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권) (1/9)

@김골드 공금

1.

내가 엄마와 가장 친한 고향 친구였다는 하영 이모의 집에 맡겨지게 아니, 기생하게 된 건 5년 전이었다. 그 전까지 우리 집은 꽤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이었다. 각자 바깥에 둔 애인의 존재를 묵인하며 공적으로는 금실 좋은 쇼윈도 부부 역할을 충분히 해내던 훌륭한 연기자인 부모가 있었고, 무엇보다 금전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부모의 외도를 처음 알았을 땐 며칠 밤 내리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긴 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말도 안 되는 연극에 합류하기로 타협한 지는 일 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평화롭게만 보였던 집이 몰락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사업이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으면서부터였다.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아버지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것과 더불어 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다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거래처들과도 줄줄이 거래가 끊겼다. 연줄이나 탄탄한 자본 없이 운영되던 공장 경영이 손써 볼 틈도 없이 무너졌다.

사업이 그렇게 되자 그동안은 모르는 척 잘만 넘어가던 서로의 ‘비밀’ 애인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부터 부모는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는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갈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특히 엄마는 어떻게든 이 좌초된 배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 굴었다. 더 이상 금실 좋은 쇼윈도 부부의 모습을 이어 나갈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자마자 꼬리 끊듯 이혼을 요구하는 엄마를 괘씸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내 양육권은 엄마에게로 넘어갔다. 양육권을 주장한 건 엄마였지만 막상 자신이 온전히 나를 책임지게 되자 당황해했다. 그에게는 아이를 혼자서 키울 만한 경제력과 여유가 없었다. 결혼 이후로 일을 그만두면서 경력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고, 사업이 망한 뒤에 한 이혼이라 나눠 가질 재산도 없었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서 하영 이모에게로 다시 맡겨지게 되었다. 자리를 잡은 뒤, 데리러 오겠다는 게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니 몇 달만 잘 지내고 있으라던 엄마는 몇 달 후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고,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엄마와 연락이 끊기리란 건 이 집에 올 때부터 은연중에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애초에 내 부모는 둘 다 나에게 큰 애정이 있지도 않았다. 나의 양육권을 주장한 것도 아마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엄마는 새 남자 친구와 두 번째 삶을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엔 다소 슬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쓸모없는 감정을 금방 떨쳐낼 수 있었던 것도 다 면역이 되어 있었던 덕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제 혼자 힘으로 살아야 했고, 하영 이모의 집에 맡겨진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엄마와의 연락이 끊기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하영 이모의 태도였다. 그건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영 이모는 자신이 베푼 호의가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 몰랐을 테니까.

하영 이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피가 섞인 것도 아닌 군식구에 대한 친절은 오래갈 수 없었다. 당연했다. 어린 시절의 짧은 우정만으로 덜컥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둬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믿었던 엄마와 연락까지 끊겼으니…….

설상가상으로 하영 이모 또한 남편과 1년 전부터 별거 중이었다. 이모의 남편이자 강태영의 부친은 자동차 부품 관련 중견기업의 대표였다. 예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본 적이 있는데 꽤 내실이 탄탄한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는 회사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은 돈이 얽혀 이혼은 하지 않는 거로 보였다. 나 같은 애한테 마냥 호의를 베풀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넘칠 상황이 아니었다.

“잘 잤어?”

방을 벗어나자마자 맞닥뜨린 반가운 얼굴에 놀라 알싸하게 아픈 아랫배를 매만지던 손을 급하게 내렸다. 마주친 사람은 방학을 맞아 본가로 내려온 재준 형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을 앞두고 정신이 없어서 집에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와 주었다. 강재준, 강태영과 7살 터울의 배다른 형제.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잘 잤다고?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니야. 잘 잤는데, 엄청.”

애써 웃었지만 어색해 보일 것 같아 천천히 입꼬리를 내렸다. 밤새 비명과 신음을 눌러 삼켜야 했던 목은 잔뜩 쉬어 있었다. 재준이 형은 자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말할 때마다 목이 따끔거렸다.

“잘 잤다는 녀석이 얼굴이 왜 이렇게 푸석해.”

형의 말에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라 건조해서 그런가 봐. 형은 어디 가?”

아침부터 말끔하게 차려입은 형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와 물었다.

“수정이 만나러.”

“데이트?”

채수정. 재준 형의 여자 친구였다. 내 물음에 형이 알면서 뭘 묻고 그러냐면서 멋쩍은 듯 웃었다.

“아, 그래. 잘 갔다 와.”

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노력하며 부러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응, 형 간다.”

연애는커녕 짝사랑도 재준이 형이 처음인 나로서는 형의 모습이 신기할 뿐이었다. 못해도 일주일에 3번은 만나는 것 같은데 만날 때마다 그렇게 좋은가? 불순한 생각이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하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3번이 뭐야 7일 내내 본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재준이 형을 매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더니 진짜도 아닌데 벌써 마음이 들떴다.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형이 내 속도 모르고 격려하듯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쳤다.

“맞다. 하민아.”

“응?”

그렇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줄 알았던 형이 나를 불렀다.

“내일 형이랑 나가서 밥 먹을까? 시간 돼?”

“우리 둘이?”

“태영이 놈도 같이.”

그럼 그렇지. 하늘로 붕 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아, 강태영도?”

“응, 형이 맛있는 거 사 줄게. 시간 비워 놔.”

“알겠어.”

내 말에 형이 이번에는 진짜로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단정하게 움직이는 형의 뒷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며 나도 원래의 목적지였던 욕실로 향했다. 새벽녘 내내 생으로 싸질러 놓은 강태영 때문에 아랫배가 부글부글 끓었다.

옷을 벗은 뒤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가 다리를 벌린 채 쪼그려 앉았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강태영이 아니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다소 굴욕적인 상황에 저절로 아랫입술을 깨물게 됐다.

“아으…….”

아파.

부은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눈물이 찔끔 나옴과 동시에 짜증이 솟구쳤다. 어찌나 깊숙하게 박고 사정을 했는지 가장 긴 가운뎃손가락을 끝까지 넣어도 정액이 제대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세를 바꿔 욕실 바닥에 아예 무릎을 꿇고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은 채 사이를 벌렸다. 구멍을 넓힌 채 잠시 기다리자 내벽 안에서 꿀렁이는 느낌이 나더니 곧 진득한 정액이 느리게 아래로 흘러내렸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입술을 더 강하게 깨물었다. 입술에 피가 나든 말든 상관없었다.

고여 있던 정액을 빼내고 몸을 일으키자 차가운 욕실 바닥에 무방비 상태로 맞닿아 있던 무릎 관절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빨갛게 물든 무릎을 양 손바닥으로 무성의하게 몇 번 문지른 후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봤다.

내가 봐도 얼굴이 엉망이었다. 재준이 형이 잘 잔 게 맞는지 물은 것도 이해될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된 후 심리적인 괴로움도 컸지만 안심할 만하면 어젯밤처럼 들이닥쳐 섹스를 요구하는 강태영 때문에 잠을 제대로 푹 잔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니 피부가 상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푸석하다는 평을 들었던 얼굴에 일부러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수를 마치고 새 수건을 꺼내 몸과 얼굴을 닦아냈다. 냉수마찰 후 초점이 또렷해진 눈동자를 잠깐 바라봤다. 이럴 때일수록 살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빨래통에 넣을 수건을 들고 욕실 문을 열었다가 몸이 흠칫 굳었다. 문 앞에 밤새 나를 혹사했던 놈이 서 있었다.

“……비켜.”

나를 막고 선 녀석을 향해 말했다.

“입술 부었네.”

그러나 놈은 내 말을 무시하고 별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비키라니…….”

“좆물 뺐어?”

여기가 어디라고. 아무리 2층이지만 집 안이었다.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계단 쪽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누가 갑자기 올라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는 경망한 녀석을 노려봤다. 그러나 내 공격적인 시선에도 강태영은 오히려 내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손을 뻗었다. 뒤로 물러날 틈도 없이 곧 녀석의 손가락 끝이 입술에 닿았다. 녀석의 엄지손가락이 이로 물고 있던 아랫입술을 빼냈다. 그러고는 퉁퉁하게 부어오른 입술을 느리게 문질렀다.

“빨고 싶게.”

그 말을 듣자마자 강태영의 손을 쳐냈다. 몇 시간 전까지도 그 짓을 해댔으면서. 파렴치한 것도 정도가 있었다.

“……미안, 나 좀 피곤해서.”

매섭게 쳐내 놓고 막상 강태영의 표정에 미묘하게 금이 가는 것을 보니 겁이 나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을 내뱉었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숨이 다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녀석이 하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또 해야만 하는 나는 욱해서 저지른 내 행동에 대해 놈의 선처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어제.”

말을 하다 보니 울컥하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기도 해도 한 템포 쉬었다. 따지고 보면 어제도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일이었지.

“많이 했잖아.”

비굴한 목소리가 우스웠는지 강태영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꽉 막힌 것 같던 명치끝의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었다.

강태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벗어나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나는 티 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그 틈 사이로 빠져나왔다. 쭈뼛쭈뼛 녀석의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내 방으로 향했다.

딸깍.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갔다. 아직 밖에 있을지도 모를 강태영이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듣고 비웃을지도 몰랐다. 결국 빨래통에 넣지도 못하고 들고 온 수건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젖은 수건을 바닥에 던졌다.

아직도 시큼한 냄새가 빠지지 않은 침대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얼굴을 이불에 묻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화근은 결국 나였다.

모든 건 나도 모르는 사이 시작됐다. 강태영과 이런 미친 관계가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그 전까지 우리는 그냥 한집에 사는 친구 사이일 뿐이었다. 가끔 녀석에게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늘함이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동갑인 친구이니 어차피 한 지붕 아래에서 살 게 된 거 잘 지내면 좋을 녀석 정도로만 생각했다.

가끔 싸가지 없게 굴어 빡칠 때가 있었고, 대화를 하고 있어도 도무지 그 속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녀석이 대놓고 나에게 해악을 끼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 육감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리는 그 평범한 또래의 친구들처럼 시험 기간엔 함께 공부를 한 적도 있었고 등, 하교를 같이하기도 했다. 강태영은 하영 이모를 설득해 엄마와 연락이 두절된 이후 진작 쫓겨날 뻔한 나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녀석과 나 사이에 있는 미묘한 격차를. 표면적으로는 친구였지만 강태영은 내가 얹혀사는 집의 작은 도련님이었고 나는 객식구에 불과한 을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나는 강태영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놈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부럽다거나 하는 생각도 잘 하지 않았다. 살 떨리게 잘생긴 얼굴은 몇 년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아 가끔 놀랄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오히려 감정이라고 한다면 강태영이 아니라 그의 형인 강재준에게 있었다. 이 집에 살면서 그가 하영 이모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티도 안 날 정도로 밝은 성격의 형은 다정한 성향 때문인지 누구에게든 인기가 많았다.

그건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어린 내가 친구이긴 하지만 어딘가 벽이 느껴지는 강태영보다는 재준이 형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재준이 형에게는 미묘한 동질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한집에 있지만 완전히 그 안에 종속되지는 않은 것 같은 점 때문이었다.

천애 고아나 다름없는 나를 그나마 인간다운 길로 인도한 것은 형이었다. 형이 없었다면 나는 한참 어긋난 길로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음 둘 데가 없던 어린 내가 형에게 절대 알릴 수 없고 알려져서도 안 되는 감정을 품고 빠지게 된 건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더라도.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수능을 마치고 방학을 하고, 크리스마스를 지나 순식간에 새해가 된 게 아직도 믿기지 않던 것 빼고는 모든 게 똑같은 날이었다.

