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9)

3.

방이었다. 내 방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낯선 방. 가만히 누워서 의식이 온전히 돌아올 때까지 눈만 두세 번 더 감았다가 떴다. 퓨즈가 나간 전구처럼 깜박거리던 정신이 돌아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간밤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직 벌어져 있는 것 같은 아래라든가, 쓰라린 성기며 온몸이 얻어맞은 듯 아픈 것까지. 모든 감각이 개화하듯 피어나자 불에 덴 듯 상체를 일으켰다. 더 뭔가를 떠올리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딱 일어나 침대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쿵.

“아윽.”

굳게 닫힌 방문으로 뛰어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볼품없게 넘어졌다. 무릎에서부터 찌릿 전기가 올랐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이상했고 다리 사이는 미친 듯이 쓰라렸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온 건지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고 강태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출이라도 하려는 건지 저 혼자 멀끔하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방금 일어나 아래가 다 헤집어진 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하루 사이 가뭄이 들어 갈라진 땅처럼 버석하게 말라붙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 터진다.”

무심하게 말한 강태영이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여전히 강태영은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지만 녀석을 올려다보고 있던 시선이 조금은 낮아졌다.

강태영이 가까워지자 내가 물어뜯었던 녀석의 귀가 보였다. 녀석은 자신의 귀로 향해 있는 내 시선을 비웃고는 손을 뻗어 내 입술을 꾹 찍어 눌렀다. 강태영의 말마따나 입술이 터졌는지 그의 엄지손가락 끝에 빨간 피가 묻어 나왔다.

강태영은 남의 피를 보고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녀석은 피가 묻은 엄지를 내 눈앞에 들이밀며 “이거 봐, 피 난다니까.” 하고 말했다. 꼭 왜 자신의 말을 안 듣고 피를 보냐는 듯 탓하는 말투였다.

“……나, 갈래. 보내 줘.”

“배는 안 아파?”

집요한 시선을 피해 가며 겨우 내뱉은 말을 강태영은 가볍게 무시했다.

“나, 나갈…… 아!”

나 또한 녀석의 물음을 무시하고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할 때였다. 가차 없이 손이 날아들었다.

“내가 한 번 참았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 심장을 푹 가르고 들어와 박혔다.

“그럼 눈치를 챙겨야지, 왜 고집을 부려서 처맞아.”

“……아.”

머리가 멍했다. 어릴 때 누군가 잘못 찬 축구공에 머리를 맞고 넘어졌을 때도 꼭 이랬었다. 강태영은 놀라서 히끅거리는 내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빠르게 날아오던 축구공과 녀석의 손힘이 같을 리 없겠지만 충격은 오히려 이쪽이 더 컸다.

볼을 쓰다듬던 손은 곧 턱 끝으로 내려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말라서 터진 입술을 강태영이 느리게 빨았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혀에선 피 맛이 났다. 녀석은 그게 불쾌하지도 않은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우웁.”

밀어내는 내 두 손을 결박한 채 키스가 이어졌다. 강태영의 다른 손이 아직 부은 아래를 비볐다. 쓰라림과 동시에 드는 미약한 쾌감에 허리를 잔뜩 비틀었다.

“으, 읍.”

달래듯 느리게 아래를 문지르던 손가락이 기어코 퉁퉁 부은 내벽 안으로 들어왔다. 부어는 있지만 밤새 강태영이 쑤셔댔던 아래는 어렵지 않게 그의 손가락을 허락했다. 내벽이 움찔거렸다.

어느새 등이 바닥에 닿았다. 아래를 헤집는 손가락 개수가 늘어났다. 꾹꾹 도장 찍듯 손가락 끝으로 내벽을 찍어 누르며 쏘삭거리며 들어오자 허벅지 안쪽 살이 부르르 떨렸다.

허리를 들어 올리며 몸을 비트는 나를 찍어 누른 강태영이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세 개로 늘어난 손가락이 거침없이 아래를 들쑤셔댔다. 아, 아. 막힌 입으로 신음이 삐져나옴과 동시에 상체와 얼굴까지 정액이 튀었다.

사정을 시키고 나서야 입술을 뗀 강태영이 내 턱 끝에 튄 정액을 혀로 핥았다.

“이제 손가락으로만 쑤셔 줘도 가네.”

“……하아, 하윽.”

피가 쏠린 얼굴이 뜨거웠다. 아랫배가 아직도 저릿했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정액을 쏘아댄 성기는 잘게 꺼덕거렸다. 강태영은 기어코 나를 사정하게 만든 뒤에야 풀어 주었다.

결국 강태영의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씻고 마주 보고 밥을 먹고 나서야 강태영은 만족한 듯 나가는 걸 허락했다.

“계약서 내용은 안 잊었지?”

나를 배웅하는 모양새로 현관까지 따라 나온 강태영이 물었다.

“……어.”

“잊었다고 했으면 어떻게 머리에 박아 넣어 줄까 고민했는데.”

“…….”

“앞으로 출, 퇴근은 이쪽으로 해.”

“……그건 계약서 내용에 없었잖아.”

“어차피 돈으로 못 갚으니까 몸으로라도 갚으라고.”

“…….”

“내가 네 편의 봐주는 거잖아.”

뻔뻔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럼 어제 한 건 얼만데?”

그래서 나도 뻔뻔하게 물었다. 살짝 눈을 크게 뜬 강태영이 잠시 실소를 터트렸다.

“뭔 소리 하나 했더니.”

“…….”

“그래서 얼마로 쳐줘?”

나에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듯 묻는 목소리엔 명백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 어제 한 것도 쳐 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기는 했지만 얼마를 원하느냐는 말에는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창부 취급하며 묻는 말에 결국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을 겨우 하고 강태영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왕 깔 거면 한 번 할 때마다 100만 원은 까 달라고 할걸. 괜한 자존심을 부렸나.

꼴에 없는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마음대로 하라고 했던 게 길에 나와서야 후회가 됐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참았다. 강태영은 내가 집을 나오기 이전보다 더 무섭고 포악스러워졌다. 그게 나를 절망스럽게 했다. 녀석과 고작 몇 시간을 함께 있었던 것뿐인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너덜너덜했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손에 감긴 흰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강태영의 집에서 씻은 후 녀석이 재떨이 조각 때문에 상처 난 손에 약을 발라 주고 감아 준 붕대였다. 강태영은 항상 이랬다. 위선이겠지만 나는 도무지 강태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언가 울컥 올라오려는 것을 애써 삼키며 밤새 확인 한 번 못 한 휴대폰 화면을 켰다. 고시원에 들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곧장 가게에 나가야 출근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는 시각이었다. 매니저 형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찍혀 있기에 형에게 전화를 걸며 버스에 올라탔다.

-응, 하민아.

“네.”

-별일 없지?

“네.”

-일은? 잘 해결됐고?

“그럴 것 같아요.”

-아, 고생했어. 어제 연락이 없어서 혹시 무슨 일 있나 했어. 어떻게 했어?

“……원하는 대로 사과하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받아 주겠대?

매니저 형의 묻는 목소리에서 염려를 떨쳐내지 못한 티가 역력했다.

“……네.”

-다행이다, 오늘 출근은 할 수 있고? 어제 좀 스트레스도 받았을 텐데 피곤하면 쉬어도 괜찮아.

“아니에요, 출근할게요. 어차피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순간 오늘은 정말 쉴까 하는 생각이 일었지만 곧장 고개를 저었다. 가게에서 나올 뒷말도 싫었고, 어젯밤에 이어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그럼 곧 보자, 오면 사무실 먼저 들르고.

잘 해결되었다는 말 때문인지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보다 밝아졌다.

“네.”

그에 반해 나아지지 못한 내 목소리를 형이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통화를 끝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묘하게 그 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마주치는 형들에게 고개로 꾸벅 인사를 하며 안쪽 사무실을 향해 갔다.

“어? 야, 너 괜찮아?”

사무실 가는 길에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오다 마주친 태양이 형이 내 어깨를 잡았다.

“어제 지하 완전 난리 났었다며?”

