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100)화 (100/131)

100화. Retour des Saisons(11)

“…….”

너무 당황하면 정말 아무 말도 안 나오는구나. 권이도는 이미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좀 전에 본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눈물만 쏟아 내던 그 장면을.

“아니…….”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에 한 발짝 다가가자, 들릴 듯 말 듯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이래서…….”

“…….”

“……이래서 안 오려고 했어.”

이래서 안 오려고 했다고?

“그게 무슨…….”

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지니 깨달은 건데, 내쉬는 숨결에 엷게 울음이 섞여 나왔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도무지 그가 울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 울어요?”

뭘 잘했다고 운단 말인가.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데. 본인 입으로 미련을 거의 버렸다고 말해 놓고, 정작 가버리려고 하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쪽이…… 아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운 기분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를 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지금은 우선 이유를 물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 봐봐요.”

“…….”

“나 봐요, 권이도 씨.”

그러나 그는 나를 바라보지도, 그렇다고 내 말에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저 숨을 크게 들이시며 입술을 깨물었을 뿐. 그 모습이 답답해서 손목을 붙잡자, 그제야 스르륵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세진아.”

툭, 어깨에 이마가 닿았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그에게선 날씨만큼이나 찬 기운이 느껴졌다. 비비적, 어깨에 얼굴을 문지른 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잘못했어.”

숨을 흡 들이켰다. 흘러나온 한마디가 지금껏 들어 왔던 어떤 사과보다 절절했다.

“내가 미안해.”

목이 메는 모양이다. 늘 발성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흐릿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양팔을 붙잡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운을 뗐다.

“그러니까…….”

데자뷔……라고 해야 하나. 그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그때처럼. 내 손을 잡고 간절히 애원하던 그때처럼. 하라는 걸 모두 하겠다던 권이도의 목소리가 귓가를 아른거렸다.

“가지 마.”

“…….”

아, 이 말을 이제야 듣게 됐다. 버리지 말아 달라는 말도, 용서해 달라는 말도 아닌, 그저 가지 말아 달라는 그 한마디를.

“……미련 다 버렸다면서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숨결처럼 흘러나온 대답엔 지금껏 쌓였던 울분이 섞여 있었다.

“내가 사라지라고 하면 사라질 거라면서.”

이렇게 울면서 말하는 건 반칙이 아닌가. 여태 아무렇지 않던 주제에 이제 와 감정이 북받치기 시작하다니. 서서히 일렁이는 슬픔은 옅은 페로몬과 함께 온전히 내게 쏟아졌다.

“근데 본인이 울면 어떡해요.”

“…….”

그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서럽게 이어진 숨소리가, 덜덜 떨리는 손이, 간간이 들리는 흐느낌이 모든 걸 보여 줬으니까.

“권이도 씨.”

나는 천천히 그의 팔을 마주 잡았다. 그를 밀어 내려고 했으나, 그가 손에 힘을 주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놓아준다더니, 지금은 붙잡고 있는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사근사근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나 봐봐요, 빨리.”

“…….”

“얼른.”

말 안 듣는 아이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요지부동이다. 한 번 더 재촉할까 했다가,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엄하게 다그치는 수밖에 없었다.

“고개 안 들면 저 집에 갈 겁니다.”

우습게도, 그 협박의 효과는 대단했다. 짧게 움찔거린 권이도가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올린 것이다. 그 잠깐 사이에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그가 기댔던 코트에 눈물 자국이 남았다.

“…….”

“…….”

아까와는 달리 새빨개진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흘러내려서는, 매끄러운 턱을 타고 똑 떨어졌다.

“……정말 미련 다 버렸어요?”

나는 살며시 그의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젖은 피부가 찬 바람을 맞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온기를 찾는 어린 짐승처럼, 그는 눈을 감고 내 손바닥에 뺨을 문질렀다. 이내 눈을 꾹 감았다가 뜬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아까와는 다른 대답이었다. 울컥, 목울대를 움직이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도 못 버렸어.”

이럴 거면서, 왜 고집을 부렸을까. 그게 자책감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토록 아파하는 주제에 앞으로 어떻게 지내려고 한 건지. 혹은 아까 우리가 마주 봤을 땐 왜 그리 평온했던 건지.

“너랑 관련된 건 아무것도 버릴 수가 없어.”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끝이 갈라지는 음성에선 늘 보여 주던 여유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서히 눈가를 일그러뜨린 권이도가 와락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미안.”

“…….”

“미안해, 세진아.”

이렇게 울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서럽게, 처량하게 울 수 있었구나.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눈가를 발갛게 물들인 채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어 댄다.

“나한테 이럴 자격 없는 거 아는데…….”

“…….”

“근데 안 될 것 같아.”

분명 가여운데, 가여운 만큼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 언저리가 간질거려서 주머니 속에 넣었던 손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 대단한 사람이, 늘 흔들림 없던 권이도가, 내 앞에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낸단 사실에 만족감이 일었다.

“제발 가지 마…….”

내가, 권이도한테 변태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네.

손을 거둬들이고 목구멍 너머로 꿀꺽 한숨을 삼켰다. 조금…… 아니 실은 많이 귀여운 것 같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괴롭히고 싶은 걸 보면.