나는 아직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2로 시작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였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볼 일이 생기면 열아홉이라는 말이 여전히 먼저 나왔다. 그러다 뒤늦게 이번에 스무 살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주민등록증이 나온 지도 한참 됐으면서 낯설었다.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더 그랬던 건지도 몰랐다. 스무 살이 됐다고 곧바로 내 삶이 변화가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게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당장 맞은편에 앉아 식사하고 있는 강태영 역시 나와 별다를 게 없을 거로 생각했다.

분명 그렇게 느꼈는데……. 저녁 식사를 할 때쯤 강태영이 묘하게 평소와는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온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강태영은 찬바람이 불어댈 것 같은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원래도 대놓고 살가운 성격이 아니긴 했지만 집에 들어오는 걸 보고 말을 걸었을 때도 아무런 대꾸도 해 주지 않더니 지금까지 나를 무시하듯 구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완전히 식충이가 된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하영 이모의 눈치까지 보면서도 부지런히 밥을 입 안으로 퍼 날랐다. 강태영에 하영 이모의 눈치까지 보면서 식사를 이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되는 날이면 유독 속이 허했다.

‘아들, 왜 이렇게 밥을 못 먹어.’

나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잠시 준 하영 이모가 미간을 찌푸리며 깨작거리는 강태영을 향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입맛이 없네.’

지금까지 무슨 질문을 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강태영이 처음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이모가 강태영에게 좀 더 상체를 기울였고 나도 시선을 들어 강태영을 바라봤다.

‘뭐? 입맛이 왜 없어, 우리 아들. 무슨 일 있어?’

‘요즘 잠을 못 자서요.’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툭 내뱉어진 강태영의 말에 시선이 집중됐다.

‘잠을 못 잔다니? 왜?’

이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려고만 하면 쥐새끼가 밤새 찍찍-.’

이런 대궐 같은 집에 무슨 쥐야. 또라이 새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몰래 웃었다. 그때 강태영의 스산한 시선이 머문 건 내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나는 찰나의 순간 마주친 녀석의 눈이 살짝 웃는 듯 접혔다는 걸 알았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이유는 몰랐다.

‘쥐?’

하영 이모는 강태영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하게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집에 쥐라니?’

강태영은 다시 입을 열지 않았고 나를 스쳐 갔던 시선도 거둬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하영 이모를 두고 강태영은 그만 먹겠다며 자리를 떴다.

‘태영아? 밥은? 이게 다 먹은 거야? 더 안 먹어?’

이모의 애원조의 목소리가 녀석의 뒤를 따라붙었다. 나는 나를 훑고 지나갔던 녀석의 시선에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피어올라 수저를 내려놓았다. 강태영의 시선 하나에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이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집에 쥐새끼가 있어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미친 소리를 해대며 이모를 걱정시켰던 강태영이 내 방을 찾아온 건 늦은 새벽녘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침대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샤워 중 했던 자위의 여파였다. 마지막엔 재준이 형의 이름을 불렀던 것 같기도 했다. 숨 막히는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이었다.

어렴풋이 재준이 형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이후 종종 벌여 온 일이었다. 욕구불만이기라도 한 건지 요즘 들어 좀 횟수가 잦아지긴 했지만 특별하다 싶은 일은 아니었다.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무렵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빠르게 감겨 가던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자기, 그것도 이 시간에, 노크도 없이 방문이 열릴 일은 없었다.

노곤해진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바라보자 강태영이 문에 어깨를 비스듬하게 기대고 서 있었다.

‘뭐야, 갑자기?’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내 방엔 왜 왔어? 저녁엔 내내 무시하더니?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막고 묻자 녀석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까 말했지.’

녀석의 음성엔 왜인지 화기가 실려 있었다.

‘뭐, 뭘.’

갑자기 뭔 개소리야. 무슨 말을 했다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쥐새끼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쥐는 무슨, 다짜고짜 와서 아까부터 자꾸 뭔 엉뚱한 소리를…….’

이상한 소리 말고 내 방에서 꺼지라는 말을 하려던 내 입은 곧 허망하게 다물어졌다.

-흣, 아, 으읏. 재준이 형……, 아흑.

-아……, 강재준. 흐흡.

찰박거리는 물소리, 탁탁거리며 살갗이 마찰하는 소리, 누가 들어도 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울림과 그 사이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재준이 형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녹화된 영상 파일이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화면은 강태영의 방 벽면을 비추고 있었다.

내 표정은 삽시간에 경악으로 굳어 갔다. 짧은 시간 동안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입천장까지 메마른 듯한 느낌을 받고 나서야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다물었다. 그 와중에도 영상 파일은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침대 옆 벽이 욕실이랑 붙어 있어서 이렇게 흘려대면 듣기 싫어도 내 귀에 들어온다고.’

강태영이 말을 씹듯이 내뱉었다. 그의 뒤로 열린 방문이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나는 일단 몸을 날리듯 다가가 방문을 닫고 아예 잠가 버렸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잠근 방문에 등을 기대자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꼭 등을 뚫고 나와 버릴 것 같았다. 문에 대고 있는 손바닥에서 짙은 땀이 배어 나왔다.

‘어쩔래?’

당황한 나를 보던 강태영이 흐음, 하고 고심하듯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뭐, 뭘?’

나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물었다.

‘내가 알았잖아.’

‘……말하게?’

‘하지 마?’

나를 왠지 빙빙 돌리며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강태영에게 처음으로 증오심을 느꼈다. 불안감에 질겅질겅 씹어대고 있는 입술에서 비린 맛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좀 곤란하겠지? 비밀로 해 줘?’

그걸 말이라고! 나는 바짝 약이 올라 떨리는 손을 꽉 말아 쥐었다. 다음 말이나 이어질 행동을 예상할 수 없었다.

‘응, 제발. 네 방에까지 드, 들리는 줄 몰랐어, 미안.’

그래서 그냥 빌었다. 내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런 내 목소리에 나조차 놀랐다. 강태영이 모든 걸 차치하고 그저 친구로서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조심할게.’

‘뭘 조심해?’

나는 눈짓으로 어느새 재생이 끝난 강태영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그거.

‘하, 한 번만 봐주라.’

비굴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여차하면 녀석의 심기를 거스른 일에 대해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비빌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봐줬는데.’

‘……어?’

‘너 오늘 이거 처음 아니잖아.’

강태영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자마자 빠르게 무릎을 꿇었다. 털썩, 소리가 날 정도로 무릎이 바닥에 강하게 부딪혔는데 아픈 줄도 몰랐다.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지 정수리가 따끔따끔했다. 잠시 뒤엔 피식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바닥을 모아 비볐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진짜. 주의할게, 다시는 안 그래. 어?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 주라, 제발…… 부탁할게.’

‘…….’

‘네 형으로 그런 거…… 진짜 미안해. 괘씸하고 역겨울 거 알아.’

‘안다고?’

‘응, 다시는 안 그…….’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고 있는데 턱을 받치는 손이 들어와 고개를 쑤욱 들어 올렸다. 고개가 훅 꺾였다. 턱을 틀어잡은 녀석의 손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강태영이 눈을 맞춘 채 천천히 몸을 숙였다.

‘뭘 아는데, 네가.’

눈빛이 차가웠다.

‘뭘 아냐고.’

‘왜, 왜 이래.’

불쾌한 감정이 들 수 있다는 것은 이해되었지만 강태영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그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자신의 형을 두고 그런 짓을 한 게 괘씸했던 건가. 나는 굳이 내 은밀한 행위를 녹화까지 해 온 강태영의 행동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냥 좀 모른 척해 줄 수도 있는 일을 왜 이렇게까지 키우려고 하는 건지, 저도 같은 남자면서 이런 식으로 불쌍한 나를 몰아붙여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도대체 왜, 왜 이러는데…….’

그러고는 곧 진부한 대사를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좆도 가진 게 없는 나에게 무언가를 뜯어낼 심산으로 이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달리 떠오르지도 않았다.

‘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진작 내 맘대로 할 걸 그랬네.’

나는 뜻 모를 소리를 해대는 강태영을 멍청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파일 강재준한테도 보낼 거야.’

‘……뭐?’

뒷골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야, 강태영. 아니, 태영아 왜 그래. 하지 마. 내, 내가 다 할게. 네가 원하는 게 뭐든 아니, 솔직히 네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도 뭐 바라는 거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다 노력해볼 테니까…… 제발.’

나는 필사적으로 강태영을 붙잡았다. 당장 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던져 박살을 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소란을 피워 온 사람들을 깨울 순 없었다.

‘그럼 벗어.’

한동안 말이 없던 강태영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나는 멍해졌다.

‘……어?’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한다며?’

‘…….’

‘두 번 말하는 거 존나 귀찮은 거 알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그러나 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옷으로 입는 반팔 티를 먼저 벗었다.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해 상의의 양 끝을 잡고 위로 쭉 올렸다. 목구멍으로 머리가 빠져나오자 바짝 가까워진 강태영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은 시선만 아래로 내려 내 상체를 훑어봤다.

이상하게 그 시선에 머리카락이 비죽 솟는 기분이었다. 상의 탈의 정도야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많이 했던 일인데 괜히 팔을 올려 몸을 가리고 싶었다.

‘……진짜 다 버, 벗어?’

‘어.’

내 물음에 강태영이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는 녀석의 목울대가 울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손을 바지 밴드 부분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차마 바로 옷을 내리지는 못했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곧 짜증 섞인 한숨이 들렸다.

‘보내?’

차가운 음성에 고개를 들자 영상 파일을 재준이 형과의 메시지 창에 업로드해 놓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인 녀석의 손가락이 보였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빨리 벗으라고. 뒤에 생략된 말까지 저절로 이어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질 나쁜 악몽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지까지 벗었다.

‘넌 섹스 할 때 속옷 입고 해?’

이제 됐겠지, 생각하고 있을 때 들린 목소리에 차마 강태영을 보지 못하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라고?’

내가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하는 강태영에게 또 되물었다. 역시나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치켜떴다.

‘씹 뜰 거니까, 처답답하게 굴지 말고. 씨발, 짜증 나게.’

언제나 의뭉스럽던 강태영이, 자신의 본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 순간이었다. 숨기고 있던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곧장 나에게 손을 뻗었다. 모든 인내심이 바닥나서 조금이라도 참을 수 없겠다는 얼굴이었다.

녀석의 손길에 침대 위로 나뒹굴게 되었지만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이불 위로 처박힌 얼굴을 들어 올렸다. 허리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제야 단순히 질 나쁜 장난이거나 겁을 좀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태영, 하지. 하지 마, 잠깐 얘기 좀……! 우웁.’

강태영이 한 손으로는 내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속옷을 벗겨 내려고 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미친 새끼! 소리도 지를 수 없는 상황에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낼 수 있는 건 잔뜩 억눌린, 앓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강태영이 속옷을 벗기지 못하도록 배를 침대 위에 딱 붙였다.

‘허리 들어.’

그의 말에도 절대 엉덩이를 들지 않았다. 내 필사적인 행동에 제약이 생기자 길게 한숨을 내뱉은 강태영이 속옷에서 손을 뗐다. 척추를 타고 주르륵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녀석은 속옷을 벗기는 대신 옆으로 잡아 벌렸다. 놀라서 입이 크게 벌어졌다. 강태영이 내 허벅지 위쪽을 내리누르며 앉은 자세로 미친 듯이 발버둥 쳐대는 내 몸짓을 제지했다. 옆으로 젖혀진 속옷 탓에 드러난 엉덩이 골 사이로 뜨거운 손이 들어왔다.

‘으븝, 으……!’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뒷머리를 꾹 누르고 있는 녀석의 손에 숨이 막혀 정신이 아찔해질 때, 틈도 없이 다물려 있던 아래로 손가락이 푹 들어왔다.

