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106)화 (106/131)

106화. A La fin de La Memoire(5)

눈을 떴을 땐, 어슴푸레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술기운이 많이 날아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가물가물 눈을 깜박이자, 머리맡에서 권이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깼어?”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반쯤 눈이 감기고 있는데, 여전히 말끔한 얼굴의 권이도가 보였다. 어두운 와중에도 그가 자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안 잤어요?”

“자다 깬 거야.”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내놓았다. 우리가 함께 지낸 밤이 몇 번째인데. 아무렴 내가 그걸 믿으리라고.

“팔 저리겠다.”

고개를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권이도가 나를 끌어안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머리칼에 얼굴을 문질렀다. 내내 붙어 있던 터라 뜨끈뜨끈한 체온이 한가득 전해졌다.

“이대로 다시 자.”

“…….”

아무래도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나 보다. 그래서 그냥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그의 가슴팍에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조금 빠른 듯한 박동이 멀어졌던 잠기운을 스멀스멀 불러왔다.

“……그러는 권이도 씨는 왜 안 자고.”

그러나 나는 곧장 잠을 청하는 대신 그에게 말을 붙였다. 자기 전까지 수다를 떨어 놓고, 또 잠이 드는 게 아쉬워졌기 때문이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나. 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날.

“그냥, 잠이 안 와서.”

저 대사는 내가 해야 되는데. 그리 생각하며 꾸물꾸물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허리에 팔을 감자 그가 조금 더 세게 나를 끌어안았다.

“향수라도 뿌려야겠어요.”

“그것보단 네 페로몬이 나을걸.”

페로몬 좀 달라는 말을 돌려 하고 있었다. 나는 군말 없이 그에게 찬찬히 페로몬을 넘겨줬다. 옅은 꽃향기가 짙은 나무 냄새에 섞여들었다. 언제 기분이 가라앉았냐는 듯, 권이도의 기분이 점점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

“…….”

한동안 숨소리만 들렸다. 잠들기 딱 좋은 환경이었는데, 오히려 점점 정신이 또렷해졌다. 따듯한 체온이, 이따금 전해지는 두근거림이, 그리고 무언가 심란해 보이는 권이도가 신경 쓰였으니까.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슬쩍 입을 열었다. 물론 없는 궁금증을 억지로 끄집어낸 건 아니었다. 그와의 기억을 모두 되찾은 뒤에 문득 궁금해진 것이니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무슨 기준으로 고른 거예요?”

우리가 다시 약혼했을 때, 권이도는 본인이 선택한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워 놨다. 기준이 없는 듯 보이지만, 분명 심사숙고해서 고른 사람들일 거다.

“김 실장님이나 이태성 씨, 그리고 이희나 씨…… 맞아, 그거 들었어요? 두 사람 결혼한대요.”

문득 떠오른 사실을 이야기하자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권이도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나직이 대꾸했다. 하긴, 이태성을 마주칠 일도 없는데 어딜 가서 들었겠냐마는.

“그래서 대답은?”

“…….”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대로 권이도를 마주 보자 어둠 속에서도 또렷한 시선이 느껴졌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앞머리를 넘겨 준 그가 평소보다 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예전에…… 네가 누명을 쓰고 잡혀갔을 때, 널 빼달라고 부탁한 게 네 비서였어.”

“…….”

비서라 함은 김 실장인데, 그가 하는 말은 곧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누명을 쓰고 잡혀갔을 때. 횡령 혐의로 수갑을 찼던 그 날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연락을 했더라고.”

권이도는 단조로운 음성으로 뒷말을 이었다. 그가 말하길, 김 실장은 다짜고짜 그에게 연락을 넣어 무작정 애원했단다. 내가 그런 게 아니니까 제발 빼달라고, 나중에 사례는 제대로 하겠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빨리 조치할 수 있었어. 그게 아니어도 빼 오긴 했겠지만, 아니었으면 하루 만에는 못 빼 왔겠지.”

“……김 실장님이 권이도 씨한테 연락했다고요?”

그의 입으로 듣고도 믿기 힘든 말이었다. 나는, 김 실장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를 거스를 수 없어서 끝내 날 놔버렸다고, 배신감을 느꼈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더 충격적인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 회장에 관한 자료를 건네준 것도 그 사람이야.”

“…….”

멍하니 입을 다물었다. 어렴풋이 의심하고 있던 부분을 권이도가 구태여 확인 사살시켜 줬다. 그냥 이해관계가 맞았다던, 김 실장의 목소리 위에 권이도의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과거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김 실장은 처음부터 아버지를 배신할 생각이었구나. 아니, 어쩌면 신의를 가지고 있던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내렸던 결론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모든 걸 버릴 각오였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팀장은…….”