“아.”

“너는 괜찮아? 다친 사람도 있다던데.”

“네, 저는 괜찮아요.”

“근데 손은 왜 그래?”

“아, 이건 그냥 어제 그쪽 치우다가 살짝 긁혀서요, 진짜 별로 다치지도 않았어요.”

“그래? 붕대 감고 있어서 깜짝 놀랐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일할 수 있겠어?”

“네, 그럼요.”

“매니저 형은 하필 왜 너를 데리고 갔는지. 일도 얼마 안 한 애를. 준비하고 나와.”

태양이 형은 별일 없어서 다행이라며 어깨를 툭 치고 홀로 나갔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똑똑똑.

“하민이?”

“네.”

“들어와.”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내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응, 빨리 왔네?”

매니저 형의 얼굴은 살짝 피곤해 보였지만 나쁘진 않아 보였다. 그가 내 얼굴을 살폈다.

“하민이, 너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앉아, 앉아. 아직 오픈까지 시간 좀 남았으니까.”

매니저 형이 음료 두 캔을 냉장고에서 꺼내 가지고 오며 말했다. 소파에 앉았더니 밤새 혹사당한 허리와 엉덩이 사이가 아리고 불편했다.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몸을 비틀어 그나마 편한 자세를 찾았다.

“마시고 좀 쉬다 가.”

내 앞으로 송골송골 물이 맺히기 시작한 캔 음료가 내밀어졌다. 일이 잘 풀렸다는 게 좋은 건지 생글생글 웃는 매니저 형의 얼굴이 훅 가까워졌다.

“어제 형이 좀 실수한 것 같아서. 일손 부족하다고 너 거기 일하라고 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한 것 같네.”

“……아니에요.”

“일 커질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고생했어. 일하다 보면 진짜 이런 인간 저런 인간 다 만나게 될 거야. 액땜했다 생각해.”

“네.”

“어려운 거 있으면 말하고.”

“네.”

“어제 그 고객이랑은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그냥 조금요.”

“조금?”

되묻는 음성에 의아함이 담겨 있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매니저 형을 바라봤다.

“뭐, 그래.”

격려라도 하듯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둔탁했다.

“쉬다가 일해, 오늘은 힘들면 일찍 퇴근해도 돼.”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말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조금 늦게 덧붙였다. 매니저 형이 특유의 잘 세공된 것 같은 미소를 짓더니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음료수를 마시다 말고 성지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강태영이 지껄인 말이 문득 떠오른 까닭이었다.

[강태영이 너한테 연락했었어?]

[ㅇㅇ 어케 알앗냐]

오랜만의 연락이었지만 성지후에게서는 금방 답장이 왔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너랑 뻔히 사이 안 좋은 거 아는데 뭐 하러 얘기해;; 왜 또 무슨 일 있어? 그 자식이 또 건드림?]

[일은 무슨, 아니야. 강태영이 너한테 연락했다니까 괜히 나 때문에 너한테 해코지했을까 봐. 진짜 별일 없는 거지?]

[어, 일은 무슨. 난 너 걱정했는데. 괜찮냐? 강태영이랑 만난 거야?]

[응.]

[화해했어?]

[대충은.]

[야, 존나 사람 얼굴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ㅅㅂ 사과 제대로 받았어? 나한테 너 어디 있냐고 연락처 알려 달라고 할 때는 살벌한 게 사과할 것 같진 않던데.]

문자에서 성지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시 피식 웃었다. 이제는 괜찮다는 답장을 겨우 보내고 이제 알바 시간이 돼서 또 연락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행히 강태영이 성지후에게 별다른 짓을 한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 다른 의문점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던 강태영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것 또한 그냥 나를 떠보기 위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무슨 다른 방법이라도 쓴 걸까? 나도 모르는 새 나에게 무슨 장치라도 달아 둔 걸까?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불안한 생각에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입고 있던 옷까지 털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홀에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됐다. 복잡한 머리와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 때문에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늦지 않게 몸을 움직였다. 진짜 일해야 할 시간이었다.

•••

잠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관계는 끝난 뒤였다. 오늘도 역시나 퇴근 시간쯤 온 강태영의 호출에 그의 집을 찾았다.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 깨기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연신 아래를 파고드는 두꺼운 좆에 신음했는데 이번엔 진짜 끝인 것 같았다. 방 안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나서 조금 앉아 있다가 침대 밖으로 발을 뻗었다.

“으.”

일어서자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아래에서 울컥 정액이 쏟아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씻고 싶었지만 휴지로 대충 아래를 닦아내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워 입었다.

강태영은 자신의 집에서 출, 퇴근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강태영에게 연락이 오지 않은 날은 고시원으로 향했다. 강태영과 관계가 끝난 후에라도 의식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돌아가려고 했다. 대부분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돌아갈 수 있겠다.

강태영은 이렇게 사라지는 걸 극도로 혐오했지만 나 또한 이곳에 계속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강태영의 집에 방문한 횟수를 헤아렸다. 지금까지 열 번은 족히 된 것 같았다. 한 번에 십만 원이라고 치면 백만 원은 깐 셈이었다. 아래를 대 주고 값을 셈하고 있으려니 진짜 남창이라도 된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디 가.”

겉옷을 집어 들었을 때 마침 귀신처럼 강태영이 욕실에서 나왔다.

“집.”

“집? 그걸 집이라고 부를 수가 있나?”

비아냥거리는 말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씻고 자. 그리고 여기서 출근해.”

“싫…….”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강태영은 날 지나쳐 앞에 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탓에 의도하지 않게 시선이 녀석의 중심부로 향해 있었다.

밤새 박아대고 이제 샤워를 끝냈음에도 어쩐 일인지 반쯤 발기한 성기에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여기서 출, 퇴근하라고 하지 않았나? 왜 네 마음대로 굴어?”

“……지금까지처럼 네가 부를 때 오면 되잖아.”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뒤로 갈수록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입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윽.”

“어디까지 하나 보려고 했는데, 진짜 지 좆대로 하려고 하네.”

강태영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이 뒤로 꺾이고 시선이 맞닿았다.

“아아아, 으윽. 아프…… 아, 파!”

머리카락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간 곳은 다시 침대 위였다. 강태영은 기껏 주워 입은 옷을 다시 벗겨냈다.

“나갈 체력이 되니까 이 시간에 기어 나간다고 하지.”

“으브븝, 욱.”

엎드린 내 등을 손으로 꾹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강태영이 허벅지에 앉았다. 모인 다리 사이로 묵직한 살덩이가 닿았다. 단단한 성기가 벌어지지 않은 엉덩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주름이 펴질 정도로 부은 입구가 벌어지며 주먹만 한 귀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닦아내지 못해 정액에 전 내벽이 스르르 벌어지며 성기를 받기 시작했지만 압박감은 엄청났다.

“끄으윽, 읏…… 하, 푸하.”

이불에 처박혀 있던 얼굴을 겨우 들었다. 막혔던 숨통에 공기를 집어넣는 순간 기둥이 완전히 처박혔다. 이불에 바짝 닿아 있는 아랫배가 성기가 들어온 만큼 부푸는 게 느껴졌다. 눌리는 힘에 방광이 같이 자극이라도 된 건지 급격히 요의가 치밀었다.

“으, 잠끄…… 자, 흐읏…… 잠깐.”

금방이라도 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무릎을 굽혀 발버둥 쳤다.

“욱.”

“후으. 씨발, 가만히 좀 있어.”

그러나 강태영은 내 뒷머리를 눌러 파묻으며 위에서 쾅쾅 처박았다. 뒷머리를 누르던 손은 곧 목으로 옮겨 갔다. 목줄이라도 되듯 목덜미를 감싸는 두 손바닥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몸의 피가 모조리 얼굴로 쏠렸다. 억, 윽. 억눌린 신음을 내며 허덕거렸다. 뜨거워진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쏟아낼 것 같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참았다.

“읏, 힘 좀 진짜.”

귀를 할짝거리던 강태영이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반쯤 빠져나갔던 좆이 조여든 내벽 안을 억지로 파고들었다.

