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23화. Pour Sejin(10)
‘얼른 자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간의 생활에 떠올려 보면 이
미 한참 전에 잠이 들었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를 품에 안은 채로, 한동안 그
의 페로몬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불면증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건 수면 장애의 일종이 아니었
다. 그저, 차오르는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잠들길 거부하는 거지. 어쩌다 깜
박 잠이 들 때면 퍼뜩 눈을 뜨고 정세진을 보며 안도하곤 했으니까.
그 후 새벽이 되었을 때, 여전히 잠이 들지 못하는 내 품에서 정세진 역시 잠에 취
한 얼굴로 눈을 떴다. 가물가물 감긴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숨결처럼 작은 목소리
로 중얼거렸다.
‘또 못 자고 있네.’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품에서 벗어나 내 머리를 억지로 제 가슴팍에 묻게 했
으니까.
‘이러니까 내가 걱정을 하지…….’
걱정. 그 단어가 이리도 달큼할 줄이야. 곧은 손가락이 머리칼을 헤집고, 목덜미 아
래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뒤이어 등을 다독인 그는 어린아이를 재우듯 길게 속삭였
다.
‘쉬이…….’
전해지는 심장 박동을 끝으로 잠이 들었으니, 내게는 그의 존재가 그 어떤 수면제보
다 나을 터였다. 상담을 받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그가 옆에 있다면 다 필요 없단 생
각이 들었다. 내게 필요한 건 딱 하나, 살아 숨 쉬는 정세진뿐이었으니.
“삼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주말을 맞아 혜율이가 놀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이른 아침
부터 집으로 찾아온 혜율이는 내 품에 답삭 안기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질거리
는 눈동자가 내 뒤에 서 있던 상대를 향했다.
“혜율이 안녕.”
녹아내릴 것처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정세진이 혜율이에게 인사했다. 혜율이
가 놀러 온다는 말에 그 또한 어젯밤부터 내 집에 머문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얼굴이
었는지, 혜율이는 내 목을 끌어안은 채로 수줍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오빠 엄청 오랜만에 봐.”
도르륵 눈을 굴리는 모습이, 오랜만에 본다고 다시 낯을 가리는 모양이다. 장례
식 이후로 보지 못했으니 어린아이가 느끼기엔 제법 오래전 일일 거다. 정세진도 그
리 생각했는지 푸스스 웃음을 흘리며 나긋이 되물었다.
“그러게. 잘 지냈어?”
“네에.”
“혜율이 이제 초등학생인가?”
“네, 1학년 1반이에요.”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혜율이는 그를 꽤 좋아했고, 정세진 역시 아이에게 무척 친
절했으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지난번처럼 함께 낮잠도 잘 수 있겠지.
‘오빠가 우리 오빠였으면 좋겠어.’
그 당시 혜율이는 잠든 정세진의 뺨을 건드리며 이렇게 속삭였다. 평소에도 나이 많
은 형제자매를 원하더니 저와 잘 놀아 주는 정세진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가 ‘오빠’가 아니라는 사실보단 만약 진짜 오빠라면 곤란하단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
다.
‘안 돼, 삼촌 약혼자야.’
유치한 말이었고, 당연히 반쯤 장난이었다. 혜율이 역시 딱히 진지하게 듣지 않
고 ‘약혼자’가 무어냐고 되물어 왔었다. 그 말에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라고 답하
지 못한 게, 내 마지막 양심이었다.
“삼촌, 나 내려 줘.”
혜율이는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서자마자 정세진의 옷깃을 붙잡았다. 조금 전까지 서
먹하게 굴었으면서 그를 잡아당기는 손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오빠, 오빠. 같이 수련 보러 가요.”
“수련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으응, 그것도 맞는데.”
내가 묻는 말에 혜율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양쪽으로 땋은 머리가 살랑살
랑 흔들렸다. 혜율이는 다른 손으로 정세진을 척 가리키며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오빠도 모네 좋아하니까 같이 보러 갈 거야.”
모네를 좋아했던가. 그림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의미로 쳐다보자, 정세
진이 눈을 찡긋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뭐……. 좋아하는 편이에요.”