‘아!’

이불에 막힌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씹…… 너 뒤로는 안 해 봤어?’

귓가를 씹으며 강태영이 물었다. 나는 충격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형 생각하면서, 뒤로는, 안, 했냐고.’

녀석이 끊어서 말할 때마다 손가락이 끝까지 들어왔다가 끝까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흐으, 으윽.’

눈가 부분에 비벼지던 이불이 축축했다.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여긴 내가 처음이네.’

귀가 잘못됐는지 강태영은 엄청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흐읍, 으. 수, 숨 막혀.’

눈물이 나와서인지 코도 막혔다. 그러자 눌린 상태로는 더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강태영이 머리카락을 잡고 내 고개를 뒤로 꺾었다. 더 이상 숨이 막히지는 않았지만 두피가 벗겨지는 줄 알았다. 귓가로 들리는 내 숨소리가 미친 듯이 운동장을 돌았을 때처럼 거칠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점차 물기가 느껴졌다. 몇 번 뒤를 쑤시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생경한 느낌에 허리가 부르르 떨리는 것과 동시에 뭉툭한 살 끝이 엉덩이 사이에 비벼졌다. 나는 그대로 목석이 된 듯 굳었다. 길고 두꺼우면서 묵직하기까지 한 살덩이가 무엇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태영은 속옷을 완전히 찢어질 듯이 활짝 더 벌렸다. 속옷과 함께 잡힌 엉덩이 사이 또한 벌어졌다. 육중한 존재감의 살덩이는 벌어진 엉덩이 사이를 더 수월하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들쑤셔 댔던 구멍 안으로 살덩이가 곧이라도 밀고 들어올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다리 더 벌려.’

강태영은 명령하고는 내가 스스로 움직이기도 전에 양 허벅지 안쪽을 비집으며 위로 올렸다.

‘강태영……, 자, 잠깐. 태영아아.’

나는 어렵사리 목소리를 냈다. 목구멍이 콱 막혔다.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강태영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살덩이가 아래를 비집고 밀고 들어왔다. 꾹, 힘주어 밀어 넣는 행위에 금방이라도 비명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관자놀이에 핏줄이 서는 것을 느끼며 볼 안쪽 살을 씹었다. 찢어질 것 같았다. 살이 다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윽, 윽 하는 신음만 목 안쪽을 긁어댔다.

꾹꾹, 아직도 들어올 게 더 남았는지 두꺼운 살덩이가 내벽 안을 헤집고 들어올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 머리카락을 놓아준 강태영이 두 손으로 내 허리를 틀어잡았다. 고환이 엉덩이에 닿았다. 나는 가느다랗게 떨리는 두 팔을 힘겹게 겹치고 그 위에 얼굴을 올렸다. 팔에 닿은 얼굴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후윽, 읏……, 아.’

뒤에서 강태영이 자신의 무릎을 이용해 허벅지가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았다. 녀석의 성기가 조금 더 깊게 들어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모든 장기가 목구멍까지 쏠려 올라온 느낌이었다. 녀석의 성기가 이제는 완전히 들어왔는지 고환이 이어진 부분에 맞닿았다.

‘으, 윽.’

잠시 뒤 강태영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툭툭 핏줄이 돋은 성기가 빠듯하게 들어차 내벽을 앞뒤로 비볐다. 한 번도 무언가를 받아본 적 없는 구멍은 벌어졌다가도 금세 닫혔다. 그 때문인지 빠져나간 성기가 다시 들어올 때마다 강태영에게서도 신음이 터졌다. 빠듯하게 아래가 벌어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질 때마다 허벅지 근육이 바르르 떨렸다.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찢어지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흐아악, 아.’

‘후…… 으읏.’

느린 움직임이 점차 빨라졌다. 빠져나갔다가 성기가 박히는 시간이 짧아졌다. 단단한 살덩이가 드나드는 구멍 주변은 물론 배 안쪽까지 얼얼했다.

고통 뒤에 이른 쾌감이 따라오기 시작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원치 않은 쾌감은 점점 커졌고 성기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내벽이 꿈틀거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빨랐다.

‘하아, 후윽.’

내벽과 그 안에 고여 있던 체액이 성기를 따라 딸려 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허리를 틀어잡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 위로 치솟았던 엉덩이가 아래로 추락했다. 존재감과 비례해 성기는 내벽을 빠져나가는 시간도 길었다. 안에 박아 넣은 채로 꿀렁이며 정액을 쏘아댄 게 족히 세 번은 되는 듯했다. 녀석의 좆을 따라 샌 정액보다 아직 안에 고여 있을 양이 더 많을 거라는 소리였다.

강태영의 움직임에 따라 매트리스가 아래로 꺼졌다가 올라왔다. 곧 침대 밖으로 내려간 녀석이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나는 발가벗기고 자기는 하의만 살짝 내린 채로 박아댄 그의 정돈은 금방 끝났다. 소금기가 느껴지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서 있는 강태영을 바라봤다. 입술을 죄다 씹어댔더니 피 맛이 났다. 노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강태영이 눈알만 굴려 나를 내려다봤다.

‘미친 새끼야……, 흡, 이게 무슨.’

‘뭐든 하겠다며?’

‘그렇다고 이런 걸 한다는 말은 아니……!’

‘그럼 취소하든지.’

뭐든지 하겠다고 한 말을 취소하면 뒤이어 벌어질 일은 뻔했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면서 마음대로 하라는 투로 내 목을 조여 오는 녀석의 말에 기가 차서 실소를 흘렸다.

‘이, 이제 그거 지워 주는 거야?’

‘앞으로 하는 거 봐서.’

이번 한 번으로 끝난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일회성이 아님을 암시하는 소리에 미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너 이 개새……!’

‘그렇게 해서 사람들 깨울 수나 있겠어? 더 크게 소리쳐.’

‘…….’

‘간다.’

볼일이 끝났다는 듯 산뜻한 모습으로 방을 빠져나가는 강태영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봤다.

사뿐한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에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참았다. 소란을 피하는 일은 눈칫밥을 먹고 자란 내 몸에 밴 습관이었다.

강태영은 조심성 없이 거칠게 들어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문까지 조용히 닫아 주고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뒤늦게 베개를 던졌다. 이미 굳게 닫힌 문에 부딪힌 베개가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힘없이 땅으로 추락했다.

강태영은 언제부터 내 안일함을 노리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 내내 나에게 냉랭했던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나? 도대체 언제부터……. 만약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형에게 알리기라도 한다면……. 아니, 이 집안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끔찍한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니야. 좋게 생각하자. 좋게 생각하자. 나는 고개를 거세게 내저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미 물은 엎질렀다. 강태영은 내 비밀을 알아챘고, 강간과 다를 바 없는 섹스도 이미 했으니 두 번은 뭐가 더 어려울까 싶었다. 그래 별거 아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내 비밀을 지켜 주겠다던 강태영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빼고는 괜찮았다.

‘아…… 아파.’

나는 애써 추스르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허리가 뻐근하게 아렸고 강태영의 좆이 미친 듯이 드나들었던 아래가 쓰라렸다. 찝찝한 건 두 번째 문제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래에 손을 가져갔다. 피가 나왔는지 선홍색의 정액이 손가락 끝에 묻어 나왔다.

‘흐윽.’

아픈 것은 처음부터 똑같았는데 막상 눈으로 피가 난 것을 확인하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지옥 같은 밤이었다.

그까짓 일이라며 스스로 자위한 것과 어울리지 않게 그날 나는 잠을 단 한 숨도 이룰 수 없었다. 쓰라린 아래와 녀석이 들려주었던 녹음된 내 음성이 밤새 나를 괴롭혔다. 동이 터 올 무렵에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뒹굴다가 퀭해진 눈으로 욕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이 모습을 들키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면서.

그때부터 절대 들켜선 안 되는 강태영과의 관계가 시작됐다. 부모에게 버려진 이후 다시 한번 삶의 궤도가 크게 바뀌었다.

그 뒤로는 녀석이 요구하면 나는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한두 번 하고 나면 그만두겠지 했던 녀석의 요구는 꽤 자주 있었다. 몇 번의 관계 뒤에는 녀석과의 섹스 뒤에 이어진 배앓이의 원인도 점차 깨닫게 됐다.

반강간과 협박으로 시작된 관계가 기꺼운 건 아니었지만 처음엔 분명 더 컸던 고통이 이제는 거의 쾌감으로 변했을 정도로 자주 행해지는 관계에 나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빠르게 적응하기.

그건 내가 살면서 갖춘 얼마 없는 장점 중 하나였다.

•••

눈을 떴다. 침대 위에 엎드려 생각을 이어 가다가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수능이 끝난 겨울방학은 황금기였다. 수능이 끝난 학생들이 합법적으로 마음껏 뒹굴 수 있는 기간. 물론 고아나 진배없이 남의 집에 얹혀사는 나에게는 약간 비껴간 말이었지만.

그러나 그 황금기도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이제 슬슬 이 집에서 벗어날 때가 되긴 했다. 어차피 대학 가는 건 글렀으니 이 집에 머무는 동안 돈이나 좀 모아서 지긋지긋한 이 집안사람들과도 작별해야 했다.

성인이 되면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진작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공부할 때 나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중 남는 돈을 일부 모아놓기는 했지만 뭔가를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했기에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 공고를 찾아 이력서도 되는대로 넣어 두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을 뿐.

똑똑.

핸드폰을 손에 쥐고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잠을 털어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설마 또 강태영인가 싶어 문 쪽을 노려보고 있자 천천히 문고리가 돌아갔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방을 찾은 이는 걱정과 달리 강태영은 아니었다.

“아, 이모.”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를 벗어났다.

“앉아 있어도 돼, 그냥 짧게 얘기하고 나갈 거니까.”

무슨 얘기를 하려고. 침이 절로 꼴깍 넘어갔다. 하영 이모는 천천히 문을 닫고 다가왔다. 책상 의자를 끼익 빼내 침대 옆에 앉은 이모가 눈을 맞춰 왔다. 밤새 자기 아들이 이곳에서 짐승처럼 내 몸 이곳저곳을 핥고 깨물고 내 아래를 쑤셔댔을 걸 꿈에도 모를 이모의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깔았다.

“이제 하민이, 너도 성인이잖니.”

“네.”

첫마디를 들으니 벌써 대충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예상이 갔다. 나는 괜히 눈을 도로록 굴렸다.

“언니한테서는 아직 연락도 없고.”

그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너도 차차 독립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네.”

역시나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미성년자일 때야 뭐, 나도 양심상 바로 나가라고 하는 게 좀 그랬는데. 애들이랑도 잘 지냈고, 근데 이젠 좀 아닌 것 같지 않니?”

“네.”

언제까지 엄마와의 옛정으로 나를 여기에 머무르라고 할 수 없다는 이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해도 나에겐 당장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 그럼 하민이가 내 말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할게.”

“네.”

“늦어도 봄까지는 나가 줬으면 좋겠어. 이모 엄마가 미국에 사시는 건 알지? 봄에 한국 오시기로 했거든. 그러면 이 집에서 머무실 건데 가족도 아닌 애가 있으면 불편하실 거잖아?”

듣지 못한 소식과 함께 완벽한 축객령이 떨어졌다.

“야박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럼요, 지금까지 키워 주신 것만 해도…….”

“키워 주기는 무슨, 네가 알아서 잘했지.”

이모는 내 말에 살짝 부끄럽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여기 있는 동안 태영이랑 잘 지내 주고 그래서 이모도 너한테 고맙게 생각해. 태영이가 사교성이 좋은 타입은 아니라 너한테 도움 많이 받은 거 알아. 뭐 준비하다가 어려운 거 있으면 말해. 이모도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진 도와줄 테니까, 알겠니?”