“하으응……!”

귀두가 불꽃이 튀는 지점에 닿았다. 쫙, 물어 당기던 아래는 여전히 빠듯한데 강태영은 빠르게 좆을 빼냈다가 다시 오밀조밀 엉겨 붙은 내벽 안을 끝까지 박아 왔다. 입이 벌어지고 동시에 억지로 힘을 주고 참았던 아랫배 힘이 풀렸다. 금세 배 부분이 온통 젖어 들어갔다. 축축한 침구를 느끼며 흐느껴 울자 강태영이 박은 채로 내 몸을 돌리려고 했다. 나는 이불을 움켜쥐고 버텼다.

“손 떼 봐.”

강태영이 잡은 이불을 놓으라는 듯 말했고 나는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우는 소리마저 숨길 순 없었다.

“놔.”

“으흑, 시, 싫…… 흐,으. 안, 놓…… 아윽!”

강태영은 제 말을 듣지 않는 내 중지를 떼어내 뒤로 확 꺾었다. 반대편 손도 마찬가지였다. 손이 떨어지자마자 몸이 돌려졌다. 내벽 안에서 박힌 좆이 빙글 돌았다. 귀두와 기둥의 불퉁한 경계 부분이 안쪽을 자극했다. 결국 강태영과 마주 보는 자세가 됐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내려다보는 강태영은 웃고 있었다.

“쌌어?”

오금이 잡히고 다리가 벌어졌다. 이제 시작이라는 듯 더 진하게 웃는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다시 지옥으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

온몸이 삐걱거렸다. 눈을 떴을 땐 출근까지 한 시간을 겨우 남겨 둔 시각이었다. 결국 그 뒤로 또 몇 번의 관계 끝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밤이었다. 기분 탓인지 내 몸에서 정액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정신을 잃기 전과 달리 방 안엔 밝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나를 고시원에 가지도 못하게 하는 강태영의 저의가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뭘 원하는 거야. 하긴, 강태영이 지금까지 나에게 저지른 일 중 이해되는 일은 없었다. 녀석은 내가 그저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는 걸 원하는 걸까? 재미일까?

앓는 신음이 뒤섞인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다리를 뻗어 바닥에 서고 움직이는 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겨우겨우 샤워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을 때 어딘가 다녀온 듯한 강태영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녀석은 엉거주춤 걷는 나를 웃는 낯으로 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내가 받지 않자 식탁에 내려 두고는 나를 손수 의자에 앉혔다. 얼얼한 아래가 의자에 닿자마자 신음이 터졌지만 녀석도 나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먹어.”

강태영이 종이 가방 안에서 포장된 음식을 꺼내며 말했다.

“……시간 없어, 지금 가도 늦어.”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됐어, 그냥 갈…….”

“아예 못 갈래? 그게 낫겠어? 안 그래도 나도 너 거기 다니는 거 마음에 안 드는데.”

“…….”

말간 얼굴로 하는 당해낼 수 없는 협박에 살짝 넋이 나갔다.

“응? 그럴까?”

강태영이 확인하듯 묻는 말에 겨우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미소 지은 녀석이 나에게 젓가락을 쥐여 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차를 타고 출근했다. 같이 일하는 형들이 혹시 볼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강태영은 마지막까지 오늘부터는 퇴근 후에 자신의 집으로 오지 않으면 봐주지 않겠다고 했다.

봐준 적이 언제는 있었다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차에서 내렸지만 더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구석구석 닦아내고 강태영이 싸댄 정액을 다 긁어냈는데도 이질적인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아릿한 아래와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에 최대한 힘을 주고 움직였다.

“어, 하민이 애인 있었냐?”

“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태양이 형이 슬쩍 물었다. 무슨 말이냐는 눈빛을 보내자 아직 단추를 잠그지 않아 벌어진 셔츠 사이 쇄골 부분을 가리켰다.

“이거 그거 아냐?”

캐비닛을 활짝 열고 안쪽에 붙은 작은 거울을 확인했다. 붉은 자국이 보였다.

“이 날씨에 모기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몰랐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야, 역시 젊으니까 체력도 좋아. 일을 새벽까지 하는데도, 어? 뜨밤?”

“아, 아니. 형 그런 게…….”

“뭘 그런 걸로 부끄러워하고 그러냐. 밴드 붙일래? 이쪽에 있는 건 단추 잠가도 보이겠는데.”

태양이 형이 목덜미 어느 부분을 꾹 눌렀다. 그런 곳에도 자국이 있을 줄 몰랐다. 정신을 잃었다가 차리기를 반복했으니 정신이 없는 틈에 강태영이 자국을 남긴 거라면 모를 만도 했다.

“……네, 주세요.”

“형이 붙여 줄까? 뒤는 네가 못 보잖아.”

수치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이 형이 목 뒤 어느 부분에 밴드를 붙여 줬다. 고맙다는 인사에 형이 웃으면서 등을 쳤다. 나는 내 상황을 하나도 모르는 얄궂은 미소에 마주 보고 웃을 수 없었다.

•••

“아오, 힘들다.”

“와, 그래도 월급일이다.”

“그러네?”

“그러면 뭘 해. 존나 사이버 머닌데.”

“원래 통장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게 월급이야.”

“하민이는 첫 월급 받겠네?”

서빙 음식을 기다리며 막간 수다를 떨던 직원 형이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네.”

“뭐 할 거야?”

“야야, 뭐 하긴. 하민이 돈 쓸 데 많을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다 알아, 그치, 하민아?”

아까 전 밴드를 빌려줬던 태양이 형이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이상할 거고 그냥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어려워서 머쓱하게 웃고 말았지만 태양 형은 신난 얼굴로 내 팔을 툭 쳤다.

“어이없네, 네가 뭘 다 알아.”

“형님은 다 안다고. 야야, 음식 나왔다. 파이팅.”

혼자 신나게 말을 쏟아낸 태양이 형이 먼저 나온 안주 트레이를 들고 홀 쪽으로 사라졌다.

“첫 월급은 그냥 다 너한테 써, 처음인데. 수고하고.”

곧 태양 형과 얘기를 나누던 다른 형도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나는 지나치는 형이 해 준 얘기에 “네.” 하고 대답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기다리던 첫 월급일이었다.

수십 번 상상했다. 월급을 받으면 뭘 할지. 조금 전 지나간 직원 형은 온전히 나에게 쓰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태양 형의 말대로 통장을 스쳐 지나갈 돈이 쓰일 곳은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나는 월급의 대부분을 강태영에게 던져 줄 생각이었다. 아깝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얼른 녀석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 때문에 신경 썼을 성지후에게 밥과 선물을 사 줄 돈과 약간의 생활비와, 저축액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빚을 갚는 곳에 쓸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금액을 줄여 나가면 숨통이 트이겠지. 당장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2천.

천 단위면 뒤에 붙는 공이 몇 개더라. 살면서 백 단위의 돈도 만져 본 적 없는 나에게는 까마득히 큰 숫자였다.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탁 막히는 것 같아서 눈을 감았다.

•••

새벽 세 시 반.

같이 일하는 형들이 월급날이니 한잔하고 가자며 붙잡았지만 다음에는 꼭 참석하겠다는 말로 겨우 벗어났다.

내내 술집에서 일했는데 또 다른 술집에 가는 것도 피곤했고, 무엇보다 강태영이 그렇게 두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휴대폰을 확인하자 녀석에게서 곧장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와 있던 참이었다.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 놓고 먼저 무리 지어 나간 형들의 기척이 사라지자마자 가게를 나섰다.

돈을 인출하기 위해 ATM기를 찾았다. 정말 월급이 들어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이겠지만 나에게는 만져 본 적도 없는 큰돈이었다. 생활비와 저축액만 남기고 모조리 현금으로 찾았다. 수중에 이런 돈이 있다는 게 얼떨떨했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더니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 가면 그대로 쓰러져 잘 수도 있는 상태였다. 나는 피 같은 돈을 외투 안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고 택시를 잡았다.