알 만했다. 아마 혜율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채 어영부영 좋아한다고 대답했겠
지. 모네의 화풍을 유독 좋아하는 혜율이는 타인의 안목 역시 저와 비슷할 거라고 믿
었으니까. 아마 ‘오빠도 모네 좋아해요?’ 정도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을 터였
다.
“삼촌, 우리 갔다 올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따라갈까 하다
가 문득 제자리에 선 채 가만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며, 걱
정스레 말하는 정세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요, 정세진 씨라면 좋은 아빠가 되겠죠.’
욕심낼 생각은 없었다. 그와 함께하는 일상이, 내게는 기적이나 다름없었으니
까. 우리가 결혼한다고 해서 무작정 아이를 바랄 만큼 나는 염치없지 않았다.
“혜율아, 뛰면 안 된다니까.”
그래도 만약, 아주 만약에. 네가 원하고, 그래서 내게 한 번의 기회를 더 허락한다
면. 그렇다면 그를 닮은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혜율이는 오후가 될 무렵 집으로 데리러 온 누나와 함께 돌아갔다. 함께 점심 식사
를 마친 다음이었고, 정세진이 쓰던 3층 방에서 향료까지 가지고 논 다음이었다. 혜
율이가 개중에 한 향료를 마음에 들어 하자, 정세진은 다음에 그와 비슷한 향을 선물
하겠다며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다.
‘삼촌도 안녕히 계세요!’
그러면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집으로 돌아갈 땐 혜율이의 호칭이 마침내 ‘삼촌’으
로 바뀌었다. 누나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정세진은 그저 말없이 빙긋 웃기만 했
다. 모르긴 몰라도, 혜율이가 혹할 만한 조건을 내건 게 분명했다.
“혜율이도 후각이 예민한 것 같아요.”
그 후 우리는 나란히 정원을 거닐다 오랜만에 온실을 찾았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
라 따사로운 햇살이 온실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차를 마시겠냐고 물었지만, 정세진
은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 위에 걸터앉을 뿐이었다.
“향수를 쓰기엔 아직 어리니까, 디퓨저 같은 걸 만들어 줘도 좋을 것 같고.”
“그것도 괜찮지. 천연 향료라고 했었나?”
“맞아요. 희나 씨 공방에서 가져오는 건데 아이들한테도 괜찮은 성분인가 보더라고
요.”
따사로운 봄 햇볕이 그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엷은 색의 눈동자, 반듯한 콧대
를 지나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생김새
는 꽃으로 가득한 온실과 퍽 잘 어울렸다.
‘온실에 조명을 달까요.’
그리 말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세진의 상냥함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같잖은 질
투를 늘어놓던 내겐 또 다른 시간대를 약속하고 어린아이의 단순한 기호 하나엔 무
얼 선물할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래서…….”
나는 테이블 가까이 다가가 그를 양팔 사이에 가두고 고개를 기울였다. 대리석으
로 된 상판에서 살짝 서늘한 기운이 전해졌다.
“혜율이한텐 뭐라고 했길래?”
“아, 별건 아니고…….”
그는 부드럽게 눈을 휘며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뺨과 귓가
를 어루만지고 목으로 내려왔다.
“그냥 삼촌이랑 결혼할 거니까 이제부터 나도 혜율이 삼촌이라고 했죠. 그럼 앞으
로 자주 볼 수 있냐길래 그렇다고도 했고.”
고민을 엄청 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제 여덟 살이 돼서 의젓해
진 모양이라며, 정세진은 마냥 귀엽다는 듯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여
전히 웃음기가 담긴 눈으로 나를 들여다본다.
“늘 느끼지만…… 권이도 씨랑 닮았어요.”
“그런 말 많이 들어.”
혜율이는 누나를 많이 닮아서 누나와 닮은 나 역시 꽤 닮은 편이었다. 정작 아빠
인 매형은 그다지 닮지 않는 바람에, 매형이 사뭇 아쉬워하던 기억이 있다.
“혜율이가 동생 가지고 싶다던데. 생각 없대요?”
“동생을 가지고 싶대? 오빠랑 언니 얘기만 하더니.”
“오빠랑 언니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나 보지.”
“뭐…… 계획은 있을 텐데, 누나도 워낙 일이 바빠서.”