“네.”

나는 ‘네’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하민이는 말도 잘 통하고 빠릿빠릿하다니까, 뭘 해도 잘 지낼 거야. 어릴 때는 이모가 너 많이 예뻐했던 거 알지?”

지금은 아니라는 건지 ‘어릴 때는’라고 콕 집어 말하는 이모에게 나는 억지로 입술 끝을 끌어 올리고 눈을 접었다.

“그럼 이모는 나갈게, 쉬어.”

“네.”

이모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다시 원래 자리에 끌어 놓고는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하게 방을 나섰다.

“하아.”

이모가 방을 나서고 5분쯤 지났을 무렵,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어떻게 면접 한번 보러 오라는 연락이 없지?

나는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며 아르바이트 구인 애플을 켰다. 동네로 지역을 설정하고 검색을 눌렀다. 애초에 할 만한 아르바이트 공고는 몇 개 있지도 않았지만 보이는 대로 마구잡이 지원을 했다.

•••

“하민아, 뭐 먹고 싶어?”

재준이 형이 다정하게 물었다.

“난 다 좋은데, 형은?”

“형도 다 좋은데.”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강태영만 아니라면 형과 단둘이 데이트하는 기분도 들고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는 형이 어제 제안했던 대로 외식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내키지 않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강태영이 귀찮다며 외식을 하자는 형의 제안을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나를 놀리듯 우리와 동행했다.

“강태영, 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런 건 먼저 식사 자리 제안한 사람이 생각했어야지.”

형의 물음에 역시나 퉁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싸가지 없는 새끼. 저럴 거면 집밥이나 먹고 있을 것이지 왜 따라 나와서는. 나는 속으로 강태영을 욕하며 창밖을 노려봤다.

“저 자식은 하여튼 말을 해도.”

말은 그렇게 해도 그다지 기분이 나빠 보이지도 않는 형이 픽 웃었다.

“그럼 우리 호텔 뷔페 갈까?”

“난 완전 좋아.”

나는 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냈다. 내 반응에 재준이 형이 낮게 웃기에 나도 따라 웃었다. 아까부터 내가 앉아 있는 카 시트를 툭툭 차는 강태영은 완전히 무시한 채였다.

발레파킹을 맡기고 우리 세 사람은 나란히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몰랐는데 새 시즌 프로모션 마지막 날이어서 사람이 꽤 붐볐다. 그러나 프리미엄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형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데 갈 걸 그랬나?”

형이 벗은 옷을 서버에게 건네며 말했고 나는 옆에서 맞장구쳤다. 강태영은 무표정으로 별다른 말도 없이 겉옷을 벗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배 터지게 먹고 가자.”

어린아이 같은 내 말에 재준이 형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었다. 오랜만에 받는 애 취급이 좋아서 들뜬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강태영과 눈이 마주쳤다.

‘떨어져.’

강태영의 입 모양을 읽자마자 솜사탕처럼 달콤하던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가 놓고는 얼른 음식을 담으러 가야겠다며 티 나지 않게 형의 곁에서 벗어났다.

“좋았어?”

새우를 담다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손을 삐끗했다.

“어린애처럼 머리 쓰다듬어 주는 게 좋은가?”

그대로 접시를 놓칠 뻔했다. 다행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놀란 심장은 여전히 벌렁거렸다. 언제 다가온 건지 모를 강태영이 내 옆에서 태연한 얼굴로 초밥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알아서 뭐 하게.”

내 대꾸에 초밥을 집어 올리던 기다란 젓가락을 내려놓은 강태영이 웃긴 꼴을 다 보겠다는 듯 비웃었다. 사람이 붐볐지만 녀석의 비웃음 소리만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있었네.”

“아! 깜짝…… 형.”

“야 내가 더 놀랐어,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막 대답을 마쳤을 때 강태영과 나 사이를 파고든 재준이 형 때문에 상체를 크게 떨었다. 형은 그런 나를 향해 본인이 더 놀란 눈을 했다.

“둘이서 뭔 비밀 얘기라도 했어?”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난 형한테 비밀 없어.”

부끄러워서 강태영 쪽으로는 시선도 줄 수 없었다.

“알지, 알지. 얘기는 밥 먹으면서 해도 되니까 얼른 오라고. 배 안 고파?”

“나도 이제 가려고 했어, 맛있는 게 많아서 뭐 담을지 고르는 게 어렵네.”

강태영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나는 녀석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담아 와. 형 먼저 간다.”

양손에 음료가 든 컵과 접시를 든 형이 먼저 자리로 가 있으려는 듯 우리 사이를 빠져나갔다. 형이 자리를 뜨고 나서 나 역시 강태영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뒤를 따랐다. 조금 전까지 흘러넘쳤던 입맛이 뚝 떨어졌다.

식사 내내 나와 형의 대화가 이어졌다. 강태영의 목소리는 거의 들어 볼 수 없었다. 주로 형이 묻고 내가 대답했다. 협조적이지 않은 강태영의 태도가 신경 쓰여 형과의 대화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하민이는 대학 안 간다고 했었나?”

“응, 난 안 가.”

형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대학이야 가고 싶다는 생각도 크게 해 본 적 없었지만 아마 가고 싶다고 했어도 가지 못했을 확률이 더 높았다. 고학생으로 어렵게 학비를 마련하면서까지 배움을 이어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가면 좋을 텐데.”

“가서 뭐 해, 요즘은 대학 나와도 태반이 백수라며. 어차피 다 돈 벌려고 대학 가는 거 아니야?”

“취업만 생각하고 대학 가나, 뭐. 놀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거지.”

재준이 형은 이럴 때 보면 낭만주의자처럼 보였다. 딱히 그렇지도 않으면서 현실을 모르는 샌님처럼.

“가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고?”

“왜, 가고 싶다고 하면 형이 보내 주게?”

나는 부러 그런 곳에 미련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하민이한테 형이 투자 좀 해 볼까?”

“뭐?”

“투자는 무슨.”

형의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람과 동시에 지금껏 말 한마디 없던 강태영의 불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하민이 공부도 곧잘 했잖아.”

강태영의 무채색의 시선이 나를 쓱 훑었다. 마치 쟤가?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둘이 싸우기라도 했어? 어째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다?”

강태영의 목소리에 서 있던 날을 알아챘는지 형이 놈과 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쟤랑 왜.”

강태영이 성의 없이 대꾸했다.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놨다. 여기서 식사를 더 이어 갔다가는 잔뜩 체할 게 분명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굴고 있으면서 믿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강태영을 형 몰래 노려보다가 억지로 안면 근육을 움직였다.

“그래, 우리가 싸울 일이 뭐가 있어. 애도 아니고.”

“하긴, 이제 싸울 나이가 아니긴 하지?”

형이 싱겁게 웃었다.

“근데 형은 여자 친구 만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한테 시간 쏟아서 어떡해?”

화제는 나에 의해 급하게 바뀌었다.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던 재준 형의 얼굴이 여자 친구 이야기에 부드럽게 풀렸다. 그런 형의 얼굴을 바라보는 나를 강태영이 곁눈질로 힐끔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랑 밥 먹고 나서 만나기로 했어, 심야 영화 보기로 했거든. 여행 계획도 짜야 하고.”

그러면 그렇지.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하루라도 안 보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구는데 방학이니 방해하는 일도 없겠다 데이트를 게을리할 리 없었다.

“여행 가는 거 당장 내일모레 아니야? 아직도 계획을 짜?”

내 물음에 형이 멋쩍게 웃었다.

“큰 건 다 짰는데 자잘한 루트 같은 거.”

“그런 건 가서 정해도 되잖아.”

“수정이는 세세하게 계획 짜는 거 좋아해, 작은 거라도.”

다정함이 잔뜩 깃든 형의 말에 나는 더 대꾸하지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웃었다.

“오늘 만나고 오면 짐 싸느라 바쁘겠네.”

“응, 아무래도 그렇겠지?”

형이 여행을 가면 2층에 남는 건 또 강태영과 나뿐이다. 그럼 또 얼마나……. 슬쩍 강태영을 바라보자 나를 보고 있던 녀석과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슬쩍 올라가던 강태영의 입꼬리를 보고 말았다.

“그, 그럼 일어나자.”

“벌써?”

허둥지둥 말하자 형이 의아하게 물었다.

“거의 다 먹은 거 아니야?”

강태영은 이미 수저를 놓은 지 오래였고 형도 빈 접시를 채우지 않은 지 꽤 됐다.

“그래, 그럼.”

테이블을 한 번 둘러본 형도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러자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 잘 먹었어, 형 덕분에.”

“다음에 더 맛있는 거 사 줄게.”

재준이 형의 큰 손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슬로 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리게 보이더니 곧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이 느껴졌다.

“난 수정이 만나러 바로 갈 테니까, 너희 먼저 들어가.”

“어, 응.”

살짝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빠르게 떨어져 나가는 손을 아쉬워하며 대답하는 사이 형은 등을 돌렸다.

“비밀이 없어?”

멀어지는 형을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옆으로 붙어 선 강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아까 전 바보처럼 재준이 형에게 비밀은 없다며 더듬더듬 말하던 내 모습을 비웃고 있었다.

“너랑 내가 하는 짓이 비밀이 아니면 뭐지?”

“……그거 빼고는 없으니까.”

“그게 제일 큰 문제 아닌가? 형이 알면 까무러치겠네. 백하민이 자기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

강태영은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형을 향한 죄책감으로 내 속을 뒤집어 놓을 모양이었다.

“……또 왜 그래.”

“너야말로 왜 계속 가만히 있는데?”

“…….”

“난 내 물건에 다른 사람 손 타는 거 싫어해.”

그제야 무엇이 강태영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지 알았다. 그 말에 내가 네 물건이냐고 쏘아 줄까 하다가 괜히 더러운 성질머리를 더 긁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형이 내 머리를 좀 쓰다듬어 준 일이 어떻다고 그마저도 못마땅해하는 강태영이 미웠다.

“확 분질러 버릴까.”

뭐를 분질러 버린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말 따위의 의미를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옆에 더 붙어 있고 싶지 않아서 강태영을 무시하고 그대로 호텔 로비를 빠져나왔다.

“택시 타고 가.”

“너는 택시 타, 나는 버스 타고 갈래.”

어느새 옆으로 따라붙은 강태영이 내 팔을 잡고 그대로 대기 중이던 택시에 올라탔다.

“난 버스 타고 간다니까……!”

“하고 싶다고.”

강태영이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입술을 내 귀에 바짝 붙여 속삭였다. 그 말에 어버버하는 사이 난 택시에 태워진 뒤였다. 나를 먼저 태운 후 옆자리에 앉은 강태영이 시트 깊게 기대며 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렸다.

팔짱을 끼고 폰을 바라보는 강태영의 모습이 창문에 비쳤다. 개자식. 언제까지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들 작정인 거야.

그냥 남자랑 하고 싶은 거면 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고개를 든 강태영과 창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할 말 있으면 직접 하지 그래?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

“괜히 사람 오해하잖아.”

눈이 희게 접혔다. 싱긋 웃는 얼굴은 주변 학교 뭇 여학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게 이해가 될 만큼 수려했다. 수영이나 실내 운동은 즐기는 편이지만 밖에서 하는 운동은 즐기지 않는 탓인지 흰 피부가 더 뽀얗게 보였다.

•••

“웁, 누가 있으면…….”

현관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강태영이 나를 몰아붙였다. 입술이 맞닿기 무섭게 혀가 들어왔다.

“없어.”