[나 첫 월급 받았어, 고기 사 줄 테니까 연락해.]

한참 정신없이 자고 있을 성지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시트에 깊게 등을 기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 달을 무사히 보내고 월급을 받았다는 뿌듯함과 피곤이 한데 섞인 한숨이었다.

조금만 더 타고 있었어도 깜빡 잠이 들 뻔했다. 몽롱해진 정신을 깨우고 이제는 익숙해진 오피스텔 앞에 내렸다. 거리는 물론 건물 안도 조용했다. 어느 밤보다 어둡고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내가 내는 인기척만 느껴졌다.

새벽은 고요한 시간이다. 곧 다가올 아침을 앞두고 있는 새벽 시간은 더더욱 그랬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이 새벽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말 누구에게나 아침이 오긴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강태영이 알려 준 비밀번호를 치고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 꺼진 집 역시 조용했다. 조심스럽게 신을 벗었다. 자신이 집에서 출, 퇴근하라는 건 고시원에서도 잠만 겨우 자는 나에게는 그냥 여기서 생활하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강태영은 그렇게 말만 했을 뿐 내가 어느 방에서 생활하면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진짜 한다면 하는 녀석임을 알기에 두려운 마음에 이곳으로 퇴근하기는 했지만 나는 현관문 센서 등이 꺼질 때까지 어두운 거실에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피곤하던 몸이며 정신이 이 집에 들어선 순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잠시 후 센서 등에서 들어오던 빛마저 사라진 뒤에는 공허 같은 어둠만이 남았다. 암막 커튼이라도 친 건지 빛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달칵 소리와 함께 시선을 들었다. 고요가 깨졌다.

거실 불이 켜졌다.

시간이 이런데도 도무지 자다 일어난 것 같지 않은 강태영이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나를 바라봤다.

“퇴근했으면 재깍 씻고 들어오지, 가만히 서서 뭐 해?”

“……어느 방으로 들어갈지 몰라서.”

괜히 책잡히기 전에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걸 알려 줘야 해?”

어이없다는 듯 굳은 강태영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지금 시위해? 안 들어올 거야?”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천천히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강태영의 시선이 내 움직임을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할 거지?”

강태영을 지나쳐 욕실로 향하며 물었다. 대답이 바로 들려오지는 않았다. 너무 당연한 걸 물어서 대답할 가치도 없는 건가 싶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욕실로 향했다.

불과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샤워를 마쳤다.

가게에서 태양이 형이 붙여 준 밴드는 떼어 버렸다. 방수 밴드가 아닌 탓에 물이 닿으면서 너덜너덜해진 것도 있지만 이런 걸 달고 있어 봤자 강태영이 싫어할 것 같아서였다.

“아.”

샤워를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멍청하게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강태영의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과 씻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갈아입을 옷도, 속옷도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알몸으로 녀석이 있을 방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벗었던 옷을 다시 걸치고 욕실을 나섰다.

거실은 다시 어두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멍하게 있지 않고 곧장 강태영의 방으로 향했다. 녀석에게 줄 돈이 들어 있는 외투를 꼭 끌어안은 채 방으로 들어서자 침대에 앉아 있던 강태영이 나를 바라봤다.

“옷 줘?”

강태영이 내 꼴을 보더니 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나에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반바지와 반팔을 내밀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손을 막 뻗으려는데 강태영이 “속옷도 줘?”라고 물었다.

설마 자기가 입었던 걸 주지는 않겠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행히 강태영이 포장된 새 속옷을 건넸다.

“그냥 여기서 입지? 귀찮게.”

속옷과 옷을 받아 들고 갈아입기 위해 방 안에 있는 욕실로 가려는데 강태영이 말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싫어, 안에서 입을래.”

또 자기 말을 거부했다고 손이라도 날아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을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얼른 욕실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욕실에서 나온 나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아까 뽑은 돈이 담긴 은행 봉투를 꺼내 들고 녀석에게로 향했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강태영이 내가 다가오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설마 내가 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린 건 아니겠지? 아까부터 이어지던 생각을 뒤로하고 강태영의 옆에 섰다. 녀석은 보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이불을 살짝 들쳤다. 천천히 침대에 올랐다.

“자.”

자라고?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한 나를 보는 담백한 시선에 다른 욕망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건 나였다.

“안 해?”

“뭘.”

“…….”

모르는 척 묻는 말에 똑같이 모르는 척 대꾸할 타이밍을 놓쳤다.

“하고 싶어?”

“…….”

“오늘은 안 해, 그냥 잠이나 자.”

피식 웃던 강태영이 얼른 누우라며 나를 재촉했다. 그러나 내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가만히 있자 강태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 아니. 잘 거야.”

대답하면서도 진짜 안 하는 건지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아직 손에 들고 있던 외투가 시야에 잡혔다.

“아, 이거.”

나는 얼른 외투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뭔데 이게.”

내가 내민 봉투를 확인한 강태영의 음성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국은행이라고 적힌 봉투를 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춘 강태영의 분위기가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뭐냐고.”

“……돈.”

“내가 지금 그거 몰라서 묻는 것 같아?”

“너한테 돈 갚아야 하잖아. 이거 나 오늘 월급 받은 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투를 낚아챈 강태영이 안쪽 지폐를 확인했다.

“그래서 이게 네가 거기서 한 달 동안 존나 굴러서 번 거야?”

돈을 갚겠다는데도 기분 나쁜 기색의 강태영이 이해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방금 전까지는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던 터라 더 그랬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짚이는 건 없었다. 분명 안 한다고 그냥 자자고 한 건 강태영이었고 나는 그의 말에 따랐을 뿐이었다. 집에 들어오라기에 들어왔고, 침대에 누우라기에 누웠을 뿐인데 순식간에 분위기를 뒤집어 버린 녀석 탓에 폭신한 이불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지는 건 금방이었다.

“빚 차감해 달라고? 앞으로 이렇게 월급 받을 때마다 고스란히 갖다 바치게?”

나는 왜 이러냐고 묻지도 못한 채 강태영이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었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아, 알겠다. 너 진짜 나한테 돈만 어떻게든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어, 설마?”

“…….”

“빨리 갚고 또 튀려고? 씨발,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강태영이 봉투를 든 채 침대 밖으로 다리를 뻗었다.

타앗, 탁!

“아!”

눈 깜짝할 새에 따귀를 맞았다. 따귀를 때린 건 강태영의 손이 아니라 돈이 담긴 봉투였다. 손으로 맞는 것만큼 아프지는 않았지만 정신적 충격이 컸다. 나는 맞은 볼은 손바닥으로 감싸고 강태영을 바라봤다.

어안이 벙벙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강태영의 손에 들린 봉투에 박힌 은행 로고가 선명하게 시야에 박혔다.

“이깟 푼돈으로 갚는 걸 답답해서 어떻게 보라고.”

“……돈 갚으라며!”

줄곧 멍하던 정신이 맞고 나서야 돌아왔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돈을 받고 갑자기 화를 내는 강태영이 이해되지 않기도 해서 대책 없이 소리부터 쳤다.

“다 갚을 거야! 다음 달엔 더 많이 가져와서 얼른 갚을 거야. 어떻게든 갚을 거야!”

“말귀 더럽게 못 알아 처먹네, 뭘 어떻게 더 가져오시게요. 더 가져오겠다고? 일이라도 더 늘리게?”

강태영의 비아냥거림이 더 심해졌다. 그만큼 내 안의 울분도 더 커졌다.

“몸이라도 팔아서 갚을게, 그래서 얼른 털어 버리고 너 같은 거 안 보이는…… 아악!”

이번엔 돈 봉투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강태영의 손이 관자놀이쯤을 후려쳤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 순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두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는데도 앞이 빙빙 돌았다.

“뭘 팔아?”

“끄으, 흑.”

“야, 뭘 한다고?”

무릎을 굽힌 강태영이 반을 접어 두꺼워진 봉투로 내 이마를 툭툭 밀었다.

“……이미 너한테 팔았는데 흐윽, 다른 사람이라고 뭐 다를…… 컥.”

