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골드 공금
4.
눈을 떴을 땐 주위가 어두웠다. 커튼을 열고 밖을 보니,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이어졌다. 낮은 건물과 서울과는 또 다른 느낌의.
중간에 휴게소에 멈췄을 때 잠시 깼던 것을 빼고는 오는 내내 자서 색다른 풍경은 즐기지도 못했다. 그만큼 피로에 절어 있었다는 뜻이겠지 싶어서 아쉬운 마음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섰고, 곧이어는 플랫폼에 정차했다. 작은 가방 하나도 들고 있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다. 가벼운 몸으로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백지였다.
강릉 버스 터미널 앞은 딱히 뭐라고 할 게 없었다. 식당이든 숙소든 찾으려면 시내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아는 게 전무했다. 바지 주머니 속 꺼진 핸드폰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지금쯤이면 강태영도 내가 없어진 사실을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 휴대폰을 켜서 검색이라도 해 보는 게 낫겠지.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핸드폰 하나 켠다고 강태영이 뭘 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을 때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젊은 남자가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거겠지, 하고 무시하며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원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서운 건지 핸드폰 하나 켜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오셨죠?”
지척에서 들린 낯선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들자 몇 발자국 떨어져 서 있던 남자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다.
“버스에서부터 봤어요. 같은 버스 탔는데.”
“……네?”
“혼자이신 것 같아서요, 여행 오신 거예요?”
“아…… 네.”
“그렇구나, 나는 여기에 일 때문에 자주 오는데.”
남자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곁에 서 있었다.
“배터리 없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보조배터리 있는데 빌려 드릴까요?”
안면도 없는 남자의 과한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스스럼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도 당황스러웠는데.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알아서 먼저 자리를 떠나 줬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휴대폰은 켜지도 못하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계속 나를 살피고 있었던 건지 눈이 마주쳤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다른 지역에 오자마자 잘못 걸린 건가 싶었다. 내가 만만해 보이나.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같은 걸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피어났다.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얼굴의 상처도 그렇고, 짐도 없고 마중 나온 사람도 없는 것 같아서요. 기분 나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진짜.”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싫으시면 더 말 안 걸게요.”
적대감이 느껴졌는지 남자가 말을 흐리더니 멀어졌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다시 꺼내서 켰다.
켜자마자 메시지와 부재중 통화가 쏟아졌다. 그것들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태영에게서 또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바로 통화 거절 버튼을 눌러 버렸지만 전화는 빠르게 다시 왔다. 이래서야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폭풍처럼 들이닥친 연락에 배터리가 빠르게 닳았다.
검색조차 할 수 없어진 나는 다시 폰을 끄고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르르 함께 나왔던 무리는 이미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난 듯, 아까처럼 사람이 바글거릴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아까 전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남자가 아직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싫다고 쳐내 놓고 묻기가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죄송한데, 번화가 쪽으로 가려면 몇 번 타야 해요? 제가 준비를 안 하고 여행을 와서 아는 게 없어서요.”
•••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남자는 아무런 준비 없이 온 내가 걱정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나로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오지랖이었지만 정보를 얻을 곳이 없는 상황에선 내밀어진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는 것도 솔직히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얘기를 나눠 보니 아직까지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다단계니, 사이비니 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정말 단순히 내가 도움이 필요하리라 생각해 접근한 거였나? 그런 거라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화를 통해 나는 남자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름은 배민혁.
나이는 스물일곱.
나처럼 학교는 다니지 않고 있으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일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물었지만 얼버무리는 게 자세히 알리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더 묻지 않았다.
배민혁은 꼭 자신에 대해 알려 준 만큼 나의 정보도 캐물었다. 이름, 나이, 원래 사는 곳은 어디인지.
말해 주기 힘들 건 없어서 솔직하게 털어놨다.
백하민, 스무 살, 서울이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많지도 않은 사회성을 십분 발휘해 먼저 입을 뗐다. 배민혁은 튕기지 않고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근데 이런 것도 물어봐도 되나?”
“뭔데요?”
“얼굴은 왜 그래? 싸움하고 다닐 것처럼은 안 생겼는데 혹시 가정폭력?”
