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A La fin de La Memoire(1)
등 뒤로 펼쳐진 바깥엔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몇 대가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푸르른 색이었다.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 아래, 대표실 내부엔 질척거리는 소리와 앓는 신음만 울려 퍼졌다.
“아…….”
나는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며 창문에 등을 기댔다. 손끝으로 창문을 긁는가 하면 미치겠다는 듯 뒤통수를 유리에 비비적거리기도 했다. 한 손으로 어깨를 밀어 냈지만, 그 역시 큰 효과는 없었다.
“그만, 흣…….”
뜨거운 입 안이 성기를 뿌리 끝까지 머금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귀두를 조이고 혀로 기둥을 부드럽게 감싼다. 벼랑 끝에서 뚝 추락하는 듯한 쾌감에 다급히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으.”
아, 이거 맛 들일 것 같은데.
나는 그리 생각하며 가물가물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깔끔하게 세팅한 머리칼과 반듯한 이마 따위가 보였다. 내리깔린 속눈썹은 퍽 단아했으나 높게 뻗은 콧대 아래 발간 입술엔 민망한 물건이 물려 있었다. 움찔거리는 허벅지는 이미 큼직한 손에 잡힌 상태였고, 내가 밀어 내려고 하면 할수록 움직임만 더 집요해졌다.
“권이도 씨, 나 이제…… 흣…….”
차마 그 머리에 손을 댈 수가 없어 어깨만 꾸욱 붙잡았다. 대표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나를 달래려는 것처럼 허벅지를 살살 다독였다. 그러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허벅지 뒤쪽을 제 쪽으로 꾸욱 잡아당긴다.
“흡……!”
부드러운 점막이 성기를 뜨겁게 감쌌다.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는 듯해서 창문에 콩 뒤통수를 부딪쳤다. 눈을 꾹 감은 채로 아랫배에 바짝 힘을 주고, 혀를 꾹 깨물었다.
“……!”
서서히 차오르던 쾌감은 그가 다시금 목구멍을 조이자마자 펑 하고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꽉 붙잡은 채 좁은 목구멍 속에 파정했다. 내가 정액을 토해 내는 동안에도 그는 내 성기를 입에서 빼내지 않았다. 그저 여유롭게 목울대를 움직이며 그저 내가 쏟은 모든 걸 받아 마셨을 뿐이다.
“흐…….”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귓가가 발개질 만큼 수치심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부를 정도로 만족감이 들었다. 느른한 숨을 내뱉으며 몸에 힘을 빼자, 권이도가 그제야 내 성기를 입에서 빼내었다.
“양이 많네.”
기품 있는 목소리가 여유롭게 감상평 따위를 내뱉었다. 타액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반질거리는 입술이 야하기 짝이 없었다. 혀를 내어 내 귀두를 핥은 그가 눈만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한 번 더 해줄까?”
“……됐거든요.”
나는 그를 밀어 내고 잽싸게 바지를 추슬렀다. 버클과 벨트를 모두 채우자 그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그때까지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기에 그의 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빨리 일어나요. 왜 그러고 있어.”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권이도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으리라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 성기를 입에 넣고, 더 빨고 싶다는 듯이 아쉬움을 내비칠 줄이야.
“아, 바지 구겨졌네…….”
나는 권이도의 바지를 살펴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하던 옷차림이 대표실에 한 번 들어오기만 하면 엉망이 되곤 했다. 물론 그조차도 권이도가 입고 있으면 이상하지 않았지만.
“괜찮아. 아무도 몰라.”
그는 내 허리에 팔을 감고 내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키스를 하지 않는 건, 방금 입 안에 정액을 머금었던 탓일 거다. 내가 괜찮다고 말했음에도 이상한 데서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나보단 세진이 네 표정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
“…….”
도통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거울을 보진 못했지만 여전히 얼굴이 빨개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간지럽게 웃은 권이도가 다시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얼굴 식히고 나와. 먼저 나갈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내게서 한 발짝 떨어져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내가 붙잡았던 어깨를 탈탈 털고 넥타이를 정리한 뒤 바지까지 살폈다. 머리를 안 건드려서 다행이지. 대표실로 들어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 회의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대표님.”
정중히 웃은 권이도가 묵례를 하고 등을 돌렸다. 나는 그 넓은 등판을 바라보며 홧홧거리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렸다. 그와의 연애를 시작한 지도 벌써 석 달째였다.
* * *
지난겨울은 유달리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계절이었다. 눈이 끝도 없이 내렸고, 아침저녁으로 살을 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 내부가 냉장고처럼 느껴졌고, 잠깐만 창문을 열면 직원들의 원성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계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끝나기 마련이다. 해가 바뀌고, 눈 깜박할 새에 봄이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쌓였던 눈은 소리 없이 녹아내리고 이제는 먼저 나서서 환기를 시키는 직원들도 생겼다.