급하게 얼굴을 돌려 피하며 집 안을 살폈다. 녀석의 말대로 아무도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 불안했다. 넓은 집인 만큼 이 집안 식구들뿐만 아니라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수시로 드나드는 집은 보는 눈이 많았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보통 장을 볼 때만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자위는 어떻게 했나 몰라.”

주변을 살피는 내 턱을 우악스럽게 쥐고 자신을 보게 만든 강태영이 낮게 말했다.

“밤에 해도 되잖…….”

“싫어.”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입술이 닿았다. 벌어져 있던 입술 사이로 혀가 쉽게 침입했다. 강태영의 손이 상의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바람을 맞은 손이 차가워 입 안에서 비명이 터졌다. 움츠러든 어깨가 둥글게 말렸다. 천천히 올라온 손이 유두를 느리게 문질렀다. 손톱을 세워 긁을 때마다 허리가 움찔 떨렸다.

점점 희미해지려는 이성을 다잡아 마지막으로 가슴을 지분대는 강태영의 손목을 잡았다. 키스를 하면서도 눈을 뜨고 있던 녀석의 눈빛이 왜냐고 묻는 듯했다.

“……으읍, 그럼 위, 위에 가서.”

계속해서 붙어 오는 녀석을 피해 계단 쪽으로 눈짓을 했다. 아무도 없다 해도 언제 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이곳에서 그 짓을 할 순 없었다. 강태영은 성가시다는 듯 눈을 한 번 치켜뜨고는 거칠게 내 손목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급하게 계단을 오르는 녀석의 보폭에 맞추지 못해 헛발질을 하다가 두어 번 정도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 그때마다 강태영은 다리에 똑바로 힘을 주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는 행동이 꼭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둔 개 새끼 같았다.

내 방으로 갈 줄 알았는데 강태영이 나를 끌고 간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순식간에 강태영의 침대 위였다. 팔꿈치를 세워 상체를 일으키자 강태영이 곧장 내 위에 올라탔다. 녀석의 바지가 골반에 걸쳐진 채 벌어졌다. 강태영이 내 뒷머리를 잡고 이미 단단한 윤곽을 그리고 있는 아래에 갖다 댔다.

좆 머리가 있는 부분의 천이 벌써 젖어 진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속옷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내 얼굴에 성기를 비벼대던 녀석이 브리프를 벗자 터질 듯 부푼 성기가 얼굴에 닿았다.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가 얼굴 위를 굴렀다. 구멍에서 질질 새고 있는 쿠퍼액이 속눈썹에 잔뜩 묻었다.

“벌려.”

녀석의 명령에 채 입술을 제대로 벌리기도 전에 성기가 입 안으로 처박혔다. 아무렇게나 찌르고 들어온 성기에 기침이 나왔다.

“숨 쉬고.”

강태영은 내가 괴로워하는데도 몸을 조금도 물리지 않았다. 대신 더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목구멍을 열고 숨을 쉬었다. 까슬한 음모가 입술에 닿자 녀석의 좆이 목구멍 뒤까지 단숨에 넘어왔다. 놈은 자신의 성기로 볼록해진 내 목을 꾹 눌렀다. 멎었던 기침이 다시 터졌다.

“더 조이면 더 기분 좋을 것 같은데.”

그 소리에 나는 곧바로 눈을 떴다. 속눈썹에 묻은 투명한 쿠퍼액 때문에 시야가 답답했지만 눈을 부라렸다.

강태영과 시선이 닿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싫다고.

“싫어?”

이번에는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강태영의 눈이 사르르 접히는 순간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고 있던 손이 내 목 전체를 감쌌다.

“싫긴.”

“욱, 읍.”

“후으.”

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자연스럽게 목구멍도 수축했다. 강태영의 성기가 자극을 받는 듯 꿀렁거렸다. 점차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아, 씨발.”

“케, 켁. 우욱.”

얼굴이 뻥 터져 버릴 정도로 열이 오르고 호흡도 순식간에 어그러졌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와중에 강태영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때렸다.

강태영은 힘을 강하게 줬다 풀었다 힘 조절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거대한 좆이 목구멍을 찌를 때마다 헛구역질이 일었다. 묽은 침이 입가로 질질 흘렀다.

“우욱.”

울퉁불퉁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빠르게 입 안을 왕복했다. 혓바닥의 넓은 면을 문지르기도 하고 볼 안쪽을 찌르기도 하던 성기는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목구멍은 성기가 깊숙이 찌르고 들어올 때마다 그 빠르게 수축했다. 강태영이 한숨처럼 낮은 신음을 쏟아냈다.

한참 같은 행위가 반복됐다. 산소가 모자랐다가 괜찮아지기를 반복했다. 가끔 목이 너무 졸린 상태에서는 정신이 핑 돌기도 했다. 진짜 이대로 정신을 잃겠다 싶을 땐 강태영이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손을 살짝 떼어내며 내가 기절하지 못하도록 했다.

정신이 몽롱했다.

“커헉.”

순간 녀석의 손이 확 풀어짐과 동시에 목구멍으로 정액이 솟구쳤다. 빠른 사정을 마친 강태영이 입 안에서 성기를 빼내자마자 나는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침대 위로 엎어졌다. 녀석의 이불 위로 침과 뒤섞인 정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입에서부터 하얀 실이 길게 이어졌다.

헉헉대며 부족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아래가 시원해지더니 엉덩이 사이로 뭉툭한 것이 닿았다. 설마 싶어 뒤를 보자 언제 자리를 옮긴 건지 강태영이 다시 발기한 성기를 입구에 맞추고 있었다.

“아…….”

아직 풀리지 않은 아래가 천천히 벌어지고 침과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가 진입했다. 느리게 벌어지는 아래가 팽팽해졌다. 나는 숨을 짧게 끊어 쉬며 의식적으로 밑에서 힘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

“으윽.”

꾸물꾸물 밀고 들어온 성기에 아랫배가 빠듯한 느낌이 들며 아렸다. 녀석의 거대한 성기는 항상 이렇게 자비 없이 들이닥쳤다. 귀두가 내벽 끝을 찔러 대자 배 속이 뻐근했다.

곧 강태영이 움직였다.

“아으읏……, 하아, 으응!”

길게 나갔다가 단숨에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움직임에 입에서 침이 후드득 떨어졌다. 흔들리는 녀석의 고환이 거칠게 입구에 부딪쳤다. 아직은 고통이 더 컸다. 찢어질 듯 벌어진 아래도 강태영의 좆이 거칠게 찌르고 있는 내벽도 다 아팠다.

“우읏…… 으윽!”

고개가 뒤로 확 꺾였다. 강태영이 내 머리칼을 움켜잡고 잡아당긴 탓이었다. 목이 뒤로 꺾인 만큼 입이 벌어졌다. 짭짤한 물이 입술 위로 흘렀다.

강태영이 울고 있는 내 얼굴을 홀린 듯 바라봤다. 강하게 잡힌 머리카락이 아팠지만 나는 놔 달라는 말도 채 하지 못했고, 강태영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녀석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강태영의 콧잔등이 점차 일그러졌다. 그렇지만 잘생긴 얼굴은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아래를 강하게 쳐올리며 신음하던 녀석이 급하게 얼굴을 내려 키스했다. 혀가 입 안을 휘저어댔다. 방금 전 자신이 정액을 싸질러 놓았다는 자각이 없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혀가 천장을 긁을 때마다 간지러워서 몸이 움찔거렸다.

혀를 빨고 입술을 빨고 입 안에 있는 모든 수분을 앗아 갈 것처럼 거친 입맞춤이었다. 강태영은 며칠 만에 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내 입을 탐했다. 혀를 옭아매려는 녀석의 혀를 밀어내려고 해 봤자 소용없었다.

“우읍, 아…… 음.”

한참 뒤에 혀가 빠져나갔지만 강태영의 입술은 내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감고 있는 눈꺼풀을 빨아 당기고 부은 입술을 씹어대기도 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래를 박아대는 좆은 좆대로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온몸이 녀석에게 함락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손안 구겨진 이불도 제 본모습을 잃어 가고 있었다.

“흐윽, 읏.”

뿌리까지 깊숙이 처박다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반복됐다. 입구가 점차 얼얼해질수록 내벽은 더 수월하게 강태영의 성기를 받았다. 허벅지 안쪽이 부르르 떨리고 아랫배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좆이 쑤시고 들어와 내벽에 비벼질 때마다 꽉꽉 복근이 수축했다.

“하아, 씨발. 왜 이렇게 조여대.”

강태영이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나무라듯 말했다. 곧 녀석의 움직임이 멎었다. 사정감을 참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이 행위가 그냥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게 좋진 않았지만 몰아치는 쾌감에 축 늘어진 몸으로 녀석을 밀어내 봤자 자극만 할 뿐이었다.

숨을 고르던 강태영이 곧 다시 허리를 잡았다. 완전히 맞물려 있던 아래가 떨어지고 길게 빠져나가던 성기가 다시 들이닥쳤다.

퍽, 퍽.

“하으읏……! 아, 앗.”

강하게 성기가 처박힐 때마다 잔뜩 말려 들어간 발가락에서는 쥐가 날 것 같았다. 움직임이 다시 점차 빨라졌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절정까지 도달한 강태영이 박은 채 사정하며 내 얼굴을 핥았다.

정액을 내뿜을 때마다 수축하는 성기의 움직임이 내벽에 고스란히 닿았다. 아, 또 배 아프겠다. 정액을 받으면서 든 생각은 그거였다.

“안에 쌌으니까 너 일어나면 또 배 아프다고 징징대겠네.”

강태영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그렇게 말하더니 성기를 빼냈다. 빠져나가는 성기를 따라 정액 일부도 주르륵 흘렀다.

“난 그거 좋아, 네가 내 좆물 때문에 아프다고 하는 거. 그때마다 내 생각 할 거 아니야.”

녀석은 내 허벅지를 잡고 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내가 저 때문에 아픈 게 좋다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말이었다. 강태영은 인상을 쓰느라 구겨진 내 미간을 펴라는 듯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픈 거 싫어?”

당연한 소리를 하는 저 입술이 미웠다.

강태영이 허벅지를 잡고 아래로 더 내리누르자 이미 동그랗게 말려 있던 허리 탓에 빨간 회음부와 구멍이 보였다. 숨을 쉬듯 뻐끔거리며 정액을 뱉어내는 아래를 바라보던 강태영이 입맛을 다셨다.

“쯧, 아깝다.”

“윽.”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강태영이 손가락 두 개를 쑤셔 넣었다. 내벽을 긁듯 손가락 끝마디를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내벽을 긁어내자 안에 고여 있던 정액이 주욱, 주욱 딸려 나왔다. 정액을 빼 주는 걸 보니 웬일로 더 하지는 않을 모양인가 싶었다.

눈을 떴을 때 방 안에 있는 건 나뿐이었다.

“으…….”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분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미친놈, 미친놈!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뒤늦게 몸이 이상하게 개운하다는 느낌을 받아 조심스럽게 아래를 만져 봤다.

“짜증 나.”

뒤처리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얼굴도 뽀송뽀송했다. 그에 기분이 좋다기보다 짜증이 났다.

얼른 이모의 말대로 해야겠다. 차라리 이모가 나에게 이 집에서 나갈 수 있도록 등 떠밀어 준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이 집에서 나가면 강태영과 마주칠 일도 적어질 테고, 그러면 녀석에게 휘둘릴 일도 자연스럽게 적어질 거였다.

침대 밖으로 나와 옷을 주워 입었다. 어딘가에서 웅웅, 진동음이 들렸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바닥을 살폈다. 한쪽 구석에 날아가 떨어져 있는 폰이 보였다.