이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뭘 이런 걸 다 물어보나 싶었지만, 모자 아래 숨겨진 내 얼굴을 떠올리면 궁금증이 이는 것도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봐도 처참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건 좀 신기했다.
“친구랑 싸웠어요.”
나는 대충 말이 나오는 대로 둘러댔다. 이런 상황에 자주 등장하는 실수로 어디에 박았다든가, 계단에서 굴렀다든가 하는 단골 멘트와 별다를 바 없는 대답이었다.
“오, 그 말 되게 신빙성 없다. 숨길 거 없어, 너 같은 애들 흔해. 돌아다니다 보면 별사람 다 만나거든. 아빠한테 맞고 살다가 충동적으로 집 나오는 애들이며, 돈 떼어먹고 도망자 신세 된 사람도 수두룩하고.”
“…….”
“보통 아무런 짐도 없고 어딘지도 잘 모르는 곳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런 애들일수록.”
지금 내 얘기를 하는 건가. 나도 그렇게 보인다고? 눈만 치켜뜬 채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배민혁을 바라보자 그가 웃었다.
“갈 데는 있고?”
“네.”
“어디?”
“있어요, 어디.”
“없으면 나 아는 형이 하는 모텔로 갈래? 이 시간에 잘 데 구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그 형이 하는 모텔이 다른 데보다 싸.”
배민혁의 말에 원하는 게 이거였나 싶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장사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나쁠 건 없었다. 충동적으로 와서 묵을 곳이 없는 것도 맞았고 발품을 팔아 가며 지낼 곳을 알아보는 것도 귀찮고 피곤했다.
“얼만데요?”
진짜 바가지 정도만 아니면 얼른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편히 좀 있고 싶었다.
“장기 투숙할 거야?”
“그건, 잘 모르겠어요.”
“1박에 3만 원.”
“그게 싼 거예요?”
“어, 아닌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물은 것뿐이었다. 모텔을 가 본 적이 있어야지. 근데 찜질방에 가면 더 싸게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생활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낄 수 있는 곳에서 최대한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는 그냥 찜질방 가려고 생각 중이어서요.”
“애가 뭘 모르네, 너 가출 첨이지? 찜질방에서 자 보긴 했어? 거기 엄청 불편해. 잠잘 수 있을 것 같지? 사람들 돌아다니고 새벽에 막 춥기도 하고. 이불이 있기를 하냐? 아아, 2만 원. 됐지, 그럼?”
배민혁은 아무리 거지 같은 곳이라도 이런 가격은 없다며 나를 꼬였다. 이렇게까지 고객 유치를 하려는 걸 보니 아는 형이 아니라 친형이 운영하는 모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굴렸다. 2만 원이면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얼마나 머무를지도 모르는데 찜질방에서는 아무래도 장기 투숙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고.
“가는 거지? 여기서 내리자.”
대답은 하지도 않았는데, 배민혁이 하차 벨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정차했고 정신을 차리자 그가 데리고 온 모텔 카운터 앞이었다.
허름한 모텔은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래된 듯 여기저기 낙후된 건물이었고 분위기도 어두침침했다.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었고, 누가 봐도 손봐야 할 것 같은 부분도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모텔이라는 곳이 원래 이런 분위기인지는 쌓인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다 이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형, 나야.”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린 벽을 주먹으로 툭툭 친 배민혁이 누군가를 불렀다.
“형!”
안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배민혁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제야 누군가가 작은 구멍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숙여 배민혁의 얼굴을 확인한 낯선 남자가 눈알을 굴려 그 옆에 서 있던 나를 바라봤다.
“쟨 또 뭐냐?”
“쟤라니, 손님한테.”
“손님?”
“어어, 그러니까 거기서 그러고 보지 말고 좀 나와 봐.”
작은 창 옆에 있던 현관문이 끼긱, 소리와 함께 열리고 온통 검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 너머에서 목소리만 들릴 때와는 달리 남자는 덩치가 꽤 있었고 위, 아래 모두 검은색 반팔, 반바지 차림이었다.
“손님 맞아?”
“어, 장기.”
“장기 투숙하려고요?”
배민혁의 대답을 들은 남자가 내 쪽을 보며 재차 물었다.
“그렇게 오래는 아니고요…… 3일 정도 생각하는데요.”