진짜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말이 제멋대로 나왔다. 두려운 마음과 별개로 점점 구겨지는 강태영의 기분을 더 짓밟고 싶었다. 비틀린 마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멋대로 움직이는 입을 멈출 수 없었다.

머리채를 잡힌 채 앉아 있던 침대 위에서 그대로 다리가 벌어진 뒤에야 괜한 객기였다는 생각에 몸부림치며 후회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악, 아…… 싫…… 흐윽, 끅.”

전희도 애무도 없이 마른 아래가 벌어졌다. 여린 살이 투둑 하고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반 정도밖에 발기하지 않은 좆이 부피를 키워 가며 꾹, 꾹 내벽을 파고들었다.

안 한다며, 안 할 거라며! 개자식!

명백한 화풀이였다.

강태영과의 관계에서 강간이 아닌 적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내 고통만을 바라는 게 뻔히 보이는 섹스는 드물었다.

“악, 악, 아!”

힘을 실어 끝까지 뽑아냈다가 박을 때마다 뚝, 뚝 끊기는 소리와 함께 뻑뻑한 살이 다 터지는 것 같았다. 내벽도 마찬가지였다. 준비되지 않은 채 힘으로 꿰뚫리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느라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연신 침이 흘렀다. 처박는 것 외에 아무런 행위도 없이 차가운 눈을 한 강태영의 시선도 칼날처럼 아프게 와닿았다.

고통만 주는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고자 손바닥으로 치골 부분을 밀어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강태영은 내 행동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등을 아프게 쳐냈다. 따귀를 얻어맞는 소리가 났다.

“아으, 아프……. 천, 하읏! ……태, 영……아아. 우으윽.”

제대로 나오는 말이 없었다.

“몸을, 팔겠다고?”

“……하악, 윽! 흐……아윽.”

“어떤 좆, 후으, 받고 올지도 모르는, 더러운 구멍에, 좆질하라고?”

“아! 으윽, 아……! 사, 려…… 주! 흐윽.”

“뒤질라고 진짜, 씨발.”

까득, 까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강태영은 분노를 이기지 못했다.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왜? 내 말이 뭐가 틀렸어? 왜!

악에 받쳐 나오는 대로 말을 뱉어낼 때마다 강태영의 표정은 더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커흑!”

“그러기만 해. 뒷구멍 그냥 다 찢어 버릴 거니까.”

“……아, 욱으으!”

강태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았다. 아파서 정신이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찌이익 소리와 함께 뽑아내는 성기에서 꿀렁이며 언제 사정한 건지도 모를 정액이 함께 쏟아졌다.

하얗게 젖은 좆은 사정 직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태영이 봉투에서 보지도 않고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찌익 찢긴 지폐 조각이 젖은 얼굴 위로 쏟아졌다.

“하민아, 화대야.”

“……하아, 하.”

“더 필요하면 말해, 다른 새끼한테 몸 팔겠다는 쌉소리 말고.”

“흐으윽, 끄…… 후윽.”

곧이어 남은 돈이 든 봉투가 내 얼굴 옆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강태영이 던진 거였다. 나는 옆에서 훅 끼치는 바람에 놀라 어깨를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다시 뜨기 전에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났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뜨거웠다.

•••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땐 기분이 이상했다.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몸의 모든 관절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볕이 낯설었다. 가만히 눈을 끔벅이다가 여전히 어디선가 잠을 깨웠던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몸을 세웠다.

“아으.”

말도 못 할 못할 통증이 엄습했다. 고통에 경악하면서도 나를 잠에서 깨운 소음이 핸드폰 진동음이라는 것을 알고는 몸을 움직여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매니저 형의 전화였다. 지각한 건가? 볕이 낯설더라니 아마 출근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시각 확인도 못 하고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네, 형?”

-어, 하민아.

“형, 죄송해요, 몸이 좀 안 좋아서 깊게 잠들었나 봐요. 알람 소리를 못 들었어요. 금방 갈게요.”

-아냐.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이는 것을 겨우 참고 움직이다가 매니저 형의 말에 움직임이 멎었다.

“네?”

-오라는 게 아니라 이제 안 와도 된다고 전화한 거야.

“……그게 무슨, 죄송해요, 이제 안 늦을게요! 저 진짜 금방 가요, 형. 형.”

-하민아, 내 말 잘 들어. 오지 마. 오늘뿐만 아니라 그냥 나오지 마. 가게 오지 말라고. 내 말 알아들었지?

“갑자기 왜, 왜 그러세요.”

-우리 가게랑은 너 안 맞는 것 같다.

“형, 형.”

다급하게 매니저 형을 불렀다.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더 열심히 할게요.”

울먹이며 쏟아내는 말에 매니저 형이 낮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만 해도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큰 실수 없이 일해 왔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왜 나오지 말라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강태영 일도 잘 해결이 되었는데 왜? 오늘 늦잠을 자서? 물론 내 잘못이기는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이런 일방적인 전화 통보라니.

“형, 저…… 진짜 잘못했어요.”

머릿속에 물음표가 잔뜩 떠다녔지만 내 입에서는 연신 잘못을 비는 말만 나왔다.

-네 잘못 아니야. 근데 오지 마. 너 오는 거, 우리 가게에 도움이 안 돼. 안 맞아, 너 이쪽 일이랑. 다른 일 찾아봐, 아직 젊으니까 굳이 이런 일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 많을 거야. 알겠지?

단호한 거절에 더 매달릴 의욕도 사라져 버렸다.

-그럼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끊을게.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통화는 뚝 끊겼다. 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만 흘러나왔다.

가게에라도 찾아가 볼까 했지만, 내가 가는 게 가게에 도움이 안 된다던 매니저 형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더러운 바이러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도 한 달이나 멀쩡히 잘 다니고 있던 가게였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모조리 곱씹어 봤지만 이렇게 잘릴 이유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앉아 있어?”

어느 틈에 강태영이 돌아왔는지도 몰랐다. 스르륵 고개만 돌려 방 안으로 막 들어선 그를 바라봤다. 진갈색 코트와 백 팩을 메고 있는 강태영은 깔끔한 대학생처럼만 보였다.

탁.

녀석이 불을 켰다. 눈이 부셨는데도 깜빡이지도 않고 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는 강태영의 뒷모습을 좇았다. 순간 섬광이 일듯 머릿속이 번쩍였다.

“……너야? 너지?”

“뭐가.”

“개새끼! 네가 그랬지?”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정확히 뭐가 궁금한지 말해.”

겉옷을 벗어 둔 강태영이 실내용 슬리퍼를 스윽, 스윽 끌며 주저앉아 있는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춰 왔다.

“울었어?”

강태영의 내 볼을 부드럽게 닦아냈다. 물기가 묻어났다.

“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어대는 꼴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멱살을 잡고 녀석을 확 끌어당겼다.

“네가 그랬지! 매니저 형한테 나 자르라고! 어?”

내가 잡은 멱살을 풀고 녀석을 확 밀쳐내며 소리쳤다. 내 인생을 멋대로……! 왜 네 맘대로 주물러! 내가 뭘 그렇게,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노력해서 겨우 얻은 첫 직장이었다. 시궁창 같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강태영의 손에서 언젠가는 벗어나게 해 줄 기반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그마저도 강태영은 손쉽게 잘라냈다.

왜, 왜.

“……도대체, 끄흣.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하아, 재준이 형…… 안 좋아할게. 아, 아니 이제 안 좋아, 해. 흐윽,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주면 안 돼? 하아, 나 그냥 조용히 숨죽여서 살 테니까 그냥 제발 좀…… 그만큼 괴롭혔으면 됐잖아. 언제까지…… 끄윽.”

“왜 이러냐고 물었어? 궁금해? 넌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은데?”

강태영이 비소했다.

“……태영아아.”

떼쓰듯 강태영의 이름을 불렀다.

“응.”

다소 부드러워진 녀석의 목소리와 함께 손이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리자 허공에서 잠시 멈췄던 손이 내 머리를 슥, 슥 쓰다듬었다.