액정에는 오랜만에 보는 동창 놈의 이름이 떠 있었다. 수능이 끝난 후 즐길 걸 다 즐겼는지 이제 심심하다고 슬슬 연락질을 하는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다, 빽하.

학교에서나 듣곤 하던 별명에 짜증도 잊어버리고 설핏 웃었다. 성지후. 나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 친구로, 친하다는 기준을 빡세게 두는 내가 생각할 때도 꽤 친한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놈이었다.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내 상황에 대해서도 꽤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수능 직후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그렇다 할 연락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연락이 오더라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몇 안 되는 녀석이었다.

-잘 지냈냐?

잘 지내긴 개뿔.

“나는 뭐 똑같이 지냈지, 너는?”

-나도, 한 치의 변화도 없이 똑같이 지냈다.

“근데 웬일이야?”

-네가 먼저 도통 연락을 안 하니까, 죽었나 싶어서 해 봤다. 어떻게 먼저 연락 한 통 안 하냐? 생존 신고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미안, 정신이 좀 없었어.”

-네가 정신없을 일이 뭐 있는데.

성지후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내 말을 비꼬았다.

“미안.”

-미안하면 놀아 줘. 지금 존나 심심하니까, 할 게 너무 없어서 이러다가 모의고사라도 풀겠어.

“미친, 지금 어딘데?”

-오, 당장 나오실?

“응, 어디냐고.”

한시라도 빨리 강태영이 있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은근 내 연락 존나 기다렸나 보네, 새끼. **로 와라. 너 지금 바로 나올 거?

“응.”

-오키, 그럼 나도 지금 나갈게.

“알겠어.”

나는 지후 놈이 말해 준 상호를 지도 애플에 검색하며 겉옷을 마저 챙겨 입었다. 복도를 지나면서 닫힌 강태영의 방문을 마치 녀석이라도 되는 듯 노려봤다.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에 있는 건지 밖에 나간 건지, 있다면 뭘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굳이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나는 몸서리를 치며 빠르게 2층 계단을 내려갔다.

•••

“빽하민!”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다. 집에서 잠들어 있던 사이 기온이 떨어지기라도 한 건지 밤이 됐다고 더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라 들렸다. 고개를 드니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성지후가 보였다.

곧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다. 나는 추위를 피해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뛰다시피 걸었다.

“왜 이렇게 몇 년 만에 본 느낌이냐?”

“오버는.”

나는 익숙하게 내 어깨 위에 팔을 올리는 녀석의 옆구리를 툭 쳤다.

“강태영은 잘 지내냐?”

“걔는 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롭게 나왔다.

“아니, 너희 같이 사니까 그냥 물어봤지.”

“몰라.”

“한집에 살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관심 없어.”

“이상한 새끼.”

성지후는 나에게 이상한 데서 가끔 예민하게 구는 놈이라며 앞 담화를 깠다.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녀석이 말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신분증 검사를 마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당연하게 술을 시켰다.

“뭐 했어?”

“웹툰 보고, 뒹굴뒹굴하고.”

내 물음에 뭐 특별한 건 없었다며 성지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알바나 할 걸 그랬나 봐.”

“알바?”

“어, 노는 것도 이제 지겹고. 대학 가기 전에 돈이나 벌어 두면 좋지 않을까 싶고.”

“요즘 알바할 데가 없던데.”

“내 말이, 뒤늦게 알바나 할까 싶어서 찾아보니까 할 만한 게 졸라 없더라.”

“나도 알바 구하고 있는데, 연락도 안 와.”

“너도?”

“응.”

성지후는 아르바이트도 이런데 나중에 취업할 때는 얼마나 어렵겠냐면서 벌써부터 걱정이 서린 표정으로 혀를 찼다.

곧 점원이 주문한 술을 가지고 왔다. 투명한 소주잔에 술이 담겼다.

“나 담배 피워도 되냐?”

“피워.”

이미 고2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성지후가 비흡연자인 나를 배려해 물었다.

“아으, 써.”

“네가 뭐 아기냐? 베이비?”

나는 첫 잔을 비우자마자 물을 마셨다. 성지후는 그런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건방진 말을 하는 성지후가 태우는 매캐한 담배 향이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담배 피우면 좋아?”

“그냥, 습관이지 뭐. 속 시원해. 뚫리는 기분도 들고. 왜, 너도 해 보게?”

“아니.”

그렇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한 개비를 내밀 기세인 성지후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래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낫지.”

“언제 제일 피우고 싶은데?”

“다른 때보다 술 마실 때 존나 빨고 싶어져.”

속이 답답할 때라든가 화가 났을 때라든가 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입술 부었네.’

‘빨고 싶게.’

그에 의도치 않게 강태영이 생각났다. 빨고 싶어진다는 성지후의 말에 갑자기 강태영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놈의 얼굴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녀석의 얼굴이. 성지후 저 새끼는 하필 왜 단어를 선택해도 그런 걸 택해서는. 더군다나 몇 시간에 전에 붙어먹었던 게 아직 생생한 지금, 강태영이 나에게 하곤 하던 말과 저 말이 완전히 겹쳐 들렸다. 순식간에 얼굴로 열이 올랐다.

“한 잔 마시고 빨개지기 있기?”

“……너처럼 진작 술에 면역이 되지 못한 몸이라.”

“존나 귀엽네.”

성지후가 징그러운 소리를 해대서 그쪽으로 뻥튀기를 던졌다.

“근데 너 강태영 집에서 계속 사는 거냐?”

“아니, 나갈 거야.”

“오, 언제? 어머니한테 연락 왔어?”

“그건 아니고.”

“아…… 미안.”

“네가 미안할 것도 없고.”

무심하게 툭툭 내뱉자 성지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구하려고 하는 거?”

“응. 그것도 그렇고, 겸사겸사.”

“하긴, 언제까지 눈칫밥 얻어먹으면서 살겠냐. 사람 체하게.”

내가 강태영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는 걸 성지후가 알게 된 건 1학년 때였다. 같은 반도 아닌 강태영과 꽤 친해 보이는 게 궁금했는지 녀석은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종종 물었다. 나는 처음엔 그저 같은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라고 둘러댔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종종 혼자만의 일탈을 일삼고 하던 성지후 집에서, 녀석을 따라 술을 마셨다가 취해 필름이 끊긴 날. 나를 데려다준 성지후가 그 집에서 강태영이 나온 것을 보고 내가 그 집에 얹혀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때 왜 우리 1학년 때, 우리 집 빈다고 모여서 소주 두 잔 마시고 골로 갔을 때.”

“응.”

“나도 강태영 때문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잖아.”

“뭐? 왜?”

“아니, 술에 떡이 된 너 보고는 자기 부모님은 이런 거 존나 싫어한다는 거야. 학생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그러는 거. 그런데 자기 집에 얹혀사는 네가 이렇게 오면 곤란하다면서 너 쫓겨나면 나보고 책임질 거냐고 몰아세우잖아. 아주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라니까. 그 뒤로 내가 절대 너랑 술 안 마셨잖아. 그때 걔가 그러는 거 보면서, 너 그 집에 사는 거 눈치 보이고 답답하겠다 싶더라.”

“……강태영이 그랬다고?”

“그래.”

강태영의 집안엔 그런 가풍 따윈 없었다. 강태영은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편이긴 했지만 뒤로는 성지후보다 더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고 외박도 했다. 외박을 했을 때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성정에 결코 친구들과 순진하게 수다나 떨고 앉아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나는 그의 행동에 굳이 제약을 걸 필요가 없었으므로 방관했지만, 부모 또한 강태영의 행동을 간섭하지 않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학업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남들 다 하는 작은 일탈쯤이야 나쁘진 않다는 식의 태도였다. 재준 형은 제대 후 일찌감치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를 말릴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성지후에게는 그런 말을 했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너한테 한 번 더 술 먹이면 나 죽인다고 했어.”

“뭐?”

“학교에 찔러서 정학이라도 먹일 기세였다고.”

“…….”

“개 살벌해서 술이 다 깨더라니까.”

내 기억에는 없는 강태영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더군다나 별것도 아닌 일로 없는 말을 지어내며 성지후를 그렇게 겁줬다는 게.

“아무튼 이제 그 집에서 나온다니까 너도 맘 편하겠네. 축하주 말아 줘야겠어.”

혼자 불쌍한 내 생활을 추측해 왔을 성지후가 마음대로 술을 말더니 나에게 잔을 내밀었다.

“마셔.”

그러고는 자신 몫의 잔도 만들어 건배했다.

성지후와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과거의 강태영이 왜 그랬는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나서는 뇌가 알코올로 흐물흐물해져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 이상하게 술이 잘 받았다. 심지어는 달게 느껴졌다. 이렇게 마시고 취해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강태영이든 뭐든. 나는 성지후가 주는 대로 거절하지 않고 받아마셨다.

“아무튼 그래서 너 목표가 뭐야.”

성지후의 혀도 어느 순간부터 살짝 꼬여 있었다.

“목표?”

나는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 알코올이라는 게 뇌에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대화 내용과 관계없이 히죽히죽 웃음도 나왔다.

“웃기는, 대학도 안 가는데 인생의 목표 정도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냥 잘 먹고 잘살기. 돈 많은 백수.”

“푸핫. 어디서 들은 건 있어 가지고.”

내 말에 자기랑 목표가 똑같다며 성지후가 경박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달이면 졸업식이네.”

“그러게.”

“졸업 여행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졸업 여행은 무슨…….”

“야, 왜! 가까운 데라도 갈래?”

성지후가 조르는 애처럼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갈까? 진짜? 가면 어디로?”

“돈 없어.”

“그럼 여름에 어디 부산이라도 갈래? 야 우리 스무 살이야! 다 할 수 있어!”

갑자기 빽 소리치는 녀석이 웃겨서 대답을 하면서도 슬슬 한계가 온다 싶었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늘어졌다.

“아, 정신 잃을 것 같아.”

“뭐? 야, 안 돼. 나 강태영 만나기 싫어.”

“네가 강태영을 왜 만나아.”

“네 새끼가 아직 그 집에 사니까! 정신 놓지 말라고!”

“아, 몰라, 몰라. 그럼 네 집에서 재워 주든가.”

“오늘은 안 된다고…… 누나까지 있어서…….”

성지후의 목소리가 고장 난 것처럼 늘어졌다.

“야, 백하민! 아, 정신 차리라니까!”

그러게,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먹이래. 성지후의 절규를 들으며 속으로 그를 탓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세상이 어두워졌다.

•••

다시 정신이 들면서 찬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같이 술을 마셨던 성지후라고 생각했지만 곧 성지후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받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얘한테 한 번만 더 술 먹이면 죽여 버린다고.”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는 성지후가 아니라 강태영의 것이었다. 녀석이 말할 때마다 그 울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걸 봐서 나는 강태영에게 안겨 있는 모양이었다. 눈을 뜨기 위해 미간에 힘을 줬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이 느리게 올라갔다. 흐린 시야로 성지후의 운동화가 보였다.

“이제 성인이니까 상관없을 줄 알았지.”

“그런 거랑은 상관없어.”

“……어?”

잔뜩 졸아붙은 성지후의 목소리와 강태영의 차가운 음성이 번갈아 들렸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씨발. 진짜 답답하게 구네.”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러냐. 내가 뭐 범죄 저지른 것도 아니…….”

“네가 백하민 제일 친한 친구라는 것부터 죽이고 싶으니까 닥치고 꺼져.”

“뭐?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네가 뭔데?”

성지후도 꽤 열받았는지 목소리가 격양되기 시작했다. 지랄병이 돋아 이상한 곳에 화를 내고 있는 강태영을 말려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었지만 아직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뭐냐고?”