그사이 ‘Sejin’은 선호재단과 본격적인 전속 계약을 맺었다. 콜라보 제품의 반응이 무척 좋았던 데다, 그해 후원금이 예년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권이도의 제안으로 맺은 계약이었으나, 그 이후엔 내가 직접 권이경에게 연락을 넣었다.
‘세진 씨, 오랜만이네요.’
장례식장에서 받은 명함으로 연락했을 때, 권이경은 의외로 흔쾌히 나와의 만남을 수락했다. 실종된 권이정 대신 명성호텔을 소유하게 된 그는, 복지재단과 문화재단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제 관심사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덕일까, 다시 만난 권이경은 지난번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장기화하고 싶다고요?’
그는 권이도와 내 사이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고, 진지한 얼굴로 내가 제안한 프로젝트만 검토해 봤다. 한껏 집중한 모습은 역시나 권이도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렇게 모든 설명을 들은 뒤엔 그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야 좋죠. 세진 씨랑 일하면 이도가 돈도 안 받고 알아서 봉사할 텐데.’
권이도가 끼면 성과율이 다르다며, 권이경은 제 동생의 호구 짓을 응원했다. 우리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면서 권이도가 무언가 열심히 한다는 사실만 아는 모양이었다. 그는 말없이 입을 다무는 내게 상냥한 목소리로 권유했다.
‘혜율이가 세진 씨 보고 싶어 하니까 다음에 시간 좀 내줘요.’
빈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 작은 아이가 나를 기억한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얼굴로 웃은 모양이다.
‘삼촌이랑 같이 보자고 전해 주세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고, 권이경이 이야기했다. 그게 긍정적인 의미라는 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음 계약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ejin’과 선호재단 사이의 계약이 체결됐다.
“……회사에서 이러지 말라니까.”
그리하여 지금, 나는 담당을 자처한 권이도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매일 오진 않았지만, 그는 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미팅을 가지려고 했다. 일이야 알아서 잘하니까 둘째치고, 딱 하나 곤란한 게 바로 아까 같은 상황이었다.
“난 세운 걸 빼준 죄밖에 없는데.”
울린 게 미안해서 다 받아 준 게 문제였을까. 버릇을 잘못 들여도 한참 잘못 들였다. 나와 둘만 남는 일이 생기면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애정 표현을 퍼부었다. 대표실 창문이 매직미러라고 말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러다 정말 일을 치를까 봐 걱정될 지경이었다.
“권이도 씨가 자꾸 건드리니까 그렇죠.”
“그랬나?”
권이도는 시치미를 떼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아까 대표실을 찾아오자마자 은근슬쩍 페로몬을 뿌리던 사람이 누군데. 아니, 귓가를 농밀하게 만지는 손길에 목을 움츠린 게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가 나를 창문에 세워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무 데서나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나마 미팅을 하는 회의실에선 얌전히 있으니 다행일까. 대표실이야, 문만 잘 잠그면 밖에서 무슨 수를 써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눈치는 또 얼마나 빠른지, 내가 진심으로 거부하면 더 들이대지는 않았다.
“맛도 없다면서 그걸 왜 자꾸…….”
“익숙해지니까 괜찮더라고.”
뻔뻔하게 대꾸한 권이도가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그런 짓을 했냐는 듯 단정한 옷차림이 퍽 금욕적이었다. 이런 사람이 남의 걸 빨면서 세우는 변태라니. 세상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는가.
“자꾸 이러면 못 오게 할 겁니다.”
단호하게 건넨 말엔 그 또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의 일을 반성하는 것 같진 않았고, 정말 못 오게 할까 봐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 어차피 매일 얼굴을 보면서, 낮에 잠깐 만나는 게 뭐 그리 간절한지 모르겠다.
대표실에서 시간을 꽤 보낸 탓에 회의는 생각보다 일찍 끝냈다. 권이도가 먼저 시간을 확인하며 일어섰고, 나 또한 서류를 정리하고 그를 뒤따랐다. 이번에 출시할 상품 역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난 뒤였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늘 그랬듯, 나는 엘리베이터까지 그를 데려다줬다. 권이도는 계기판의 숫자를 확인하고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내 눈가에 쪽, 입을 맞췄다.
“이따 데리러 올게.”
깃털이 내려앉는 것처럼 가벼운 촉감이었다. 너무 짧은 찰나였기에 순간적으로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서 더 붙잡을 수는 없기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배웅했다.
“연락할게요.”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덜컹거리며 닫힌 승강기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 다섯 층쯤 내려갔을까. 나는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을 돌려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유리 벽 너머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있던 직원들과. 한 명도 아닌,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과.
망했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권이도가 눈치를 살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고, 또 그래서 입을 맞추게 내버려 둔 거였건만.
“…….”