권이도는 내가 충격받은 걸 알고도 곧장 뒷말을 이었다. 아마, 더 생각에 잠길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놀랐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원래 경호 팀장으로 있었는데 아랫놈들이 뇌물 먹은 거 뒤집어쓰고 그대로 잘렸지.”

“경호원이 뇌물 먹을 게 있어요?”

“왜 없겠어. 걔네만큼 비리를 많이 보는 사람도 드물 텐데.”

요령 없고, 융통성 없고, 핑계를 댈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직하니 한 길만 보고 걸어서, 누명을 썼을 때도 한마디도 못 했다고.

“그만두고 나가겠다는 거 데리고 온 거야. 적어도 헛짓거리할 놈은 아닌 것 같아서.”

사고 쳐서 좌천됐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그래서 말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어 했었나 보다. 아마 내가 물어본다고 해도 사실을 알려 주진 않았겠지만.

“이희나라는 조향사는 과거에도 이 팀장 애인이었어.”

“…….”

오늘, 놀라운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싶다. 아무래도 다시 잠을 자긴 그른 것 같았다. 내가 할 말을 잃고 헛웃음을 흘리자, 권이도가 내 이마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운명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지.”

당신이 말하는 운명엔 우리 사이도 포함되어 있을까. 과거에도, 지금도, 같은 관계가 된 건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물론 그 끝은 다르겠지만, 이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또 궁금한 게 있어?”

곧장 자라고 할 줄 알았건만, 권이도는 나긋이 내게 질문했다. 내가 자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 또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권이도 역시 딱히 잠을 자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내가 생각해도 모호한 질문이라고는 생각했다. 마땅히 대답할 말도 없을 거고, 대략적인 이유는 나 또한 알고 있었다. 과거의 모든 기억이 나와 관련된 증거였으니. 그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겠지.

“……각인이 안 풀려서.”

그런데 권이도는 아주 천천히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뱉었다. 이마를 콩 부딪치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기도 했다.

“가끔, 네 기분이 온전히 느껴질 때가 있었어.”

“…….”

각인이 안 풀렸다니. 그게 정확히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걸까. 우리가 처음 각인했던 그때, 나는 그의 마음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그 홀로 내 감정을 느끼던 각인이 설마 재회한 다음에도 이어졌던 걸까.

“……힘들었겠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차마 그의 상황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 떠듬떠듬 아연한 감상이 흘러나왔다. 권이도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힘들어야지.”

“…….”

“널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모순되게도, 나는 권이도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도하곤 한다. 그가 진심으로 내게 속죄하려고 했다는 게, 그리고 나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적어도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날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처럼 느껴졌으니까.

“당신만 잘못한 거 아니에요.”

이 말을 조금 더 일찍 해줄 걸 그랬나. 더는 죄인일 필요가 없다고, 충분히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내가 그의 속죄를 보며 안도하는 반면, 내게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건만.

“애초에 내가 그랬던 건…….”

권이정 탓도 있다고,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를 떠올리는 순간 이상하리만치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권이도의 기억이 전해지는 바람에 함께 공유된 미묘한 찜찜함이.

“……권이도 씨.”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내 부름에서 뭘 느꼈는지 권이도가 맞닿았던 이마를 떨어뜨렸다. 나는 가만히 그를 마주 본 채 대뜸 이야기했다.

“권이정을 어떻게 했어요?”

매스컴에서는 권이정의 실종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권이경은 그를 찾는 듯했지만, 끝내 찾아내진 못한 모양이었다. 가족들 역시 선호그룹 장남을 포기했고, 그 기이한 상황 가운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 사람한테…… 손을 썼어요?”

그와 각인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거다. 권이정을 떠올리자마자 느낀 기시감이 아니었다면 이 질문을 건넬 일도 없었겠지.

“죽이진 않았어.”

그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담담히 대꾸했다. 그 대답에 놀라지 않은 건, 나 또한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따라 죽을 각오까지 한 그가, 권이정을 가만히 놔뒀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그게 뭐야.”

그럼에도 마땅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가 정확히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말을 얹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그냥 헛웃음을 흘리는데 권이도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냥 잊어버려.”

“…….”

“네 몫까지 내가 기억할게.”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까. 그 맹목적인 애정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가 품을 내어 줄수록 더 파고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만히 입을 맞추자, 그가 내 아랫입술을 살며시 베어 물었다.

가벼웠던 입맞춤은 금세 농밀하게 변해 갔다. 먼저 입을 맞춘 건 나였지만, 조금 더 매달린 쪽은 권이도였다. 입술 틈새로 혀를 밀어 넣은 그가 내 혀를 문지른 것이다.

아…… 이게 이렇게 좋아도 되나.