“그만 울어요.”

“…….”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계속 울어.”

위로를 하는 방법은 몰랐다. 안아 주고 다독여 주기엔 그가 보여 준 태도가 아직도 괘씸했다. 그를 어르고 달랠 수도 있었지만, 부러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럴 거면서 왜 그랬어요?”

“……하.”

탄식처럼 터져 나온 숨에 물기가 가득했다. 내 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젖은 두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음을 참다 참다 안 됐는지, 권이도는 다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늘 젖은 나무와도 같던 페로몬이 지금은 장대비가 내리는 숲 같았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못했다고 빌지.”

“…….”

“그랬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야기를 꺼냈다. 핏줄이 도드라진 손등에 시선을 두고, 이따금 달싹이는 입술을 가끔 구경하면서. 금방이라도 그에게 뻗고 싶은 손을 애써 주먹을 쥐어 참아 가면서.

“미안하니까 가지 말라고 했으면 좋았잖아. 자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너 없으면 안 되겠다고 매달렸어야지.”

통쾌하다는 생각보단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쌓였던 속내를 늘어놓으면서, 나도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영영 내 눈앞에서 사라지긴 무슨…….”

그에게 서운해하면서도, 분명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괜한 고집으로 강한 척하는 게 분명하다고, 나 홀로 결론 내렸었단 말이다.

“거의 다 버렸다고 하질 말든가.”

그래서 더 배신감이 들었다. 나를 향한 미련을 버렸다는 그 한마디에.

“각인한 사이에 그게 될 리가 없는데…….”

그가 시야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나는 항상 권이도를 느낄 수 있었다. 권이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고, 우리는 분명 이별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겠지. 각인이…… 그래, 우리의 연결 고리가 풀리지 않는 이상.

“어차피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문득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말을 꺼내자마자 갑작스럽게 기시감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내게서 거둬진 시선, 체념 어린 눈동자, 그리고 지나치게 차분하던 마음.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권이도 씨.”

천천히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머리로는 하나둘 날짜를 되짚으면서. 우리가 헤어졌던 계절, 과거의 내가 죽었던 시기. 막연히 이맘때라고 생각했던 날짜를 차근차근 떠올렸다.

‘……잘 지내봐요, 한번.’

그게 오늘이구나. 깨닫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거의 다 버렸다던 한마디가, 조금씩 죽여 가던 기대가, 권이도가 보여 줬던 모든 반응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

죽으려던 거였다. 나를 여기에 두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리려고. 나에 대한 감정을 모두 버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고. 내가, 그를 두고 했던 선택을 그대로 따라서 말이다.

“어떻게…….”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아서, 그에게 바짝 다가가 손목을 붙잡았다. 얼굴을 가린 손을 억지로 끌어내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마주 봤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죠.”

“…….”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서린 감정은 분명 낭패감이었으니까. 여전히 눈물에 젖은 눈동자엔 모든 걸 들킨 사람의 체념도 함께였다.

“……아니라고 해요.”

“…….”

“아니라고 하라고요.”

삐쭉삐쭉,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그가 대답하지 않으면 정체 모를 무언가가 뻥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를 재촉했건만. 그런데 권이도는 처연히 눈을 내리깔며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안.”

“대체 어떻게……!”

울컥, 입을 열었다가 목이 메는 것처럼 뒷말을 삼켰다. 눈을 꾹 감았다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바람에 붙잡았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언제였더라. 그가 나와의 약혼을 끝냈던 그 날처럼. 갑작스레 밀려든 실망과 배신감을 막아낼 길이 없었다.

“왜 맨날 그런 식이에요? 혼자 결론 내리고, 혼자 끝내고,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내가 그에게 화낼 자격이 있을까. 그런 의문은 모르는 척했다. 눈앞이 캄캄하게 물드는 것만 같아서 짓씹듯 쏘아붙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죽으면 내가 기뻐할 것 같아요? 귀찮은 사람이 없어졌다고 좋아할 것 같았어? 그렇게 각인이 풀리면, 그럼 내가 잘 살 줄 알고?”

“…….”

“왜 그러는데, 대체, 왜!”

퍽! 권이도의 어깨를 내려쳤다. 나까지 눈앞이 뿌예지려고 해서 잠깐 입을 다물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권이도와 눈이 마주쳤을 땐, 마지막에 보았던 그의 얼굴이 또렷이 생각났다.

“……사람이 어떻게 그래.”

주먹을 꾹 움켜쥔 채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어깨에 손을 댄 채로 시근덕거리며 비꼬기도 했다.

“왜, 잘 지내라고도 해보지.”

“…….”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 잘 지내보라고 했어야지.”

나는 그때, 권이도가 후회하길 바랐다.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의 기억 속에 남길 바랐단 말이다. 그렇다면 권이도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내가 그를, 잊지 않았으면 하고.

“……그거 말고 방법을 몰라서 그랬어.”

그런데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릴없이 구겨진 얼굴이 아까 울음을 참던 것과 비슷했다. 느릿느릿 내 손목을 붙잡은 권이도가 억눌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한테 복수하려던 거 아니야.”