“장기라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배민혁에게 쏘아대듯 말했다.
“일단 3일이라잖아. 더 길어질 수도 있는 거지, 난 이제 일하러 가야 하니까 형이 챙겨 줘.”
“오자마자 바로 가?”
“그렇지 뭐. 언제는 안 그랬나. 너는 또 보자?”
배민혁이 내 등을 툭 치며 말하더니 모텔을 빠져나갔다. 내가 잡을 새도 없이 빠른 움직임이었다. 당했다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모텔 주인인 듯한 남자를 앞에 두고 다른 곳에 가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손님 맞죠?”
“네? 네.”
손님이면 손님이지 ‘그냥’ 손님은 또 뭐란 말인지. 나를 힐끔 훑는 시선에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면서 대답하자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3일이면 9만 원.”
“네? 저 사람이 2만 원까지 해 준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미 배민혁이 떠나고 없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흐렸다. 만 원 차이가 얼마나 큰데.
“아, 새끼가 지 맘대로. 아아, 손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2만 원으로 듣고 왔어요?”
“……네.”
“더 길게 있을 거면 그것보다 더 싸게도 해 줄 수 있는데.”
“아니에요, 저 그렇게 오래는 안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럼. 6만 원. 카드는 안 돼요.”
“카드는 안 돼요? 그럼 저, 현금 뽑아 와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는 나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같이 가자며 나를 끌고 따라나섰다.
“가게 이렇게 비우셔도 돼요?”
“어차피 지금은 사람 많이 올 때도 아니고, 사람 없으면 알아서 기다리겠지.”
어느새 말을 놓은 남자가 나에게 어차피 ATM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며 자신이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모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편의점에 ATM기가 있었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물며 턱 끝으로 ATM기 쪽을 가리켰다. 나는 그를 등지고 서서 카드를 집어넣었다.
“여행?”
그 자리에서 곧장 돈을 지불하자 6만 원을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남자가 다시 모텔을 향해 가면서 물었다.
“……네.”
“짐도 없이? 배민혁은 어떻게 만났는데?”
“서울에서 오는 버스 같이 타고 왔는데 그분이 먼저 도와주시겠다고 말을 걸어서요.”
“그래서 따라왔다고? 보기 드물게 순진한 애네?”
와하하 웃는 남자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확 퍼졌다. 짧아진 꽁초를 바닥에 버린 그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걷기 시작했다. 다소 불량한 포즈였다.
“얼굴 때문에 또 어디 팔려 가는 인간인가 했는데.”
“네?”
남자가 읊조리듯 작게 한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묻자 그가 손가락으로 내 얼굴 앞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얼굴이 엉망이잖아, 어디서 반항하다가 얻어터지고 끌려온 것처럼. 빚이라도 지고 끌려온 줄 알았지.”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면 아닌 거지, 말은 왜 더듬어?”
당황해서 말을 더듬자 남자가 또 소리 내서 웃었다. 웃음소리가 호탕했다.
배민혁이 하는 일이 뭐기에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의심이 들었지만 왠지 물어보기가 겁났다.
모텔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간 남자가 손바닥만 한 창구 바깥으로 열쇠를 내밀었다. 카드 키나 키패드가 아니라 이런 쇠 열쇠를 받아 본 건 처음이라 새로웠다. 열쇠와 함께 작은 파우치 같은 것도 함께 건네받았다.
“엘리베이터는 없어, 운동한다 생각해.”
남자의 말을 들으며 열쇠고리에 달린 호수를 살폈다.
405호.
이 정도면 계단으로 다니기 그렇게 힘든 층수도 아니었다.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몸을 움직이려다가 안쪽에 든 핸드폰이 손에 닿았다.
“혹시 핸드폰 충전기 빌릴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물었다.
“뭐? 무슨 여기가 호텔인 줄 아나. 아까 편의점 갔을 때 하나 사지.”
TV를 튼 소리와 함께 얼굴을 다시 내민 남자가 쯧, 혀를 차며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장 내면 네가 다시 사 와야 된다?”
그러면서도 어디서 굴러다니던 것 같은 충전기 선을 가져와 내밀었다.
“네.”
그것마저도 사실 감지덕지라 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하고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