말을 이을 때마다 그는 가만가만 내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사이 내리깔린 두 눈
은 어쩐지 입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내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린 그가 은근
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낳을까.”
“…….”
간혹,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책임하게 불을 지필 때가 있다. 내가 그 말을 진짜 믿
고 덜컥 덤벼들면 어떡하려고. 실수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그를 눈앞
에 두면 그 다짐이 자꾸 흔들렸다.
“뭐…… 어차피 지금은 못 갖지만.”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지, 정세진은 금세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깨를 으쓱하
고 내 목에 팔을 감아 끌어당긴 것이다. 순순히 허리를 숙이자, 그가 내 입술에 쪽 입
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권이도 씨.”
“네, 정세진 씨.”
그의 호칭을 따라 했을 뿐인데, 그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슬
쩍 입술을 문지른다. 보드라운 입술이 스치는 순간, 아랫배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자기야.”
“…….”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을 지피곤 한다고. 내가 느리게 눈
을 깜박이자, 그가 내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댔다.
“이건 ‘응, 자기야.’라고 안 해주네.”
“……응, 자기야.”
바라는 건 그게 아닌 듯했지만, 나는 순순히 그렇게 대답했다. 역시나 정세진은 거
기서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입술을 움직였다.
“여보.”
“…….”
“형?”
마지막 음절엔 장난기가 듬뿍 담겨 있었다. 그는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곤 능청스
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권이도 씨’는 너무 딱딱했죠.”
하여간 뻔뻔한 구석이 있다니까. 웬만해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럴 땐 빼는 법
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자, 그 또한 나를 따라 웃었다.
“뭐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다 마음에 드니까 정세진 씨 마음대로 불러도 될 것 같은데요.”
“우리 자기가 욕심이 없네…….”
여전히 입술을 떨어뜨리지 않은 터라 말을 할 때마다 온기가 스쳤다. 어느새 피어오
르기 시작한 페로몬도 향긋하게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 페로몬이 의미하는 바
가 뻔해서, 은근슬쩍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세진아.”
그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정세진이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입술이 조금 더 깊
게 맞물리고, 벌어진 입술 틈새로 간지러운 숨결이 흘러나왔다. 말캉한 점막으로 혀
를 밀어 넣자, 목덜미가 오싹할 만큼 짜릿한 감각이 일었다.
처음 입을 맞췄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린 입 안을 탐닉하는 행위가 지나치게 기
분 좋았다. 말캉한 혀를 문지르고 입천장을 건드리다가 그 타액을 받아마셨다. 그
가 입술을 움찔거리는 것,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것과 팔에 힘을 주는 것까지. 그에
게 나를 새기는 행위가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정세진은 키스가 서툴렀지만, 그 서투름마저 나를 미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
다. 처음보다 익숙해진 지금이, 이 모든 게 내가 만들어 낸 습관이라서, 그에게
서 내 흔적을 찾을 때마다 이성이 아득히 멀어졌다.
“……하아.”
쪽, 젖은 소리와 함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가늘게 늘어난 타액을 혀로 핥아 내
자, 그가 간지럽다는 듯 허리를 잘게 떨었다. 숨소리에 열기가 섞이는 이유는 비단 이
곳이 따뜻한 온실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열에 달뜬 호흡만큼이나 발개진 눈가가 자
꾸만 입맛을 돋웠다.
“……잠깐, 잠깐만.”
“응, 세진아.”
“아니, 손이 지금 어디로…….”
나는 모르는 척 바지 윗부분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편안한 바지인 데다, 체격
에 비해 허리가 날씬한 터라 손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손끝으로 속옷
의 밴딩 부분을 어루만지자 정세진이 내 어깨를 살짝 밀어 냈다.
“……여기 어딘지 까먹은 거 아니죠?”
“그걸 어떻게 까먹겠어.”
꽃을 좋아한다는 그를 위해 공사까지 해가며 만든 온실. 그와 어울리는 장소를 만들
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도 특히 신경 써가며 지시한 기억이 있다. 어두운 와중
에도 함께하기 위해 조명까지 달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망각할 리가.
“그걸 아는 사람이…… .”