키스가 이토록 만족스러운 행위라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아니, 미리 알아 봤자 어차피 할 상대도 없었겠지만. 그리고 상대가 권이도가 아니라면 이런 기분 따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뒤통수를 쓰다듬던 손이 목덜미로 내려왔다. 조심조심 목 언저리를 주무르다가 새끼손가락으로 가운 깃을 건드린다. 슬그머니 내려온 손은 목 아래 볼록 튀어나온 뼈를 간지럽혔다.

“응…….”

이럴 때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앓는 소리가 나왔다. 숨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가 나를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그와 나 둘만 남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대로 딱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쪽, 입술이 떨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온화한 입맞춤이었다. 더 해달라는 듯이 그에게 입술을 문질렀지만, 권이도는 입을 맞춰 주는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세진아, 우리…….”

왜일까. 그 서두를 듣는 순간 가슴께가 내려앉았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들어서. 뒷말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음에도, 그게 나쁜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 같았으니까.

“결혼할까.”

“…….”

눈을 커다랗게 떴다. 방금 들은 한마디가 이상하리만치 귓가에 울렸다. 테이프를 느리게 감은 것처럼 이해되지 않는 와중에 그가 속삭이듯 내게 이야기했다.

“남들한테 보여 주는 결혼 말고, 정말 너랑 내가 하는 결혼.”

아, 결혼을 하자고 그랬구나. 지극히 일상적인 어조로, 그렇기에 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명치가 결릴 만큼 바짝 긴장한 주제에, 이렇게 달큼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

“너랑 가족이 되고 싶은데.”

그 말을 들었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권이도가 해준 말에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잠이 들기 전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라면 다 했다고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던 숨겨 놓은 진심이.

‘……나는 그냥 가족이 가지고 싶었거든요.’

“…….”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냥 평범하게 대답하면 되는 말들이, 때로는 내게 과분할 만큼 벅찬 감동을 안겨 줬다. 그가 고심해서 건넨 제안들이,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 마음에 짙게 남아 버렸다.

“……청혼을 반지도 없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부러, 무심한 목소리로 타박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왈칵 모든 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게 눈물이건, 아니면 그간의 설움이건, 혹은 참고 참았던 어리광이건. 조금 너무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권이도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반지 있어.”

“…….”

“네 생일 선물도 있고.”

실은 내일 주려고 했는데……. 그리 중얼거린 권이도가 조심스럽게 내 눈가를 문질렀다. 분명 울고 있지 않았는데, 마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처럼. 그대로 눈두덩에 입술을 내리누른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

아, 이렇게 말하는 건 반칙인데.

이토록 기쁜 감사 인사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매년 누군가가 생일을 챙겨 줬음에도 그 상대가 권이도라는 것만으로 감상이 남달랐다. 내게 소중한, 단 하나뿐인 상대가, 내 존재를 감사한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거 알아요?”

돌이켜 보면, 그때에도 같은 선물을 받았었다. 비록 기분은 지금과 달랐지만, 불러올 상황만큼은 비슷했을 테니.

“작년 생일에도…….”

말을 꺼내 놓고 끝까지 마치지는 못했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목이 멨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모든 걸 삼켜 낸 뒤엔 그에게 딱 한마디만 해줄 수 있었다.

“당신이랑 결혼하란 말을 들었어요.”

‘세진이 너한테 혼사가 들어왔어.’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생일을 축하받지 못했다. 바빠서 까먹었으리라고 위안 삼았으나, 사실은 내 존재를 감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사용하는 물건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직원들도 전부 부를래요.”

그를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억지로 품에 얼굴을 묻었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른 나를, 권이도는 굳이 확인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저 나를 품에 안은 채 숨을 죽였을 뿐.

“해신에 있는 기획팀 직원들이랑, ‘Sejin’ 직원들…….”

“…….”

“기자 말고, 딱 우리 사람들만 불러서.”

“…….”

“……그렇게 결혼해요, 우리.”

축의금은 받지 말자고 해야지. 장소는 영빈관이어도 좋지만, 장식은 조금 달랐으면 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꽃과 향수를 선물하고, 우리에겐 좋은 기억만 남기길 바랐다.

“그래.”

“…….”

“그렇게 결혼하자.”

결혼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엔 딱 두 가지만 떠올랐다. 하나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제 정말 끝이라는 것이었다. 아픈 과거건, 이루지 못한 미련이건. 아니면 그가 내게 바라던 최소한의 용서건.

“세진아, 내가…….”

귓가를 파고든 목소리는 내 마지막 결핍을 채워 주는 단 하나의 고백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에게 같은 대답을 돌려줬고, 그에게 내 미래를 약속했다.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의 미래에 더는 아픈 날들이 없길 바라며.

그 기억의 끝에서 나는 너와 함께하려고 한다.

<그 기억의 끝에 본편 완결>

- 외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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