“그래, 네가 뭔데 나한테 이따위로 구냐고!”

“백하민이랑 떡 치는 사이.”

“……뭐, 뭐?”

“그러니까 얘 데리고 술 마실 거면 나한테 허락을 먼저 받는 게 예의라고, 알아들어?”

“무슨 소리를……. 아, 놔아……, 이거 놓으…….”

드디어 꼬인 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이 미친. 술에 잔뜩 취해 떡이 된 순간에도 강태영의 미친 소리에 혀를 깨물었다. 혀끝이 얼얼함과 동시에 눈물이 고였다. 아으, 나는 강태영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르작거렸다. 고개를 힘겹게 들자 잔뜩 당황해 얼어붙은 성지후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답답해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야……, 성지후, 그……게…….”

“빽하. 저 새끼 지금 뭔 소리 하냐?”

아, 그렇지 않아도 술기운에 딱 죽을 것 같은데. 성지후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냥 죽고 싶었다.

“내, 내가 설명……, 내일, 우욱.”

똑바로 말을 하고 싶은데 설상가상으로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가라, 알아들었으면 다시는 얼굴 볼 일 만들지 말고.”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욱욱거리자 강태영은 그대로 나를 데리고 몸을 돌렸다. 아, 성지후 오해 풀어 줘야 하는데. 나는 축 늘어져 강태영에게 끌려가면서도 그 생각에 몸부림을 쳤다.

“가만히 있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필사적으로 버둥거리자 협박조의 음성이 낮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으…… 이거, 놓으……!”

“성지후 아직 뒤에 있는데.”

“…….”

“너랑 나랑 어떤 사이인지 진짜 행동으로 보여 주기 전에, 얌전히 굴어. 짜증 나 뒤지겠으니까.”

이번엔 분노로 몸을 파르르 떨어야 했다.

•••

의식을 차리자마자 떠오른 건 성지후의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차라리 필름이라도 끊기길 바랐지만, 어젯밤 기억은 또렷했다.

숙취로 깨질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집에 들어온 후 나는 곧바로 모든 것을 게워냈다. 내가 토하는 내내 강태영은 옆에 서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혼자 힘으로 입을 헹구고 비틀거리는 몸을 움직이자 그제야 강태영은 부축해 왔다.

‘언제 기어 나갔어?’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언제 기어 나갔냐고. 녀석은 마치 내가 집 나간 도둑고양이라도 된 양 몰아세웠다.

‘너무 약했어? 기어 나갈 힘이 남아 있을 정도로?’

뭐라는 거야. 입술을 벌렸지만 잠꼬대같이 불분명한 발음만 들렸다. 강태영은 그대로 내 방 침대 위에 나를 처박았다.

한 번 게워냈는데도 여전히 좋지 않은 속을 부여잡고 침구에 얼굴을 비볐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부대끼는 속에 괴로웠다.

차라리 그냥 의식이 없는 편이 낫겠다 싶어 강태영에게 달려들고 싶은 것을 참고 감기는 눈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뱅글뱅글 돌고 속이 요동쳐서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강태영은 나가지 않고 그런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왜 내 방에서 나가지 않는지, 왜 성지후에게 그런 미친 소리는 한 건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강태영은 한참이나 내 방에 머물렀고, 나는 그게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서히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지 않은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미친 새끼.”

나는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의식이 돌아올수록 간밤의 일에 열이 올랐다. 나는 아직 울렁거리는 속을 무시하고 강태영의 방으로 뛰어갔다.

“강태영!”

노크 따위는 무시하고 방문을 벌컥 열었다. 녀석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된 후에는 절대 내 발로 먼저 찾은 적 없는 방이었다. 그러나 호기롭게 쳐들어온 방 안에 강태영은 없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씨, 어디 갔어.”

오른 열을 방출할 곳이 없어진 나는 이를 악물고 하는 수 없이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성지후에게 연락이나 먼저 해 봐야겠다는 마음에 핸드폰을 찾았다. 또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는 폰을 보자 기시감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살폈지만 성지후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며 고민했다. 강태영이 성지후에게 던진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머리가 굳어 버린 듯했다. 나는 일단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굳은 손가락을 움직여 성지후에게 전화했다.

-어, 이제 일어났냐?

잠시 뒤 낮게 잠긴 성지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자다 깬 목소리였지만 그 속내를 읽을 순 없었다. 술에 취해 성지후의 필름이 끊겼던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 응, 너는?”

-나도 좀 전에 일어났지, 몸은 어때?

“괜찮아, 너는?”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같은 말로 끝났다.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있잖아, 어제…….”

-해장하러 나올래?

“어?”

-만나서 얘기하자고.

“응, 그래.”

전화를 끊자 성지후에게서 만날 장소가 쓰인 메시지가 도착했다.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얼굴을 마주해야 확실해지겠지만 일단 녀석은 강태영의 개소리를 믿지 않는 투여서 다행이었다. 하긴, 일반인이라면 그걸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없을 거였다. 게다가 술에 취한 상태였으니까.

숨결에서 아직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버스에서 눈치가 보였다. 누가 봐도 밤새 술을 마시다가 해장하러 나가는 꼴이라 사람들 틈에 있는 게 부끄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히터를 틀어 답답한 공기만 가득한 버스 안에서 버티는 건 멀쩡한 몸이래도 다소 괴로운 일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산소가 부족한 건지 정신이 살짝 아득해졌다. 다행히 어지러움이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전에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급하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한껏 폐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숨을 크게 쉬자 버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에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퀭한 얼굴을 가리며 성지후와 만나기로 한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녀석의 맞은편에 털썩 앉자, 나와 똑같이 꾀죄죄한 몰골로 모자를 쓴 성지후가 시선을 들어 확인했다.

“왔냐.”

“응, 시켰어?”

“아직. 이모, 여기 콩나물 두 개요.”

주문을 넣은 성지후가 이미 테이블 세팅을 해 뒀는지 수저가 내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너 어제 기억은 나냐?”

나는 패딩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강태영이 했던 말도 기억해?”

“그래, 다 기억해. 그 얘기 하러 나온 거잖아, 지금.”

강태영의 이름에 나도 모르게 말투가 날카롭게 나왔다.

“걔가 한 말 믿는 건 아니지?”

“돌았어? 시발, 그 말을 어떻게 믿냐?”

성지후가 어젯밤 일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진저리쳤다.

“요즘 사이가 안 좋아서 시비 거는 일이 많은데, 어제는 유독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니 그 지랄 떤 거야. 나 챙기러 나오는 것도 귀찮았을 테고. 그러니까 괜히 너한테 화풀이한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무슨 그런 말을 하냐, 걔는. 그 말 듣는데 술이 확 깨더라.”

“원래 좀 그래. 그게 진짜 성격이야.”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말이 술술 나왔다.

“그게 진짜 성격이라고? 그거 완전 또라이 아냐?”

“내가 지네 집에서 돈도 안 내고 몇 년이나 얹혀살고 있으니까 그것도 싫은 것 같고, 아무튼 요즘 좀 그래. 어제도 말했지? 곧 나갈 것 같다고. 걔가 그래서 그런 것도 있어. 요즘 들어서 더 눈치 주고 그래서.”

“야, 이…… 그럼 말을 하지.”

“식사 나왔습니다.”

성지후의 얼굴이 나를 향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구겨지기 시작했을 때, 타이밍 좋게 주문한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말하면 뭐 달라져?”

“우리 집에 좀 있어도 되잖아.”

“너희 가족들 다 있는데? 하루 이틀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먹기나 해. 식어.”

나는 매운 고추를 국밥에 탈탈 털어 넣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성지후의 머릿속에서 어제 강태영이 했던 개소리는 어느 정도 지워진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성지후가 내 말을 강태영의 말보다 더 믿어 주는 것 같아서.

“있을 곳 필요하면 말해. 누나 있을 때만 빼면 하루 이틀 정돈 괜찮아.”

국밥집을 나서며 성지후가 말했다.

“알겠어, 생각해 줘서 고마워.”

“그래, 가서 쉬어.”

나는 성지후를 먼저 버스에 태워 보냈다. 강태영을 어떻게 족칠지 생각하면서 걸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겠지만 찬 바람이 맞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강태영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었다. 어제 같은 일이 반복되면 곤란했다. 그런데 녀석에게 복수할 방법이 있긴 한가? 하다못해 그냥 저지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차피 나갈 거 강태영이 한 짓을 하영 이모에게 알릴까? 아니다, 그러면 애초에 왜 그렇게 됐는지 알려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나를 경멸할 재준이 형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하루빨리 이 집에서 나가는 것.

재준이 형과 더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지만 어차피 형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더 커지기 전에, 단순히 이 정도의 마음일 때 멀어지는 게 여러모로 나에게도 이득이었다.

•••

[집에 없어서 얼굴을 못 보고 나가네, 형 여행 간다. 올 때 선물 사 올게.]

성지후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재준이 형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공항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환하게 웃는 형의 사진과 함께였다. 두 사람은 내가 봐도 잘 어울렸다. 외적인 부분도 그렇고 들었던 바에 따르면 성격도 잘 맞는 듯했다.

[좋아 보이네ㅋㅋㅋㅋ 부럽다ㅠㅠ 조심히 잘 다녀와. 선물 비싼 거 사 오고!]

나는 쓴맛이 맴도는 혀끝을 숨기고 일부러 더 밝게 메시지를 보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다녀오니?”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모는 외출을 하려는 참인지 옷과 장신구가 화려했다.

“네.”

“흠, 그래?”

위아래로 나를 훑어본 이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외출할 몰골이 아닌데 어딜 갔다 온 건지 싶은 표정이었다. 게다가 눈빛에 묘하게 날이 서 있는 게 내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늘 재준이 여행 가는 거 알지? 잘 다녀오라고 메시지라도 남기지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연락했어요.”

“그럼 됐고.”

이모가 할 말은 끝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저, 이모.”

나는 이모의 적대감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그녀를 불렀다.

“응, 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감이 왔는지 이모가 “방에서 얘기할래?”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모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향했다.

“할 말이 뭔데?”

“저 나가려고요.”

“언제?”

이모는 내 말에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반색하며 물었다.

“최대한 빨리요. 일자리는 구해 놓고 나가려고 했는데 잘 안 구해져서…… 혹시 괜찮으시면 보증금만이라도 빌릴 수 있을까요? 일 시작하면 바로 갚을게요.”

염치 불고하고 말을 꺼냈다. 이모의 표정이 살짝 굳은 듯 어색해졌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잘 생각했네, 상황이 좀 절박해야 사람이 없던 힘도 생기는 거 아니겠니?”

그런가? 절박해 보지 않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모의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알아보고 얼마 필요한지 알려 줘.”

“네, 고맙습니다.”

볼일 끝났으면 이만 나가라는 듯 제 할 일에 집중하는 이모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방을 벗어났다.

속이 후련한 것과 동시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모는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할 것이다. 막상 홀로서기가 눈앞에 닥치자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없는 내가 잘 살 수 있을지가. 나는 자꾸만 드는 약한 생각을 억지로 누르며 계단을 올랐다. 무의식적으로 살핀 강태영의 방문은 말이 통하지 않는 놈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아, 깜짝이야!”

한숨을 쉬며 방문을 열었다가 생각지 못한 인물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너, 너 왜 여기 있어?”

책장을 구경하던 강태영이 태연하게 나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너 진짜 쥐새끼 같다.”

또 쥐새끼 타령을 하는 강태영을 노려봤다.

“또 성지후 만나고 와?”

나는 감히 성지후의 이름을 올리는 강태영의 코앞까지 다가가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뒷일을 생각해 그나마 참은 것이었다. 내 쪽에서 이렇게까지 대든 적은 처음이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해져 반사적으로 눈이 꾹 감길 정도였으므로.