나는 최대한 표정을 가다듬고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여전히 따끔거릴 정도로 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차마 무시할 수 없는 눈빛이라 하는 수 없이 그들을 향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일 안 합니까?”
“대표님!”
직원 하나가 새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가 흠칫 눈가를 움찔하자, 이번엔 다른 쪽에서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아니라고 하시더니!”
그래, 눈이 있는 이상 그걸 못 봤을 리가 없지. 절묘한 각도 탓에 오히려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직원들이 저마다 호소하는 말들을 들으며 나는 난처한 얼굴로 웃는 수밖에 없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죠. 아니라곤 안 했어요.”
선호와의 전속 계약을 맺었을 때, 직원들은 한 번 사그라졌던 우리의 로맨스를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권이도가 나를 잊지 못해서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맨날 대답 안 하고 웃기만 하셨잖아요.”
“하하…… 그랬나?”
“봐봐요, 지금처럼!”
딱히 숨기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대놓고 티를 내려던 것도 아니었다. 직원들이 그런 걸로 흉을 볼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대표인 내가 공과 사 구분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뭐…… 이제는 다 틀려 먹었지만.
“두 분 언제부터 만나셨는데요? 네?”
그들은 사춘기 중학생처럼 권이도와 내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일하기 싫은 와중에 즐거운 가십거리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럴 줄 알았다느니, 누가 먼저 고백했냐느니, 잔뜩 들뜬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들려왔다.
“당연히 고백은 권 전무님이 하셨겠지. 대표님한테 한눈에 반한 게 분명하다니까?”
“하, 대표님 우리 회사 마스코튼데!”
“그래도 권 전무님 정도면…….”
추측이 난무하던 대화는 어느샌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됐다. 권이도의 끝없는 구애 끝에 내가 그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번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한 가지 정정할 부분이 있긴 했다.
“만나자고는 제가 했습니다.”
연애하자는 말은 내가 했으니까, 결국 고백도 내가 한 게 아닌가. 권이도가 들으면 뭐라고 반응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직원들은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누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용해졌던 내부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닭살이라느니, 할 땐 하는 남자라느니. 요란스럽게 굴던 직원들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두 분 진짜 잘 어울리시긴 해요.”
우스운 일이지. 고작 그런 말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꾸며 내지 않은 관계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아, 재단과의 협업은 권이도 전무랑 상관없는 거 다들 알죠?”
“그럼요! 저희가 대표님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직원들은 적당한 타이밍에 그 주제를 마무리했다.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는 듯했고, 과하게 장난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역시, 직원 하나는 잘 뽑아 놨다니까. 나는 그리 생각하며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자 이제 일합시다, 다들.”
* * *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창밖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해가 짧은 터라 눈 깜박할 새에 어둠이 내려앉을 터였다. 나는 퇴근하는 직원들을 배웅하고 외투를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세진아.”
권이도는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사귀게 된 이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회사로 데리러 왔다. 기사도 있는 사람이 직접 차를 운전해서는, 손수 조수석 문까지 열어 주곤 했다.
제가 잘하겠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까. 매일 그와 함께 퇴근하는 덕에 이태성과 김 실장만 어부지리로 칼퇴근을 얻게 됐다. 이태성은 데이트할 시간이 생겨 좋은 모양이었는데, 김 실장은 왜인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자식을 빼앗긴 부모 같다는 생각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맨날 데리러 오고…… 일은 언제 하나 몰라.”
나는 운전석에 오르는 그를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그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안전벨트를 채워 준 후엔 자연스럽게 쪽 소리가 나게 입까지 맞췄다.
“내가 능력이 좋아서.”
능청스러운 대답은 발화자가 권이도라는 것만으로 이미 신뢰 가는 것이었다. 연애에 눈이 멀어 회사를 말아먹진 않을 테니, 나를 만나지 않는 동안 일 처리를 다 해놓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한 번 능률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그래서 먹고 싶은 건?”
넌지시 물은 권이도가 허벅지 위에 올려놨던 손을 그러쥐었다. 차를 출발시킬 생각은 안 하고, 얼기설기 깍지를 끼더니 엄지로 손등을 만지작거린다.
사귀게 된 이후 그는 틈만 나면 나와 닿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다. 눈이나 뺨, 입술에 뽀뽀를 하는 건 기본이고 손을 잡고 있다가도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글쎄…… 배가 별로 안 고픈데.”
“그래도 먹어야지.”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나와 헤어질 생각을 했을까.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온몸에 선연히 느껴졌다. 살랑살랑 풍겨 나온 페로몬은 내 것과 섞여 이미 차 안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의선당으로 갈까.”
그는 넌지시 이야기하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습관처럼 그의 손을 맞잡은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술을 달싹였다. 마침 내일이 주말이었고, 아주 오랜만에 찾아와야 할 물건들도 있었으니까.
“권이도 씨 집으로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