깨를 감싸고 나를 이끌었다. 놓으라는 뜻으로 몸을 흔들었지만 녀석은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녹아 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완전히 늘어졌다. 거의 뻗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속은 용암처럼 들끓는데 그걸 분출할 여력은 없었다. 눈을 감고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원한 차창에 이마를 기댔다.
하루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길었다. 강태영이 나온 김에 밥을 먹고 들어갈까, 하고 묻는 걸 들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긴장이 서서히 풀려 가기 시작할수록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밤새 여럿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근육통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 머리와 목도 다 아팠다.
강태영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차 안엔 적막이 흘렀다.
•••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강태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무슨 반응을 기대하는 것처럼 눈을 빛내던 그가 약효가 좋긴 좋네, 하며 웃었다.
반쯤은 알겠고 반쯤은 못 알아듣는 말이었지만 부러 묻지 않았다.
비릿한 냄새.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집 안에 고여 있던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무슨 냄새인지 모르지 않았다. 내내 뒹굴 때는 후각이 마비되기라도 했던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갔다 오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사의 흔적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집에서 강태영과 그 짓을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온 집 안을 뒹굴며 강태영의 좆을 받았다. 녀석과 나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몸 안에 있던 정액을 모두 뽑아내고 죽을 듯 사정하고 신음하고 몸 여기저기를 비비고 어딘 지도 모를 곳을 빨고 핥고 붙어먹었다. 서로의 몸뿐만 아니라 침대, 소파, 식탁, 거실 바닥에도 정액 흔적이 역력했다.
이런 집에 이모가 왔었다고? 그걸 다 보기까지 하고? 하, 기가 막혀서 웃음이 다 터졌다. 아직도 현실이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리 힘이 풀렸다. 지금까지 버티고 서 있던 것도 사실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난리네.”
털썩 주저앉은 내 옆을 강태영이 지나치며 낮게 속삭였다.
“환기 좀 시켜야겠다.”
강태영은 웃으면서 창문을 열었다. 큰 창문과 부엌의 작은 창문까지 열어 둔 강태영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래 다 젖었을 텐데, 씻고 나와. 아까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나갔잖아.”
“……왜 그랬어. 이모한테까지 그럴 필욘 없잖아.”
“자꾸 우리 사이를 방해하려고 하니까 그리고 내가 널 확실히 가져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
“이제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고.”
강태영은 옆으로 흘러내린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며 다정하게 굴었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을 다 보여 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형 얼굴 본 소감은?”
“……역겨워.”
느릿하게 내뱉은 대답에 강태영의 얼굴이 전에 없이 만족감을 품었다.
“그거 좋네.”
“……넌 진짜 미친놈이야.”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길을 피하며 하는 말에도 강태영은 어깨만 으쓱했다. 마치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고 묻는 모양새였다.
대단했다.
욕이 아니라 칭찬을 들은 애 같았다.
진작 알고 있었지만 강태영은 항상 내 상상을 초월했다. 소리치고 다 때려 부수고 싶었는데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강태영은 내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않자 손수 나를 들어 안고 욕실로 옮겨 줬다. 원하면 씻겨 주기까지 하겠다는 원치 않는 친절을 베풀려고 해서 황급히 사양하고 문을 닫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닫은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는 녀석이라는 걸 알고 얼마 동안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거의 몇 분 동안 멍청하게 닫힌 문 앞에서 고사 지내듯 서 있고 나서야 강태영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옷을 벗었다.
강태영의 말대로 속옷 안쪽 면이 완전히 젖어 있었다. 강태영의 정액과 체액으로 엉겨 붙은 불투명한 흰색 액으로 엉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