“어차피 여기도 내 집인데.”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상 안으로 들어올 고용인도 없었
다. 사방이 훤히 뚫려 있긴 하지만 어차피 유리 바깥조차 내 집의 정원이지 않은가.
“아직 대낮이잖아요.”
“그럼 밤까지 할까?”
“…….”
그는 황당한 얼굴로 가느다란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손으로는 등허리를 문지르
자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 진짜 변태 같아…….”
그간의 반응으로 보건대 거부는 아니었다. 아랫배에 고이기 시작한 성욕 역시, 오
로지 내 것만은 아니었다. 쿵, 쿵, 뛰는 심장 소리가 그 또한 기대하고 있단 사실을 알
려 줬다.
“싫으면 침대로 가고.”
부러 모르는 척 그를 동그란 테이블 위에 눕혔다.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허벅
지로 중심부를 꾸욱 누르기도 했다. 반쯤 발기한 부피감이 바지 너머로 적나라하
게 느껴졌다.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말은 잘하지…….”
그는 곧장 지지 않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으나, 오히려 내
게 다리를 감고 조르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가 입고 있던 니트를 위로 걷
어 올리고, 잠시 훤히 드러난 상반신을 감상했다.
“정말…….”
환하게 비치는 햇살이 그의 몸 위로 흩뿌려지는 듯했다. 너무 마르지도, 그렇다
고 너무 근육 지지도 않은 몸이다. 판판한 가슴 아래 명치 부분이 움푹 들어갔고, 복
부는 나름대로 단단한 편이었다. 늘씬한 허리나 도드라진 장골도 그렇지만, 전체적
으로 하얀 피부가 참 장관이었다.
“더럽히고 싶게 생겼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할까. 그 빌어먹을 집구석에서 신체적 학대가 없
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뺨을 맞았을 때도 눈이 도는 기분이었는데, 또 다른 흔
적이 있었다면 고작 그 정도 처분으로 봐줄 수 없었겠지.
“……본인이 더럽힌 건 안 보여요?”
정세진은 조금 어이없단 투로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가슴과 갈비뼈 부분에 내
가 지난밤 남겨 놓은 자국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하도 물고 빨아서일까, 색이 연
한 유두도 조금 부어 있는 듯했다.
“아직 더럽힐 데가 많아서.”
“얼마나 더…… 흣!”
앞니로 도드라진 돌기를 살짝 깨물었다. 작은 접촉이었음에도 정세진은 흠칫 놀
라 허리를 움찔거렸다. 그런 그를 달래듯 혀끝을 세워 깨물었던 부분을 문지르자 어
깨에 올라온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아마 그는 모르겠지만, 근래 들어 가슴이 더 예민해진 듯했다. 아무리 오메가여
도 남자면 여기로 느끼긴 힘들다던데. 매일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완
전히 학습된 모양이다.
“으응…….”
바르작거리는 그를 다독이며 왼손으로 가슴을 살짝 움켜쥐었다. 만질 것도 없는 납
작한 부분이었지만, 꼿꼿이 선 유두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일부러 손가락 사이에 끼
우고 문지르자, 그가 미치겠다는 듯 앓는 숨을 내뱉었다.
“왜 거기만…… 흣…….”
괴롭혀 버릇하면 안 되는데.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빨개지니 도무지 손과 입
을 뗄 수가 없었다. 원체 색소가 옅고 하얀 정세진은 은밀한 곳에 있는 부위조차 색감
이 남달랐다. 가령 지금 혀로 굴리는 부분은 물론, 허리를 들썩이며 비비적거리는 아
랫도리까지도.
“……허리 들어 봐.”
입술을 떼어 내며 이야기하자 그가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온실 내부
를 가득 채운 꽃향기에 정세진의 페로몬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바지와 속옷
을 한 번에 내리자 선단이 젖은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이따 깨물어 봐도 됩니까?’
한때 그렇게 물었을 만큼, 길고 곧은 성기는 꽤 예쁘게 생긴 편이었다. 일단 색이 연
하고 모양이 매끄러웠으며, 결코 작지 않은 사이즈였다. 입 안에 넣으면 목구멍 깊숙
한 곳까지 밀어 넣어야 다 머금을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