“나한테 왜, 왜 이러는…….”

“이러고 싶으니까.”

의욕을 잃게 하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라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강태영이 싱긋 웃었다. 이유라도 알면 원인이라도 제거할 수 있겠지만 강태영이 지금 한 말에서는 내가 고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건 일종의 사형 선고였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강태영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발을 핥아도 녀석이 이러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었다.

“난 이제 네가 다시는 누구도 좋아한다는 생각을 못 했으면 좋겠어.”

조곤조곤 강태영의 음성이 이어졌다.

“혹시라도 또 멍청한 짓 할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떠올리게 될 거야. 그럼 넌 무서워질 거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겠지?”

“…….”

“생각만 해도 좆이 터질 것 같아.”

“…….”

“그래서 하민아. 나는 네가 더 끔찍해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된 이상 네가 날 좋아할 것도 아니잖아.”

강태영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눈만 끔뻑거릴 때마다 굵은 눈물방울이 얼굴을 잔뜩 적셨다.

“이러고 싶었어, 계속.”

“…….”

“참았던 거지.”

“…….”

“병신 같은 네가 빌미를 제공할 때까지.”

말을 마친 강태영이 젖은 볼을 손으로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강태영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것 때문에 울고 있었어? 고작 한 달 일한 데에서 잘린 게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강태영은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까지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설마 좆 빨아 주던 새끼라도 있어? 진짜? 그게 아쉬워서 그래?”

“으으.”

나는 아니라고 말은 못 하고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처음으로 꿈꿨던 자유가 이렇게 끝났다는 게 허무하고 믿기지 않았다.

강태영이 도리질 치는 내 머리를 잡아 고정했다.

“근데 왜 그렇게 세상 잃은 것처럼 우냐고, 좆같게.”

눈물을 참기 위해 떨리는 입술을 콱 깨물며 참았다. 울음을 참는 몸이 덜덜 떨렸다. 다시 여기라는 게 믿기 싫었다. 그렇게 발버둥을 쳤는데 다시 강태영 앞이라는 게. 출구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미로 같은 곳에 갇혔다는 게.

“으, 윽.”

강태영이 나를 질질 끌고 침대 쪽으로 갔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그가 사타구니 사이에 내 얼굴을 처박았다. 젖은 얼굴에 문질러진 천이 함께 젖어 들어갔다. 단단한 살덩이가 느껴졌다. 울어서 내 얼굴이 뜨거워진 건지 그곳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꼴리게 질질 짜기나 할 거면 빨아.”

머리를 꾹 눌러 내 안면에 중심부를 문지르던 녀석이 지퍼를 내리고 명령했다. 잠시 뒤로 물러났던 얼굴이 다시 끌어당겨졌다. 반쯤 발기해 열기가 느껴지는 성기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입술에 닿았다. 나는 강태영의 무릎을 강하게 잡고 거부했다.

“돈 줄게. 아, 빚을 까 줄까?”

아예 뒤통수를 잡고 누르는 힘이 더 강해졌다. 싫다고,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을 여는 순간 단단한 살덩이가 단숨에 처박힐 것 같았다.

강태영이 드로어즈를 살짝 내리자 천 안쪽에서 점점 더 윤곽이 잡히며 단단해지던 성기가 꺼내졌다.

짜악, 짝!

기어코 입을 벌리지 않자 강태영의 손이 얼굴로 내려왔다. 두어 번 따귀를 맞았을 뿐인데 정신이 해롱거렸다. 녀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양 볼을 압박해 억지로 입을 벌리게 했다.

“으으븝, 브븝.”

핏줄이 불거진 비릿한 성기가 입 안 가득 처박혔다. 한 번에 목구멍 안쪽까지 찌르고 들어온 좆이 날것의 냄새를 풍기며 숨통을 막았다. 구명줄처럼 잡고 있던 강태영의 무릎을 강하게 꼬집었다.

커헉, 큭.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신음과 기침이 목 안쪽으로 고스란히 다시 들어갔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생리적으로 눈물이 나자 코가 막히고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무기 같은 살덩이를 내보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는 순간 이를 세우고 말았다.

“이, 씨발!”

긴 성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감과 동시에 안면에 큰 통증이 느껴졌다. 강태영이 얼굴을 후려친 충격이 강해서 바닥에 엎어진 몸에서는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뒤늦게 바닥에 부딪힌 팔꿈치에서 찌릿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끄으윽…… 하악.”

“말 안 들을래, 진짜?”

바닥에 나뒹구는 내 앞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은 강태영이 내 어깨를 손가락에 힘을 실어 툭툭 밀었다. 나는 녀석의 손을 절박하게 잡았다. 정신이 없었다. 숨도 원하는 만큼 쉬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바르르 떨고 있자 볼이 잡혔다. 강태영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을 얼굴을 보고 혀를 찼다.

“우욱, 우으!”

볼을 누르는 힘에 입이 벌어지고 손가락이 들어왔다. 강태영의 손가락이 입 안을 헤집었다. 혀와 볼 쪽 벽을 누르고 목구멍을 찌르기도 하던 손가락이 침 범벅이 되어 빠져나갔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 진짜 이 뽑히고 싶어서 그래?”

“으으, 아니…… 끄흡, 자, 잘못해써…….”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빌었다. 발음이 다 뭉개졌다. 실수라고, 이건 진짜 실수라고 놀라서 그랬다고 외치는 말의 진위를 가늠하는 듯 가늘어진 시선이 느껴졌다.

세 번의 기회는 없다는 말을 끝으로 입 안에 성기가 다시 처박혔다. 익숙했다. 처음 빨아 보는 것도 아니었다. 하영 이모네서 살았을 땐 더 잦은 일이었다. 숨 쉬듯 했던 일이었잖아. 그러니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 나는 그때의 기억을 반추하며 고개를 움직였다.

기둥을 핥으면서 제대로 무릎을 꿇었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강태영은 그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끕, 끕거리는 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대신 축축하고 습한 기운이 도는 소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강태영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볼 쪽을 아무렇게나 찔러대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구멍 깊게 처박히는 성기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토하지 않기 위해 목구멍을 더 벌렸다. 말간 질질 침을 흘리며 꽥, 꽥 소리를 내면 강태영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기어이 토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같잖지도 않은 배려 때문이었다. 그게 진짜 배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계까지 부푼 성기가 빠져나가자마자 얼굴에 뜨끈한 정액을 뿌렸다. 아직 벌어진 입 안과 얼굴 전체가 비릿한 점성의 액체로 더럽혀졌다. 눈을 감고 있어 다행이었다. 역겹지도 않은지 강태영은 그 얼굴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키스하며 혀를 밀어 넣었다.

“……우욱, 끄윽.”

“이제 떠날 생각 하지 마, 알겠지?”

잠시 뗐다 다시 붙은 입술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눈물과 정액으로 젖어 짜고 비린 맛과 함께였다.

“밥 먹자.”

가벼운 음성으로 말하며 강태영이 몸을 일으켰다. 티슈를 뽑아 아래를 닦아낸 녀석의 얼굴은 개운해 보였다. 자신의 정액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손에 체액이 묻든 말든 다시 볼을 잡고 가볍게 키스한 그가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다리 부러진 거 아니잖아, 힘 좀 줘 봐.”

벌벌 떨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실었다. 강태영은 나를 데리고 욕실로 가 기꺼이 얼굴을 씻기고 부드럽게 물기를 닦아냈다. 곁눈질로 확인한 거울 속 모습이 해괴망측했다. 볼이 부어 있을 건 예상했지만 눈의 실핏줄까지 터졌을 줄은 몰랐다. 광대 쪽엔 열꽃이라도 핀 것처럼 빨간 점 같은 것이 찍혀 있었다.

이 꼴로는 가게에 갔어도 일을 할 수 없었겠다. 나는 속으로 자조했다. 얼굴을 닦아내느라 젖은 앞머리를 손으로 살살 털어 준 강태영이 내 손을 끌고 거실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손이 이끄는 대로 힘없이 움직이는 나를 소파에 앉히고 부엌으로 갔다.