내가 무슨 마음으로 죽었는지 알고 있었구나. 그 죽음에 그를 향한 원망이 담겼단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구나.

“내가 널 어떻게 망쳤는데 너한테 다시 만나자고 해.”

그가 늘, 해왔던 말이었다. 아롱아롱 맺혔던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를 붙잡은 손엔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그걸 용서해 달라고 하겠어.”

한 방울, 두 방울,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넘쳐 버린 감정을 참을 길이 없어서, 말을 하면서도 권이도는 울고 있었다.

“나도 내 곁에 남아 달라고 애원하고 싶어. 울고 무릎 꿇고, 그렇게 매달려서라도 널 잡을 수 있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

벅차오르는 감정만큼이나 목소리도 격해졌다. 이제 그는 눈물을 참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차오른 흐느낌을 꿀꺽 삼킨 그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3주…… 그래, 그 안에 포기하려고 했지. 미련도 다 버리고, 그다음에 널 놓아주려고.”

그가 정한 3주는 정말 마지막을 위한 유예 기간이었나 보다. 내 얼굴을 보면서도 그는 서서히 마음을 죽이고 있었다.

“근데 네가 한마디 할 때마다 기대가 생겨.”

“…….”

“나랑 자고…… 그리고 내일은 나한테 웃어 주지 않을까. 또 내일은 괜찮아졌다고 해주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다시 예전처럼…….”

거기까지 말한 권이도가 말을 멈췄다. 찌푸린 눈가가 숨이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자아냈다. 이윽고 터져 나온 숨결에 그간의 설움이 한가득 섞여 있었다.

“……예전처럼, 날 좋아해 주지 않을까.”

그는 잠시 입을 다문 채로 숨을 골랐다. 뚝, 뚝, 떨어진 눈물이 발치를 한가득 적시고 있었다. 비가 오는 것처럼 아스팔트 위에 짙은 그림자가 남았다.

“근데 아니잖아.”

“…….”

“너 마음 정리 다 했잖아, 세진아.”

각인이 정말 별거 아니라니까. 모든 걸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에게 울며 화를 냈던 다음 날부터, 차분해진 내 마음을 보고 그리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거기서 내가 무슨 염치로 너를 잡아.”

언제 잠잠했냐는 듯 그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덮어놓고 무시했던 감정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구 튀어나와 소리를 질렀다. 그는 크게 숨을 몰아쉬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없이 살 자신이 없어.”

깜박,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이러다 또 네가 싫어할 짓만 할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는 권이도는 자괴감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싫다는 듯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원망도 떠올랐다.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

“그래야 각인이 풀리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다 괜찮아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줄 알았건만, 사실은 더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아직도 풀어야 할 실타래가 많아서. 각인이 전해 주지 않은 모든 걸 구태여 입으로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나는 느리게 운을 떼며 붙잡힌 손을 빼냈다. 이번에도 권이도는 쉽게 나를 놓아줬다. 스르륵 손을 거둔 그가 힘없이 아래로 팔을 떨어뜨렸다.

“정말 바보 같네.”

내가 이렇게 멍청한 짓을 했었구나.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은 그저 벼랑 끝에 내몰린 선택에 불과했다. 그 당시엔 최선이라고 여겼건만, 돌이켜 보니 온통 실수투성이였다.

“권이도 씨.”

기분은 놀라우리만치 차분했다. 그에게 해야 할 말들이 별반 어려움 없이 떠올랐다.

“내가 죽은 뒤에 그쪽이 날 따라서 죽었죠.”

나는 그의 죽음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나를 따라서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으니, 그 또한 비슷한 시기에 죽지 않았을까.

“그럼 그쪽이 죽은 뒤에 나는 어떻게 할 것 같은데요.”

“…….”

순식간에, 권이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덜컹 흔들린 눈동자에 초점이 흐려졌다.

“죽으면 남는 사람만 힘들지.”

나를 놓아준다고, 그런 건 다 핑계였다. 본인이 괴로우니까 내린 선택에 내 사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거다. 그저 도망치기에만 급급해서 뒷생각을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원래 기억하는 사람만 힘들잖아요.”

“…….”

“그건 권이도 씨가 가장 잘 알 거고.”

권이도는 차마 아니라고 말하진 못했다.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몇 달간, 누구보다 가장 괴로운 사람이 권이도였을 테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목까지 차오른 한숨을 꿀꺽 삼키고, 집에서 챙겨 나온 상자를 꼭 움켜쥐면서.

“이러지 말고 같이 저녁이나 먹어요.”

“…….”

“시간도 늦었고…… 겸사겸사 줄 것도 있으니까.”

흘긋 살펴본 권이도는 울음을 거의 멈춘 상태였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긴 했지만, 아까처럼 비 오듯 쏟아지진 않았다. 여전히 발갛게 물든 눈가가 안쓰럽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가엾잖아요. 저기, 김 실장님 계속 기다리는데.”

김 실장 얘기는 하지 말 걸 그랬나. 권이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내 어깨 너머를 바라봤던 그가 나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이며 후, 한숨을 토해 냈다.

“가요. 식당 예약해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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