“너 진짜 무슨 생각으로 성지후한테 그런 말을…….”

강태영은 나에게 잡힌 멱살을 떼어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성지후가 진짜 믿기라도 했으면 어쩔 거였어!”

“안 믿어? 사실인데 믿고 말고가 어디 있어.”

“……뭐?”

“너랑 내가 그 짓 하는 게 가짜는 아니잖아? 네 씹구멍 내 좆 모양대로 길 다 났던데.”

“……무슨……!”

“어제도 내가 이 안에 얼마나…….”

순식간에 바지 사이를 파고들어 온 녀석의 손이 내 아래를 느리게 문질렀다. 그에 놀라 멱살을 잡은 손을 떼고 녀석의 움직임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내 두 손목을 다른 손으로 움켜잡는 강태영의 행동이 더 빨랐다. 자존심 상하게도 보통 남자애들보다 유독 가는 손목이 강태영의 한 손에 쉽게 잡혔다.

“놔.”

손목을 짤짤 흔들며 짓씹듯 말했지만 강태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거 놓으라니까?”

“먼저 잡은 건 너야.”

나보다 뼈대가 굵은 강태영을 힘으로 뿌리치기란 역부족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언제까지 이럴 건데?”

쪽팔리게도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내가 재준이 형 좋아하는 게 이렇게 괴롭힐 일이야? 친형도 아니면서……!”

딱히 대답을 듣고자 한 질문도 아니었지만 강태영이 진짜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자 더 열이 받아 미칠 노릇이었다.

“성지후까지 알게 할 뻔하고!”

나만 점점 흥분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 목소리는 끝을 모르고 격양되어 갔다.

“내가 너 때문에……!”

순식간에 내 손목을 잡고 있던 강태영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피도 통하지 않게 잡혀 있던 손이 우스울 정도로 어이없는 타이밍과 맞아떨어져 녀석의 얼굴에 마구잡이로 꽂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고개가 힘없이 휙 꺾였다. 이렇게 갑자기 강태영이 손을 놓을 줄은 몰랐기에 주먹을 휘두르던 나도 놀랐다. 반항 없이 그대로 맞은 강태영이 작게 휘청거렸다. 흡,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단 한 번 날린 게 제대로 꽂혔는지 녀석의 입술이 곧장 터졌다. 순식간에 강태영의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볼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게 보였다.

“지금 뭐 하는 거니, 너!”

그때, 들려선 안 되는 사람의 음성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나는 믿기 힘든 상황에 어렵게 시선을 돌렸다. 목에 깁스라도 한 듯 고개를 돌리는 게 힘들었다. 계단 끝에 서 있던 이모의 잔뜩 화가 난 싸늘한 시선이 강태영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내 손으로 향했다. 타이밍 한번 지독했다.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눈앞이 새하얗게 바랜다는 것이 뭔지 깨달았다. 턱 끝이 떨리고 호흡이 급격히 불안정해졌다. 이모가 어디서부터 들었는지,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이모…… 그게.”

“누가 네 이모라는 거야?”

“……아.”

“너 지금까지 태영이한테 이딴 식으로 굴었니? 내 앞에선 둘도 없는 친구처럼 굴고 뒤에서는 마음에 안 들면 손 올리고?”

별다른 말 없이 강태영에게 했던 행동만 언급하는 걸로 보아서 앞쪽의 대화는 듣지 못한 듯싶었다. 그거라도 듣지 못했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모에게 중요한 건 강태영이다. 그런데 내가 강태영을 치는 모습을 봤으니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모 그게 아니구요. 오해가…….”

“오해? 내가 본 게 오해라는 거야, 지금?”

이모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놀리듯 그제야 피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옭아매고 있던 손목을 풀어 준 강태영을 바라봤다. 일부러 그런 거다. 이모가 오는 걸 먼저 눈치챈 녀석이 일부러. 강태영의 눈빛이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관망하는 아이의 것 같았다. 녀석은 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다.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모, 제가 잘못했어요. 싸워도 주먹질은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실수로…….”

“뭐? 실수? 불쌍하다고 지금까지 키워 줬더니, 하나밖에 없는 남의 집 귀한 자식 멱살을 잡고 폭행까지 해? 그리고 나 네 이모 아니랬지!”

하영 이모가 처음 보는 얼굴을 했다. 예상보다 더 큰 반응에 입술이 덜덜 떨렸다. 강태영은 완전히 방관하기로 한 건지 전혀 끼어들지 않고 있었다.

“나가.”

발끝만 바라보고 서 있던 내가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떨어졌다.

“이모.”

“당장 나가.”

“하영이…….”

“나가라니까!”

이모는 무슨 소란인지 놀라 올라온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내 짐을 싸라고 명령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떨렸다.

“괜찮아?”

내 뒤쪽에서 이모가 강태영에게 다가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강태영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머, 부어오르는 것 좀 봐. 입술에서 피, 피…… 이거 멍들겠는데 어떡하면 좋아.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볼이 너무 빨개졌다느니 멍이라도 들면 어떻게 하냐느니 하는 이모의 걱정 어린 음성이 내 가슴에 푹푹 꽂혔다.

“너.”

보지 않아도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차가운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이모의 얼굴 뒤로 내 짐을 보이는 대로 대충 담은 것이 분명한 캐리어를 끈 도우미 아주머니가 보였다.

“내가 돌아왔을 때도 집에 있으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알겠니?”

“사모님, 저 이거.”

내 것도 아닌 거대한 캐리어가 아주머니의 손에서 이모에게로 넘어갔다. 이모는 캐리어를 발로 툭 찼다. 거대한 캐리어가 내 앞으로 밀려왔다. 황금색 지폐 몇 장이 머리 위에서 흩뿌려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까처럼 보증금 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

“…….”

“이 정도면 며칠은 살겠지, 그 안에 네 살 궁리 찾아.”

“…….”

“태영아, 엄마 나가는 길에 병원 같이 가 볼래?”

“됐어요.”

강태영이 자신의 볼을 만지려는 이모의 손길을 피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알겠어, 엄마는 나갔다 올게. 아우, 할 얘기 있어서 잠깐 올라왔다가 이게 뭐니. 약속도 늦게 생겼네. 일단 다녀와서 얘기하자. 아주머니, 찜질할 만한 것 좀 챙겨 줘요.”

“네, 사모님.”

나는 세 사람 사이에서 완벽히 배제된 것 같았다. 그야말로 투명 인간이 따로 없었다. 이모와 아주머니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그제야 후들거리는 다리가 완전히 풀려 주저앉았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 지독하게도 현실감 없었다.

정신없어 멍한 내 앞으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졌다. 이모가 흥분해 있을 때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강태영이었다. 녀석은 미소까지 지은 채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울어?”

그러더니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나쁜 새끼.”

내 욕에 강태영은 어깨를 한 번 들썩였을 뿐이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이번에는 싱긋 웃기까지 했다. 녀석의 웃는 얼굴에 척추부터 소름이 찌릿하게 타고 올라왔다.

“내가 이 집에 있는 게 그렇게 싫었어?”

강태영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모르겠다. 처음부터 생판 남인 내가 자신의 집에 기생하는 게 싫었던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로써 확실해졌다. 이모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준 것도 나를 이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서였던 거다.

“그래서 이러는 거지? 그냥 말로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 발로 알아서 나가 줬을 텐데. 나는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억지로 힘을 주고 버텼다. 이모가 적선하듯 뿌린 지폐를 주워 들었다. 쩍. 자존심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돈이 손안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지든 말든 움켜쥐었다. 캐리어를 끌고 내 방으로 향했다. 아주머니가 어찌나 급하게 방을 뒤졌는지 내 방은 꼭 도둑이라도 든 모양새였다. 나는 캐리어를 열고 안에 든 옷가지를 다 꺼낸 뒤 꼭 필요한 물건을 중심으로 다시 짐을 쌌다.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오지도, 얼씬거리지도 않을 거다.

재준이 형을 보지 못하는 건 슬펐지만 그뿐이었다. 아쉬워할 것도 이렇게 질질 짤 필요도 없었다.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라고 다를 게 없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그저 좀 내 신세가 처량하고 억울해서 우는 것이다. 어차피 이 집에서 나가려고 했던 게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섭도록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본래의 움직임을 찾아 갔다. 눈물도 멎었다. 나는 좀 더 또렷한 정신으로 짐을 마저 챙기고 캐리어를 이끌었다.

방문 앞으로 다가서자 강태영이 비딱하게 기대서서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켜.”

잠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볼품없었다.

“이제 안 우네.”

아쉽다는 투였다. 비켜서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않은 강태영이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더니 한 말은 겨우 그거였다. 눈꼬리가 절로 위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아까처럼 바닥에 엎어져서 울어 봐, 또 보고 싶어.”

“……뭐? 미쳤…….”

“갈 데나 있어?”

기가 막혀하는 나를 지켜보던 강태영이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알 바 없잖아.”

“그 돈 몇 푼 가지고 얼마나 버틴다고.”

그렇다고 자기가 더 줄 것도 아니면서…….

“빌어 봐.”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말을 어렵게 참는 순간 놈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럼 줄게.”

“……”

“빌어 보라고, 아까처럼 울면서. 그럼 해 달라는 대로 해 줄 테니까.”

한쪽 볼이 발갛게 부어오른 강태영이 어울리지 않도록 눈까지 접으며 말갛게 미소 지었다.

“……해 달라는 대로 해 준다고?”

내 물음에 강태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럼 그 영상…….”

“그건 빼고.”

나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엄마한테 말해 줄게, 너무하신 것 같다고.”

“됐어, 나 그냥 이 집에서 나갈 거야. 더 있고 싶지도 않…….”

“너 돈 있어? 나가면 갈 데는?”

강태영의 물음에 틈틈이 모아 놨던 아르바이트 통장을 떠올렸지만 거기에 들어 있는 돈도 채 백만 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게나 쥐고 지폐 뭉치만 더 단단하게 잡았다. 내 손안에서 지폐가 꾸깃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태영의 시선이 슬쩍 내 손으로 향했다가 다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거 들고 나가 봤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

“끽해 봐야 한두 달 버티다가 길바닥에 나앉을걸. 눈칫밥이라고 해도 등 따뜻하게 밥 잘 먹고 살던 네가 길바닥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존심도 버리고 악착같이 주웠던 지폐마저 쓰레기 종잇조각이 된 기분이었다.

“앞날이야 뻔하지. 너 지금 나가 봤자 어차피 시궁창이야. 아닐 것 같아?”

강태영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 어찌 되었든 몸 편하게 살아온 건 맞았다. 돈은커녕 마음의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나가서 내가 잘 살 수 있을지 두려웠다. 녀석은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두려움 섞인 속마음을 꼭꼭 짚어냈다. 눈가가 시큰거리는 게 아무래도 징조가 좋지 않아서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그렇게 물면.”

강태영이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또 입술 부을 거고.”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녀석은 내가 깨물고 있는 아랫입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내가 또,”

변태 새끼.

“태영아.”

강태영이 내 입술 근처로 손을 뻗을 때쯤 아래층에서 아주머니가 강태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게로 뻗치던 녀석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네, 아주머니.”

강태영은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꽂혀 있었다.

“찜질할 거 지금 올려 줄까?”

“아뇨, 제가 내려갈게요.”

“…….”

“헛짓거리하지 말고, 내 방에 가 있어.”

나에게 나지막하게 말한 강태영이 캐리어를 발로 차 버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태영이 계단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열린 녀석의 방문을 바라봤다. 꼭 짐승의 검은 아가리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벌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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