“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볼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예고 없이 닿아 온 차가움에 놀라 어깨를 크게 띄웠다.

“대고 있어.”

강태영이 내 손을 잡아 아이스 팩에 올려 주면서 말했다. 이제는 이런 행동이 우습지도 않았다. 녀석이 자세를 잡아 준 대로 얌전히 볼에 아이스 팩을 대고 있었다.

곧 옆자리에 앉은 녀석이 휴대폰을 들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녁 메뉴를 물으며 배달 애플을 켠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집중하지 않았더니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텅 빈 눈으로 화면 스크롤이 내려가는 것만 지켜보고 있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서 말 못 하겠으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나는 대충 아무거나 찍었다. 화면이 넘어갔고 메뉴를 확인한 강태영이 픽 웃으며 이게 먹고 싶었냐고 물었다. 나는 어떤 게 선택되었는지도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이 너무 차가워서 아이스 팩을 잠시 내려놨다.

주문을 마친 강태영이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다가 강태영의 허벅지에 누운 자세가 됐다. 긴장으로 힘이 바짝 들어간 몸이 딱딱해졌다. 나를 제 다리에 눕힌 강태영이 손수 팩을 다시 볼에 대 줬다.

긴장을 풀라는 듯 다른 손으로는 굳은 어깨와 팔을 주물러 주었지만 근육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뭘 이렇게 겁을 내.”

“…….”

“네가 잘하면 맞을 일도 없는 건데. 긴장 풀어, 이제 아프게 안 해.”

사근사근한 음성이었다. 맞은편에 서 있는 커다란 TV 화면에 나와 강태영의 모습이 보였다. 누워 있는 내 볼에는 사각거리는 아이스 팩이, 팔에는 녀석의 큼지막한 손이 올라가 있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나를 위로하듯 쓸고 있었다. 조금 전 나를 다치게 한 그 손과 같은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괴리감이 느껴지는 화면 속 내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강태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잘 들리나 싶더니 녀석은 누워 있는 내 옆에 옷을 다 챙겨 입고 앉은 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자느라 노곤하게 풀려 있던 근육이 강태영의 손길을 인식하자마자 팽팽하게 굳었다.

“나갔다 올게.”

어느새 통화를 마친 강태영이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자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몸에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냉장고에 먹을 거 있으니까 꺼내 먹고, 해 먹어도 되고.”

강태영은 당연히 내가 이 집에 있을 것처럼 말했다.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이것저것 장을 봐 놨다고도 덧붙이며 굶지 말라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얼굴이 가게에서 다시 만난 후 가장 좋아 보였다.

말을 마친 후 방을 나선 강태영이 무언가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뛰어 들어왔다. 놀라서 몸을 뒤로 뺀 내 어깨를 잡은 녀석이 쪽, 쪽 입을 맞추고는 진짜 나간다며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진짜 혼자였다. 아까처럼 갑자기 돌아오지 않을까 경계하며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은 후 몇십 분은 족히 흐른 것 같은 뒤에야 나는 몸을 움직였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었다.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살폈지만 당장 걸칠 만한 옷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이었지만 나는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침대를 벗어났다. 얼른 씻고 나도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게에 늦지 않으려면, 까지 생각하다가 어제 잘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게는 잘렸고, 나가서 갈 곳도 할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무기력증이 몰려왔다. 비틀비틀한 걸음걸이로 겨우 방 안으로 들어와서 침대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제 입고 있던 옷은 강태영이 어디로 치워 버렸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분명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향키를 잃은 배처럼 흔들리던 나는 그렇게 바닥에서 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제는 눈물도 메말라 버렸는지 버석한 눈가는 따갑기만 했다.

들이닥친 지 불과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불행에 잠식되어 어쩔 줄 모르다가 다시 몸을 일으킨 건 침대 아래에서 뭔가 발견한 후였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 거의 엎드린 자세로 침대 아래에 손을 뻗었다. 납작하고 네모난 물체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서 막대기 같은 것을 찾아 또 돌아다녔다.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 순간 신발장에서 구둣주걱을 발견해서 엎어져 있던 핸드폰을 끄집어냈다. 이게 왜 침대 아래에 있을까 생각해 보니 어젯밤 소란에 떨어져 침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듯했다. 강태영은 이쪽에 핸드폰이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알았다면 핸드폰 먼저 없앴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은 전원이 나가 있었다. 충전기를 찾아 연결한 후 켜진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나는 강태영이 내 휴대폰을 찾으려 했다는 것에 더 확신을 가졌다. 강태영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럿 찍혀 있었다. 아마 핸드폰을 찾으려고 전화를 했던 게 분명했다.

바보처럼 있어서는 안 됐다. 하루 만에 멍하니 텅 빈 것 같던 머리가 다시 생각이란 걸 시작했다.

이불을 몸에 두른 채 움직였다. 다용도실에 있던 쓰레기통에서 내가 입고 왔던 옷을 발견했지만 다른 쓰레기들이 다 묻어 있는 데다가 체액으로 여기저기 더럽혀져 있어서 다시 입기엔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옷은 포기하기로 했다. 옷은 포기하더라도 주머니에 들었을 물건을 챙겨야 했다. 다행히 카드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카드를 챙기고 일어나는데 희끗희끗한 종이봉투가 시야에 걸렸다. 쓰레기통에는 내가 어제 강태영에게 건넸던 은행 봉투도 들어 있었다. 혹시나 해 맨손을 넣어 봉투를 꺼냈다. 돈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현금까지 함께 챙긴 후 다른 방으로 향했다.

드레스 룸엔 강태영의 옷이 정렬되어 걸려 있었다. 벽을 따라 설치된 행거를 따라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방 중앙엔 시계와 벨트, 선글라스 따위가 다른 액세서리와 함께 진열된 진열장이 있었다.

그중 편한 옷을 골라 입고 방에서 나왔다.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한여름에도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닌데 지금은 땀이 다 났다. 휴대폰이 어느 정도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를 열었다. 강태영이 혼자 있는 나를 위해 편히 먹으라고 쌓아 둔 샌드위치며 샐러드 등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고를 거 없이 그냥 손이 가는 샌드위치를 하나 꺼냈다. 허기짐도 느끼지 못했지만 일단 배를 채워 둬야 할 것 같았다.

강태영이 없을 때 얼른 이 집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는 마음이 조급해서 견딜 수 없었다.

“쿨럭, 쿨럭.”

급하게 먹다가 샌드위치가 목에 걸렸다. 발작적으로 기침하며 가슴을 치다가 얼른 물을 따라 마시고는 휴대폰이 얼마나 충전됐는지 확인했다. 여유로운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충전이 된 휴대폰을 들고 현관문을 향해 뛰다시피 걸었다.

아, 계약서!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강태영의 감시 아래 썼던 종이의 존재가. 분란이 될 만한 거리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계약서도 함께 가지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있지? 미친 사람처럼 온 집 안을 들쑤셨다. 주방 식기장과 선반, 방 안의 서랍장까지 뒤지고 나서야 강태영이 부르는 대로 따라 썼던 계약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없애 버리면 어떻게 하지도 못하겠지. 진작 이럴걸. 멍청한 새끼. 나는 나 자신에게 욕을 퍼부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잠깐 돌아본 집 안은 도둑이 들었다고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양새였다.

현관문을 열기 전 신발장 전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살폈다. 묘하게 부은 얼굴과 볼이 아니더라도 처참해 보이는 몰골이었다. 이러고 나갈 순 없었다. 신발을 신은 채 다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검은색 캡 모자를 챙겼다.

온몸에서 강태영의 체향이 진동하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

점원이 쇼핑백에 담아 준 강태영의 옷은 매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수중에 있는 돈을 활용해서 최대한 저렴한 매장을 이용했다. 돈이 조금 아깝긴 했지만 강태영과 내내 함께 있는 것 같아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나았다.

쓰레기통에 있던 월급봉투를 챙겨서 나온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강태영이 찢어 버린 지폐가 아깝긴 했지만 다 찢어 버린 게 아닌 건 천만다행이었다.

강태영의 집에서 나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 나는 성지후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들어섰다. 떠나더라도 녀석에게만큼은 말을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였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모자를 좋아하는 성지후에게 줄 모자도 하나 함께 샀다.

성지후에게 만나자고 연락하고는 배터리를 아끼고 혹시나 올지 모를 강태영의 연락을 피하고자 휴대폰을 꺼 둔 터라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커피를 시키며 시간을 물어보자 아직 약속 시각이 좀 남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성지후는 부지런히 이곳으로 오는 중일 것이다. 진동 벨을 받아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구석이었지만 카페가 큰 건 아니어서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지는 다 보였다.

앉은 후부터 나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카페 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음료가 준비됐는지 테이블에 올려 둔 진동 벨이 빨간 불을 빛내며 몸을 떨었다. 성지후는 내가 음료를 가지러 가기 위해 막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일행을 찾는 것 같아서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왔어?”

“어, 야 갑자기 뭐야? 어딜 간다는 거야?”

“일단 자리에 좀 앉아서 얘기해. 음료 마실래?”

“응, 난 아아메.”

“저쪽 제일 구석 자리 가 있어, 내가 주문해서 받아 갈게.”

“어, 알겠어.”

성지후의 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놓아 주며 맞은편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연락과 더불어 급하게 어딘가로 떠나야 해서 지금 꼭 봐야 한다는 내 말에 놀라 한달음에 달려온 성지후의 표정이 꽤 심각했다.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은 왜 그래? 좀 부은 것 같은데?”

모자를 최대한 푹 눌러썼는데도 그런 게 다 보였는지 성지후가 꽤 날카롭게 질문했다.

“어제 같이 일하던 사람들하고 마지막이라고 술 많이 마시고 늦게까지 자서 그런가 봐.”

내 입에서는 나조차 놀랄 정도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목소리도 평이했다.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엄청 마셔댔나 보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순진한 구석이 있는 성지후가 내 말을 쉽게 믿어 줘서 다행이었다.

“근데 뭐야? 갑자기 연락 와서는 오늘 아니면 못 본다고 하질 않나. 어디 가는데?”

“그냥…… 다른 건 아니고 일할 곳 찾다가 지방에 숙식 제공되는 일자리가 있어서 그쪽에 가게 돼서, 좀 급하게 됐다고 연락받은 거라 미리 말을 못 했어. 너는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연락한 거야.”

성지후가 물어볼 말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대충 생각해 뒀던 변명이 내가 들어도 진짜인 것처럼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야,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

“연락이 갑자기 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니까.”

“무슨 일인데?”

“나도 가 봐야 정확히 알 것 같은데 무슨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관련 회사인가 봐. 내 상황에서 돈 벌려면 그게 제일 좋은 길인 것 같더라고.”

“숙식도 제공된다고 하면 그렇긴 하지…….”

“응.”

내 얘기를 다 들은 성지후가 그제야 좀 마음이 놓였는지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앉으며 커피를 마셨다.

“지방 어디로 가는데?”

“어? 어…… 울산.”

“와, 멀긴 멀다.”

성지후는 여기서 울산까지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검색해 보고는 다시 한번 진짜 멀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 이제 자주 못 보는 거야?”

“휴가 같은 거 받으면 올라올게.”

“당연하지, 미친놈아. 뭔 당연한 말을 호의 베푸는 것처럼 하냐? 근데 짐은 없어?”

성지후가 내 주변을 훑으며 물었다.

“어? 어. 원래도 별거 없었잖아. 필요한 건 그냥 가서 사려고.”

“그래도 옷 같은 건 있어야 할 거 아냐?”

“어차피 작업복 나와.”

“야, 아무리 그래도…….”

“나 이제 버스 시간 다 돼서 일어나야 할 것 같아.”

그냥 두었다가는 성지후가 의심할 것 같아 말을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녀석의 시선이 나를 따라 올라왔다.

“응.”

성지후는 아직 반 이상이 남은 아메리카노를 흔들더니 “진짜 얼굴만 겨우 보고 가네.”라고 말하며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이거.”

카페를 벗어나며 성지후에게 모자가 든 쇼핑백을 내밀었다.

“뭐야?”

안을 살피던 성지후가 모자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웬 모자?”

“많이 도와줬으니까 그냥 주고 싶어서. 지난번에 고기도 사 주기로 했는데 못 사 줬잖아.”

“기분이 존나 이상하네.”

“왜, 뭐가.”

묘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뜨끔해서 무심하게 대꾸했다.

“뭔 마지막인 것처럼 그러니까.”

“마지막은 무슨. 드라마 좀 끊어. 잘해 줘도 난리야.”

“알겠어, 발끈하기는. 가자 배웅해 줄게.”

“됐어, 먼저 가. 학교에 있다가 나온 거라며?”

“수업 한 번 안 듣는다고 큰일 안 나.”

“내가 불편해, 빨리 먼저 가.”

“진짜 가?”

“엉.”

“연락 자주 하고!”

“알겠어.”

나는 성지후의 등을 밀며 그를 재촉했다. 떨떠름한 표정의 성지후가 결국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싣는 것까지 지켜본 후에야 손을 흔들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나마 녀석을 보고 떠나니 속이 좀 후련했다.

현금을 그대로 들고 다니는 건 위험할 것 같아서 남은 돈을 다시 계좌에 입금한 뒤 택시를 타고 가까운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잠깐 휴대폰을 켰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흠칫 떨며 핸드폰을 살폈지만 강태영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내가 집에 없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없어졌다는 걸 알기까지는 녀석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가 아직 모를 때 최대한 멀리 떠나는 게 중요했다.

“바로 입구까지 가려면 유턴해야 할 것 같은데, 저쪽까지 들어가요?”

“아뇨, 여기서 세워 주세요.”

터미널 맞은편 횡단보도에 택시가 정차했다. 새로 산 모자를 한 번 더 눌러쓰며 내렸다. 크게 움직일 때면 새 옷에서 나는 냄새가 풍겼다.

지역은 보지도 않고 가장 빠르게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와서야 확인한 표에 적힌 도착지는 강릉이었다.

강릉.

많이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서울 안에서조차 가 본 곳이 많지 않긴 했다. 강태영의 집은 가족 여행이랍시고 국내외로 자주 돌아다녔지만 그 안에 내가 속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가족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가는 경우에는 꼽사리 끼듯 따라간 적이 있지만, 해외는 가 본 적이 없었고, 도우미 아주머니만 있는 집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만 했었다.

하영 이모의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는 그런 이벤트가 뚝 끊겼고. 그 후엔 그 가족끼리 어디를 가기보다는 각자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래도 강태영은 방학마다 짧게라도 해외에 다녀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녀석이 격하게 거부했다. 내가 그 집에 들어온 지 2년째 되던 해였나, 3년째 되던 해였나 정확하진 않다.

거부한 이유도 웃겼다. 내가 가지 않으면 자기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은 그저 본인이 귀찮아 가기 싫었으면서 괜한 핑계로 나를 이용한 것뿐임을 알지만 그땐 얘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구나 싶어서 꽤 감동을 받았던 것 같기도 했다.

과거를 반추하고 있자니 지금 이 현실이 더 지독했다. 강태영과 나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이 끔찍한 악몽으로 느껴졌다.

정말 녀석과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그의 사냥감이라도 된 것처럼 강태영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올 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해일처럼 몰아닥친 일은 소화하기 벅찼다.

짧게 생각하는 사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플랫폼에 들어섰다. 나는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내 자리는 1인석 창가 자리였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빈 좌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승객이 많이 타지는 않았다. 버스는 좌석의 절반 정도만을 채운 채 서울을 떠났다.

나는 아직 잠잠한 핸드폰을 확인하고 전원을 종료했다. 뒷좌석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등받이를 뒤로 조금 젖힌 후 눈을 감았다. 그제야 고단함이 밀려왔고, 무거운 눈꺼풀은 금방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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